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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정상화 과정은 어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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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노동통제에 관한 보고서 중 내가 맡은 부분을 마무리하여 카페에 올려야 하는데, 그 글은 쓰지 않고 소설을 읽었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클라이머즈 하이'라는 두 권으로 된 소설이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내가 블로그에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에 대해 글을 쓴 후에 누군가가 단 댓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소설에는 사건 사고가 등장하여 평소의 내 독서취향과는 일치하지 않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일단 잡으면 빠져들고...

 

맨 처음 '그늘의 계절'에 이어 '루팡의 소식'을 읽었고, 방금 읽은 건 '클라이머즈 하이'다. 어제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요코야마 히데오의 '사라진 이틀'이라는 소설을 샀고, 앞부분을 조금 읽은 상태다.

 

지금 이럴 정신이 있으면 안되는데, 뭔가 해야할 일이 있으면 꼭 엉뚱한 것을 더 하고 싶거나 읽고 싶어진다. 오늘 보고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날을 새야 할까. 아니면 '사라진 이틀'을 마저 볼까나.

 

사실 지금은 기분이 약간 업된 상태다. 올초부터 가슴 한구석에서 계속 신경쓰이게 했던 세탁기 문제가 해결되어서이다. 내가 보고서에 제대로 몰두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말에 빨래를 한 후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세탁기에 물이 차올랐다. 그래서 급수되는 수도꼭지를 잠궈놓기는 했지만, 세탁기에 찬 물을 그대로 버리기 아까워 설거지할 때나 세면할 때 등에 사용했다. 그러던 차에 몇십년 만에 폭설이 내렸고, 제대로 된 겨울의 맛을 보여주려는 듯 날씨가 급강하했다. 그 결과 베란다에 있던 세탁기의 물이 얼어버린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세탁기에 물이 차있고, 날씨까지 도움을 주는 상황은 미쳐 예견하지 못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렇게 얼어버린 세탁기 때문에 빨래를 할 수 없었고, 빨래더미는 계속 쌓여갔다. 성한 양말까지 거의 바닥이 날 상황이 되자, 그리고 다시 추위가 찾아온다고 하자, 세탁기의 해빙을 자연에 맡겨둘 수 없었다. 그래서 세탁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녹일 생각을 했는데, 그 얼음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 어려움이 나의 오기에 불을 붙였고...

 

그제부터 세탁기 정상화 계획에 착수했다. 뜨거운 물을 몇 차례 붓고 녹은 물를 퍼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얼음은 요지부동. 10여차례 뜨거운 물을 붓고 충격을 주자 드디어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든 얼음물을 퍼내고... 일단 얼음에 구멍을 냈으니 하루 뒤에 조금더 녹으면 나머지를 처리하자고 생각했다.

 

어제 오전 잠결에 안경테를 부러뜨렸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사실은 어느 정도 형태는 구분한다) 괜시리 투지가 발생하였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세탁기를 봤더니 속도 얼어 있었다. (왜 안경을 쓰지 않으니까 알게 되었느냐고? 손으로 만져봤으니까...) 그러니까 가운데의 물을 10여센티의 얼음이 삥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 구멍을 뚫을 때 사용했던 망치를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세탁기에 들어찬 얼음을 망치로 깨는 상황, 이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안경을 끼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망치로 얼음을 내리치니 얼음파편이 얼굴로 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시간 여를 얼음과 싸웠다. 물론 온수를 이용한 수공작전도 병행했다. 그 와중에 망치가 세탁기 뒤로 넘어가 이를 빼내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이러면서 살다살다 별 짓 다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얼음을 깨고 밖으로 꺼내놓으니 그 양이 엄청나다.  이게 다 세탁기 안에 있었단 말이냐. 그리고 세탁기 바닥에 있는 얼음파편과 물을 퍼내기 정상화에 성공한 듯 보였다. 우선 탈수기능을 사용해보니 물도 잘 빠지는 것 같고...

 

그래서 당장 빨래를 몽땅 넣고 세탁기능 가동! 어라, 세탁기가 안도네. 몇 차례 해도 안된다. 빨래량이 많아서 그런가 싶어 몇 개만 넣고 해도 마찬가지이고... 혹시 그 추위에 세탁기가 맛이 간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AS를 부르자니 차라리 사는 게 나을 듯 싶고...  사더라도 세탁기를 바꾸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이를 빼고 다시 넣을 생각을 하면... 그 전에 이 젖은 빨래는 또 어떻게 처리하나? 옆 집에 말을 할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후배 녀석 집을 찾아갈까, 아니면 빨래방에 갈까.

 

그 온갖 잡생각을 하다가 그냥 나중에 보자 하면서 일단 연구실로 출근. 그 전에 안경테를 바꾸고, 헌책방에서 책을 사다. 다 합쳐서 정가가 6만 5천원 정도 되는 걸 3만원에 샀다면 싸게 산 건가. 

 

한 밤중에 퇴근하여 다시 세탁기 가동 시도. 역시 안된다. 정말 고장난 건가. 그래도 혹시 세탁기 통 말고 그 아래가 여전히 얼어 있어서 돌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래는 다 끄집어 내고 뜨거운 물을 세탁기 통안에 부었다. 이번에는 탈수기능 가능, 그러나 역시 안된다. 그렇게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무렵 세탁기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세탁기 통 아래의 얼음이 깨지면서 통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혹시나 그 얼음 때문에 모터가 고장나지 않나 싶어서 우선 작동을 멈추고 뜨거운 물을 다시 들이부었다. 어제의 전투는 거기까지.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세탁기를 돌렸더니 이제는 돌아간다. 통 아래에 있던 얼음도 녹은 모양. 앗싸! 다행히 밤새 그리 춥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탁, 행굼, 탈수를 반복하고 나서 빨래를 널고 나니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오늘은 그렇게 빨래하고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나서도 보고서를 쓸 생각이 들지 않으니... 눈 앞에 이장님, 해연, 경근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이것도 27일에 발표해야 하는데... 물론 지금 상태도 그리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좀더 보완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하루 정도는 봐주겠지. 최다니엘의 되고송처럼 '오늘 할일 낼로 미루면 되고'가 되어선 안되겠고, 지금부터 해서 내일까지 마음을 다잡고 ...

 

이것도 하나의 보고서로 되려면 각자가 맡은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공공성 부분이라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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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1 19:41 2010/01/21 19:41

11 Comments (+add yours?)

  1. 양다슬 2010/01/21 20:53

    오호...
    예전에 나는 화장실 변기안 물이 다 얼어서 고생한 적이 있사오만
    세탁기 얼었다는 얘기는 처음이네.
    형.. 너무 재밌다. 어디 회보나 간행물에
    한번 써서 기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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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길 2010/01/21 21:07

      X팔리게시리 무슨 기고? 아무튼 특이한 경험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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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연부네 집 2010/01/21 21:57

    푸하하 세탁기에 머리 박고 낑낑대며 얼음 깨는 장면이 자꾸만 떠오르네요. 고생하셨음다.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시길....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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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길 2010/01/21 22:11

      그 때 허리 아파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슴다. 그렇게 꾸부정한 자세로 몇 시간 있었더니... 거의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허리에 이상이 생겼나 하는 걱정마저... ㅡ.ㅡ;; 다행히 지금은 정상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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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들사람 2010/01/21 22:55

    "..지금 이럴 정신이 있으면 안되는데, 뭔가 해야할 일이 있으면 꼭 엉뚱한 것을 더 하고 싶거나 읽고 싶어진다."

    무한공감이네여 ㅎㅎ ;

     Reply  Address

  4. 앙겔부처 2010/01/23 00:16

    푸흐흐흐흐흐 너무 깬다 왕웃김-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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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조선폐간 2010/01/23 15:38

    실은..저도 베란다에 있던 세탁기가 얼어서 손빨래 한지 2주 되었습니다. 배수관이 얼었는지 물이 안 빠졌죠. 드럼세탁기라서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게 얼어서 지난주에 얼음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방치..그냥 배수관이 녹을때까지 손빨래하려구요..저는 오기란게 전혀 없어서요..흐음..

     Reply  Address

  6. 로자 2010/01/24 21:11

    ㅎㅎㅎㅎ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런 거 끝내고 나면 뿌듯하지요. ^^

     Reply  Address

  7. healtygirl 2010/03/17 13:54

    세탁기 고장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는데..이렇게 되었군
    역시 날이 추우면 가난한 백성이 힘들다니깐...내 생각에는 맛간 세탁기가
    철옹 불쌍해서 더 오래 살아주기로 결정한듯..ㅎㅎㅎ..세탁기 잘 돌보면서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Reply  Address

    • 새벽길 2010/03/18 05:13

      사용해보니 앞으로 몇년은 더 유지될 것 같네요. 다만 물 투입하는 게 말을 듣지 않아서 조금 불편할 뿐이죠. 그래도 오래오래 함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이사를 가게 되면 바꿔야죠. 지금은 버리기도 쉽지 않아서리, 고장났으면 정말 문제가 심각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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