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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에 대한 한윤형의 서평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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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정영태 교수의 <파벌>에 대한 서평인지 몰랐다. 한윤형이 서평에서 지적한 것에 동의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한윤형이 언급한 것 중에서 추가로 얘기할 거리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민주노동당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왜 분당했는가?"를 묻기 전에 "왜 함께 시작했는가?"를 묻는 게 더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언급에 동의한다. 이 부분은 민주노동당 등 제도정치권에서 활동했던 이들을 비판하는 왼쪽 활동가들의 일관된 문제제기였기도 하다. 자주파, 아니 처음에 정당을 함께 했던 그들중의 일부가 정당에 대해 생각을 바꾼 줄로 착각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다. 뒤이어 민주노동당에 합류한 자주파들에 대해 통제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고... "당장 서로 말라죽어가고 있는 처지에서 통합이 필요했고 그 정치적 조건이 서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을 크게 키웠다는 저자의 핵심적인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보는 한윤형의 지적은 맞다. 좀더 냉철했어야 했다.
 
한편 그러한 점이 분당을 결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과도한 내부정치가 내부동력을 갉아먹었던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에 있을 때 활동의 절반은 자주파로부터 당을 지켜내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 만큼 대외적인 정치활동은 약할 수밖에 없었고..
 
2. 우리는 자주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정영태 교수도, 한윤형도 자주파를 상당히 특이한 집단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그 내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평등파들도 자주파를 하나의 묶음으로 보지 않았다. 사실 <파벌>이 민주노동당당의 다양한 의견그룹들, 특히 자주파의 다양한 흐름에 대해 분석해놓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민주노동당의 내부흐름을 분석한 박사학위논문(갑자기 저자의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같은 지역위 당원이었는데)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못한 게 그런 내부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3. 분당했던 게 종북주의만은 아니었다. 조직, 교육, 당 활동 면에서 민주노동당을 혁신할 수 없었기에 분당했던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떨어져나온 진보신당 또한 종북주의만 취하지 않았지 민주노동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게 내가 진보신당을 탈당한 이유였고...
 
정영태 교수나 한윤형도 이러한 점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진보정당이라면 단지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 뿐만 아니라 당의 활동과 조직체계, 교육 등에서 보수정당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한 전형을 창출하는 건 여전히 한국 진보정치의 과제이다.
 
4. "한국 사회의 좌파는, 자주파와 함께 가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고, 자주파와 함께 가면 자신의 정당이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이 싫어할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는 것," 이것은 진보정당뿐 아니라 노동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주파가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총 집행부로 인해 현장이 갈수록 맛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 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특히 한윤형이 지적한 것처럼 "수구세력이 진보세력에 덧씌운 '친북'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경쟁력 있는 진보세력"이 등장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유감이다. "만일 진보신당 등이 고사한다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과 함께 친북을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지경"에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사회당원인 박정근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 사회당마저 친북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이는 자주파와 함께 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5. 나 또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을 결의한 시점에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 자체가 문제라고 파악했다. 사실 분당할 때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 세력의 참여 여부가 문제되었던 건 과도했다. 마찬가지로 현장을 설득하기 용이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겠지만, 좌파진영은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 자체를 문제시해야 했고, 새로운 좌파정당의 흐름을 창출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지금 민주노총이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시하면서 사실상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어도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흐름을 창출하해내지 못하는 것도 그 후과일 터이다.
 
이 점에서 진보신당 내의 독자파가 좀더 비제도권의 좌파세력과의 공동행동을 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진보신당 자체가 좌파로 여겨지지 못하고 리모델링 대상조차 되지 못한 건 진보신당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6. 조직 노동운동은 제외하고라도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조직에 신경써야 하는 건 진보정당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사실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은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보수정당과도 함께 사업해야 할 실리가 너무나 많다. 이를 부인하기도 어렵다. 정동영, 김진애, 최영희, 천정배 등의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활용하는 게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활용하는 것보다 여론환기에도 더 유리하고 현장활동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역할을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그리고 지역활동과 관련한 중심이동도 요구된다. 그곳이 바로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7. 엊그제 관악구의 참여예산제 실시와 관련한 예비예산학교라 할 수 있는 자리에 갔다가 관악구(을) 선거구에 출마하기로 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열성적으로 홍보하고 후원회원을 조직하려는 통합진보당 당원을 만났다. 나에게도 후원를 권하길래 나는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기에 할 수없다고 했다. 다른 이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후원회 용지에 싸인을 한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뒷풀이 자리에서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일 때의 얘기들을 했지만, 조금은 씁쓸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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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함께 친북"? 진보의 딜레마, 직시하라! (프레시안, 한윤형 자유기고가, 2012-02-17 오후 6:52:46)
[이렇게 읽었다] 정영태의 <파벌>, 진보 정당에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한 달에 2만원이라도 내면서 '진보 정당 운동'이란 것의 대오에 소속되어 있는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나 책을 펼치기는 한없이 어려웠고, 막상 책을 펼치자 펼쳐지는 기억의 파노라마와 치미는 분노에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덮을 수가 없었다.
<파벌>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평등파였던 사람에게 기분이 좋을만한 책은 아니다.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는 건 물론이거니와 서술이 평등파에게 우호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좋았는데, 이 책이 당시의 사건들을 자주파의 관점에서도 한 번 바라보게 하는 반성적인 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파벌>은 이념과 노선이 철저하게 달랐던 두 파벌이 어찌해서 당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는지 문제부터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주파나 평등파나 서로 분리되어 말라죽어 가고 있었던 1990년대 진보 운동의 암울한 상황이 드러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왜 분당했는가?"를 묻기 전에 "왜 함께 시작했는가?"를 묻는 게 더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등파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집단주의를 굉장히 원칙적으로 싫어해요. (…) 정확히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54쪽)
"위계서열, 연공서열, 선배 앞에서 후배는 말을 안 받는다거나 담배를 안 피운다거나 술도 돌아서 마신다거나 이런 게 굉장히 많거든요.(…) 평등파에서 자주파를 바라보는 눈은 (…) 쟤들은 무슨 우두머리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얘들이 공부는 안하고 (…)"(54쪽)
 
평등파는 이런 문제들을 대개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 평등파가 만든 그 많은 제도들은 나중에 자주파가 평등파를 권력 분점에서 배제하는데 쏠쏠하게 써먹게 된다. 저자는 분당의 원인을 아예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이념·노선과 조직 문화가 다르고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둘째, 과거의 대립·경쟁 경험과 그 결과로서 상호 불신과 고정관념이 강하다. 셋째, 당직·공직후보 선출과 당론 결정을 위해 채택한 다수결 제도가 파벌 간의 경쟁과 대립을 조장했다."(252쪽)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제도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파벌 간의 타협과정에서 더욱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부결되어 분당이 확정된 2008년 2월3일의 그 당 대회날, 나는 자주파들이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에 그토록 완강히 반대하는 것을 보고 '저들은 분당이 전혀 두렵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주파는 오히려 2008년 총선 비례대표 순번은 모두 양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들에게도 분당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는 했던 것이다.
 
다만 평등파에겐 너무나 상식적이고 1차적인 요구였던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되는 어떤 '원칙'이었던 것이다. 한 자주파 당원의 입을 빌리자면, "동지가 부인하면 믿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다"(276쪽)인 것이다. 오히려 평등파는 비례대표 순번을 전부 차지하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을 것이고 '1인 다표제'를 '1인 1표제'로 바꾸는 제도개혁 같은 것에 생각이 미쳤을 텐데 말이다. 2월3일 당 대회는 이미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은 다음이었지만, 상이한 문화를 고려하지 못한 타협의 실패의 사례는 이 정당의 역사에 무궁무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파벌>은 민주노동당의 정파 갈등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고, 그중 첫 번째 시기엔 갈등이 잘 통제되었지만 두 번째 시기부터 그것이 격화되어 분당으로 갔다고 설명한다. "역사적인 원내 진출을 달성하기 까지는 중앙의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서 조정·중재해 원만하게 해결됐다"(251쪽)는 서술이 그 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첫 번째 시기의 갈등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로 갈등의 양상이 격렬하게 바뀔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초기의 갈등 상황을 살펴보면 평등파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당기위가 나서 당적 규율로 문제를 일으킨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주파는, 저자도 인정하듯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특이"(291쪽)했다. 가령 2001년에서 2002년까지 진행된 용산 지구당 사태에서, 자주파의 일부 세력은 처음에 당원이 지구당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제도의 맹점을 활용하여 주소지 변경만으로 지구당을 접수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실거주지와 직장 근처의 지구당만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는데, 그러자 그들은 실제로 용산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까지 원하는 바를 관철하고자 했다. 당내 선거 과정에선 세력을 불리기 위해 당비 대납 등을 서슴지 않았고, 회계 문제 부정을 고발하는 요구가 나와도 '동지'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이런 문제들을 당 규율로 처벌하지 않고 "중앙의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서 조정·중재"하여 봉합하려고만 한 것이 이 시기 문제의 핵심이었고, 갈등의 에너지가 쌓여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만일 이런 사안들에 대해 당 규율을 제대로 적용했다면 자주파가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를 고칠 수 있었을까? 나도 그렇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자주파 역시 평등파와 공존하기 위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있었을 거다. 차후 갈등의 양상이나 분당의 시기 및 양상도 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내가 <파벌>의 중심적인 논지에 동의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정치 지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이 연구서이며, 그 연구의 주제가 "정파 갈등이 어떻게 분당이란 파멸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특징적인 사건들로,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자주파가 매번 당의 '북한 핵실험 반대' 입장 표명에 결사반대해 입장 표명 자체를 좌절시킨 것과, 2007년 대선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기조 입장으로 관철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을 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반핵 강령을 분명히 하는 정당"(167쪽)임에도, "자주파에게 북한은 미국(과 하위 파트너인 남한 정부)보다 더 신뢰하고 지지해야 할(주사파의 경우 추종해야 할) 대상이고, 북한의 자위에 필요하다면 당론인 비핵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167쪽)이기에 당내에서 '자위적 핵'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하거나 북한 핵을 반대하는 입장 표명을 좌절시켰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당 밖에서는 진보·개혁 성향의 종교인, 지식인, 법조인,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자 171명이 북한의 핵보유에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고, 희망사회당 등 다른 진보적 정당과 시민단체들도 민주노동당의 진보성을 의심하는 내용의 논평을 냈으며"(180쪽) <한겨레>는 사설에서 민주노동당의 대응을 비판했다.
 
코리아 연방은 또 어떤가. 자주파는 이를 권영길 후보의 국가 비전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평등파 정파인 전진이 주장한 바, "대선 후보가 제시하는 국가 비전은 당의 부문별 공약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부문별 공약과 논리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207쪽)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이용대의 발언을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코리아 연방은 단순히 통일 정책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말고는 그 어느 당도 낼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만의 고유한 국가 대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 비정규직, 한미FTA로 민중의 생존이 벼랑에서 고통 받는 나라가 아니라 민중이 잘사는 나라,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라가 코리아 연방이다."(202쪽)
"대한민국 역사상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국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올해가 사실상 최초이다. 그만큼 코리아 연방 건설은 낯설고 새로운 슬로건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2000년에 민주노동당이 창당했을 때 사람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존재였던 것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창당 4년 만에 일반의 예상을 깨고 민주노동당은 원내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코리아 연방은 향후 몇 년이 지나야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시민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5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204쪽)
 
이러한 인식에서 드러나는 상호간의 차이는 단지 견해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등파에게, 자주파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정치의 현장에서 '결코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주파는 그런 현실 판단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주파의 세계관이란 다소 자의적인 데가 있어서, 자신들이 열심히 선전하고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하고 그러면 대중들이 감동을 받게 될 것이고, 결국엔 무슨 말이든 통용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정당의 세가 약할 때엔 다소 정체성을 숨기다가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그 정체성을 다소 황망한 방식으로 드러냈는데, 이런 경우엔 정당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심각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수파인 자주파가 '민주주의=다수결'이라는 협소한 민주주의관으로 다수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소수파에 대한 존중이라는 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긴 것"(296쪽)만이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정치 지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는 문제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정당이 내부 파벌에게 비슷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평등파는 자주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은 바가 없다. 이를테면 평등파는 국가보안법이 자주파 활동가를 잡아 가두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북주의'라는 비난이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수준의 반민주주의적 책동인 것은 아니다. 정당은 비슷한 이념을 정책으로 실현하려는 이들이 모여 있는 결사체이며, 활동 과정에서 개인이 당을 떠날 수도 있고, 당이 개인을 쫓아낼 수도 있으며, 상이한 이념을 가진 집단이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다. 정당이 당 규율에 의거 당원을 출당시키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저자는 명백히 다른 두 문제를 뭉뚱그리면서 평등파에게 다소 부당한 비판을 한다.
 
그러나 저자의 비판이 부당하다는 것은 평등파의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평등파가 '종북주의'라는 비난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다시 한 번 "왜 평등파는 스스로도 '종북주의자'임을 인지한 이들과 함께 당을 해야만 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책에 나오는 인터뷰를 보면, 내가 정말로 궁금해서 선배들에게 물어 들은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운동을 했던 사이이기 때문에", "대중정치를 하다 보면 변할 거라고 생각해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당장 서로 말라죽어가고 있는 처지에서 통합이 필요했고 그 정치적 조건이 서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을 크게 키웠다는 저자의 핵심적인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담긴 양자택일의 함의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자주파와 함께 당을 하기로 결의하고 출항한 통합진보당과, 평등파 주요 정치인들까지 장기적출 당하듯 적출당하고 고사 직전에 내몰린 진보신당의 처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좌파는, 자주파와 함께 가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고, 자주파와 함께 가면 자신의 정당이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이 싫어할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당 초기, 한 2000년, 2002년 정도까지는 장군님 사진 놓고 인사하고 그런 것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거를 어린 조직원들이 한 게 아니라 지금 굉장히 많이 알려진 리더급들까지 그걸 하죠. 그리고 그걸 안 한다 그래 가지고 때린다거나 이런 사건도 벌어졌었죠. 그런데 그게 당에 오고 나서는 숨기거나 흐지부지되죠. 그리고 간첩 사건도 나고 그러면서. 그런데 어쨌거나 그 조직들은 그러한 논리에 의해서 훈련받고 교육받은 사람인데 그거를 부정을 하면 그 조직이 무너집니다. (…) 왜 한참 인기 좋을 때 무슨 핵무기 좋다는 발언이 나오거나,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가지고 나갔으면 조금 표라도 더 얻어야 되는데 갑자기 고려연방제가 나오거나, 그런 거라고 하는 거는 세계관이 그렇게 형성돼서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대한민국의 대중정치, 진보 정당의 논리하고 안 맞고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278~279쪽)
 
나는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을 결의한 시점에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국민참여당의 '신자유주의적 노선'이란 것은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이 민주당 외부에서 생존하기로 선택한 이상 민주당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보여야 하고 민주당이 전향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노동 문제는 좋은 핑계거리다. 실제로 유시민의 경우 통합 이전 인터뷰들에서 노동 문제에 대해 거의 민주노동당 입장과 차이가 없는 전향적인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또한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 강령 및 정책을 봐도 노동 문제의 경우 진보신당의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진보성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의 경험은 자주파가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 세력의 지지율 극대화'라는 이기적인 원칙을 도외시하면서까지 (혹은 그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오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남북한 평화체제가 수월하게 수립된다면 자주파가 진보 정당의 외연 확장에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가 그러한 장밋빛 전망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통합진보당 역시 향후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주파가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특이"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최근 통합진보당 내에서 불거진 몇몇 상황들이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은 진보 정당 운동의 참여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서민들이기도 할 것이다. 서민들은, 수구세력이 진보세력에 덧씌운 '친북'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경쟁력 있는 진보세력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훌륭한 노동 정책을 보건대, 만일 진보신당 등이 고사한다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과 함께 친북을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민주노동당의 실패는 그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을 업고 성장한 이 정당이, 민주노총이 노동자 중에서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라는 협소한 계층에 갇혀 버린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고 함께 갇혀 버렸다는 데에 있다. 통합진보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사회당이든 계속해서 진보 정당 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한 성찰과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조직 운동의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둘러싼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등의 다툼을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한 성찰 따위는 몇몇 이론가들의 텍스트에서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통합진보당원, 진보신당원, 사회당원, 기타 진보 정당 운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파벌>을 정독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벌>은 내가 인용하면서 비판한 일부 구절을 보면 '분당'을 죄악시하는 것 같지만 전체 내용을 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파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다.
"과거에 격렬한 갈등과 대립을 겪은 조직들이 통합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원인과 후유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처('트라우마')를 치유한 뒤 통합 조건을 협의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없으면 통합 후 조그마한 갈등도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당장 조직을 살리고 세를 확장해야 한다는 강박감이나 여론의 압박 때문에 이 과정을 건너뛸 경우 다시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299쪽)
 
우리는 <파벌>이 던진 문제제기와 함께, 그에 덧붙여 (구)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정당 운동의 존립 근거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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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8 23:05 2012/02/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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