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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진보운동(장석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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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동지가 2001년 서울대 학생위원회 당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사용한 원고이다.

벌써 5년 가까이 된 글이지만, 그 합리적 핵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석준 동지가 이 때도 진보적 구조개혁을 주장했었구만.



(교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운동

장석준(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200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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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노동당은 대중정당이다.
그리고, 단적으로 말해, 지금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대중정당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중정당'운동'이다.

    

2.
대중은 자신이 충분히 잘 알고 신뢰하는 지도부만을 지도부로 인정한다.

-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정치적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6월 항쟁이다. 6월 항쟁 때 투쟁에 앞장선 민중운동 세력이 역사의 뒤안으로 밀려나고 양김 세력이 정치적 지도부로 위치를 공고히 하면서 이후의 십수년이 결정된 것이다.

  

- 그럼, 6월 항쟁 때 왜 수많은 대중은 민중운동 세력이 아니라 양김 세력을 지도부로 지지했는가? 대중은 항상 자신들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신뢰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부만을 지도부로 인정한다. 양김 세력은 70년대 40대 기수론 이래 이를 철저히 인식하고 대중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 6월 항쟁 이후 지금까지도 대다수 대중이 민중운동 세력을 자신의 지도부로 인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96년-97년 총파업의 경우도 6월 항쟁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소수인, 조직 대중의 투쟁이었다. 6월 항쟁 같은 수준의 전 민중적 투쟁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민중운동 세력은 결코 그 정도 수준의 전 민중에게 지도부로 대접받은 적이 없다.

                 

- 민중운동 세력은 과거 양김 세력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중 속에서 호홉하고 대중의 언어로 말하며 대중을 조직하고 대중의 선도적 일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만 대중의 지도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 결코 왕도란 없다. 이것을 위해 대중정당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3.
그럼, 대중정당운동이란 무엇인가?

- 대중정당은 정치사에서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대개의 부르주아 정당은 명망가들의 정당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의 보수 정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중정당은 노동자정당, 사회주의정당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 나타났다.

                

- 최초의 대중정당은 최초의 공개적 노동자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이었다. 이 때 등장한 대중정당의 기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선거 시기만이 아니라 일상 시기에도 활동하는 지역 조직들을 지니고 있다.
  2. 지역 조직들은 명사들이 아니라 지역의 노동자·민중들로 조직되며 이들로부터 기부되는 자금으로 운영된다.
  3. 지역 조직들은 좁은 의미의 정치 활동뿐만 아니라 지역의 노동자·민중들을 조직하고 교육하며 그들의 문화적 근거지가 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 그리고, 모든 대중정당은 대중정당'운동'으로 등장했다.
  가. 당시 노동계급은 아직 완전한 보통선거권을 지니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은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중정당은 이렇게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 속에서 이 운동을 주도하며 성장했다. 이 점에서 대중정당의 활동 자체가 무엇보다도 하나의 '운동'이었다.
  나. 또한 당시 노동계급은 아직 대중교육과 대중문화의 바깥에 있었다. 노동자정당들은 사회주의 이념의 교육과 노동자 문화활동의 촉진을 통해 노동자의 정신적 삶을 만들어가는 운동을 벌였다. 그 점에서도 이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다. 대개의 노동자정당은 노동조합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노동조합들은, 아직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지 않았고, 또한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질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정당의 발전이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촉진하고, 역으로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이 노동자정당의 발전을 앞당겼다. 이 점에서도 이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 대중정당운동의 발전을 통해서 유럽의 노동자계급은 비로소 하나의 '계급'이 되었다. 여기서, "오직 당운동을 통해서만 즉자적 계급은 대자적 계급이 된다"는 맑스·엥겔스 주장의 현실성이 확인된다. 독일 노동자들은 독일 사회민주당을 통해서 비로소 귀족 계급과 중간 계급에 구분되는 독자적인 계급 집단으로 행동하게 됐다. 자신의 정치적 목표(노동계급의 보통선거권 쟁취, 이를 수단으로 한 자본주의의 극복), 자신의 이념적 기반(맑스주의), 자신의 조직적 기반(당 지역조직과 노동조합, 당 언론 등등)을 통해서 말이다.

           

* 모든 추상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 과연 한국 노동자'계급'은 존재하는가?

     

- 80년대 맑스주의의 부활이 이뤄진 이래 적어도 대학가에서는 맑스주의 담론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바깥 사회에서의 진보운동의 성취도는 그렇게 높지 못하다. 학교 안에서는 쉽게 '계급'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계급에 속한 많은 민중들은 지역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 이 '짝사랑'을 설명하지 못하는 맑스주의는 결코 제대로 된 맑스주의가 아니다.

     

- 그런 점에서, '계급성', '계급운동' 운운하면서도 실제의 대중적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 무능하다면, 이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현학의 발로일 뿐이다. 차라리, 우리는 이렇게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에 노동자'계급'은 존재하는가?" -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이 '대자적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을 말하는 한."

          

- 오직 자신의 대중정당운동을 지닐 때에만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대자적 계급으로서 우뚝 설 수 있다. 개혁주의의 길을 걷게 되든 혁명의 길을 걷게 되든 한국의 노동계급이 미국 노동계급처럼 햄버거나 먹으면서 야구 경기에나 미친 한갓 대중이 되지 않기 위한 오직 한 길은 자신의 대중정당운동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 민주노동당이 지금 바로 그러한 대중정당운동의 질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정치적 실천들 중에서 민주노동당이야말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장 올바른 조직·운동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노동자·민중의 대중정당운동으로서 민주노동당은 무엇을 하는가?

            

- 노동자 정치운동은 기성 정치 제도 안에서 활동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의 제한성을 넘어서 나아간다.
   · 만약 기성 정치 제도의 제한성을 넘지 못한다면, 이는 자잘한 현실 개선에 만족하는 보잘것없는 정치 활동에 그치고 말 것이다.
   · 반대로 기성 정치 제도 안에서 활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벌이지 못한다면, 이는 대중에게 인정받고 그래서 대중을 거대한 해일로 일으켜 세우는 정치세력으로 커갈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자정당, 사회주의정당들은 두 개의 위험 사이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회피할 길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민주노동당 역시 마찬가지다.

  · 민주노동당은 기성 정치 제도 안에서 자신의 정치 활동을 출발한다. 그래서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리고, 의원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대중 캠페인을 통해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이나 이자제한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고, 대선에도 후보를 낼 것이다. ---> 베벨이 국회의원이 아니었더라면 독불전쟁에 반대하는 그의 연설이 독일 노동계급의 양심을 깨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사회민주당의 발전, 그러니까 독일 노동계급의 정치적 발전은 탄탄대로였다.
 
  ·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기성 정치 제도 안의 실천에 머무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등 대중조직이 벌이는 투쟁 속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동맹을 형성하며 선진 활동가를 조직하는 활동을 벌인다. 민주노동당은 당원과 지지 대중들 속에서 대중교육운동을 벌이고 노동자·민중 자신의 이념과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선다. 민주노동당은 당의 풀뿌리 조직인 분회를 통해서 삶의 현장 곳곳에 다양한 수준의 정치 실천을 벌인다. ---> 이러한 실천은 대개의 노동자정당, 사회주의정당들이 다 실천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활동을 벌여 나갈수록 이는 의미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으로 역사에 자취를 남겼다. 초기의 독일 사회민주당이 그렇고, 혁명기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다수파가 그렇고, 최근의 브라질 노동자당이 그렇다.

             

- 기성 정치권 안에서든, 그 바깥에서든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 1명 이상의 국회의원 혹은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거나,
  · 올해 안에 3만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거나, 
  · 당원의 10% 이상을 활발한 분회 활동으로 조직한다면,
  이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이제까지 "한 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 기성 정치권 안에서 노동자·민중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적이 있는가?
  · 기만명의 노동자·민중이 단지 정치적 목적으로 뭉쳐본 적이 있는가?
  · 기천명의 선진 대중이 하나의 대오로 움직여본 적이 있는가?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는 낯선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바로 이러한 전선의 맨 앞에 서 있다. 

     

* 민주노동당에 가해지는 비판들에 대해

          

- 아직 제대로 된 대중적 정치운동을 앞장서서 만들어가고 있지 못하다.

  : 이는 민주노동당에 가해지는 여러 비판들 중에서 유일하게 의미있고 제대로 된 비판이다. 하지만, 대중적 정치운동을 자신감있게 만들어가는 정치적 지도부, 정치적 부대가 하루아침에 건설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봐도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세대 모두가 한 삶을 바쳐 해결해가야 할 문제다.

        

-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 정당이다.

  : 이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여러 비판들 중에서도 가장 바보같은 비판이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를 비롯한 여러 진보정치세력이 결합한 잡탕 정당이다. 잡탕이라 하지만, 국물 맛을 흐리는 재료는 결코 끼이지 못한다. 노동자·민중운동에 깊숙이 결합한 정치세력들'만'이 모인 잡탕 정당이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사회민주주의가 우경화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이러한 잡탕 좌파 정당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일정한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계사적 정세 속에서는 느슨한 강령적 합의 속에서 모든 진보정치세력이 힘을 합쳐 대중적 정치운동을 복구하고 그 가운데에서 이론적·실천적 혁신을 이루는 것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다.

             

  : 민주노동당에서 앞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을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을지, 아니면 아예 흐리멍텅한 민중주의 경향이 지속될지 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민주노동당을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혁명적 사회주의"라고 규정한다면, 이들의 임무는 민주노동당이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민주노동당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지 바깥에서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아니다.

                

-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소위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에 대해,

  : 이 분들은 혁명운동사를 다시 학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분립하여 서로 경쟁하면서 노동자 정치운동이 더욱 풍성해졌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만 그랬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립된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민주당보다 좌파적인 진보정당이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전체 노동자 정치운동도 풍성하게 했던 것은 오직 그 전부터 사회민주당이 활발히 활동해서 노동자 정치운동이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렀을 때뿐이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독일 공산당의 관계가 그랬고,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공산당의 관계가 그랬으며, 이탈리아 사회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의 관계가 그랬다. 하지만, 사회민주당조차 제 자리를 자치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공산당 역시 유의미한 세력으로 등장할 수 없었다. 전전의 일본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다.

           

  :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아직 그 행로가 결정되지 않은 미완의 정치운동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당을 이루었던 각국의 급진 좌파 세력이 이전에는 모두 사회민주당 안에서 정치활동을 벌였던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 분들은 알아야 한다.

            

- 민주노동당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혁인가, 아니면 혁명인가?

  : 역사의 길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가장 올바른 노선은 역사의 급류에 좌초되지 않고 그 흐름을 탈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그것은 자잘한 개혁에 목매다는 것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혁명만을 외치는 것도 아니다. 혁명이 필요하고 가능할 때 개혁을 하겠다는 자들을 겁장이 개량주의자라 한다면, 개혁이 필요하고 그것만이 가능할 때 혁명만을 외치는 것은 바보다.

                 

  : 위의 입장을 좀 더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진보적 구조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진보적 구조개혁 노선은 개혁의 단순한 축적만을 통해서 대안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지 않는다. 다만, 기성 정치 제도 안에서도 추진할 수 있는 개혁의 시도들을 통해 광범한 대중들을 조직된 힘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다는 것을 알며, 그런 방향에서 개혁을 바라본다.  2) 진보적 구조개혁 노선은 또한 "혁명", "혁명"을 외친다고 해서 세상이 혁명적으로 뒤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오직, 조직된 힘만이 이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며, 그런 방향에서 일상적 실천을 벌인다. ---> 역사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더라도 노동자·민중에게 이롭도록 그 물살을 탈 수 있게 해주는 조직된 힘,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보적 구조개혁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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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1 23:02 2005/02/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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