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조직과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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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IT지원센터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든지 3년째가 되었다. 그 동안 겪으며 풀어놓고 싶었던 얘기가 많지만 그때 그때 풀지 못하고 일만 하며 살다보니 바보가 되었고, 이야깃거리는 뒤엉키고 채색되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좀처럼 모르겠다. 바보인데 성격까지 나빠지는 것 같으니 걱정이다.

바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지 못해 이슈가 안 된 것, 그 중에 가장 답답하고 계속 마주하게 될 문제 중 하나는 "비영리단체/사회적경제조직에서 일하는 활동가 혹은 직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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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조직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다. "비영리조직"에 대한 개념 정의와 구분은 다양하고 계속 변해 혼란스럽지만 흔히 말해지는대로 "비영리단체"(제 3섹터 : NPO, NGO, CSO, 공동체 등 포함)와 "사회적기업"(제 4섹터 :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포함)로만 구분하는게 나을 듯 하다. 전통적으로 "시민사회영역"이라 불려 온 비영리단체들에서 직원은 조직 규모와 역사, 활동 성격에 따르지만 대체로 "활동가"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활동가"란 표현은 한국의 그것보다 좀 더 과격한 의미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비영리IT지원센터를 만들기 전에 만나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활동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과격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의미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원"이라는 말은 대체로 수동적이며, 비자발적으로 정해진 업무를 지시 받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단체들을 다니며 IT지원을 하고 다닐 때에는 주로 작은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그들에게서 느낀 이미지는 그런 "수동적인 직원"과는 많이 달랐다. 한국에 있는 조직인만큼 권위주의적 문화가 완전히 없는 곳은 적었지만 대체로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으며 스스로 책임을 지며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100%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진퇴는 납득할만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초안을 몇 시까지 보고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요구로 몇 차례 바꾸다가 결국 처음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는, "직장인 웹툰"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지는 상황은 적어도 내가 만난 비영리단체들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기에 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과감한 행동이 어려워지는 경우는 있어도, 누군가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의적 판단으로 흔들어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가는 당장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 내가 보아온 "전통적 비영리단체"의 모습이다. 

비영리IT지원센터에서 상근활동을 겸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지칭할때 나는 꼭 "상근활동가" 혹은 "활동가"라는 명칭을 써왔다. 직책은 있었지만 별명만을 불렀고, 내가 갖고 있는 약간의 권한이 있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이상 납득했다는 신호가 오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 물론 정말 급한 상황에서는 "아 좀 일단 해봐"라고 말했지만 이후 회의에서는 그렇게 밀어붙인 이유에 대해 꼭 밝히고 납득시키고 비판을 받고 진행했다. 이것은 내 신념이라기보단 그동안 만나왔던 "훌륭한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미지대로 해온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리 한 것이 아니라 "비영리단체는 원래 이러하다"고 여겨왔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내 방식대로 다 같이 하자고 말하진 않고(그럴 수도 없었다), 좋아보이면 다 같이 따라할 것이라 생각해서 내가 속한 팀 안에서만 꾸준히 그렇게 해왔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방식을 분명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비영리IT지원센터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으로 자리잡히진 않았다. 내가 상근활동을 그만두는 시점까지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과 서로의 정체성을 "활동가"보다는 "직원"으로 여겼던 것 같다.

 

내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원"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비영리조직내 권위주의 문화의 척도일 수 있으며, 비영리조직의 가치와 사회적기업의 방식이라는 이상적인 결합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의 가치(이윤)와 비영리조직의 방식이라는 아주 부정적인 결합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1. 한국의 중대규모의 비영리단체와 보통의 사회적기업은 소수의 대표급에 많은 권한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오래 활동하며 척박한 환경에서 "기업"을 일으켰다는 존중의 의미를 더해 대표급 혹은 "사회적 명사"들에게 모든 관심과 성취가 돌아가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기업 리더의 숭고한 의지를 강조한다는 명목하에 마치 몇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모든 것을 이뤄내는 것처럼 비춰지는 듯한 문화가 지금 한국의 비영리단체-사회적경제조직 네트워크에서 감지된다. 실제로 존경할 만한 행보를 걸어왔고 위험을 무릅쓰고 통찰을 발휘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시류에 따라 흘러왔다 사라지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은 조직 내 의사결정권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하는 경향을 강화하게 되며, 이것은 권력이 분산되기를 바라는 현대의 보편적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이다.

2. 사회적기업으로 대표되는 제 4섹터가 가장 빛나는 장면은 기존의 1~3섹터가 각자의 노력과 서로의 분쟁을 통해 타협을 도출하지 못해 방치되는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내놓을 때이다. 브라질의 호사는 가난한 농촌에 전기를 공급하여 농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대표적인 사회적기업가인데, 이 배경에는 그것을 요청해 온 시민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장기화, 고착화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던 상황이 있었다. 비영리단체가 올바른 가치를 제시해 왔으나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던 일에 대해 영리기업의 방식을 적용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한 이 사례는 내가 사회적기업에 대해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사례를 접한 지 2년 후 비영리IT지원센터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래 일단 비영리단체보다는 사회적기업에 더 포커스를 두며 IT지원사업을 해왔는데, 한국에서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가치를 독점"하고 여러 지원에 기대며 정작 운영은 비효율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이런 사회적기업에 대해 보통 깊이 없이 처방으로 제시되는 것은 "영리기업의 효율적 경영방식"을 더욱 강조하는 것인데, 이 기업이 사실상 비영리단체의 성격을 많이 갖는 곳의 경우, "직원"들이 사이에 끼게 된다. 자발성과 존중, 책임감보다는 영리기업의 "직원"처럼 의무와 대가성에 의해 일하게 되면서도 정작 급여나 복지 수준은 "비영리단체다운"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대표급들이 독점하던 명예와 보람을 왜 직원들은 느끼지 못하냐며 은근히 헌신을 바라는 경향에 바탕을 둔 것이 요즘 문제가 많은 "열정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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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이던 사회적기업이던 "좋은 일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은 돈을 이미 벌어두었던 아니던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다. 그 가치는 자신이 하나의 장기말처럼 치부되고 소모되면서 이루고자 하는 저 위의 숭고한 가치만은 아니다. 대체로 그 과정에 자신의 만족과 완성도 함께 바라게 되는데, "숭고한 가치"보다 "자신의 완성"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그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것이라 요즘에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개인적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혐의가 씌워진다. 반면 보다 숭고하고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은 대표급, 오래 해온 활동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수행한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요즘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은 그 규모와 성격과 무관하게 "일반 직원"들을 그냥 스쳐갈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충분한 권한을 주지 않으며 "기업 경영"이라는 명목하에 해고, 전보 등을 해도 괜찮다는 의식을 갖는 경향이 보인다. 여기에 한국에서 "노동자"에 대해 씌워진 부정적 인식을 덧붙여서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암묵적인 배제와 차별, 제한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대표-이사-사회적명사 들이 "경영권"을 갖고, 일반 직원들을 "노동자"로 여기며 정작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슬쩍 요구하는 경향이 일부의 모습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확대 강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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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가지 더하면, 한국에서 "비영리단체"(제3섹터)와 "사회적기업"(제4섹터)의 구분이 모호하고 바람직한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도 원인일 것 같다. 비영리단체가 규모와 분야, 성격에 따라 아주 상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영리쪽에서 비영리로 영역을 넓힌지 얼마 안되거나, 오래되고 규모가 큰 비영리단체를 먼저 만난 사람들은 흔히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리기업->사회적기업->비영리단체로 같은 지식과 노하우가 그대로 전파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영리단체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에 초빙된 사람들이 경영효율화 조치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일이 지금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체로 그런 협동조합을 창립하는데 기여한 "전통적 비영리조직 활동가"들에게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는데, 그들의 대응을 들으면 갸우뚱거리게 된다.

전통적 비영리단체에서 "활동가"는 대표와 회원 혹은 수혜자 사이를 단순 중개하거나 대리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 내 위계가 있더라도 결국엔 모든 활동가가 자신의 가치에 기반한 관점으로 활동을 기획해내고, (형식적일지라도)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조직의 활동/사업으로 채택한다. 전통적/보편적인 중소규모 비영리단체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대표급의 결정을 그냥 "어떻게든 알아서" 수행해내는 사람이 아니기에 수동적인 의미를 갖는 "직원"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 특히 회원기반조직의 경우는 설사 대표급이라하더라도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그 대표가 얼마나 조직에 기여했는가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할 책무를 가진다. 대표급은 각각의 활동가가 자신의 소신대로 회원들의 바람을 현실화하기 위해 활동하도록 지원하면서, 오랜 경험과 축적된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 활동가의 자율적 활동을 외부의 충격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데서 자연스러운 권위를 획득해야 한다. 그렇지만 기부 문화나 사회적 인식등 한국의 제반 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기에 비영리단체 내부의 권위주의는 비판하기엔 이르거나 그것이 유용한 측면이 있어서 유지된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롭게 형성, 발전되는 사회적경제조직네트워크로도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것 같다.

 

지금 오래 글을 쓸 상황이 아닌데 앞으로 꼭 이 문제를 제기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정리하려고 쏟아내고 있지만 역시 이 정도로 멈춰야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좋은 일을 하는 조직"내의 권위주의적 방식들이 좀 더 드러나 현대적으로 극복되고,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 내 노동자인 "직원"이 좀 더 존중 받는 것이다. 이사회와 사무국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하는 분립된 기구처럼 여겨지면 좋겠고, 직원으로 대하면서 "활동가"이길 바라지 않으면 좋겠다. 사회적경제조직을 이끄는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적절한 비판과 감시가 함께 있어야 정말 사회적경제조직이 질적으로 성숙,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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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9 16:58 2015/07/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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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회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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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로 처음 마음 먹은 것은 2010년쯤입니다. 용산구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에 살 때였는데, 제 전성기는 아무래도 그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3년 반 정도 살면서 참 재밌고 훌륭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복작거리며 혼자라면 못해볼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어 보는 도시 속 공동체로서 함께 의논하고 공부하고 저지르고 치우는(?) 생활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어떤 제도와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의사를 결정했는데, 쉽게 생각이 모이지 않을 법한 일들도 끈기 있게 의견을 나누며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유소프트웨어 밖에 모르는 바보였던 저는,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저 사람은 어찌 저렇게 재밌게 얘기할까, 저 사람은 어떻게 저리 다른 사람들 얘길 잘 듣나 등으로 감탄하며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워갔습니다. 그런 공간을 좋아한 사람은 점차 많아져서 차츰 구성원의 규모가 커지고 마을의 일을 결정하는 마을회의도 15명 이상이 참가하는 큰 자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이 훌륭한 사람들의 의논"이 그렇게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여전히 좋은 생각과 자세를 갖고 있었는데 회의만 하면 힘들고 재미없고 무력감,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좋은 의사결정을 내린 대가로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그래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논의가 채 깊어지기도 전에 그런 현상이 생기고 결국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곤 했습니다. 여러번 그런 현상을 관찰하면서 저는 "개별 구성원이 훌륭해도 '그냥' 회의를 하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1. 이상적인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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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라는 것을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최선 혹은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집단 커뮤니케이션 행위". 각자 갖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거나 다양한 관점을 더해 한 사람이 내릴 수 없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거나, 상황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행위가 회의라고 생각합니다. 회의는 위의 그림처럼 한 사람이 말할 때 다른 모든이가 그의 말을 일단 듣기로 원칙을 잡아 번갈아가며 말을 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 고민이 깊어지거나 * 지식이 늘어나거나 * 현실 이해가 깊어지거나

하는 효과가 생길 것입니다. 이 세가지 전부 혹은 일부가 모든 구성원에게 생겨 점차 높은 수준의 혹은 가장 조화로운 균형잡힌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회의 과정을 통해 각자의 생각이 깊어지는 이 정도를 제 맘대로 '의사성숙도'라고 불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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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발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위 그림에서 노란 사람). 이상적인 경우라면 듣는 사람이 모두 말하는 이의 표현을 정확히 듣고 그 의미를 정확히 해독하여, 서로의 이해와 현재 상황을 근거로 적절한 맥락을 찾아내어 말하는 이의 생각, 지식, 이해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경우 말하는 이가 먼저 고민이 깊었거나 이 상황에 적합한 표현을 떠올리게 된 것이므로 의사성숙도가 먼저 1단계 올라가 있었으며, 듣는 이는 0에서 1로 뒤따라 올라간 것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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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앞의 사람의 말을 잘 들은 한 사람이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합니다. 이 경우 아직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한 자신의 고민 혹은 이 상황에 적합한 표현이 떠올랐으므로 새로운 화자(위 그림의 앞의 경우와 다른 위치의 노란 사람)의 의사성숙도가 2로 먼저 올랐습니다. 이제 아까와 같이 생각이 잘 표현되고 다른 이에게 전달되면 다른 사람도 곧 의사성숙도가 2로 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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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과정을 다른 사람도 한번씩 거치게 되면, 서로의 생각이 파도처럼 퍼져나가 모든 사람의 의사성숙도가 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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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경우,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만큼 모두의 고민이 깊어지고, 지식이 늘어나며 이해가 깊어지는 효과가 생길 것입니다.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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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정말 말 그대로 '이상적'임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ㅇㅇㅇ이죠.

 

2. 실제 회의에서는

7명이 회의를 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번엔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른 이의 말을 그대로 잘 알아듣고, 정확히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며, 사전 이해가 없거나 맥락을 몰라 그 본의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약간이라도 곱씹어야 알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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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경우처럼 한 사람씩 발언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기력도 쌩쌩하고, 그 날의 의사결정에 대한 기대감도 있어 몰입도가 높으며, 약간은 정형화된 패턴으로 시작하기에 다들 이해를 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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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의를 시작하는 메시지를 모두가 다 잘 캐치했고, 이 회의의 목적과 참여자들에 대해 소개를 받는 등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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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처음부터 과격한 주장을 빠르게, 청중 배려 없이 하는 경향이 많진 않으므로 처음 의견은 많은 사람에게 조금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받아들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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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사람의 얘길 듣고 한 사람(위 그림의 빨간 원)이 그에 따른 (동의 혹은 반박)의견을 제시합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을 고려해서 천천히 얘기하기보다 다소 급하게, 방금 말한 사람만을 주시하면서 그 사람의 특성에 맞는 말하기 방식을 사용해서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이 경우 근처에 있는 사람은 말도 잘 들리고 애초에 가까이 앉은 이유가 서로 친해서일 수 있고, 바로 옆에서 딴 짓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이 생각을 잘 캐치했습니다. 다만 멀리 있는 몇 사람은 방금 말한 사람의 진짜 의미를 금방 캐치하지 못해 이해하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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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얘기를 시작한 사람들이 논의에 집중해 서로의 메시지를 교류하며 의사성숙도가 높아지고 있을때(고민이 깊어지고, 지식이 늘어나고, 이해가 깊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늦게 그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조금 뒤처진 사람들이 충분히 앞 사람들의 말을 곱씹기도 전에, 방금 말을 들은 사람(보라색 원)이 바로 앞 사람(빨간 원)의 생각을 받아칩니다. 이 사람은 그게 가능한 이유가 바로 자신의 의견에 대한 생각이 논점이 되었으니 원래 할 말도 많고, 이 상황에 집중해서 앞 사람의 말을 들었으니 바로 자신의 생각이 떠오르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방금 조금 뒤처진 사람은 앞의 얘기가 정리되기도 전에 새로운 말을 듣게 되고, 그로 인해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늘어납니다. 앞 사람 말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말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뒤처진 그룹들과 '달궈진 그룹'간에 의사성숙도 차이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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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뒤처져 있던 그룹 중의 한 사람(주황색 원)은 이 이야기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전에 비슷하게 겪었다던지, 부분적으로만 이해했지만 그에 관해 꼭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던지, 어느 한 사람을 지지 혹은 견제할 의도가 있었던지간에 다양한 이유와 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앞 사람들의 얘기가 잠시 다른 국면을 맞아 대화 속도가 떨어지거나 다른 관점으로 보느라 잠시 생각과 표현들을 멈춥니다. 한켠에서는 가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언어 구사/해독능력의 문제가 있거나, 배경 지식이 아예 없거나 아주 이질적인 문화만 경험했거나, 주변이 시끄럽다던지 역시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간의 귓속말 등으로("야, 지금 저 사람들이 이 말하는 거지? / 응."  상황을 어느 정도 따라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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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상황이 반복됩니다. 앞의 "끼어든" 사람의 발화가 끝나고, 다시 "앞서가는 논의"를 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눕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여러 이유로 끼어들지 못합니다.

*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  *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관습적인 생각  * 앞 사람과 생각이 다르지만 이미 저들의 생각이 주도적인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침묵의 나선 이론)

여기서 과감하게 논의에 끼어들거나 의사진행발언 등으로 논의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한, 한번 굳어져 버린 이런 구도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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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위의 그림처럼 회의를 끝난 후에는 소수의 "앞서가는" 그룹의 생각만이 주로 표현되고 정리되어 동의를 얻은 것처럼 되고, 그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지만 (혹은 이해조차 잘 안되지만) 그냥 인정해버리는 그룹이 생깁니다. 이렇게 내려진 결정은 7명의 구성원의 모든 지혜를 다 끌어모은 최선의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결론도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 사람들은 지치고 시간이 많이 지나 저마다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특히 "뒤처진 그룹"의 사람들은 지루함, 우울함, 소외감, 무력감, 심지어 정떨어지는 느낌에 이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명확히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모르지만 즐겁지 않은 기분'을 갖게 되어 더욱 지치기도 합니다. 

 

3. 소통이 힘든 이유

대부분의 비극은 소규모의, 특정한 성격의 회의에서나 적합한 방식을 모든 경우에 적용할 때 일어납니다. 서너명의 친숙한 사람들끼리는 이것저것 준비할 필요 없이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뜻을 모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만으로 어떤 상황에서나 길게 말로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회의가 힘들어지고 결국엔 실패했을때, 그 원인을 회의 과정에서 찾기 보다는 "저 사람은 나랑 생각이 완전 달라" 이렇게 속 편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끼리만 얘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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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의사소통과 결정과정이 기본적으로 아주 힘든 것이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혹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해도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그 순간에 적합한 방식과 여건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다시 시도하려고 하지요. '소통이 중요하지만 힘들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기에 곳곳에서 좋은 의사소통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실제로 해보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단 외부의 사례가 내 경우에 적용하기엔 맞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우리 일상생활과 여러 사업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의사결정과정을 구성원들이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작은 노력들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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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듣는 사람에게 전해지기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 말하는 사람은 우선 생각을 떠올리고,  1) 그 생각을 머리 속에서 정리합니다. (이 과정이 안되는 경우도 주변에 많습니다. 저부터 OTL)   2) 그것에 적합한 표현을 찾아내야 하며   3) 말하기 적절한 타이밍과 환경을 찾아서   4) 생각한 표현을 밖으로 드러냅니다. (너무 긴장해서 엉뚱한 말하는 경우도 많네요)

* 듣는 사람은 우선 1) 말하는 이의 표현을 정확히 접수해야 합니다. "가"라고 했는데 "와"로 들으면 안되니까요.  2) 언어 독해 능력을 이용해 그 말의 사전적 의미를 해독하고,  3) 역사, 지역 특성 등 문화적 배경을 적용해 그 말의 관용적 의미를 파악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실한 '듣는 이'는 4) 그 순간 말하는 이의 처한 상황,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진정한 "숨은 뜻"까지 알아내기도 하지요.

언뜻만 생각해도 많은 과정을 통해 곳곳에 왜곡의 위험성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세밀한 영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이어 쓸 생각이고요, 이번 글에서는 거시적인 영역에 대해서만 간단히 다루려고 합니다.

 

소통이 힘들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직접 경험하고 계신데 저도 그런 말만 보태려는 것은 아닙니다. 절망하고 포기하기엔 소통은 정말로 중요하니 끝없이 방법을 찾아봐야죠. 100% 이상적인 과정이 되는 것은 어쩌면 평생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50% 미만의 만족도를 70%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장치만 잘 도입해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4. 기본기에 충실하자

제 경험상 즐겁고 효율적인 회의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방법들을 세 가지만 강조하고 싶습니다.

1) 안건지

원활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한 요소는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전 이해를 바탕으로 준비된 마음가짐으로 참석하느냐입니다. 목차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안건지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만들면 안됩니다.) 어떤 내용이 논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전에 고민하고 설계한다는 것이며, 그것에 따라 계획적으로 회의가 진행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높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회의의 방향을 현장에서 좌지우지하는 것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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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건이 허락된다면 안건지에는 지난 회의록을 담아 논의가 연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하고 현재 안건에 대한 맥락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사전 연구나 검토가 필요한 사안은 그 결과 자료를 포함해서 회의 참가자들이 좀 더 근거 있는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안건으로 올리기에 작아 보이지만 요긴한 정보들도 담아 둘 수 있습니다.

안건지를 사전에 만들 경우 미리 배포하거나 게시하여 참여자들이 미리 준비를 하고 올 수 있게 한다는 점도 좋습니다. 물론 안건지를 미리 만드는 수고를 들여도 참여자들이 잘 읽지 않고 오거나 회의에 참가하는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제 경험상으로 적어도 회의가 산으로 가는 것을 방지하는데엔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2) MC - 진행자 두기

의외로 많은 경우에 MC를 정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1) 역사적 이유로 MC가 있다는 것 자체에 권위적인 느낌을 받는다거나,  2) 회의 참가자가 부족해 한 사람의 생각을 더 논의에 참여시키는 것도 부족한데 MC를 따로 둘 여유가 없다거나,  3) 효율적인 회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직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자가 정해지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보인다거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회의가 끝난 후, 조용히 있던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는 놀라 "그런 좋은 의견을 왜 얘기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회의가 길어질 경우 사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면도 있어서 ^^;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러다 보면 꽤 규모가 되는 회의에서는 별 말 없이 쭉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이 대개 한 명 이상 있습니다. 그러면 다가가서 "오늘 회의 어떠셨어요?"라고 물어보곤 하는데 원래 성격이 심하게 소심해서 그런 분과는 그냥 같이 웃고 마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종종, 좋은 생각을 얘기하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그럴 타이밍을 잡지 못했거나 하는 이유로 말을 하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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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묘사한 사례를 한번 보겠습니다. 논의를 초반부터 주도하는 그룹(그림의 노랑, 보라, 빨강 원)이 논의 속도를 높이고 있을 때 이 그림에서는 두 가지 행위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약간 뒤쳐진 감이 있지만 다른 의견이 있던 사람(주황색 원)이 조금 힘들더라도 논의에 끼어든 것입니다. 이 경우 앞선 그룹의 논의를 못 따라가 다소 핀트가 어긋나는 얘기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자칫 한쪽으로만 너무 쏠리는 논의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 앞선 그룹이 아무리 깊이 있게 논의를 진행했어도, 다른 관점이 제기되는 순간은 모두가 같은 출발점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벌어진 속도의 차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단 논의를 주도하는 그룹이 영향력이 높은 사람들로 이뤄져 있거나 논의 과정에서 전반적인 동의를 얻고 있다고 판단되면 반론을 펴기 주저하는 일반적인 현상(침묵의나선이론 참고)이 있으므로 다른 관점이 늘 쉽게 중간에 제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이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는 그룹 (녹색, 파란색 원)간에 비공식적 소통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얘기하고 있는 거 맞지? 아 그런거야?" 진행되고 있는 논의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곱씹어 보느라 흐름을 놓친 경우, 사전 이해나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기본 정보가 부족하여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경우 등 악의 없이 논의에서 뒤처지는 그룹은 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룹들은 위에서 제가 제기한 개념인 "의사성숙도"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종종 비공식적 채널로 소통을 해서 정보를 교환합니다. 전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잠깐 멈추자고 하는 것은 논의를 방해하는 행위로 여겨 스스로 삼가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행위는 사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행위이고, 장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각 경우에 대해 주저하게 되는 심리적 요인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외부 장치가 있으면 좋습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몰라서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행위는 그런 고민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MC는 논의에 많이 개입하고 사람들의 얘기를 계속 정리하려 하는 그런 MC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데 초점을 맞추는 최소한의 MC입니다.  1) 말 별로 안 한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기적으로 넘겨 주기 (많이 말을 한 사람의 발언권을 다소 제약하기)  2) 남은 시간을 체크하며 적절히 휴식을 취해 주의를 환기하고 참여자들의 컨디션을 관리  3) 길어진 안건의 경우 논의를 계속할지 별도의 자리로 넘길지 등을 고민해 참여자들의 의사를 묻는 식으로 전체적인 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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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노란색 원이 MC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면, 논의 주도 그룹이 형성되었을때(점선) 다음 발언권을 '조용한 그룹'에 의도적으로 넘겨 흐름을 바꾸는 행위가 그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1) 논의의 속도를 늦춰 전체적으로 고루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2) 논의에서 소외되었던 멤버(파란 원)를 논의에 깊이 참여시킨다  3) 새로운 관점을 더해 논의를 풍성하게 한다 등이 있습니다.

 

3) 실시간 회의록

8년전쯤 참여한 회의에서 인상 깊은 경험을 했습니다. 청각장애인 멤버 두 분이 회의에 참여하시기로 해서 빔프로젝터와 노트북을 구해 회의장에 설치하고 진행하는 회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실시간으로 타이핑해서 화면에 띄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보통 회의를 하면 그 결과만 간략히 회의록으로 정리해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정도였는데, 그 날은 타이핑이 빠른 분께 부탁드려 사람들의 얘기를 전부 기록했습니다.

그 직전과 직후 회의에는 그 분들이 참여하지 않아서 제가 비포 & 애프터를 확실히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실시간 회의록은 청각장애인 멤버의 논의 참여를 위한 장치였지만 그 효과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누렸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이 지금 진행되는 논의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자 일어난 일은  1) 전체적으로 회의 시간이 짧아졌다  2) 참여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3)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 없이 핵심으로 쉽게 들어갔다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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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빔프로젝터를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화이트보드를 써도 되고, 포스트잇 등으로 벽이나 책상에 붙여놓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만 하면 됩니다. 참여자들이 논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우선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주체적으로 논의에 몰두할 수 있으며, 중복된 얘기나 사족을 줄일 수 있습니다. 회의록을 쓰는 분의 견해는 다를지라도 하나의 해석 기준은 확인할 수 있으며 혹 이의가 있을 경우 회의록에 반영하여 현 사안에 대한 상이한 배경 이해를 최소화하며 논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나열한 세가지 방법 - 안건지, MC, 실시간 회의록 혹은 전광판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고 도입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회의 주제와 성격, 구성원에 따라 이런 기본적인 방법을 하나 이상만 적용해도 회의가 더 즐겁고 생산적이 되는 것을 봐 왔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의사결정 기술/방법 등을 실험하며 집단에게 맞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회의는 힘들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다음이 기다려지는 행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족스러운 회의를 해본 제 주변 사람들은 다음 회의를 두려워하는 일은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즐겁고 생산적인 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다양한 그룹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즐겁고 효율적인 회의를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회의가 힘들어지고 성과가 나지 않으면 결국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후퇴하여 현실론에 눌려 많은 절차를 생략하고 소수의 사람에게 의사결정에 관해 상당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을 봐왔습니다. 사실 모두가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잘 정착하면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만 그 과정이 더디고, 금방 성과는 안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큽니다. 즐거운 회의가 곳곳에서 이뤄져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현실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생동력이 넘쳐흐르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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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0 02:53 2014/12/3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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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곰 2014/12/31 10:16 URL EDIT REPLY
잘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적용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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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판결

잡기장

근래에 제가 관련된 두 개의 판결이 났습니다. 하나는 열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쁜 것입니다.

 

1. 열받는 첫번째 판결은 2008년 촛불집회 때 밤에 경찰에 밀려 도로로 나간 후 체포됐던 건인데, 야간 집회를 금지한 것이 헌법 불합치 결정 ( http://ko.wikipedia.org/wiki/야간_집회_금지_사건 )이 난 지 한참 지난 후였기에 걱정도 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심리가 재개되었고, 일반교통방해 및 자정 이후 시위로 벌금 30만원을 내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체포된 시각이 12시 반인가 그럴텐데, 실제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에 있다가 경찰한테 둘러싸여 집에도 못가고 한참이나 갇혀 있다가 체포된 것이지만, 갇힌 후의 채증 사진만 있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나오고 말았네요. 30분 일찍 잡히지 않은 죄(?)입니다. 아니면 당시 경찰이 미래를 내다보고 시간을 끌다 12시 넘은 것 확인하고 체포하기 시작했나봐요. 일반교통방해죄가 원래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들었지만 집회 참가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구요. 다행히 그때부터 무료로 변호를 맡아주고 있는 곳에서 항소까지 계속 도와주기로 해서 계속 싸워보렵니다.

 

2. 기쁜 두번째 판결은 제가 관리하고 있는 IT산업노조의 "일터Q&A" 게시판에 대한 모 업체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것입니다.

이 게시판은 주로 IT개발자들이 면접 보기 전 업체에 대한 "진짜 정보"를 알고 싶을 때 질문을 올려 경험자의 답변을 듣는 곳입니다. 원래 OKJSP( http://okjsp.pe.kr )라는 개발자 커뮤니티에 있던 것인데, 다른 곳은 정보인지 광고인지 구분이 안가는 좋은 이야기만 있는 반면 이곳은 실제 경험자의 얘기가 있으므로 업체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곳이죠. 그래서 늘상 업체들로부터 글을 지우라는 요청과 협박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게 계속되다 보니 OKJSP에서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어했고, IT노조에서 2007년에 부담을 나누기 위해 게시판을 넘겨 받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2014년 올해까지 8년째 제가 게시판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2007년 쯤이면.. 제가 표현의 자유, 감시와 검열 문제 등에 관심이 많을 때이고, 정보통신 관련 법령들이 한참 나빠지고 있을 때로 기억합니다(인터넷 실명제(2007), 정보통신망 감시,감청 가능성을 연 통신비밀보호법 개정(2008), 사이버 모욕죄(2008) 등). 명예훼손이 형사처벌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이런 법령들이 나빠지는 것과 맞물려 여론 통제의 위험성을 크게 높였지요. 실제로 지금 명예훼손죄로 걸리는 것이 두려워 표현을 안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 금방 검색해도 나오는 "전략적 봉쇄"를 위한 소송 남발 사례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241343261&code=910100 )

일터Q&A게시판에서 민낯이 드러난 업체들도 저 "명예훼손죄"를 입에 달고 글을 빨리 지우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2007,8년까지만해도 글을 지워달라는 것을 "부탁"하고 "읍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글을 알아서 안지우고 관리자는 뭐함?" 이라고 질타(!)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떤 "상식의 기준"이란 것이 변해가고, 제가 점점 몰상식한 사람이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눈에 안띄는 곳에서 정보들은 이렇게 계속 필터링되고 있고,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어느새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시대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싫어요" 한마디면 업체의 삭제 요청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제가 왜 지울 수 없는지를 길게 얘기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 생각을 하니 서론이 길어지네요. 어쨌든 진보넷 활동가에게 여러 차례 가르침까지 받아가며 이 공익적 게시판 상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악덕 업체로 인한 피해자가 한 사람이라도 덜 나올 수 있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http://blog.jinbo.net/h2dj/786 에서 얘기한 적 있습니다). 글을 지우라는 업체는 처음엔 짧게 "지워주세요" 하다가 우리가 안 지워주면 나름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근거를 보내며 지워달라고 약간 자세를 낮춥니다. 그래도 우리가 수사기관이 아니니 당신들이 보내준 자료를 직접 확인할 수 없고, 사법기관이 아니니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하며 법원의 판단을 받아와서 글을 지워야 한다면 몰라도 그냥은 절대 못 지운다고 선을 그어왔습니다. 이 정도만 얘기해도 많은 업체들은 그냥 잠잠해지곤 하는데, 간혹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비를 거는 곳이 있고, 결국 게시판의 자신들에 대한 글과 덧글을 삭제해달라는 가처분 신청까지 들어오기도 합니다. 올해에도 9월에 모 업체에서 자신들과 관련한 글과 덧글을 삭제하거나 영구 비공개조치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가처분 신청은 처음이 아닌데, 법정에 가서 판사들이 말하는 분위기를 보고는 대부분 그냥 취소를 합니다. 그래서 이 게시판의 글들은 공익적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신념은 있었지만 법원의 판단을 직접 받은 적은 없어서 확신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취소하지 마라, 판결 좀 받아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2번을 출석하고 며칠 전에 판결문을 받았는데,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이런 글은 명예훼손이라 볼 수 없다는, 8년간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 들어있었습니다 ^^

 

판결문 내용을 요약해보면

* 글을 삭제 혹은 영구 비공개조치하게 되면 채권자(그 업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바로 갖게 된다. 반면 채무자(IT노조)는 다투어볼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이므로(익명의 게시자도 글 자체가 드러나 있어야 더 말을 할 수 있겠죠) 통상의 경우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필요하다.

* 게시글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경험자에게 묻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허위사실을 포함한 것이 아니다.

* 명예훼손의 목적이 아니다(글은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고, 덧글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려는 공익적 목적이니까요) / 반복적으로 게시되고 있지 않다 / 기타 정황을 종합했을때 채권자의 명예권을 침해한다 보기 어렵다.

* 덧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지 않아 집행할 수 없다

* 설사 전체 덧글을 삭제하라는 요구라도, 게시글 자체가 삭제할 이유가 없으니 그것에 대해 단순히 의견을 표명하거나 (심지어) 채권자를 옹호하는 댓글이 혼재되어 있을 수 있는 만큼 모든 덧글을 다 지울만큼의 권리가 채권자에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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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나 업체들과 안 좋은 말로 부대끼다보니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었고, 1년전 새로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래 평균 4~6시간만 자며 주말에도 일하는 "평범한 IT개발자"처럼 일하며 힘들어하던 차에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 동안 게시판 관리 뿐 아니라 업체들에게 협박을 받고 시달리던 IT개발자들에게 부족하나마 상담을 해주며 맞서 싸우게 하는 일도 비공식적으로 해왔지만 마음 한켠에는 부담이 늘 있었는데 이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터Q&A 게시판도 지금까지는 약간은 수세적으로 게시판을 지키는데에만 주력했다면, 이제는 어떤 "게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널리 알리며 더 많은 IT노동자들이 이 곳을 통해 진짜 정보를 알고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게끔 홍보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집중된 정보통신 관련 법령들의 개악으로 2014년의 SNS 감청 사태까지 이어져왔는데, 인터넷 실명제는 비록 폐지되었지만 공직선거법 등에는 잔재가 남아 있고, 통신비밀보호법과 사이버 모욕죄 및 여러 여론 통제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 높은 법들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게시판 이용 활성화에서 좀 더 나아가보면, 저는 "발빠른 사람의 망명"도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정면으로 대처하는 흐름이 되길 바랍니다. 관련 법과 제도 등을 폐지 혹은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언제나 있는데, 이들 단체와 활동가들, 캠페인에 대한 지지를 모아서 나쁜 법은 없애고 바꿔나가는 결과를 만들어내면 좋겠습니다.

* https://www.facebook.com/antigamsi 사이버사찰긴급행동 : 사이버사찰을 금지하는 법을 요구하는 1만인 선언에 참여해주세요

* 오랜만에 개인적인 얘기를 쓰려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뭔가 또 주제가 뒤에 가서 바뀐 느낌. 이게 지각생 스타일이라고 말하렵니다. 어쨌든 축하는 좀 받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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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2 20:04 2014/11/0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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