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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사퇴한 금속노조 경남지부 최은석 부지부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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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석 동지가 금속노조 경남지부 부지부장을 그만 둔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그는 노조 활동도 접었다고 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해왔던 노동운동인데... 노동운동의 큰 자산을 잃어버린 듯하여 많이 안타깝습니다.
 
최은석 동지는 작년 6월 논현동 관세청 앞에서 열렸던 최저임금현실화 생활임금쟁취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마지막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경남 금속노조 동지들과 함께 올라왔었고, 제게도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던 걸 잊지 못하고 있지요.
 
그는 언제 대공장 노조 위원장을 했냐는 듯이 어떤 자리에서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얘기를 했고, 현장 활동 또한 열심이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토론하다 보면 어쩌다가 그와 의견일치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항상 귀를 기울었습니다. 거기에는 열정과 진심이 우러나오고 있었거든요.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을 오랫동안 자주 알게 되고, 인간적인 면까지 보게 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거기에서 예외였던 이가 바로 최은석 동지였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아내의 병환과 생활고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였지만, 나중에 다시 현장에서 볼 수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는 이 글을 볼 수 없을 테지만,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창원에 내려가서 술이라도 한잔 했으면 하네요.
 
아래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것인데,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전문을 볼 수 없기에 여기에 기사 전문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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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노동운동 그러나… 떠납니다 (경남도민일보, 2011.02.25  05:01:16  김훤주 기자)
사퇴한 금속노조 경남지부 최은석 부지부장 이야기
 
경남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이 활동을 접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부지부장을 맡고 있던 최은석(55·동명모트롤지회 소속) 씨가 지난 14일 금속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사퇴' 사실을 알렸다. 그의 사퇴와 활동 중단이 아내의 병환과 생활고 때문임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최씨는 "2009년 12월 부지부장에 당선돼 파견나왔는데 단협이 해지된 상황이라 무급휴직으로 수행해 왔다"며 "최근 아내의 병고로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최씨는 고교 중퇴 학력으로 마산수출자유지역 삼양광학에 입해 노조 결성에 나섰다가 1980년 해고된 뒤 같이 마산 양덕성당에 다니던 김명숙(54) 씨와 1981년 11월 25일 결혼했고 1982년 5월 거제 대우조선에 들어갔다.
  
대우조선서도 최씨는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터지기 전인 1987년 4월 노조 결성에 나섰다 해고됐다. 그해 8월 11일 결성된 노조는 89년 해고자 문제에 대해 김우중 대우 회장과 직접 교섭했다. 최씨는 "거제는 떠날 수 없다"고 했고 김 회장은 "대우조선 비서실에 있으면 되겠네" 했다. 최씨는 90년 9월부터 1년간 김 회장의 비서를 지냈다.
 
최씨는 변하지 않았다. 1992년 11월 13일 대우조선 노조 제5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앞서 아내 김명숙씨는 도저히 거제서는 못 산다며 창원에 갔다. 최씨는 노동운동은 해야한다며 남아 3년 가까이 주말 부부로 지냈다.
 
아내의 거제 탈출에는 최씨가 당한 고초가 작용했다. 최씨는 1987년 여러 차례 납치를 당했다. 1989년 임금투쟁 때는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쇠파이프에 맞고 여관에 끌려갔는데 (나를) 찾으러 나온 조합원들한테 당한 깡패들이 회칼을 들고 와서 죽이려 했으나 마침 경찰이 들이닥쳤다." 최씨는 구속도 여러 차례 됐다. 1987년 두 차례, 1991년 한 차례.
 
최씨가 두산모트롤의 전신 동명중공업으로 옮긴 때는 1995년 4월. "(아내가 있는) 창원에 가도 노동운동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자영업이라도 하려고 사표를 냈다. 그런데 회사측이 그동안 괴롭힌 데 대한 '일말의 무엇'이라도 있는지 취업을 알선해 당시 대우조선에 51% 지분이 있던 동명중공업 사무직으로 오게 됐다."
 
최씨는 오자마자 또 노조에 가입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최씨가 가입하자 동명중 노조가 민주노총 가입을 하고 96년 노동법 재개정 투쟁에 나섰다. 97년에는 조합원 자격이 없는 과장으로 최씨를 진급시키는 일이 생겼다. 노조는 1998년 과장도 노조 가입을 할 수 있도록 규약을 바꿨다. 노사간 적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이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최씨는 1999년 교육선전부장을 했다. 집행부를 맡지 않았을 때는 대의원을 했다. 대우조선이라는 대규모 노조 위원장을 했던 이로서는 보기 드문 행보다. "대기업 등에서 뭔가 했다 해도 그 경험을 실무나 현장에서 쓰지 않으면 배신이다. 위원장을 했다면 하면서 얻은 모든 것을 돌려야 한다. 운동은 전체의 자산이다. 위원장 하려고 운동하느냐."
 
그러던 최씨가 3월 2일자로 공장에 들어간다. 동명모트롤 노조 활동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조 활동을 하면 해당 시간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사용자가 단체협약 해지를 사유로 2009년 4월부터 노조 활동을 거의 인정 않기 때문이다. 아내 김명숙씨가 남편의 노동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고 여기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2010년 12월 25일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도 여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2월 14일 부산백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뇌에 있는 주먹 반 개 크기 염증에서 고름을 덜어냈다. 일단 안정이 된 것 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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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3 16:55 2011/03/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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