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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3 / 학벌 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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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8 01:09:56

경향신문 미디어칸에 오른 아래 기사들을 보고 그냥 답답하기만 했다.

타이틀은 변했다. '한국의 고3'이었던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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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ㅈ고 이과 전체 1등 홍선화양(가명). 선화의 우등생 비결은 간단하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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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高3] “현 입시체제선 내 수업 강요 못해”
[한국의 高3] 자습학생 절반이 귀마개·이어폰

2006-11-06

아직도 학벌에 대한 얘기가 신문지상에 나오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현실.

조호연 사회부장은 위의 기사를 참고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추가하였다.

 



“학벌 지상주의” 이젠 깰 때다 (경향신문, 조호연 사회부장, 2006년 10월 29일 17:59:12)

  

교육학자 J 콜멘의 말은 틀렸다. 그는 “교육은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이 말은 최소한 한국의 고3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 비교육적이고 불공정한 공부방식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수능 잘 보면 대학 가서 미팅하고 못 보면 공장 가서 미싱 돌려야 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성적을 위해서라면 모든 게 용인된다. 수업을 빼먹고 학원에 가도 된다. 체육처럼 수능에 안 나오는 과목은 학교 차원에서 알아서 빼준다. 고3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교육적이라고 목청을 높여도 소용없다. 바로 고3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이 사회발전을 가져올 리 없다. 콜멘의 이론은 ‘교육은 대입을 위한 것’으로 수정돼야 한다.
      
호레이스 만의 이론도 한국에선 맥을 못 춘다. 한국의 교육은 ‘위대한 평등장치’가 될 수 없어서다. 이를테면 전교 1등은 만들어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한 과외와 학원 교습으로 창조된다. 얼굴 깎고 가슴 부풀려 미인 만드는 세태를 빼 닮았다. 한국 특유의 ‘공부 잘하는 시스템’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만 접근이 가능하다. 돈 없는 부모를 가진 학생들은 엄두를 못 낸다.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안 나오는 이유다. 사회 불평등이 교육의 불평등을 낳고 이것은 다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대입에 ‘올인’ 파행 고3교실물론 만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교육은 사회적 상승 이동을 촉진하는 수단’이라는 만의 교육관은 한국 교육현실에 부합한다. ‘수능 등급이 오르면 장래 남편 또는 아내 직업이 바뀐다’는 고3 유행어가 이를 웅변한다. 입시 후 고교에 나붙는 소위 ‘명문대 입학생’ 명단이 적힌 환영 플래카드도 그런 사례다. 만이 자신의 사후 2세기가 지난 뒤 동양의 한 나라에서 자기 이론이 실현되는 걸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유수의 교육학 이론들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적용되지 않는가. 한국의 고3 교실에는 ‘교육’이 비틀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육의 외피를 둘러 쓴 온갖 부조리가 횡행한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귀마개를 하고 이어폰을 꽂는 판에 교육이 온전할 리 없다. 다른 과목 공부를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무협지를 읽고 라디오를 듣기도 한다.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영어 단어 외우는 학생들을 위해 자기 과목 강의 목소리를 낮춰야 하는 교사들의 비애가 눈에 선하다. 이쯤 되면 고3 교실에는 ‘제자’도 없고 ‘스승’도 없다. 대학 진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절대적 명제 앞에 스승들은 침묵한다. 학생들은 ‘당연히’ 특권을 누린다.
    
‘대포자’(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도 고3 부조리극의 중요 주제 중 하나다. 고작 대학 진학을 포기했을 뿐인데, 교실에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고3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침마다 등교한다. 가방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래도 메고 와야 한다. 고3 1년은 그들에게 끝나지 않는 어두운 터널일 뿐이다. 방황과 불만과 열등감으로 가득찬 동굴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향해 자기들도 고3이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반향은 없다. 세상의 중심은, 고3의 중심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들 이것을 안다. 고3 교실의 병리현상이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냥 두면 곪고 썩을 것을 잘 알면서 환부를 도려내지 않는다. 모두 모른 체한다. 사회구성원 모두 ‘공범’이다. 그러면서 학교와 교사가 모든 것을 다 해주기 바란다. 이런 모순도 드물다.
    
고3 교실의 부조리는 이처럼 학교와 학생, 학부모, 사회가 공모해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학벌지상주의가 문제다. 어떤 대학을 다녔는가가 개인의 능력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한 고3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걸 깨야 한다. 개인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가 공부여서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모든 학생을 그대로 인정하고 대우하는 사회적 인식변화가 우선이다. 그런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그런 선행적 조치 없이 이동수업이나 3학년 2학기 수업조정 등 고3 커리큘럼을 변화시키는 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또다른 부조리가 나타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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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6 00:06 2006/11/0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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