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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자기계발 교재 <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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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공부의 신>이 종방한지 보름이 넘었다. '공신'이 방영될 때에는 이에 대한 상당한 논란이 일었고,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물론 공신을 한번쯤이라도 본 사람들 얘기다.
 
나는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그리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기에 <관료제론>을 강의하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둠의 경로'를 비롯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간에 드라마 <시티홀>을 다시 보고 여기에 나타난 관료제와 관련된 쟁점들을 정리해서 기말보고서로 제출하라고 하였다. 물론 다시 보라고 하였지만, 야간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경우 이를 아예 보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도대체 드라마는 누가 보는 걸까.)
 
다시 공신으로 넘어가서 지금 이 시점에서 공신을 어떻게 볼까. 결론까지 봐서는 단지 학벌주의만을 고취하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의도된 효과를 냈을까. 공신의 유현기 PD는 공신의 취지는 서울대를 목표로 한 ‘입시 드라마’가 아니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성장 드라마”라고 하였다. 그런 면도 있긴 하겠지만, 공신을 봤던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을까.
 
아무리 일본 만화를 모티브로 해서 대본을 짰다지만, 지금의 학교현장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를 보여준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과거 고교생 일기나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공신에 대해서만 그런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명문대 진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교육풍토를 묘사한 것이 타당한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겠다.
 
변호사 김수로의 캐릭터는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학생들에게서 아저씨 취급을 받다가 마지막에 선생님으로 대우를 받는다. 학생들이 진심을 알아주었다는 것인데, 단지 입시트레이너에 불과한 사람만이 교육에 대해 입바른 말을 하고 나머지 교사들은 찌질하게 나오는 게 그럴싸한가. 게다가 그 입시전문가는 자신은 선생이 아니라고 하고 자신이 은사로 인정하는 몇명을 제외하고는 선생 취급도 하지 않는다. 물론 드라마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렇지 않지만... 현실에는 그런 변호사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어려운 가운데서도 묵묵히 가르치고 있는 상당수 교사들의 노력을 깔아뭉개는 것이어서 그냥 봐주기 어렵더라. 
 
김수로는 처음 방영분에서 '룰'를 뜯어고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그 말 자체는 맞지만, 천하대, 서울대를 진학한다고 하여 룰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의 이 룰 자체도 사실상 그 서울대를 졸업한 기득권 세력이 만든 것이다. 결국 지배계급 속으로 들어가서 바꾸라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공신에 대한 여러가지 평이 있었지만, 솔직히 이 드라마에 대해 왜 그런 식의 비판을 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나마 모피디의 글이 이 드라마의 문제점을 잘 짚었다. 공신은 입시드라마가 아니라 훌륭한 자기계발 교재였다. 물론 여기에 성장드라마의 요소도 있기는 했다. 그래서 고딩역을 한 배우들을 보면서 과거 내 고딩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한국 드라마에서 고질적인 문제, 즉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를 비켜간다는 것은 여기서도 당연히 관철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도 감동을 느끼는 훌륭한 자기계발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뭘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안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공신은 처음부터 천하대 노래를 부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과정의 중요성,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한다. 이는 맥락을 떼어놓고 보면 참 좋은 말이지만, 현실의 맥락 속에서는 말 그대로 기득권세력의 달콤한 유혹일 뿐이다. 최규석이 <고래가 그랬어>에 그렸던 '불행한 소년'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천사의 말처럼 말이다. ('불행한 소년'에서는 아주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나 참고 또 참으며 평생을 죽도록 노동했으나 결국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게 된 사내가 제 정당한 분노를 늘 삭이게 했던, 그리고 이제 죽어가는 그에게 천사는 “비참해하지 말아요. 당신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그 불행한 소년은 천사를 죽이고...)  
 
앞으로도 알게 모르게 자기계발을 다그치는 드라마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스펙을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걸 또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냉소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걍 드라마에 초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이와는 무관하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88만원 세대인 정음이 최종회가 되기 전에 과연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김병욱 피디의 전작들을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진 않은데...)  
 
덧붙여, 유승호 때문에 본 이들도 있겠지만, 티아라의 지연이 나오는 것 때문에 본 이도 상당히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지연은 꽤 성숙한 것으로 봤는데, 아직 고딩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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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막장 사기 드라마 <공부의 신> (레디앙, 2010년 01월 14일 (목) 09:44:07 하재근)
[TV 이야기] 입시 트레이너가 전국민에 '호통'까지…국가의 근간 공격 
 
KBS 내부에서도 <공부의 신> 거센 비판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18일 (월) 14:42:08 조현호 기자)
노조 공보위에 회부… "학생, 선생 입시도구로 전락" 
 
최성원 KBS 노동조합 공정방송실장은 <공부의 신>에 대해 "1회 방송한 것을 보고 조대현 부사장에게 '드라마가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고 촉구했고, 2회 방송한 것을 보고는 TV제작본부장에게 문제제기를 했다"며 "이 드라마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개그콘서트>의 개그맨 박성광씨가 하는 말을 뒷받침해주는 드라마"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문제는 정권의 명운을 바꿔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문제임에도 이 드라마는 그런 교육의 가치와 중요성을 파괴하고 역주행하도록 한다는 것을 교묘하게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공부의 신>에서 수학의 신으로 불리는 초빙 수학선생 차기봉(변희봉)의 수학 교육 방식이 모르면 외우라고 강조하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방법에 대해서도 "외우기면 하면 된다는 과거 교육방식이 정답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서도 "아이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트레이너가 돼야 한다는 발상은 학생과 함께 또다른 교육주체인 교사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무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교사의 성찰과 자성은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 현실에서 교사들이 모두 드라마처럼 법인카드로 저녁 먹는 걸 좋아하고, 수업할 때 학생들이 무슨 짓을 하든 외면한다고 보긴 어렵다. 일부 이런 교사들이 있다고 해도 이런 것이 입시를 앞둔 일선 학교 교사들의 실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악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교사들의 수준이 이러니 교원평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논리의 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화적으로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황백현(유승호) 등이 선생들을 비웃고, 비아냥대며 시도때도 없이 반말을 던지는 장면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최 실장은 지적했다. 최 실장은 "과연 이렇게 아이들이 선생한테 대놓고 반말하는 것이 한국사회 교육의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와 함께 <공부의 신>이 일본드라마를 베끼다시피 방송하고 있다는 점도 도마에 올려졌다.
  
<공부의 신>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드라마 (레디앙, 2010년 01월 21일 (목) 10:53:43 하재근)
[TV 이야기] 입시교육이 참교육?…지옥불에 휘발유 들이붓는 형국 
  
<공부의 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라마 초반보다 조금은 커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는 <공부의 신>을 지지하고 있고, 그래서 비판이 커질수록 옹호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어제 오늘은 심지어 나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는 매체들에도 <공부의 신>을 옹호하는 칼럼들이 실렸더군요. 대체로 옹호 의견들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이게 현실인데 어쩌라고?
2.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버하지 말자
3. 난 오히려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됐는데?
4. 김수로의 일갈이 통쾌하다.
 
<공부의 신>을 비판하면 자꾸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대안을 따지기 이전에, 입시지옥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입시드라마를 방영하면 안 되는 게 기본인 겁니다. 이런 게 방영되느니, 일회적으로 소비되고 마는 단순 오락드라마를 내보내는 게 차라리 대안일 수 있겠네요.

  
<공부의 신> 두고 남의 다리만 긁고 있으니… (프레시안, 모피디, 2010-02-25 오전 8:28:03)
[모 피디의 그게 모!] 시스템과 개인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은 시스템의 불합리에 대해 말을 아낀다.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한다. 교육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존재하는 제도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 안에서 개개인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에 집중한다. 한 마디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에 대해 언급할 때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대학 입시로 삶의 계급장을 취득하게 만드는 제도와, 그 과정이 사교육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입시 지옥 현상. 삶과 생활, 공동체로서의 학교가 아니라 생존과 경쟁, 순위 매기기로서의 학교가 되어가는 현실이 온당한가. <공부의 신>은 그에 대해 '노력'과 '진심'이라는 다소 김새는 답을 내놓는다. 왜냐하면 <공부의 신>은 '사회과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보내는 '옥중 서신'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남은 자의 '성공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점이야 말로 이 드라마의 성공의 이유이긴하다. 한국 교육 제도가 엉망이라는 것은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이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뭘 어쩌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서울대에 가는 것이 이 현실에서 승리하는 방법인 것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꼴찌들도 노력하고 도전해서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자체는 오히려 시청자의 관심사에 솔직하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며, 그만큼의 감동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이야기의 결론에서 '천하대가 전부는 아니며, 자신이 꿈을 찾아 노력하는 법을 배우는 일 자체가 공부고 그 공부를 해낸 너희들은 모두 승자'라는 지당한 말씀을 전해 주니, 이것이야 말로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이자 성공기 아니겠는가. 존재하는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그 과정 자체가 인생에 득이 된다는 말은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늘 필요한 위로와 격려인 것은 사실이다.
 
이 드라마의 결론은 이 드라마의 전제를 뒤집는다. 애초에 오직 천하대, 국립 천하대 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와서 그 모든 것이 과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물론, 그 과정에서 학생은 성장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장은 시스템이 목표로 하고 보장하는 성장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과제를 수행하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성장이다.
 
대입시험이야 말로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대학 간판이라는 결과 하나로 승리자를 내놓는 시스템 아니던가. 결국 <공부의 신>은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룰을 전파할 뿐이다. 아마도 이것은 드라마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제작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면적인 이야기의 구조는 신랄한 소재에 민망할 만큼 순진하다. 이보다 더 모범적이고 착할 수 없다.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어. 열심히 살라고 해준 스승이 고맙고, 열심히 살았던 순간이 행복하지. 입시 교육의 지옥도에 위로와 격려만을 남기고 슬쩍 발뺌한 격이다. 왜 지옥이 된 건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공부의 신>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시스템의 문제를 개개인의 미덕 차원으로 환원해 버리는 관점이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교육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학생들의 열패감만 더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간 <공부의 신>을 둘러싼 논쟁은 한숨이 나오도록 남의 다리만 긁고 있었다. 크게 '일본 작품 베끼기', '공교육 비하', '사교육 홍보', '학벌 지상주의'로 요약되는 비판들은 교육 체제와 TV드라마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학벌 지상주의', '공교육 비판' '사교육 홍보'라는 프레임은 이 드라마가 우리 교육 현실을 받아들이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 사회가 학벌 지상주의이며 공교육에 문제가 많고 아무리 사교육을 잡으려 해도 오히려 번창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은 비루한 현실을 드라마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온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치면 모든 픽션은 불온하다. 픽션의 태동 자체가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욱이 <공부의 신>은 불온하긴 커녕 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실 이제 우리 사회는 천하대에 간다한들 보장되는 것이 별로 없는 곳이 되었다. 이 나라는 행복과 정의를 논하지 않고 늘 경쟁과 생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패배자와 낙오자 정서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것은 천하대에 갔다 해도, 1등을 했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정서다. 그 승리를 통해 얻는 것이 단지 경쟁에서의 승리일 뿐, 그를 통한 어떤 가치의 획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청자들은 시즌2로 <취업의 신>을 청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의 수많은 예비 패배자와 낙오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면서도 '모든 것은 너하기 나름'이라고 한다면 이건 사실 잔인한 말이다. <공부의 신>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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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03:03 2010/03/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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