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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4/11/28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1/28
    아버지와의 대화(1)
    푸른 솔
  2. 2004/11/28
    북어국 끓이다 말고..(1)
    푸른 솔

아버지와의 대화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드뎌 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씀을 드렸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거기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아주 간단한 정보만 이야기 하는데도 한시간이 걸렸다. 대충 노인네가 이해 못할 부분은 빼고 보육현장 민주화와 아동의 인권보장을 위해서 만든다고 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횡령, 정원초과 등 나쁜 짓 하는 원장들 긴장하라고 노동조합 만드는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아버지 왈, '합리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면 되지 않겠니? 너를 믿는다.' 이 보수적인 양반이 왠일로 이리 순순히 노조활동을 인정한단 말인가? 잠시 감격했다. 그러나 뒤이어 하시는 말씀이... '뭐든지 대립각을 세울 생각만 하면 안된다. 한국노총 봐라 경영자랑 대화도 하고 합리적으로 하잖냐? 민주노총은 말도 안되는 요구나 하고, 도대체 이라크 파병이 노동자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노조에서 그런걸 요구하냐? 불그스럼해가지고..' 아버지 저도 불그스럼한대요? 그리고 세계적 견지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문제가 노동자랑 상관있는 것 맞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노동자도 국민인데 거기에 대해 의견을 가질 수 있죠. '그럼 안되지.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법의 테두리안에서, 그게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요구하는거야.' ....... 더 이야기 하다간 부녀간에 의가 상할 것 같아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니 더이상 얘기하지 말죠.하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아버지 그 노동법이 잘못되었을때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안(친척들을 통틀어)에서 가장 강력한 여론 주도층이다. 많은 친척들이 아버지의 정치적 견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데 아마도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 나의 인터뷰 기사가 났는데 그걸 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어느 친척도 그 신문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신문을 사서 돌렸다. 어머니가 큰 집에 전화를 걸어서 한겨레신문좀 보라고 했더니, '우린 조선일보만 봐' 이래서 그게 아니고 우리딸 기사가 났다니까요. 설명해서 그 면만 보게 만들었다. 그때 우리집안 어른들, 평생 처음으로 한겨레 신문을 봤다. 심지어 어떤 친척분은 한겨레신문같은데 자꾸 오르내리면 안 좋으니 조심하라고 전화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최고 수위를 달리는 보수파가 우리 아버지다. 그런 양반이니, 노조활동이란 거의 미친 짓으로 보일 수밖에. 그래도 자식이 가는 길을 말릴 도리는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노조활동을 충고해주시는거다. 필요하면 사용주와 타협하라. 이게 우리 아버지가 내게 주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충고였다. ------------- 우리 아버지는 평생 성실하게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도 안하는 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해서 돌아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하신다. 그리고 그 원인을 요령껏 살지 못한 자신에게서 찾는다. 부동산, 주식, 무엇을 해도 손해만 봐 온 분이기에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겠지. 그러나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문제인 것이지, 편법이 판치는 사회에서 편법을 쓰지 않아 늙으막까지 고생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것은 아무리봐도 이상하지 않느냐 말이다. 아버지의 성실한 삶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 사회가 문제이고 그래서 그런 사회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버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이 살아왔던 시대에 저항은 늘 개인적 파멸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사독재 초기에 이유도 없이 고모가 안기부에 끌려가서 1주일이나 생사를 알지 못해 애태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양반이 어째서 자신을 억압한 정권의 수하들에게 계속해서 투표하는지. (인질이 납치범에게 애정을 느끼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닌가 말이다.) 앞으로 이 의식의 간극을 어떻게 메꿔나가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진행시켜야 할지, 진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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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국 끓이다 말고..

* 이 글은 jineeya님의 [국가주의 타파와 공공노동자의 주적 개념] 에 관련된 글입니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 몸속에 남아 떠돌아 다니는 까닭에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냉동실에 북어가 남아 있다는 걸 떠올리고 북어국을 끓인다. 뒤져보니 파도 없다. 오로지 북어만으로 끓이고 있다. 북어국은 오래끓여 북어가 푹 우러나야 제맛이다. 그래서 북어국이 끓는 동안 jineeya님의 글을 읽었다. 글을 읽고나니 나도 몇자 거들고 싶어진다. 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협상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부 일반예산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많은데 이건 바로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만들어진 재원이기때문에 그 사회에서 동의하는 수준의 임금이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임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역할의 중요성을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우리가 자본주의적 가치- 효율성, 성과중심주의 등-가 아닌 다른 종류의 가치 - 공동체성, 협력과 연대,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전망 등-를 더 높게 평가하여 이에 따라 임금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매우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들이 하는 일은 직접적인 상품의 생산이나 이윤의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히 대인서비스(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교육, 보육, 사회복지..)분야에 있어 서비스의 중단은 가장 취약계층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파업권을 행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보육노동자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부모가 일터에 나가 있는동안 아이들을 돌본다. 돌보는 일은 정서적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측정하기가 매우 곤란할 뿐더러 어떻게 평가해야할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생산력을 기준으로 평가되어 왔다. 재생산과 관련된 노동은(가정관리, 육아 등) 일부 여성주의그룹을 제외하고는 진지하게 논의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이 누군가? 를 밝혀내는 일은 정말 어렵다. 포괄적 의미에서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하거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은 모두의 관심사가 되지만 정작 이를 위해 누가 돈을 써야 하는가?에 이르렀을 때 사실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그런 까닭에 임금소득만으로는 가정의 모든 문제를(위기와 재난) 해결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비용을 자본가가 가져간 이윤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구체적 대상을 '적'으로 지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신이 노동자임을 선포하는 일이 보육노동자에게 중요한 까닭은 적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이기보다는 동지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노동자 계급에 속해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일이 노동자 계급전체에 복무하는 일이라는 점을 깨닫기 위해서는 몸으로 이를 경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이런 자각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몇가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흠- 쓰다보니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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