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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실패자 보호해야, '기업가 정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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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안철수 교수를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직은 직접 면전에서 보지 못했지만,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관련 인터뷰를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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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패의 요람' 돼야"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9-03-20 오후 8:31:24)
안철수 "실패자 보호해야, '기업가 정신' 산다"
 
안철수 KAIST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혁신을 독려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영자, 대학 교수 등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려 했던 이력이 그의 이야기에 힘을 싣는 까닭이다. 
 
20일 서울 수송동에 있는 희망제작소 세미나실 희망모울에서 안철수 교수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강연했다.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과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희망제작소 창립 3주년 기념 특별강연 가운데 하나로 마련된 행사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안 교수는 용어의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가'를 한자로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企業家, 起業家, 機業家. 모두 우리말로는 '기업가'라고 읽는다. 언론에서는 '企業家'를 주로 쓴다.
 
하지만, 안 교수가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서 기업가는 '企業家'가 아니라 '起業家'다. 안 교수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면, 서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起業家'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듣는 쪽에서는 '企業家'로 받아들였다는 게다. 안 교수는 '企業家'는 영어로 'Business man'이며, '起業家'는 영어로 'Entrepreneur'라고 했다. '企業家'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을 뜻하며, '起業家'는 새로운 가치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 안 교수가 이야기하는 '起業家(entrepreneur)'는 꼭 창업자나 발명가만 뜻하는 게 아니다.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면 '起業家(entrepreneur)'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企業家(business man)'들, 특히 대기업에 있는 '企業家'들은 시장에서 이미 확보한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 탓에 '起業家(entrepreneur)'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기업 사장들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해야 한다고 나서면, 웃음이 날 수밖에. 안 교수는 "비즈니스 친화적인(business friendly) 것과 기업가 정신은 전혀 다르다. 이 두 가지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라고 거듭 이야기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만 강조하기에는 한국 경제 환경이 척박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치를 대가가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안 교수 역시 이런 지적을 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실리콘 밸리를 예로 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이 점을 외면하면, 우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성공한 기업을 더 키우기에는 실리콘 밸리 문화가 적절치 않다. 실리콘 밸리 문화의 강점은 실패한 기업가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도전하는 기업가가 많이 나오려면, 성공 사례를 선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장밋빛 미래만 꿈꾸다 더 비참한 처지로 떨어질 수 있다. 다양한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실리콘 밸리 문화에 장점이 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 실패 사례를 널리 알리고 여기서 교훈을 얻는 문화가 있다는 게다.
 
그렇다면, 문화를 바꾸면 침체된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실패자에게 회복할 여유를 주고, 재도전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망이다. 이런 안전망이 한국에는 없다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실패자가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실패의 요람'이 돼야 한다"고 했다. 도덕적인 기업가가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 경우에 대해서는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 경험이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과 실패자에게 기회를 주는 '사회 안전망'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안 교수는 "20대 젊은이가 사업하다 실패하면, 평생 '금융사범'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기업가 정신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물론, 기업가 정신을 짓누르는 짐은 그밖에도 많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기 힘든 거래 관행이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값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 취급당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 대기업이 시장지배력을 통해 납품가격을 일방적으로 정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안 교수는 "(납품) 가격 문제만 들여다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납품 가격을 정하는 과정의 앞과 뒤에 있는 절차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대기업은 납품 계약을 서류가 아닌 구두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대기업이 약속을 어겨도 중소기업이 따질 수 없다. 설령, 계약서류가 있다 해도,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을 가로막는 다른 장벽이 있다. 이런 점을 허무는 것이 공정한 납품 가격을 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곁들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약이라는 것을 맺도록 했다. 당시 이런 협약이 제대로 지켜질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협약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협약 체결 당시에 협약 준수 가능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을까. 방법이 있다. 대기업의 인사 평가 기준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의 인사 고과가 1년 단위 수익으로 매겨지면,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영자가 설령 중소기업과 상생할 의지가 있다 해도, 실무자들은 중소기업을 쥐어짜게 돼 있다. 중소기업은 망하건 말건, 당장 원가를 낮춰야 승진에 유리한 구조에서 어느 실무자가 중소기업을 보호하려 하겠는가. 진정으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꾀한다면, 대기업 인사 평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벤처기업을 운영한 경험 때문에 그는 대기업이 벤처·중소기업을 쥐어짜는 사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게 이윤을 최소한만 보장한다. 그런데 계약 체결 과정에서 대기업 실무자가 중소기업에 '집에서 쓸 프린터가 필요하다'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요구를 들어주고 나면, 그나마 남은 이윤도 사라진다. 중소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기업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사슴들이 사는 곳에 사자들을 풀어 놓았다. 한동안 사자들은 포식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사슴이 멸종하고 나면, 사자끼리 서로 잡아먹는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자 한 마리는 결국 굶어죽는다. 기업 생태계도 이와 비슷하다. 현재 구조에서 대기업은 당분간 성장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게 돌아갈 이익을 챙긴 대가로 몸집을 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씨가 마른 뒤에도 대기업에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쥐어짜며 성장한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다 망하고 나면 결국 망하게 돼 있다. 대기업이 먼 미래에도 생존하고자 한다면,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국가 경제 전체를 위해서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더욱 절실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기업이 고용하는 인원이 150만 명 이상이었다. 최대 200만 명으로 잡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지난 뒤에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수가 130만 개도 안 된다. 문제는, 대기업의 규모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음에도 일자리가 줄었다는 점이다. 공장의 해외 이전, 경영 혁신 등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부가 대기업더러 아무리 투자하라고 종용해봤자 소용이 없다. 대기업 일자리는 더 늘어나지 않는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중소기업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신규 창업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찾아 고쳐야 한다.
 
중소기업에 살길을 열어서 신규 창업을 활성화하는 게 절실한 이유는 꼭 일자리 때문만이 아니다. '국가 경제 포트폴리오' 때문에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것은 경영학의 상식이다. 특정 경제주체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경제 구조는 특정 위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도성장을 하다가도, 환경이 바뀌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험 분산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쏠림 현상은 막아야 한다. 대기업 중심 구조의 위험을 우리는 이미 겪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가 이런 경우였다.
 
대기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계속 공급받기 위해서도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필요하다. 미국 '구글'사가 좋은 사례다. 한국 상식에서라면, 미국에서 인터넷 벤처기업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시장을 장악한 거대기업 때문에, 신규 창업 기업이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새로운 인터넷 기업이 계속 탄생하고 있다. '구글'이 독창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지니고 시장에 새로 진입한 기업에 적절한 이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특별히 착해서 그런 걸까. 그렇지 않다. 새로 창업한 벤처기업과 상생하는 게 길게 보면 이익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90%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기존의 방식으로 이미 성공을 거둔 대기업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 신규 창업자가 시장에 진입할 공간을 열어두고, 서로 협력해야 대기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없으면, 산업 자체가 망한다. 결국 대기업도 함께 망한다."
 
안 교수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런 주장이 새롭지 않다. 그는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도덕적으로 경영했지만 실패한 기업가'를 위한 안전망 마련 등을 주장했었다. IT(정보기술)벤처기업을 창업해 경영했던 그로서는 절실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다른 보통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안 교수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안 교수는 이날 "인생을 통틀어 한번은 창업을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다. 시간이 갈수록 창업 경험자의 비율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규 창업자의 고민은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직업 수명은 짧아지고, 생물학적 수명은 늘어나는 추세다. 인생을 통틀어 여러 개의 직업을 거치는 이들도 늘었다. 신규 창업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 뜻이다. 피할 수 없는 창업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창업을 두려워한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사람만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안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흔히 말하는 '사업가 기질'은 성공한 기업가의 조건과 거리가 멀다. 유명한 벤처기업가들을 보라. 대부분 내성적이다. 'NHN' 창업자 이해진, '다음' 창업자 이재웅, 'NC소프트' 창업자 김택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자 이찬진. 만나보면 모두 내성적인 성격이다. 외향적인 성격이어야만 창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편견이다. 오히려 자신의 장점과 단점,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안 교수가 소개한 '내성적인 창업자'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했다. 이날 강연의 시작과 마무리 역시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KAIS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 어울리는 교육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서는 문제 풀이 요령을 잘 익힌 학생을 키우는 게 학교교육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학생을 키우는 게 과제라는 것. 그래서 그는 교육과정을 남보다 앞질러가도록 부추기는 교육, 까다로운 문제를 빨리 푸는 데만 능할 뿐 개념과 현상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는 무능한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에 몹시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이 '영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강연을 시작하며, 그는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 담긴 한 사례를 소개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 조기교육이 활발한데, 유명한 선수들의 생일을 조사해보니 1~3월에 태어난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불과 몇 달만 일찍 태어나도 신체 발육 정도가 훨씬 앞선다. 그런데 1월생부터 12월생까지가 한데 모인 유치원에서 선수 후보를 선발하면, 1~3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뽑힐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걸러진 아이들은 여러 기득권을 누리게 된다. 즉, 1~3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유독 아이스하키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4~12월에 태어난 더 많은 아이들은 재능을 계발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체육 영재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실시한 조기 선발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의 재능 계발을 왜곡한 셈이다.
 
안 교수는 이런 사례가 꼭 체육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어린 시절 기득권을 얻은 사람이 기회를 독점하는 현상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먼저 시장에서 기득권을 얻은 기업이 신규 창업 기업을 배재하면서 기회를 독점하는 것, 사교육을 통해 점수를 잘 받은 학생이 이후 인생에서도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것 등이 이런 경우다.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이런 경향을 오히려 가속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일제고사 실시, 수능 점수 공개 등을 통해 아이들과 학교에 일찌감치 '낙인'을 찍는 일,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시장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도록 돕는 일 등이 이런 사례다. '기업가 출신'이라고 자부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가 출신' 안철수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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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21:54 안철수 KAIST 석좌 교수 인터뷰
 
프레시안은 안철수를 자주 인터뷰한다. 그 이유가 뭘까. 어느 정도 프레시안과 코드가 맞다고 생각되는 그를 통해 프레시안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서일 터이다. 인터뷰에 나오는 얘기들은 대부분 이전에 했던 것에 조금 더 추가된 수준이다. 여기에 변화된 상황에 대한 코멘트도 있고... 적어도 경영자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서 나름대로 참신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그의 인터뷰 기사를 담아온다. 과거에 네이버 블로그에 담아놓았던 것도 옮겨 놓는다.
 
토마스 프리드만이 세계화에 관한 빼어난 통찰을 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의 견해는 세계화에 관한 하나의 입장에 불과하며, 특히 세계화를 필연적인 것으로 보면서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모험을 꺼리는 이유를 창업을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은 탁월하다. 특히 성공확률이 낮다는 것과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에 공감한다.
 
표절에 대해서는 몰라도 지적재산권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현재 지식산업의 진전을 막고 있는 것이 불법복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더 치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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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분자'가 왜 나쁜 말이죠?" (프레시안, 성현석/기자, 2008-08-06 오전 11:36:40)
[인터뷰] 안철수 KAIST 석좌 교수  
 
V3백신 개발자로 널리 알려진 안철수 의장(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KAIST 석좌교수가 됐다. 그에게는 '전형적인 모범생'이라는 이미지가 늘 따라다닌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흔히 "매사에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기자와 만난 그는 '전형적인 모범생'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우선, 이들을 키워낸 대학의 분과학문 체계에 대해 그는 몹시 부정적이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던 그였지만, 교육과정을 문과와 이과로 획일적으로 구획하는 제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학문 간 장벽'이 견고한 대학 문화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너도나도 '학문 간 융합'을 이야기하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대학 문화 탓에 융합 학문 전공자가 설 자리는 찾기 힘들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의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기업인에서 교수로 다양한 직업을 넘나들었던 그의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다.
  
그리고 '전형적인 모범생'들이 주로 택하는 직장인 대기업의 거래 관행에 대해서도 몹시 비판적이었다. 중소기업과 공존하면서 혁신을 향한 동력을 얻는 미국과 달리, 한국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또 대기업 경영자들이 소프트웨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의 가치를 인정하는데 인색하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모범생이다. 대학 시절, 그는 취미로 바둑을 배우면서도 바둑 교재를 꼼꼼히 섭렵한 뒤에야 바둑돌을 잡았다고 했다. 기업 경영에 대해서도, 그는 '교과서'에 담긴 원칙과 기본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주주가 전권을 휘두르는 기업 경영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사회가 경영자를 적절하게 견제해야 하며. 그러려면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해져야 한다는 지적을 곁들였다.
  
그는 인터뷰 도중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왜 '운동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는 운동의 과제가 아니라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시장 경제를 위한 원칙이 교과서 속에만 가둬져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런 목소리는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불거진 삼성 사태를 떠올리게 했다. '전형적인 모범생' 집단으로 알려진 삼성의 경영 방식은 '교과서'와 거리가 아주 멀었다.
  
'모범생을 비판하는 모범생'이 된 그가 올해 2학기부터 학생들을 가르친다. 소속은 '학제학부(College of Interdisciplinary studies)'. 낯선 이름이다. KAIST 측의 설명에 따르면, "다학문의 융합을 추구하며,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학부다. 이곳에서 그는 이공계 학생들이 경영에 관한 소양을 키우도록 돕는 일을 맡는다. "문과와 이과의 벽, 학문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던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다.
  
<프레시안> : 과거 인터뷰에서 공학 교육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공학이 법학, 경영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과 교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KAIST에서 이런 구상을 구현할 기회가 생겼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안철수 : 경영대학원 교수가 됐다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 나는 대전에 있는 공과대학 소속이다. (KAIST 경영대학원은 서울에, 공과대학·자연과학대학 등은 대전에 있다.) 공학과 경영학을 접목시키는 게 내 역할이다. 한 가지 전공도 잘 하기 어려운데, 두 가지를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두 영역에서 접점을 찾아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이 필요한 때다. 학문과 기술이 전문화될수록, 이런 역할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학문 간 장벽이 두터운 편이다. 또 직종 간 장벽도 두텁다. 그래서 다른 영역들을 오가면서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안철수 : 그렇다. 그게 너무 답답하다. 한국에선 대학에서나, 사회에서나 분야와 분야 사이의 벽이 너무 높고 두텁다. 다른 분야에 대해 이해도 못하고, 포용력도 없다. 대신, 편견은 강하다. 요즘 '통섭'(統攝. 지식의 통합을 뜻한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사용한 말이다.)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래서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하지만 그저 말뿐이다. 현실 속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융합학문을 전공한 사람들이 직장을 잡기 어렵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법학과 의학을 함께 공부한 사람의 경우를 보자. 이런 사람에 대한 수요는 아주 많다. 생명공학 분야의 저작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또 의료 소송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의료 윤리·생명 윤리 쪽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이들 세 가지 분야 모두 전문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들 분야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의학과 법학을 함께 공부한 사람은 의과대학에도, 법과대학에도 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의과대학에서는 '100%' 의대 일을 봐줄 사람을 원한다. "의대 T/O로 뽑았는데, 왜 법대 일을 하느냐"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의학과 법학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법과대학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윗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로 부딪히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과 공공기관, 기업을 이끄는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런 생각이 없다.
  
학문과 산업에서조차 '네 편, 내 편'을 나누는 버릇은 어리석은 짓이다. 전형적인 흑백논리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관행이 아주 견고하다. '회색분자'라는 말이 안 좋은 어감으로 통하는 데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참 궁금하다. '회색분자'가 왜 나쁜가.
  
어리석은 이분법의 사례로 또 꼽을 수 있는 게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다. 이런 황당한 제도가 왜 아직까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제도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도 많은데, 이런 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그리고 이런 구분이 낳은 폐해는 심각하다.
  
경영학은 흔히 '문과' 학문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수학 잘 하면 이과, 영어 잘 하면 문과' 라는 식으로 진로를 정한다. 그래서 수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이과 계열 전공을 택한다. 하지만 경영학, 경제학 가운데 재정·금융 분야를 공부하려면 고도의 수학적 재능이 필요하다. 근거 없는 문과-이과 구분 탓에 수학적 재능이 있는 인재들이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 진출할 길이 막힌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해놓고 정부는 '금융 허브'라는 구호를 외친다. 답답한 노릇이다.
   
<프레시안> : 이공계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창업에 따른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호사, 의사 등처럼 자격증으로 보호받는 전문직이나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처럼 고용이 보장된 직업으로 젊은이들이 쏠리는 경향이 과거보다 더 거세졌다.
  
안철수 : 소설가 공지영 씨가 지금의 20대를 가리켜 "역사 상 가장 안정 지향적인 20대"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놓고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젊은이들을 특정 진로로 몰아넣은 책임은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안정 지향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창업'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겠다. '창업'은 '모험'이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왜 모험을 꺼릴까. 네 가지 가능성을 놓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사업 기회가 적다"는 점이다. 둘째는 "성공에 대한 보상이 적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공 확률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넷째는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첫째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어느 시대에나 나왔던 이야기다. 둘째는 첫째보다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보상이 적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시장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이 작전 세력에게 놀아나는 탓에 정직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적어졌다. 대신, 작전 세력이 보상을 챙기게 돼 있다. '재벌 2세가 투자했다'는 소문만으로 주가가 폭등하는 시장은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못하는 곳이다.
    
문제의 핵심은 셋째와 넷째다. 신규 창업을 했을 때 성공 확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 인터뷰에서 여러 번 설명했다. 우선 기업가들의 실력이 없다. 또 벤처기업 산업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 대학, 벤처캐피탈, 금융권, 아웃소싱 업체, 정부의 R&D 정책 등이 인프라인데 모두 엉망이다. 그래서 창업자는 선진국에서라면 할 필요가 없었을 일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이렇게 힘이 분산되면, 경영이 어려워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신규 창업이 실패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다. 이게 핵심이다. 현재의 거래 관행은 중소기업이 거둔 이익을 대기업이 모두 가져가도록 돼 있다. 당연히 중소기업은 새로운 인재를 키우고, 신기술을 개발할 여유가 없어진다중소기업은 대기업에 값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력파견업체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시장상황과 기술 환경이 바뀌면, 이런 회사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중소기업의 성공률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젊은이들이 창업을 꺼리는 이유로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을 들겠다. 한국에서는 기업하다 망한 사람이 재기하는 게 너무 힘들다. 젊은 시절 저지른 한 번 실수 때문에 '금융사범'이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한다. 이런 상황의 핵심에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가 있다. 금융권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제도다. 금융권이 돈을 빌려줄 때 사업의 가능성과 위험을 평가해야 한다. 이런 평가에 따라 대출 여부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평가를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금융권은 이런 실력, 즉 '리스크 관리 능력'이 없다. 능력이 없으면, 키워야 하는데 한국 금융권은 다른 방법을 썼다. '연대보증'을 통해 모든 위험을 대표이사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금융권은 '리스크 관리 능력'을 키울 필요가 없다. 골치 아프게 공부해서 실력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돈 장사'하는 것을 누가 못하겠나. 금융권이 져야 할 부담을 기업에 전가시키는 구조다. 새로 창업하려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예를 들어보자. 그곳에서는 망하는 회사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경영자를 찾기 힘들다. 망한 기업인들에게도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실패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하고 유능한 기업가로 거듭난 사례가 널려 있다. 최고 경영자는 사업을 접어야 할 때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이건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다. 만약 사업이 승산이 없다고 여겨지면, 미국에서는 최고 경영자가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경영자는 이윤을 내지 못하는 사업도 포기할 수 없다. 사업을 접는 순간, 회사 빚이 개인 빚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다른 대목이다. 혼자 빚을 떠안고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영자는 무조건 버티기만 하려고 한다. '갈 때까지 가자'는 식이다. 명백하게 손해나는 사업인데도, 당장 현금만 쥘 수 있다면 무조건 한다. '운전 자금' 마련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망해서 기업가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는 게 목표인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크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이 주로 '덤핑(헐값 판매)'을 한다. 중소기업을 망하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반면, 한국에서는 위태로운 기업이 덤핑을 한다. 부도를 면하게 위해서다.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이 워낙 많아서, 이런 식의 덤핑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덤핑'을 하는 기업들은 물귀신처럼 멀쩡한 회사까지 위기로 몰아넣는다. 결국, 모든 회사가 적정 이익을 보장받기 어려워진다.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신규 채용, 임금 인상을 억제하게 된다. 산업이 초토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게 이른바 '눈 먼 돈'이다. '눈 먼 돈'과 회사를 연결시켜주는 브로커들이 곳곳에서 휘젓고 다닌다.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집행되지 않는 예산을 끌어당기는 브로커들이다. 이들은 사업 제안서를 대신 써주면서, 경영자에게 '눈먼 돈'을 연결시켜 준다. 대신,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챙긴다. '눈먼 돈'으로 위기를 넘긴 경험을 한 경영자는 브로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길게 보면, 산업 전체가 공멸하는 길이다.
  
<프레시안> : 과거 인터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대기업만 중시하는 정책 기조 속에서 이런 지적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벤처기업을 경영해본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안철수 :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에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 그래서 무척 허탈하다. 얼핏 생각하면, 미국에는 구글처럼 거대한 회사가 있으니까 작은 회사가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구글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작은 회사들이 성장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구글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자선단체가 아니다. 한국 대기업과 달리, 구글은 왜 중소기업을 위한 '우산' 역할을 하는 걸까. 답은 '이노베이션(혁신)'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쏟아진 혁신적인 아이디어 가운데 90%가 중소·벤처 기업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대기업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10%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작은 회사들이 살아남아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계속 쏟아질 수 있다. 또 이런 아이디어들이 시장에서 검증받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대기업은 이런 아이디어들을 기업 인수·합병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은 혁신적인 성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방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밖에도 많다. 중소기업은 '국가경제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경제는 외부 충격에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생생하게 겪은 일이다. 위험 분산을 위해서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균형 있게 키워야 한다. 한국 경제는 우리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대기업이 흔들려도, 다음 세대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 체질을 만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외환위기를 넘기면서, 삼성·현대·엘지 등 재벌은 규모가 더 커졌다. 과거에는 국내 대기업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하지만 고용은 더 줄었다. 외환위기 이전에 200만 명 수준이던 대기업 고용이, 이제 13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문제는 대기업이 아무리 성장한다 해도, 고용은 계속 줄거나 제자리걸음 수준일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천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중소기업이 고용을 조금만 늘려도, 고용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된다.
  
중소기업이 망하면, 대기업도 결국 손해다.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망하거나 불안정해지면, 대기업 제품을 살 소비자도 사라진다. 대기업은 해외로 수출하면 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해외에서 잘 팔리는 상품 역시 대부분 국내 소비자들에게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국내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출도 쉽지 않다. 어떤 회사건 먼저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뒤 해외로 나가는 게 자연스런 순서다.
  
<프레시안> :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식 노동자의 수가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면, 지식 집약적인 산업을 키워야 한다. 소프트웨어, 문화 콘탠츠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에 대해서는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하던 시절, 이런 문화 때문에 고생했다고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생산하는 지식 산업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안철수 : 경영자 시절, 소프트웨어 산업의 전망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발제를 하면서 정보 산업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넷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유명 전자업체 CTO(기술 담당 최고 임원)이 다가와서 한마디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넷이라는 구분 방식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했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하드웨어를 동작하기 위한 부품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를 어떻게 같은 급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느냐"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언젠가 보니까, 이 회사는 아이팟을 만든 미국 애플사를 벤치마킹한다고 했다. 소프트웨어를 경시하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절대 이 회사는 아이팟과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아이팟의 성공은 '아이튠즈'라는 소프트웨어 때문에 가능했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종속돼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압도하는 가치를 지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경시하는 풍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기업 임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아주 흔하다는 뜻이다.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적 재산권이 보호받기는 어렵다. 지식 노동을 통해 생산한 소프트웨어, 콘탠츠 등을 불법 복제하는 일을 막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래서는 지식 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흔히 한국은 일본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에 대한 태도는 극명하게 다르다. 일본에서는 백신 소프트웨어를 팔 때 두 명에게만 권한을 줘서 파는 경우가 흔하다. PC(개인용 컴퓨터)를 두 대 갖고 있는 가정을 위한 상품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국에서는 가정용 컴퓨터 한 대에 정품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나머지 한 대에는 그냥 복사하면 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영화 등 문화 콘탠츠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다르다.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불법복제가 흔하지 않다. 반면,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침해하는 일이 '불법'일 수는 있어도, '죄'는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지식 인프라가 워낙 취약한 사회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외국 교재를 복사해서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남이 생산한 지식을 습득하기만 하던 상황에서 생긴 관행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이 지식산업을 키우려면, 지적재산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표절에 대해 관대한 문화 역시 걸림돌이다. 학생들조차 표절에 대해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식 산업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정보기술(IT) 산업은 대표적인 지식산업이다. 하지만 IT산업을 이끌고 있는 포털 업체들이 오히려 지식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서 콘탠츠 가격을 무리하게 낮춘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콘탠츠와 소프트웨어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철수 : 포털 산업은 한국 경제사를 통틀어 가장 빨리 성장한 분야일 게다. 그래서인지, 지식산업에 어울리는 경영 방식을 마련하지 못했다. 대기업이 이미 만들어 놓은 관행을 따르곤 한다.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관행이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경영상의 불투명한 요소와 관계가 있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대기업이 제대로 거듭나려면, 결국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경영자를 견제하는 게 이사회의 역할이라고 하면, 다들 이상해한다. 하지만, 그게 원칙이다. 또 대주주라는 이유로,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런 간섭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투명한 경영은 불가능하다.
  
최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왜 이런 당연한 주장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와야하는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시장경제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이다. 누구나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기업이 바뀐다면, 이들을 모방한 다른 회사들도 덩달아 바뀔 게다. 하지만, 대기업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 포털 업체들이 먼저 스스로 혁신했으면 좋겠다. 이들은 역사가 짧은 만큼, 개혁도 쉽다. 그리고 포털이 바뀌어야 IT 산업, 콘탠츠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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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안철수 의장(의장이라고 하니 어감이 이상하다)의 현지인터뷰를 했다. 안철수씨가 예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예비후보였다가 사퇴했던 것이 불현듯 기억난다. 하지만 역시나 그에 대한 인상은 좋은 편이다. (이찬진 전 한글과 컴퓨터 대표를 안철수씨로 착각했다. ㅡ.ㅡ;;)
 
유펜의 와튼스쿨 MBA과정을 마치고 카이스트 교수로 복귀하게 되면서 한 인터뷰인데, 상당히 긴 인터뷰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얘기들이 흥미를 끈다. 특히 그가 시장에 의한 감시기능 강화가 아니라 시장에 대한 감시기능 강화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이미 안랩의 경우에도 사외이사를 50%로 하고, 감사위원회는 100% 외부의 인물로 했다는 것도 흥미롭고...
 
이를 공공기관에 유추적용하면 사유화를 통해 주인있는 경영을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고, 바로 시장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제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나 공공기관은 공공성도 담보해야 하는 만큼 민주적 지배구조를 이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인터뷰 중에 나오는 CLO는 뭘까? 처음 듣는 용어인데... 대충 맥락으로 봐서는 Chief Learning Officer(최고학습관리자)인 것 같은데... 하긴 학습, 교육은 어디서나 중요하다. 진보정당에서는 더욱... 학습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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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기업 규제만 풀고 감시 안할까 두렵다” (한겨레, 팔로알토/글·사진 박현정 기자, 2008-04-29 오후 08:01:23)
미 유학 마치고 귀국 앞둔 안철수씨 현지 인터뷰 
 
-얼마 전 카이스트 쪽에서 임용 소식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말부터 이야기 된 것이다. 업계 전체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 MBA를 하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고.
경영자 과정을 맘 편히 들을 때랑 학위 과정을 해보면 교수님들 눈빛부터 달라진다. 학생들 잡으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시험도 치고, 프로젝트도 하고 괴롭힌다. 3년 전 퇴임 때 <한겨레>와 인터뷰를 보니 지난 3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동안 잘 한 것 같다. 친한 사람들한테 말하니 3년 동안 공부했으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예전 인터뷰를 보니, 지배구조와 벤처 육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미국에 왔다고 들었다.
“연대기순으로 설명드리면 안랩 설립 9년째가 됐을 때, 그 해 연말이 되면 순이익이 100억원 돌파 하겠더라. 그 때 고민이 세가지 있었다. 첫번째가 기업지배구조이다. 민주주의 발전사를 보면 도덕적이고 실력있는 한 사람의 지도자으로 인해 (사회가) 빠른 발전하고 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라는 게 나약하고 부패하기 쉬워 3권 분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장법인도 CEO나 개인 자산이 아니고, 스테이크 홀더들이 많으면 견제가 돼야 한다. CEO 혼자서 마음대로 하다보면 부패하기 쉽고, 이사회라는 게 견제하게 해서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게 조직 발전에 좋다. 재벌의 경우, 오너가 이사회도 같이 장악하다 보니까 이사회가 유명무실했다. 사실은 그런 제도가 아니다. 기업의 그 다음 발전단계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벤처 기업도 코스닥 상장법인이 되면 그런 능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CEO 계속 하더라도 이사회 구성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배구조 개선은) 그전에, 미국와서 새롭게 한 건 아니다.
 
두번째가 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70년 역사를 지닌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것 창조하는 지식이 사회 자산화가 되는 것이 부러웠다. 대기업에 인수합병되면, 대기업 임원되면서 활동하고 벤처 캐피털리스트, 정치가가 되고 다양한 경험들이 사회 곳곳으로 파급돼서 사회적 자산으로 선순환이 된다. 한국 역사가 짧은 점도 있겠지만, 기업 무너지면 실패한 자산 경험을 제대로 못살린다.
 
세번째로는 안랩 뿐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5년 3월에 CEO 그만뒀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업계를 위해 도움을 주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가? (란 의문이 들었다.)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어서 성공시켰지만 이를 일반화 시킬 수 없다. 저변이 넓어져야 좋은 조언자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미국에 와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싶었다. “노 페인 노 게인.” 괴롭게 고생하지 않으면 실력 늘 수 없다. 연구원으로 가면 고생해서 공부 안할 것 같더라. 시험도 보고, MBA 과정에 들어갔다. 예전에 대학생 때, 잡지사에 전화해서 글 쓰고 싶다고 하고 원고 마감 날짜를 받아 놓았다 . 그런데 모르는 분야라 밤을 세워서 했다. 학위과정에 들어가야 제대로 하겠더라 싶었다. 학위 과정을 밟고 고생을 하니 지식이 쌓인 것 같다.” 
  
-공부를 마친 소회는?

“2년동안 공부를 하다보니까, 잘 한 것 같더라. 공부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 진정한 자기 실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썰물이 빠지면서 갯벌의 모양이 드러나듯이. 10년 동안 직접 경영을 해봤으니까 많은 부분을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떤 부분은 배울 필요없단 생각 드는 분야도 있었고, 형편없는 분야도 있었다.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 다른 벤처 근무자도 같으니까.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CLO로 돌아온다.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니 CLO더라. 직업으로 정의를 내리는 게 맞지 어떤 감투를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들을 가르쳐주는 것은 당히 의미있는 일이다. 안랩 내부에서도 실력에 대한 갈구가 많았다. 대학의 경우 전임교수나 초빙교수를 생각했었는데, 여러 대학에서 풀타임 교수 제안을 많이 했다. 대학원장 자리도 있었는데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의대, 경영대, 공대도 있었다. 요즘같이 전반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이 있고, 가치사슬의 처음 부분이 망가지는 데 나까지 의대나 경영대 가면 안될 것 같더라. 그래서 카이스트를 가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구글 취재에서 인상 깊었던 게 프로덕트 매니저의 경우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둘다 공부한 사람을 선호하더라.
“아이팟을 보면 온오프 스위치가 없다. 그래도 한번 쓰면 메뉴얼도 필요없이 너무나 편리하게 다 된다. 엔지니어링 기술이 뼈속 깊숙이 있어야 그런 디자인 나온다. 현대에서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느냐가 디자인이 아니라, 어떻게 동작하느냐가 디자인이다. 기술을 알아야 소비자들 마음에 맞는 게 나온다. 학문 융합이 중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안랩에서 만들어낸 A자형 인재론과 비슷한 논리다. 어떻게 성과가 좀 나왔나?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는 거 아니냐란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꿈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을) 달성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나 조직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다.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가 지듯이 물러설 수 없는 경계선을 마련해준다. 여기에 의미가 있다.”
 
-삼성 사태도 있었고, 지배구조에 관심이 있으시므로 할 말이 있으실 것 같다.
“포스코 사외이사 하면서 많이 배웠다.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가 많이 배웠다. 또 대학가서 배웠다. 안랩 지배구조 개선하면서 사외이사 구성 비율을 50%, 감사위원회는 100% 사외이사로만 돼 있다. 그런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삼성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우리나라가 한번 바뀌면 매우 빨리 바뀐다. 북쪽보다 못살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가 없다. 삼성 사태 제목만 보고 전문 보지는 못해 자세한 판단은 힘들지만. 변화의 큰 계기가 될 것 같다. 다른 기업도 긴장하지 않겠는가”
 
-전에 경영의 위기, 시장의 위기, 세계화의 위기 등 3가지 벤처 위기를 제시하셨다.
“업계가 노력해도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외부환경이 있으므로. 그렇다고 외부 탓만 할 수 없다. 업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 나부터 해보자. 실리콘밸리에는 참 부러운 점이 많은데, 가장 큰 장점을 하나만 들자면,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엔지니어들이 많다. 초보 CEO는 실수들을 많이 한다. 엔지니어가 실수해도 마케팅, 파이낸스 등 각 분야에 전문가가 포진해 다른 데는 안 흔들린다. 한국은 CEO뿐만 아니라 다른 쪽도 깊이가 없다. 중소기업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데가 없다. 독학으로, 노력으로 실력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 경험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같이 실수하는 거다. 그래서 실패 확률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걸 바꿀 수 있게, 각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사람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10년 정도 보고 있다. CLO로서 활동해 인재풀 점차 늘어나면 업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구체적인 교육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나?
“교육 방법이나 시간들이 문제가 많다. 중소기업 사장들도 교육에 관심 많다. 큰 마음먹고, 교육 보내도 효용 있지 않은 게 제도권 교육이 대기업 위주의 교육이다. 단기간이라고 해도 3개월인데. 벤처는 (역할) 백업이 안되므로 단기 교육조차 보낼 수가 없다. 또 강의를 들은 뒤 (실생활에) 적용이 안된다. 큰 마음 먹고 교육 보냈는데 달라지는 게 없으면 안 보낸다. 결국 실력 안늘고 악순환이다.
 
가장 기본이 전략이다. 신입사원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전략적으로 생각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략이라는 게 뭐고 왜 필요하고, 어떻게 짜는지 감이 안온다. 시키는 사람도 잘 모른다. MBA 과정에서 이를 매우 오래 배운다. 내가 꼽아보니 필요한 것은 사흘 풀로 하면 되겠더라.
 
일주일에 하루해서 3주. 지금까지 기존 교육들이 이론만 가르치다 보니까 적용이 안됐다. 3분의 1 나눠서, 이론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엔 사례를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자기 일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한국 오가면서 안랩 직원들한테 교육을 시켜봤다. 컨셉트 테스트를 해보니까 되더라.”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하셨는데, 육성할 벤처나 웹서비스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참, 답답한 게, 미국같은 경우, 끊임없이 새 서비스 계속 생긴다. 한국에는 떠오르는 CEO가 없다. 5년 전에는 NHN, 다음 등 싹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5년 후가 안보인다고 이야기 했는데 전세계 경쟁 치열한 가운데서 어떤 아이템으로 이길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고. 나같은 경우 5년 전 있었던 싹이 없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고민이다.
2천만명의 일자리를 주는 중소 및 벤처들이 건실해야 하는데, 그것이 국가에서 걱정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국가에서 걱정 안해도 잘 큰다.”
 
-중소 기업, 벤처 기업 어려움 왜 심해졌을까?

“벤처기업이 실패하는 원인은 경영의 위기처럼, 벤처기업 경영자와 각 분야 실무자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두번째,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부실하다. 인력을 제공하는 대학, 자본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 등이 있는데 이들이 부실하다. 대표자 연대보증 같은 제1금융권의 금융관행, 정부제도, 전문성 있는 아웃소싱 같은 게 그런 게 다 부실하다. 벤처기업은 조그만데 다 잘해야 한다. 세번째가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이다. 벤처기업을 만들면 수익 창출해서 R&D 투자하고 그런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에서 공기업에서 (일거리) 다 가져간다. (벤처는) 부가가치 고려하지 않고 인건비만 계산받는 인력 파견 업체가 돼버린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이런 구조는) 큰 덩치들이 잘 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네들에도 안좋다. 2천만명이 못 벌면 구매력이 떨어진다.”
 
-어릴 때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해결될 기미가 안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가 되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대기업들이) 비효율적이라도 인력고용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을 못하게 된 것이다. IMF 쇼크 이후로, 사회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 더 심해진 것 같다. 돈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게 매우 슬픈 현실이다.
 
감시자가 없다는 점도 원인이다. 예전에 정부 고위 공직자 만났더니, 정부가 할 일은 산 중턱에 좋은 터 있으면 닦아서 평지로 만들고 도로 내고 청소원들 청소시키고 경찰로 하여금 감시시키고, (그런 것이다.) 그러면 자기 돈 가지고 사람들이 들어와 장사를 해서 잘 된다. 그런데 (현실은) 창업 지원 자금만 빌려준다. 도로도 없고, 청소부 없어서 지저분하고, 깡패만 들끓으니 망하고 만다. 그게 참 좋은 표현이다라고 생각한다.”
 
-기업인들 만나면, 규제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시장 감시기능이 제대로 안돌아가는 것 같은데?

작은 정부가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은,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규제 대신 감시 기능 강화하는 것이다. 정말 잘못한 애들한테는 일벌 백계를 해야 한다. 자유롭게 공명정대하게. 참여정부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규제 철폐가 감시 기능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감시라는 게 생색이 안난다. 실적이 안나타나는 것이다. 감시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그런 것에서 많이 힘들다 보니까 오히려, 규제 많이 해놓는 것 같다.”
 
-어떤 분야에 감시가 필요한가?
대기업·공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행, 주식 시장에서의 시장 감시 기능. 코스닥 거의 형편없지 않나. 그런 게 최우선 순위다. 금융권에서의 리스크 관리 노하우, 리스크 관리 실력 등 금융권이 가장 중요하다. 대표자 연대 보증제도의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할지 모르고 기업가에 전가를 하게 되면 부담이 없어지는 거 아니냐. 감시하는 대신 규제 많은 것은 편하게 일하는 방식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게 (사회 발전에) 발목잡는다. 사회발전이 하향 평준화된다.국가도 그런 거 잘 못하면 사람들 다 해외로 갈 것. 국내에서 살게 하는 유인책 필요하다.”
 
-여길 떠나기 싫지 않았냐?

“여기 살면 편하긴 하겠지만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 제일 편한 선택은 안랩 경영하는 것이다.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게 만드는 드라이빙 포스는 세가지다. 의미있는 일, 그 자체 재미있는 일, 세번째가 잘 할 수 있는 일. 의사 그만둘 때도, 컴퓨터 바이러스쪽 분야는 저밖에 없으니까 정말 의미있는 일이었고 재밌는 일이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잘 할 가능성은 있었다.
 
한국사회는 워킹 모델이 매우 중요한 사회다. 한국 사람들은 개개인이 똑똑하다. 누가 하면 성공사례 많이 생긴다. 튀는 거 싫어한다. 대신 워킹 모델 만들면 의미있는 일 같다. 안랩 소프트웨어 성공 모델이 아니라 워킹 모델 만든 것 같다. 제가 존재함으로써 죽고 나서도, 제가 없을 때와는 뭔가 다른 면이 남았으면 한다. 제 이름이 남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삶의 흔적이 남았으면 한다. 스파이더맨은 파워를 원하진 않았지만 그걸 가지고 있으면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한사람 두사람, 소문나서 사람들이 보고 있고 기대를 해 책임감도 생긴다. 제가 원하지 않는 책임감이지만 그게 싫으면 파워도 버려야 하고.” 
  
-잇따른 보안 사고에 할 말이 많으실 것 같다.

마이크로 레벨로는 안보이는 게 매크로 레벨에선 피해갈 수 없다. 그게 통계의 무서움이다. 사람도 차도 서로 안 무서워한다. 주변에 보면 아무도 다친 사람 없다. 그런데 전체로 보면 우리나라 교통사고 발생 세계 몇 위다. 보안은 아이티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필수 비용이다. 우리나라는 보안 예산 전체의 1% 안된다. 마이크로 하게는 사고가 안난다. 그런데 전체로 보면 1천만명 정보유출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대기업 편향의 정부를 우려하셨는데, 혹시 새 정부에 강력하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

“보수, 진보도 웃기는 거 아닌가. 누구 편도 아니다. 작은 정부라고 하면 규제 풀고 감시 강화하는 것이다. 혹시나 규제만 풀고 감시는 안할까봐 그게 두렵다. 그러면 또 이야기 해야 한다. 가장 두려운 게, 잘 돼나 봐라 5년 후에 보자 이러면, 국민만 피곤한 거다.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고. 국민이 살아야 하니까. 
 
2003년, 이헌재 부총리가 주재한 회의 말미에 벤처기업 95%가 망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그러더라. 나한테 욕했던 사람도 그에 맞장구쳤다. 그런데 누가 처음 이야기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 그래도 그때 보람을 느꼈다. 아,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 느리긴 하지만 조그만 힘으로 바뀔 수 있더라. 내 발언의 가치가 있더라.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은 워킹 모델 만드는 일과 사람 생각 바꾸는 일이다.”
 
-지금 다급히 막고 싶은 게 있다면?
“시장 감시기능 강화. 그래서 끊임없이 발언한다. 와이투케이, 99년 벤처 성공가능성 희박, 인터넷 소프트웨어 중요성 등 이야기 해왔다. 사람들은 밥그릇 지키기 위해 이런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발언은) 윗선 건드리는 거고. 그런 발언은 매출하고 상관없이 이야기 하는 거다.”
 
-시장 감시기능이 안되면?

“감시 기능 안되면, 중소벤처 더 힘들어지고 중산층 무너지고 빈부격차 심화된다. 국민들 더 좋은 조건의 나라들로 떠나고.”
 
-여러가지 관행 중 대기업 위주 외에 부딪혔었던 문제는?

“내부의 문제도 많다. 실력 기르는 일 힘들다. 내부에서 잘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외부 탓하면 안된다. 사업 시작할 때, 알고 들어온 건데. 이런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실행해야 한다. 기업은 인프라의 도움 바라기 이전에 서바이벌 하는 능력 기르는 게 필요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좀더 (시장이) 정상적이면 더 잘 될 텐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서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인상적이었다. 또 기대반 두려움반 자신의 경계선을 넘을지 고민한다는 이야기도.

“매일매일 경계선에 있다. MBA프로젝트 다 해갈 수 있을까. 가면 잘 할 수 있을까. 도와준다고 이야기 했지만 잘 할 수 있을까. 도와주는 건 재미없다. 실제로 실행은 그쪽 경영자다. 판단을 도와줄 수 없다. 그게 맞을진 안해 봐서 모른다. 저 혼자서 선을 그어 놓는데 넘고 싶을 것 같다. 
  
(교수직은) 어떻게 보면 다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제가 사업만 한 사람은 아니고 끊임없이 학교에 있었다. 초6년 중고6년 의대6년 박사과정5년 석사과정2년 MBA2년으로 합이 27년이다. 거의 학생으로 지냈다. 책도 쓰고, 아카데믹한 상태로 CEO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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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이명박 정부, 약육강식 경제 만들까 우려" (프레시안, 전홍기혜/기자, 2008-05-07 오후 5:39:56)
"대기업 위주 경제, 위험에 취약…벤처기업, 싹도 안 보여"  
 
안 의장은 7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귀국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엠비에이(MBA) 과정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오는 가을부터 카이스트(KAIST)에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가르칠 계획이다. 미국에서 2년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바라보는 우리 경제의 현실은 암울한 것 같았다. 5년 전에는 다음, NHN, 안철수연구소 등 싹수가 있는 벤처기업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싹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 CEO 출신이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지만 정작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인 20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벤처,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현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시키겠다면서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우려를 표명했다. 감시기능을 강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규제철폐는 지금도 벤처, 중소기업에게 전횡을 저지르고 있는 대기업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새 정부에서 규제 철폐를 얘기하는데, 규제는 철폐하되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쓸데없는 규제는 없애는 대신 감시를 철저히 해서 무법천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약육강식의 세계가 된다. 이런 것이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안 의장은 '감시 강화'와 관련해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하고 있는 일을 보라"면서 별도의 기구나 제도가 필요한 게 아니라 현재 존재하고 있는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게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안 의장은 "중소, 벤처 기업은 국가 경제 포트폴리오로서의 관점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말살시키는 현재의 '흡혈 경제 구조'로는 위험에도 취약하고 경쟁력도 없다는 지적이다.
  
교수에서 CEO로 변신했던 그가 다시 교수로 돌아온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미래의 중소기업인들, 또 현재의 중소기업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이날 기자간담회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지난 3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저도 실감이 안 난다. 3년전 CEO를 그만두기 전부터 고민이 있었다. 첫 번째가 기업지배구조의 문제, 두 번째 창업자 경험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고 싶었고, 마지막으로는 안철수연구소를 넘어 업계에 전반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었다.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삼권분립이 일어났다.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보면 발전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사람이 워낙 약한 존재이므로 부패하기 쉽고 자만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보니 권력분립이 일어난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도 상장법인이 되면 CEO 개인의 것이 아니고, 이사들의 것도 아니고, 주주들의 것이다. 적절한 균형, 감시, 견제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CEO가 이사회 의장을 하고 이에 대한 견제가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 우리 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가 제대로 발전해야 한다. 안 연구소도 그런 쪽으로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실리콘밸리를 보면서 부러웠던 것 중 기업 경영을 통해 얻은 지식이 사회적 자산이 되고 선순환되는 것이었다. 제2의 창업을 하거나 큰 기업으로 가서 일하거나, 대학교수, 행정가, 정치가 등으로 일하는 등 경험을 사회자산화시키고 선순환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그런 구조의 꼬리가 끊어져 있는 것 같다. 기업이 잘되면 창업자가 계속 하고 기업이 망하면 그 사람도 추락해서 사회적으로 그 경험이 자산이 되지 못한다. 이런 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정말 필요한 게 워킹모델이다. 한국 사람이 굉장히 똑똑해서 성공사례를 많이 만든다. 반면 튀는 것을 싫어한다. 아무로 안 한 일은 잘 안하려고 한다. 그래서 워킹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안 연구소가 워킹모델 중 하나로 만든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 연구소라는 하나의 기업 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들에게 제 경험과 지식을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런 세 가지 생각을 갖고 3년 전에 스스로 CEO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벤처중소기업이 어려운가. 미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20대 스타 창업자들이 비즈니스위크 표지모델을 장식하고 있다. 구글이 전부 다 잡아먹을 거 같지만 그 우산 아래서 조그만 기업들이 탄생하고 유지해나가는 그런 상생의 정신이 있다. 예전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이 "앞으로 5년 후에 어떤 것을 할지 암담하다"고 위기론을 얘기했다. 그건 글로벌 경영을 하는 대기업 입장에서 위기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소벤처기업은 5년 후 싹이 안 보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5년 전에는 다음, NHN, 안 연구소 등 싹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어떤 분들은 대기업 위주로 가는 국가도 있고, 거기 잘 사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분도 있지만 중소벤처기업은 국가경제의 포트폴리오다. 주식 분산 투자하는 이유는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국가 경제도 대기업 위주로만 가다가는 위험에 취약하다. IMF가 그래서 생긴 것 아니냐. 중소벤처기업도 건실해야 국가 전체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일자리의 문제다. 대기업은 기업 규모는 점점 커지지만 고용 능력은 줄고 있다. 지금 130만 명 고용하고 있는데, 중소벤처기업은 2000만 명이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대기업 CEO들이 대통령을 만나 투자를 늘리고 7만 명 더 고용하겠다고 했다니, 137만이다. 따라서 거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2000만 명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에 관심을 둬야 하지 않나.
 
셋째, 중소벤처기업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 대기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창의력을 제공하고 구매력을 보완해준다. 따라서 대기업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아들딸이 살 우리나라에서 중소벤처기업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
  
중소벤처기업이 왜 그렇게 실패를 많이 할까. 원인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중소벤처기업의 경영자나 종사자들이 실력이 부족하다. 그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 자기가 모르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두 번째는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굉장히 허약하다. 기업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인프라, 인력을 제공하는 대학, 자금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탈, 자금을 대출해주는 제1금융권, 전문성있는 아웃소싱업체들, 정부 정책 등 많은 인프라가 취약하다.
 
세 번째,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문제로 꼽을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거래를 한두번 하다보면 이익이 남지 않는다. 중소기업에서 이익이 많이 남는 것을 대기업이 알게 되면 값을 깎을 것을 요구한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이 계약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이 부가가치를 인정 못 받게 되면 새롭게 사람을 고용하거나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없다. 벤처기업은 처음 상태에 머무르면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국내에서 거래할 중소기업이 없어지면 대기업은 외국으로 나가게 된다. 이런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정말 불행하다.
 
하지만 개입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제가 기업지배구조, 산업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 세 가지 문제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봤더니 첫 번째 부분이었다. 중소벤처기업인들의 모자라는 실력을 채워주고 조언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좋은 조언자가 되기 위한 준비가 잘 돼 있는 거 같지 않았다. 그게 미국 가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을 해서 유학을 가게 된 계기였다.
  
실리콘밸리에서 배운 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거기에서는 지금도 중소벤처기업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구글이 상생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아무리 큰 기업도 주위에서 끊임없이 견제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구글이 있다면, 마이크로소트프가 있고, 야후가 있다.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 자유로운 경쟁구도가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바닥을 보면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정말로 중요한 포인트가 전문성이다. 실리콘밸리가 성공확률이 높은 이유는 하나다. 사람이다. 세일즈, 파이낸스, 마케팅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는 인재들이 거기에 많이 산다. 창업자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창업을 하면 전문가들이 붙는다. 그래서 성공확률을 높인다.
 
하지만 한국은 다 같이 초보자다. 대기업처럼 보고 배울 사람, 교육시스템이 없다보니 CEO뿐만 아니라 회사구성원이 다 실수를 한다. 그러니 실패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인프라, 정부 정책, 대기업 위주 산업구조가 발목을 잡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차이가 없지만 업계 전반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으로 CLO(Cheif Learning Officer)를 하기로 했다. 한국은 그 사람이 어떤 감투를 쓰냐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정의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의 일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선후가 바뀐 거 같다.
 
작년 말이 되니까 여러 대학에서 (교수직) 제안이 왔다. 공대, 의대, 경영대 등 여러 대학이 제안했다. 공대를 택한 이유는 우리나라 이공계 기피가 심각하다. 가치 사슬의 첫 번째가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 이걸 바로잡는데 조금이라도 일조를 하고 싶었다. 또 외국 대학을 보면서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공대가 독립된 게 아니라 공대가 경영대, 의대, 법대와 연결돼 있다. 하나의 허브다. 사회가 구분되지 않았는데, 이런 구분 자체가 무리한 것이다.
 
문과 이과 구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영어를 잘하면 문과 가고 수학을 잘하면 이과 갔는데 여러 학문분야를 공부하다 보니까 그게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경제학의 파이낸스 부분은 수학적인 머리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 이과 쪽은 영어 원서를 많이 봐야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 전 세계 경진대회에서 상위에 오르는 학생들이 많은데, 상급학교에 가면 무너지는 게 이런 인위적 구분 때문이다.
 
이종간 학문들의 연결이 이상주의적인 게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이스트에서는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프로그램에서 학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가르칠 계획이다.
  
문 : 최근 정부, 기업, 개인 등 모두 보안에 관심이 높다. 보안과 관련해 기업들이 이거 하나만은 꼭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걸 추천한다면?
 
안철수 : 보안은 통계나 확률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겪어본 사람은 다 공감하는 거다. 마이크로 레벨에서는 요행이 있다. 매크로 측면에서 보면 통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진국은 정말 오랜 기간 동안 IT 예산의 10%를 보안 쪽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의 효율성 따지는 건 이들이 한국보다 더 하다. 성수대교 붕괴될 때 보면 다리를 쓰기만 하고 유지, 보수를 안 하니까 무너졌다. 첫 몇년간은 돈이 안 들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더 손해다. 다리의 유지, 보수가 보안이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1%의 투자를 하고 있다. 단기간은 사고가 안 나서 좋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그동안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통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 관리)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
 
문 : 벤처캐피탈 일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또 최근 안 연구소와 네이버간의 무료백신 제공 계약을 파기한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관여했나.
 
안철수 :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게 지금 보면 투자할 만한 회사가 없다는 게 문제다. 기업이 제대로 돼 있으면 투자할 자금은 오히려 많다. 국가적으로 더 문제가 기업가 정신, 창업가 정신이 없다는 것이. 젊은 사람들이 너무 안전 위주 성향으로 가다보니까 새로운 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젊은이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고간 사회의 책임이 크다.
 
네이버 무료 백신 이슈는 누가 돈을 버느냐의 이슈가 아니라 오히려 인프라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인프라이고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해커들이 예전에는 장난이었지만 지금은 돈벌이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특정 타켓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안 들키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됐다. 옥션의 1000만 명 정보유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문 : 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철수 : 정부에서 기업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에 상관없이 중요하다.
 
새 정부에서 규제 철폐를 얘기하는데, 규제는 철폐하되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쓸데없는 규제는 없애는 대신 감시를 철저히 해서 무법천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약육강식의 세계가 된다. 이런 것이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감시라는 게 역시 인프라와 마찬가지로 생색이 안 난다. 정말 감시를 하려면 굉장히 전문성이 필요하다.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색은 안 난다. 그러니까 규제해놓고 감시 안하는 게 가장 편한 일의 방식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 정말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게 규제철폐는 환영하는데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데 신경써줬으면 한다.
  
문 :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요건이 있다면?
 
안철수 :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는 선진국들보다 더 잘 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기업에서 실행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망한다.
 
기업지배구조도 마찬가지 같다. 꼭 해야할 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실제로 관련된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대로 행동될 때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민적으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다. 기업과 기업가는 다르다. 기업조직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에 좌우되고, 하지만 사람에 좌우되면 경쟁력은 없다.
 
문 : 기업가 롤 모델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혹시 2차 창업 등을 계획하는 것은 없나? 향후 장기적인 계획을 듣고 싶다.
 
안철수 : 의사를 할 때 롤 모델이 아버지였다. 백발이 성성하신데 지금도 병원에서 환자보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살다보니 의사를 그만둬야 하더라. 나는 장기적인 계획이 안 맞는 사람 같다. 10년마다 직업을 바꾼 거 같다. 카이스트에서 정년퇴임을 할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거 같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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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1 21:42 2009/03/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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