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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9
    20070829 각질과 흰머리
    금자
  2. 2007/08/22
    20070822 못난인간
    금자

20070829 각질과 흰머리

24살 즈음, 발 뒷꿈치에 각질이라는 놈이 낀 것을 발견했을 때, 
30살 즈음, 가르마 주변으로 흰 머리가 뻐시게 나와 삐죽 솟아있는 것을 거울을 보며 뽑고 있을 때

늙어간다는 것이 한달음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신촌과 홍대 앞 이반 모임에 참석하면 어김없이 드는 느낌, 늙었다는 것.
도대체, 흰머리를 뽑고 발뒷꿈치 각질을 제거하는 레즈비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레즈비언 모임에서 주민등록증 출생년월일을 이렇게 열심히 밝혀야 하다니.
정통부 인터넷 실명제보다 더한, 너무한다, 라는 기분이 마구 들었다.

주말에 간 이반 모임에서는 30살 넘은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이름표 옆에 나이를 떡 하니 명시해놓았다.

그래서 서른인 나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의 나이에 주책바가지 마냥 잔치 벌이려고 나타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에 따라 위계서열이 달라지고 존대말과 반말이 달라지고 모이는 층도 달라지고 대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마흔 몇 살의 전 하우스 메이트 '휴지'랑 반말을 섞고 거의 마흔이 되어가고 울 학교에서 강의도 하는 미물이랑도 반말을 섞고,
서른 여섯 오정의 여섯 살 난 아들내미 성현이도 내 이름을 부르는 막역한 사이라서
이런 분위기 영, 낯설다.
이반 모임을 몇 번 나가봤지만 웬만한 모임에서는 별칭과 부치/펨의 구분 다음으로 나이가 중요했다.
그건 너와 나의 관계를 따지는 바로 미터였다.

그러니까,
불쑥 나이가 든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무섭다는 노화공포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원하는 관계에서 소외되고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남들이 나를 '늙은'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두려움.
더군다나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은 남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이를 먹은 여자는 젊은 사람과 '다른'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틀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먹은 '미혼'의 여자는 정말 '틀려' 먹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발 뒷꿈치 각질을 박박 문질러 없애고 흰머리를 핀셋으로 집어없애는 것처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반 모임에서는 나이보다 뭐 먹을지를 먼저 물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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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2 못난인간



사무실 한 층 아래에 자리한  '에너지 시민연대'에서 '불을 끄고 별을 켜자'라는 에너지 절약 소등 캠페인을 열었다.
사무실의 모모양에 따르면 '에너지'네 사무처장과 우리네 사무처장이 모여서 한 번씩 '뒷담화' 간담회도 열만큼 절친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였는지 저녁 6시 업무를 마치고 '에너지'네 행사에 자원활동으로 '착출'되었다.
밤 9시 부터 불을 확 꺼불고, 통기타를 들고와 2020명이 다구리로다 한대수씨의 곡을 연주하면서
독일의 신기록 1768명인가 뭐시긴가에 도전한다는 거였다. '착출 일꾼'들 우리는 친절하게 통기타를 들고온 사람들의 접수를 받고 응모권을 나눠주고 물도 나눠주고 그랬다.

바람은 살랑, 시청 광장 앞은 총총.
우리도 언젠가 하짓 날 하는 소등행사 '캔들 나이트' 혹은 세계공정무역의 날 하는 '한국 페어트레이드 행사'를 여기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흠, 그 때 '에너지'들도 착출 당하겠군, ㅋㅋㅋ 도 함께. :-)
 
적어도 그 놈이 나타나고 '경희궁의  파크' 어쩌고가 도대체 어디서 쓰는 것인지 듣기 전까지 그랬다.

통기타를 매고 와 참가 신청을 하고자 하는 그는 한국어를 못하는 아시아인이었다. 키는 훌쩍, 얼굴은 반짝, 윤이 났다.
칸을 메우는 곳을 영어로 설명하다가, 한국 주소는 내가 적어주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 메모 사 주소를 보게되었다.
경희궁 파크? 이거 광화문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경희궁의 아침'의 영어판인가 하면서 옆의 모모 양에게 물어봤다.
그녀가 웃으면서 "우리 집도 여기인데"라고 한다. 경희궁 뒤에 바짝 붙어있는 5층 빌라로 한남동이나 이태원 쪽에 근무하지않는외국인, 나무가 많고 좀 고즈넉하면서 조용한 곳을 찾는 외국인 전용 렌트 빌라라고 했다. 그는 301호, 그리고그녀의'우리집'은 4층으로 폴란드 대사가 세 들어 산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우리집'은 평창동이었고, 그 경희궁 파크의'우리집'은주거가 아니라, 소유 상의 '우리집'이었다.  모모양은  그와 함께 온 외국인 아줌마를보더니  저사람도 그 빌라에 사는데 유엔에서 일한다고 '내부인'용 정보도 주었다.

못났지, such a loser!
그런데도, 갑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저부가가치' 일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호사는 다만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 생각하는 것이  나쁘더냐'라고 말할 만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케리가 '빅'과 결혼한 스물 여섯의, 랄프 로렌 디자이너 나타샤를 보면서
"나는 고작 성기 이식 수술 광고 뒷면에 섹스 칼럼이나 쓰고 있잖아"라고 울먹이는 기분과 비슷했다.

대안녹색생활도 좋고, 5분 간 소등도 좋고, 자전거도 좋고, 잠시나마 불이 꺼진 서울시청 광장도 좋고, 달팽이도 좋고,아날로그도좋고, 그런 것들이 봄날의 곰새끼처럼 앙징맞다. 그런 것들은  내  속에 들어와 나를 따뜻하게만들고 살아간다는것도 괜찮아, 라는 느낌을 주고 반짝반짝 빛나는 나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씩 갑작스레닥친 '무섬증'에울컥증이 솟아오른다. 소유상의 "우리집"도 없고, 잔고도 없고, 애인도 없고 성기 이식광고 수술 뒷면에 칼럼을쓸 정도의 글빨도없는 사람, 이라는 불꺼진 시청 광장에서의 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비가 오는 어느 날 환하게 불 켜진 대형 쇼핑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천천히 밀다가 갑자기 심장마비 같은 것으로  휙, 하고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어느 소설의 문구가 가슴을 칠 때, 는 더욱.

결국은 이렇게 못난 인간,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
습기찬 반지하방을 뽀송하게 만들기 위해 30도로 보일러를 켜고
것보다 더 따뜻한 75도의 BOH 차를 홀짝이면서 생각했다.
"못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 생각하는 것도 당연지사!" :-)

p.s 아무리 환해도, 아무리 커도, 아무리 비가 와도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는 안 가야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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