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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금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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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낙태가 논란이 되는 이유가 뭘까. 대한민국도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신호?

낙태와 관련한 논의의 근저에는 출산율 저하현상이 자리하고 있을 텐데, 이를 살펴보면 정작 지금 필요한 것들 내지 논의되어야 할 것들이 회피되고 있는 무의사결정 내지 프레임의 왜곡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낙태만이 아니다. 어떠한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관련된 글을 모아보았다. 물론 여기에도 내 입장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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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애의 인권이야기] 출산 결정권을 온전히 여성에게 맡겨라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인권오름 제 186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13일 11:38:39)
  
낙태근절 운동과 산부인과
지난 해 11월 산부인과 의사들이 그동안 불법 낙태를 많이 한 것을 반성하며 불법 낙태 근절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하였다. 한해 200만 건의 낙태건수가 산부인과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양심선언을 할 만하다. 낙태의 90퍼센트가 ‘불법 낙태’이다(2006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실태 조사). 다시 말하면, 불법인데도 여성들이 낙태를 원하고 있고, 그만큼 시행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출산과 양육은 삶 전체를 뒤바꿔 놓을 수 있는 문제이므로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시키기를 원하는 여성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어 의사와 여성들을 범법자로 몰아넣고 있다.
 
범국민 출산 장려 캠페인
지난 해 11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출산과 육아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보육 지원 예산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삭감했고 국공립 보육시설 건립 약속도 예산의 뒷받침이 없어 공염불이 되었다. 출산과 육아 조건의 지원은 말뿐인 정부는 모든 책임을 여성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아이보다는 생활의 안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사교육비가 힘들어 동생 없는 외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동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TV방송 공익광고 내용이다. 마치 저출산이 여성의 생각과 선택의 문제라는 듯이 ‘여성들이여, 이제 마음을 고쳐먹고 아이를 낳아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출산 파업의 원인인 생활의 안정, 사교육비 문제 등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마음을 고쳐먹을만한 감동이 없으니 파업은 계속될 것 같다. 
 
여대생 출산서약 동원
범국민 출산 장려 캠페인이 벌어지자 모 여자대학에서는 '행복선언문'이라는 제목의 '출산 서약서'를 받았다고 한다. 적극적 출산, 낙태 방지, 가정의 화목에 여대생이 앞장서겠다는 내용이었다. 여성 개인에게 저출산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나 이에 동원되어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학이나 모두 제대로 된 상태라 하기 어렵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여성의 인권과 결혼 출산에 대한 권리를 희생시키고 있다. 여성의 희생 위에 있는 정책으로 어떻게 여성의 출산이 확대될 수 있겠는가. 
 
서약행사에 앞서 '나의 다출산 동참의 최우선 조건은?'이라는 설문 조사에서 여성들은 출산 장려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첫 번째로는 육아비·의료비·교육비 부담 완화, 두 번째로는 육아 휴직 제도의 완비와 출산 및 양육으로 인한 직장 내에서의 차별 철폐 등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다출산의 최우선 조건'은 사회적 환경과 제도적 지원인 것이다. 
 
저출산 문제의 해법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엉뚱하게 낙태 단속과 처벌 등 낙태 근절 대책을 포함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낙태를 거부하고 낙태 시술을 하거나 자제함으로써 줄어들 병원의 수입을 정부가 인상해줄 계획이라고 한다.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고 낙태가 줄어들고 출산이 확대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혼 여성이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였을 경우나 아이를 원해도 기를 경제적인 형편이 안 되는 경우 낙태를 선택한다. 비혼 여성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미미한 지원 때문에 낙태를 선택하게 된다. 출산과 육아를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낙태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비난 받거나 처벌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의 출산은 여성이 충분히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태와 출산에 대한 결정을 의사도, 국가도 아닌 여성 자신이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사회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자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다.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출산과 양육은 국가가 책임집니다” 라고 말할 때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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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미쳐 양육 팽개친 부부-낙태원정 떠나는 여성들 (미디어오늘, 2010년 03월 09일 (화) 00:26:46 황정현 (프로듀서)) 
개인에게만 책임 물을 순 없다…복지정책 재점검 필요
 
중국으로 낙태원정을 떠나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불법’ 낙태 단속 강화로 인해 각 병원에서 낙태 시술을 꺼려하고 있고 시술 가격 또한 2백만~3백만 원 수준으로 올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낙태 시술을 받으러 가는 것. 결국 낙태를 하러가는 여성들만 위험에 노출된 꼴이다. 이 사안 또한 몸을 제대로 간수 못했다며 그 여성들이 온전히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함께 도덕적 비난도 아울러 떠안게 되는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 과연 그 미숙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과 자신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낙태를 하는 것이 꼭 그들만의 책임일까. 이에 정부에서는 게임 과몰입에 대한 피로도 시스템 등을 도입하겠다고 하는 등 게임의 폐해 정도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낙태의 경우 방만한 성윤리에 대한 문제점과 성교육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대응 방안의 문제는 이 모든 사안을 철저하게 개인화시킨다는 점이다. 이 논의 과정에서 왜 그들이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지, 왜 그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낙태를 원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이 정부는 모든 사회적 난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넘쳐나는 사교육비를 비롯한 교육 문제도 개인의 문제이며, 취업이 되지 않는 것도 외국에 나가지 않는 ‘스펙’이 딸리는 개인의 문제다. 자영업/소상인들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극복 가능한’ 불황을 뚫지 못하는 것이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도 결국엔 개인 채무인 것이다. 문제는 정부/국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엔가 대중들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비난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공론화는 마녀 사냥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출산을 강제하지만 양육은 외면하는 사회의 모순된 태도는 영아 유기와 살해를 방조하는 것과 같은 형태이다. 성폭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에게 출산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미숙아와 같은 영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부모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좋은 엄마, 아빠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 ‘부모’로서 개인의 의무와 도덕은 강요하지만 의료와 육아라는 국가, 사회 공동체의 책임은 슬그머니 외면해버리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거기에 정부는 저출산율을 극복하기 위해 공익 광고와 캠페인 등을 통해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앞서 언급된 영아 방치 사건처럼 부모의 사랑이라는 ‘오직 단 하나’의 울타리가 거두어지고 나면 또 어디에선가 버려지고, 또 굶어죽을지 모른다.
  
이렇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부분조차 개인의 도덕성을 담보로 한 부담으로 지워지고, 극복하지 못하면 ‘루저’가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개인적 차원에 계속 머물게 될 경우 방치되는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나는 그렇지 않다며 타인을 비난했던 문제들은 곧 우리들 모두의 문제이므로. 컴퓨터 게임에 비유하자면 ‘4대강’이라는 게임 공간에서 ‘강에 콘크리트 옷 입히기’ 등 ‘레벨업 노가다’를 하고 있는 정부 때문에 무상급식 등 복지 예산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처럼, 우리는 이미 부모의 무관심 속에 죽어간 3개월 된 영아처럼 조금씩 말라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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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임신ㆍ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 (<레프트21> 26호(2010-02-27 발행))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임을 선포하다
 
102주년 3ㆍ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3월 5일 오전 11시, 청계광장에서 낙태 단속과 처벌에 반대하는 24개 여성ㆍ진보단체들은 ‘여성의 임신ㆍ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50여 명이나 모여 낙태를 처벌하려는 정부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기자회견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고발과 정부의 낙태신고센터 운영 등 낙태 처벌 시도에 맞선 한국 여성ㆍ진보단체의 첫 공동행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단체들은 그동안 낙태 처벌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두 차례 발표하며 공동대응을 모색해 왔다.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는 “돈 없는 여성은 몸을 자해하는 방식으로 낙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00년대 미국에서 낙태합법화 운동이 벌어진 것은 한 여성이 철제깡통을 날카롭게 잘라 몸속에 넣고 낙태를 시도하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큰 계기가 됐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간호사 마거릿 생거는 낙태합법화 운동을 펼치면서 ‘여성에게는 아이를 낳을 권리와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함께 최미진 활동가는 진보ㆍ여성 단체들이 선언식을 열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며 “이유가 무엇이든 원치 않는 출산으로 고통받을 당사자는 바로 여성 자신이므로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다. 이 때문에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낙태할 권리는 여성해방 운동에서 중요한 요구였다”고 주장했다. 또, “낙태 단속 이후 낙태 비용이 무려 10배 이상 치솟았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고, “낙태 처벌은 여성 노동자와 빈곤 여성들, 미혼모와 임신한 10대를 속죄양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란희 인권정책국장은 낙태 단속 이후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시술을 거부하면서, 낙태를 필요로 하지만 낙태할 곳을 찾지 못해 전전하는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을 고발했다. “정부 방침 이후 낙태 문제로 상담을 원하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심지어는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병원에서 입증 서류나 고소장을 요구하는 등 시술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는 멕시코 낙태권 옹호 운동의 국제 연대 메시지를 조직해 발표했다. 102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전국여성대회 공동기획단의 연대 메시지도 발표됐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의 임신ㆍ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는 현 상황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재치있게 준비해 참가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선언식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의 선언문 낭독으로 끝났다. 다음은 선언문 전문이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의 임신ㆍ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
 
여성들은 오랫동안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왜곡된 성문화와 가부장제에 문제제기하고, 몸에 대한 자율성이 바로 여성들의 권리임을 알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에 만연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다시 모이게 했다.
 
최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시술을 하는 병원 세 곳을 고발조치했다. 정부는 직접 나서서 낙태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절박함과 위급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 및 재생산권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여성의 몸과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인 발상이다.
 
여성의 몸을 국가발전과 유지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여성의 출산에 대한 선택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불평등한 이성애 관계 속에서 피임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한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열악한 사회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제도 밖의 임신을 비난받아야 할 행동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언제 누구의 아이를 몇이나 출산할 것인지를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임신과 낙태, 그리고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 이는 여성의 몸과 삶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조치 이후, 여성의 임신ㆍ출산을 비롯한 몸에 대한 결정권과 건강권에 대한 침해는 심각해지고 있다. 낙태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워졌고, 시술 비용은 이미 훌쩍 뛰었다. 외국에서의 낙태시술을 고려하는 여성들도 생기고 있다. 심지어는 법적으로 보장된 강간피해로 인한 낙태도 시술을 거부당하고 있다. 단속이 강화되면 낙태시술이 음성화되고 비용이 높아져 결국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모든 억압을 단호히 거부하며, 임신과 출산을 비롯한 몸에 대한 결정권이 그 누구도 아닌 여성 자신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 낙태시술 단속 강화는 여성을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정부는 여성 인권 침해하는 낙태고발과 단속을 즉각 중단하라! 
- 여성의 몸은 국가발전을 위한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정부는 여성의 임신ㆍ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하라! 
-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를 허용하라! 
- 모든 여성에게 혼인상태, 연령, 계급,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피임, 임신, 출산, 낙태를 비롯한 몸에 대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몸과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기위한 움직임을 시작한다!
 
2010 3.5 
여성의 임신ㆍ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 참가자 일동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다함께 여성위원회, 문화미래 이프,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성소수자위원회,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붉은몫소리,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 사회진보연대, 성노동자권리모임지지(GG), 언니네트워크,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여성위원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향린교회 여성인권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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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금지 논란 - 소모적인 생명 논쟁, 그 벽을 넘어서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레프트21> 26호 | 발행 2010-02-27 | 입력 2010-02-25)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항상 초미의 관심을 가져 왔다. 강간인지 화간인지, 임신인지 아닌지, 낙태하려 하는지 낳으려고 하는지. 수십 년 전에 한반도에 인구가 너무 많다고 호들갑 떨던 시절, 국가는 여성들의 자궁 속을 열심히 단속했다. 아니다. 이미 더 오래전부터 이 여자가 처녀인지 아닌지, 꽃뱀인지 아닌지를 가리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가부장제의 역사가 길다.
 
재생산권 쟁취는 여성운동의 오랜 과제였다. 모든 이의 출산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서 여성계가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사회적 인프라를 확보하려 오랫동안 투쟁해 온 역사가 풍성하다. 비혼모에 대한 편견, 한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인프라, 동성애자의 가족구성권과 출산권, 10대 섹슈얼리티의 권리 등은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관심거리이자 토론 주제다.
 
우리 사회 약자들의 역사에서 낙태권 이슈가 진작에 제기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재생산권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장되는 것이 없고, 낙태만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 낙태가 강요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나마 원할 때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선택권마저 논쟁적 안건으로 꺼내 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불법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함으로써 낙태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여성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프로라이프 의사회. 이 의사회는 여성들에게 결정권이 있었던 게 아니라 실은 여성들이 도덕의식이 부족해서 함부로 낙태를 해 온 거라며 낙태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출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여성이 행복한 사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치고 지친 여성들이 출산을 줄이자 대한민국은 역사상 초유의 저출산 시대를 맞게 되었고, 놀란 사회는 낙태 금지를 외치며 여성들의 진정한 권리와 행복은 낙태가 아니라 출산에 있다고 떼를 쓴다. 생명에 대해서 나와는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고 또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죽기살기로 쫓아다니며 낙태는 살인이니 처벌받아야 한다고 야단치고, 이유를 막론하고 임신만 하면 그 애를 낳아서 키워야 한다고 호통을 치는 수준에 이르면 의심이 생긴다.
 
행복한 출산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건만 왜 ‘고발’부터 시작하는가? 태아는 사람의 가능태이니 마땅히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태를 살인죄로 다스리는 국가는 없다. 윤리의식을 제고한다고 해서 모든 사안을 형사처벌로 다스리는 것은 아니다. 낙태는 권리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면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 대처할 방안을 마땅히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권을 ‘내 몸, 내 마음대로 한다’ 쯤으로 이해한다면, 이건 인간의 존재 조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발상이다. 생명이니 아니니, 살인이니 아니니 하는 식의 극단적인 논쟁은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고민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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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계급 문제이기도 하다 (정진희 (다함께 활동가), <레프트21> 26호 | 발행 2010-02-27 | 입력 2010-02-25)
 
낙태권 공격은 특히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심각한 타격이다. 낙태 시술 위축으로 낙태 비용이 벌써부터 3백만 원으로 치솟았다는 얘기가 상담소에 접수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낙태의 역사는 항상 계급적 쟁점이었다. 전 세계에서 낙태 금지로 무면허 낙태시술을 받다 죽은 여성들 중 지배계급 여성은 낙태가 완전히 금지된 나라에서조차 없었다. 부유한 여성은 그냥 비행기를 타고 낙태가 합법이거나 적어도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가면 된다.
  
1백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낙태 단속은 살 떨리는 공포다. 저임금, 비싼 전월세, 높은 양육비에 시달리는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지속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낙태반대론자들의 낙태권 공격은 심각한 위협이다. 이에 맞서는 저항이 대규모로 건설돼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조합이 이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1979년 영국에서 낙태권 공격에 맞서 8만 명이 참가하는 대중운동을 이끈 게 노동조합총연맹(TUC)이었다. 민주노총 등이 주최하는 올해 3ㆍ8 세계여성의 날 집회에 “낙태 처벌 반대, 출산 강요 반대, 여성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쟁취”가 요구에 포함된 것은 고무적이다. 앞으로 이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투쟁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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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선택권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이다
 
3월 7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다함께’가 주최하는 3ㆍ8 여성의 날 기념 토론회 ‘낙태금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하는가’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약 2백 명이 참가했다. 연사로 나선 한국여성의전화 란희 인권정책국장과 정진희 다함께 활동가는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최측은 토론 시작 전에 낙태 문제를 다룬 유명한 영화 <더 월>을 일부 상영했다. 미국에서 낙태가 불법이었던 시대에 무허가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이 피 흘리며 신음하는 장면은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진희 다함께 활동가는 현재 모자보건법은 무척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데 “여성이 원하면 이유가 어떻든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가 무상 시술을 제공하고 여성 노동자들이 낙태 시술 후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금지가 특히 노동계급 여성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활동가는 낙태반대운동 진영이 내세우는 여러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생명권’ 논리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7만 명이 불법 낙태 시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는다. 정 활동가는 여성들을 이렇게 위험한 불법 시술로 내몰 낙태근절캠페인이 ‘생명권’을 거론하는 것은 “속임수”라고 지적했다. 또, 우익이 한국 사회를 더 보수화시키고 여성을 경제 위기의 속죄양 삼으려는 공격의 발판으로 낙태 문제를 활용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도 낙태 처벌 반대 주장에 공감하며 발표를 했다. 란희 국장은 “애들을 낳아서 청와대 앞에 갖다 놓으면 키워 주냐”며, 정부가 내놓은 낙태 방지 대책을 어이없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또, 수십년 전에는 일요일이면 골목골목 차가 돌며 ‘무료 임신중절수술을 하니 나오라,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광고했는데 지금은 넷째 아이 낳으면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하는데, 이는 여성을 “임신 가능한 신체”로만 취급되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는 성폭력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전과 달리 성폭력으로 임신을 해도 산부인과들이 ‘고소장을 갖고 오라’며 낙태 시술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란희 국장은 제도를 바꾼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며 “일상생활까지 바꿀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사들의 발표가 끝나고 주최측은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에게 특별 발언을 청했다. 현직 의사인 우석균 실장은 “당연히 낙태를 합법화하고 건강보험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실장은 낙태를 합법화하면 낙태가 늘어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프로라이프의사회 소속 의사 심상덕이 정부가 산전 진찰에 보험을 적용하려 할 때 크게 반발한 과거를 소개하며 “[그가] 생명권 운운하는 건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청중이 참가하는 자유토론 시간에는 10여 명이 나와 질문하고 주장을 펼치며 토론시간을 꽉 채웠다. 이들은 대체로 낙태 선택권 보장을 지지하는 의견을 밝혔다. 공무원 노동자인 한 중년 남성은 “수도꼭지처럼 틀면 아이가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한 남성 대학생은 우파들이 낙태 권리를 공격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이에 다함께 최미진 활동가는 낙태 처벌 시도가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기도 하다며 여성에게 집에서 애를 낳고 돌보는 데 헌신하도록 강요하고 이런 주장을 우익이 결집할 발판으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미국 크리스챤 중 우익들은 낙태 시술 의사를 총으로 죽이는 테러를 하기도 하지만,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여성들이 안전한 낙태를 할 수 있게 도왔다”면서 낙태가 추상적 도덕∙종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5월에 딸을 낳는 예비 엄마라는 한 여성은 ‘출산 강국 코리아’라는 공익광고가 출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엄청난 욕을 먹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출산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인데, “낳으려는 여성의 선택과 낳지 않으려는 여성의 선택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 활동가라는 한 간호사는 병원 노동자들은 임신 계획도 조절하라는 주문을 받는다며, “임신하면 축복이 아니라 동료 노동자에게 짐이 되는” 현실을 전했다. 이 여성은 여성들이 죄책감 없이 낙태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조직 노동자들이 공세적ㆍ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에서 의료 윤리를 공부한다는 한 의사는 낙태 문제가 미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주요 기준이 된다며, 여성의 자기 결정은 중요한 정치 문제라고 말했다.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은 서구 우파는 30년 동안 낙태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워 ‘대장정’을 했다며 한국 우파도 이 문제를 길게 물고 늘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미국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에 의존하다 낙태권 옹호를 포기한 사례를 들며, 아래로부터 운동으로 낙태권을 옹호하는 ‘대장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 발언 시간에 란희 국장은 낙태 시술 후 자살을 시도한 한 여성을 사례로 들어 ‘여성이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현실’을 설명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인데도 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가혹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진희 활동가는 제도적 개선은 일상의 성 관념을 바꾸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며 란희 국장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고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중적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정부가 단지 여성의 권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 공격, 대량해고를 자행하고 교육권도 공격하는데, 우리 투쟁이 이런 공격들에 맞선 투쟁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고 강조했다.  
 
사회자는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낙태반대운동 때문에 절박한 심정을 느끼는 상황에서 여성운동과 진보운동이 낙태반대운동에 맞서 운동을 벌이는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평가했고, 토론회 참가자들에게도 낙태 단속ㆍ처벌 반대 운동에 함께해 달라고 당부하며 토론회를 마쳤다. 한국에서 낙태 선택권을 옹호하는 진영이 낙태 문제를 이렇게 공개적인 대중 토론에 부치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낙태반대운동 때문에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이때, 많은 사람들이 낙태 선택권에 지지를 보내며 의견을 모은 것은 무척 뜻 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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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및 시민단체들이 ‘임신·출산에 관한 여성의 결정권 보장’을 촉구한다. 낙태시술 의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낙태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의사회와 정부의 낙태 규제 움직임에 대한 ‘반대 선언’인 셈이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1일 발표한 ‘불법 인공임신중절예방 근절대책’을 둘러싸고 낙태 논란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청소년 한부모 지원 강화와 위기임신 상담 핫라인 개설, 단속방안 마련 등 낙태문제와 관련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성 및 시민단체들은 ‘낙태 허용’을 요구하며 기존의 정책을 짜깁기한 알맹이 없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우리의 낙태 실태와 낙태 근절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 보고, 실제 사례와 다른 나라의 정책 등을 통해 낙태 규제 정책의 한계와 보완점 등을 살펴본다.
  
■ 낙태 여성들의 목소리
유영희(31·여·가명)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낙태를 쉽게 하는 사람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하는 것인데 금지하면 더 음지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희씨는 스물세 살 무렵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던 중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둘 다 직업이 없는 데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도 충분치 않았다. 결국 술집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돈 되는 일을 하면서 간신히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덜컥 아이가 또 생겼다. 영희씨는 “그냥 죽고 싶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피임도 철저하게 했는데….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남자친구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바 매니저’로 일하는 영희씨의 월급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고, 7살짜리 첫째 아이도 부모님이 대신 키우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시간이 지나면 수술을 못 할 테니 일단 지우자.”고 재촉했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뱃속에서 두 달 가까이 품은 아이를 낙태한 뒤 꼬박 1주일을 울었다. 상실감과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와 미칠 듯이 괴로웠다고 했다. 영희씨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낙태 금지론’에 대해 ‘현실을 보지 못한 근시안적 처사’라고 꼬집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을 100% 여성에게 지우면서 사회가 도와주는 것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낙태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직장인 김은혜(29·여·가명)씨도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이를 포기했다. 지난 200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간 뒤에야 뒤늦게 임신 5주가 된 것을 알게 됐다. 담당의사는 교통사고에 따른 충격에다 항생제 등 약물 투여로 인해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높다며 낙태를 권유했다. 그녀는 “몸도 너무 힘들고 불안해 결국 낙태를 했다.”면서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은혜씨가 임신과 낙태를 경험한 사실을 전혀 모른다. 낙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은혜씨의 가슴은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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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근절대책 찬반 논쟁] OECD국 상당수 상담 의무화 (서울, 백민경기자, 2010-03-08  4면)
伊 “청소년 임신 90일 이내땐 낙태 허용”
 
낙태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수십년간 격렬한 논쟁을 벌여 온 사안이다. 각국의 허용 기준과 범위도 각각 다르다. 이탈리아에서는 청소년 임신의 경우 90일 이내에 낙태를 할 수 있다. 체코에서는 40세 이상이거나 자녀가 셋일 경우 허용 대상이 된다. 그러나 상당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낙태 허용절차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의무적으로 ‘상담’ 과정을 거치도록 한 것. 독일 프랑스 스위스 핀란드 이탈리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영국과 스웨덴은 임의적 절차로 택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임신 12주 내의 낙태시술일 경우 의학적·사회적 상담절차를 거치게 했다. 임부들은 우선 의사로부터 의학적 위험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상담소에서 사회적 상담을 받는다. 상담소는 임부의 개인적 상황과 관련, 자립 지원방안 등을 조언해 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상담과 낙태시술 사이에 반드시 최소 3일간의 ‘유보기간’을 둔다. 일종의 숙려기간인 셈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출산이 힘들 경우 의사 2명의 동의를 받으면 언제든 낙태가 가능하다. 사회·경제적 이유에 의한 낙태 허용은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이를 인정해 주는 측면이 강하다.
 
실제 30개 OECD회원국 중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인정하는 곳은 미국, 캐나다 등 23곳이나 된다.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김소윤(41) 교수는 이런 해외사례를 통해 낙태 근절대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법적으로는 낙태를 허용하되 일정기간을 두고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해 신중하게 결정이 이뤄지도록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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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논란중…"낙태권 보장하라" vs "생명권 무시한 처사" (노컷뉴스, 2010-03-08 06:00CBS사회부 조은정 기자)
여성단체 "사회적 여건 개선이 먼저"…반발도 극심
 
여성단체들은 최근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낙태 수술을 해 온 병원 3곳을 고발하고, 정부가 낙태 수술 단속을 강화한 것과 관련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등 20여개 여성·시민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여성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강요해선 안 된다"며 "여성들이 낙태를 택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태의 배경에는 여성들이 성관계와 임신, 출산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이중적인 성문화와 미비한 사회제도안에서 낙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삶과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이 단체들의 입장이다. 특히, 단체들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낙태가 근절될 리 없기 때문에 음성적인 낙태 시술이 증가해 여성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정부의 단속 강화에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여건 개선없이 처벌만 강화해 낙태를 근절하겠다는 발상은 "무면허 낙태, 해외 원정 낙태를 양산하고 오히려 여성의 몸 권리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두나 활동가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사회, 경제적인 사유의 낙태를 일정 부분 허용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입법화 과정을 통해서라도 낙태에 대한 권리를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5일 청계광장에서 관련 행사를 진행한 여성단체들은 지속적인 토론회와 캠패인을 통해서 낙태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 낙태 반대 단체에서는 여성단체의 주장을 재반박하며 우려의 뜻을 분명히 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심상덕 윤리위원장은 "여성단체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최근 낙태 단속 강화로 낙태 수술이 예전에 비해 어려워지고 낙태 비용도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낙태의 접근성을 낮추기 위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고 반박했다. 이어 심 위원장은 "여성단체들이 궁극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데 당장의 과도기적 어려움과 열악한 현실에 얽매어 낙태에 대해 자기 합리화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최정윤 낙태반대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여성들 대부분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낙태를 강요당하거나 여건이 안돼 낙태를 결심하는 상황을 고려해 볼때 무엇이 여성의 권익을 위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사무국장은 "낙태를 한 여성들은 이후에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여성단체가 낙태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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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낙태가 논란이 되는가 (문화저널21 배문희 기자, 2010/03/08 [13:47])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낙태 수술을 해 온 병원 3곳을 고발조치하고 정부가 낙태수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자 여성, 시민단체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등 20여개 여성·시민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여성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강요해선 안 되며 낙태 근절에 앞서 여성들이 낙태를 택하지 않도록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여성들이 낙태를 하게 되는 배경에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관계를 맺을 당시에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도 있으며 기를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이를 낳은 후 제대로 기르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한다면 이는 더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육의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되고, 낙태를 했을 때도 모든 비난이 여성에게만 집중되는 것도 문제"라며 "성행위를 할 때부터 출산 결정까지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 낙태 반대 단체에서는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강제로 빼앗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한 회원은 "생명은 가장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에 여성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가지고 어느 것이 우선인가를 논의하는 자체가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태아의 생명을 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낙태는 자유와 권리가 아니라 방종"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낙태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내 병원들이 낙태시술을 꺼리고 있어 중국으로 '낙태 원정'을 떠나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을 한 경우에도 병원에서 성폭행을 입증할 고소장이나 판결문이 없으면 수술을 해줄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어 제2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계는 "낙태 시술이 점차 음성화되고 비용이 높아져 결국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 뒤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는 표어를 외쳤던 70~80년대에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미덕이었다. 정부는 무료로 피임수술을 해주는 등 인구조절에 적극 나섰으며 불법 낙태수술에 대해서도 별다른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낙태수술은 지금까지 성행해왔다는 것. 그러다 저출산이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도 낙태 단속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돌변하고 일부 의사 단체 역시 낙태 반대운동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한 활동가는 "정부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와 양육에 대한 여건 개선이 없이 무조건적인 단속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여성의 몸과 아이를 국가발전을 위한 도구로만 간주하던 예전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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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본 낙태논쟁의 문제 (참세상, 김인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2010년03월09일 5시24분)
[진보논평]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사실 낙태는 참혹한 일이다. 학교에서 실습을 하면서 본 낙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실습을 하는 병원이 대학병원인지라 이 곳에서 시행되는 낙태는 법적으로 용인되는 몇 가지 경우에 불과하고 따라서 실습을 하는 학생 입장에서도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개원가를 방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아직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세포 수준에서부터 인간의 형태를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임신의 다양한 단계에서 낙태는 있어왔다. 학생 시절 내가 본 낙태는 ‘해서는 안 될 무엇’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개업을 하면 낙태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산부인과를 선택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도 이런 인식이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하고 병원을 고발하는 등의 적극적 행동을 하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는 ‘인간’ 또는 ‘생명체’의 존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수정부터 세포의 발생 단계를 거쳐 개체가 자라고 성숙되는 그 순간의 어느 시점을 딱 잘라서 ‘인간’이 되는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결국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죄의식과 낙인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낙인 때문에 낙태를 선택한 여성은 육체적 위험 뿐만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죄책감과 고통을 떠 안게 된다. 존중 받아야 하는 생명이 없어지는 과정, 몸에도 안 좋고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은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이 과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낙태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나는 이것이 불안한 미래와 불편한 현재 사이에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겪게 될 미래의 많은 과정들이 불안한 것이다.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고 그 아이와 함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행복하기보다 불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그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주어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할 것이 너무 뻔 해 보이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훼손되어갈 ‘나’의 정체성이 불안한 것이다. 생산성과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될 ‘나’의 인생이 불안한 것이다. 이런 불안 속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그리 큰 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선택을 해야 될 순간에는 불안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 한편 낙태를 결심하는 순간 현실은 엄청나게 불편해진다. 왠지 모를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만 것 같은 상처가 여성의 마음에 각인되어진다. 이런 불안과 상처를 온전히 감내해 나가야 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여성이다.
  
이제는 제발 인구가 많으니 아이를 그만 낳아야 한다거나 출산율이 너무 낮으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거나 임신한 태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고령화 사회의 부작용을 생각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인구 정책이 노동시장과 경제 정책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온전히 고통받고 선택을 강요 받는 것은 여성이다. 그녀들에게 자신의 현재의 삶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삶을 저울질하게 하지 말란 말이다. 
 
물론 낙태를 하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고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경험의 제공과 피임에 대한 인식의 확산도 중요하고 사후 피임과 같은 조기 대책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낙태를 결심했다면 그 과정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상처가 덜 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을 느끼는 의사들이 안전하게 낙태 시술을 안 해줬기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빠지거나 불법이라는 낙인 속에 또 다른 불안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낙태라는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불안을 감당하든 불편을 감당하든 그 주체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은 여성의 몸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성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지는 게 뻔한 싸움,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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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금지’와 ‘출산장려정책’, 그 멀고도 먼 간극 (나영정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인권오름 제 193 호 [기사입력] 2010년 03월 09일 23:15:30)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으로 프레임 만들어야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낙태’는 인구조절과 가족계획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국가가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을 때에는 월경조절술, 영구피임술 등을 통해 산아제한을 했고 현재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면서 ‘불법’ 낙태를 근절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와중에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 이슈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낙태 논쟁은 왜 10대, 미혼모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걸까? 왜 태아의 생명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여성들의 문제로 비춰지는 걸까? 그건 기혼여성의 낙태율이 더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태 문제를 떳떳하지 못한 성관계, 여성의 성적 타락의 문제로 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여성의 혼외 성관계를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성차별적 문화에서 기인한다. 
  
혼인 상황이 어떠하든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출산할 상황이 되지 못하는 경우 비공식적으로 낙태시술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한 결정권은 성관계, 피임에서부터 출발해 육아까지 연결되는 임신과 출산을 결정한 권리가 확보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으려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하고, 제대로 된 피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을 때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떠나서 안전하고 평등하게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논란은 낙태에 대한 법적 허용의 문제와 생명권에 대한 옹호로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낙태를 직접 경험하는 여성들의 경험은 제대로 발언되고 않는다. 더구나 낙태시술을 거부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조차 경찰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시술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비용 또한 다섯 배 이상 증가하였다. 
  
종교계와 일부 낙태 근절을 말하는 진영에서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이 대립하는 문제로 보고 있지만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당사자인 여성보다 언제나 법과 도덕의 원칙이 우선한다고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당사자인 여성의 의사에 반대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을 어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시작된 변화를 통해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까지 연속적인 과정인데, 언제부터 태아가 독립적인 존재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충분한 지원 속에서 잘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만들고 임신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여성의 결정권이 배제된 상황에서 출산과 보육 지원책만을 강조하는 것은 출산강요정책과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또한 지원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여성의 결정권도 제대로 의미를 발휘할 수 없다. 임신과 출산, 나아가 섹스와 양육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결정권을 보장하고, 그 결정권이 발휘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은 동시에, 충분히,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정부도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낙태단속을 언급하였고, 불법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에서도 낙태시술에 대한 신고센터를 운영한다고 하는 등 낙태단속으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단속과 출산강요를 연결하는 것은 절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더욱 여성을 곤궁하게 만들 뿐이다. 
 
2000년대 이후 계속해서 인구의 위기로 회자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이미 한국의 국가적 위기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인 양극화, 고용불안, 일과 보육에 대한 여성의 이중부담, 가족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고 성평등과 아동의 복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문제들은 내버려둔 채 이명박 정권 들어 노골적으로 다자녀 가구에게 현물지원, 주택지원, 조세지원을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절대로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 양극화와 계급불평등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회성 출산 축하금 몇 십만 원으로 출산을 유인하겠다고 하는 것에 할 말을 잃는다.
 
한편 작년 말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다양한 가족형태 지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가족형태는 미혼모, 다문화가족이다. 가족의 ‘다양성’ 자체를 저출산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왜곡하는 시대에, 오히려 걸림돌로 인식되는 우리의 권리와 다양성을 어떻게 제기할 수 있을지 참 막막한 상황이다.
 
모두가 저출산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뛰어드는 상황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불평등과 위계가 존재하고 있다. ‘미혼모’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출산 위기를 해결하는데 미혼모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전반적인 차별시정에 대한 의지가 실종되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또한 결혼과 관련이 없는 출산, 레즈비언의 출산, 동성애자의 입양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결정권은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다. 또한 장애나 질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낙태하지 않으려면 장애아에 대한 책임이 어머니에게만 전가되지 않도록 하고 장애인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대처해가야 한다. 인구구성의 비율이 변화되고 있는 것을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함으로써 막을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고용, 복지, 교육, 조세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인구가 국력”, “출산이 애국”이라는 낡은 전략에 속을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오히려 소위 국가의 힘으로 인식되지 않는 인구집단(빈곤층,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등)이 임신과 출산을 충분히 결정하고 지원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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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 04:25 2010/03/10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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