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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조직없는 조직력의 시대…인터넷·휴대전화·메신저로 通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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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개하는 한겨레의 관련 기사에는 플레시몹하는 사진을 싣고 촛불집회에 대한 분석에 이 책이 유용함을 지적한다. 중앙일보의 책소개 기사에는 붉은 악마가 응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중동의 이 책 기사는 촛불집회와 관련지어 소개하지 않는다. 아마 기자 뿐 아니라 웬만한 사람은 이 책의 제목을 보게 되면 촛불집회를 떠올릴 터인데 말이다. 일부러 그런 것일까.
 
이 책은 시의적절하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이에 대한 서평을 내놓았다. 물론 출판사에서 정리해놓은 보도자료를 참고한 흔적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책 소개기사 중에서도 유용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직없는 조직력, 집단지성, 코즈의 정리, 조직비용 등이 책에서 언급되는 모양이다. 이런 용어 만으로도 재미있을 듯하다. 클레이 서키 뉴욕대 인터액티브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교수는 ‘코즈의 정리(Coase Theorem)’, 즉 사회적 행동이 집단성을 띨 경우 조직 결성과 유지 비용이 목표와 성과보다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을 근거로 들면서, 새로운 사회적인 도구의 등장으로 조직결성과 유지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설명한단다. 인터넷ㆍ휴대폰ㆍ메신저ㆍ블로그ㆍ메일링 등이 새로운 사회적 도구의 좋은 사례이고...
 
저자는 최근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의 움직임을 ‘조직없는 조직력(the power of organizing without orginazation)’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기업의 횡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소비자들, 브리태니커보다 더 강력한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성과를 도출해 내는 대중이 오늘의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조직 혹은 배후가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조직 없이도 더 강력한 조직력을 발휘하는 변화에 예의주시하면서, 그 특성을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로 정의한다.
 
말은 되는데, 이를 사례로 설명하는 만큼 그 반대되는 사례도 많을 것이다. 하나의 조직이나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조직없는 조직력이 필요한 시기가 있겠지만, 반대로 조직된 조직력이 필요한 시기도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 양자를 구분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분석의 틀을 짜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이를 촛불시위에 적용해 봐도 그러하다. 60일이 넘게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MB 정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촛불집회의 성과가 조직없는 조직력이 유의미하다, 조직비용 없이도 조직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끝맺는 것은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촛불집회를 결집하는 구체적인 조직의 구성과 같은 것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의제 또한 단지 쇠고기 재협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2MB정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의제에 대한 대안마련으로 나아가야 하고... 물론 여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말이다.
 
책 소개 기사를 보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수용하면서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맘에 걸린다. 여기에 조금이나마 딴지를 걸어주면 좋으련만... 본격적인 서평이 나오지 않아서 그러한가. 한겨레신문의 안수찬 기자의 서평이 게 중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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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없는 조직력'의 시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2008-06-30 17:49)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출간
 
2006년 5월 뉴욕에서 한 여성이 택시에 휴대전화를 놓고 내렸다. 여자는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새 휴대전화를 장만했다. 그런데 여자는 우연히 자신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의 메일주소를 알게 되고 전화를 돌려줄 것을 메일로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여자의 친구는 인터넷에 사이트를 만들고 일련의 과정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 곳곳에 글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곧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마이스페이스(미니홈피와 유사한 미국의 사이트)를 찾았다는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경찰은 처음에 이 일을 단순한 분실사건으로 처리했다가 네티즌의 비난이 쇄도하자 도난사건으로 바꿔 수사에 나선다.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되찾겠다는 작은 동기에서 시작된 일은 신문에도 보도되는 등 일파만파로 확대됐고 결국 열흘 만에 휴대전화는 주인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휴대전화 하나를 찾는데 아무 관계없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이런 일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실 지금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룹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 펴냄)는 개인과 조직, 기업과 소비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예로 들며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를 분석한다.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행동이 집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어야 하고 그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비용보다는 조직의 목표나 성과보다 커야 한다. 관리 비용보다 조직의 목표나 성과가 갖는 가치가 적다면 그런 일은 '추구할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코즈가 설정한 조직비용의 하한선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필두로 메신저와 블로그, 메일 등 사회적 도구가 등장하면서 조직을 결성하고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현격히 낮아졌고 급기야 조직 비용이 '제로'에 이르는 사회로 진입하면서 10년 전에는 조직관리비용 때문에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데 '조직 없는 조직력'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그 동안은 일정 규모에 이르면 '조직' 없이는 '조직된 상태'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조직이 없이도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는 촛불시위도 이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주최측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메신저와 블로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거리에 모이고 조직화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같으면 엄청난 조직비용이 들었을 일이지만 이제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올린 글 하나가 순식간에 수천, 수만 명에게 전파될 수 있게 되면서 조직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게 된 것.
 
그 동안 소리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개인에 지나지 않았던 소비자가 큰 힘을 갖고 기업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존재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동기부여가 잘된 의욕적인 소수의 사람만이 행동했던 반면 이제 별 의욕이 없더라도 목적을 달성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 직접 나서지 않고도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불매운동이나 서명운동에 클릭 한번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등 장애물들이 사라졌기 때문.
 
저자는 현재를 '이미 대중이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는 혁명의 시기'로 부르면서 '사회적 도구가 확산할 것인가' 또는 '사회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인가'를 묻는 대신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도구들의 확산에 대해 약간의 통제력은 갖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되돌리거나 멈추거나 하다 못해 홱 돌릴 수 있는 정도의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면서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목적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중심을 잃지 않고 몸을 똑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319~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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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없는 조직력의 시대…인터넷·휴대전화·메신저로 通한다 (서울,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2008-07-04  22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클레이 서키 지음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구성하는 나라의 하나였던 벨로루시는 1991년 독립했다. 자유시장과 민주화 과정을 수용한 다른 옛 소련국가들과 달리 벨로루시는 국영경제체제를 고수했다. 알렉산더 루카센코는 1994년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갈수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2006년 3월 3선에 도전한 루카센코는 88%의 득표율로 당선됐으나,1만명이 넘는 시민은 조작된 결과라고 주장하며 수도 민스크의 옥티아브르스카야 광장에 모였다. 루카센코는 수백 명의 시위자를 체포하고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감금했다.
 
이때 인터넷에 플래시몹을 제안하는 글이 올랐는데, 내용은 그냥 옥티아브르스카야 광장에 모여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플래시몹(Flash Mob)이란 인터넷으로 특정 시각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다시 흩어지는 일종의 깜짝쇼를 말한다.
 
그런데 경찰이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몇 사람을 연행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다른 참가자들이 찍은 디지털 사진은 즉각 온라인에 올려졌고, 벨로루시의 폭압적 이미지는 민스크 너머로 퍼져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잡아 가두는 것만큼 경찰국가의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키는 장면은 없다는 것이다.
 
클레이 서키 뉴욕대 교수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원제 ‘Here Comes Everybody’, 송연석 옮김, 갤리온 펴냄)에서 이같은 현상을 ‘조직 없는 조직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한다.
 
서키에 따르면 과거에는 어떠한 사회적 행동이든, 그것이 집단성을 띠려면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형성하는 비용이 조직의 목표나 성과보다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경제학이론인 ‘코즈의 정리’가 통용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비용 때문에 과거에는 전혀 발생할 수 없었던 잠재적인 조직, 혹은 잠재적인 일들이 거래비용의 급격한 감소에 따라 코즈의 하한선을 뚫고 올라왔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위시하여 메신저, 블로그, 이메일 등의 사회적 도구가 등장하면서 조직을 결성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현격하게 낮아졌고, 급기야 ‘조직 비용 제로’의 사회로 진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메리칸항공이 폭풍에 갖힌 승객들을 지나치게 오랜 시간 기다리게 했을 때 항공승객 권리장전 운동이 시작됐고, 영국의 HSBC가 대학생 고객들을 무시했다가 조직적 항의와 기민한 행동에 큰 손실을 입고 사과를 해야 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세계 최대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만들어낸 것도 모두 조직 없는 조직력의 결과이다.
 
지은이는 하나의 기술이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도구가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모두의 손에 들려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대단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변화는 복잡한 최신 기술이 아니라 인터넷, 휴대전화, 이메일처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여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책은 지난 2월 미국에서 처음 발간되었는데,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한국에서 벌어지는 촛불시위의 조직화 과정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지은이는 예전의 기준으로 보자면 조직 혹은 배후가 없이 조직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제는 조직 없이 더욱 강력한 조직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구호가 거의 없었던 촛불집회 초기 불필요한 ‘정치적 배후론’을 서둘러 제기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끌고 갔던 당국자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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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조직없는 조직’이 움직였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2008.07.04 17:38)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클레이 서키/갤리온
 
2006년 5월, 미국 뉴욕에서 한 여성이 택시에 휴대전화를 놓고 내렸다. 이 여성은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는 휴대전화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새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이후 그는 우연히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의 메일주소를 알게 되고 전화를 돌려줄 것을 메일로 요청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얼간이 흰둥이' 등 욕설이었다.
 
여성의 친구는 인터넷에 사이트를 만들어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고, 다른 친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글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경찰에도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처음엔 단순 분실사건으로 처리했다가 누리꾼의 비난이 쇄도하자 도난사건으로 정정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고 결국 열흘 만에 휴대전화는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2006년 3월, 벨로루시의 독재자인 루카셴코는 3선에 도전해 85%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럽 선거 관측통들은 조작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항의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민스크의 옥티아브르스카야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한 사람이 온라인 라이브저널에 플래시 몹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그냥 광장에 나가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경찰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몇 사람을 연행했다. 그 과정이 디지털 사진으로 찍혀 사이트에 오르자 정치 블로거들이 이를 유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루카셴코 정부의 폭압적인 이미지는 민스크 너머로 멀리 퍼져 나갔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잡아 가두는 것만큼 경찰국가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장면은 없을 것이다.
 
2007년 8월, HSBC은행은 초과 인출을 해도 위약금을 물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불과 며칠 만에 철회했다. 한 대학생 고객이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인 페이스북에 "HSBC의 엄청난 바가지 행위를 중단시킵시다!"라는 제목으로 불만을 토로하자 수 천명의 동조자가 서명을 했다. 성난 소비자들의 반발은 순식간에 확산하고 HSBC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런 일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다. 뉴욕대 인터액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교수인 저자는 이런 변화를 '조직 없는 조직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비롯해 메신저와 블로그, 메일 등 사회적 도구가 등장하면서 조직이 없이도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는 촛불시위도 이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주최측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메신저와 블로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거리에 모이고 조직화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같으면 엄청난 조직비용이 들었을 일이지만 이제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올린 글 하나로 수천, 수 만명을 모을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이같은 대중행동이 10년 전만 해도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다고 단언한다. 그는 현재를 '대중이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는 혁명의 시기'로 부르면서 "사회적 도구가 확산할 것인가, 또는 사회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인가를 묻는 대신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시위를 벌이려는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국가, 기업, 혹은 여타 조직들은 쥐와 고양이처럼 쫓고 쫓기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도구는 이 게임에서도 역시 힘의 균형을 바꾸어 놓고 있다. 정보의 폭포 현상과 인식의 공유는 더욱 빨라지고 있으며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책은 집단 행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동기 자체가 갖는 힘의 변화에 주목한다.
 
해법은 없는가. 저자는 '인식의 공유'를 등한시한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의 사례로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호네커는 "이적활동을 싹부터 잘라 버리고, 그들에게 대중적 기반을 허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물론 때는 이미 늦었다. '대중적 기반'이란 시위 참가자 수가 아니라 시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잠재적인 사람들의 수로 측정하는 것임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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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없는 조직력’ 새로운 대중이 움직인다 (경향, 김진우기자, 2008년 07월 04일 17:45:55)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클레이 서키 | 갤리온
 
2006년 5월. 폭정에 대한 불만이 높던 벨로루시에서 ‘플래시 몹’(flash mob,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매개로 모여서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제안하는 글이 한 블로그 사이트에 올랐다. 수도 민스크의 옥티아브르스카야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내용이었는데 결과는 어처구니 없었다.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사람들 몇 명을 연행해 간 것이다. 그러나 그 폭압적인 과정은 디지털 사진에 고스란히 찍혀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도 잇달았다. 정부로선 고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개 시위를 벌이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었고, 그렇다고 억압하면 대중이 자료를 만들어 공개해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아이스크림 몹’ 사례는 이 시대 세계를 움직이는 변화의 한 징표일 뿐이다. 이제 새로운 대중이 탄생하고 있다. 도처에서 ‘대중행동’이 분출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쉽게 가라앉던 분노와 사소한 문제가 거대한 이슈로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다. 개인의 삶이나 사회를 틀어쥐고 있던 권력의 힘은 점차 약해지는 반면, 대중은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시민과 소비자 군단은 권력과 기업들의 횡포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다.
 
혁명은 사회가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난다. ‘조직없는 조직력’을 특징으로 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
 
필리핀에선 정부의 부패에 분노한 시민들이 문자메시지를 통해 순식간에 ‘검정색 복장’ 시위를 벌였고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미국 가톨릭교회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평신도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항공사들은 비행기 지연 사태에 분노한 고객들의 조직적인 서명운동에 직면했고 대학생 고객들을 무시했던 HSBC 영국지점은 성난 소비자들의 집단 행동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두 달을 넘긴 촛불집회를 보라. 집회의 대중에겐 정부와 보수언론이 말한 ‘배후 세력’도 없고 지도부도 없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퍼뜨리면서 전국 곳곳에 열정과 분노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원제 ‘Here Comes Everybody’)은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변화의 원인과 기제, 양태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그룹 네트워크 및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뉴욕대 교수)는 특히 웹 2.0시대에 우리 사회는 물론 우리의 삶이 인터넷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적 도구들에 의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서술했다.
 
저자는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의 뿌리를 원서 부제이기도 한 ‘조직없는 조직력’(the power of organizing without organizations)에서 찾는다. 예전의 기준으로 보자면 조직 혹은 ‘배후’가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조직 없이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는 조직의 형성·유지에 드는 비용 때문에 생길 수 없었던 잠재적 조직이나 일들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새로운 사회적 도구의 등장으로 인한 거래 비용의 급감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회학자 세브 파케는 새로운 사회적 도구가 창출해낸 기본적인 장점을 “말도 안될 정도로 쉬운 그룹 형성”이라고 했다. 과거의 장애물이 없어지면서 새로운 능력을 갖춘 그룹들이 더 쉽게 한 자리에 모여 원하는 대로 해낼 수 있는 방법론을 자유롭게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애물이 제거된 사회에서 대중은 이제 ‘공유’하고 ‘협력’하며 나아가 ‘집단행동’에까지 나서고 있다. 특히 과거 미디어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작업에 진출하는 ‘아마추어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도 말 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예전의 ‘소비자’가 아니다. 약간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만 참여하는데도 큰 힘을 발휘하면서 기업의 말을 되받아치고 불만을 당당히 밝히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 책은 현재를 ‘혁명의 시대’로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단한 변화’는 새로운 도구가 도처에 흔해지고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지금, 도구를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혁명의 시대다. 저자는 말한다. “혁명은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가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법이다.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
 
저자는 나아가 혁명적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변화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손해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다. 그것은 카약 조종과 같다. 우리는 약간의 통제력은 갖고 있지만 방향을 되돌리거나 멈출 수 있는 힘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런 도구들이 사회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다.
 
영미권에서 비즈니스 리더십 분야, 커뮤니케이션 분야, 경제·경영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랐던 책이다. ‘변화하는 조직’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을 주고 있는 실용서로도 볼 수 있다. 효율적인 조직과 마케팅 등을 고민하는 CEO나 관리자, 마케터 등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책은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사회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현재와 미래의 트렌드에 대해 명석한 통찰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의 동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송연석 옮김.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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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없는 조직력` 어떻게 생겨났나 (매일경제, 손동우 기자, 2008.07.04 18:02:28)
인터넷ㆍ휴대폰 등 새로운 도구의 등장, 조직비용 `0` 으로 
관계없는 타인들, 같은 목적 위해서 쉽게 모일수 있어
 
  
이젠 `조직 없는 조직력`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인가. 요즘 사회 현상을 잘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느슨한 형태의, 하지만 그 힘만큼은 예전 어느 조직도 따라올 수 없는 무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
 
현재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촛불시위가 바로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최자가 있지만 참가자들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거리에 모여 폭발적인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원제 `Here Comes Everybody`ㆍ송연석 옮김)의 클레이 서키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위와 같은 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모이는 일이 계속 늘어난다는 얘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관리자의 통제 없이 만드는 위키피디아,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비행기 연착 때문에 기업적 차원에서 사과까지 했던 아메리칸항공 등 그가 당장 말하는 사례도 많은 편이다.
 
서키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로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의 이론을 든다. `코즈의 정리`로 알려진 이 이론은 사회적 행동이 집단성을 가지기 위해선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비용보다 목표와 성과가 커야 한다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활동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것. 즉 지금까진 관리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이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조직의 목표나 성과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서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제 코즈가 설정한 조직비용의 하한선은 의미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시작으로 메신저와 블로그, 이메일 등 사회적 도구가 등장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급격히 낮아졌기 때문. 서키는 급기야 조직 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서 예전에는 전혀 발생할 수 없었던 잠재적인 조직, 잠재적인 일들이 코즈의 하한선을 뚫고 올라왔다고 말한다.
 
최근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분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개인에 불과했던 소비자가 이젠 기업에 당당히 맞서는 존재로 바뀐 이유를 서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에는 동기부여가 잘된 의욕적인 소수의 사람만이 행동했던 반면 이젠 별 의욕이 없더라도 목적을 달성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 직접 나서지 않고도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불매운동이나 서명운동에 클릭 한번으로 의견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현대는 새로운 사회적 도구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조직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뿌리부터 변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변화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서키는 이미 이런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단 하나,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에 주목하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이 도구들의 확산에 대해 약간의 통제력은 갖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되돌리거나 멈추거나 하다못해 홱 돌릴 수 있는 정도의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목적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중심을 잃지 않고 몸을 똑바로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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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라! 인터넷과 사랑의 힘으로 (한겨레, 안수찬 기자, 2008-07-04 오후 07:43:42)
‘디지털 혁명’이 대중들 인간성 깨우고 집단행동 이끌어
막대한 비용으로 국가·기업이 조직 관리하던 시대 종말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 지음, 송연석 옮김/갤리온·1만5000원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 지난 5월31일,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의 속뜻은 간단하다. ‘나는 촛불집회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온라인 글을 삭제하고 관련 누리꾼들을 수사하며 시청 앞 광장을 봉쇄하고 시민단체 간부들을 배후로 몰아 구속하는 따위의 대책도 같은 맥락이다. 최초 촛불집회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그들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
 
2년 전인 2006년 5월, 유럽 변방의 신생국 벨로루시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똑같은 일을 벌였다. 독재자인 그가 3선에 성공한 직후, 한 누리꾼(‘by_mob’)이 ‘플래시 몹’(잠깐 동안의 집단 행동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행위)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수도 민스크의 광장에 나와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경찰은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 몇 사람을 잡아갔다. 그러나 일은 더 커졌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올렸다. 이때부터 무수히 많은 시민과 집단들이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을 광장에서 벌였다. 서로 보고 웃으며 그저 광장 주변을 걸어다니는 플래시 몹도 있었다. 이 일은 그해 가을까지 계속됐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의 지은이 클레이 서키는 “비밀 경찰은 무용지물이 됐다”며 루카셴코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을 비꼰다. “개인의 삶을 틀어쥐고 있던 독점적 힘이나 사회를 장악하던 권력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대중은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다.” 그는 사회학·경제학·경영학·언론학 등을 넘나들며 “완전히 새로운 대중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 배경을 분석한다. 그의 탐색을 이끄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거대하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행동’을 어떻게 평범한 시민들이 그리도 쉽게 조직할 수 있는가?
 
여기서 그는 조직 관리의 방식에 주목한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 지난 100년 어떤 일을 조직할 때 제기된 화두는 두 가지였다. ‘국가가 지휘하는 게 최선인가, 아니면 시장의 기업들이 맡는 게 최선인가.’ 그 답을 판가름 짓는 것은 조직 관리의 비용이었다. 사람을 모으고 하나의 방향으로 매진하게 하려면 여러 형태의 비용이 반드시 발생한다.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조직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 또는 기업이 관리하는) 조직 활동의 대안이라고 해 봐야 (조직) 활동을 안 하는 게 고작이었다.”

 

 
»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관리자의 지휘 없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동기를 초월해 활동하는, 구조가 느슨한 그룹이 탄생하여 적은 비용으로도 대규모 조율이 가능해지면서 과거 어떤 조직도 손대지 못했던 진지하고 복잡한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됐다.” 지은이는 조직의 구성 및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의 감소가 “혁명의 원동력”이라고 지적한다. 휴대폰,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정보 공유, 협력, 집단행동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전통적 조직에서는 층층으로 쌓인 위계구조의 어느 층위까지만 정보를 전달한다. 그래야 조직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에 기초한 새로운 조직은 오히려 ‘정보의 공유’를 통해 조직을 확장시킨다. 이 때문에 “어느 때보다 더 거대하고 더 널리 흩어져 있는 공동 작업 그룹이 탄생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 행동이 가능”해졌다.
 
흥미롭게도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공동체적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을 끌어들인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식의 기술결정론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시킨 기존의 조직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에 주목한다. 그것은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사회적 자본’의 힘이다.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픈 이웃을 대신해 그 집 개를 산책시키는 일 따위가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협력하는 습관이 더 강한 그룹의 개인은 그렇지 않은 개인에 비해 건강·행복·잠재수입 등에서 더 넉넉한 삶을 산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도 소개한다.
 
지은이가 명시적으로 지칭하진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또는 ‘코뮌’으로 번역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사회적 도구가 중요한 수단이 되긴 했지만, 이런 도구를 사용하는 ‘전혀 새로운 대중’이 탄생하게 된 것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가 놓치고 있는 인간의 어떤 본성과 관련이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키피디아’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누리꾼들의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대중의 검토를 거쳐 끊임없이 자기 오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런 위키피디아가 존재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위키피디아를 ‘배경 삼아’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클레어 서키가 말하는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언젠가 나에 대한 배려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국가 또는 기업에서는 이런 배려와 기여가 불가능하다. 나의 이익을 포기하는 만큼 타자 또는 조직이 나를 배려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딜레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직에서는 ‘이기주의의 딜레마’가 붕괴한다. “(인터넷과 같은 사회적 도구 덕분에) 서로를 충분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범위로 보나 지속성으로 보나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이룩해낼 수 있다. 사랑으로 큰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비판하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상호작용 방식의 변동을 디지털 혁명과 연관시켜 상세히 분석할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 대목에 이르면 이 책의 메시지가 ‘디지털 코뮌’과 잇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혁명은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회가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2월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Here Comes Everybody'다. ‘여기 모든 이가 달려간다’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그들은 공안정국 따위에 밀려 ‘새로운 행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 상호작용이론 최신 버전들 ‘덤’으로

디지털 혁명에 대한 지적 작업 가운데 많은 경우가 기술결정론이나 마케팅이론에 치우쳐 있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의 지은이 클레이 서키도 원래 정보기술 기업의 컨설턴트였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이례적인 저작이다. 사회학적 패러다임인 ‘상호작용 이론’의 자취가 강하다. 개인의 행위와 그 상호작용에 의해 사회가 유지·변화한다는 상호작용 이론이 이 책의 사회과학적 토대 구실을 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학, 언론학 이론의 최신 버전들을 가미했다. 책 곳곳에서 이를 직접 소개하고 있는데, 관심 있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언론인 출신인 댄 길모어가 쓴 <우리가 미디어>(We the Media)는 디지털 혁명이 새로운 저널리즘의 탄생을 이끄는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멋진 신전쟁>(Brave New War)은 인터넷에 기반한 새로운 미디어가 미국 등의 패권주의 국가에 맞서는 군사세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요차이 벤클러가 쓴 <네트워크의 부>(The Wealth of Networks)는 광범위한 정보 공유에 기초해 사람들이 금전적 보상 없이도 기꺼이 시장 외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다뤘다.
 
클레이 서키가 언급한 저작 가운데 국내에 번역된 것도 있다. <참여 군중>(Smart Mobs)(황금가지)은 이 분야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정보통신 전문가인 하워드 라인골드가 디지털 기구를 갖춘 현대의 대중들이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해 집단행동에 나서는지 분석했다. 제임스 서로워키가 쓴 <대중의 지혜>(랜덤하우스코리아)도 서로 흩어진 개인들이 어떻게 지식과 직관을 모아 더 좋은 해답을 끌어내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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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없는 조직력`이 사회를 바꾸는 시대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2008.07.04 19:36)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 지음, 송연석 옮김, 갤리온, 344쪽, 1만5000원
 
1999년 1월 3일. 디트로이트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승객들이 7시간 머물렀던 사건이 있었다. 폭설로 전날 공항이 폐쇄돼 탑승구가 태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음식은 부족해졌고 변기는 흘러 넘쳤다. 기내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풀려난 승객들은 이후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결국 합의로 해결됐다. 그리고 항공사는 “이름뿐인 고객 서비스안”을 채택했다.
 
2006년 12월 29일. 거의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이었다. 승객들은 권리를 대변하는 그룹을 만들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2월 해당 항공사는 ‘항공승객 권리장전’을 채택했다. 승객들의 분노가 ‘조직 결성’으로 이어졌고, 조직은 순식간에 전국 규모로 확산됐다. 이 문제는 의회에서 다뤄졌으며, 언론에 보도되고, 항공산업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바꿔놓았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도구’가 달랐기 때문이다. 인터넷, e-메일, 블로그, 메신저 등의 새로운 도구를 통해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광범위하면서도 신속하게 뭉칠 수 있었다. 과거에 일방형이었던 미디어가 ‘공유형’을 넘어서 ‘협력형’ 플랫폼으로 진화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적 도구가 ‘새로운 미디어 주체’와 ‘신종 소비자 군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굳이 미국 사례를 들 이유도 없다. 국내에서도 2005년에 일어난 ‘개똥녀’사건을 비롯, 블로그·카페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매섭게 번져나간 ‘집단 행동’이 한 둘이 아니다. 뉴욕대 인터렉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교수인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10년 전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던”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집단 행동의 출현과 그 역동성이다.
 
그는 현재를 “혁명의 시기”라며, 이 원동력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 이론인 ‘코즈의 정리’ 개념도 빌려왔다. 조직을 형성·유지되려면 비용이 조직이 도모하는 목표나 성과보다 경제적이어야 하는데, 과거에 이 비용 때문에 생길 수 없었던 일들이 코즈의 하한선을 뚫고 올라왔다는 것이다. 즉, ‘조직 비용 제로 사회’가 도래해 “완전히 새로운 대중과 새로운 세상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조직 없이도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과거와 다르다. 이른바 ‘조직 없는 조직력’이 생겼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소비와 생산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과거에 특정 그룹에게 독점돼 있던 특정 능력이 대다수 시민에게 주어진 것도 큰 변화다. 의사소통의 신속성 덕분에 ‘사전계획’대신 ‘실시간 조율’이 늘어나 집단행동의 양상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저자가 이 시대를 ‘혁명’이란 부른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사회적 도구들이 “현대사회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상당 부분은 조직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회·정치운동을 염두에 두고 쓴 글 같다. 그러나 저자는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 특히 초점을 맞췄다. 위키피디아·리눅스 등의 사례를 들며 과거의 전통적 위계구조보다는 느슨하고 유연한 조직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저자는 흥미진진하게 변화와 역동을 설명했지만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대안’이나 방향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다만 변화의 “물길을 따라 빠르게 떠밀려 내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낡은 상식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변화”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원제 『Here Comes Everybody: The Power of Organizing without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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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움직인다, 조직없는 조직력에 의해 (한국일보, 장병욱기자, 2008/07/05 02:44:21)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클레이 서키 지음ㆍ송연석 옮김/갤리온 발행ㆍ344쪽ㆍ1만5,000원
 
촛불집회의 향방에 대한 우려가 촛불만큼 뜨겁다. 이것은 한국식 민주주의의 도래인가,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당초 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추모의 형식으로 시작된 촛불 집회는 온 ? 오프 라인을 휩쓸며 엄청난 동력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제목은 그 과정을 압축한다. 미증유의 ‘대중’이 탄생한 것이다. 10년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현대 세계는 ‘조직 없는 조직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2006년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조직적 항의 앞에 결국 공식 사과해야 했던 HSBC(홍콩-상하이 은행), 무단 회항 사건이 시민 서명 운동으로까지 비화해 CEO가 사임해야했던 아메리칸 항공 등의 사례는 얼굴 없는 다수의 위력을 절감케 했다. IBM 등 첨단 기술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인재들이며, 그들 불특정 다수의 의견은 기업을 움직인다. 인기 웹사이트인 ‘위키피디아’ 백과 사전은 다수의 분산 협업이 이뤄낸 대표적 성과물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조직이 없이도 강력히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Here Comes Everybody’가 원제인 이 책은 새 개념의 대중이 만들어가는 사회상을 펼쳐 보인다.
 
한 소비자가 웹에 올린 소박한 의견이 무수한 댓글을 유발하고 언론의 관심을 끈다. 이어 관련 회사나 단체들은 블로그에 링크를 걸고, 사람들은 기부금ㆍ서명ㆍ전화 걸기 등으로 응답한다. 이제 문제의 회사가 사죄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새로운 혁명’은 그렇게 진행된다.
 
이 책은 2006년 뉴욕타임스 기자의 취재원 보호 사건 등 커뮤니케이션을 두고 최근 세계에서 벌어진 사례들을 예화로 제시, 생생한 접근법이 돋보인다. 한물간 뉴스가 시간이 지난 후 특종으로 돌변하는지, 정보의 병목 현상과 뉴스의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뉴스 제작 방식은 어떻게 변하는지 등 혁명적 변화에 직면한 커뮤니케이션 산업의 속사정도 해부한다. 비즈니스월드 지는 이 책을 두고 ‘Real World 2.0’이라며 책의 분석력과 예측력을 높이 샀다.
 
이 책은 갤리온 출판사가 학문의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의들을 일반의 언어로 소개하는 ‘크리에이티브 클래식’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이어 <클루자 ? 인간 마음의 우연적 구성>, <미러링 피플 ?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등이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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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12:16 2008/07/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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