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IT의 좌표축

사회운동

"비영리IT"로 시작하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을 이것까지 다섯개 연속으로 올리고 있는데, 분량 조절에 실패하지 않는한 앞으로 한동안은 내 신변 얘기로 좀 돌아가 보려 한다. 한국에서 비영리IT가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논의들이 있을텐데, 그것들이 충분히 얘기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IT인들이 말보다 "실제 행동 (혹은 코드)"를 중시하기 때문이라 해도, 생각이 뻗어나가는데 자극이 될 만한 화두를 누군가 계속 제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앞으로 함께 협력할 여러 비영리IT 주체들과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주(7월 12일)에 한 다리 건너 알고 있는 범위까지 비영리단체 혹은 사회적기업, 재단 활동가들을 초대해 비영리IT포럼 첫모임을 가졌다. 기대했던 대로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활동 내용과 앞으로의 비전을 공유하는 만족스러운 행사가 되었다. 모두 열띄게 얘기하고 질문을 주고 받다보니 준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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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비영리IT하는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 같다. 평소에 만나기 어려웠던, 이질적인 사람을 만날 수록 네트워크는 넓어지고, 구성이 다채로워져서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 믿는다. 이런 모임들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한국의 비영리IT가 풍성해지고,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문제는 이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어떻게 실질적으로 협력해서 사업을 진행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지금 하고 있는 구체적 사업들을 맞추어 보는 것과 함께, 좀 더 길게 내다보고 함께 구상을 할 방법은 무엇일까.

 

 

2. 네트워크를 만드는것 못지 않게 그 네트워크를 계속 활력 있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충분히 다양하게, 고르게 분포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그저 많이 모여 있다거나, 특정한 지향성이 강한 세를 형성하게 되서 그것에 갇히게 된다면 네트워크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은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한국의 비영리IT가 지금은 충분히 다양하지 않다고 본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기획되고 시도되는데, 그 자체로 좋고 어떤 것은 감탄할 만하지만, 대체로 그런 기획들을 접하고 나면 마음 한켠이 시원하지가 않다. 하나 하나 새롭고 다양한 것 같은데 계속 그렇게 접하다 보면 뭔가 쏠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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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분포도를 그려봤다. 이 부분만 봐서는 딱히 쏠리지도 않고 충분히 고르게,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이걸 관점을 확대해서 아래 그림처럼 된다면 그때도 "고르고 다양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 그림은 아래그림의 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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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떤 것을 좌표축으로 삼나, 중심점은 어디에 두나, 몇 가지 차원에 대해 살펴보나에 따라서 다양성은 달리 평가할 수 있을텐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기준에 따르면 지금 기획되고 있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특정한 방향에 쏠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받게 된다면, 저렇게 넓은 빈공간에서 "다양한" 것들을 해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고, 쏠리는게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말 쏠려 있는 건지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은 것이고, 쏠렸다면 그렇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의미 있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영역들은 무엇이 있는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볼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다 열어놓고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내가 비영리IT와 관련해 생각하는 다양한 좌표축들은?

 

 

3. 비영리IT의 저변확대,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어떤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어떤 방법들로 다가가는지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들을 나열해보는 것이다. 각각의 측면에 대해 두가지 이상의 대립되는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비영리IT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있는 것들을 적용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혹은 시민운동(제3섹터)의 방식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 사회적기업(제4섹터)의 방식을 주로 할 것인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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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알면 알수록,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능력과 욕망을 알면 알수록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은 늘어난다.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할 지경이다. 그래도 한번 하고 말게 아니면, 계속적으로 어떤 질문들에 부딪히게 되고, 선택을 해야하는 갈림길에 직면한다. 함께 가던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나는 비영리IT에 관련해서도 이런 질문들, 선택 가능한 것들, 다른 의견들을 얘기하는 것이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비영리IT에 관한, 철학, 목적, 접근법, 목표/대상에 대해 대립되는 두개 혹은 그 이상의 가치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생각해온 것만 나열해보는데 태클과 보충 기다립니다. 

 

 

1) 어떤 철학이 비영리IT에 영향을 미칠까? : 철학 좌표

 

  * 기술과 사회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 기술결정론 VS 기술의사회적구성론

 

    기술이 독자적인 논리로 발전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기술은 그 시대의 사회적 환경, 인간들의 욕망에 맞게 만들어지는가. 스마트폰 광고를 보면, 창의적인 기술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가 자주 나온다. 확실히 새로운 기술 (상품 혹은 서비스) 들이 등장할때마다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많이 바뀐다. 하지만 그런 기술은 어느날 갑자기, 특정한 배경 없이 사람들 앞에 등장하나? 아니면 그 사회의 권력 관계 속에서 특정한 방향에 따라 기술이 개발되는가. 기술결정론은 변화하는 사회현상들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그 내막에 대해서까지 설명해주진 못한다. 이것은 어느것이 극단적으로 옳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지금 하는 비영리IT활동이 어느 이론에 좀 더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의식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뒤에 나올 "접근법 좌표 : 제작 VS 적용"에 영향을 미친다. 

 

  *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기술은 무엇인가 : 최소 기술 - 적정 기술 - 첨단/거대 기술 

 

  과학기술혁명 이후, 기술은 점차 거대해지고 첨단을 달려, 이제 작은 동네의 개인이 소박하게 뭔가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해진 기술체계가 과연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부작용들에 대해 인간이 잘 통제하고 있는 건지. 지금보다 불편해보여도, 꼭 필요한 만큼의 기술을 소박하게 활용하는 것이 인간성을 더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고민. 

  최소 기술과 거대 기술의 중간에서, 현재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적정 기술"이다. 양극단 사이에서 아직은 많은 것이 검토되고 채워져야 할 적정기술.

  대체로, 기술결정론자일수록 첨단/거대기술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두개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결정론-공동체주의자가 적정기술의 개발 및 도입을 공동체 형성의 필수 조건으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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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영리IT를 왜 하려는가? : 목적 좌표

 

 * 사회의 문제해결   VS   개인의 자아실현 

 

   현실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에 옮기는 것을 스스로의 사명으로 삼는 경우가 있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쓰는데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하다거나 서로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니고 둘 다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오래 활동을 지속할 경우 두 가지 중 한 측면이 좀 더 강조되는 경향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측면을 따져보는 이유는 뒤에 나오는 "접근법 좌표"와 "목표 좌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보편적 인간 역량의 증대   VS   사람들의 약점과 결핍을 극복(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을)

 

  지구상에 굶는 사람이 있을때 전지구적 식량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다른 곳에 남는 것을 부족한 곳에 나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할 수도 있다. 인간의 보편적 소통 보조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의미 있고,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특화된 기술에 집중하는 것도 의미 있다. 이 두 가지 방향은 역시 좋고 나쁨의 문제라고 보긴 힘들다. 다만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3) 비영리IT를 어떻게 하려는가? : 방법 좌표

 

 * 제작 (개발)  VS 적용

 

  지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자신의 역량을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있는 기술이 여러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적용되지 않아 생겨나는 정보격차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새롭고 진보된 기술을 개발하는 흐름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두면 결국 기존의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새로운 기술도 잘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뜻하지 않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술을 적용하는데 초점을 맞춰 격차를 줄이는 것은 기술 민주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사회적 불평등 양상을 단순하게 보고 일방적 복음 전파로 그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두가지도 모두 필요한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것이 좋다. 개발 위주의 사람이 실제로 적용을 하다 보면 좀 더 접근성이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적용 위주의 사람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편리한 기술을 만들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다만 이것도 둘 다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좌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제작자와 적용하는 사람이 균형을 이루고 서로 교류하며 역할바꾸기가 종종 일어나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기술결정론자일수록 제작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 반대일수록 적용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기술이 자연스럽게 공평하게 퍼져 나가는 것은 아니므로 나로선 극단적 기술결정론을 그 반대의 경우보다 좀 더 경계하는 편이다.

 

 

 * 시민운동 방식(제3섹터 중시) VS 사회적 기업 방식(제 4섹터 고유 영역 주장)

 

  시민운동 방식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상황을 개선해가는 과정에서 기술 활동을 도입하는 것이고, 사회적기업 방식은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것을 대체해서 문제의 양상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시민운동 방식의 경우 이해당사자와 일반 시민의 자발적이고 폭넓은 참여를 중시하고 속도를 중시하지 않는 반면, 사회적기업 방식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수의 선도적인, 발빠른 행동을 중시한다. 

 많은 경우 제 4섹터의 활동은 기존 제1,2,3섹터가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고 고착 상태에 빠진 경우에 임팩트 있는 성과를 내며 대두되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얽히고 무거워진 다른 섹터들에 비해 좀 더 가볍고 과감하게 행동하면서 많은 기대를 주긴 하지만, 4섹터의 활동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위험하다. 대부분의 현실 자본주의에서 제3섹터보다는 제2섹터가 더 강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제4섹터가 점차 제2섹터(영리부문)에 치우칠 수 있는 문제, 그리고 의도치 않게 제3섹터(비영리/비정부 부문)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 그로 인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단기적/표면적 개선 효과만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제3섹터가 충분히 성숙한 환경 속에서 1~3부문간의 조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제4섹터가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4)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려는가? : 목표 좌표

 

 * 일반 공중을 이롭게 하는 방식 (간접적) VS 취약 계층에 특화된 활동 (직접적)

 

  좋은 것을 만들어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만들때부터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맞춰서 내놓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방법 좌표축의 경우처럼 여기서도 현실적 불평등이 고려 대상이 된다. 좋은 기술, 비영리IT가 실제로 얼마나 잘 확산될 수 있는가를 고려해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가지도 서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고 한가지를 먼저 한 다음 다른 한가지를 추가하는 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먼저 하는 것에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후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나중에 하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할 부분은 아니다. 이 두가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것은 "실효성"의 판단이다. 

 또한 일반 공중을 이롭게 하는 방식은 그 기술과 행위가 거대하고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취약계층에 특화된 활동은 좀더 작고 요긴한 무엇이 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부문으로 확산할때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 기술 활동 중심(기술적 대안 마련) VS 인간 행위-관계 중심(커뮤니티 , 단체, 제도) 

 

기술을 좁게 해석할 것인가 넓게 해석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특정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으로 비영리IT활동의 범위를 정할 것인가 (최종 순간의) 인간의 행위까지 기술영역으로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두가지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추진되는 것이 좋지만, 역시나 개별 주체의 한계가 있어서 역할 분담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상적인 상황은 한 가지 영역을 선택하되,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기술결정론과 기술의사회적구성론등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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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축을 제시했으니 내 스스로 하는 활동만이라도 거기에 적용시켜 봐야겠지만, 아침이 벌써 밝아왔으니 다음으로 미룬다. 

 

한국이 사회-문화적으로 충분히 유연하지 못하다 보니, 연관성 높은 것들끼리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좌표들이 다양하게 조합된 활동보다는 크게 두가지의 흐름으로 분리되는 것 같다. 

 

* 기술위주라인A : 기술결정론 - 첨단/거대기술 - 자아실현 - 역량증대 - 제작위주 - SE방식 - 일반공중 - 기술중심

 

* 행동위주라인B : 기술의사회적구성론 - 최소/적정기술 - 문제해결 - 약점극복 - 적용중심 - 시민운동방식 - 취약계층 - 인간행위중심 

 

이 두 라인이 유일한 것도 아니고, 둘 중 하나가 옳은 것도 아니다. 위에서 기술결정론-공동체주의자의 예를 든 것처럼 기술결정론에서 출발하되 적정기술을 중시하고 취약계층(혹은 특정계층)을 대상으로한 비영리IT활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기준들을 다양하게 섞어서 기존에 하지 않던 새로운 분야/방식의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이미 비영리IT를 하고 있는 주체들이 평소에 이런 얘기들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쿨~하게 이해하고 가능한 협력 방안을 마련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비영리IT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문화로 정착해서 다양한 주체들이 고르게 분포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를, 그래서 비영리IT의 흐름이 증폭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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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9 05:22 2012/07/19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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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kong 2012/07/19 07:34 URL EDIT REPLY
깊은 고민이 담긴 글 잘 봤습니다.

지각생님과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저같은 사람들은... it로 무엇을 제공해야 할지 모르고,
또 it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정작 무엇이 가능한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거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분야의 소통을 통해서 의견을 좁히다보면 더 좋은 방안이 생길거라 맏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지각생 | 2012/07/20 11:24 URL EDIT
저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해서 말씀하신대로 다양한 분야의 소통으로 좋은 방안을 마련하려합니다 ^^ 이 달 가기전에 한번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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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의 IT역량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 IT지원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 중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누군가가 얼마 전에 단체 활동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사람이 단체에서 IT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활동 분야를 찾아 떠나는 선택은 존중할 일이고 잘된 일이지만, 한국의 IT활동가가 너무나 부족한데다가,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데 사실은 평소 조직적 지원 부족이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더욱 안타깝다. 그리고 내가 그런 단체들을 더 찾아 다녔는지는 몰라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단체는 거의 찾아볼래야 볼 수 없어서 누구를 원망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2006년 정보운동포럼에서 한국의 비영리단체에 IT인력 유입이 적은 이유를 악순환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지금 단체들에 IT인력이 없으니 IT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없고, IT의 중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해 인식이 부족해지니 더욱 인적, 물적 투자를 줄이게 된다. 그런 환경이 심화되니 새롭게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려는 IT인력은 더욱 부족해진다. 비영리섹터가 현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과 범위가 늘어난다면, 그것을 뒷받침하고 혁신하는 IT인력 규모 또한 늘어나는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IT인력의 유입이 늘지 않고, 오히려 오래 일해온 사람이 그만두는 경우가 늘어난다. 누군가 그만두면 새롭게 그 역할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있지도 않고, 있다 하더라도 인수인계가 잘 안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 - "모 단체의 누가 귀농을 한데."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귀농 인구가 한명 늘어났다"보다는 "정보통신활동가가 한명 줄었다"는 사실에, 그 귀한 사람의 "손실"에 나 혼자 괜히 많이 속상했다. 

 

속상해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2006년의 고민을 이어서, 그럼 비영리IT 조직에서 IT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내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두가지이다.

1. 비영리단체의 IT 수요는 대체로 만성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다. 

2. 비영리단체로의 IT인력 유입(공급)은 탄력적이지 않다. 

 

여기서는 활동가 개개인의 지향성은 고려하지 않고, 조직의 IT 관련 지원 정도가 IT분야의 활동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단순화시켰다.

활동비를 포함한 조직의 IT 투자를 "가격"으로, 한 단체에서 필요로 하는 IT 서비스의 총량을 "수요", 상근/비상근 활동가의 참여를 "공급"이라고 해서 수요공급곡선을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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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할때 이런 얘기를 몇번 들었다. 그 단체는 한국에서 인지도가 좀 있는 편이라, 뜻있는 IT인들이 가끔 같이 일해보려고 지원하는데, 대체로 단체에서 활동가 구인할때 활동비를 정확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규에 의한다"고 하고 막상 면접을 오면 얘기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 단체에 지원했던 IT인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듣곤 깜짝 놀라서 바로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나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도 있는데, 2003년인가 4년에 "노동네트워크"란 곳에서 구인광고를 KLDP에 냈다. 여기엔 활동비가 얼마 수준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뜻밖에 이 글이 관심을 얻었다. IT인력을 이런 임금에 쓰는게 말이 되느냐는 분개의 덧글, 그리고 단체들 상황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저 정도면 적은 것도 아니고, 단체 활동비는 일반적인 임금과는 다르게 봐야한다는 옹호 덧글이 번갈아 나오면서 엄청나게 이어졌다. 우연히 내가 그걸 보고 노동넷이란곳을 알게 되서 내가 상근활동까지 결국 하게 되었다. (당시 진보넷 지원 메일 보내고 미끄러져서 실의(?)에 빠져 있는 상태였던걸로 기억)

 

한국의 IT노동자들은 많이 알려졌다시피 야근, 주말 근무를 당연시하고 수당을 못받는 등 정말 여러가지로 노동권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저 "지식근로자" 혹은 "전문가"로 치장해주면서 임금을 많이 받는 일부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엔 IT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결과적으로 IT인들이 바라는 기대수준은 높은데 비해, 단체들이 제시하는 수준은 턱없이 낮으니 활동의 비전이고 뭐고 간에 아예 대화가 안되는 일이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비영리조직들은, IT인력을 단체 내부에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공급곡선이 이렇게 수정된다. (S1 ->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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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잘 알아서 이런 걸 제시하는게 아니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그렇습니다)

 

IT인력 유지 비용이 증가하는데 대한 비영리조직의 대응은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IT수요를 축소, 저평가하는 것이다. (특히 IT가 노동자 고용을 줄인다고 믿는 전통적 노동조합의 경우 더 그렇다)

IT 관련 업무를 전담하던 활동가에게 다른 활동을 겸직시키고 (그러면서 일을 줄이진 않는다), 활동가에 대한 이해없이 조직을 개편한다던가, 대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줄인다. 내부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도 그냥 방치하다 더 예전 방식으로 회귀한다. 이런 일들은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조직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정말 몰라서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같은 경우도 예전에 정보통신국이 있을때 노동자 감시 대응 운동을 전개한다던가, 내부 IT교육등을 통해 앞으로의 비전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활동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계기를 거치며 미디어/홍보만 강조하고, 내부 IT인력을 단순 기술 실무자만 유지하는 방향으로 축소해왔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수요곡선이 다시 수정되서, 일정 수준의(가능한 최소한의) IT 관련 지출 수준으로 돌아가 유지시키려는 단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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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라면 Q1,P1의 수준에서 비영리조직의 IT관련 지출과 IT인력 유입이 일어나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Q2,P2의 수준으로 퇴보하게 된다. IT관련 서비스/역량은 Q1 -> Q2 로 줄어들면서도, 정작 IT관련 지출은 줄어들기보단 더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내부적으로 관리가 잘 안되서 생기는 물적,심적 손실 등을 감안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뤄야 한다. 

 

 

 비영리조직의 IT역량 강화를 위해

 

한국 비영리조직이 IT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1. NGO의 IT 수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지출을 늘인다.

2. IT인의 "시민 시장 civil market" 공급을 확대한다.  

 

한국 비영리조직들은 정말 지금 맡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 비해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나 기득권층 정책에 대해 비판적일수록 더 심하다. 이런 상황인데 그들 개별 단체에 대해 IT지출을 늘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 정도를 일단 꼽을 수 있지 않을까.

1. 영세한 NGO의 IT 관련 비용 일부를 공공의 기금으로 지원한다. 

2. NGO들이 서로 협력하여 IT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유한다. (핵심 주장)

3. IT인의 비영리섹터 참여를 촉진,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미취업학생 혹은 은퇴자의 비영리조직 활동을 지원한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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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의 IT 공급량을 유지하기 위해 P2 - P1 만큼의 재원을 공공영역에서 만들어 지원하는 그림(첫번째 방안). 장기적으로는 3번 방안을 통해 공급곡선을 다시 S2 -> S1으로 낮추려는 노력을 진행한다. P2 - P1 만큼의 재원은 공공기금도 가능하고, 규모 있는 연합체 성격의 조직에서 저만큼의 비용을 마련해서 개별 하위 단체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영세한 노조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다 보면, 돈을 제대로 받기가 뭐하다. 실제 돈이 없고, 힘들게 싸우는 그들을 보면 그냥 해주고픈 마음이 막 든다. 그래서 약간의 돈을 지급받는데, 사실 그러다보면 좀 더 큰 규모의 노조에서 이런 용도의 기금을 만들어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많이 했다. 

 

 

협동으로 최적화하기 

내가 추천하고 실제로 비영리IT단체를 만들어 진행하고자 하는 것은 두번째 방안이다. 단체의 IT역량을 개별 단체 수준의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축적하고, 키워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단체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IT관리 업무 - 시간은 많이 들어가지만 그 자체로 어떤 플러스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닌 일 - 등을 여러 단위가 같이 수행하는 것이다. 크게 6가지를 꼽고 있는데

* 데이터 백업과 손실 복구

* PC/네트워크 관리 (정기적)

* 보안 관련 공동 점검 및 응급 대응

* 웹 관리 (스팸, 오류 해결 등)

* 컨설팅, 전략 기획 (공동 통계 기반)

* 교육 (기술, 기술사회학)

 

이런 6가지 업무는 개별 단체내 IT인력이 있을때 가장 많은 시간들을 잡아먹게 되는 일들이다. 이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단체 내 활동가가 수행할 권장 활동"은 기획과 교육분야인데, 이것들도 기본적인 수준의 기획과 교육은 공동으로 수행하고, 활동가는 그 단체의 특화된 컨텐츠와 사업을 개발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공동으로 수행하면 개별 단위별로 비용을 지출할때에 비해서 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한 단체의 상근/비상근/자원활동가가 그 단체에서 여러가지 비전문분야를 포함한 모든 IT관련 활동을 수행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소속 단체와 이웃 단체들에게 함께 서비스하고, 다른 영역은 다른 단체의 활동가의 서비스를 받는 식으로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혹은 지금 만들고 있는 비영리IT단체가 저런 6가지 업무를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개별 단체들은 저 단체를 후원함으로서 IT 활용 수준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저 6가지를 포함한 기본적 IT 서비스 수요의 상당수 부분이 무시 혹은 저평가 되고 있어서 중장기적인 비용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중장기적 비용을 절감하고 단체 내 IT활동가가 보다 진보된 IT활용 연구와 기획을 만들어 갈 수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정보통신활동가네트워크"는 사실 이런 비전으로 시작되었다. 개별 단체의 벽을 넘어 여러 NGO의 IT활동가들이 서로 교류, 협력함으로써 지금 처한 "일상 업무"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단체내 IT 활용 및 사업기획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여 단체들의 IT관련 투자를 늘리는 효과까지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가 실제로 발생하려면 실제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의 활동에 개입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단체의 벽을 넘는데는 실패했다. 좋은 정보들은 오갔지만 실제 활동이 공유되지 않고, 한 단체의 혁신이 다른 단체들로 확산되는 속도는 너무 더뎠다. 그래서 올해 만드는 단체는 이 "네트워크"의 비전을 승계하며 현실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비영리IT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만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여 (나조차도 충분한 것 같진 않다) 사람들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비영리단체들의 IT활용 역량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보다 다양한 범위와 수준의 IT를 활동에 접목시키게 되면 그만큼 일반 IT인의 참여 경로도 넓어지게 된다. PC에 아래아한글 문서를 만드는 것 외에는 하지 않는 단체보다, 스마트폰 앱을 기획하고, 다양한 SNS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고민하는 단체가 더 많은 사람들의 "개입"이 가능할테니까. 그리고 한국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비영리IT 사회적기업 (다른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이 지속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시장"으로서 성숙할 수 있다는 측면도 굳이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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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02:57 2012/06/2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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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지각생의 사회해킹 자습실 | 2014/02/03 13:04 | DEL
"비영리조직이 IT를 잘 못쓴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현실을 아실 듯합니다. 현실이 어떻다는 증언은 많지만 한국의 시민사회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연과학적으로 잘 분석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현실이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처방은 늘 부족하지요. 저도 깊이 있게 연구하는 타입은 아닙니다만, 자연과학에 대한 책을 읽는 일이 가끔 생기면 그것을 한국의 시민사회에 적용해보려는 무리한 시도를 늘 ...
skkong 2012/06/26 11:52 URL EDIT REPLY
많은 고민이 보이는 글이에요.
정작 말뿐이고 행동없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하지만, 지각생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든 힘이 닿는대로
도와드릴께요. ^^;
파이팅하세요~~~
지각생 | 2012/06/28 02:52 URL EDIT
고맙습니다 공석규님. 행동이 없다고 하시지만 IT자원활동가네트워크에서 공석규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alisol 2012/06/27 14:50 URL EDIT REPLY
협동이 되었을 때 IT 관련 일하는 분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문제 의식에 동감합니다.

서로간 신뢰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래서 최종적으로 모두 같이 서로 상생하고 생계나 생존에 위험을 줄이며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그려봅니다.

흠.... 저도 IT 공부를 어떻게 해서든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돈이 우선이 아닌, 신뢰를 통해 돈은 당연히 교환하는 도구로써 기능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고.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각생 | 2012/06/28 02:56 URL EDIT
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니 저도 고맙습니다. 특히 공부하시려는 분야가 정해져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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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IT 시대

IT / FOSS / 웹

가볍게 자주 쓰자! 언제나 생각하지만 실천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처럼 문득 어떤 말이 하고파졌을때를 놓치지 않겠다. "이 라면이 불기 전에 글을 마무리짓겠나이다!"

 

비영리IT 시대가 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주변에는 온통 비영리IT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한국 사회전반으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비영리IT"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영리IT"란 말은 낯설다. 저렇게 표현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분명 비영리IT는 "영리IT"를 전제로, 그 반작용으로 제기되는 개념이다. 어쩌면 원래 IT는 영리와 비영리 모든 측면에서 존재할 수 있지만, 어느새 너무 자연스럽게 영리와 관련되어 많이 쓰이다보니 굳이 영리IT란 표현조차 없다가, 그것이 너무 지나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생기자 "비영리IT"란 말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에서 "비영리IT"를 얘기한다는 것은 무슨 특별한, 새롭고 거창한 무언가를 하자는 이야기보다는, "균형을 회복하자", "IT의 처음 이상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는게 낫지 않을까? IT가 오랜 세월동안 우리 옆에 있었고, 점점 가까이 다가와 뗄 수 없는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IT 에 대해 명확히 말은 못해도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 더 말하기 전에, 어쩌면 비슷한 사례라고 생각하는 것 두가지만 말해본다. 

첫번째는 "웹2.0". 이제는 조용하지만 한때 엄청 뜨거웠던 화두. 그것에 대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해석, 주장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웹 초기의 이상으로 돌아가자" 혹은 "웹이 제안하는 긍정적 가능성, 이젠 정말 현실화해보자"는 많은 이들의 바램이 표현된 것이라고 본다.

 

  웹의 초기 이상 --> 시간이 지나며 거대해지고 복잡해짐, 여러 문제 발생 --> 초기 이상으로 돌아가, 그것을 구현하고 있는 서비스들을 수렴, 강조하는 웹2.0 대두 --> 웹의 현재/미래상으로 사람들에게 자리매김

 

두번째는 "자유소프트웨어/오픈소스". 소프트웨어(지식/정보)가 공유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자본주의적으로 사유화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것이 점점 심해져서 공유 문화 자체가 말살되어 결국 모두의 위기로 될 수 있음에, 초기 이상적인 문화를 현대화시켜 지속하려는 운동이 생겨났다. 

 

 협업과 공유가 자연스러웠던 소프트웨어 --> 사유화가 심해치며 공동체 파괴 --> 최소한의 공동체(문화)를 지키려는 현실적 운동 발생(자유소프트웨어운동) --> 현실 속에서 재조명 받아 중요한 가치가 됨(오픈소스) 

 

라면이 불고 있다. 역시 관운장의 포스는 허구다. 

 

IT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물론 그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IT는 노동자를 줄이는 괴물로 인식되어 대중의 미움을 받기도 하고, 통제의 도구로 활용되며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왜곡과 조작의 가능성으로 인해, 직접민주주의에 기여할거라는 기대를 배신하고 오히려 뿌리깊은 의심,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IT가 계속 빠르게 발전하고 실제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부작용이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IT를, 그전에 "기술"이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흐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는 그래서 비영리IT를 굉장히 넓게 보면서, 또한 색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원래 IT에 기대했던 그것"을 우리가 현실에서 만들어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기술(행위)"로 본다. 

 

기술이, IT가 임하는 곳이 오직 그것을 구매할 능력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로 (좀 더 절실히) 필요한 곳에, 그리고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IT 기술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실현되는 것, 그것을 원한다. 비영리IT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된다면, 그것은 영리IT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IT가 앞으로 나아갈 길잡이가 된다고 믿는다. 

 

여기서 글을 마치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끝나겠지만, 또 길어지다가 "저장"을 누르지 못하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것만이 "비영리IT"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이가 하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비영리IT가 맞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영리IT라는 것이 어떤 생소한, 혹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구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적 풍토가 한국에 생기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만들고 있는 비영리IT단체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앞으로 10년간 10개 이상의 단체가 생기길 바라는 제 꿈은 "별로 어렵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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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00:40 2012/06/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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