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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복, 국가주의, 비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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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회를 보면서 가장 많이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은 바로 예비군복을 입은 예비역들의 출현과 그들에 대한 시위참여자들의 환호였다. 오전에 여기에 대해 몇 자 끄적이다가 말았는데, 진보블로그에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꽤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들의 글이 공개되면 폭탄 맞겠군 싶었는데 역시 그러하다. 이럴 때 보면 블로그를 포함하여 온라인상의 소통은 한계가 많은 것이 확실하다.
 
1. 예비역들의 집회 출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밀리터리 룩이 환호받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인가.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경찰이나 되는 것처럼 시위대열의 질서유지를 하고 여성과 노약자의 보호자임을 자처한다. 예비군복을 보면 전경들이 움츠려들기 때문에 시위대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고 나왔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다음 아고라나 시위대열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이들에게 환호하는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은 아닐지...
 
예전에 교투(교문투쟁)을 할 때에 전투조(C.C.)는 교련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교련복을 입었던 목적은 자신들이 경찰에 맞설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있다기보다는 엇비슷한 복장을 취함으로써 경찰의 채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물론 예비군복을 입은 이들은 거의 없었는데, 이는 예비역 자체가 그런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수대라는 게 시대적 산물이었다. 폭력경찰로부터 의사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구성되어야 했던 과거의 산물인 것이다. 거기에는 여성이나 장애인은 한명도 없고 건장한 남성들로만 구성된다. 학생들의 시위를 예로 든다면 그나마 수도권의 경우는 이러한 성별분업이 조금 약해서 본대에 남학생들도 있었지만, 전남의 모 대학의 경우에는 본대에 남학생이 없었다. 본대에는 보호받아야 하는 여학생들만 있어야 했던 것이다.
 
얼마전까지도 가끔씩 사수대를 짜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수대가 꾸려져야 하는 현실도 싫었고, 국가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 것을 구성하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사수대를 꾸려서 우리의 목소리를 얼마나 낼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수대의 변형인 질서유지대 내지 집회 도우미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가끔씩 집회 분위기를 흐리는 이들을 막기 위해서, 또는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이를 구성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이는 온순하고 질서정연한, 규격화된 집회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다.
 
예비군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환호가 갖는 부정적 함의는 지금 당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라는 목적에 비추어 사소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군대생활, 군대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암울했던 것인지 군대가 갔다와본 이들은 안다. 아니 그렇게 근본적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얼마나 군복입는 것이 귀찮았고 불편했는지 기억한다. 그래서 예비군훈련장에 가면서도 폼(간지)은 나오지 않았을지언정 군화를 신기 싫었고, 예비군 모자를 챙기지 않은 것에 대해 조교들이 꼬장꼬장하게 구는 것에 얼마나 기분나빠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렇게 예비군복을 챙겨입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름대로 평화적인 집회를 만들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그렇게 입고 나왔을 것이라고, 순수하게 보고 싶다. 다만 예비군복에 깃든 국가의 억압과 군대문화의 병폐들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적어도 단지 예비군으로서 누군가를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똑같은 시민으로서 나섰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예비군복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에 거부감을 느끼고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민방위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군복을 다시 입고 싶지 않다.
 
2. 이와 연결해서 국가주의, 애국주의 코드도 너무 싫다. 애국가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를 부르는 거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고, 여기에 거부감을 보이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실 운동권이 이런 시위판에서 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판을 주도한다기보다는 이러한 국가주의, 애국주의 코드에 대한 경고를 하면서 대중들이 단지 군중으로 지나가는 게 아니라 민중으로, 다중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데 있지 않을까. 물론 이를 위해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깃발을 들거나 조끼를 입고 참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이는 다함께에 대한 대중의 심판(사실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거슬리는 점도 있겠지만, 인내하면서 시민의 한명으로 참여하여 바꿔나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사유화, 비정규직 확산, 한미FTA 체결을 획책하는 세력임을 밝히면서 사회전반적인 문제들을 이슈화해야 한다. '어떻게?'가 관건일 텐데, 여기에 진보정당과 조직된 정치조직의 역할이 요구된다. 이를 생각해내지 못하고서 그냥 머릿수만 채우는 것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지금 촛불집회와 이어서 벌어지는 가두행진은 한마디로 거리 축제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서 좌파의 역할은 대중과 함께 거리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3. 28일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하려고 하면서 경찰이 주변을 완전히 둘러싸고 시위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자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은 욕설이 나오는 것을 막는데 그치지 않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 실갱이가 벌어지는 것 자체에 대해 말리고 나섰다.
 
이를테면 사복 차림의 경찰이 채증하는 것에 대해 채증하지 말라고, 채증자의 사진을 촬영하여 공개하겠다고 나서자, 경찰들은 손으로 폰카를 적극적으로 가리면서 사진촬영을 방해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옆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마찰을 빚지 말고 뒤로 물러서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목소리도 높이지 말고, 비폭력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불법으로 채증하는 것에 대해, 인도를 가로막고 사람들의 통행을 불법적으로 차단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항의를 하지 않으면 뭘 어쩌자는 것인지...
 
아마도 그 여학생들은 더 큰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고, 되도록 사소한 마찰은 없는 게 좋다고 보는 듯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과연 사소한 것일까.
 
이는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비폭력, 비폭력"의 외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로 억압적 국가기구들 앞에서 동일한 폭력으로 대응해서 이들을 물리칠 수는 없다. 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상상력으로 대처를 하는 것이 타당하고, 그렇다면 그 방식은 비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이 비폭력이라는 구호가 바로 시위대 자신을 옭아매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저들의 폭력 앞에서 비폭력을 외치면서 무조건 물러서야 하고, 경찰과의 마찰에 관련된 이들이 상황을 불순하게 몰고가려는 이들로 매도되는 것은 타당한가. 경찰의 행태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지적해주어야 하고, 고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개악되면서도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또한 그러한 투쟁 속에서 지켜져 왔다. 이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는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것은 비폭력이라는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동등한 주체가 되면서 자발성에 입각하여 저항할 수는 없을까.
 
4. 대중의 활력이 살아나는 것,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집회, 시위가 행해지는 것,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심정은 즐겁다. 하지만 조중동은 물러가라고 외치면서도 기존의 관성으로 보수언론과 자본이 주입한 구태의연한 의식에 기반하여 스스로 의식에 있어서의 퇴행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여기에 개입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9913
다시 광장에 서다 (레디앙, 2008년 05월 29일 (목) 17:26:29 이재영 기획위원)
[촛불문화제 참가기] 놀이, 난장 그리고 탈출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890
아이처럼 '함박웃음'…경쾌한 민주주의 (미디어오늘, 2008년 05월 29일 (목) 22:52:31 류정민 기자)
[현장] 서울 종로·광화문, 평화행진 5만의 물결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30011049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국민이 무섭지 않은가!"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2008-05-30 오전 1:48:41)
[현장] 수만 명 거리로…"우리는 美 쇠고기 수입 허락하지 않았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8037
마지막까지 '평화' 지킨 촛불 (참세상, 특별취재팀 / 2008년05월29일 19시39분)
[30일 03:00] 경찰, 남은 참가자들 인도로 쫓아... 연행자 한 명 발생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9917
"내일은 텐트 가지고 나올게요" (레디앙, 2008년 05월 30일 (금) 07:19:28 김은성 / 정상근 기자)
[현장] 시민 vs 정권 전면전 양상…꺼지지 않는 촛불, 전국 들불로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30061100
매일매일 진화하는 2008년 '거리의 정치'  2008-05-30 오전 8:23:05
[현장] 20대 마침내 부상…눈치보는 경찰 당국 
 
촛불 집회는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모습을 띄고 있다. 처음 국민을 거리로 끌어낸 것은 십대 청소년이었다. 뒤이어 주부와 직장인이 시위를 주도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새벽 거리 행진 주도세력으로 20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굼떴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관고시가 강행됐다는 소식에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주변 사람과는 자유롭게 토론을 나눴다. 경찰의 전진이 이어지자 "폭력경찰 시끄럽다 물러가라"며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경찰이 포위를 풀자 애국가를 같이 부르기도 했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장난기도 가득했다. 비분강개한 모습만을 접하던 경찰은 이들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새벽 3시가 넘어서며 경찰이 철수를 시작하자 한 연합동아리 대표라는 '주디' 씨는 "낮에 잘 쉬고 내일 또 봐요"라며 경찰을 환송했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조승수 대외협력국장은 "운동권이 주도하지 않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보았다"며 "지난 80, 90년대 민주화 운동 시대를 잇는 새로운 전환기적 에너지가 넘쳐난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성 정치권과 제도권 언론은 도저히 이들의 에너지를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며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8043
시민들은 스스로 걷는다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8년05월30일 4시47분)
[기자의 눈] 29일, 시민들의 행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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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가 뭔데?(무나, 2008년 05월 30일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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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 23:08 2008/05/3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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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복 2008/05/31 00:42

    사수대는 과거의 산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자본주의 사회기 때문입니다. 20년전 민주열사들만 있는것이 아니라 이 땅에는 하중근 열사와 같은 분들도 존재합니다. 사수대는 자본의 독재가 유지되는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상시적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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