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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와 맑스주의(이성백, 현장에서 미래를 39,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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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논문은 정보화에 대한 맑스주의적 함의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약간 오래되기도 하였고, 또한 정보화보다는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주장이 많아서 제목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읽고 정보사회론에 대한 낙관론(다니엘 벨)과 비관론(허버트 쉴러)의 내용을 살피고, 정보사회에서 노동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그리고 다니엘 벨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맑스가 얘기햇던 공산주의 사회의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벨은 후기산업사회를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던 여러 사회적 갈등들이 해소되고, 인간들이 바라던 여러 가치들이 실현되는 유토피아적 세계로 묘사한다. 첫째로 후기산업사회의 지배적인 형태인 서비스 노동은 육체노동보다 더 높은 직업적 만족을 준다. 그것은 물건이나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의 접촉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후기산업사회를 주도하는 집단은 전문가 집단인데, 이들은 계획에 따라 행위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후기산업사회는 더 이상 무정부적인 자유시장이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조절된다. 셋째로 후기산업사회는 인간과의 접촉이 주가 되는 대인지향적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부터 점차 새로운 의식에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후기산업사회에서 각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사적 이해의 에토스로부터 "보다 의식 있는 방식으로 … '공적 이해'에 대한 분명한 개념에 기초해서 사회의 필요성을 판단하려는" '사회화' 생활양식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Bell, 1973, 283)

 

후기산업사회에 대한 벨의 이러한 이상향적인 묘사로부터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는데, 이때 그가 적용하고 있는 유토피아적 기준이 맑스와 적지 아니 유사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논한 두번째와 세번째, 즉 무정부적인 자유시장이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에 의한 사회의 조절과 서로서로에 대한 관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화된 생활양식은 바로 맑스에 의해 사회주의의 이념적 기초로 여겨져 온 것들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 '사회적 생산의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조직화' 그리고 이기심과 대립 반목을 넘어선 인간들간의 연대에 입각한 공동체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회주의의 원리로 익히 들어왔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 뿐만 아니라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과 함께 노동형태도 육체노동으로부터 정신노동에로 변화해 간다는 벨의 지적과 비슷한 내용이 또한 맑스에게서도 발견된다. 맑스는 {그룬트리세}에서 당시 진행되고 있던 생산력의 발전을 관찰하여 앞으로 육체노동이 점차 정신노동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공업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서 현실적인 부의 창출은 노동시간과 적용된 노동의 양보다는 수행자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며, … 이 수행자의 능력은 다시 … 과학의 전반적인 수준과 기술의 진보, 다시 말해 이 과학의 생산에의 응용에 의존한다. … 노동은 더 이상 생산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인간은 오히려 생산과정의 감시인과 조절자로 행동하게 된다. … 노동자는 생산과정의 주행위자가 되는 대신에, 옆에서 서서 그 과정을 감시하게 된다."(Grundrisse, 600-601. 강조는 필자)

  

물론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맑스가 가장 중심적인 것으로 삼았던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에 대해 벨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하여튼 자유주의자 벨이 후기산업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묘사하면서, 이때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그의 맑스주의자로서의 전력으로만 설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지에 상관없이 결국 사람들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그리고 실현이 가능하던 아니던 사회주의 이념이 인간적인 사회의 원리라고 여기고 있으며, 벨은 이러한 이념을 후기산업사회 속에서 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구논문/『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정보화와 맑스주의

이 성 백(시립대 철학과교수/연구위원)

"오늘날 {선언}의 유산들을 끌어낸다는 것은,

 이 저작을 신성한 텍스트로 다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정치적 의제(議題)를 구성하는 데 영감을 주는

 최초이며 주요한 저작으로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 C. 레이즈, L. 파니치, [{공산당 선언}의 정치적 유산]

  

1. 들어가면서 

 

올해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적, 실천적 당 강령으로 간주되어온 {공산당 선언}이 세상에 공표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은 이를 기념할 만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오늘날의 사회 현실적 상황들은 {공산당 선언}(이하 {선언})이 이루어지던 당시와는 정반대의 조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선언}은 공산주의가 서구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서 탄생되었던 반면, 특히 동구권 현존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게 됨으로써 오늘날 공산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패퇴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공산주의가 패퇴의 상황을 맞고 있는 현실 조건 속에서 {선언}에 대해 무슨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의 종언", "맑스주의의 죽음", "자유진영의 역사적 승리"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시류에 따라, 그동안 세계를 동요시켜왔던 이 역사적 문헌에 이제 마지막 장송곡을 불러줄 일만 남았는가? 아니면 요즈음의 역행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언}은 여전히 현실의 변화에 개입하는 이념적 저작으로서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찾아질 수 있을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듯이 {선언}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150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선언}의 역사적 현재성과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은 곧 시작될 새로운 밀레니움에는 어떤 유령들이 배회하게 될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과연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다시 배회하게 될 것인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만일 현재의 패퇴적 상황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역사 발전 속에서도 공산주의가 설자리가 전혀 부재하다면, 공산주의 이념과 운동은 그 역사적 소임과 수명을 다했다고 최종적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21세기의 역사적 전망 속에서 공산주의를 요청하는 새로운 사회적 조건들이 드러나게 된다면, 이때 공산주의는 죽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의 변화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이념적이고 실천적인 힘이 될 것이다.

  

{선언}의 역사적 현재성을 찾는 물음에 대해 고찰해 나가기에 앞서, 우선 어떤 식으로 이 물음에 접근해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언}의 [1872년 독일어판 서문]에 개진되어 있는 엥겔스의 자신의 진술로부터 {선언}의 독법(讀法)을 끌어 내 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상황이 아무리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이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은 크게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히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저기 몇몇 군데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선언} 자체가 천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원칙들의 실천적 적용은 언제 어디서나 당대의 역사적 상황들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그러므로 II절 끝에서 제시된 혁명적 방책들에 특별한 중요성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이 부분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게 서술되어야 할 것이다."({선언}, 379f)

  

이 구절에는 이른바 '텍스트의 역사유물론적 독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암시되어 있다. 이 역사유물론적 독법의 원칙은 텍스트의 독해는 '당대의 역사적 상황들', 즉 그 독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현실적 조건들과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법이 바로 {선언}의 독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선언}은 역사를 초월하여 타당성을 갖는 문헌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들에 의존하여 생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 변화에 따라 '개선'될 수도, '다르게 서술'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선언}의 역사적 현재성을 고찰하는 일은 거기에 개진되고 있는 구절들과 주장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고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현재의 사회현실적 조건에 조응하여 더 이상 맞지 않는 부분을 '개선'하고, '다르게 서술' 하는 것, 다시 말해 발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말에 도달한 현 시점에서 {선언}의 유물론적 독해는 엥겔스가 언급했던 수준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있다.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이란 '역사적 상황들'에 의해 맑스주의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여기저기 몇몇 군데는 개선' 정도가 아니라,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선언}의 역사적 현재성을 묻는 작업은 그것에서 개진되고 있는 일반적 원칙들, 다시 말해 공산주의의 사상적 요체들 자체에 대한 현실적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역사유물론, 잉여가치론, 계급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 등 대다수의 맑스주의의 이론적인 원칙들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을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 이론적인 원칙들에 의해 근거지워지고 있는 맑스주의의 역사적 전망에 대해서만 고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의 과제는 불가피하게 닥쳐오고 있는, 오늘날의 부르주아적 소유의 몰락을 선포하는 것이었다"({선언}, 384)라고 술회하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역사적 불가피성이란 역사적 전망이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사상'({선언}, 373)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언}의 역사적 현재성에 대해서 논의한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는 과연 자본주의는 몰락하고 인류 역사가 사회주의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역사적 '미래예측'이 여전히 견지될 수 있는 것인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러시아와 동구유럽에서 현존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제기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현존사회주의의 붕괴는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예측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증명해 준 것이고, 결국 자유주의의 승리와 함께 역사는 종결되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역사적 변화로부터 아직도 사회주의적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 볼 여지가 있는가?

 

이 과제의 수행은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먼저 첫 번째로 고찰되어야 할 것이 현존사회주의 몰락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평가이다. 이 문제는 다음의 모든 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첫번째 관문이다. 만일 현존사회주의가 충실히 맑스의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세워진 사회였다고 한다면, 그 몰락을 맑스의 사회주의 이념의 파산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20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다시 말해 20세기 후반의 자본주의의 본질적 성격, 객관적 발전 경향과 그 동인들을 규명하여, 이에 의거하여 향후 21세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가능한 한계 내에서 추정(extrapolate)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도 주요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정보화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맑스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그에 입각하여 21세기 소위 '정보화 시대'에 과연 '공산주의의 유령'이 다시 배회하게 될 것인지, 정보화와 함께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변화 과정 내에 사회주의를 가능케 하는 객관적 요인들이 발전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고찰하게 될 것이다.

  

2. 현존사회주의 붕괴의 역사적 의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인간이 갖게 되는 지식을 로고스(진리)와 독사(속견)의 두 가지로 구분했다. 독사가 인식자의 주관적인 선입견, 이해 등에 의해 일그러진 사물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로고스는 오로지 순수한 이성의 사유의 힘에 의해 인도되어 도달된 지식을 말한다. 20세기 말미를 장식한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라 할 러시아와 동구유럽에서의 '세계사회주의 체제'의 해체가 던지고 있는 세계사적 의미를 다룸에 있어 파르메니데스의 구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존사회주의체제의 붕괴에 관해 그 동안 수없이 쏟아져 나온 해석과 평가는 대부분 특정한 입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 '공산독재체제의 종식',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역사의 종언' 등의 표어로 압축되는 세계여론을 압도하고 있는 해석은 국제적인 헤게모니세력으로서의 서방의 이데올로기적인 선입견이 투영된 것이다. 이렇게 특정한 입장을 전제한 해석과 평가들로부터는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이 갖는 바른 역사적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을 둘러싸고 대두된 여러 해석들은 동구유럽에 수립되었던 사회체제를 사회주의이념에 상응하는 사회로 보는가 아니면 그것을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사회로 보는가에 따라 대체적으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후꾸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동구권 체제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동구권의 해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동안 맑스주의 내지는 사회주의에 적극적이었거나 동조적이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등을 돌렸는데, 그 이유는 이들도 동구권 체제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동구권 체제를 여러 다양한 사회주의 모델 가운데 하나로 보거나, 변질된 사회주의로 보거나, 아예 사회주의로 보지 않는 입장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해명하는 문제는 과연 동구권에 세워졌던 사회가 실제적으로 어떤 사회였는가를 다시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소련 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에 대한 발생론적 고찰과 소련 체제의 사회 성격에 대한 체제론적 고찰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다루어진다.1)

 

소련의 건국주체였던 레닌을 위시한 볼셰비키가 칼 맑스의 사상을 추종한 사회주의자들이었고, 따라서 이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에 칼 맑스의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데에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 사회의 실제적인 형성이 순수한 사회적 이념에 그대로 부합하여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사회적 이념의 구체적인 실현은 주어져 있는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들의 제약 하에서 이것들과의 일정한 접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체제 형성의 일반적인 합법칙성이다. 그리고 특히 현실적인 조건들과 결합되는 과정에서, 달리 말해 이념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그것은 수정과 변용을 겪게 된다.

  

러시아에 수립된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볼셰비키의 사회주의 이념이 당시 러시아가 처해 있던 제반 사회적인 조건들과 접합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특히 1917년 2월 혁명 후에 벌어졌던 러시아의 직접적인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둘러싼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간의 첨예한 대립이 보여주고 있듯이, 당시 러시아의 제반 사회적인 여건들은 사회주의가 정상적으로 건설되는 데에 장애가 되는 여러 요인들을 안고 있었다. 이런 장애요인들에 의해 제약되면서, 정치, 경제 등 거의 모든 측면에 걸쳐 정상적인 사회주의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변용된 형태의 사회체제가 형성되었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있어 첫 번째로 지적해야할 가장 근본적인 난점은 러시아의 경제적 낙후성이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어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러시아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농업중심의 사회였다. 따라서 사회체제를 개조하는 것과 병행하여 산업화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였다. 이러한 산업화의 필요성은 "공산주의는 소비에트권력 더하기 전 국토의 전기화"라는 레닌의 말이 잘 보여주고 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형성에 있어 변용을 초래했던 두 번째 요인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한 소련의 포위와 고립이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서구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은 고립된 속에서 소위 일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구의 정치적, 경제적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소련은 군수산업을 과도하게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부터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 산업의 90%이상을 차지하는 부문이 군수산업과 관계되어 있을 정도로 경제 구조뿐만 아니라 소련사회의 실제적인 특징중의 하나가 된 사회 전반의 군사주의적 파행성이 초래되었다.

  

다음으로 지적해야 할 사항은 스탈린에 의해 추진된 '급속한 산업화 정책'의 문제이다. 당시 표현으로 소위 '사회주의의 경제적 토대'를 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이 정책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결국 경제적 낙후성을 하루빨리 극복하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서는 선결과제라는 절박감이 표출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급속한 산업화 정책'은 경제적 생산력의 발전을 사회적 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었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생산력의 우위의 지적은 소련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급속한 산업화의 목표가 달성된 이후에도 ― 스탈린은 1936년에 '사회주의 건설의 본질적인 종결'을 선언했다 ― 생산력 우위의 노선이 소련 존속 70여년 동안 줄곧 소련의 사회발전의 기본방향으로 견지되어왔기 때문이다. 사회발전에 대한 실천적인 목표가 일차적으로 생산력 발전에 주어졌고, 사회적 관계 개선의 문제는 그에 종속된 이차적 문제로 밀려나 버렸다. 이로부터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실체적인 모습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규정이 도출되는데,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일차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른 사회조직 방식에 의해 생산력 발전의 길을 걸은 근대화사회였다. 이 견해에 대해 완전고용, 무상교육, 무료 의료제도 등 노동자의 사회보장을 위한 사회적 관계의 개선이 있지 않았는가라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개선은 생산부문에 더 많은 재투자를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비생산적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했다. '급속한 산업화' 추진 이후로 대중의 경제수준은 항상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급속한 산업화 정책'은 나아가 정치, 경제적인 제도화 과정에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대한 강력한 중앙 관리와 통제가 필요했으며, 이러한 경제와 정치권력의 중앙집중화 과정에서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가 형성되었다.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가 형성되게 된 데에는 러시아의 정치 문화적 후진성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통 러시아는 수 백년 동안을 짜르가 전 사회를 통치하는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체제로 존속해 왔다. 러시아의 이와 같은 국가주의적 전통이 급속한 산업화의 중앙집중화의 필요성과 맞물리면서, 소련의 정치, 경제 체제는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확립되었다. 권위주의적 전통을 강조하는 러시아의 독자적 문명론이 최근에 러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에서 권위주의적인 요인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2)

 

이렇게 소련에서의 사회주의체제의 구체적 확립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적 낙후성, 서구 열강에 의한 고립,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 정책 등의 요인에 의해 조건지워진 것이었다.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 군사주의적인 파행성, 그리고 서구자본주의와 다른 방식에 의한 근대화사회, 이런 식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현실적인 사회적 조건들과 접합 속에서 변용되면서 형성된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로 알아왔던 사회의 실제적인 모습이었다.

  

이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사회주의라 할 수 있는가? 사회주의 이념이 본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한 변용을 겪었다는 측면에 주목할 때, 그것을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동구권에 수립되었던 사회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입장들의 기본 논지였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심하게 변용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에 의해 현실적인 제약 조건들 하에서 일정한 형태로 성립된 사회주의였다. 이 점을 좀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해 체제론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최근에 들어 현존사회주의를 사적 자본가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한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시각이 일각에서 주장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의 일파인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이미 동구권이 해체되기 이전부터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해 왔었다. 또한 알튀세르의 입장을 이어오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맑스주의의 결합을 통해 맑스주의를 새로이 재구성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유물론자들도 이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이론적 지도자인 토니 클리프는 국유화되어 있는 생산수단들을 누가 통제하고 있었는가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관료제가 소비 관계뿐만 아니라, 생산 관계도 통제했고, 특히 이 생산 관계에 대한 통제가 국가 관료제의 권력의 원천이 되었다고 본다. 또한 이 관료제는 생산관계의 통제를 자본주의에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목적, 즉 축적을 위한 축적을 위해 수행하였다. 따라서 그는 소련은 '관료주의적 국가 자본주의', 국가 관료제가 자본가 계급인 맘모스 기업, '소련 주식회사'이고, 국가를 '소유'하고, 축적 과정을 통제하는 관료제는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의 자본의 인격화'라고 주장했다.(Cliff, 167 ; Townshend, 129에서 재인용)

  

포스트모던 유물론자들인 스티픈 레스닉과 리차드 월프는 잉여 노동의 착취에 초점을 맞추어 소련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맑스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차이를 착취적 계급 구조 대 비착취적 계급 구조에 있다고 보고, 따라서 소련이 사회주의인지 아닌지를 이 잉여가치에 대한 착취가 있었는지 여부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 전제 위에서 이들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노동의 착취가 있었다고 확인한다. "공장과 농장의 보고서들, 역사 그리고 경영 연구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볼셰비키 혁명부터 오늘날까지 국영기업의 노동자들이 아닌 다른 개인들이 항상 이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의 첫번째 수혜자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Resnick & Wolff, 217) 이에 따라 이들은 소련을 계급적 착취가 현존하는 국가 자본주의로 단정내린다. "우리의 분석처럼 맑스의 분석이 잉여 노동의 사회적 조직으로 이해되는 계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917년 이후 소련은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와 현저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달리 말해, 권력의 재분배가 1917년 이후에 극적으로 변했던 반면, 잉여 노동의 조직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사적 자본주의 계급 구조들이 국가 자본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Resnick & Wolff, 210)

 

그러나 소련을 이렇게 국가 자본주의로 보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토니 클리프가 지적한 데로 국가 관료제가 생산수단의 통제를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통제권이 바로 자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경영자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한다고 해서 이들이 직접적으로 자본가인 것은 아니다. 국가관료제를 자본가계급으로 보기 위해서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생산수단을 자신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적 소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생산수단을 관리, 통제했을 뿐 결코 이것을 처분할 권리는 없었다. 문제는 생산수단의 통제가 직접적인 생산자인 노동자들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국가 관료제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진 데에 있다.

  

국가 관료제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착취자'였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직접적으로 생산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적 총생산물로부터 일정한 분배를 받을 때, 이것을 모두 잉여가치의 착취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적 재화의 가치의 생산은 직접적인 생산과정 뿐만 아니라, 교환, 유통, 분배 등의 전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사회적 총생산물로부터 자기 몫을 분배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 관료제도 경제적 과정에 관리 기능을 담당했으며, 따라서 그에 따라 분배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물론 이들이 노동자들보다 특권을 통해 더 많은 몫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평등주의(egalitarianism)의 기준에서 볼 때, 불공정한 분배로 비판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찌했든 간에 경제에 참여한 각 담당 집단들 간에 어떤 분배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해당되지, 잉여가치의 착취의 문제는 아니다. 잉여 가치의 착취는 자본을 투자한 데서 발생하는 수익을 말한다. 그리고 국가관료들의 특권도 이것이 노동자들의 수준에 비해서 높았기는 했지만, 서구에서 자본가들의 '특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들에 비하면 국가관료계층이란 '소련식 자본가'는 이에 비하면 매우 청빈했다.

  

따라서 소련을 국가자본주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다. 다만 국유화된 생산수단이 중앙집권화된 국가 관료주의체제에 의해 독단적으로 통제됨으로써, 생산수단의 사회적 관리가 왜곡되었던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소련은 체제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규정되어야 옳은가? 그것은 이미 유고의 '프락시스' 그룹이 지적했던 데로,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가장 대표적인 입장으로 대두되었던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주의적인 사회주의'라는 개념으로 가장 적절하게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3)

  

이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이 당시 러시아라는 객관적인 사회적 조건과의 접합 속에서 형성된 사회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다른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의 사회주의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도 입장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또한 현실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수정되고 풍부화될 수도 있다. 뒤에서 보게 될 것이지만, 자본주의는 20세기 말엽에 들어와 '정보화의 단계'에 들어섰고, 이에 맞추어 사회주의 이념도 진화되어야 한다. 현존사회주의는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성립한 사회주의의 하나의 형태였으며, 국가주의적으로, 관료주의적으로 왜곡된 사회주의였다. 따라서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을 사회주의 일반의 몰락으로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단정이다. 맑스주의적인 사회주의는 항상 자본주의의 변증법적 '타자'이어왔다. 자본주의에 내재적 모순이 존속하는 한, 이를 부정하고자 하는 '타자'로서의 사회주의 이념과 이 이념의 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주의의 종말은 오로지 자본주의의 종말과 함께 올 수 있는 것이다."(Kagarlitzky, 91)

  

마지막으로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을 역사의 발전과정의 차원에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 근·현대의 세계사적 진행과정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중세가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성립되었던 역사적 과정을 돌아보면, 그것은 어느 한 순간이나, 어느 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었으며,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탈리아의 역사를 보면,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가리발디에 의해 이탈리아가 통일을 달성하게 될 때까지, 근대적 요소와 봉건제적 요소 사이에서 승리와 패배가 교체되는 수많은 사건들로 점철되었다. 현존사회주의의 몰락도 현대의 세계사적 진행과정 속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성립된 '시민사회'가 몰락하고 보수반동체제가 '승리'했던 것과 유사한 역사적 사건은 아닐까? 바로 {선언}이 발표된 해였던 1848년의 혁명이 유럽에서 실패로 돌아간 뒤에, 미래의 전망에 대한 상실감으로 허무주의에 젖어들었던 것처럼, 다만 현재 인류가 경험적 현재라는 단기적인 시야에 빠져있기 때문에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을 새로운 역사적 비전의 불가능성으로 느끼는 것은 아닐까?

   

3. 정보화와 20세기 후반의 현실 자본주의

  

오늘날 우리들은 다가오는 21세기가 '정보의 시대',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 등 대중 매체들을 통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정보화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있으며, 이미 상용화된 개인 컴퓨터를 통해 일상 생활 속에서 사회의 정보화를 실제로 실감하고 있다. 각 나라들에서는 정부의 정책적 주도하에 앞다투어 사회의 정보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문사회학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정보화는 최첨단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정보화에 대한 연구의 효시는 다니엘 벨의 후기산업사회론이었다. 벨은 이미 70년대에 당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산업구조상의 일련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이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예견했다. 그를 이어서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등 여러 학자들이 나와 이 사회 구조 변동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들을 발전시켰다. 물론 이들이 도래하게 될 새로운 사회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제 각각 상이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4) 세부적인 면에서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그 사회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해서 이미 벨이 제시했던 것과 별다른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이른바 '정보사회'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이 아니라, 그것의 일반적인 성격의 이해에 있기 때문에, 주로 벨을 중심으로 하여 정보화와 더불어 일어나게 될 사회 영역들 내에서의 변화에 대해 고찰해 보도록 한다.

  

벨은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에서 1970년대 말 미국과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와 컴퓨터를 축으로 한 급격한 기술변동이 사회 구조 상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 변화된 사회 형태가 어떤 것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5) 무엇보다도 먼저 이를 바라보는 그의 근본적인 입장은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서구가 산업사회와 질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유형의 사회 형태로 이행해 간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 형태가 바로 후기산업사회이다. 벨은 산업사회로부터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의 특징을 특히 산업과 직업 구조의 변동에 주목하여 고찰하고 있다. 프랑크 웹스터는 이행의 특징에 대한 벨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 산업노동자의 감소. 궁극적으로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상황 ('로봇 공장', '완전 자동화'의 시대)에 이르게 됨

 · 산업노동자의 이러한 감소에 수반되는 것으로서, 계속되는 합리화에 따른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산업적 산출의 증가

 ·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 (병원시설에서 마사지에 이르는 어떤 것이라도)에 쓰여질 수 있는, 산업적 산출에서 이전된 부의 지속적인 증가

 · 산업적 직업에 고용된 사람들의 지속적인 방출

 · 많아진 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욕구의 실현을 위한 서비스업에서의 끊임없는 새로운 취업기회의 공급." (Webster, 1995, 71)

   

요컨대 벨은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의 지속적인 증가는 2차 산업, 즉 제조업 부문에서 노동자를 방출하게 되고, 이들이 새로 창출, 확대되는 3차 서비스업 부문으로 흡수되어 산업의 구조적 변동이 일어나는 추세를 확인하면서 서비스업의 우세를 후기산업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적 성격으로 보고 있다. 벨은 서비스업이 주종을 이루는 사회로 후기산업사회를 파악하면서, 이에 의거하여 후기산업사회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제시한다.

  

후기산업사회에서는 그 이전 사회와 노동의 유형에 있어서 달라진다. 산업사회에서는 기계와의 연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조 노동"이 지배적인 유형이었다면,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서비스 노동이 지배적인 유형이 된다. 그리고 서비스 노동은 사람들 사이의 접촉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보가 기본적 자원이 되는 노동이다. 따라서 벨에 따르면 서비스 노동은 정보노동이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지배적인 직업집단은 정보노동자로 구성"되는 것이다.(Bell, 1979, 183 ; Webster, 1995, 73에서 재인용) 산업사회에서는 공장에서의 제조노동, 즉 (단순) 육체노동이 지배적이었다면, 벨은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정보노동, 즉 일반적으로 표현해서 정신노동이 지배적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벨은 서비스 부문에서도 의료, 교육, 연구 등에 종사하는 전문기술직이 증대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새로운 인텔리겐챠'의 증가를 목격하면서 벨은 이들이 후기산업사회를 주도해 나갈 핵심적 집단을 형성한다고 보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에서의 핵심은 "후기산업사회에서 핵심적 집단을 형성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다".(Bell, 1973, 17)

   

이러한 것들이 벨에 따르면 후기산업사회의 사회구조적인 성격과 특성이다. 그런데 벨은 이러한 사실차원에서의 성격 규명에서 더 나아가 후기산업사회를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던 여러 사회적 갈등들이 해소되고, 인간들이 바라던 여러 가치들이 실현되는 유토피아적 세계로 묘사한다. 첫째로 후기산업사회의 지배적인 형태인 서비스 노동은 육체노동보다 더 높은 직업적 만족을 준다. 그것은 물건이나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의 접촉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후기산업사회를 주도하는 집단은 전문가 집단인데, 이들은 계획에 따라 행위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후기산업사회는 더 이상 무정부적인 자유시장이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조절된다. 셋째로 후기산업사회는 위에서 보았듯이 인간과의 접촉이 주가 되는 대인지향적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부터 점차 새로운 의식에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후기산업사회에서 각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사적 이해의 에토스로부터 "보다 의식 있는 방식으로 … '공적 이해'에 대한 분명한 개념에 기초해서 사회의 필요성을 판단하려는" '사회화' 생활양식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Bell, 1973, 283)

  

후기산업사회에 대한 벨의 이러한 이상향적인 묘사로부터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는데, 이때 그가 적용하고 있는 유토피아적 기준이 맑스와 적지 아니 유사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논한 두번째와 세번째, 즉 무정부적인 자유시장이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에 의한 사회의 조절과 서로서로에 대한 관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화된 생활양식은 바로 맑스에 의해 사회주의의 이념적 기초로 여겨져 온 것들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 '사회적 생산의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조직화' 그리고 이기심과 대립 반목을 넘어선 인간들간의 연대에 입각한 공동체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회주의의 원리로 익히 들어왔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 뿐만 아니라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과 함께 노동형태도 육체노동으로부터 정신노동에로 변화해 간다는 벨의 지적과 비슷한 내용이 또한 맑스에게서도 발견된다. 맑스는 {그룬트리세}에서 당시 진행되고 있던 생산력의 발전을 관찰하여 앞으로 육체노동이 점차 정신노동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공업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서 현실적인 부의 창출은 노동시간과 적용된 노동의 양보다는 수행자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며, … 이 수행자의 능력은 다시 … 과학의 전반적인 수준과 기술의 진보, 다시 말해 이 과학의 생산에의 응용에 의존한다. … 노동은 더 이상 생산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인간은 오히려 생산과정의 감시인과 조절자로 행동하게 된다. … 노동자는 생산과정의 주행위자가 되는 대신에, 옆에서 서서 그 과정을 감시하게 된다."(Grundrisse, 600-601. 강조는 필자)

  

물론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맑스가 가장 중심적인 것으로 삼았던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에 대해 벨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하여튼 자유주의자 벨이 후기산업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묘사하면서, 이때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그의 맑스주의자로서의 전력으로만 설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지에 상관없이 결국 사람들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그리고 실현이 가능하던 아니던 사회주의 이념이 인간적인 사회의 원리라고 여기고 있으며, 벨은 이러한 이념을 후기산업사회 속에서 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벨은 후에 그에 의해 정보사회로 고쳐 표현된 후기산업사회를 산업사회, 그리고 자본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그런 의미에서 그 단계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 모순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유토피아로 제시하고 있다.

  

벨의 후기산업사회론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측면에 걸쳐 많은 이의가 제기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후기산업사회 내지 정보사회의 도래란 그의 추정적 미래 예측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후기산업사회가 과연 산업사회와 질적으로 다른 사회인지, 그리고 그 사회가 벨이 묘사한 데로 그렇게 인간다운 삶이 실현되는 사회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정보사회 이상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추정의 사실적 근거가 되고 있는 정보화에 대해 현실주의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정보화가 등장하여 추진되게 된 것은 누구에 의한 것이며, 어떤 동기가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그것의 지금까지의 진행과정은 현재 서구사회에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고 있는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서구의 사회체제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체제로서 정보사회란 것에 대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가장 권위있는 학자로 허버트 쉴러를 들 수 있다. 쉴러는 서구가 봉착하게 된 경제위기가 정보 테크놀로지가 발생하게 된 동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1982년 아담 샤프 등에 의해 작성된 로마 클럽 보고서6)를 인용하면서 서구가 70년대 이후 경제 불황과 실업 증대란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의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대개는 세계경제의 체제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새로운 정보 테크놀로지이다. 이 테크놀로지는 현재 대부분의 선진 시장경제 국가들에 도입되고 있는 중이다."(Schiller, 1984, 18)

  

이렇게 정보 기술의 도입이 정체된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아울러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 하에서 '정보기술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쉴러에 따르면 정보화의 등장은 위기에 봉착한 서구체제, 즉 자본주의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의 발전도 자본주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오고 있다. 쉴러는 정보화가 실제로 자본의 재생산이란 이해에 종속되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측면에 걸쳐서 제시하고 있다.

  

 · 20세기에 들어 자본주의는 규모와 범위 면에서 엄청나게 비대해져 초국적 기업으로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는 정보통신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 정보화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시장원리에 맡겨져야 한다는 정책 하에서 통신분야의 민영화가 추진되었고, 이러한 민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기업이다.

 · 정보화 자체가 자본의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 부문이다. 따라서 정보와 관련된 기업이 번창하고 있다.

 · 정보화는 초국적 자본주의 기업 상품의 상업적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한 광고 매체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의 이해에 종속된 채 추진되고 있는 정보화는 정보사회지지론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사회적인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다고 쉴러는 주장한다. 정보화는 정보라는 최첨단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정보 부자'와 '정보 빈자'라는 새로운 계급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Schiller, 1983, 88 ; Webster, 1995, 153에서 재인용) 기업과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은 고가의 정보를 구매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반면,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서민들은 정보적 가치가 거의 없는 '쓰레기 정보'만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구 자본주의체제라는 현실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 정보화에 대한 쉴러의 분석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화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기술혁신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동기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추진 과정은 자본의 재생산이란 목적에 종속되어 그 통제하에 진행되어왔다. 따라서 정보화는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재편과정에 불과하며,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요소들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역사적 단계로 상정되는 정보사회란 것은 부인된다.

  

위에서 쉴러는 정보 테크놀로지가 등장하게 된 동기를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에서 찾았다고 했는데, 정보화의 발생과 자본주의의 연관성은 자본주의를 그 축적체제의 변천에 따라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조절학파 이론과 연결시켜 보면 더 분명해진다. 조절학파는 이차대전 이후 자본주의를 두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차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가 그 첫 번째 단계로서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시기로 지칭된다. 케인즈주의의 시기이기도 하였던 이 시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국가의 경제개입, 복지정책으로 특징지워진다. 대량생산방식은 경제적 생산성의 막대한 향상과 아울러 그 결과로 제품 가격의 하락을 실현시켰다. 이 제품 가격의 하락은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노동자들이 생산된 막대한 양의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국가가 여러 사회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한편, 실업, 교육, 보건 등 국민 후생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에 서구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누렸으며, 그에 따라 고용도 거의 완전고용의 수준에 이르렀고,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도 지속적으로 증대되었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그 역사상 가장 장기적으로 안정을 누린 때로서 혹자들에 의해서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뚜렷한 불황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여기에 1973년 오일위기까지 일어나면서, 더 이상 포드주의 축적 체제는 지속될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서구 자본주의는 조절학파의 개념상 '포스트포드주의 축적체제'의 시기로 넘어간다. 특히 케인즈주의에 대신해서 밀턴 프리드만 등의 통화주의에 입각한 신자유주의 내지 신보수주의가 강력하게 대두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장애물로 간주된 국가의 경제개입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시장원리에 맡기도록 해야한다는 경제 정책을 표방했다. 경기 침체 현상이 가장 먼저 가시화된 미국, 영국에서 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경제 구조조정(restructuring)이 강력하게 추진된다. 정보 통신 분야를 위시하여 국가 경제 부문이 민영화되고, 그동안 자랑거리로 삼아왔던 사회복지제도가 대폭적으로 축소되는 등,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자유주의 안의 트로이 목마'로 간주되어오던 케인즈주의의 국가주의적 요소들이 청산된다. 또한 기업 차원에서도 구조조정이 진행되는데, 이때 기술혁신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 정보화였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일자리의 상실, 즉 정리해고였다. 거의 완전고용 상태에 있던 실업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대에 들어서서 거의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의 실업률은 10%를 상회하는 대량실업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일단 눈여겨 봐둘 필요가 있는 것은 현재 대량실업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점, 그리고 정보화, 정보기술의 기업에의 도입이 정리 해고의 기술적 기관차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정보화는 포드주의 축적체제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자본주의가 새로운 축적체제로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정보화는 그런 한에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자본에 의해 추동된 자본주의 내에서의 생산력의 변화이다. 정보화의 역사적 성립과정의 분석을 통해 그것의 자본주의와의 연속성을 밝힘으로써 허버트 쉴러, 데이비드 하비 등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서의 정보사회론에 대해 반대한다.

  

이렇게 해서 정보화에 대한 논의는 산업주의 내지 자본주의와 단절이냐 연속이냐를 둘러싸고 두 입장으로 대립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정보사회비판론자들에 따라 결국 정보화는 자본에 의해 추동된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그것이 자본이 축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새로운 성격의 생산력으로서 그 자체 논리 안에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를 넘어서 나갈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할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을 수는 없을까? 이 문제를 검토하기에 앞서 일단 맑스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4. 정보화와 사회주의

  

맑스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주의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원칙들만이 {고타 강령 초안 비판}외에 여러 글들에서 산발적으로 제시되었다. 대개 사회주의 하면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와 계획 경제를 연상한다. 그러나 맑스의 사회주의 이념은 철학적 측면에서 시작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자리에서는 이념의 모든 측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다만 정보화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몇가지 측면만을 고찰한다.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회는 노동 해방이 실현되는 사회다. 그런데 노동 해방이란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선언}에 한 구절,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론을 단 하나의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 사적 소유의 철폐."({선언}, 413)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사적 소유의 철폐이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사회화로 노동 해방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노동 해방은 다양한 내용들의 충족을 필요로 한다. 그 중 한가지가 {자본론} 3권에 피력되고 있는데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맑스는 여기에서 '자유의 왕국'과 '필연의 왕국'이란 대비되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인간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한다. 맑스는 이러한 욕구 충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이 해야만 하는 노동,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을 필연의 왕국이라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를 상징하는 '자유의 왕국'은 바로 이 필연의 왕국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자유의 왕국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필연의 왕국, 즉 노동 시간이 줄어야 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근본조건이다"(Das Kapital, III : 823) 이렇게 맑스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노동해방의 한 요소로 꼽고 있다. 그리고 이때 노동 시간의 단축을 위한 객관적인 전제가 생산력의 발전이다.

  

그렇다면 정보화란 생산력은 노동해방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 것인가? 그것은 사유재산의 철폐와 노동시간의 단축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에 정보화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추적하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리프킨은 많은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정보화가 생산과정의 자동화, 정보화를 통해 생산직뿐만 아니라 사무직에서까지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능 기계가 무수한 과업에서 인간을 대체하면서 수많은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만들고 있다."(Lifkin, 21) 농업에서 트랙터가 우마를 완전히 구축했듯이, 자동화도 노동자들을 공장으로부터 구축할 것이다. '노동자 없는 세계'로의 길이 열리고 있다.

  

이렇게 공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다니엘 벨은 3차 서비스 부문에서의 흡수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리프킨은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지금까지는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가 다른 일자리의 창출을 통해 해소되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리프킨에 따르면, 정보기술에 입각한 공장 자동화가 갖는 인간 노동력 대체 효과는 엄청나다. 실례로 일본의 캠코더 제조회사인 빅터 사에서는 이전에 150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지능 기계와 로봇이 도입되면서 두 사람만이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처럼 막대한 대량 해고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해고된 노동자를 흡수할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정보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실업은 더욱 확대되어 나갈 것이다.7)

  

리프킨은 이런 정보화의 추세를 전망하면서, 만일 현재의 사회적 제 조건들이 계속 유지될 경우, 전세계적으로 사회 정치적 격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만일 하이테크 혁명으로 인한 거대한 생산성 향상분이 공유되지 않고 기업, 주주, 최고 경영자, 출현하고 있는 하이테크 노동자들에게 전유된다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격차는 전세계적인 사회 정치적 격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Lifkin, 33) 지금까지 서구의 동향은 리프킨의 이 지적을 어느 정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미국은 5%가 넘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이 가져온 외적인 성과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경제적 수준은 경제적 호황 속에서 더 악화되었다. 전보다 못한 직종에 재취업해야 했고, 실질 소득이 감소되었다. 경제 성장의 열매는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중들의 저항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잦아지고 있고, 유럽에서는 그 동안 국가로부터의 해결을 기대하던 실업자들이 '실업자 동맹'을 결성하고 있다. 앞으로 이 추세가 계속되면, 대중들의 저항은 더욱 격렬해지고, 대규모화될 것이다. 사회적 갈등의 객관적인 요인들이 자라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대로 나간다면, 20세기초가 혁명적 격동의 시기였듯이, 21세기초도 그에 못지 않은 사회적 갈등의 시기가 될 것처럼 보인다.

  

대량실업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는 것인가? 정보화는 더 적은 것을 갖고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성의 막대한 향상을 가져온다. 또한 정보화는 생산과정에서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효과도 갖고 있다. 이것은 정보화는 노동시간의 감축을 의미한다.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극히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먹고 살수 있는 경제적인 재화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맑스가 그렸던 데로 필연의 왕국, 즉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물적인 토대가 마련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의 구체적인 방안은 노동자들 사이에 노동시간을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량실업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다.

  

정보화는 노동시간의 단축의 가능성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리프킨의 주장을 따른다면 정보화에는 '사적 소유의 철폐'의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 리프킨은 정보사회가 초래하게 될 사회적 문제들은 자본의 이윤 실현과 시장에서의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체제 내에서는 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적 연대의 사회원칙에 입각한 '탈시장 시대'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동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제3의 힘인' '제3부문'의 활성화를 제시하고 있다. "제3부문의 부흥 및 변형 가능성과 이것을 활기찬 탈시장 시대의 창조를 위한 견인차로 이용할 가능성을 신중하게 탐색하여야 한다."(Lifkin, 316)

  

정보화는 이렇게 해방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재 그것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대량실업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자본의 사회적 헤게모니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가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 삶의 발전을 자유의 왕국을 획득하는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없는가는 힘의 관계에 달려 있다. 자본의 사회적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한, 정보화는 리프킨이 경고한 '노동자 없는 세계', 만성적 대량 실업의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대중의 정치적 힘이 결집되어, 자본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을 때에, 정보화의 역사적 물줄기를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역사적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적 사회 이론의 창출이 요청되고 있다. 맑스의 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의 역사적 완결판이 아니다. 그것은 19세기 중엽의 초기 혹은 고전적 자본주의란 역사적 지반 위에서 이를 부정하는 대안적 길을 추구하는 이념적 작업의 소산이다.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자본주의는 정보화란 역사적 단계로 이행해 가고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적 사회 사상을 마련하는 작업은 '정보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인간 해방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특히 20세기 후반 한국에서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적 운동은 지나칠 정도로 맑스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른 입장들을 진지하게 참조하지 못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현실 변화에 조응하여 맑스주의를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자체도 봉쇄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앞으로 대안적 사회 사상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해방적 상상력을 가동하는 것이 절실하며, 따라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대안적 사상들을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8)

  

마지막으로 {선언}의 두 번째 절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글을 마치도록 한다. 여기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원리는"계급들과 계급대립들로 이루어진 부르주아사회를 대신하여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결사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선언}, 421)라고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동독이 망한 후에 구동독 원로작가인 슈테판 헤름린은 이 구절을 "계급대립으로 성격지워지는 낡은 부르주아사회를 대신해서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개개인의 자유스러운 발전의 전제가 되는 공동체가 등장한다"라고 (송두율, 1995에서 재인용, 33쪽) 전혀 반대로 기억하고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는 현존 사회주의가 {선언}을 오독하고 있었음을, 다시 말해 사회주의를 전혀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에 대한 강력한 통제체제에 빠졌던 현존사회주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는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결사"임을 분명히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미 주>

 

1) 소련 성립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고찰 부분은 {교수신문}에 이미 게재되었던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재수록한 것임을 밝혀 둔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가장 객관적인 분석인 Predrag Vranicki, Marxismus und Sozialismus (1985, Frankfurt am Main)의 1-2장 참조.

2) 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졸고, ['구성체'에서 '문명'에로의 이행 ― 후공산주의 시대 러시아 철학의 주요 쟁점], {시대와 철학} 11호, 199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참조.

3) 유고 '프락시스' 그룹의 입장에 대해서는 Vranicki, Predrag, Marxismus und Sozialismus의 3장 1절을 참조.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소련 사회체제에 대한 규정은 졸저, Erneuerungsversuch und Ende der Sowjetphiloso-phie in der Spätphase der Perestroika의 5장 참조.

4) 예를 들어, 조지 리히트하임의 '후기 부르주아 사회', 헤르만 칸의 '후기 경제 사회', 머레이 북친의 '후기 결핍 사회', 피터 드러커의 '지식 사회', 랄프 다렌도르프의 '서비스 계급 사회' 등.

5) 서구에서 이러한 새로운 기술 혁신, 우리의 논의의 맥락에서 바로 정보화가 시작된 시기, 그리고 아울러 벨의 후기산업사회론이 발전된 시기가 다름아니라 70년대였다는 점을 일단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뒤에서 보게 될 정보화가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 이유에 대한 분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우리는 지금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하면서도 고질적인 실업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나아가 1970년대가 시작된 이래로 모든 산업국가들은 적정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1980년대에는 그것이 훨씬 악화될 전망이다."(Friedrichs, 1983, 30, 195 ; Schiller, 1984, 18에서 재인용)

7) 리프킨은 이와 관련하여 유럽의 한 최고 경영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 내게 2~3년만 기다리면 노동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직업이, 어느 도시에서, 어느 기업에서 수요가 발생하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현재 10%의 실업률이 쉽사리 20~25%에 육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Lifkin, 31) 그리고 이것은 남의 일만이 아니다. 현재 한국은 정리해고를 통한 대량실업의 전야에 서 있다. 그런데 IMF체제란 금융위기와 한국경제의 거품현상이 그 원인일까? 현재 한국을 엄습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근본적으로는 정보화란 자본주의의 발전적 추세에 기인한 것이다.

8) 서구의 다양한 대안적 사상들에 대한 논의로는 Boris Frankel, The Post-industrial utopians을 참고할 것.

 

>>참 고 문 헌<<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는 원본 제목과 번역본 모두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번역이 신뢰할 만한 때에는 번역본으로부터 인용하였다. 주를 달 때, 연도는 원본의 발간 연도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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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4 17:17 2006/07/2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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