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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 다녀왔다

태안에 다녀왔다.

 

찜질방에서 혜진 샘, 깡 샘, 이미애 샘, 이미애 샘의 어린이 두 명과 함께

찐달걀과 오징어,쥐포얼음을 둥둥 띄운 녹차, 맥주를 집어먹고 잠들었다.

그리고선 새벽 5시 기상, 6 사무실에 들러 헌 면 헝겊, 옷 가지기타 등등을 챙겨

6 30분에 태안으로 떴다

여성환경연대, 녹색연합, 생명의 숲, YMCA 등 총 2000명이 개목항으로 들어갔다.

 

방제복입고 부츠 신고 고무장갑 끼고 어쩌고 하다보니 정작 작업시간은 11시 넘어서 시작되었다. 자갈돌 하나나 닦았을까, 싶었을 때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은 오후 1시가 되자 해변가로 치솟았다.

작업은 2시간도 채 못 하고 차오르는 물에 쫓겨서 패잔병처럼 퇴각했다.

실무자인 우리마저도 민망하고 황당했으니 자원활동 신청가들이 입이 대빨 나왔어도

뭐 할 말도 없었다. 자원봉사 확인서에 8시간, 이라고 써진 것을 보고 서로들 민망해서 쓰러지실 지경이었다.

 

넓고 넓은 해변가의 돌과 모래들이 기름때에 쩔어 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장이나 카센타 바닥처럼 검정 기름때가 해변가 그윽그윽 쩔어있었다.

면 헝겊이나 헌 옷은 택도 없었다. 가스렌지 주변에 찌든 기름 때 닦는 것보다 더 힘을 박박 주어도 닦이지 않았다.

바위 틈샘에 찌든 기름때에는 칫솔이 필요했고 큰 바위 몸뚱아리에는 철수세미가 필요했다. 다음번 태안 자원활동은 "기암절벽을 철수세미로 닦다"로 정해서 모두들 철수세미를 준비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위원회 하은희 샘이 이끄는 '삼성-현대-허베이 기름 유출사고 건강조사' 보조로 주민들 건강문제를 설문지로 물어보고 소변샘플을 받는 것을 거들었다. 사건이 터진지 몇 주가 지난 뒤에 시작해서 좀 뒷북이다 싶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해변에서도 페인트 냄새 비슷한 것이 둥둥 떠다니면서 나처럼 멀미 잘하는 사람의 속을 뒤집었다.

설문조사에서도 구토, 눈충혈, 머리 아픔, 가슴 답답함 등이 수시로 나왔고, 자원활동에 자주 참여한 어떤 사람의 경우 발목에 발진이 생기는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얼굴 주름마다 세월 때를 켜켜이 뒤집어 쓰거나,

얼굴의 때깔과 주름만으로도 그가 그 동안 살아온 바닷바람의 양을 가늠할 만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설문조사에 응했다.

한결같이, "밤에 잠을 못 자고 멍하게 앉아 있는다"고 했다.

사건이 터진 후 눈이 붓고 가슴이 답답하고 기름 냄새 때문에 머리가 멍멍하고 구토가 일고, 이런 것보다 "걱정이 되서 하루하루 잠을 못 자는 불면증"이 가장 문제였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한 시에 돌 닦기를 그만 두고 방제복과 장화, 면장갑, 고무장갑 등을 분류하는 

거대한 통을 보면서,  많은 수의 자원활동가들이 사용하는 일회용 젓가락과 용기, 컵을 보면서 우리끼리 그랬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쓰고,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우리,차라리 이 바위에 다 불질러 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라는 자괴감.

정제되지 않은 원유라서 유독가스가 품어져 나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만큼 기름때는 찌들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세월에 비해 너무 조금이고, 기름 제거를 위해 쓰는 물자는 한정 없었다.

12,500톤의 기름이 무사히 도착했다 해도 현대 오일뱅크를 통해서 다 소비되었을 거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랬다. 어차피 우리는 기름에 의지해서 기름으로 살아가고 또 다른 선적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기름이 들어오고 그럴 것이다. 배를 두 겹으로 두르고

배가 정박할 장소를 지정하고 안전 장치를 강화하고 삼성과 현대가 결국 입을 맞춰 보험으로 처리하고 그런들해가 갈수록 더 많은 기름이 오고 갈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대형 전광판에서 LG 텔레콤의 '오일세일광고가, 무슨 정유회사의 "착한 기름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스스 일어나 토요일 하루를 반납하고

검은 원유를 닦고 돌아오는 "참 착한" 자원활동가들은

청계천과 시청을 장식한 반짝반짝한 크리스마스 불빛을 보고 "아름답다"며 자기들끼리 다음에 구경오자고 한다.

 

돌을 닦고 주민을 만나면서 이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른 "삼성-현대" 놈들 욕을 마구 했지만그 기름을 쓰는 삶과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의 관계에 대해 순진무구한 것도 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현대 도시에서 태어나 삶을 연명하는 자체가. 미안할 노릇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활동가 회의를 했다.

연초에는 새벽 12시에 떠나서 버스에서 자고, 새벽 5시에 "자연아, 미안해" 라는 

캔들 나이트(candle night) 진행을 한 후 돌을 닦자고 했다.

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turn off the light, take it slow).

서해안에서 촛불을 켜고 우리끼리 둘러모여 자연에게 기도를 하고 

전기에 의존한 크리스마스 불빛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반성하고,

그래도 서로가 있다고 의지한 후에 돌을 닦아야지.

 

그 날은 자연의 시간, 물 때에 인간을 맞춰 새벽 일찍부터 돌을 닦기로 했다.

가수 이상은 씨도 섭외하기로 했다. 잘 되기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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