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6.24 반전행동 집회는 아쉬워

View Comments

ㅇ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한국어

     

라는 책이 발간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한국어, 이희자·이재성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2006.

  

워낙 외계어들이 난립하고 있기에 미디어오늘의 책소개에 나온 것처럼 온라인에서 맞춤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그렇게 흉볼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뿐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글을 쓸 기회가 많고, 온라인에서 쓰는 글을 다른 이들도 읽는 만큼 맞춤범 틀리는 것을 자랑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를 용인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래 예로 든 것은 정말 일상에서도 많이 틀리는 것들이다. 

특히 '웬/왠'은 가끔씩 헷갈린다.

 
‘왠지(O)/웬지(X), ‘웬만하면(O)/왠만하면(X), ‘웬 일이니?(O)/왠 일이니?(X)’ ‘위층(O)/윗층(X)’ ‘만날(O)/맨날(X)’ ‘외골수(O)/외곬수(X)’ ‘설거지(O)/설겆이(X)’ ‘봬요(O)/뵈요(X)’

  

ㅇ 오늘 6.24 반전행동집회는 아쉬워

  

- 반전행동에 많아야 500명 정도 모였을까.

하긴 별로 공지되지 않은 것을 따지면 이것도 상당한 수준이다.

  

민주노동당 및 사회단체들과 노조, 다함께, 학생대오가 있었는데, 노조에서는 별로 오지 않았다. 오늘의 주력은 다함께였다. 여기저기 소속으로 나온 다함께 구성원들에 비해 자민통 세력은 별로 오지 않았다. 6.15행사로 피곤해서일까.

 

집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반전연설이라고 하는 게 좀 별로다.

우리의 집회는 왜 이리 재미없어야 하는 걸까.

물론 나보고 기획하라고 해도 별 볼 일 없겠지만, 좀더 유쾌하고 쉽고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기에 그늘진 나무 아래 앉아서 차분하게 반전연설을 들으려 했는데, 상황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위에서 새똥이 무차별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 새가 앉지 않을 만한 쪽으로 계속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집회에 집중할 여유를 주지 않는구만.

   

-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의 행진은 더욱더 단순하고 무료했다...

물론 다른 때에 비해 내가 외친 구호의 양은 상당하였다. 쪽수가 얼마 되지 않아 나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대열을 이끈 이는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일하고, 다함께 운영위원으로 있는 김광일 씨였다. 다함께 대오가 아니어서인지 평소 다함께에서 행진할 때 보여주었던 식은 아니었고, 그래서 단조로웠을 수도 있다.

 

"학살자 미국은 이라크에서 떠나라!"

"이란 공격에 반대한다!"

"자위대도 철군한다. 자이툰도 철군하라!"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한다!"

"학살 반대, 점령 종식!"

"점령 종식, 자이툰 철군!"

 

행진 내내 외쳤던 구호는 위의 것이 다였다. 노래도 하나도 부르지 않았고, 시민들에게 선전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건네주는 유인물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주의깊게 읽었고, 행진 대오를 지켜보는 이들도 상당히 관심어린 눈길을 주었다. 이를 그대로 내버려둔 것이 아쉽다.

 

- 이란공격 반대가 왜 집회내용에 포함되었을까. 이란 공격이 왜 문제되는지 집회 내내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고, 심지어 하디타 학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이가 얼마나 되었을지 의문이다. 그냥 '전제'하고 처리하는 관행을 버려야 하는데...

  

- 집회 내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도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이다. 지역위 당원들은 다함께 대오에 있던 두 동지와 집회 마치고 가는 길에 만난 한 동지, 이렇게 3명 뿐이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집회장에서 그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제대로 말을 건네지도 못했지만, 본 것만으로 만족한다.

  

- 7시부터 있는 촛불행사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나는 촛불의 힘을 믿지 않는다.

 

ㅇ 집회를 지켜보다가 스치는 단상

  

-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반전연설 중 "전사"라는 용어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 들으면서, 태극 전사, 붉은 전사에서의 그 전사는 결국 전쟁에서 싸운다는 의미일 텐데, 전쟁에 반대한다면서 일상에서 그렇게 호전적인 용어를 함부로 쓰는데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점이 반성되었다. 

  

결벽증으로 보일지 모르나, 전쟁에 반대한다면 이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말과 글에서도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사용가능한 경계가 어디인지도 애매하고,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 월드컵 중계방송이 거의 모든 시간대의 경기들을 세 방송사에서 동시에 중계해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독일에서는 한 방송사에서 그것도 한 경기만 중계를 해줄 때도 많은데, 왜 한국은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이것은 전파낭비인 것은 당연하고, 시장의 비효율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경쟁상태로 놔두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인다고 하지만, 월드컵 중계방송의 경우 소비자의 채널선택권은 박탈당한 셈이다. 해설이 다르니까 괜찮은 건가? 그러면 라디오로 하든지...

이래서 방송의 공공성을 위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6/24 23:02 2006/06/24 23:02

댓글0 Comments (+add yours?)

Leave a Reply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gimche/trackback/129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