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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8/22
    환경과 어린이 건강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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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8/17
    쿨하게 한걸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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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8/16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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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8/16
    아무래도 좋아
    금자

환경과 어린이 건강 토론회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렸던, 김상희 의원측 주최의 '환경과 어린이 건강 토론회'에 다녀왔다.

센스있게 2시에 시작해서 4시 반에 끝난 관계로

거기서 바로 퇴근했더니 집에 도착해서도 6시 전이었다.

아아, 좋아라

일찍 퇴근하여 듣는 빗소리, 오롯이 아름답구나~~ 에헤라디야.

비야, 세차게 내려도 좋다구나. 얼씨구.:-)

 

타르 색소나  아질산나트륨 등의 식품첨가물 제한, 이런 것들도 다 좋았지만

환경정의 다지사 박명숙 국장이 잠깐 스치며 했던 말이 콕 마음에 박힌다.

 

환경오염이나 개발로 인해 미래세대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고 하면서

아토피 지원센터를 만들고, 아토피 예방 지침서니 뭐니를 뿌리고 보건소에서 교육 백날 하는 것이 뭔 소용이란 말인가.

사회 전체가 개발 안 하면 다 망해버리는 것처럼 벌벌 떨고

시멘트가 세워지기만 하면 다들 환장하는 이 시츄에이션에서 말이다.

새만금도 '지속가능한 개발'이고 '친환경 개발'이라는데

이런 '친환경'의 물결 속에서 아토피 예방은 언감생심.

 

그래서 한번쯤 잠깐 일하다가,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 제로운동'은 어디다 써야 하는 물건인고, 하는 심정이  되버린다.

우석훈 말대로 생태적 미학이나 감수성이라고는 눈꼽마치도 없는 이 사회에서,

'땅값'으로 말해야 소통이 되는 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이 '까탈'스러운 몇몇 개인의 기호나 실천이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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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한걸음

쿨하게 한 걸음  by 서유미

 

'스타일'이 너무 스타일리쉬해서 질린 나머지,

서른 세살, 직업도 없고 연애도 없고 아버지 환갑잔치 해 드릴 돈도 없고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라떼'만이 삶의 존재 한 가운데에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었다.

 

머리에 염색하는 아버지를 보고 저러다 검정 매직으로 대머리 부분 칠하면 어쩌냐는 어머니와

멀쩡히 대학 졸업하고도 이력서 백만번쯤 쓴 동생과

오랫만에 구립도서관에서 만났다 했더니 공무원 시험준비하는 동창과

대학 다닐때는 제일 보헤미안처럼 살더니만 결국엔 의사와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와

어릴때 발랑 까져서 남자나 사귀고 팔레레 돌아다니다가 시집잘가서 떵떵거리고 사는 '엄친딸'  사촌동생.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관둔 것도 모자라

도통 떨떠름한 남친과 헤어지고

엄마 앞에서 직장 관둔 것도, 헤어진 것도 이야기를 못하는 서른 세살의 나.

 

소설 제목은 '운수 좋은 날'처럼 반어법이었다.

 '쿨하게'는 커녕 예전 애인을 어쩌다가 길에서  만났을 때 절대 입고 싶지 않은

무릎나온 고무줄 추리닝 같구나.

소설의 대사처럼 '무슨 인생이 평생 삼재냐, 지겹다, 지겨워'쯤 되시겠다.

 

소설상황과 비스꼬롬한 '똥구리' 미스인 내 마음은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깝다 못해 찢어졌다.

(울엄마가 남들 딸은 골드미스네, 실버미스네 하고 있는데 넌 '똥구리 미스'구나, 라며 내 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엄마, 난 '친환경 스댕steinless 미스'거등, '똥구리'가 뭬야 구리게시리.)

그래서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가 서른 세살이 약간 넘은, 게다가 결혼해서 남편도 있는 분인 것을 알고 뭔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주발도 작가가 싱글이 아냐, 라면서 볼멘 소리를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ET가 손가락을 맞대는 것처럼

감정을 잇대고 들들들 재봉틀로 박아버렸던 것이다.

열심히 박음질 하고 났더니 천을 뒤집어서 박어버린 듯한 이 배신감.

 

흥, 그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짠했지만 위로받았고 스스로에게도 '화이삼'이었다.

소설의 결말은 공무원 시험 패스도 아니고 영화비평상 당선소식도 아니고 하다못해 고만고만한 연애도 아니었다.

연애는 커녕 주인공은 서른 세살에 이런 말까지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도 사라졌다. 억지로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결론은 정말로 '쿨하게 한걸음'이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라떼 한 잔에 위로받으면서.

그게 이 소설의 진정성이었다.

 

평론가의 말처럼 너무 평범하고 정직하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느낌의 착한 소설이었다.

문체도 그랬다.

요새 너무 멋부리는 소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촌스럽게 잔잔한 소설을 많이 안 읽어서인지

평범해서 참으로 좋았다.

그 평범함이

"그래, 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그래,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에서 나온 것이라서 마음 깊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구광본 ‘오래 흔들렸으므로’ -소설 뒤 평론가의 글 중에서 발췌)



 

 -같은 싱글의 입장에서 내 마음은 안타깝다 못해 미어졌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애세포나 노처녀 히스테리 이야기는 이 생각에 비하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희주가 거품을 물며 불만을 토로하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유방암과 자궁암이 쌍둥이빌딩처럼 우뚝 솟아올랐다.

삼십대 환자 급증. 특히 출산은 커녕 모유수유 경험이 없는 미혼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다는

뉴스와 신문기사가 슬라이드처럼 착착 장면을 바꿔나갔다.

출산은커녕 당분간 결혼계획도 없는 늙은 싱글들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자 혼자서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렇게 위험부담이 큰 건가.

p44-45

 

-사십대를 기대하기에는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자식 자랑을 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불쌍했고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머저리 같은 자식들도 불쌍했다. 150

 

-열심히 해 보고 또 그 때 가서 생각해보면 된다.

실컷 자고 나서도 여전히 뭔가를 저지르고 싶으면 뜨거운 캐러멜라떼를 한 잔 하시며 길거리를 쏘다닌다.

 

-죽음 앞에 치통은 얼마나 하찮은가.

그런데도 타인의 죽음은 개인의 치통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이다.

이제 그걸 순순히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242

 

-따뜻하고 달콤한 캐러멜라떼

아, 캐러멜 라떼, 그걸 보는 순간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커피는 참으로 삶의 한가운데 있는 존재 같았다.

입 안으로 넘긴 커피가 하도 달콤하고 따뜻해서 왈칵 눈물이 났다.

동남은 이제 이렇게 맛잇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팠다. 245

 

 

-작가의 말 중에서

 

미혼의, 게다가 애인도 없고 실업자이며 은행잔고마저 넉넉지 않은 여성이 바라보는 자본주의 사회란 두려움 그 자체다.

돛단배를 타고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진 것도 없고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경험조차 없으니

풍문만으로도 두려워지고 자꾸 다른 사람들을 힐끔거리게 된다.

그 막막함과 상대적 빈곤감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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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스타일,을 읽고 주발에게 빌려주면서 말했다.

 

"이거 읽고 너도 칙릿소설 한 번 써봐, 1억원 벌어서 나 좀 호강시켜줘봐"

 

그래도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 에게 가혹하다든가,

혹은 난 작가를 너무 우습게 봐, 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나 보다.

주발이가 미용실에서 본 '싱글즈'라는 잡지에서도 이번 여름 휴가에

'젊은 언니들이여, 칙릿 소설을 한번 써보자'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이 책이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전시 코너에 보무도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고,

신문에 대문짝하게 광고되는 것도 좋다.

나도 ‘서른 하나, 홈쇼핑에서 파는 옥돌매트가 필요한 나이’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지갑을 열었다.

 

서른 하나, ‘마놀로 블라닉’ 때문이 아니라

브런치를 함께 하고 생일을 챙기는 단 하나의 특별한 그놈 대신,

서로를 소울메이트로 챙기는 여자들 때문에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 나이,

내 경우 겉멋만 부리고 내용은 별 것 없다고 생각되는 칙릿에 환장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흠, 그런데 이 소설은 중고등학생용 100% 하이틴 로맨스였던 것이다.

우석훈이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이명박 시대를 미학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시대라고 하던데,

이명박 시대에는 '하이틴 로맨스'도 문학상에 당선되는가?, 하고 교육감 선거 이후 좌절이시다.

공교육감도 대략 난감하시고 '1억원 짜리 하이틴 로맨스'도 난독증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떼처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 뿐‘

이라는 초반의 경쾌한 문구도

나중에는 뭐 작가가 이런 수사학 정도는 쓰셔야지 쯤으로 변했다.

‘제대로 된 수트를 입거나 완벽한 구드를 신는 일에도 진정성이 있다’고 믿으며

패션지 기사로 일해 온 여주인공 이서정의 그 진정성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저 '수석에 수석을 거듭한 수재'에서 외과의사로 (당빵 S출신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그리고

최고의 이태리 요리 전문가가 되어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를 차리는 남주인공에 홀렸다.

그래, 잘난 놈들은 가지가지 하는구나, 니가 '스탈'나는 직업은 혼자 다 하시라, 쯤의

못난 인간의 되둥그라진 열등감까지 발로하였던 것이다. 흠흠 

 

나 역시 그 진정성을 좋아라하는 서른 한 살이라고 생각한다.

허영덩어리가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다.

이 놈이 좀더 크면 종양보다 더 무섭게 삶을 망가뜨릴 것이다.

스타벅스에 너무 자주 가서 스스로를 된장녀라고 한탄하면서도

스타벅스의 초록간판만 봐도 위로받는다. 그리고 '히말라야 커피' 같은 공정무역 커피에 열광한다.

사실 사회과학 서적보다 보그나 엘르의 핫 아이템이 훨 재미있지만 들고다니는 책은 '한겨레21'같은 시사잡지다.

 

여 주인공은 ‘왜 그 사람들이 되먹지 못한 불편한 옷을 만들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기에

(잡지사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소설에서 기대했던 것은 도레스 레싱의 문학성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욕망이 가진 두 가지 진정성이었다.

‘되먹지 못한 진정성’이 있다고 마구 우기는 이 시대 칙릭들의 욕망.

그런데 소설은 ‘프라다에 끌리는 눈길과 굶어주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이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 아니라

‘이제 무엇이 윤리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라는 결론만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여주인공 이서정과 서른 하나의 여자들이 공유하는 것이

‘스키니진 체험기’나 살 빼기 다이어트 약의 부작용인 ‘뿡뿡 방귀’ 밖에 없단 말이더냐?

 

모르겠다,

이서정처럼 결국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할 팔자의 서른 한살이라서

이 책을 산 만원이 이렇게 고까운지.

공정무역과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 마저도 요새는 가장 '스타일리쉬'한 소설에 등장해야 하나보다.

그게 세상의 진보이고 윤리라니,

갈 길이 너무 멀다.

고작 나는 서른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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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아

기묘가 중국의 교환학생을 끝내고 들어와 내 방에 잠시 머물고 있다.

중국 공산당 서열 108위 쯤의 '짱골라' 아들내미를 만나서 결혼소식을 팡팡 터뜨리며

우리에게 중국행 비행기표를 선사하라는 말도 민망하게,

연애 한 번 안 하고 한국으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그래도 좋아, 아무래도 좋아.

 

기묘 덕택에 그동안 게으름에 파묻혔던 못 보았던-실은 연애질에 매진하느라,(컹컹,친구들, 자네들도 그랬잖은가-_-;;;)-

휴지, 미물, 달순, 오정, 성현 등을 만나고 있다.

오랫만에 보았더니 새삼 너무 좋아서,

아 나는 인복이 철철철 넘치는 사람이라서 '88만원' 세대쯤이야, 하는 미친 마음이 되었다.

대체 88만원 월급과 인복이 무신 상관관계란 말인가.

그저, 돈어 없어서 어쩔 때는 과일 사 먹는 것도 저어되는, 참으로 추레한 삶이지만

친구들 때문에 참 좋다, 라는 이런 착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보지. ㅋㅋ

 

기묘와 자기 전에 불 꺼 놓고 이래저래 이야기 하고

말똥만 굴러가도 웃다 쓰러진다고, 웃고 자지러지느라 침대보를 엉망으로 헝클어놓아도 친구와 있어서 참 좋다.

아침에 같이 일어나 밥도 같이 먹고 물통에 물도 척 하니 싸가고

밤에는 또 얼굴을 보니,

왜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서울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남들과 함께 사는 것을 그렇게 좋아라 했는지 감이 왔다.

 

암튼 요새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블로그는 참 오랫만에 들어와 봤다.

행복하니,

뭔가 적고 싶은 기분이 도통 들지 않았던 것일까.

 

자랑질이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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