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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관계, JIFF

난 전주영화제에 놀러나와 있다. 자랑질이다.

썬그라스를 연신 쓰고 다녀도 '간지'보다는 햇빛을 피하려는 진정성이 더 느껴질만큼 날씨도 뜨겁다. 에헤라디야~~

('간지'용이다, 실은)

금요일 휴가내고 노동절인 목요일부터 내리 놀고 있다. 에헤라디야~~자진방아를 돌려라.

느껴지는 바대로, 팔자 좋은 년이다.

특히 기혼녀들에게는 정말 팔자 좋은 년이다.

 

나와 같은 팀의 혜진은 휴가내고 전주 간다는 내 옆에서 징징대면서 말했다.

"나는 한참 농사 바쁠 때라서 시댁인 전라도 고흥까지 내려가서 일해야 하는데"

그 말을 도돌이표 했다.

뭔가 조금 억울하고, 휴일에 놀러다니는 비혼이 좀 부럽기도 하고, 고흥은 너무 멀고, 그래서 가기는 진절머리 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의 체념도 약간 섞인 그런 표정이었다.

 

이봐, 나는 게이랑 위장결혼하지 않는 한,

받지도 못할 축의금을, 그리고 피같이 애지중지한 휴일을 털어서 니들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곤한다고, 이라는 말이 느자구없이 터져나올 뻔 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낮은 출산율이라는 거국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주범에

수유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아서 유방암 걸릴 가능성이 더 많다는 기사에 두려워하고, 그런다고.

이렇게 국제영화제에 팔랑팔랑 놀러다니다보니 생명보험 하나 안 들었는디 말이쥐.

 

하지만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도 고흥 가기 싫은 한 기혼녀의 사정에 공감했으며

무엇보다도,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생각될만한 일말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싶었다.

혜진은 나보다 4살 어리다. 그리고 자알 결혼했다. 남편이 아파트도 샀다. (크헉, 이게 젤 부러) 

거기다대고 비혼녀 운운하면 남들이 나를 인생의 루저, 찌찔이처럼 여길 것이고, 진짜 '노처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집에 놀러와

자기 친구 중 결혼도 잘하고, 남편도 잘 만나고, 재테크도 나름 성공하고, 아이들도 예쁘게 크고 있는데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친구 이야기를 하자,

'노처녀 히스테리'를 왕빵 부렸다.

그 이야기를 한 친구가 우울증에 걸린 결혼 잘 한 여자라도 된 듯 마구 삿대질까지 해 댔다. 

오바, 했다. 열내다가 갑자가 정신을 차리고 족팔려서 뻘쭘했다.  

"넌 애인이 있어도 어째 노처녀 히스테리가 걸리냐?"라고 내 친구가 수상스레 쳐다봤다.  

"배째라, 난 '꼴통 페미'에 노처녀 왕 히스테리야" 라고 대꾸했다.

뭐 꼴리는 대로 대답했지만

나도 궁금했다.

나, 노처녀 히스테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야?

내가 왜?

아파트 때문에??

믿을 건 차곡차곡 모아둔 돈 밖에 없는 비혼여자 주제에 골드미스는 커녕 실버미스도 감지덕지한

'친환경 스댕(steinless)' 미스라서???

 

나는 마치 부르조아를 타도하는 프로레타리아 독재의 투사가 된 것처럼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삼시롱 나름 생의 고통에 시달리고 자신의 자유가 메말라가고 있다고 비통해하는

모든 기혼녀들이 미웠다.

미워요, 미워. 것도 왕창으로다.

내가 남편이 사준 아파트와 가져다주는 월급을 포기하고  '도시 빈민'  비혼녀가 되는 삶을 선택했듯이

국제 영화제를 싸돌아다니고 인생에 대해서 심오하게 번민하는 이 거시기까지 차지하려 드는 것은,

너무 거시기했다.

하다못해 비혼인 나에게  기혼녀의 처지를 불평하는 것은 그렇다.

인생에는 싸가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억하심정까지 들었다.

요는 내가 남편이 없고 집도 없고 월급도 곱하기 1배이고 암이 걸리면 돌봐줄 인간과 돈도 없이

죽어야만 팔자라고, 불평하지 않듯이

적어도 기혼녀들은 내가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그렇게 팔자 좋겠다는 눈빛을 보내서는 안되는 거다.

 

그런데 어제 여기 전주에서  '불편한 관계'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다큐먼터리처럼 아이 둘을 가진 부부의 일상을 소소하게, 일상의 속도로 그려냈다.

베티 프리단이 1963년, '여성의 신비'라는 책에서 중산층 전업주부의 삶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드러냈다면

이 영화는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1980년대 헝가리 부부의 표정과 삶으로 그려냈다.

이 흑백영화 속의 삶을 보고 있자니, 고통스럽고 마음이 부딪껴서 

밖에 나가 초여름 바람에 부유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 마시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알게 되었다.

미국이건, 헝가리건, 1960년대건, 1980년대건,

그리고 여기 2008년의 한국이건,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결혼해 본적이 없지만 

그들의 빈 곳과 불만과 허전함도 비혼녀의 그것과 형태가 다를 뿐임을.

기혼녀를 절절이 미워하면서 여기 내려와서 처음 본 영화가 그랬다.

 

남의 고통에 몰인정해지지 않기,

내 스스로 '친환경 스댕'  미스의 삶을 살갑게 껴 안기.

그리고 기혼녀를 내 불안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기,

결국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기혼녀를 적으로 만든다.

 

나는 전주에서 철이 조금 더 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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