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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년, 철길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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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겨레신문에서 보았던 기관사 시인의 시가 [낭독의 발견]에서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낭송이 된다.

그 때는 김철향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었는데, 그리고 지금까지 김철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듯한데, 오늘 TV 프로그램에서는 '김만년'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그는 지금은 3호선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래서 3호선 버터플라이도 함께 출연했다.

기차와 함께 살아온지 22년이 넘었다는 그에게서 나오는 시는 육중하고 둔감할 듯한 철마를 부드럽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어놓는다. 역시 전태일문학상도 아무나 받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검색해보니 이 기관사 시인의 시를 매일신문에 소개하는 이공순 시인의 글이 잡힌다.

그런데 지금 그 기관사 시인이 이공순 시인의 양말이라는 시를 낭독한다.

서로 밀어주기일까.

 

기관사 시인이 필명으로 쓰는 철향은 '철의 향기'의 줄임말이다.  그는 정말 기차, 철길을 사랑하나 보다.

김만년 시인이 쓴 '철길의 여정' 연작 중에서 검색에 잡히는 시 몇 개를 담아온다.

모두 2005년도에 '철향'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시들이다.



철길의 여정
 
            김철향/철도청 일산승무사무소
   
철길은 오래된 연인들의 뒷모습이다
 
먼저 앞서거나 뒤쳐지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람도 없이
 
언제나 은밀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깨 걸고 나란히 걸어간다
 
애초에 마주설 일이 없기에
 
성냄도 없고
 
 
 
각자의 영역이 있기에
 
침범하는 일도 없이
 
한 쪽이 기울면 함께 기울고
 
한 쪽이 굽으면 함께 굽으며
 
바람찬 먼길을 동행한다
 
손닿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리울 만큼의 여백을 키우면서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며
 
정해진 그 길을 숙명처럼 함께 간다
 
자식처럼 나란히 누운 침목을 따라
 
은륜(銀輪)의 세월을 여여히 걸어가는 철길은
 
어느 오래된 부부의 아릿한 뒷모습이다
 
 
 
철길의 여정 2 
  
                                   김 철 향
 
차가운 대지에 뿌리내리고
 
검은 혈맥으로 흘러 왔지
 
상처 같은 세월 나란히 베고 누워
  
달빛 따라 쉼 없이 은륜을 굴려 왔지
 
한 뼘 거리에 그대를 두고도
 
차마 범할 수 없었던,
 
육중한 무게에 압사 당한
 
두 줄기 그리움
 
먼 기적 소리 흩날리며
 
사람 사는 마을 굽이굽이 돌아 왔지
 
 
 
철길의 여정3-서시
 
                                             金 滿 年
 
자책하지 마라
 
직각으로 꺾여 보지 못한
 
단조로운 삶이었다고
 
정해진 길 위에 붙박힌 생애
 
불변의 거리에 누워 평행선만 달려 왔다고
 
후회하지 마라
 
어느 남루한 모퉁이에서 문득 시작한 길
 
멈추지 않고
 
가파른 길 우렁우렁 돌아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천 갈래 혈맥 이어오지 않았느냐
 
생각해 보라
 
네 완곡한 고집
 
너를 통하지 않고 어느 人情
 
어느 그리움엔들 닿을 수 있었더냐
 
비가 오고
 
또 어느 바람 부는 날에도
 
육중한 무게 떠받치고 있는 
 
네 단단한 심지
 
돌아보라
 
걸어 온 길 모두가 상처이어도 
 
부딪히고 찍혀야 비로소 빛나는 것임을
 
두 줄기 철길
 
지금 네가 말해 주고 있지 않느냐 
 
 
 
철길의 여정8-협궤선
   
                                              /김 철 향
 
송도에서 소래 가는 풀 섶에서 그를 보았다
 
단단한 완력 한 치의 예각도 허용하지 않던
 
그가 차츰 무너지고 있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결기 조용히 꺾고
 
외진 풀밭에 엎드려 쇠 울음을 운다
 
낡은 관절 위로 툭툭 몇 올의 짜투리 햇살이 떨어진다
 
푸른 시간이 빠져 나간 자리
 
휘어진 정강이 마디마디 산화된 각질이 붉다
 
뼛마디 휘어지도록 흙만 고집하다가
 
어느새 퇴물이 된 아버지, 공명한 헛기침처럼
 
물기 빠진 풀들이 옅은 신음소리로 돌아 눕는다
 
새벽마다 짠물 실어 나르던 고동소리
 
까나리 액 젖 같은 웃음 아지매 입방아 소리마저
 
구조조정 바람 길로 떠나가고
 
떠나지 못한 고집 하나 완곡한 곡선으로 누워 있다
 
좁은 길 에둘러 찾아 올 기차는 없다
 
기다릴 일도 불볕에 엿가락처럼 휘어지던
 
애태울 그리움도 없다
 
한 떼의 쇠뜨기 풀들이 그를 밟으며 지나간다
 
제 울음을 가둔 망각의 곡선
 
기적소리처럼, 저 울음을 끝으로
 
이제 그도 곧 지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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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01:17 2007/09/2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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