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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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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서 일어난 재난을 어떻게 봐야할까. 아니 신뢰할 만한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것 말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종교단체들이 구호선교를 떠난다고 하고, 돈 있는 이들이 엄청난 기부를 한다는 소식에 짜증이 난다. 왜 힘든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일까. 이를 하나님의 천벌이라고 떠드는 넘들에게는 왜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인지...
 
아이티에 있는 이들은 국가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은 작동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이번 아이티의 재난은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고 한 하이에크와 그의 똘만이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외국군대가 국가를 대체하고, 민중들은 정부 대신 외국의 구호단체를 더 신뢰하는 상황. 이런 상황을 사회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아이티의 재난을 보면서 작년에 읽었던 아리스티드의 책을 떠올렸다. 아리스티드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평가가 갈리고 있지만, 적어도 그 책에 쓰인 내용만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도 좋을 성 싶다. 그 책을 읽고 아이티의 민중들을 믿었는데,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진 아이티의 현실은 여기에서 비켜난다. 『가난한 휴머니즘』도 어느 정도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가능하다는 건가. 아니, 그 만큼 이번 재난이 엄청나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는 아이티 관련기사를 보기도 두렵고... 빨리 수습이 되었으면....
  

“정부 어디갔나” 성난 아이티… 약탈극·맨손 구조에 분노 (경향, 구정은 기자, 2010-01-15 18:10:09)
ㆍ시신으로 길 막고 항의
 
“전 대통령 돌아오라”… 정권마저 흔들 (경향, 김향미 기자, 2010-01-15 18:00:25)
ㆍ사흘만에 나타난 대통령조차 나몰라라
ㆍ미, 구호 앞세워 본격 개입… 정국 변수

 
아이티 정부는 피해 상황 파악은 물론 체계적인 구호작업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구호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할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지진 발생 이틀째까지 행방이 묘연해 논란이 됐다. 14일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에 레오넬 페르난데스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프레발 대통령은 “이미 집단 매장지에 7000명의 시신을 묻었다”고 말했을 뿐 구호활동 계획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구조 활동을 이끌어야 할 정부 관리들 역시 지진 피해 현장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200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추방된 장 베르트랑-아리스티드 전 대통령(56)의 조속 귀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이티인들은 여전히 아리스티드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다고 아이티 언론들을 인용해 AFP통신이 전했다. 전문가들도 아리스티드는 여전히 빈민층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어 그의 귀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리스티드는 15일 자신이 고국의 재건을 돕기 위해 귀국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조국의 재건을 위해 오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내일쯤 아이티인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어딨나”…성난 민심 폭동 직전 (한겨레, 포르토프랭스/권태호 특파원, 2010-01-19 오전 08:20:12)
[아이티 지진참사] 권태호 특파원, 포르토프랭스를 가다
구호품 실은 차량마다 주민들 몰려 통제불능
대통령궁 앞서 총격도…아이티 비상사태 선포
 
 
이날 봉사회는 직접 나눠주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이 물품을 아동병원과 채리티 고아원에 나눠줬다. 별도로 병원에는 링거 1만3000병 등 3만달러어치의 의약품을 전달했다. 구호단체들이 가급적 직접 전달하려는 이유는 아이티 정부가 무정부상태여서 ‘당국자’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지난주 이후 외신과 인터뷰를 하거나 국제사회에 호소를 하고 있는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주말에도 아이티를 찾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을 직접 만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한번도 재난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국민들을 상대로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전했다.
 
1월말까지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포르토프랭스 중심부에선 물과 음식 등 생필품 부족에 지친 아이티인들이 폭동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대통령궁 앞에서는 헬기로 구호물자를 나눠주다 물품을 서로 차지하려는 이들이 싸우면서 총기와 칼이 난무하는 준폭동 상태까지 일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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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를 읽고 2009/08/14 21:47:16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이부두 옮김. 2007.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이후. Jean-Bertrand Aristide. 2001. Eyes of Heart: Seeking a Path for the Poor in the Age of Globalization. Common Courage Press c/o James Bier, Tucson.
   
YES24의 책소개
젊은 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가톨릭 신부였던 아리스티드는 아이티 사람들을 짓누르던 뒤발리에 부자의 30년 독재를 끝내면서 아이티의 대통령이 되었다. 네 번이나 대통령이 되었으나 네 번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한 불운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아이티 국민들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 문맹률이 높은 아이티에서 그이가 날마다 받는 편지는 엄청나다. 아리스티드는 사람들의 편지 속에 담겨 있는 열망과 소망에 대한 대답을 『가난한 휴머니즘』에 아홉 통의 편지로 갈무리했다.
 
아리스티드는 이 책이 “쓸 줄 모르는 아이티의 형제자매들 대신 쓴 편지”라고 말하며,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짤막한 아홉 통의 글을 마음으로 읽어 줄 것을 부탁한다. 이 책은 점점 암울한 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가난한 나라들과 엄청난 부를 쌓으면서 뒤돌아볼 줄 모르는 부유한 나라들의 현실을 설명하려 한다. 단순하면서도 쉽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면서도 선언적으로, 암울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다음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아리스티드의 설득력 있는 글은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표현 그대로, ‘가장 차가운 심장도 녹일 정도로 감동적’이다.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어디선가 추천하는 글을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이다. 읽기 전에는 전직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가톨릭 신부의 책을 읽는다는 게 별로였다. 하지만 143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글이 나를 사로잡았고, 읽은 후부터는 쉽고 짧게 세계화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차분하게 얘기하는 아리스티드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를 통해 전해지는 지식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감동은 있다. 물론 이 책이 얘기하는 ‘존엄한 가난’, ‘자발적 가난’에 대해서는 전부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단지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 배부른 자의 얘기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뜬구름 잡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와 지금의 아이티를 보면 세계화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쯤되면 반미ㆍ반제국주의 슬로건이 당연한 것으로 다가온다. 분명 아이티와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반추할 수 있지 않을까. 아래에 인상 깊었던 글귀를 옮겨오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책 전체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책머리에 : 가난한 벗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저렇게 적게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무런 길이 없는 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아무런 길도 없는 곳에서 이 가난한 민중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제3의 길’입니다. (14쪽)
 
첫 번째 편지 - 부자는 더 부유하게,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경제적 위기의 이면에는 인간의 위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이 있고, 권력자나 정책 입안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을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 버린 영혼의 결핍이 있습니다. 상상력의 위기가 너무나 깊은 탓에 이윤만이 유일한 가치의 척도가 되어 버렸고, 경제적 성장만이 인류의 진보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아직 먹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라는 사회적 합의에조차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위기입니다. 믿음의 위기입니다. (20쪽)
 
두 번째 편지 - 누가 크리올 돼지를 죽였는가?
 
우리의 두려움은 지구적 시장이 예전의 우리 시장을 모조리 없애고야 말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더 효율적이다.” “당신네들의 시장, 당신들의 삶의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묻습니다. “모든 거래를 숫자로 환원시킬 때, 당신들이 인간적인 것을 모두 사라지게 했을 때,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26-27쪽)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무역은 그렇게 자유롭지도, 그렇게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은 국제 금융 기구의 강력한 비호 아래 쌀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증가할 수 있었으나 아이티는 자국 농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안 그래도 배고프던 나라가 더욱 허기지게 된 것입니다. (28-29쪽)
 
1995년 미국 ‘원조처’의 처장은 의회에서, “모든 개발도상국에 원조하는 달러의 84%는 다시 미국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쓰임으로써 미국 경제에 되돌아온다”고 증언하여 원조국을 변호할 수 있었습니다. … 1995년 부채가 극심한 저소득 국가들은 빌린 돈보다 많은 10억 달러 이상을 IMF에 원금과 이자로 지불했습니다.
이익이 늘어나고 있다고,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수백만 달러의 원조금을 너희 나라에 쏟아 붓고 있다고 엄지손가락(선진국)이 새끼손가락(후진국)에게 말하는 내내, 새끼손가락은 날마다 더 깊은 비참함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이익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누구의 경제가 성장한단 말입니까? 과연 누구를 위한 원조란 말입니까? 지구적 자본주의의 논리는 새끼손가락에게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30쪽)

1980년대 아이티 토종 돼지가 전멸했던 역사는 지구화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많은 농민들에게는 크리올 돼지의 전멸이 그들이 겪은 최초의 지구화였습니다. 오늘날 아이티 농민들은 ‘경제개혁’이나 민영화가 그들을 이롭게 하리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이해할 만하기는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31-33쪽)
 
세 번째 편지 - 나는 주스가 더 좋아요
 
아이티 사람들의 풍요로움을 보기 위해서는 문화적 요인을 고찰해야만 합니다. 풍부한 유머, 온화한 성격, 곧잘 터져 나오는 웃음, 품위, 연대감 따위들 말입니다. … 대부분의 아이티 사람들은 방대한 비공식적 경제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아직도 도시 노동인구의 70%가 그런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으며,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아이티에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부자입니다. 아이티에는 영혼의 부유함이 있고, 그곳에서 제3의 길이라는 에너지가 발원합니다. (44-45쪽)
 
우리가 사람들을 결집시키려면 소요를 일으켰다고, 폭력을 조장했다고, 시위를 벌였다고 고발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감수해야 할 위험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우리들이 분노와 좌절, 자포자기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평화를 위해 집단적으로 결집하도록 해 주십시오. 체념하면서 죽는 방법과 폭력적 폭발을 통해 죽는 방법, 이 두 가지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단적 결집이 바로 제3의 길입니다. 이것은 인간 에너지의 어쩔 수 없는 집중입니다. 우리에게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만은 충분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집시킬 수 있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 기술과 에너지, 그리고 힘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창조성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49-50쪽)
 
네 번째 편지 - "기브 미 초콜릿"
 
어느 날은 두 미국인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미국인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구문인 “기브 미 워터”를 반복하게 했습니다. 잘 따라 하는 아이들에게는 초콜릿을 주었습니다. 베르토니를 시키자, 그 아이는 “기브 미 초콜릿”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너는 ‘기브 및 워터’라고 하지 않니?” 하고 미국인들이 묻자 베르토니는, “누가 내가 목마르다고 하던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58쪽)
 
다섯 번째 편지 - 뱃속 평화와 머릿속 평화
 
열세 살 먹은 세 명의 소녀가 쓴 민주주의에 관한 논평을 보면, “민주주의란 음식과 학교, 보건을 누구나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해 놓았습니다. 아이티 어린이들에게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의 필요와 권리를 우리들 노력의 중심에 놓도록 요구합니다. 이것은 사람에 투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에 투자한다는 것은 먼저 음식과 깨끗한 물, 보건에 투자한다는 뜻입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입니다. 어떤 실질적 민주주의도 이 모든 것을 보장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급속히 진행되는 경제 세계화는 민주주의의 위험을 빠르게 앞지르고 있습니다. 이론은 좋지만 당면한 세계적 경제 관계에는 부적절한 민주주의가 부유한 나라에서나 가난한 나라에서나 서로 갚은 것이라면, 우리 민주주의의 개념과 실제는 크게 도약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해야만 합니다.
민주주의를 사 년 혹은 오 년마다 치르는 선거와 혼동하지 맙시다. 선거란 우리 체계의 건강을 측정해 보는 하나의 시험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날마다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정치의 모든 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일상적인 참여만이 민주주의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고 국가와 사회를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대로 만들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습니다. (69-71쪽)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방법은 각 나라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균형과 견제, 이 둘 모두를 얻고자 하는 각 공동체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선출된 지도자의 잠재적 배신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해야 합니다.
피통치자들은 통치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국민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할 때,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 국민은 배제된다면, 그 결정은 종종 국민의 이익에 맞서기 마련입니다. (72쪽)
 
“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 아이티 같은 나라의 경우,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만 주고 그들을 말하지 못하게 놓아둔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단지 말만 들려준다면, 그것은 선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참여가 없는 정치적 참여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73쪽)
 
여성, 어린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역사의 객체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반드시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아야만 하고 권력의 전당을 가득 채워야만 합니다. 그들이 뽑은 지도자와 이야기할 수 있고 해명을 촉구할 수 있는 라디오와 전파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참여가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것이고, 민주주의라는 말을 원래 그 충만한 의미로 되돌릴 것입니다. (77쪽)
 
여섯 번째 편지 - 우리는 존엄한 가난을 원한다
 
경제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은 땅과 나무와 흙, 땅에서 수세대에 걸쳐 살아온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원조 프로그램이 우리의 자연 환경을, 땅에 의존해 살아온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 기대할 수 있나요? 1달러당 84센트가 원조를 제공한 나라에 다시 돌아간다면, 이 나라의 농민과 물을 위해 쓸 돈은 도대체 몇 푼이 남는 셈입니까? 물과 흙을 붙잡아 둘 나무에 쓸 돈은 또 몇 푼입니까? (91-92쪽)
 
아이티 정부가 국제기구의 지시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프로그램에 따라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맴돌 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리는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 이끌 것이라 봅니다.
이것은 자존을 위한, 생존은 위한 전략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한 번도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거시 경제 현실에 맞서 항상 취해 왔던 전략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민간 분야가 공공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기 위해 국가를 허약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협동조합을 통해 공공 서비스에서 나오는 어느 정도의 이익을 보전할 수도 있습니다. 인적 자원을 국가적으로 운용하지 않는다면 ‘경제의 힘’과 ‘사람의 힘’ 사이의 균형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 나라 아이티에서 ‘사람의 힘’이란 곧 거대한 빈민층을 말합니다. (92-93쪽)
 
1991년의 쿠테타는 1%의 특권층이 빈민층의 국가적 운용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그 1퍼센트의 사람들은 테이블 아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테이블 위에 올라서 있는 그들을 보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시테솔레이유(아이티 빈민구역)에 사는 그들을 두려워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비참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농민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이 더 이상 변두리 아웃사이더인 ‘무앙 앙데요’가 되기를 거부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지금까지 글을 모르던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크리올어를 쓰던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어 더 이상 열등감을 갖게 될 이유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대통령 관저에 발을 들여 놓을까봐, 거리의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놀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1%의 사람들은 저를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말이 가난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합니다. (94쪽)
 
일곱 번째 편지 - 나는 소망한다, 우리 영혼에 한 줌의 소금을!
 
젊은이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제3의 길입니다.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만 돼도, 또 그들이 가난한 학생들이라 해도 이 나라 아이티에서 그들은 이미 특권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받는 교육은 교묘하면서도 교묘하지 않게 그들 스스로를 문맹자들이나 그들 부모와 분리시키게 만듭니다. 이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체험은 그 자체로 이러한 ‘분리’를 넘어서도록 도와줍니다. (103쪽)
 
“지식은 상품이 아니다.” 지식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여러 사명 가운데 아주 핵심적인 사항인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107쪽)
 
여덟 번째 편지 - 배고픈 영혼을 치유하는 길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일련의 싸움들은 바로 초월적인 존재와 접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라 부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이미 ‘그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는 단단한 바위 위에 올라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기계는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 자본과 언어와 논리의 병기고가 뿜어내는 위세는 멈춰 세울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신념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그 기계에 압도당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념이 없었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우리에게 위대한 힘을 가져다줍니다. (114-115쪽)
 
저에게는 아이티 민중들의 채워지지 않는 기대를 마주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입니다. 먹을 것과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더구나 자신이 그것을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런 상황에서는 오직 진리만이 그들의 신념을 먹여 살릴 것입니다. (118쪽)
 
우리는 방문객들의 연대를 환영하며, 그 연대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들이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아이티를 바로 본다는 데서 용기를 얻습니다. 방문객들은 비참한 현실과 열악한 도로, 벌거벗은 숲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중의 힘과 존엄, 이 땅의 아름다움, 그리고 풍부한 문화까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124-125쪽)
 
아홉 번째 편지 - 당신에게 보내는 아이티의 특별한 초대장
 
“더 인간답고, 더 안정적이고, 더 정의로운 세계를 창조할 시간이 왔다. 모든 곳에서 빈곤을 없애는 것은 인류연대의 참여나 도덕적 책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실제로도 가능하다. 빈곤을 없애는 데 드는 비용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 세계 경제 전체 수입의 1퍼센트 정도면 충분하다. 많다고 해도 최빈국들을 제외한 나라들의 수입의 2, 3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빈곤을 없애는 일은 그렇게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거기에는 우리가 감수해야만 할 위험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위험을 떠안아야만 합니다. 위험을 떠안기 위해서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미지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 지금 보이는 것들을 가로질러 갈 수 없다면, 당신의 회의,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에 봉착하고 말 것입니다. 신념은 당신이 믿음을 가지고 위험을 떠안을 수 있도록 당신을 무장시켜 줄 것입니다.
당신께 우리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아이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 덕에 도전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신념, 이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 세계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신념을 나눠 가지도록 당신께도 초대장을 보냅니다. 저와 당신은 함께, 같은 손의 손가락처럼 이 새로운 세기에 더 인간다운 세계를 만들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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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15:07 2010/01/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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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군 2010/01/23 02:34

    진짜 부지런하신 듯.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는 교과서 읽기도 바뻐서 읽고 싶은 책 목록만 쌓여가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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