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 증상

잡기장
드라마 보고 또 펑펑 울었어요. 환상의 커플 15회를 이제 다운받아 봤거든요. ㅜㅜ 꼬뮨터를 마치고 그동안 못봤던 15, 16회를 봤는데, 두칸 휴지로 계속 눈물을 찍어냈더니 아주 걸레가 돼버렸습니다. 얼굴 아래로는 안 흘러내리게 막은 것 같은데 정신차려 보니 입고 있던 상의가 흥건합니다 *^^* 앞으로 드라마 볼 시간은 꼭 만들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아.. 금단증상 생길것 같군요. 16회 다보고, 집으로 돌아오며, "이게 뭐야. 계속 그 생각만 나잖아. 이제 끊어야겠어." 이젠 한예슬 어투로 중얼거립니다. 다 봐놓고 뭘끊어? ㅋ 이거 보느라 일도 밀리고, 기한은 팍팍 다가오고 생활이 꼬였습니다. 얼릉 수습해야 되는데 당분간 계속 생각날 것 같군요.

나상실(조안나)의 솔직당당한 모습 넘 맘에 들고, 장철수의 배짱과 마음이 아주 멋지네요. 재미와 감동, 웃음과 울음에 휘둘린 지난 며칠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각할 꺼리도 많이 던져주네요. 많이 배운 느낌이에요. ㅎㅎ 물론 드라마지만. 다시 사랑하고 싶어지는 행복한 드라마. 이걸 만드는데 관여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 :)

쭉 못 보고 가끔 띄엄띄엄 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니 장면들이 잘 짜여져 있네요. 올해 엠뷔씨 드라마 꼬라지 별로 맘에 안들었는데 그래도 내년을 다시 기대하게 됩니다. 금단증상에 너무 고통받지 않게 되길. 1월 10일까지 마쳐야 할 일이 산이라. -_- 제 블로그에 찾아오신 모든 분들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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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1 01:21 2006/12/3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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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2006/12/31 20:29 URL EDIT REPLY
전 드라마 짜증나서 안 보는데...흐... 지각생 님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용*^^*... 곰탱이 다녀갑니다^^...
지각생 2007/01/03 23:44 URL EDIT REPLY
곰탱이님 새해 행복하삼 :) 늦어 죄송
곰탱이 2007/01/04 18:32 URL EDIT REPLY
괜찮삼*^^*... ㅎㅎㅎ... 바쁘고 귀찮으셔서 그런 걸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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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아침

잡기장
건강검진을 금요일 오전까지 받아야하는데, 아침 8시~9시반 사이에 오면 기다림 없이 할 수 있을거라고 그랬다. 귀찮지만, 안하면 벌금이 나온단다. 벌금 낼 돈 한푼도 아껴야 밀린 활동비가 나올테니 가긴 가야하는데, 쫓기듯이 하기 싫어 오늘 아침에 바로 가기로 맘먹었다. 다운받아놓은 "환상의 커플"을 주룩 보다보니 어느새 밤 11시 반.

건강검진 받으려면 전날 밤 10시부터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물도? 그렇다는 말이 있는데 지식검색 하는 것도 귀찮아 그냥 물도 안마셨다. 10시 전에 든든히 먹어두려 했으나 저녁 먹은 후 계속 드라마에 빠져있었기에 10시를 넘겨버렸다. 꼬로록~ 소리가 들린다. 아.. 더 괴롭기 전에 일찍 자야겠구나.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 삼실에서는 귀신의 영험함 덕인지 알람 소리에 바로 잠이 깨고 움직일 수 있으니 삼실에서 자고 근처 병원에 가는게 나으렸다.

자는 도중 베란다로 가는 문이 바람에 열렸다. 베란다 창문은 한여름처럼 죄다 열어 놨고. 냄새를 빼려 함인지. 그 덕에 자면서 추워 잔뜩 웅크리고 잤다. 알람 소리 듣고 한방에 일어났는데 몸이 굳어있다. 하필 오늘부터 추워지는 날이지 뭔가. 그 생각을 진작 했으면 문을 확실하게 닫아놓고 잤을텐데. 배도 고프고 몸이 얼어 있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움직이기 귀찮지만 억지로 몸을 풀고는 빨랑 밥먹으러 가려고 검진을 받으러 갔다. 갔는데 서류 한장을 안가져와서 다시 빽.. 제대로 안 갈켜준 사람을 원망하며 투덜투덜댔다.

엑스레이찍고, 소변검사하고, 피뽑고, 혈압재고, 키 몸무게 재고, 소리나는 쪽으로 손들기, 시력검사 하고 나왔다. 이제 밥먹으러 갈 수 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그게 어제 포스팅이 나온 식당이다.

지각생: 계란 뺀 비빔밥 주세요.
아주머니: 밥이 찬데.. 돌솥비빔밥으로 해요

돌솥비빔밥은 500원이 비싸다. -_-

지각생: (아 놔) 그럼 돌솥비빔밥으로 주세요. 계란, 괴기 빼구요.
아주머니: ㅎㅎ 밥이 차가워서 그래요. 잠시 기다려요.

여긴 선불이라 돈을 먼저 냈다.

지각생: (돌아서다) 계란 괴기 꼭 빼주세요.
아주머니: x*#@^*&

왠지 불안했지만, 세번을 얘기했으니 괜찮겠지. 모처럼 새벽에 안먹고 피도 뽑은 탓에 심약해졌나. 아님 어제 드라마 보다 너무 좋아서 기분이 들뜬 상태라 그런가 -_- 이제는 익숙능숙하게 셀프 서비스를 해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내 엠피삼 플레이어는 "환커" OST가 많이 들어있다. 그걸 들으며 어제 본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금새 밥이 나왔다. .. .. .. 울컥한다. 계란이 들어있다. 고기도 들어있다.

아주머니. 제가 계란 빼달라고 세번을 말씀드렸잖아요.
잉? 그랬어 아이구 이런.

당황하며 어찌할 지 몰라하시지만 사과는 없다. 그러더니 조그만 반찬 접시를 가져와 얹혀진 계란 노른자만 건져간다. 흰자는 이미 밥안으로 스며들어가는 중. 슬슬 화가 나며, 지금 채식하는데 고기와 계란은 조금도 입에 안댄다고, 그정도로 될게 아니라고 말했다. 소란스러워지자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느새 나타나 그 아주머니를 나무란다. 아니 왜 세번이나 얘기했다는데 그걸 넣고 그래요. 그러면서 내게 하는말이, "조류독감 때문에 그런가 보죠?" 아뇨. "그럼 알레르기가 있으신 모양이군" 하며 밥에 남아 있는 고기와 계란 흰자를 조금 더 던다.

아놔.. 여기서 내가 왜 채식하는지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슬슬 다시 열이 차올라 "그릇 주세요. 직접 할테니." 이 말도 잘 안나온다. 사장이 "이거 안되겠네. 새로 해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럴려면 차라리 진작 그랬어야 했다.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그럼 나왔던거는 버릴게 아닌가. 얼릉 주방으로 달려가, "그거 어떻게 했어요. 버릴거죠. 그냥 주세요" 했다. 그냥 됐단다. 새로 해주겠다고 한다. 음식 쓰레기 버리기 싫다고 얘기해도 계속 새로 해주겠다는 말만 하다가 자기들이 먹겠다고 한다. 도대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하는 말은 제대로 귀담아 듣는게 없다. 분명 버릴걸 아는데. 조금 있으니 벌써 버렸다고 실토한다. 화가 치솟았다. 새로 밥을 덜어 논게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저기에 다른 게 얹어지면 다 먹던가 버리던가 해야한다. 먹을 생각이 사라졌다. "안 먹겠습니다!!" 크게 소리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와버렸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음식 쓰레기도 많이 생겼다. 내 기분도 상했다. 쉽게 열이 가라앉지 않는데, 차라리 새로 한 밥이라도 먹을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돈이 아깝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사천원이 적은 돈이 아니지만, 왠지 그 새로 나온 밥을 먹는 건 아니다 싶다. 이러고 나왔으니 그 사장이란 작자가 아주머니들한테 심하게 그러는거 아닐까. 아니면 별 미친 놈, 혹은 채식하는 놈은 까다로운 놈이야. 아침부터 재수없네. 이러진 않을까. 젠장.

역시 직접 밥을 해먹어야 해. 한국에서 채식하려면 말이지. 삼실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김을 샀다. 밥을 안치려다 보니 삼실 주방이 엉망이다. 음식 쓰레기는 말라 비틀어지고 썩어가도 누가 갔다 버리지도 않는다. 그 안엔 담배 꽁초도 잔뜩이다. 또 젠장. 담배 뒤처리 안할거면 피우지도 못하게 해야돼. 그 담배 꼬나 물고 세상을 논하고 혁명을 꿈꾸었을까? ㅤㅌㅞㅅ. 그래봤자 나도 음식 쓰레기 오래 방치한 사람중에 포함되니 할말이래야 별로 없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나뿐이고, 아침이라 그런지, 그리고 빈속으로 잠을 자 속이 편해져서 그런지, 검진 받으러 갔다 오다 찬바람 쐬서 그런지, 또 식당에서 싸우며 열이 오른 탓인지 귀차니즘을 누르고 청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 계속 욕이 나온다. 아놔. 장난하나. 너무한거 아냐. 투덜투덜 대다보면 그동안는 "아~ 내가 왜이러지. 이러면 안돼" 하고 맘속으로 착한 생각하려고 하기 마련인데, 이젠 그러는게 별로 안 좋다는 생각이 들어 욕이 나오는대로 신경질이 나는대로 냅두며 쓰레기를 치웠다. 고무 장갑 손가락 안에 물이 차는 느낌이 예술이다 -_- 보니 끝이 다 닳아 있다. 바쁘다 바쁘다 하며 계속 방치해 둔 댓가다. 근데 이 댓가를 계속, 아니 대부분 내가 치러야 하지. 다른 장면을 상상해본다.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은 사랑방에서 세상을 한탄하고, 혁명을 논한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 사람들 뒤치닥거리한다. 볼꼴 못볼꼴 다보겠지. 그러면서 이럴 것 같다. 웃기고 자빠졌네. 자기 앞가림 뒷처리도 못하는 무능력자, 의식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되고, 자신의 현재 처지가 누구의 노동 위에 있는지, 누구를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도 의식 못하는 사람이 무슨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바꿔갈 수 있다는 건지. 그래도 우리 단체가 뻔뻔하게 혁명 운운 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하는 건지. 실컷 속으로 욕을 하지만, 일단 기분이 가라앉고 차갑게 생각하게 되면 이제 그 욕이 죄다 내게 돌아올 차례다. 아 젠장. 집에 있을때도 좀 이렇게 청소도 자주 하고, 내 옷 내가 빨고, 음식도 해먹고 해야 되는데 머야 밖에 나와서만 이렇게 하고 말야. 그러고 가끔 하면서 남 욕이나 해대고. 어휴..

한참만에 청소를 끝내고, 냉장고를 비우고, 밥을 해 먹었다. 딱 정확히 한 공기 만큼만 했다. 그걸 하기 전에 오래된 밥을 조금 버린 탓이다. 사람들이 온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볼때마다 왠지 부아가 난다. 화를 내며 말해서는 효과도 없다. 어떻게 잘 문제를 환기해야할텐데.. 계속 얘기를 못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정말 마지막으로 남은 단체에 대한 애정도 모두 말라버릴텐데. 그리고 곧 떠날건데. 떠나기 전에 마무리 잘하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힘을 내서 좀 바꿔나가고 싶은데. 아.. 하지만 이제 슬슬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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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8 12:08 2006/12/2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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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Please 2006/12/28 12:52 URL EDIT REPLY
그래도 돈은 돌려받고 나오셨어야죠.
kong 2006/12/28 12:58 URL EDIT REPLY
채식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식당 얘기를 읽으면서 많이 공감합니다. 자신의 뜻, 혹은 뜻과 무관한 필요(가령 섭생에 주의해야 하는 질환 등등)를 짓밟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런지요. 사무실 일은 '기린언어'를 연습하면서 풀어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기린언어에 대해 한번 들어봤을 뿐이지만, 왠지 상황에 딱일 것 같고, 지각생께서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내일 아침은 좋은 의미에서 '환상의 아침'이 되시길~ 참, 검진 전에 맹물은 마셔도 되요.
지각생 2006/12/28 14:46 URL EDIT REPLY
ScanPlease// 돈을 돌려 받았을때 제 분노를 좀 더 그곳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혹시 채식하는 사람에 대한 악감정으로 굳혀질게 우려되니까요. 그걸 제쳐놓고도, 돈을 돌려 받지 않은 것 자체가 하나의 표현입니다. 제 불만이 내가 지불한 돈에 상응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으로 생각되고 싶지 않았어요.

kong// 그랬군요. 목말랐는데 ㅋ 식당에서 정말 답답하더군요. 돈이 오가는 것 외에 그 사람들과 제가 어떤 소통도 불가능한 것인가 싶었습니다. 미움보다 답답함때문에 견딜 수 없어 뛰쳐나왔습니다. 기분은 안 좋아도, 그런 제 자신이 좋게 보이는 "환상의 아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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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서비스

잡기장
사무실 사람과 한바탕 했다. 싸우는 것도 오랫만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서로 한마디씩만 덜해도 안 싸웠을 것이다(아예 얘기하길 싫어하니까). 또 단어 한 두개만 쓰지 않았다 해도 금방 끝났을 것이다. "왜 너는 항상". 그 말을 듣고 나도 "당신이 늘" 그랬지 않냐고 맞받아쳤고..

싸우고 나면 기분이 더럽다. 차라리 속이나 씨언하게 다 퍼붓고 싶지만 오랫만에 싸우는 거다 보니 내가 부들부들 떨리는게 느껴져 결국 끝을 보지 못하고 적당히 마무리하고 말았다. 점심 보통 먹는 시간을 넘어 출근했기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사무실에서 먹기 싫어서 은행 갈 일이 있어 돌아오다 식당에 들러 사먹었다.

계란 뺀 비빔밥을 시키고, 셀프 서비스인 물과 국물, 반찬을 챙겨 자리에 앉았다.
비폭력 대화란 역시 내게 거리가 있는 걸까. 기린 언어 워크샵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니 화는 가라앉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멋적은 느낌과 약간의 부끄럼이 또 든다.

모처럼 분노에 찼고, 그게 가라앉고 나니 일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오늘 해야할 일, 피곤한 관계들이 멀리 밀려난 일시적 평화. 주위를 둘러본다. 직전의 내 행동을 생각한다. 셀프 서비스.

식당이던, 술집이던, 지각생은 남들이 오버한다고 할 만하게 움직인다. 요즘은 줄긴 했지만, 가만히 자리에서 기다리는게 아니라 서빙 알바를 하듯 직접 음식이나 술을 날라오고, 사람을 불러 할 일을 직접 가서 처리하고 온다. 의식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자동으로 그러기도 한다. 몸에 밴 탓도 있고, 그게 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 노동, 소외 노동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하는지 조금이나마 아는 나로서는, 누군가 약간만 주의를 기울여주고, 내 서비스에 "응대"해 줄때, 혹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게 그 노동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 모든걸 받기만 하는것, 나는 숟가락만 들어 먹기만 하고, 다 먹은 뒤에는 접시를 정리해서 치우기 좋게 한다거나, 직접 갖다준다던가, 쓰레기를 모아 정리하거나 직접 버리지 않는 이 행동을 보면, 약간 답답하다.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그거에 요리를 해주는 노동과 차려주고 치워주고 친절히 대해주는 모든 서비스-감정 노동의 댓가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식 있는 사람, 활동하는 사람도 대부분 그렇게 가만히 받아 먹기만 한다.

내가 셀프 서비스를 할때(정해진 것과 무관하게), 그건 그 사람의 단순 소외 노동의 일부를 내가 대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하는 것과 내가 하는 것은 강도와 성격이 다르다. 내가 하는 것은 내 삶을 유지하는 활동과 연결된 필요노동이다. 좀 더 오버해서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게 자신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걸 그 사람이 하게 하면 하루의 단순 소외 노동을 더 하는 것이고 이건 아무리 숙련된다고 해도 쌓이면 쌓일 수록 급격히 증가하는 피로의 원인이다. 그래서 난 좀 더 오버해서 반찬을 가져오고, 먹은 다음엔 직접 그릇을 갖다주거나 최소한 치우기 좋게 정리해주는 작업을 조금이라도 더 해주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노동을 받는, 대처하는 자세다. 돈을 지불한다. 그러면 거기엔 음식을 만드는 노동과 차려주고 치워주고 친절히 대해주는 갖가지 노동이 다 포함된 것인가? 어차피 그 사람의 노동도 진정으로 나를 위해 한 것이 아니라 내 돈에 대해 한 것이니 차갑게 돈을 건네 주는 것으로 그 노동을 정당하게 수용한 것일까? 이런 생각은 얼핏 보면 타당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야말로 자본주의적이고 소유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 시스템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하더라도, 내 돈은 돈대로 주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내게 해준 노동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감사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자본주의 질서를 따르지 않은게 된다.

택시를 가끔 타면, 내릴때 요금을 지불하며 "감사합니다" 그런다. 남들이 이상하다고 그러고, 기사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듯하고, 사실 내 자신도 왠지 어색하다. 하지만 그 어색함 자체가 내가 깊이 자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분명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이동시켜 줬다. 난 그 사람의 노동에 힘입어 원하는 것을 이뤘다. 그것에 가치를 판단하고 수치화해 돈으로 환산시켜 그걸 받아내는 것은 자본주의적 질서다. 물론 나도 그걸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돈은 준다. 하지만 난 그래도 그 사람의 노동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자본주의가 끝장나는 세상을 원한다. 그러면 자본주의를 마음 속에서부터, 밀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머리 속에서만이 아니고.

나는 내 경험에 바탕해, 식당 노동자와 운수 노동자의 심정을 지레 짐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대신 해준다. 그건 내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떳떳해진다. 그건 내가 그 사람의 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생각의 표현이니까. 내게 해주는 모든 노동에 감사하며 식당 노동자와 운수 노동자에게 친절히 부탁하고, 예의를 갖추며, 마음으로 감사한다. 물론 항상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지 피곤하고(몸이던 맘이던), 같이 있는 누군가와 끊을 수 없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던가 할때, 그리고 감정이 완전히 부정적으로 되는 주기, 이럴땐 극히 형식적으로 억지로 (사실 나쁘게 말하면 항상 그런거라 할 수 있겠지만) 조금 해서 자신을 속이고 말아버린다.


요즘 "빼앗긴 자들"을 읽는 중인데, 사회주의(아나키스트) 행성에서 자본주의 행성으로 온 첫번째 사람이 느끼는 것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런 소유주의적인 생각을 하다니." 소설 속 사람이 중얼거릴때 나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도 지금껏 그래왔잖아. 사람에 대해서도. 요즘 사람들 만나면 나도 SF를 권하곤 하는데,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 기술서적만 읽게 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런게 정말 좋은 영향을 준다.

배어 있는 것을 어디까지 발견할 수 있고, 어디까지 원하는대로 바꾸어 갈 수 있을까. 그저, 역시 나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할 밖에, 지금껏 해오던 것이 이젠 몸에 밴 무의식적인 자동반응으로 되버렸다고 해도, 그게 좋다고 생각되면 계속 할 밖에. 의식 안하고 살면 점점 그런 생각이 약해진다. 다른 사람의 노동을 그냥 받아들이고,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모든게 끝난다고, 더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혹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여기서 다시금 맘을 다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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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7 16:40 2006/12/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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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양이 2006/12/27 17:37 URL EDIT REPLY
이 얘기 되게 좋네요. 지각생님 말이 맞는 걸요. 저는 앉아서 '서비스'라는 걸 받는 게 정말 불편해요. 더 불편한 건 '서비스가 너무 나쁘잖아요'라면서 따지는 사람들이지만-_-;
re 2006/12/27 18:42 URL EDIT REPLY
당고~ 지각생님은 '되게 좋은' 글 '되게' 많이 써요. ㅎㅎㅎ
지각생! 몸은 좀 괜챦은건가요? 넘 무리하지 마시고, 연말 잘 보내세요!
derridr 2006/12/27 19:00 URL EDIT REPLY
추천 추천
토토 2006/12/27 19:06 URL EDIT REPLY
지각생도 요즘 까칠해지고 있는겨?^^ 살면서 싸우기도 하는거지.
머리에서 김 나는데 말이 곱게 나간다는 것도 이상하고...
근데, 셀프 서비스 잘하네. 친절한 지각이...^^
지각생 2006/12/28 11:17 URL EDIT REPLY
칭찬 감사 추천 감사. 그치만 부끄 ;;
연말 잘 보내삼.
로이 2006/12/28 12:37 URL EDIT REPLY
정말 그렇군요.. 그동안 쉽게 생각했었는데.. 하나 배우고 갑니다.. 무의식이 역시 제일 무서운거 같아요. 이렇게 행동하는게 어떤 건지 생각조차 안해보는 것.. 바보는 되지 말아야하는데..ㅜ.ㅜ
지각생 2006/12/28 14:49 URL EDIT REPLY
전 바보가 되고 싶은걸요? :) 의식하지 않고도 생각과 행동이 제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곰탱이 2006/12/28 20:35 URL EDIT REPLY
지각생 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공감!!! 지각생 님의 생각과 행동을 일단 의식적으로 열심히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삼^^!!!
시치프스 2006/12/28 21:44 URL EDIT REPLY
공감하며 읽고 갑니다.
지각생 2006/12/29 05:51 URL EDIT REPLY
곰탱이님, 시치프스님. 와주셔서 고마워요. 전 요즘 다른 사람들 블로그에 잘 가지도 않는데.. 그냥 생각나는 말 있으면 휘갈기고 사라지는데.. 전 지금 술에 취했답니다. 솔직한 말을 하는 게 부끄러워 굳이 변명을 합니다.
에밀리오 2006/12/29 06:43 URL EDIT REPLY
오! 저도 공감!! 생각지도 못했군요... 저도 자본주의 끝장내고 싶으니까 마음 속으로부터 그런 생각들을 밀어내렵니다!!! 우워!!!
다꽝 2006/12/29 10:10 URL EDIT REPLY
저도, 항상 비스꼬롬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돈 낸다고 그 사람의 노동을 전유하는 건 아니고, '인간의 얼굴을 한'
그 뭔가가 서로 오고가는 거잖아요. 읽고 나서 많이 생각하고 갑니다. :)
구름 2006/12/29 10:37 URL EDIT REPLY
글 참 잘 보았습니다. 정말 지금 사회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을 갖기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각생 2006/12/30 11:26 URL EDIT REPLY
에밀리오, 다꽝, 구름// 고마워하지 말고, 네 삶을 떼어주라고 하는게 자본주의인 듯.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이 다른사람이 뜯어가느냐보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더 무섭.. 그렇지 않게 될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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