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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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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 3집에는 좋은 노래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사랑노래'입니다. 백무산의 시에 신지아가 곡을 붙였습니다. 신지아는 나중에 노찾사에서 나와 솔로로 아카펠라 음반을 내기도 했지만,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1991)에서는 권진원이 불렀습니다. 이후에 신지아의 아카펠라 음반과 권진원의 독집음반에도 실려 있는데, 제 각각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귀에 익숙해서인지 노찾사 3집에 실린 권진원의 곡이 낫더군요.
 

사랑노래
백무산 시/신지아 곡/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
 
뿌연 가로등 밤 안개 젖었구나
사는 일에 고달픈 내 빈손
온통 세상은 비 오는 차창처럼
흔들리네 삶도 사랑도
 
울며 떠난 이 죽어 떠난 이
나도 모르게 떨리는 가슴도
하나 없어라 슬픈 사랑노래여
심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
 
공장불빛은 빛을 바래고
술 몇잔에 털리는 빈 가슴
골목길 지붕 어두운 모퉁이
담장에 기댄 그림자 하나
 
어떻게 하나 슬픈 사랑들아
뭐라고 하나 털린 가슴으로
하나 없어라 슬픈 사랑노래여
심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
 
 
이 사랑노래도 민중가요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유하기 좋은 노래입니다. 시에다가 곡을 붙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백무산 시인은 그렇지 않지만, 백무산 시인의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1988)에 있는 시를 가지고 이런 풍의 노래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이건 신지아의 공으로 돌려야겠지요. 백무산의 시집을 읽었을 때에도 곡을 따온 '김씨의 사랑 노래'가 딱히 맘에 든 것은 아니었는데, 노래를 듣고 나서 접하니 또 다르더군요.
 
아카펠라 음반에 실린 신지아의 노래는 아니지만, 피아노 한대만으로 이루어진 반주가 나오는 가운데 신지아가 부르는 라이브도 들을 만합니다. 물론 신지아의 노래는 반주 없이 아카펠라로 부르는 버전이 더 낫긴 하지만...
 
이 노래를 모 인사의 추모곡 비슷하게 여기면서 부르는 이도 있지만, 저는 그냥 그대로 사랑노래로 부르고 싶네요.
 

신지아 라이브 - 사랑노래
 
백무산 - 김씨의 사랑 노래
  
   밤안개 젖었구나
   뿌연 가로등
   사는 일이 고달퍼라
   빈 손으로 돌아가는 가슴 아픈 시간
   공장의 불빛도 빛을 바래고
   
   새벽에 집 나올 때
   등에 와서 박히는
   식구들의 밥 걱정 집세 걱정
   공장에서 쫓겨난 후 여기 저기
   일자리 툇자놓고 툇자맞고
   아흐레 일한 공사판에
   밀린 노임 받으려다 책상만 엎어 버리고
   막걸리 몇 잔에 털리는 가슴
   뭐라고 하나 식구들에게
  
   어허, 세상은 비오는 차창처럼
   흔들리네 삶도 도시도 사랑도
   울며 떠난 이들, 죽어서 떠난 이들
   털리는 가슴도 나도 몰라라
  
   골목길 스레트 지붕 어둔 모퉁이
   두 남녀 봇짐 하나 껴안고 잠들고
   담장 아래 기대선 그림자 또 하나
   어떻게 하나 슬픈 사랑들아
   뭐라고 하나 털린 가슴으로
   덕지덕지 누더기 이리저리 기운 노래
   어둔 밤 긴 밤 숨죽여 흐느끼던 밤
  
   오호라 털려라 털려라
   이 시대 슬픈 사랑노래여
   바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
   털려라 털려라 왕창 털려라.
 


예전에 김상봉 교수(그 때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 사무처장이었지요)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시와 수능시험' (한겨레, 김상봉, 2001.11.09)에서도 사랑노래가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제시되었지요. 
  
언젠가 경향신문의 독자와 함께하는 인터뷰에 나온 신경림 시인은 그 인터뷰에서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가 '남을 위해 쓴 시로는 거의 유일한 시’라고 말했습니다. 도피중인 노동운동가가 있었는데, 그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답니다. “아무리 도피중이라지만 사랑하면 결혼하라고 했지. 내가 장소도 알아보고 주례도 서주고 할테니 암말 말고 그렇게 하라고 했어.”
 
지하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그 젊은이를 위해 신경림 시인은 축시 ‘너의 사랑’을 썼다죠. 그 시를 써놓고 자신이 읽어봐도 행복해서 한 편 더 쓰자, 그렇게 쓴 시가 ‘가난한 사랑 노래’라고 합니다. 이 시에다 노랫말을 붙여도 참 좋을 듯 합니다.
 
신경림 -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모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사랑노래'라는 게 직설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인들이 '사랑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시에는 다들 젊었을 때의 고민과 방황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그리울 때 사랑을 찾게 되는데, 그들도 그런 마음에 이들 시를 썼겠지요. 하지만 사랑시보다는 역시 사랑노래가 좋습니다.
 
김용택 - 사랑노래 5
 
   마음의 끝을 보고 걸어서
   마음의 끝에 가면
   한쪽 어깨가 기울어
   저뭄에 머리 기대고 핀
   외로운 들꽃 하나 보게 되리
   팍팍하게 걸어온 저문 얼굴로
   헐은 어깨 기울이면
   야윈 어깨 기대오던 저문 그대
   마음의 끝에 서서
   저뭄의 끝에 기대섰던 우리
   마음의 끝을 적시며
   그대는 해지는 강물로
   꽃잎같이 지고
   한쪽이 쓸쓸한 슬픔으로
   나는 한세상을
   어둑어둑 걷게 되리
 
황동규 -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백창우 - 사랑노래 2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중에서)
 
   네가 내게로 와
   네 가진 사랑의 말들을 나눠주었듯
   나도 네게로 가
   내 가진 노래들을 들려주고 싶구나
   때로는 살아간다는 것이
   몹시 외롭기도 하지만
   네가 있기에
   네가 있기에 아직은
   견딜 만하지
   네가 내게로 와
   내 가진 절망들을 만져주었듯
   나도 네게로 가
   네 가진 슬픔들을 보듬어 주고 싶구나
   때로는 살아간다는 것이
   몹시 막막하기도 하지만
   네가 있기에
   네가 있기에 아직은
   견딜 만하지
   네가 내게로 와
   어둠 차 있는 내 마음에 등을 켜주었듯
   나도 네게로 가
   너를 비추는 별이 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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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03:42 2009/06/14 03:42

4 Comments (+add yours?)

  1. 서울비 2009/06/14 07:04

    저도 이 노래 가사 너무 좋아해요 ㅠ

     Reply  Address

  2. 박군 2009/06/14 07:57

    좋아요

     Reply  Address

  3. 마성은 2009/06/15 01:34

    아, 백무산! 아, 백창우!

    그리고

    어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가난한 사랑노래>를 읊조렸는데, 새벽길 님 블로그에서 곧바로 다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갑네요.^^

     Reply  Address

  4. 새벽길 2009/06/15 14:48

    이 노래 좋아하는 분들이 많지요. 나온지 18년이 되었는데...
    역시나 사랑이라는 주제의 보편성 땜에...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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