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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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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10일 02:32 
  

아래 글에 따르면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량주의자가 되는군. 평등연대(해방연대라고 하나?) 사람들도 정말 서운해하겠다. 
  

이 텍스트에 기반해서 각 단락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게 되면 뭔가 그럴싸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걸 가지고 교육을 해도 되겠다. 그런데 원전을 읽으면 이렇게 되는건가? 
  

민주노동당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고 좌선회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제발 민주노동당의 튼튼한 좌측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뭐라고 잔뜩 썼지만, 이 글이 어떠한 실천적 함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글쓴이가 뭐라고 할지... 역시 민노당의 개량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려나. 아무튼 나름대로 흥미있었다. 
  

특히, 중간쯤에 "사회당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민주당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의 관점에 서서 토론해야 한다"는 언급은 최근의 사회적 합의주의 논란과 관련하여 곱씹을 만한 대목이며, 약간은, 아니 상당히 실용주의적이고,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는 전진 그룹 동지들에게 권하고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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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왜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는 더 진지하게 읽게 되었다. 

물론 아래의 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생각해볼 꺼리가 있지 않나 싶다. 
  

전위정당론은 질적 개념이지 양적 개념이 아니다. 전위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전위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전위정당은 이런 조직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중적 전위정당을 지향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 앞선다"는 것이다. 
  

전위는 대중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하여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진적 대중들을 전위적 지위로 끌어올려 지도의 위치를 갖게 하는 것이 전위적 지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야 한다.

 

레닌의 의식성에 대한 강조는 노동대중들의 자생적으로 분출해 나오는 투쟁을 경제주의적 투쟁의 한계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당건설에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능동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레닌은 이러한 불일치를 두고 훗날 자생성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의식성에 대한 강조를 두는 '막대 구부리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 다시 말해서 레닌의 언행에서 무슨 원칙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아마도 레닌의 저작들을 꼼꼼하게 읽었다면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같은 철학서조차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해야 제대로 본 것 아닐까. 
  

달라진 정치적 조건에서 볼셰비키의 조직형태는 비합법 조직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 내에서 비합법적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은 의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폭로하고, 분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합법 중핵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조직의 안정성이 유지될 때만이 공산주의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엄격한 비밀주의는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이다. 이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타도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비합법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공개적 조직은 조직관계를 전면 드러낸다. 하지만 조직관계를 전면적으로 적들의 수중 앞에 노출하면 할수록 사상적 자유는 오히려 제약될 수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활동의 공간이 열려진다는 것은 정권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내적 투쟁 역량이 성장하고 계급적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보장되는 것이다. 정권의 선의에 조직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조직 내적인 민주적 토론과정이 없는 지도부의 전술전환과 이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조직 내부에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합법과 비합은 단순히 조직의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내용의 차이다. 조직은 정치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조직 노선의 변화는 반드시 정치적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한사노당의 조직형식상의 변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신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노맹은 비합법 조직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입지가 약화되어 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동적 상륙전"으로서 사노맹을 해체하고 공개적인 이념정당을 추진했다. 사노맹의 조직 형식 전환은 개량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운동의 전략, 전술적 원리, 실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치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전위정당, 국가파괴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혁명의 핵심적 테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강령적 수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을 과제로 삼는 정치 세력들을 개량주의 노선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는 여부는 활동 방향과 태도의 문제이지 근본적 노선의 차이는 아니다. 어떤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혁명적 대중 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혁명을 하려는 것이 바로 개량주의와 구별되는 핵심인 것이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선전·선동하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의회주의 정치이다.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사회당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리충족된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자본주의의 대리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것은 사회당의 생활정치가 지역구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지구당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다. 일상적인 생활정치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반면에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는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노동자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행동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는 선거와 지구당이 아니라 노자간의 계급투쟁과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현장 내에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제기된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된 개량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자신감으로 작용하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세계노동운동의 어느 역사를 뒤져 보아도 제도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을 한 세력들이 스스로 군사, 행정, 의회, 사법 기구 등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파괴하고 혁명권력으로 대체한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시도한다면 굳이 집권이라는 계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무엇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집권과 대체권력의 창출 사이에 혁명이 없다. 혁명을 말하지 않는 대안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점진적 개혁에 머무를 뿐이다. 
  

자본가는 자신의 기업 내부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개별 잉여가치를 소유한다. 하지만 소련에서 관료는 전체 사회가 생산한 총생산물 중에서 관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소련의 관료가 생산물을 더 많이 분배받기 위해서는 총잉여생산물을 늘려야 한다.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고, 전세계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하는가 이다. 과거에 소련이나 동구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관료주의 타도와 사회주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소련과 동구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국가 내부에 경쟁에 제한되고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 계급론'에서 미하엘 마우케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 통일을 의미하는 한 말할 것도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본들의 경쟁을 원리상 제거하는 체제는 자본주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국가독점자본주의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총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단일한 자본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발생했지만 형식상 자본 위에 존재하는 자립적인 외양을 취한다. 
  

소련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은 자신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사용가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물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무기생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용가치를 위해서 생산되고 교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에 의해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 
  

소련에서는 비록 계획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었지만 가치법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생산이 규제된 것이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해서 생산량, 목표량 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무기경쟁을 가지고 외부적 경쟁이 소련 사회 내부를 규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의 해로 규정을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28년에 어떤 정치혁명이 일어났는지를 마찬가지로 답해야 한다. 지배계급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적 정치혁명을 했다는 말인가? 자기로부터의 정신혁명은 가능하지만 지배계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를 희생하는 생산력주의, 농민에 대한 수탈, 노동자 권리의 박탈 등은 노동자 국가의 타락과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혁명은 아니다. 
  

 관료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한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련은 국유화 계획화라는 사회주의적 형식과 대비되는 사회주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관료적 내용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터져 버리면서 소련의 몰락을 낳았다. 물론 소련의 몰락에는 이런 내적 모순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압박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고립정책은 내적 모순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사회주의적 계획도 노동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스탈린은 중공업을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농민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통해서 강제 수탈했다. 노농동맹의 정신은 사라지고 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수치에 급급해서 농민을 원시적 축적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먼저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선의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식 생산력의 발전은 대중의 물질향상이 아닌 발전을 위한 발전이라는 관료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생산력주의를 독려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선성장 후분배라는 성장우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파리코뮌 당시의 포위와 고립에 비하면 소련에서의 제국주의의 포위와 고립은 훨씬 더 극복하기 쉬운 고난이었다. 파리코뮌처럼 제국주의의 포위와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같은 어려움들은 오히려 소비에트의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이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죽어간 새로운 전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극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스탈린은 공포정치를 통한 극도의 억압과 관료적 효율성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선다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이유를 들어 수많은 학살극을 벌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의 범죄이다.  
  

볼셰비키는 제국주의의 간섭과 내부의 반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1919년 8차 당대회에서 조차도 분파를 금지하지 않았다. 고도로 집중된 통일성을 발휘해야 하는 17년 10월 혁명 직전과 내전 이후 혼란기인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분파는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 내에서 경향적 흐름은 보장됐고, 이견자들의 문집발행 권리와 당중앙의 배포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상투쟁의 자유를 보장했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는 분파주의가 통제한다고 막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분파의 활동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활력 있는 당을 만들면서 분파가 분열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볼셰비키는 내부 분파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면서 성장해 왔다. 대신에 레닌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라는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통해 행동의 통일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는 토론의 자유는커녕 동지에 대한 숙청만 있었다. 당 내부의 이견을 가지고 동지들을 학살하고 숙청한다는 것을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소련 사회는 소비에트의 실질적인 부활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의 고양 등을 통해 외적 고립을 내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가 되어야 했다. 혁명적 주체 없이 혁명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 후르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혁명적 주체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관료적 개혁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척결이 아니라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의 새로운 양산에 불과했다. 
  

러시아에서는 관료와 자본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했다. 이것은 신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기노조, 연전노조, 교수노조 등이 생겨나면서 전문가 집단들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관료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등장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국가 운영의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은 사회주의 계획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백철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활동가)

1. 청산별곡(淸算別曲) 
  

  91년 소련의 몰락 이후에 남한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청산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소련의 몰락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색 이전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은 낡은 것이고,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어야 할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들에게는 스탈린주의의 문제가 곧 레닌주의의 문제로 등치되었고, 위대한 러시아 혁명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조산아(早産兒)에 불과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급기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의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것은 별반 새로운 것이 아니고 개량주의의 하나의 조류를 재탕하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이병천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전반전 위기의 집중적 표현'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위기'를 들면서 "우리 시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과제는 시민사회내의 민주적 헤게모니의 획득과 이를 통한 새로운 시민사회의 형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계몽된 전위만이 역사의 근원적 운동법칙, 공산주의로의 필연적 운동법칙과 방도를 알 수 있고, 또 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관념적·폐쇄적 확신으로부터 계급의 진리, 사회와 역사의 진리의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위당의 독재라는 주장이 나오며, 대중 위에 군림하는 전위당의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전위당론이 당독재로 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노자간의 계급 모순으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중층화, 다층화되었다고 하면서 성, 인종, 환경 등 시민사회 운동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현재 이른바 좌파 운동 진영 내에서 주장하는 '복수적대에 기반한 차이와 연대의 정치', '일괴암주의', '사회적 노동자'라는 개념들은 바로 이러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에 기반한 내용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수식어의 화려한 외관을 살짝 뜯어보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적대적인 실체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에 대해 '구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며, 구좌파의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구좌파'를 모든 것을 노자간의 계급문제로 돌려 버린다는 계급환원론으로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자동붕괴론, 경제결정론으로 화석화하여 무덤으로 끌고 들어갔다. 
  

  신좌파의 불온한, 빈곤한 상상력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 인종, 인권, 생태 등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이윤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과 분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임노동에 대한 착취를 하면서 재생산되는 사회다. 사회 각 영역에서의 모순들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착취질서를 폐지하는 운동과 결합되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부문운동의 고유의 영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모순을 중심으로 하여 굳건하게 결합시키는 것이다. 여성의 문제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각종의 차별, 억압과 어떻게 분리될 것이고, 인종의 문제가 이주노동자의 계급적 문제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 것인가? 파시즘에 의한 인종청소와 제국주의 전쟁도 자본주의의 폭력적, 반동적 결과물들이다. 자본주의의 각 부문에서의 문제를 그 부문의 문제만으로 한정시키는 것이야말로 환원론인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을 주장했다면 왜 그토록 노동자 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행동과 전위의 의식성을 강조했겠는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으로 비판하는 자들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역사적 분석인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보라! 물적, 경제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 계급간의 투쟁이 당시의 구체적인 법률적, 정치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풍부하고 긴장감 있게 분석하고 있지 않는가! 
  

  청산주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영역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으로부터도 터져 나왔다.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진보적 노동조합운동론, 국민적 노동조합 운동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투쟁일변도의 전투적 조합주의 노선은 국민대중과 노동대중으로부터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적 관점에서 국민경제와 국민국가 및 시민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책임"지는 노동운동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전노협의 전투적 노동운동 노선 대신에 노사간의 사회적 파트너 쉽에 의거한 협조적 노사관계 구축을 호소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이후 사회적 조합주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으로 연이어 등장하게 되면서 현재는 사회적 합의주의로 포장된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구조조정 시 노조의 참여 등 대중운동 영역에서 노사협조주의의 직접적인 기반이 되었다. 
  

  한편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인민노련, 삼민동맹,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비위를 구성하여 합법주의적, 투항주의적 행보를 계속하였고, 사노맹은 사회주의 합법화를 주장하면서 합법주의, 개량주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 진영의 청산주의적 움직임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의 직접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결국 91년 소련의 몰락 이후에 남한에서 등장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비합법적 노동운동의 청산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론적, 조직적, 실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개량주의의 삼두마차가 되었다. 
  

  남한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사회주의의 청산별곡(淸算別曲)이 울려 퍼지는  동안 진지하게 이론적, 실천적 모색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치열한 모색을 통하여 소련의 몰락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원리와 전통으로부터 일탈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현재 자본주의의 모순은 오직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과학적 인식으로 바라볼 때 구체성을 띠고, 그것의 모순 극복은 자본주의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건설 위에서만 가능함을 확신하게 되었다.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청산주의적인 흐름에도 굴하지 않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전통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은 아직 굳건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비합 사회주의자들은 고립분산적으로 존재하면서 대중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상황을 절대화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식으로 논쟁에 임하는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패권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며 이러한 패권주의적 태도는 부르주아의 힘에 굴복할 패배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회당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민주당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의 관점에 서서 토론해야 한다. 
  

2. 전위정당론과 비합법주의의 옹호

1) 전위정당론은 대중과의 선진적인 결합방식이다 
  

  전위정당론에 대해서 마치 소수의 결사체의 음모적 조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위정당을 비판하는 세력들 중에서는 러시아 볼셰비키가 소수의 블랑키즘적인 테러로 짜르전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성공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 혁명의 대중적 성격을 왜곡하고, 혁명의 정당성을 비난하는 세력들이 자주 사용하는 악선동 중의 하나다. 
  

  전위정당론은 질적 개념이지 양적 개념이 아니다. 전위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전위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전위정당은 이런 조직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중적 전위정당을 지향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전위정당이었지만 1917년 혁명 이전에는 8만 여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대중적 전위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소비에트 내에서 노동자 다수의 지지와 농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전까지 혁명은 일정에 올려지지 않았다. 
  

  흔히들 러시아 혁명은 기동전적인 국가 탈취 전략에 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셰비키를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운동 세력들과 노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불굴의 투쟁을 통해 당과 소비에트라는 굳건한 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면 기동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1년 혁명 이후 레닌은 이탈리아 공산당(PCI) 지도자에게 "볼셰비키는 1000만이 넘는 군대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보다 더 러시아 혁명의 대중적 성격을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비난하는 세력들은 그람시의 진지전을 예로 들면서 시민사회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람시의 진지전은 1920, 21년 부분적인 무장공세를 통해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험적인 공세를 계속하였던 독일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모험주의 세력들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또한 1928년 파시즘의 공세에 대해 사민당과의 통일전선전술을 거부한 스탈린주의 제3 코민테른의 초좌익적인 오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렇게 진지전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혁명 활동을 수행할 당시에 전위당과 국가권력 타도의 문제에 모든 전력을 기울였음을 볼 때 그람시가 기동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람시의 혁명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그람시에게 기동전은 이미 전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모험주의와 초좌익주의에 대항해 통일전선전술을 주장하기 위해 진지전에 대한 일면적인 강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위는 계급의 일부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 앞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위는 계급의 일부이지만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이고 계급 투쟁의 전반을 이끌고 조직하는 중심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 관계는 무차별적인 이해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전진에 기여하는 방향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위는 가장 헌신적이고 올바른 전략적, 전술적 지도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권위와 지도력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위의 지도에 대해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비판하는 동지들이 많다. 그러나 전위가 가지는 권위는 강요의 산물이 아니라 대중의 선물이다. 지도와 피지도는 상명하달이나 명령 식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에 있다. 지도하기 위해서는 지도받아야 한다. 대중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서는 대중을 지도하지 못한다. 
  

  전위는 대중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하여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진적 대중들을 전위적 지위로 끌어올려 지도의 위치를 갖게 하는 것이 전위적 지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대중의 무의식,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 이기주의에 기초해서 착취질서와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노동자 대중들에게 전위당의 지도력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전위당의 지도를 이미 있는 것으로 하고 대중을 지도하려 한다면 아무도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법률적 강제와 강압적 지시로 전락하면서 왜곡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고 "코민테른의 도장이 찍힌 당원증의 힘만으로 노동계급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공산당의 지도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대된다. 공산당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반혁명 분자"이다. 노동자는 사전에 맹세코 공산당 조직을 신뢰해야 한다. 당의 목적과 계급의 목적을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당 관료는 계급대중에게 법령을 하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노동계급이 미리 텔만과 레멜러의 지도력을 인정해야 한다면 당이 역사를 통해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해 바쳐야 할 모든 노고는 다 무슨 소용인가?  (트로츠키, 반파시즘 투쟁) 
  

  트로츠키는 이러한 관료적 지도를 대중에 대한 최후 통첩주의라고 비판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당독재로의 변질은 전위당 이론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전위당 이론이 무너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인 이병천은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기한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바탕을 두고 전위당 이론이 결국은 대중 위에 군림하는 당독재로 전환했다고 비판한다. 
  

  레닌의 의식성에 대한 강조는 노동대중들의 자생적으로 분출해 나오는 투쟁을 경제주의적 투쟁의 한계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당건설에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능동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레닌은 이러한 불일치를 두고 훗날 자생성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의식성에 대한 강조를 두는 '막대 구부리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2) 조직형식은 정치적 내용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는 비밀주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정치적 통일성과 조직적 일치를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물론 대중운동의 성장에 따라 노동조합에서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의회활동 등 공개적, 합법적 활동에 대한 비중도 늘어 갔다. 이후 볼셰비키는 공개적, 합법적 노동자당을 만들자는 청산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현시기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조직구조의 형태는 합법·반(半)법의 노동자조직의 네트워크로 둘러싸인 당세포의 총화로서의 비합법 당이다"라고 주장했다. 볼셰비키에게 합법적 활동은 비합법의 내용을 합법적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전파하는 것이다. 
  

합법조직은 비합법 핵의 사상을 대중 사이에서 전파하는 거점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종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조직 형태와 관련해서는 비합법이 자신을 합법에 '적응'시킨다. 그러나 우리 당의 사업 내용과 관련해서는 합법활동이 비합법 사상에 "자신을 적응시킨다".(레닌, 합법정당론) 
  

  달라진 정치적 조건에서 볼셰비키의 조직형태는 비합법 조직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 내에서 비합법적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은 의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폭로하고, 분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합법 중핵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정치적 제약은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체제가 급격하게 위기에 빠져들 때 국가권력은 중립성과 동의와 설득이라는 외관을 벗어 던지고 무차별적인 탄압을 가해올 것이다. 
  

  조직의 안정성이 유지될 때만이 공산주의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엄격한 비밀주의는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이다. 이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타도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비합법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공개적 조직은 조직관계를 전면 드러낸다. 하지만 조직관계를 전면적으로 적들의 수중 앞에 노출하면 할수록 사상적 자유는 오히려 제약될 수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합법주의자들은 남한의 정치조건이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변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합법주의 노선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열려진 정치적 공간은 비합법적인 정치적 내용을 공공연하게 선전·선동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지는 것이지 합법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스스로도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주의에 대한 용인은 그것이 전혀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사민주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운동의 제도화를 추구하여 분출하는 계급투쟁을 가로막고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회주의 활동의 공간이 열려진다는 것은 정권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내적 투쟁 역량이 성장하고 계급적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보장되는 것이다. 정권의 선의에 조직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많은 동지들이 비합법 조직에 비해서 공개적 조직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공개, 비공개라는 형식이 민주주의의 관건은 아니다. 사회당 혁신 논쟁에서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처럼 당 내에는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있었다. 하지만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에는 이 노선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혁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은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조직 내적인 민주적 토론과정이 없는 지도부의 전술전환과 이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조직 내부에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합법과 비합은 단순히 조직의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내용의 차이다. 조직은 정치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에서 황광우는 합법적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비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달라"고 주장했다. 사노맹의 사회주의 합법화 노선에 있어서도 이러한 논리는 유사하게 적용됐다. 이것은 조직노선을 단순히 상황의 포로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한총련의 합법화 구걸을 보라! 
  

  조직 노선의 변화는 반드시 정치적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한사노당의 조직형식상의 변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신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노맹은 비합법 조직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입지가 약화되어 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동적 상륙전"으로서 사노맹을 해체하고 공개적인 이념정당을 추진했다. 사노맹의 조직 형식 전환은 개량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들이 합법조직으로 전환하여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이후의 역사적 진행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3. 과정으로서의 조직 건설론에 대한 비판 
  

1)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과 계급좌파,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계획으로서의 조직건설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이다. 조직건설은 강령적 수준의 사상적 통일을 기반으로 하면서 이에 부합하는 인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한다. 물론 이런 수준의 조직 내에서도 전술적, 개별적 수준에서의 일치는 현실 투쟁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조직 내외적인 논쟁과 실천의 경험을 통해서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획으로서의 조직 건설이다. 
  

  노힘은 비제도적 투쟁정당에서 활동가 정치조직을 주장하고 있다.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전형적인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론이다. 노힘은 '정치적 재조직화'라는 글에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라는 테제를 우리가 인정함과 동시에 공통의 지향태로서의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인정한다면 공통의 지반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지반이 활동가 정치조직의 틀 속에 묶일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노힘은 그것을 '어항론'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일단 '하나의 어항에 모든 고기를 모은다'에서 시작한다. 그 속에서 각각의 정파들이 내세우는 조직노선·정치노선상 공개적인 사상투쟁을 벌여 나가고, 동시에 대중적인 공동 투쟁을 통해서 계급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치조직을 건설하겠다는 것이 새로운 조직건설 방법론의 핵심이다. (노힘, 정치적 재조직화) 
  

  이것은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공동투쟁체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조직화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공통의 지반으로 인정하는 수준에서 하나의 조직적 틀로 묶일 수 있다면 이 어항에 들어오지 못할 물고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 활동가들의 대부분도 이러한 공통의 지반에 동의하고 있다. 하나의 어항에 메기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으면 미꾸라지는 잡아먹히고 종국에 어항은 깨지고 말 것이다. 
  

  노힘은 "활동가 정치조직은 노동자의 힘의 입장에서는 당건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조직 건설 방법론에 기초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힘의 새로운 조직 건설 방법론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대중조직론(PMO) 노선의 유사한 재판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자각되어 가는 선진노동자로 구성되는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민주집중제를 지향하는 단일 규약을 갖는 조직이다. PMO는 노조와 질적으로 다르지만 이것이 자체 발전하여 전위조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조직론 팜플렛, 정치적 대중조직론) 
  

  PMO노선은 결국 전위조직도 대중조직도 아닌 어정쩡한 조직 형태를 낳았다. 물론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조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현장연대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것은 노힘의 조직 건설이 절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직건설에 있어서 노힘의 무원칙한 팽창주의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러한 발상은 이후 또 다시 조직 내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많다. 
  

  노힘은 기간 강령적 수준 하에서의 노선적 통일 없이 조직을 구성하였다. 또 이념적 강령적 내용이 없다보니 조직 구성원의 자격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노힘은 대중운동에서 많은 고통을 받아 왔다. 조직 내에서의 노선상, 실천상의 차이는 크게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조직 내부의 규율상의 문제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 대중운동 내에서의 실천상의 오류에 대해서도 노힘은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정치적 통일성과 조직적 일체감의 약화라는 노힘의 한계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실제 노힘과 활동가 정치조직을 같이 하려고 하는 현장연대는 노동자 중심성을 부정하면서 복수적대에 기반한 모순의 다층적 구조를 주장하고 있다. 평의회를 주장하지만 당에 대해서는 일괴암주의라고 하면서 비판적이다. 과연 노힘은 이러한 느슨한 조직구성으로 어떻게 관료주의, 개량주의라는 대중운동의 질곡들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것인가?
  

2) 계급좌파, 사회주의 대중정당 
  

  사회당의 계급좌파와 이를 지지하고 나선 사회주의 대중정당론 역시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론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추상적 좌파에 대한 승인을 조직구성의 전제로 한다. 이러한 승인 하에서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구체적인 이념적 강령적 통일성 속에서 조직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에서 강령적 통일은 "당 건설 과정에서 사상이론가들이 결집하여 '사회주의 강령제정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가 '정기적인 내부토론으로 견해를 가다듬고 수시로 대중토론회를 개최하여 대중운동의 성과가 강령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강령 제정 사업을 전개"해 나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에서는 정치 총파업 조직, 전국적 정치신문 발행, 현장 활동가 양성과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과제를 무수히 많이 나열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조직적 성격과 사상적 내용으로 그 과제들을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해방'과 '연대'라는 추상적인 개념만이 제시돼 있을 뿐이고 강령제정위원회에서의 과제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물론 강령이라는 것은 혁명의 이론적, 실천적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조직의 무기이다. 강령은 단순히 이론적 나열이 아니다. 실천의 무기로 전화되지 못하는 이론적 분석을 우리는 강령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강령적 수준에서의 이론적 통일성이라는 것은 이념적으로 완성된 고정불변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운동의 전략, 전술적 원리, 실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치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전위정당, 국가파괴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혁명의 핵심적 테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강령적 수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을 과제로 삼는 정치 세력들을 개량주의 노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의회주의·합법주의·개량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구별시켜 주는 핵심적 관건"으로 "대중운동의 성장·발전에 철저하게 복무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성장·발전 동력을 획득하는 노선"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단순히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는 여부는 활동 방향과 태도의 문제이지 근본적 노선의 차이는 아니다. 어떤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혁명적 대중 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혁명을 하려는 것이 바로 개량주의와 구별되는 핵심인 것이다. 
  

  강령적, 조직노선상의 통일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대중정당과 사회당의 계급좌파는 다양한 내부의 이념적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중심성 강조와 복수적대에 기반한 부문운동에 대한 강조, 국유화 계획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PT독재에 대한 승인과 무정부주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국가타도와 단절적 이행론에 대한 반대 등 상호 적대적인 정치적 노선이 혼합돼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과연 이러한 정치적 차이를 강령제정위원회에서 어떻게 하나의 정치적 강령으로 녹여낼 수 있는 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러한 화해할 수 없는 정치노선상의 차이를 단순히 단일 조직 내에서의 공동실천으로 묶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치를 절충주의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계급좌파를 제출한 안승천은 조직 구성의 원칙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론 사회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회당에서는 정식화된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과 마찬가지로 안승천은 "사회당의 강령은 한국의 사회주의자 그룹 대다수가 참가하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하여 과정으로서의 조직 건설을 주장 하고 있다. 결국은 "모여서 한번 해보자! 누가! 사회주의자가! 무엇을! 사회주의를!"이라는 동어반복적 결의 외에 정치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별로 없다. 
  

  사회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대개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라고 부르는 것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며 운동이야말로 나의 전부이다"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주장으로 귀결된다. 
  

사회당이 사용하는 '사회주의' 개념은 사회 모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 민중의 최대 요구의 총체적 표현이며, 현실을 극복해가기 위한 운동 그 자체다.(사회당,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사회주의 정치) 
  

코뮤니즘은 미래에 도래할 사회체제가 아니라 오늘의 행위 규범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 대한 지향',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교류의 원리', '돈, 조직, 명분 등 모든 물화된 가치보다 개인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덕' 등 코뮤니즘의 행위규범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정성훈, 청년 좌파의 성과와 패기로 독립좌파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자! 사회당이여!) 
  

  노동자 계급에 의한 자본주의 국가권력 타도와 정치권력 장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혁만이 남는다. 자본주의 "현실을 극복해 가기 위한 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한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를 극복해 나가는 개량주의 운동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의 수단은 각 부문 내에서의 투쟁과 의회장악이다. '오늘의 행위 규범'으로서만 제기되는 코뮤니즘은 단지 도덕성과 고매한 인격을 갖춘 인간형을 추구하는 사회당 식 품성론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내에서의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를 극복해 가기 위한 투쟁은 정치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와 굳건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미래에 도달할 사회체제가 아니라 오늘의 행위 규범"으로서의 운동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벽에 부딪혀 물질적 상태마저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회당이 가진 패기와 열정 그리고 순수성과 상관없이 "쓰디쓴 자본주의의 바다에 사회개량주의의 레모네이드 몇 병을 넣어 이 자본주의의 바다를 사회주의의 단물로 바꾸겠다는 베른슈타인의 생각"(로자 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만큼 공상적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계급좌파와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강령 연구와 실천의 과정에서 회피하거나 얼버무리고 있는 국가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국가의 문제 앞에서 "하나의 정치적 강령"은 사민주의와 혁명주의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결국 사회당과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계획으로서의 조직론이 제기한 최초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을 스스로 거부하게 된다면 강령제정위원회에서의 합의지점은 민주노동당에 비해 대중투쟁에 대한 상대적 강조는 있지만 선거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상대적 강조점조차도 선거에 직면해서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데 왜 따로 조직을 꾸리는가?" 라는 민주노동당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선거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또 다시 조직재편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4. 계급좌파와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합법주의다. 
  

  사회당 내에서의 혁신 논쟁이 제기된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대선에서 얻은 0.089의 득표율이다. 사회당 내부에서 혁신논쟁을 이끌고 있는 동지들 스스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참패가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통일좌파의 실패와 대통령 선거의 참패는 그 동안 쌓여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라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출마동지회(출동) 노선은 선거주의의 극악한 결과물이다. 2004년 총선에서 227개 전지역구에 후보를 내기 위해 고향 등 연고에 따라 하나씩 지역구를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출동노선이다. 그런데 정성훈은 출동노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하고 있다. 
  

셋째의 문제를 낳은 뿌리는 중앙당을 비울 테니 다른 좌파가 들어와서 대선을 주도하라는 「통일좌파」의 황당한 구상에 그 원인이 있다. 사회당의 투쟁 전통을 이론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그리고 가을 정세에서 주도적으로 투쟁하지 못한 것은 중앙당을 비우고 주요 간부들이 모두 지역구 사업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황당한 구상의 뿌리에는 227명을 채우는데 사활을 건 출동노선이 있다.(위의 글) 
  

  정성훈은 중앙당 사업이 약화되고 부문운동이 압살된 것 때문에 출동노선을 비판하고 있다. 출동 노선의 합법주의는 정당명부제 같은 "정치개혁의 대세를 거스르는 패배주의"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성훈은 선거제도의 개혁 요구야말로 합법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정성훈의 출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선거주의, 부문운동적 사고의 한계에 갇혀 있다. 
  

  사회당의 출동노선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의회진출에 모든 전략적 전술적 사고를 집중하는 개량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사회당 바깥의 명망가'에게 기댄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은 사회당의 의회주의가 낳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의회주의에서 제도정치권에 1석이라도 진출하는 것은 사활을 건 정치행위이다. 의회진출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활동하던 지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친인척을 중심으로 하여 인맥을 이용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어쩌면 의회주의 정치에 있어서는 이것이야말로 원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회당 내부의 혁신 논쟁에서 제기된 출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나온 본질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사회당은 혁신 논쟁에서 생활정치를 강조한다. 
  

여기서 생활정치란 민중의 삶과 호흡하는 정치활동을 말합니다…출퇴근길이나 이동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수시로 정치선전을 수행한다면,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정치문제를 화제로 삼으며 가볍게 토론을 벌인다면, 사회주의에 대한 간략한 선전과 연락처를 인쇄한 잘 디자인된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대중들에게 나누어준다면, 한마디로 선거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자연스럽게 정치선전을 수행한다면 사회당의 모습은 아주 달라지지 않을까요?(안승천, 계급좌파 2부)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선전·선동하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의회주의 정치이다. 대중은 여기서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당 정치를 경청하는 무대의 관객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사회당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리충족된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자본주의의 대리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것은 사회당의 생활정치가 지역구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지구당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다. 일상적인 생활정치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반면에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는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노동자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행동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는 선거와 지구당이 아니라 노자간의 계급투쟁과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현장 내에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제기된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된 개량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자신감으로 작용하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는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 같은 초보적인 개량마저도 허용하지 못하고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공세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반동성을 매시기 매순간 폭로하면서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계기를 통해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해야 한다. 이것은 출퇴근 길이나 이동 중에 우연히 만난 버스나 지하철에서 잘 디자인된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수행하는 일방적인 정치선전과 분명히 다르다. 파업이나 구조조정 반대 투쟁, 해고자 복직투쟁, 노동재해와 직업병에 맞서는 투쟁, 일상적인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과 인원충원 투쟁, 비정규직 투쟁 등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계기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단결을 고취시킨다. 
  

  사회당의 혁신논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개량주의 내의 개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개량주의의 우물 안'에서 벌어지는 혁신의 결과는 사회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없으며, 2004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득표와 의회 진출에 실패할 경우 또 다시 극심한 내부 혼란과 조직 분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회당의 계급좌파를 지지하는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면서 대체권력"을 주장한다. 
  

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새로운 폭발적 고양을 총체적으로 준비하고 선도해 냄으로써 새롭게 성장·발전하는 노동계급 대중운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력을 구축하고, 그러한 힘을 제도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 가능성을 가진 현실정치의 실체로서 위상을 확립한다.(양준석/오민규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발전전략에 대하여) 
  

  결국 이들의 집권전략은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가 아닌 국가의 활용론에 머무르고 있다. 대중투쟁에 대한 강조는 집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노동 계급 운동이 폭발적으로 고양된다면 그러한 힘은 제도정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정치를 철저하게 분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폭발적인 노동운동의 고양을 제도정치 영역으로 제한하여 집권으로 향하는 계기로 돌리려 하고 있다. 왜 노동자 투쟁의 폭발적 고양을 자본주의 체제로 가두는가? 노동자 계급의 폭발적 고양을 철저한 야당으로 제한했던 과거 러시아의 멘셰비키처럼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혁명을 반대할 것인가? 
  

  물론 이들은 "집권은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의 대안권력 창출'이라는 보다 원대한 목표를 향한 중간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장치를 대중들의 대안권력으로 '대체'시켜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노동운동의 어느 역사를 뒤져 보아도 제도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을 한 세력들이 스스로 군사, 행정, 의회, 사법 기구 등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파괴하고 혁명권력으로 대체한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시도한다면 굳이 집권이라는 계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여기서 비약을 하고 있다. 무엇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집권과 대체권력의 창출 사이에 혁명이 없다. 혁명을 말하지 않는 대안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점진적 개혁에 머무를 뿐이다. 결국 정치적 수사와 전투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변형된 합법주의에 불과하다. 
  

5. 개량주의와의 대적전선으로 혁명적 주체를 굳건히 세우자! 
  

  개량주의. 관료주의, 노사협조주의 반대와 전투적 노동운동의 부활을 부르짖던 현장조직 운동은 현재 끊임없는 운동적 타락을 보이고 있다. 전국적 현장조직 운동을 이끌고 왔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전국회의)는 현재 대중운동의 혁신은커녕 자신의 지친 몸을 끌고 갈 힘조차 갖지 못하고 힘겨워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는 전국회의로 대표되는 조직의 위기인 것이지 현장조직 운동 그 자체의 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전국회의가 지향했던 현장조직 운동의 강화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현장조직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 선진 노동자들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현장조직의 선거조직화와 현장조직 활동가들의 관료적 타락과 부패는 정치적 전망을 갖지 못하고, 사상적 무장을 하지 못했던 한계에서 비롯됐다. 
  

  정치적 전망이 없는 활동가들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투쟁이 전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운동의 원칙, 미래와 연결되지 못하는 눈앞의 이해를 추구하다 보면 실용주의와 조합주의가 자리 잡게 된다. 여기에 끊임없이 파고드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온갖 유혹과 탄압은 당장의 이익도 방어하지 못하고 현장조직 운동을 타락시켰다. 이것은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장 중심성은 현장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정치에 대한 배타적인 측면도 있었다.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현장조직 운동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미 부여를 했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이 빠르게 퇴락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지나친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를 현장 활동가들의 전적인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정치조직의 무능력과 전망 제시 실패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장조직 운동과 정치조직 운동의 결합이라는 것을 이유로 현장조직 운동을 정치조직의 하부단위로 인위적으로 재편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좌파 진영 일부에서는 현장조직의 정치적 분화를 이유로 이러한 분화발전론을 제기하고 있다. 우파진영에서는 민주노동자 전국회의에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영향을 가지고 있는 편집부 '여명'에서 현장조직의 민주노동당 노동위원회로의 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현장조직의 구성원을 정치조직의 구성원으로 할 것으로 제한하면 현장조직의 대중적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그것은 결국 정치조직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뿐이다. 우리는 이에 맞서서 현장조직 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정치조직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현장조직 운동의 대중성을 강화하고 계급성을 고양시켜야 한다.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개량주의와 맞서 싸우면서 현장의 진지를 강화하고 현장에서 사회주의의 선진적 주체를 새롭게 조직해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강령적 수준에서의 사상적 통일성의 확보와 조직적 무기를 확보할 수 있는 공동의 내용과 실천을 부여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활동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그것을 하기 위한 관점과 태도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실패가 혁명적 정치를 저절로 부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현장의 붕괴와 실리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선거주의, 관료주의를 강화한다. 현재 대중운동에 있어서 관료주의와 실리주의, 협조주의는 개량주의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온갖 기회주의적 조류들을 물리치고 현장으로부터 대중운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투쟁과 실천투쟁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대중운동 내에서의 공동활동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개량주의라는 이유로 공동활동을 거부하게 된다면 그것은 종파주의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는 대중들에 대한 기권이 된다. 
  

  우리는 대중운동 내에서의 공동 활동에 있어서도 민주노동당이 왜 일관되게 대중운동을 지도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을 타협적으로 끌고 가는데 일조하는 지를 공동활동을 통해 폭로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철회가 부르주아 정당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세력들에 대한 지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노힘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제도권 내에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성과로 바라본다. 
  

'비제도영역'에서 정치-사회운동의 '정치적-조직적 구심'을 건설하는 일이다. 이 조직의 구심은 무엇보다 사회운동적·대중적·계급적 정치조직의 성격을 지니며, '제도영역'의 진보정당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대중운동의 성장과 계급투쟁의 진전을 위해 서로 '억제'하는 관계가 아닌 '상승'의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대중운동의 영역에서는 '경쟁'의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제도영역'에서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위치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한다"(강동진, 좌파여! 새로운 정치운동을 조직하자!) 
  

  노힘은 비제도 영역, 민주노동당은 제도영역에서의 '상승'의 관계를 갖는 '새로운 정치운동'은 양날개론의 변형된 재판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노힘은 제도영역에서의 민주노동당의 필요성과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제도영역'에서의 '상호보완' 관계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현장투쟁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투쟁을 파괴하면서 진행된다. 자본주의 내에서 대안을 찾는 개량주의는 관료주의의 온상이 된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궁극적으로 노사협조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조직적,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혁명 정당을 건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반대를 외치는 많은 정치조직들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조직적 틀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민주노동당과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활동하는지는 의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으로 독립된 혁명적 주체를 새롭게 발굴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독립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본의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도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로 인해 이에 맞서는 노동자의 계급투쟁도 일상화 되어 있다. 하지만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은 개량주의, 관료주의 지도부에 의해 압살당하고 있고,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투쟁할 수밖에 없는 계급투쟁의 객관적 조건과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는 주체적 역량의 괴리를 채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전국적 노동자 투쟁전선을 형성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조직해야 한다. 현장을 통한 전국적 조직화의 중심은 대공장이다. 물론 이것은 중소 사업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주의자의 역량으로 볼 때 전략적 지역과 공공, 금속의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해서 거점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대공장 사업장들은 노사협조주의자들과 관료주의자들이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선진 노동자들의 조직인 현장조직조차도 관료주의와 협조주의적 영향을 받으면서 대중적 신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공장 내에서의 활동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서는 안된다. 
  

  대공장의 혁명적 강화는 노동운동 전반을 강화하고 자본의 거점을 약화시키는 중심 고리의 역할을 한다. 자본의 노동의 유연화는 비정규직의 확대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99년부터 대중적으로 분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에 강력한 투쟁정신을 불어넣었지만 정규직과의 연대의 실패, 현장 조직화의 실패 등으로 인해서 대부분 패배로 돌아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공장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새롭게 투쟁이 분출해 나오고 있다. 
  

  대공장 내에는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1만 5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일 공장에 밀집해 있고, 수만에 달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대공장 내의 선진 노동자 운동은 무수한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투쟁과의 강력한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대공장 운동의 전투적 강화는 이러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굳건한 연대의식에 기초하여 자본에 대항한 계급적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자본은 최근에는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수백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전산업에 걸친 비정규직의 확대에 이어 자동차 업종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확대될 것이다. 산업전반에 걸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 이주노동자들과의 국제주의적 연대의 실질적인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편협한 조합주의나 실리주의로 노동자의 실질적인 연대전선을 구축할 수는 없다. 
  

  남한 내에서 선진 노동자들은 그 동안 '객관적 현실의 변화'를 근거로 한 정치조직들의 우경화와 인텔리 혁명가들의 거듭되는 배신으로 인해서 정치적 전망을 상실하고 이른바 '바깥의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보여 왔다. 하지만 떠날 곳 없는 현장 활동가들은 객관적 현실의 변화 이전에 변하지 않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부딪히며 현장을 꿋꿋이 지켜 왔다. 그들에게는 오직 '현장만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정치조직들의 대중적인 활동은 현장 활동가들에게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현장의 선진 활동가들은 "현장과 사회주의 정치의 굳건한 결합만이 희망이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좌파 동지들에게 지구당과 선거일정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주의 활동이 아니라 현장 내에서의 계급투쟁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하나가 될 것을 호소한다. 그 길에 남한 대중운동의 성장과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투쟁! 
  

「보론」과연 소련은 국가자본주의였는가? 
  

  남한에서 IS가 소련 몰락 이후에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이후에 몇몇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지지하고 나서고 최근에는 노힘의 채만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 논쟁의 긍정성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사회주의 사회의 원리적인 상을 제시하였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남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에서 제기하는 국가자본주의 논쟁은 논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도식적이고 박제화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탈린주의에 대한 도덕적 분노가 과학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제기된 국가자본주의 논쟁에서도 소련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상당 부분이 도덕적 분노에 머문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그 글의 상당 부분은 소련 사회에서 발생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사회주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분노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인텔리적 관념과 공상의 소산이라고 본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정당한가? 우리는 관념론자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의 사회주의는 그렇게 왜곡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사회주의의 왜곡과 변질에 맞서 제대로 투쟁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채만수와 노힘의 스탈린주의 옹호를 전면 비판한다!"는 글은 소련에서 노동자가 아래로부터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계획에 참여하지 못한 점, 관료(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 유럽혁명과 중국혁명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스탈린의 좌우익 편향 등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소련이 어떻게 사회주의적 내용을 가지지 못했다는 분석만 있을 뿐 자본주의였다는 예는 들지 못한다. 
  

관료는 자본가인가? 
  

  노동자가 실질적인 계획의 주도자가 되지 못하고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인 계획을 했다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증명이 되지는 못한다. 관료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는 자본주의적 착취는 아니다. 아니 착취라는 표현이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부가된 가치로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수탈한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착취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다. 
  

   소련에서 관료의 수탈은 타관료와의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살아 남고 자본을 증식하기 위하여 개별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련에서 관료는 계획된 생산량을 초과달성함으로써 관료적 유능함을 인정받고 자리를 보장받거나 출세를 한다. 관료가 자본가 계급이라면 경쟁에서 밀린 관료의 몰락과 관료의 독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한 관료가 계획된 생산량을 채우지 못해서 관료적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면 다른 관료로 대체되지 다른 경쟁력 있는 관료가 원래 관료가 있던 산업부문을 과점 또는 독점하지는 못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기업 내부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개별 잉여가치를 소유한다. 하지만 소련에서 관료는 전체 사회가 생산한 총생산물 중에서 관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소련의 관료가 생산물을 더 많이 분배받기 위해서는 총잉여생산물을 늘려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사적으로 생산한 생산물의 상호교환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물론 이 말은 교환과정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총잉여생산물이 늘어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가의 관심은 오로지 개별자본을 늘리려고 할뿐이다. 
  

  관료는 자본가 계급이 아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글을 보면 스탈린과 김일성 등이 자본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관료라는 표현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자본주의 논쟁에서 관료의 지위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스탈린의 좌우익 편향은 그가 자본가였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좌우익 편향은 원칙에서 일탈하고 전술적 오류 등에서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오류다. 레닌이 좌익 소아병에서 비판한 독일공산주의 노동자당은 자본가였는가? 이런 식의 논리적 비약이 국가자본주의 주장 글에서 발견된다. 이런 식의 비약이라면 남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인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세습이 가능한가! 독점자본주의에서 왜 독점을 제한하는 독점금지법이 있는가!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본질로 하는 국가가 왜 복지정책을 쓰는가! 
  

  이점에서 남한에서 발표된 국가자본주의 주장을 보는 것보다 제4인터내셔널의 만델과 SWP의 크리스 하먼, 캘리니코스, 토니클리프, 데릭하울 등의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과학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도움이 된다. 물론 기본적인 주장은 남한 내에서 국가자본주의 논쟁과 동일하지만 논리적 사실 규명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남한의 글은 주장이 강하지만 그 글들에서는 논리적 예증이 강하다. 
  

  크리스 하먼은 만델의 타락한(왜곡된) 사회주의 주장이 그 논리적 귀결로 소련이나 동구에서 노동자들의 아래로터의 투쟁에 끝까지 지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만델은 소련사회가 사회주의로부터 일탈을 했지만 17년 혁명의 성과로 남아 있는 국유화 계획화라는 소유관계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만델은 발끈하면서 제4인터내셔널은 동구와 소련에서의 모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지지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만델의 반발은 유효적절하지 못하다. 크리스 하먼은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라고 본다면 이 사회가 자본주의에 비해서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적 봉기가 관료적 통치 계층의 지배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고, 오늘날 소련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부활'을 낳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력증에 이르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중립적으로 판단하는 IS의 전술적 오류를 담고 있다. 
  

  남한에서 IS(물론 SWP도 마찬가지겠지만)는 소련의 몰락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이 소련사회에 대한 환상을 접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대단히 무책임한 주장이다. 소련에서 사회주의의 내적 혁신이 불가능해지고 소련이 몰락하면서 전세계 부르주아 진영은 엄청난 계급적 자신감과 힘을 가지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가중했다.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고, 전세계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하는가 이다. 과거에 소련이나 동구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관료주의 타도와 사회주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소련과 동구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모든 악의 주범이다. 민주적인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 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 대부분이 가슴속으로 공감하는 구호였다. 소련이 몰락한 이후에 노동자들은 실업 등 자본주의적 모순이 강화되자 이제는 또 다시 '스탈린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그 때가 차라리 좋았지!"가 대부분 노동자들의 대중적 정서이다. 로마 교황의 소련 몰락에 대한 개입설도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투쟁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소련의 몰락은 SWP의 기대와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이 무너지자 스탈린주의의 부활에 대한 염원을 가져다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중립적으로 모든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투쟁을 조직하느냐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한다. 
  

조직화된 자본주의가 가능한가? 
  

  크리스 하먼은 토니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클리프는 그 자신이 레닌과 청년 부하린이 제1차 세계 대전기에 발전시킨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어떻게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시켰는지 보여 주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밀착을 주장하면서 소련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인 국가자본주의가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레닌은 오히려 제국주의론에서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자본주의의 독점이 강화되면 하나의 독점체가 형성되면서 경쟁을 제한하고 자본간, 자본가 국가간의 경쟁에 의해서 발생하는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자본주의의 독점은 독점체 내부의 경쟁, 독점체와 비독점체의 경쟁, 선발 독점체와 후진 독점체의 경쟁 등 불균등 발전에 의해서 자본주의 내부 모순과 경쟁을 격화시키고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은 힐퍼딩에 의해서 조직화된 자본주의로 나아간다. 
  

카르텔화의 진정한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카르텔화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없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히려 카르텔화는 끊임없이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독립적인 산업은 카르텔화 한 산업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며, 결국에는 그것에 합병된다. 이 과정의 궁극적인 결과는 총카르텔의 형성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는 (모든 생산부문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하나의 기관에 의해 의식적으로 규제될 것이다〈힐퍼딩, 금융자본 제15장 '자본주의적 독점의 가격결정과 금융자본의 역사적 경향'〉 
  

  힐퍼딩은 총카르텔의 형성에 의해서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는 의식적인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한 산업부문 전체를 장악하는 총카르텔의 형성에 의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이 계획적으로 규제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힐퍼딩은 또 같은 책에서 이와 상반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생산 전체를 담당하고 따라서 공황을 제거하는 총카르텔 그 자체는 경제적으로는 상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직은 사회적·정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직은 그 조직과정에서 극단적으로 강화될 이해대립이라는 암초에 좌초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카르텔에 공황의 지양을 기대하는 것은 공황의 원인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같은 책, 제20장 '공황의 성격변화와 카르텔과 공황) 
  

  이처럼 힐퍼딩은 상호모순 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서 카르텔의 발전으로 인해 공황은 일정 정도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힐퍼딩은 자본주의에서 독점의 발전으로 인해서 발생하게 되는 한 독점체의 몰락이 전체 산업부문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공황의 파국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카우츠키와 힐퍼딩의 초제국주의론과 조직화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내부에서 규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거 또는 완화할 수 있다고 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개량주의적인 실천을 낳는다. 
  

  결국 SWP 진영이 소련이 국가자본주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레닌과 부하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끌어다 쓰는 것은 이렇게 스스로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국가 내부에 경쟁에 제한되고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 계급론'에서 미하엘 마우케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 통일을 의미하는 한 말할 것도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본들의 경쟁을 원리상 제거하는 체제는 자본주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국가독점자본주의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총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단일한 자본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발생했지만 형식상 자본 위에 존재하는 자립적인 외양을 취한다.

 

  소련 내에서 경쟁과 가치법칙의 작동을 증명해 보라는 주장에 대해서 크리스 하먼은 클리프의 주장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경쟁형태는 다름 아닌, 서로 다른 국가들에 소속된 경쟁적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들 사이의 군사적 경쟁이다"라고 빠져나가고 있다. 정확히 쓰려면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들 사이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국가와 사적 자본주의 국가와의 군사적 경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기경쟁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는가? 
  

  소련이 자본주의였다는 가장 유력한 주장은 사실 무기경쟁이다. 하지만 무기경쟁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무기경쟁이 한 사회의 지배적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군사비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붇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도 무기산업에 대한 투자가 자본주의 축적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1990년에 GNP에서 군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퍼센트에서 5.4퍼센트로 떨어졌는데, 이것은 1980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크리스 하먼, 오늘의 세계경제 : 위기와 전망) 
  

  일반적으로 무기산업에 대한 투자는 자본주의에서 사치품에 대한 소비와 마찬가지로 비생산적 소비영역에 속한다. 물론 무기 자체의 판매로 인해서 일부분 생산적 소비가 되기도 하지만 무기생산자체는 자본가 국가에게 잉여가치를 창출해주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 소비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위의 책에서 크리스 하먼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소련에서도 무기경쟁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양식은 아니었다. 소련의 총매출액에서 무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을 넘어 설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소련은 단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몰락했을 것이다. 무기경쟁도 자본주의적 경쟁은 아니었다. 소련의 무기경쟁은 판매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제국주의로부터의 체제의 수호라는 측면이 가장 컸다.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위협이 없었다면 악의 화신 스탈린조차도 군사비의 상당 부분을 대중의 소비와 복지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지배체제를 안정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기경쟁이 자본주의적 경쟁이었다면 무기경쟁에서 지면 무기산업의 몰락과 독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할 텐데 미국과 무기경쟁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미국이 소련 무기산업을 먹어치웠다는 괴상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데릭하울은 '가치법칙과 소련'에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는 경쟁이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면 경쟁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역량으로 볼 때 노동의 국제분업으로부터의 분리가 러시아 지배계급이 자국의 생산성과 그들 경쟁국의 생산성을 비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관료들이 상품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꾸준히 비교하는 것을 의미한다(데릭하울,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가치법칙과 소련')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경쟁은 교환을 전제로 하는 경쟁이다. 단순히 비교를 위한 지표로서의 경쟁을 어떻게 자본주의적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의 상품은 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 상품을 시장에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상품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상품 소유자에게는 그것은 교환가치의 담당자, 따라서 교환수단이라는 점에서만 직접적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상품소유자는 자신을 만족시켜 줄 사용가치를 가진 다른 상품을 얻기 위하여 자기 상품을 양도하려고 한다. 모든 상품은 그 소유자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그것의 비소유자에게는 사용가치이다. 따라서 상품은 전면적으로 그 소유자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소유자를 바꾸는 것이 상품의 교환인데, 이 교환을 통하여 상품은 가치로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또 가치로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상품은 사용가치로서 실현될 수 있기 전에 먼저 가치로서 실현되어야 한다.(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제1편 제2장 교환과정) 
  

자기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단순히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곧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상품으로 되기 위해서 생산물이 그 사용가치를 사용하는 사람의 손으로 교환을 통해서 이전되어야 한다)〈마르크스, 같은 책 제1권 제1편 제1장 상품〉 
  

  이처럼 소련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은 자신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사용가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물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무기생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용가치를 위해서 생산되고 교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에 의해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 
  

  소련에서 가치법칙은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상품의 교환을 규정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가-그 교환이 등가교환인 한-여기서도 지배한다. 다만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데 그것은 달라진 환경 하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노동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줄 수가 없으며 또한 개인적 소비 수단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개인적 소유권으로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 수단의 분배에 관한 한 상품의 등가 교환과 같은 원리가 지배한다."고 하고 있다. 
  

  낮은 수준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감가상각비나 사회적 복지(결국 노동자에게 귀결되는)를 제외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시간으로 환산해서 일종의 노동증명서를 통해 사회적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소비만큼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 것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그 사회를 지배한다고는 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를 토대로 한 협동적 사회 내에서는 생산자들이 그들의 생산물을 교환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 각 개인의 노동이 더 이상 간접적 방식이 아닌 직접적 방식으로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산물에 투입된 노동은 더 이상 생산물들의 가치 즉 생산물들이 소유하는 하나의 물질적 특질로는 표현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사회에서의 등가교환은 자본주의에서의 가치법칙과 달리 생산물 분배의 준거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시장기구를 통해 생산과 분배를 사후적으로 규제한다. 생산된 생산물은 판매를 하는데 이 판매가격이 가치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자본은 다른 생산영역으로 옮겨간다.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개인들의 사적노동으로 인해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생산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지배되는데 이것을 지배하는 법칙이 바로 가치법칙이다. 
  

"그렇다면 다시 가치법칙이란 어느 한 개인이 만들어낸 생산물이 시장에서의 판매를 통해 상품으로 전화되는 기제를 지칭하며, 따라서 그것은 가치의 결정에 반드시 요구되는 일종의 사회적 제약 내지는 그 범주로서 고유의 역할을 보유하게 된다"(정운영, 노동가치이론)  
  

  소련에서는 비록 계획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었지만 가치법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생산이 규제된 것이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해서 생산량, 목표량 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무기경쟁을 가지고 외부적 경쟁이 소련 사회 내부를 규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소련이 사회주의였다면 어떻게 정치혁명이 없이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 그들은 소련이 본질상 차이가 없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사적자본주의로 이행했기 때문에 정치혁명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의 해로 규정을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28년에 어떤 정치혁명이 일어났는지를 마찬가지로 답해야 한다. 지배계급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적 정치혁명을 했다는 말인가? 자기로부터의 정신혁명은 가능하지만 지배계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를 희생하는 생산력주의, 농민에 대한 수탈, 노동자 권리의 박탈 등은 노동자 국가의 타락과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혁명은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출발해서 관료적 지위로 올라갔다면 노동자 계급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노동자 계급적 요소는 조금도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료는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자신을 자립화한 요소다. 그것을 (악의로의) 지양(止揚)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립화한 관료는 반동적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려고 제스쳐를 취한다. 그것이 관료적 지위를 유지하는 길이다. 소련에서 관료는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을 통해서 체제를 유지하고 노동자, 농민을 희생하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관료적 지위를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관료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말하겠다. 이 주장에는 소련에 대한 모종의 환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도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공상적 사회주의, 진정한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사회주의'라고 사회주의의 여러 유형을 나열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사회주의는 항상 과학적 사회주의일 수는 없다. 민족적 사회주의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을 두고 노동자혁명이 없었는데 어떻게 사회주의인가라고 그들은 말한다. 북한 지배층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자본주의가 저발전하여 노동자 계급이 혁명의 중심부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일궈나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료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라고 물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관료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한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련은 국유화 계획화라는 사회주의적 형식과 대비되는 사회주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관료적 내용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터져 버리면서 소련의 몰락을 낳았다. 물론 소련의 몰락에는 이런 내적 모순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압박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고립정책은 내적 모순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남한에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사회주의적 계획화와 국유화라면 어떻게 저렇게 비효율적일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사회주의적 계획은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과 능동성을 본질로 하는데 현실의 소련에서의 계획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도 사회주의적 계획은 언제나 효율적일 것이라는 관념의 소산이다. 사회주의적 계획도 노동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채만수는 소련이 사회주의라고 보면서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하지만 스탈린주의의 오류에 대해서는 침묵을 한다. 채만수는 스탈린주의가 유럽혁명의 실패와 제국주의의 포위, 저발전한 자본주의에서의 혁명과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혁명 주체의 내전으로 인한 사망 등을 원인으로 든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스탈린주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스탈린주의는 비판받을 것이 없고 역사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긴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잘 비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스탈린주의가 필연적이라면 우리는 소련의 몰락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한다. 스탈린은 노동자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면서도 노농동맹을 주장했던 레닌의 정신을 버렸다. 현실적으로 농민의 비중이 상당한 저발전한 국가에서 혁명에 농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혁명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농민의 역할은 큰 것이다. 농민에게는 설득과 집산화를 통한 물적유인이 필요하다. 소농의 토지를 강제로 수탈하여 집산화할 수는 없다. 도리어 집산화된 협동조합이 소농 경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이 농민은 집산화에 참여할 것이다. 
  

  그런데 스탈린은 중공업을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농민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통해서 강제 수탈했다. 노농동맹의 정신은 사라지고 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수치에 급급해서 농민을 원시적 축적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먼저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선의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식 생산력의 발전은 대중의 물질향상이 아닌 발전을 위한 발전이라는 관료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생산력주의를 독려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선성장 후분배라는 성장우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보려면 파리코뮌을 보라고 했다. 레닌도 국가와 혁명에서 파리코뮌에서의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노동자민주주의를 극찬했다. 그런데 파리꼬뮌은 베르사이유 군대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군대의 포위와 고립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려 있으면서도 이런 외적 극한적인 상황을 내적 민주주의로 극복하려고 했다. 파리코뮌 당시의 포위와 고립에 비하면 소련에서의 제국주의의 포위와 고립은 훨씬 더 극복하기 쉬운 고난이었다. 파리코뮌처럼 제국주의의 포위와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같은 어려움들은 오히려 소비에트의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이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죽어간 새로운 전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극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스탈린은 공포정치를 통한 극도의 억압과 관료적 효율성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선다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이유를 들어 수많은 학살극을 벌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의 범죄이다. 계급투쟁은 급격한 내전기에 가장 격화된다. 그런데 내전이 끝난 이후에 계급투쟁이 격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탈린은 부르주아의 반혁명에 맞선다는 구실로 노동자, 농민에 대한 억압을 합리화하고 지배력을 강화했다. 노동자 국제주의의 원칙은 유럽에서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성이라는 '일국사회주의'로 변질됐다. 
  

  볼셰비키는 제국주의의 간섭과 내부의 반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1919년 8차 당대회에서 조차도 분파를 금지하지 않았다. 고도로 집중된 통일성을 발휘해야 하는 17년 10월 혁명 직전과 내전 이후 혼란기인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분파는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 내에서 경향적 흐름은 보장됐고, 이견자들의 문집발행 권리와 당중앙의 배포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상투쟁의 자유를 보장했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는 분파주의가 통제한다고 막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분파의 활동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활력 있는 당을 만들면서 분파가 분열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볼셰비키는 내부 분파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면서 성장해 왔다. 대신에 레닌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라는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통해 행동의 통일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는 토론의 자유는커녕 동지에 대한 숙청만 있었다. 당 내부의 이견을 가지고 동지들을 학살하고 숙청한다는 것을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레닌 당시의 당대회 규약과 실질적인 당대회 운영을 스탈린 시기의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변질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실제 레닌은 혁명기간 내내 끊임없이 소수자의 위치에 내몰렸다. 그럴 때마다 아래로부터의 논의를 촉발해내면서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뒤마 선거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논쟁, 1917년 혁명 과정에서 4월 테제를 발표할 당시의 논쟁, 혁명 이후에 독일과의 강화협정을 맺을 때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은 격렬한 반대와 반발에 직면했다. 하지만 레닌은 치열한 토론과정을 통해 이를 돌파해 나갔다. 레닌 주변의 동지들은 레닌의 입장에 대해서 "반볼셰비키적이다", "레닌이 드디어 맛이 갔다"라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레닌은 플레하노프처럼 멘셰비키로 전향한 동지들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설득을 통하여 함께 할 것을 설득했다. 
  

  레닌이 독일과의 강화조약을 주장하던 혁명 이후의 당대회를 보면 부하린이 레닌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혁명 이후면 레닌의 권위가 가장 높을 때다. 하지만 토론에 있어서는 그 권위는 조금도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규약에도 이런 반대의견의 제출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이 돼 있었다. 심지어 의사 결정 이후에 비판의 자유도 보장이 됐다. 중앙위원회의 독일과의 강화조약 결정에 대해 몇몇 지방조직에서는 이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공표하기조차 하였다. 레닌은 지방조직의 주장을 반박하는 비판을 제기했지만 그 태도표명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닌은 이러한 비판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단독강화의 문제로 중앙위원회와 날카롭게 의견을 달리하는 동지들이 중앙위원회를 엄하게 비판하고 분열의 불가피성에 대한 확신을 표명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이는 모든 당원이 갖고 있는 더할 바 없이 정당한 권리이며,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藤井一行 볼셰비키 당조직론) 
  

   하지만 스탈린주의가 뿌리박힌 당대회는 한마디로 모든 대의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 토론 대신에 이견자는 반동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당내에서 트로츠키를 비롯한 좌익반대파를 추방한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독점한 1930년대에 열린 16차 당대회와 1934년 17차 당대회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영웅숭배적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찬미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등단자는 보고나 발언 속에 스탈린의 '위업'을 칭송하게끔 되었고, 발언 도중에도 스탈린의 이름이 나오면 대회 대의원들은 당연히 '총기립'하여 '폭풍과 같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박수'를 보내야 했다. 결정을 '전원일치'로 채택한 것도 물론이지만 일부 의안을 제외하고는 결의안을 작성하는 위원회조차 거의 설치되지 않게 되었다.(같은 책) 
  

  스탈린 시대에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의 실질적인 내용과 형식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1934년 제17차 당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 하에서 숙청에 대한 새로운 규약도 마련되었다. 
  

1. 계급적으로 이단이며 적대적인 분자.

1. 당을 속이고 당에 대하여 자신의 본래의 견해를 숨기며 당의 정책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면종복배자(面從腹背者)

1. 당과 국가의 철의 규율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파괴하는 자.

1. 부르조아분자와 유착하고 있는 변질자.

1. 출세주의자, 이기주의자, 관료화된 분자.

1. 추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당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당의 깃발을 더럽히는 도덕적 부패자.

1. 당원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강령, 규약, 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습득하지 않는 소극적인 자. 
  

  물론 당의 규율을 유지하기 위한 규약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규약대로 한다면 '걸려들지 않을 자'는 하나도 없다. 특히 면종복배자를 숙청한다고 하는 규약은 반대파를 완전 제거하는데 무한한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과 당내 비판의 자유 제거는 당을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당독재'로 전환시켰다. 
  

  소련의 몰락 이후에 스탈린주의적인 당운영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면서 볼셰비키의 전위정당론을 '일괴암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탈린주의의 당운영의 방식과 내용은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 당원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운영된 볼셰비키의 전위정당과도 관련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스탈린주의적인 당독재는 오히려 전위정당의 핵심 정신이 무너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게 된 것이다. 
  

  소련 사회는 소비에트의 실질적인 부활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의 고양 등을 통해 외적 고립을 내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가 되어야 했다. 혁명적 주체 없이 혁명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 후르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혁명적 주체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관료적 개혁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척결이 아니라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의 새로운 양산에 불과했다. 관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적이 되어야 했다. 
  

  유럽에서의 혁명의 실패는 혁명 주체들의 문제도 있지만 스탈린의 잘못된 개입에 의한 측면도 크다. 스탈린은 파시즘에 맞서서 독일 사민당과 반파시즘 통일전선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민당을 파시즘과 한편으로 몰아갔다. 사민당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지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반면 중국혁명에서는 이에 대한 오류를 극복한다는 것이 너무 멀리 나아가서 중국공산당과 국민당과의 합작을 주장하면서 공산당의 해체를 조장했다. 결국 대외적인 고립도 스탈린 스스로의 잘못된 원칙과 전술에 기인한 좌우편향적인 정책에 기인한 것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과의 전술적인 차이는 크게 없다고 본다. 여전히 소련사회의 몰락의 원인에 대한 치열한 모색은 계속되고 소련 사회 구성체는 경제적 분석을 통해 풍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을 한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사회주의의 우위성을 보증 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되려 스탈린주의의 오류를 자기 것으로 해서 극복하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또 다시 스탈린이 처한 처지에 똑같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혁명은 일국에서 비롯된다. 동시적 세계혁명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혁명의 일국적 고립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돌파할 것인가? 는 혁명 주도 세력이 직면하는 가장 큰 난관이 될 수 있다. 혁명 과정에서 내전을 통해 생산력의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하여 혁명을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는 무정부적 생산과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라는 자신의 원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위기를 낳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원칙과 원리로부터 멀어져 갔기 때문에 몰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원리와 원칙에 충실할 때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는 정정 가능하다. 여기에 다시 한번 역사발전의 추동력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하는 시도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저발전으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남한 자본주의는 자본의 과잉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현재 남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당시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다. 따라서 내전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당시 혁명 러시아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을 것이다. 
  

  당시 볼셰비키에게는 혁명의 성공과 유지에 있어서 사활적이었던 농민에 대한 고려도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 사회였지만 인구비율에서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었다. 남한에서 농민은 대부분 노동자화 되거나 반프롤레타리아화 되고 있다. 우르과이 라운드나 한·칠레 무역 협상 등으로 인해 남한 농업은 소농이 몰락하고 있다. 세계의 거대 농업과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한에서도 점점 더 집산화된 대규모 자본이 진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트화는 점점 더 진척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은 농업뿐만 아니라 자본의 독점화에 의해서 몰락이 가속화되는 쁘띠부르주아 등 산업전반에서 아군을 점점 더 충원받게 될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관료와 자본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했다. 이것은 신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기노조, 연전노조, 교수노조 등이 생겨나면서 전문가 집단들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관료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등장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국가 운영의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은 사회주의 계획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관료화를 막는 객관적 조건의 하나이다. 결국 관료주의를 막는 관건은 주체의 능동성과 의식성이 얼마나 고양되어 있는 가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물적토대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는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심화된 위기는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자본주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의 전세계적인 위기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같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타나면서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반동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직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쟁반대를 통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노동자 국제주의는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닥치고 있다. 이러한 혁명을 위한 물적토대의 강화라는 객관적인 필연성을 주체적인 역량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다. 소련의 몰락은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 주었다. 이것이 소련 사회의 성격을 두고서 논쟁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끝-

**이 글은 2003년 4월 26일에 있었던 '사회주의 정치 운동의 현황과 과제'라는 토론회에 제출되었던 글이다. 이 글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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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9 03:03 2007/03/0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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