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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전도사 장영희 교수의 별세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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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밤에 연합뉴스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장영희 교수. 예전에는 장애인으로 평생 목발에 의지하여 살아왔고, 암 때문에 고생을 했던 그가 왜 조선일보에 글을 쓰나 못마땅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것이 매명이 아닌 바에야 뭐라고 할 건 아니고...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만한 『내 생애 단 한번』을 헌책방에서 사놓은지 꽤 되었는데,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에세이을 읽을 여유조차 내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각박하게 사는 것인지...
 
장영희 교수는 희망 전도사, 희망의 메신저라고 불리웠다. 그가 일부러 그렇게 되고자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기 승리를 일궈온 삶 자체가 그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희망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아마 그러하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시사저널은 장 교수와 무슨 연관이 있기에 커버스토리로 다루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희망이라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규석의 만화 '천사의 죽음'을 보고서도 거기에 공감을 했다. 그 희망이라는 게 어쩌면 가진 자들이 불어넣는 허위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장영희 교수는 희망을 다르게 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리 열심히 제대로 사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삶 자체가 내 자신은 물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훨씬 더 좋은 조건이잖아.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고...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내 생애 단 한번』을 읽어야겠다. 어머니께만 장영희 교수가 이런 책을 썼다고 하면서 읽어보시라 권유할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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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같은 삶’ 이야기로 남기고… (연합뉴스, 노형석 기자, 2009-05-10 오후 06:31:01)
장영희 서강대 교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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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불꽃같았던’ 에세이스트 삶…장영희 교수 별세 (경향, 한윤정기자, 2009-05-10 17:44:02)
 
‘내 생애 단 한 번-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57·영문학)의 삶은 자신의 에세이 제목과 닮았다. 한 살 때 앓은 중증 소아마비로 평생 목발에 의지해 살았으며 암을 세 번이나 앓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로서 그는 문학이란 든든한 버팀목에 기대어 그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많은 독자와 제자, 이웃들로부터 사랑받는 삶을 살았다. 그가 지난 9일 낮 12시50분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장애를 의식하지 못했을 만큼 씩씩했던 그에게 2001년 병마가 찾아왔다. 당시 유방암 진단을 받고 1년 만에 완쾌했으나 2004년에는 척추암이 재발했다. 다시 2년간의 항암치료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1년 만에 암 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 고통스러운 투병생활도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장 교수는 지난 4월 말까지 두번째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원고를 손질했고, 눈 감기 하루 전 혼수상태에서 완성된 책을 받았다.
 
그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 …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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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당신의 영전에 ‘승리의 월계관’을 (한겨레,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2009-05-11 오후 07:33:51)
장영희 서강대 교수
장애·병마로 얼룩진 인생마라톤 ‘역주’
희망의 이름 ‘장영희’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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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전도사’장영희의 남겨진 꿈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감명국)
장애인으로서 암 투병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활발하게 후학들을 가르치고 집필 활동을 해온 장영희 교수. 그녀는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낼 ‘찬란한 유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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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천이 되어준 가족의 힘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김지혜)
부모의 헌신이 큰 버팀목 구실…아버지와 약속 지키려 투병 중에도 교과서 작업 매달려 
 
밝고 긍정적이었던 그녀의 삶 자체가 힘든 사람들에게 저절로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원천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분신과도 같았던 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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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포기하지 마 뼈만 제대로 추리면 살아”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조철)
고통에 굴하지 않고 ‘희망’ 전파했던 고 장영희 교수의 글들 
 
유방암 판정을 받았던 2001년 전까지 장교수는 장애에 대해 편견이 깊은 나라에서 긍정적이고 당당한 삶을 살아낸 ‘장애인 장영희’의 진솔한 이야기로 갈채를 받았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못 쓰는 그녀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라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임을 전했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남긴 글들은 ‘향기로운 꽃 폭죽이 터지듯’ 많은 사람의 감성을 적셨다. 아픔이 오래 묵으면 지치련만 장교수는 고통을 미소와 여유로 전환시키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아픈 이들에게 그녀는 “질시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용서가 더욱 귀중하고, 죽음이 있어서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실연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더욱 귀중하고, 눈물이 있기 때문에 웃는 얼굴이 더욱 눈부시지 않는가. 그리고 하루하루 극적이고 버거운 삶이 있기 때문에 평화가 값지고,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라는 글로 위로했다.
 
그녀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을 묶으면서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삶을 살아가는 데, 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하며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고,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라고 말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인간에게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장교수는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라며 문학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녀는 한 매체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영미시 산책’이라는 코너에서 ‘희망’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희망은 우리의 영혼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습니다. 행복하고 기쁠 때는 잊고 살지만, 마음이 아플 때, 절망할 때 어느덧 곁에 와 손을 잡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입니다. ‘아니 괜찮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닐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그칠 줄 모르고 속삭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가 삶에서 공짜로 누리는 제일 멋진 축복입니다.”
 
장교수는 ‘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시 구절이 인상 깊었다면서 길을 찾아 헤매는 독자들과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살아보니 인생은 일사천리로 쭉 뻗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숲 속의 꼬불꼬불한 오솔길도 지나고, 어디 봐도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광야도 지나고, 빛줄기 하나 없는 터널도 지납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도 나옵니다. 하지만 헤매본 사람만이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끝까지 해보라’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삶은 예측불허. 진흙탕 길도 끝까지 가면 씽씽 잘나가는 고속도로로 연결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내게 힘이 되는 말’ 중에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라는 말을 띄우고는 덧붙여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길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장교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에필로그의 마지막 대목은 그녀의 유고를 암시한 듯 독자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언젠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느 학생이 내게 물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에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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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너무 순수해서 눈부셨다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의 ‘장영희 회고’ / 장애인 문학인으로서 나의 중요한 ‘역할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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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2 02:41 2009/05/22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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