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오전에는 공공운수노조와 전국철도지하철협의회가 진행하는 철도안전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노조 관계자가 아닌 외부 안전 전문가가 발언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불려나갔다. 발언하기로 예정된 분이 몸이 안좋아서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른 전문가들도 사정이 안되어 얼마 전에 공공기관 안전관리에 관한 워킹페이퍼를 쓰기도 해서 대타로 나가게 된 거다.
사실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더라. 11월 5일로 예정된 '중앙행정기관 차별 철폐를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 발제문을 목요일까지 써야 하는데, 다 쓰지 못해서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오전 시간을 다 날렸고... 발제문은 목요일에 다 쓰지 못했고, 금요일에도 하루종일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늘에서야 다 써서 보냈다.
물론 밀양역 사고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한 시간여만에 발언할 내용을 정리해서 나갔다. 그렇게 쓴 원고를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쉬운 미션은 아니더라. 암튼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준비된 원고를 다 읽진 못했지만, 관련 기사가 나왔길래 애초에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옮겨둔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226
https://www.yna.co.kr/view/AKR20191031117100004?input=1195m
[191031 궤도협의회 기자회견 자료.hwp (1.45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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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난 10월 22일 열차운행선상에서 작업 중 열차에 치여 사망한 철도노동자 장현호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병상에 계신 철도노동자 두 분의 쾌유를 빕니다.
1.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 사망사고 등 공공기관 안전사고가 빈발하자 기획재정부는 안전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올해 3월 「공공기관 안전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와 함께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을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난 9월 2일에는 서울 금천구청역 인근 선로에서 일하고 있던 하청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또 밀양역 구내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공공기관 안전관리 대책과 지침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왜 현장에선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걸까요? 그것은 공공기관 안전관리 방안에 현장노동자들이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권리와 참여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노동자의 권리가 빠진다면 공공기관 안전관리 방안은 오히려 현장에서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참여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2.
이를 테면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에는 작업중지 요청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 1월 16일 시행될 산업안전보건법 규정과는 달리 노동자가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고, 일시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만 되어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명백하게 후퇴한 것입니다.
이것마저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고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작업중지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곡선구간, 부족인력 작업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한 징벌적 규제와 안전인력의 대규모 투입만으로는 안전한 일터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현장의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행사 없이 ‘안전수칙 준수’를 무작정 반복한다고 해서 안전문화가 형성되지는 않습니다. 노동자가 자기 생명을 담보로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노동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야 합니다.
3.
그렇다면 현장의 위험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험 요인을 찾아 개선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위험성 평가에 노동자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도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있지만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단지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 주무기관의 장에게 제출하는 형식적인 내용만 있을 뿐입니다.
나아가 발전소의 경우 산안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사의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위험성평가를 하더라도 안전관리자 중심으로 평가서가 작성되고, 평가결과가 현 상황을 유지하거나 기관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안전활동 참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철도지하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도평가는 이용 고객까지의 안전을 포괄하는 평가이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이 기관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노동자가 위험성평가에 참여할 때만이 소중한 노동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할 때 해당 작업 노동자의 참여를 통해 위험요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4.
또한 철도운행안전관리자의 임무도 강화해야 합니다. 철도안전법에는 작업현장의 책임자와 철도운행안전관리자의 겸직을 금지하지 않고 있어 밀양역 사고처럼 인력이 부족한 현장은 철도운행안전관리자가 두 가지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고, 철도운행안전관리자의 임무보다는 작업자로서의 임무에 치중하게 됩니다. 실질적인 철도운행안전을 담당하기 위하여 철도운행안전관리자의 작업자 겸임을 금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설치·운영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제도 등을 철도안전법에도 차용하여 현장노동자가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5.
사고 발생시 과도한 처벌 위주 정책보다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을 중심으로 정책을 개선해야 합니다. 현재는 사고 원인으로 노동자 과실 유/무를 판단하고, 사고보고서도 그렇게 작성됩니다.
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도안전법의 경우 관계법령이 2012년 이후 23회나 개정되었습니다만, 철도사고가 나면 사고 이유를 근본적으로 밝히기보다 작업노동자의 귀책사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철도안전법 또한 이를 위해 개정하고 철도운영자들의 요구에 따라 개정되었습니다.
이번 사고 직후 10.23일 시행된 철도안전법 관계법령을 보더라도 철도운행안전관리자의 배치의무가 없는 상황이고, 관리자 2명이 3개 이상 인접공사를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 등 인력축소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사고는 ‘누가 잘못했는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로부터 시작하고, 이 무엇에는 시스템과 경고장치, 절차와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6.
정리하겠습니다. 철도안전을 확보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현장노동자들의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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