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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30
    죽어도 '동지'가 될 수 없는 우리.(3)
    레이-1
  2. 2005/03/23
    결혼에 대한 고민.(7)
    레이-1
  3. 2005/03/22
    이건 변명에 불과하지만.(7)
    레이-1
  4. 2005/03/18
    시끄러운 독도 문제.
    레이-1
  5. 2005/03/16
    어떻게 써먹는건지 익혀야겠다.
    레이-1
  6. 2005/01/19
    음주가무 싫어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레이-1
  7. 2005/01/16
    옛날 시집살이 보다 더한 저작권법.(3)
    레이-1
  8. 2005/01/06
    당신은 언제 눈물을 흘립니까?(3)
    레이-1
  9. 2004/11/16
    어떻게도 규정할수 없는 사람.(3)
    레이-1
  10. 2004/11/12
    인지도를 돈으로 팔아먹기.(7)
    레이-1

죽어도 '동지'가 될 수 없는 우리.

* 이 글은 달군님의 [우리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 에 관련된 글입니다.

#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제 이런 사건-이걸 뭐라 불러야 하나-따위는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2003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 1415만명 중 783만4천명(55.4%)에 달한다. 비정규직은 여성·청년·노인·저학력 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이 407만명으로 여성 전체 임금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다. 15∼24살 청년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도 70%를 넘는다. 중졸 이하 학력자는 5명 가운데 4명이 비정규직이다."

2004.5.27 "비정규직, 그들은 누구인가" 한겨레 기사(조계완 기자)

비정규직은 여성에게는 당연한거고, 능력있고 힘있는 남성들에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나보다. 그네들이 죽도록 매달리는 '결혼'까지 미뤄두고, 마치 여성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 줄 것처럼 '정규직되면 결혼하자'라는 말로 달콤하게 속삭여준다.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주는 '그'의 사랑에 눈물이라도 흘려줘야 할 것만 같다. -ㅠ-

그래도 여성 비정규직은 입닥치고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다. 운좋은 '남성'정규직이 '어여삐'여겨줘서 '결혼'해 줄 기회를 놓친다면 그녀는 살아남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 어차피 '동지'라고 여겨줄거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이렇게 본심을 드러낼 거면 필요할 때만 '여성 동지들의 단결된 투쟁을~~'운운하지 말란 말이다. 언제는 우리가 너네-이 표현 참 웃긴다-동지였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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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고민.

* 이 글은 돕헤드님의 [결혼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결혼 문제에 대해 살짝(아주 진지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고민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결혼'자체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결혼'제도에 대한 고민은 내 생활과 연관되는 직접적인 고민이 되기보다는 그냥 주변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서 '왜 저런데도 결혼을 할까'하는 생각 정도였다.

트랙백을 건 돕헤드의 글에 대해서는 물론 충분히ㅡ알엠님처럼 200%는 아니겠지만ㅡ공감하지만, 그게 막상 내 문제로 다가오면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결혼'이라는 현실적 무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 그에 부과되는 재정적, 공간적, 감정적 문제에 관해서는 그간 내가 별로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에ㅡ앞으로도 별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ㅡ'결혼 할거야?'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Nooooooooooooo!'라는 시원한 대답은 사실 내 마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감가는 부분이라면 '여성 혼자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측면 때문에. 작게는 미혼 여성이 대출 받기 어렵다는 얘기들을 심심찮게 듣는 것 부터 시작해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ㅡ기혼남성, 비혼남성, 기혼여성, 비혼여성의 순서대로 정해지는 엿같은 계층화ㅡ으로 떨어진다는 부담감도 일정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하는 엄청난(!) 소망이 있다. 그래, 이 부분에서 만큼은 영원한 피터팬으로 머물렀으면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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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변명에 불과하지만.

한 5년 전만 해도, 소위 '운동권 사투리'에 심하게 찌들어 있었다.
그때 당시에 쓴 문서 뿐만 아니라 자유게시판 따위에 글을 올려도 딱딱하고 말도 안되는 추상적인 개념어들을 사용한 이상한 글이 튀어나오곤 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예전에도 친구와 '대중운동을 하려는 활동가'가 쉬운 언어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면서 서로를 질책하고 자아비판을 종종 하곤 했는데, 특히 요즘에는 정말 '쉬운말'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1.
 
요즘 만나는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은 '제발 거짓말좀 하지 마!'라는 얘기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친구들은, 자신의 잔인함, 비겁함, 야비함을 숨기고 새하얀 양의 탈을 쓰고 내 앞에 선다. 그럴때는 가차없이 한마디 던진다. '구라 치지마.'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두 이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태적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독도문제에 대해서 '일본놈들 다 주거써!'/ KTX 있으면 편하잖아요? 라고 금방 속내를 드러내는 녀석들은 그래도 아직 놀려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자신이 '쌩구라'를 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녀석들과의 말 싸움이 피곤하다.
 
#2.
 
여기서가 진짜 변명.
영어를 못 읽고, 못 읽는다면 번역서 자료들이라도 끝까지 쫓아가지 않은 것은 나의 게으름 탓이고 내 잘못이지만. 문맹은 내가 부끄러워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영어를 잘 알지 못하면 점점 운동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을 접하면서, (영어) 문맹은 이제 정말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 되어간다. 자기 계발을 안한다는 욕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자꾸 주눅드는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영어가 필요한 걸까, 아니면 영어는 이미 너무 기본이라 내가 대중운동을 못 따라가고 있는걸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떠오른다.
 
왠지, CCL과 정보공유라이선스 관련 논쟁이 서로간의 입장을 긍정적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직접적으로 라이선스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한(특히 CCL은 전혀 모르니;;) 내 잘못이라고 생각되게 하고, 그래서 다시 산더미 처럼 쌓인 운동과제들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해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만든다.
그냥, 뭐든 '원칙'을 가지고 가볍게 다가갈 수는 없는걸까. 그래서 나는 정보공유라이선스가 만들어진게 사실 고맙다.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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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독도 문제.

* 이 글은 개굴님의 [독도는 바다제비와 괭이갈매기의 것이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개굴님이 올린 포스트의 글과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독도에 대한 문제니까..
사실 글을 먼저 썼다가 포스트를 보고 나중에 트랙백 했다. 남들 다 한번씩 했던 얘기지만 그래도 또 한번.

한참 중국의 동북아공정 때문에 시끄럽더니, 이제는 독도 문제로 시끄럽다. 오늘 뉴스를 보니 “‘욘사마’의 독도 발언 회피에 대해 네티즌들 섭섭” 이런 제목의 기사까지 있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사 한 줄 정도는 외우고 있을 정도로 국민 가요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은 한마디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단 일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경쟁’이 될 만한 꺼리에서는 언제나 ‘화끈한 공동체주의’를 보여주는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축구경기를 보는 순간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변신하는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 사람, 별로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독도 문제로 단지(斷指)하여 결의를 보이는 모자가 등장하는 시위 기사를 보고 있노라니, 영 마음이 편치는 않다. 예전에 한 친구에게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대한 시비를 역사교과서등의 사료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판단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며 지나가듯 말 한 적이 있었다. 요컨대, 역사라는 것이 결국 현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라면 그의 왜곡은 현실에서의 문제를 반영하는 하나의 액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쯤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결국 ‘국토’라는 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고, 그게 결정적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주제에..라고 하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내가 국적을 달라고 구걸한 기억도 없다. 여기에 태어난 것은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 독도 ‘사태’의 원인은 아무래도 영유권 분쟁/어민들의 조업 가능 구역 설정의 문제가 가장 핵심이 아닐까. 생존의 절박함-극심한 환경변화로 예전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 어민들이 좀 더 조업을 잘 해볼 요량으로 뭍에서 조금 멀리 나가고 싶어하는 것-이 영유권, 군사문제, 국토의 문제 등 아주 까다로운 절차에서 걸려버린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이라면, 그들에게 조업을 허 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조업을 허락 받고 싶다면(은연중에 묻어나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각인) 그냥 강제로 ‘다케시마의 날’조례 따위를 만들 것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그 근방 어민들이 함께 모여 손잡고 평화협정을 맺어도 될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좀 더 간단하게 내 식대로 이야기한다면, 사람 사는 일을 지도 위에 선 긋기로 구획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게는 독도 문제가 (좀 희화화하자면) 여기까지는 대한민국 바다/저기는 일본 바다 라고 갈라봤자 바다는 바다 그 자체일 뿐이다. 잘 때는 우리나라바다쪽 해초에 머물렀다가 깨어나서 먹이를 잡을 때 일본바다로 헤엄쳐가는 물고기를 누구것이라고 단정해서 나누는 문제처럼 ‘피식’하고 웃음 나는 얘기처럼 들린다. 오히려 내가 화내고 싶은 지점은, 친일 과거 청산문제나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찍 소리도 못 내다가 독도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부랴부랴 ‘친일 카페 폐쇄’로 대응한 정부의 ‘웃기지도 않는’ 행태이다.

오늘 싸이월드에 갔더니, 이런 그림이 떴다. 그러나 평소에 국토와 영유권 문제 따위에 우리가 신경쓰고 살 일이 뭐가 있었나.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질적인 분쟁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과 ‘남의 것’을 우선 갈라놓고 극단적인 반일감정을 무기 삼아 ‘우리 민족의 단결을 보여줄 때’라며 이럴때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운운하는, 그래서 정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과 힘을 실어주는게 못마땅할 뿐이다. 정부가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하는 초 울트라 강력 집단도 아니고(오히려 너무 무기력해서 기대하고 싶지 조차 않은 집단 아닌가.) 국가와 국가의 역할을 대체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국가’라는 울타리의 대결로 몰고 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떠한 상상력도 배제되는 것이 짜증날 뿐이다.

- 음. 뭔가 조목조목 잘 정리해보고 싶었지만. 귀찮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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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써먹는건지 익혀야겠다.

* 이 글은 진보네님의 [불여우와 진보 블로그] 에 관련된 글입니다.

그래서 트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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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무 싫어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 이 글은 Tori~님의 [(펀글)저작권법이 시행되면서 달라지는 우리생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제 노래 시키면 '저작권법에 걸려~'라고 내빼면 될테니. - 트랙백 건 글 보세요.
 
-ㅅ-;;
 
가만히 있다가도 저작권법 얘기 들으면 정말 '불법유포권법'으로 저걸 작살내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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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집살이 보다 더한 저작권법.

안듣고, 안보고, 그냥 죽어버릴까? 이건 뭐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시집살이보다 더 한거 아녀. 완전 좌절. OTL.
 
 
이런거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대체 뭐가 들었을까? 예전에 추리소설 '쥐덫'에서 가방이 가볍다는 표현을 '신문지로 싼 돌멩이만 들었다'고 표현한게 생각난다. 그 넘들 머리는 신문지로 싼 돌멩이만 몇개 들었을거야.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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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눈물을 흘립니까?

내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중 대부분은, 피도 눈물도 없을 것같은 냉정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홍채의 2/3정도만 보이는 눈 때문에 더 무서운 인상처럼 보이는 것인가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평가가 그닥 싫지는 않다. 만만하게 보여서 당하는 피해는 이미 '여성'이기 때문에 충분히 받고 있으므로, 속된 말로 '얼굴로 먹어주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일종의 방패역할을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나는 자주 눈물을 짜는 편이다. 몇년 전 콜롬비아 우와족-EXXON Mobile사의 석유채취에 맞서 부족 전체가 자살을 결의했던-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펑펑 눈물을 흘려댔더니, 수년을 알고 지냈던 선배 하나가 기절할 듯이 놀라는 것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그래, 내 인상이 좀 그래 보이긴 하지. 하면서 웃어 넘겼지만, 아직도 '눈물'이라는건 극단적 소통수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그런지 잘 받아주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극적인 상황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생뚱맞은 상황에서 눈이 아릿하게 되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오늘도 역시 그랬다.



나는 지하철에서 '씨네21'잡지를 보다가 울었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 청년 마라토너(조승우 분)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김미숙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녀는 이제 '언니'라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게 들리는 나이가 되었다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청년의 이야기인 '말아톤'이 '오아시스'나 '나의 왼발'처럼 중증 장애인을 다룬 영화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중년 여성의 외도를 그린 '언페이스풀'도 도입부만 보고 더 이상 보지 못했다고 했다.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어떤 현실은 잔혹하다. 하지만 그 현실을 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냥 지고 가야 하는 일상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잔혹한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래서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하는 내 느낌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나는 자꾸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데, 마침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그런 나의 생각을 대변해 준것이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잔혹한 현실들과 마주하여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가능하면 덜 아파하며 살고 싶은 내 심정이 충돌하는 상황이 어쩌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소통수단인 '눈물'로 표현된다는 것은 내가 그걸 견디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않는다. 고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희열은 상상할 수 없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나는 아마 여기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므로.

 

사족 : '맵다'는 감각은 통점에서 인지된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는 몸에서 매운 감각 -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저키스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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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도 규정할수 없는 사람.

* 이 글은 알엠님의 [나, 착취자-2003년 6월 2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엄마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관대함으로 타인을 보는 내 시선이,

유독 엄마한테 만큼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와 내가 한몸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아닌 시간을 둘이 동시에 겪었기 때문에

엄마와 나, 이렇게 둘은 서로를 '인간'이라는 객관화된 객체로 보지 못하는가보다.

 

엄마는 나의 창조자고, 나의 짐이고, 나의 여신이고, 나의 목표이자 삶이고, 나 이면서도 전혀 다른 남이다. 엄마는 어떤 식으로든 정의 내릴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엄마'라는건, '아빠'가 경음이라 발음하기 힘들고 어쩌고 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모두 떠나서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이치를 먼저 배우라는 의미일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알엠님의 글을 보고 엄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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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를 돈으로 팔아먹기.

* 이글은 "아르 님의 ["네 사진을 누구에게 주었나 / 싸이월드](from onblog) 포스트에 트랙백 되어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이해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는데, 요즘 속속 눈에 보이는 얘기들이 다 저런 내용이다. 얼마전 싸이월드 페이퍼 서비스에서 페이퍼 작성자들의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의 일부가 귀속된다는 약관이 문제가 됐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게 단순히 페이퍼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었던 거다.
 
글쎄. 일종의 카피레프트 선언을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써먹고 있는거 같다는 느낌이다. '사이좋은 사람들'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출발할 때 부터 '학연', '지연'등으로 얽히면 '봐주기'로 은근슬쩍 넘어가주는 우리 사회 미풍양속을 멋드러지게 포장한 상업주의라는 사실을 파악했어야 하는건데. 회원들의 저작물에 대해 '사용료 없는' '비독점적 사용권'을 회사에게 부여하라는 것은 '공짜로' '같이 나눠쓰자'라는 얘기 아닌가. -_-;
 

제14조(게시물의 저작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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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기업이라는 것이 돈 벌자고 하는 짓이니 가입시 잘 읽지도 않게 되는 약관에 저런 조항을 끼워 넣은 편법을 썼다고 해도 육두문자 몇번 날려주는 것 외엔 할말이 없다. 싸이말고도 더 많은 서비스에서 개인 정보나 저작물을 팔아먹는 얘기는 이제 '그러려니'하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블로그만큼의 자율성도 없는 미니홈피에 수천원의 돈을 쏟아붓게 만들면서 저작권까지 박탈한다는건 참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이긴 하다. (이렇게 유하게 할 말이 아닌데..그래도 참, 어떻게 열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아주 교묘하게도, 일종의 기술 소외 현상을 부추기고 있기까지 하다.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걸 대단한(물론 대단하지만..난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ㅠㅠ)기술이라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도토리가 뭔지 모르면 온라인 상에서 왕따가 되버릴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이 되었다. 싸이월드 상에서의 온라인 결재를 통한 미니홈피 꾸미기는 미니홈피 활용도에 대한 척도가 되고, 그것도 모르는(!) 사람은 인터넷을 잘 안하는 사람(이렇게 마구마구 일반화 해도 되는걸까. -_-;)로 취급당하기 까지 한다.(내 주변의 모씨가 실제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경우 목격함. 쩝.)
 
결국, 싸이월드는 '일촌'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공동체의 가능성의 허상을 불어 넣고 미니홈피를 통해 결국 '울타리만 있고 실체는 없는' 공동체의 왕국을 구축해버렸다. 투데이 멤버, 페이퍼를 통해 나의 인지도를 높히고 많은 인맥을 형성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지만, 그건 회원들의 저작권을 저당잡고 하는 '장사'인 것이다. 이제는 사람관계를 신 재산권인 '저작권'으로 사고팔아야 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만 하다.
 
말이 길어졌지만, 일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열 받는 얘기만 읽어버렸다. 정보공유라이선스 배너 달기나 어여 배워야겠다. 흑. -_ㅜ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글이로군. 만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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