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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사건-이걸 뭐라 불러야 하나-따위는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2003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 1415만명 중 783만4천명(55.4%)에 달한다. 비정규직은 여성·청년·노인·저학력 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이 407만명으로 여성 전체 임금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다. 15∼24살 청년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도 70%를 넘는다. 중졸 이하 학력자는 5명 가운데 4명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여성에게는 당연한거고, 능력있고 힘있는 남성들에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나보다. 그네들이 죽도록 매달리는 '결혼'까지 미뤄두고, 마치 여성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 줄 것처럼 '정규직되면 결혼하자'라는 말로 달콤하게 속삭여준다.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주는 '그'의 사랑에 눈물이라도 흘려줘야 할 것만 같다. -ㅠ-
그래도 여성 비정규직은 입닥치고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다. 운좋은 '남성'정규직이 '어여삐'여겨줘서 '결혼'해 줄 기회를 놓친다면 그녀는 살아남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 어차피 '동지'라고 여겨줄거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이렇게 본심을 드러낼 거면 필요할 때만 '여성 동지들의 단결된 투쟁을~~'운운하지 말란 말이다. 언제는 우리가 너네-이 표현 참 웃긴다-동지였더냐.
결혼 문제에 대해 살짝(아주 진지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고민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결혼'자체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결혼'제도에 대한 고민은 내 생활과 연관되는 직접적인 고민이 되기보다는 그냥 주변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서 '왜 저런데도 결혼을 할까'하는 생각 정도였다.
트랙백을 건 돕헤드의 글에 대해서는 물론 충분히ㅡ알엠님처럼 200%는 아니겠지만ㅡ공감하지만, 그게 막상 내 문제로 다가오면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결혼'이라는 현실적 무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 그에 부과되는 재정적, 공간적, 감정적 문제에 관해서는 그간 내가 별로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에ㅡ앞으로도 별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ㅡ'결혼 할거야?'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Nooooooooooooo!'라는 시원한 대답은 사실 내 마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감가는 부분이라면 '여성 혼자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측면 때문에. 작게는 미혼 여성이 대출 받기 어렵다는 얘기들을 심심찮게 듣는 것 부터 시작해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ㅡ기혼남성, 비혼남성, 기혼여성, 비혼여성의 순서대로 정해지는 엿같은 계층화ㅡ으로 떨어진다는 부담감도 일정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하는 엄청난(!) 소망이 있다. 그래, 이 부분에서 만큼은 영원한 피터팬으로 머물렀으면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한참 중국의 동북아공정 때문에 시끄럽더니, 이제는 독도 문제로 시끄럽다. 오늘 뉴스를 보니 “‘욘사마’의 독도 발언 회피에 대해 네티즌들 섭섭” 이런 제목의 기사까지 있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사 한 줄 정도는 외우고 있을 정도로 국민 가요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은 한마디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단 일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경쟁’이 될 만한 꺼리에서는 언제나 ‘화끈한 공동체주의’를 보여주는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축구경기를 보는 순간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변신하는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 사람, 별로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독도 문제로 단지(斷指)하여 결의를 보이는 모자가 등장하는 시위 기사를 보고 있노라니, 영 마음이 편치는 않다. 예전에 한 친구에게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대한 시비를 역사교과서등의 사료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판단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며 지나가듯 말 한 적이 있었다. 요컨대, 역사라는 것이 결국 현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라면 그의 왜곡은 현실에서의 문제를 반영하는 하나의 액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쯤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결국 ‘국토’라는 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고, 그게 결정적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주제에..라고 하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내가 국적을 달라고 구걸한 기억도 없다. 여기에 태어난 것은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 독도 ‘사태’의 원인은 아무래도 영유권 분쟁/어민들의 조업 가능 구역 설정의 문제가 가장 핵심이 아닐까. 생존의 절박함-극심한 환경변화로 예전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 어민들이 좀 더 조업을 잘 해볼 요량으로 뭍에서 조금 멀리 나가고 싶어하는 것-이 영유권, 군사문제, 국토의 문제 등 아주 까다로운 절차에서 걸려버린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이라면, 그들에게 조업을 허 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조업을 허락 받고 싶다면(은연중에 묻어나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각인) 그냥 강제로 ‘다케시마의 날’조례 따위를 만들 것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그 근방 어민들이 함께 모여 손잡고 평화협정을 맺어도 될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좀 더 간단하게 내 식대로 이야기한다면, 사람 사는 일을 지도 위에 선 긋기로 구획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게는 독도 문제가 (좀 희화화하자면) 여기까지는 대한민국 바다/저기는 일본 바다 라고 갈라봤자 바다는 바다 그 자체일 뿐이다. 잘 때는 우리나라바다쪽 해초에 머물렀다가 깨어나서 먹이를 잡을 때 일본바다로 헤엄쳐가는 물고기를 누구것이라고 단정해서 나누는 문제처럼 ‘피식’하고 웃음 나는 얘기처럼 들린다. 오히려 내가 화내고 싶은 지점은, 친일 과거 청산문제나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찍 소리도 못 내다가 독도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부랴부랴 ‘친일 카페 폐쇄’로 대응한 정부의 ‘웃기지도 않는’ 행태이다.
오늘 싸이월드에 갔더니, 이런 그림이 떴다. 그러나 평소에 국토와 영유권 문제 따위에 우리가 신경쓰고 살 일이 뭐가 있었나.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질적인 분쟁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과 ‘남의 것’을 우선 갈라놓고 극단적인 반일감정을 무기 삼아 ‘우리 민족의 단결을 보여줄 때’라며 이럴때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운운하는, 그래서 정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과 힘을 실어주는게 못마땅할 뿐이다. 정부가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하는 초 울트라 강력 집단도 아니고(오히려 너무 무기력해서 기대하고 싶지 조차 않은 집단 아닌가.) 국가와 국가의 역할을 대체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국가’라는 울타리의 대결로 몰고 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떠한 상상력도 배제되는 것이 짜증날 뿐이다.
- 음. 뭔가 조목조목 잘 정리해보고 싶었지만. 귀찮다. -_-;;
내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중 대부분은, 피도 눈물도 없을 것같은 냉정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홍채의 2/3정도만 보이는 눈 때문에 더 무서운 인상처럼 보이는 것인가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평가가 그닥 싫지는 않다. 만만하게 보여서 당하는 피해는 이미 '여성'이기 때문에 충분히 받고 있으므로, 속된 말로 '얼굴로 먹어주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일종의 방패역할을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나는 자주 눈물을 짜는 편이다. 몇년 전 콜롬비아 우와족-EXXON Mobile사의 석유채취에 맞서 부족 전체가 자살을 결의했던-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펑펑 눈물을 흘려댔더니, 수년을 알고 지냈던 선배 하나가 기절할 듯이 놀라는 것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그래, 내 인상이 좀 그래 보이긴 하지. 하면서 웃어 넘겼지만, 아직도 '눈물'이라는건 극단적 소통수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그런지 잘 받아주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극적인 상황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생뚱맞은 상황에서 눈이 아릿하게 되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오늘도 역시 그랬다.
나는 지하철에서 '씨네21'잡지를 보다가 울었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 청년 마라토너(조승우 분)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김미숙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녀는 이제 '언니'라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게 들리는 나이가 되었다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청년의 이야기인 '말아톤'이 '오아시스'나 '나의 왼발'처럼 중증 장애인을 다룬 영화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중년 여성의 외도를 그린 '언페이스풀'도 도입부만 보고 더 이상 보지 못했다고 했다.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어떤 현실은 잔혹하다. 하지만 그 현실을 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냥 지고 가야 하는 일상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잔혹한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래서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하는 내 느낌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나는 자꾸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데, 마침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그런 나의 생각을 대변해 준것이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잔혹한 현실들과 마주하여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가능하면 덜 아파하며 살고 싶은 내 심정이 충돌하는 상황이 어쩌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소통수단인 '눈물'로 표현된다는 것은 내가 그걸 견디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않는다. 고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희열은 상상할 수 없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나는 아마 여기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므로.
사족 : '맵다'는 감각은 통점에서 인지된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는 몸에서 매운 감각 -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저키스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알엠님의 [나, 착취자-2003년 6월 2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엄마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관대함으로 타인을 보는 내 시선이,
유독 엄마한테 만큼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와 내가 한몸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아닌 시간을 둘이 동시에 겪었기 때문에
엄마와 나, 이렇게 둘은 서로를 '인간'이라는 객관화된 객체로 보지 못하는가보다.
엄마는 나의 창조자고, 나의 짐이고, 나의 여신이고, 나의 목표이자 삶이고, 나 이면서도 전혀 다른 남이다. 엄마는 어떤 식으로든 정의 내릴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엄마'라는건, '아빠'가 경음이라 발음하기 힘들고 어쩌고 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모두 떠나서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이치를 먼저 배우라는 의미일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알엠님의 글을 보고 엄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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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jang_go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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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만든 문제는 포스터를 제작한 이의 의도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전 98년도인가 99년도 또한 이와 같은 노대포스터 사건... 아이엠프 실질한 가장을 여성과 아이가 바라보는 포스터이와 동일한 문제입니다.모든 사람이 정규직 그리고 남성노동자 이기에 가부장적 사회의 수혜자라는 선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성노동자가 당하고 있는 억압과 폭력 그리고 착취... 그 길에 동지들과 함께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 시선이 여성해방을 향한 시선으로 비춰지기를 바램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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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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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jang_gongjang // 우려하던 대로 읽혀졌나 보네요. ^^; 제가 염두에 둔 '우리'는 역시 죽어도 '동지'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한 표현입니다. 어차피, 읽어야 할 사람들은 읽지 않을테니 이렇게 쓸 필요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들은 그 '모든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범주에는 절대 속할 수 없는 주변인들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남성'들이 아니라, '남성 정규직'으로 인간의 표준을 정하는 사회와 그 분위기 입니다. 이런 코멘트는 안 달아주셨다면 더 좋았을지도.. 저야 계속 주변인으로만 살아야 하는 여성이고, 말 그대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이었는데 말이죠.
사실, 이런 설명글을 달아야 하는 이 순간이 매우 당혹스럽답니다. 마치 제 얘기가 예전에 마녀 사냥을 당했던 여성활동가들의 '철없는 얘기'를 담고 있다고 하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제가 확대 해석한건가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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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jang_go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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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균형감각을 잃은 것만은 분명하네요.늘 고민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늘 배우고 인식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만은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네요. 동동이님의 블로그를 가셔 답답한 심정이라는 것을 알았네요. 덧글이 불쾌하였다면 죄송합니다.
저의 무르익지 않은 글에 대한 생각을 트랙백을 끌적여 보았습니다. 저의 인식수준을 요.
하여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레이도 잘 지내죠. 다른 분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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