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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이 반복되는 까닭 - 놀이를 노동으로 바꾸는 자본의 힘/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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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글을 그리 읽지 않았는데, 아래 칼럼은 나와 관련된 걸 언급하는 듯해서 읽게 되었다.
내가 연구소에서 별 일이 없는 한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이유는 그게 노동이 아니라 놀이, 재미로서의 의미가 더 크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논문, 보고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측면에서 강신주의 글에 공감하는 바가 있긴 하지만, 노동을 어떻게 볼지는 좀더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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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노동은 행위의 수단과 목적이 불일치한 것으로, 놀이는 반대로 행위의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놀이를 좋아하고 노동을 싫어하는 법이다. 어느 누가 거래처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이 경우 음주는 고통스러운 노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호이징하가 인간을 ‘호모 루덴스’, 그러니까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내린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인간은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행동을 지향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제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해지지 않았는가. 게임을 놀이가 아니라 노동으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이제 돈이 모든 행위의 지고한 목적, 거의 유일하기까지 한 목적으로 신격화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를 몰입시켰던 놀이의 영역은 점점 더 줄어들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공부가 입시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고등학생들은 젊은 창조성을 잃어버리고 고달픈 지적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하루빨리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지 않으면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 “놀이는 좋아하지만 노동은 싫은 법
자본의 논리에 대학이 죽자 논문은 지적놀이가 아닌 노동이 되고 스펙·상품이 돼버렸다”
지적 놀이의 공간을 제공했던 대학이나 대학원마저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취업이란 절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학과를 평생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지적 놀이의 장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전공 영역은 고소득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전공과정은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학문 영역, 그러니까 지적 놀이여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대학에서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인이 탄생할 수 있는 법이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밤을 새워가며 공부에 몰두했을 때 어떻게 창조적인 지성인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적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논문과 학위는 하나의 결과물, 그러니까 놀이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논문과 학위는 기쁨의 대상이기는커녕 심지어 슬픔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논문을 쓰고 학위 과정을 마치는 순간, 그래서 마침내 대학이나 대학원을 떠나는 날, 그들은 자신을 매혹시켰던 놀이 영역과 작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으로 넘기는 것보다 슬픈 일이 또 있겠는가.
 
논문이나 학위가 이렇게 신격화된 이유로는 학위가 일종의 스펙으로 기능한 풍조도 한몫 차지한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자본주의 논리에 편입된 대학 측이 학위를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는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학위를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불문율을 믿고 입학은 했지만, 지적 놀이가 아니라 지적 노동으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수업료 등으로 지출한 비용을 생각하면 논문 작성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침내 논문 표절과 대필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은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아예 논문 표절과 대필 문제는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당한 수단만이 가치 있다는 원론적인 논의나 엄격한 논문 검증 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도처에서 들린다. 그렇지만 논문 표절과 대필 사건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식은 자본에 맞서서 놀이가 가져다주는 창조적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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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7 13:22 2013/04/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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