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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이주여성

태안에 다녀왔다. 우주복 입고 꽁꽁 언 기름을 닦는 방제활동이 아니라 태안의료보건원과 함께 산모/영유아 기름유출사고 건강피해 조사를 위해 설문지 테스트를 하러 간 것이다. 방제활동을 하면서 피해지역 주민들 건강조사 설문과 소변 채취 등을 진행했는데 이리저리 되어서 초등학생과 지역주민들 건강문제는 시민환경연구소에서 하고 (거긴 큰 단체잖혀 T_T) 우리 여성환경연대는 민감 계층인 산모와 영유아를 중심으로 조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화요일부터 추워지길래 어떤 꼼수를 부려서라도 수요일엔 따땃한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꼽고 요새 척, 하고 4년만에 등장한 잭 존슨(Jack Johson)님을 들음시롱 버텨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다간 이번 주말에 다시 방제활동에 투입-_-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더 무서운 꼼수 아래 자진해서 태안에 내려가게 되었다. 시민들은 자진해서 태안에 가는데 실무자로서 "느자구읍다"고 해도 토욜 새벽1시에 출발해서 버스에서 자고 새벽 6시에 눈물 겨운 아침밥을 먹고 통통통 배를 타고 들어가 우주복 입고 바닷바람에 얼굴 빨갛게 트면서 왠 종일 앉은 자리 돌도 다 못 닦을만큼 점점이 깔린 기름덩어리를 보고 나오는 것...이번 달 말고 좀 따땃해지는 다음달에 하면 안 될깡? -//////- (아아, 난 인쟈 겨울바다 이런 거는 수십년간 안 갈겨 ToT) 달랑 디지털 체온계 하나 주면서 5장짜리 설문을 하고 채혈과 소변 채취를 하는 것도 좀 거시기하고 미안하고 민망했다. 난 <공중그네>의 바다표범과 하마같이 생긴 이라부 의사가 아니라서 남이 주사맞는 장면을 눈 반짝 +_+하면서 감상하는 취미는 읍다.사실 내 피도 잘 못 보고 피 나면 듁는다고 오두방정을 떠는 것이 취미이자 특징이다. 그래서 채혈 양이 부족해서 두 번이나 피 뽑고 혈관이 가는 여성 대상자가 나타나 피가 잘 안 나오는 걸 옆에서 지켜볼 때는 죄 짓는 기분이 마구 들었다. 그런데 피를 뽑고 나오면서 같이 다니시는 분이 "시골에서 살고 우리 말을 잘 못해서 순박하게 말도 참 듣늗다"고 그랬다. 그 분들이 나쁜 뜻 있어서 그런 말 한 것도 아니고 같은 지역민으로서 지역경제와 지역민들을 얼마나 챙기던지 감동먹었던 차였다. 게다가 시민단체 일임에도 협조차원이 아니라 아조 일을 을매나 도맡아 해불던지, 내가 국가 공무원이 꼬옥,많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이메가 씨, 참고해주333) 맴이 츱츱해지고 스산해졌다. 그래서 후에 이대 예방의학과에서 진행하는 모자보건사업에 참여하라는 동의서를 들고 갔는데도 동의를 안 받고 그냥 나왔다. 의료윤리고 뭐시고 간에 그냥 사기꾼같은 생각이 들었다. 성함이나 임신이라는 단어로 물으면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그들의 남편이나 "형님", 혹은 "어머니"가 "이름이 뭐냐고" "아이 가졌을 때"라고 풀어 말해준다. 오늘 만난 세 분은 한국에 온지 1년도 채 못 된 이주여성들, 이었다.


피해 지역을 돌면서 했던 조사의 세 가구 모두 '우연히' 이주여성이 국제결혼한 경우였다. 요새 '시골'에서 애 가진 새댁은 그렇지, 라는 말도 들었다. 조사 끝나고 나오면서 "요새 같이 바쁜 철에 다덜 집에서 놀고 시집 잘 왔다"라는 요지도 말도 들었다. 그러니까 설문지에 쓰여진 "마음이 답답하다, 불안하다, 속이 더부룩하다" 등의 말을 못 알아듣고 다른 사람이 나서서 그들의 입을 대신하는 것을 판단하고,결혼한지 일 개월도 안 되서 모두들 임신해버린 것을 머리로 계산하면서 그들과 인터뷰 한 것은 시건방질지도 모른다. 그들 집에 있는 큰 김치냉장고나 식기세척기, 디오스 냉장고를 보고 "아니, 나같은 도시빈민보다 잘 살아"라는 생각은 또 뭐고. 이주여성과 결혼한 가정은 디오스 냉장고 큰 거 있으면 놀라운 거야? 한 분은 베트남에서 왔고 두 분은 중국에서 왔다. 모두들 이 조사에 동의했다고는 했으나 그건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남편이거나 시댁 가족들이었다. 기분을 묻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묻는 문제는 건너뛰었다.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첫 번째 가정에서 해 본 결과 그런 건 본인이 알아듣기 전에도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대답해주었기 때문이다. 것도 그들이 구린 의도가 있거나 잘 사는 것처럼 꾸미려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못 알아듣고 우리는 자꾸 묻고 옆에서 갑갑하고 같은 집에 사니까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친절하게 시간 빼서 옆에 앉아서 '편의'를 제공한 거였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연애하는 건,나 자신을 가장 이해받고 싶은 타인에게 언어와 몸으로 정직하고 달달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고, 그러다가 좌절하면서 다시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에 많이 디면 디일수록 알게 되는 것이 내가 팔자 드런 년이거나, 썩을 것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이해받고자 하는 언어에 너무 잼병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연애하면서 '내가 나이지 않았을 때' 가장 힘들었다. 그런 연애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기회는 되었지만(쿨럭, 차라리 서정시를 쓸깡? ^^), 결과적으로 환멸스럽게 끝이났다. 그런 연애는 빨리 끝낼수록 좋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을 극복한 것이다"라는 패터 한트케의 말, 좋아라 했다. 나의 시건방지고 멋 모르고 들썩이는 판단에 비해 그들은 실제로 훨씬 행복하고 안정적이고 정말 "시집 잘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그 놈의 이주여성 관련 논문과 글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뻔해서" 잼없다고 시건방진 판단을 했었고 (난 논문도 못 썼어, 흐엉 T0T) 그들을 희생자화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어느 정도 불편했다. 오늘은,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불편한 감이 더 많았다. 이주여성이 결혼하고 애 낳고 시부모 모시는 것이 존재의 의무가 되느 듯 보여 그냥 구조적으로 찜찜했다.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가?,그럴 수도 있겠지. 어느 상황에서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어로 자기를 피괄적으로 그려내는 것'도 어려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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