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봉기와 IT

잡기장
지각생[모든 곳에 우리의 미디어를!] 에 관련된 글.

오늘은 아침을 거리에서 맞지 않았다. 2주에 걸친 설사로 체력이 떨어진 탓일까, 며칠 새지도 않았는데 어제 저녁은 너무 피곤해 서 있기도 힘들었다. 구호를 외치려 해도 목소리도 잘 안나왔다. 양말을 안 갈아신고 그냥 나온 탓인지 발이 금방 아파왔다. 그래서 오늘 새벽도 사람들이 무탈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 사실은 더 겁이 나서 밤 10시도 안되서 광화문을 떠났다. 대신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 와서 내가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근데.. 와서 좀 있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요즘은 밤을 새지 않은 날엔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진다. 그리고는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뉴스를 본다. 사무실에 한겨레가 오지만 종이 신문을 읽지 않는 것은 이제 거의 습관이 됐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뉴스는 별로 업데이트가 안됐다. 아니면 "참사"가 없었거나. 그럴린 없을 것 같다. 계속 몇 곳을 왔다갔다 하고 다시 페이지를 열어보지만 뉴스가 올라오는 속도는 답답하다. 검색을 해보고 몇군데 커뮤니티를 들어가본 후 인터넷 생중계를 해주는 몇군데 사이트를 가본 후, 아프리카에 들어가 생중계를 켜 놓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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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한 영상과 사진이 쏟아진다. 검색어를 굳이 "폭력" 으로 하지 않고 "촛불" 정도만 넣어도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이미 많이 알려진, 쓰러진 학생을 군화발로 짓밟고 걷어찬 장면에는 그저 분노가 치솟는다 (알고 보니 그 후에도 또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 분노를 나만 느낀 것이 아니기에 곧 인터넷 게시판들은 성토와 처벌 요구로 들끓는다. 영상을 찾아낸 사람들은 계속 이곳저곳에 퍼나르며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쓴다.

거리에 있을 때 인상 깊은 것은 경찰이 폭력을 행사할때 "번쩍"하고 나타나는 수많은 "눈"들이다. 캠코더, 디카, 그리고 폰카까지, 경찰이 함부로 굴려 하면 즉시 사람들은 그 장면을 포착해 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너도나도 인터넷에 그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경찰 폭력의 실황을 알린다. 누가 시켜서, 몇몇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기에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그게 거짓이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 정말 어떤 전문가도, 권력자도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로 그런 "수많은 눈"과 인터넷이 있어, 예전부터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지고 왜곡되고 피해자를 비난해서 정당화하던 경찰 폭력과 비인권적 만행이 이제 온세상에 명백히 드러나게 됐다. 지금까지 경찰들이 수 많은 노동자들,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때려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실을 숨기거나 경찰을 동정하는 여론을 조성하거나, 피해자가 "맞아 죽을 만한" 일을 한 것으로 몰아가는 시도가 대체로 성공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젠? 끝났다. 이 건방진 검,경찰들아. 알바들, 그동안 애썼지만 이제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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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전에서도 경찰에 뒤지지 않는다. 모바일 장비를 이용해 서로 소식을 전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행동 방침을 세우고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은 경찰의 무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어제도 거리에 있을때 내가 아는 분이 "지금 XXX에 있어요. 여기 경찰이 얼만큼 있네요. 저쪽엔 이만큼 있고요. 이쪽으로 오면 좋을 것 같은데.." 라고 몇번을 알려주신다. 뭐 그래봐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서도. 경찰이 버스를 불법 주차해서 부당하게 도로를 막아놓은 곳을, 어떻게 돌아 돌아 틈을 발견해 나아가는 시민들, 그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정말 즐겁다.

마음은 굴뚝이나 어쩔 수 없이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도 인터넷 생중계를 보며 멀리서나마 함께 하고 응원한다. 인터넷 생중계는 일반적인 뉴스가 주지 못하는 것들을 준다. 편집과 통제가 없는 "투명한" 영상은 (물론 찍는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지만)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소식이다. 언제부터 몇명이 모였고, 언제까지 했고, 몇명 잡혔다. 이런 숫자 놀음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현장의 상황과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인터넷 중계를 보는 사람이 며칠 후에는 거리에 직접 참여하게 되고, 또 어제 나온 사람이 오늘은 생업을 하며 인터넷으로 참여한다. 이런 것이 벌써 꽤 오래 진행됐으니, 실제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생중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얘기한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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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보며 감동과 즐거움, 그리고 의욕이 솟는다. IT강국이라했지만 사실은 인터넷만 빠르지 활용 문화나 정부 정책등은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인터넷에서는 예전부터 활발했지만 실제 오프라인 선거등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을 보며 힘이 빠졌던게 사실이다. 그들을 "키보드워리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의 비판을 부정하고 싶지만 속으론 인정하기도 했으니까. IT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협력, 조직화하는 이들을 보니 "한국이 IT강국"이란 말이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이명박 개인적으로, 그리고 한나라당은 국제사회에서 욕을 먹겠지만, 이렇게 즐겁게 저항하는 시민들은 전세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모습이다.

이제 불은 붙었고, 이명박 정부는 계속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불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옮겨 붙었다. 나는 그 불이 좀 더 오래 오래 더 넓게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려니 할 일이 많다 싶다. 기술적, 정책적으로 몇가지를 더, 뜻있는 분들과 힘을 모아 해나갔으면 좋겠다.


1. 무선 인터넷 커버 영역 확대
  지금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분들은 대부분 와이브로를 사용하는 것 같다. 오마이뉴스, 진보신당의 칼라TV도 그렇게 방송을 하는데, 아직까지는 와이브로 무선인터넷이 속도도 느리고, 안정적이지도 않다. 보통 인터넷으로 영상을 송출하려면 적어도 300k 정도의 업로드 속도가 끊김없이 나와야 적당한 화질의 영상과 스테레오 오디오를 보낼 수 있다. 지금 진보신당 칼라TV는 그 속도가 나오지 않아 200k 정도로 맞춘 영상을 보내는데, 그래서 음성은 제법 들리지만 화질이 그닥 좋지 않다.
 
  유력한 대안은 역시 Wi-Fi 무선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일테다. 집회 현장 예측 지점 주변에 몇군데 연결지점(HotSpot) 을 만들어 놓고 그 정보를 생중계할 사람들과 공유한다. 근처 사무실에서 무선 공유기를 설치하고 방향성 안테나를 조정해 가면서 몇몇 사람만 인증해서 쓸 수 있게 한다면 와이브로가 문제일 때 임시로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사무실이나 집에서 무선랜을 공유할 분이 있으면 방송하려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받아 확인한후 인증을 통해 임시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을 듯.

2. 서버와 대역폭 확충
 아프리카(http://afreeca.com)가 훌륭한 역할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여러 이유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진보신당 칼라TV도 처음에는 노동네트워크가 지원해주는 미디어서버를 통해 스트리밍을 하다가 이후에 아프리카로 넘어가곤 한다. 지금 정부, 경찰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진보넷(http://www.jinbo.net)과 노동넷(http://nodong.net) 등의 시스템은 영리업체에 비해 자원이 넉넉치 못한 경우가 많다. 또 이번처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생중계를 시청할 경우 그들이 갖고 있는 대역폭은 금방 가득차게 되며, 지금보다 더 나간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서버와 대역폭이 있다면 한시적이라도 이런 방송을 위해 지원해 줍시다.

3. 아카이브(archive) 사이트 구축
 자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컨텐츠를 생산하고 있어 그 당시에는 풍요롭고 좋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이게 정리가 안되고 연결이 안되서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갈 가능성이 크다. 분산해서 생산하되, 이후에는 관련 컨텐츠를 몇 곳으로 모아 체계화할 수 있으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계속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알기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원도 넉넉하며 잘 구조화된 비디오 공유/아카이브 사이트는 거의 없다. 포털의 영상들은 어디까지나 포털의 것이고 그걸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구워삶고 찜쪄먹을 순 없으니. 호주의 잉게이지미디어(http://engagemedia.org) 나 archive.org 같은 곳을 한국에도 여럿 만들면 좋겠다. 최근 세계적으로 "트랜스미션" 프로젝트 등을 통해 "사회정의를 위한 비디오 공유/가공 CMS"가 여럿 개발되고 있는데, Plone 의 "Plumi" (일본 노동넷은 이걸 이용해 UnionTube 란 걸 만들어 쓴다), Drupal의 "FilmForge"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혹시 서버와 대역폭을 지원해 줄 분 있으면 이런걸 설치해서 비디오 아카이브 사이트를 만들어보고 싶다.

4. 방송 소프트웨어
 역시 아프리카가 훌륭하게 이런 걸 제공하긴 하는데, 현재 ActiveX를 꼭 깔아야하는데다가, 역시 이런것도 자유소프트웨어가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아프리카 스튜디오에 필적할 만한 자유소프트웨어가 한국에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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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책적으로는, 인터넷 자유를 확대할 수 있게끔, 최근 특히 악화된 제도를 원래대로 돌리자.

- 이명박을 대통령이 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는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를 비롯 일정 규모 이상의 사이트는 실명 확인을 거치게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악 등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여러 제도를 폐지시켜야 한다.

-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 내역을 마음껏 조회하고 감시/감청할 수 있게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악도 바로잡자. 이번에 시민들이 보여준 힘때문에 앞으로는 국정원과 경찰이 이런걸 감시/통제하기 위해 열을 올릴지 모른다. 이명박을 몰아내고, 통신비밀을 보호합시다.

-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고, 민간 중심의 개인정보보호기구를 설립하자. 주민등록번호, 지문날인 등 반인권적인 제도도 타파해서 국가가 개인을 쥐고 맘껏 뒤흔들 수 있는 바탕도 무너뜨립시다. (사실 저도 며칠전 지문 찍었다는 -_-)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이런 시도들을 무력화하지 않고서는, 이번에는 이명박이 굴복하더라도 이후에 다시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물론 이번에 보여 준 것처럼 사람들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잘 극복해낼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나빠진 후에 원래대로 돌리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받는 고통은 모두 당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마침 진보넷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정리한 글을 올렸다.
http://blog.jinbo.net/jinbonet/?pid=23 "이명박 정부는 일체의 인터넷 통제 시도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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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인터넷 생중계에 직접 참여할 생각인데, 전에 했던 경험을 살려 다원 생중계로 가볼까 한다. 지금은 캠코더-노트북 세트가 따로 따로 채널을 열어 방송하는데, 여러 카메라팀이 협력/분담해서 촬영하고 그걸 모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것을 시도해 볼 생각. 관심 있는 분은 언제든지 같이 해 봅시다. 곧 계획을 잡아 제안하겠습니다.

덧붙여, 지금 인터넷 생중계를 볼 수 있는 곳들입니다.

1. 진보신당 칼라TV
 - 홈페이지 http://newjinbo.org 오른쪽의 배너 클릭. 노동넷 미디어서버를 이용하다가 아프리카로 옮기곤 합니다. 서버와 대역폭 지원이 절실함. 진중권, 정태인씨가 진행.

2. 참세상
 - http://www.newscham.net/live/ 여기는 인력 지원이 필요할 듯. 자기 캠코더는 없지만 생중계에 참여하고픈 분이 있으면 자활로 참여하시면 좋겠군요.

3.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nws_web/flash/live/live0.htm

4. 아프리카
 - http://www.afreeca.com/web_search.htm?szSearchType=broad&szSearchValue=촛불
 "촛불"로 검색한 페이지. ActiveX설치하고 아프리카 전용 플레이어 설치하면 방송 볼 수 있다.

 촛불 집회를 생중계하는 채널이 여럿 있는데 예를 들면,
   * http://afreeca.com/rkparadigm R.K PARADIGM - 베스트BJ 라쿤의 방송
   * 라이[촛불문화제]중계방(생방)
   * (촛불뒷이야기)★박한별 프리스타일
   * [류신쇼] 촛불문화제 [특방1]
   * 그 외 다수...

5. 민중의소리
 - http://www.vop.co.kr/

6. 진보미디어 청춘
 - http://www.chungchun.net/live/view.php 액티브X설치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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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18:10 2008/06/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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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08/06/08 04:22 | DEL
지각생님의 [촛불 봉기와 IT] 에 관련된 글. 촛불집회 생중계 - 비디오 스트리밍의 시청 규모도 엄청난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시청하는지, 주로 어떤 생중계 서비스를 보는지에 대한 분석도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집회 시위와 문화 난장은 - 직접 가서 보고 참여할 수 없다면 - 밤잠을 설치게 하는 볼거리일텐데요, 생중계를 하는 곳들의 행복한 고민의 하나는 이 수많은 접속자들을 서버가 감당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
처절한기타맨 2008/06/05 04:16 URL EDIT REPLY
오옷 칼라티브이에 퍼다 나를게용~ ^^*
지각생 2008/06/08 23:02 URL EDIT REPLY
기타맨// ㅋ 퍼나를만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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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사고의 배후

IT / FOSS / 웹

요즘 "배후"가 화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믿고 맡길 데가 없게 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촛불집회와 직접행동. 이것에 대해 조중동과 정부경찰들이 "배후가 뭐냐" "빨갱이 좌파냐" 이런식으로 왜곡하고 몰아세우려 했는데, 결국 따지고 보면 "배후는 2MB 정부"가 아닌가. 이렇게 되받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후련 섭섭하다. 섭섭하다는 건 "진즉 FTA 막자고 할때 같이 했으면 좋았잖아" 하는 아쉬움이다.

정부가 배후인 사건이 근데 사실 한두가지가 아니다. 너무 많아 꼽기도 어려운데 요근래 한국을 벌컥 뒤집어 놓은 "옥션 개인정보 유출"사고 또한 실은 정부가 배후라는 거. 물론 이건 2MB 정부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때부터, 더 거슬러 위대한 박통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노무현씨가 요즘에 개인적으로는 국제적으로 귀여움을 받으며 인기를 되찾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2MB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선거시기 제한적 실명제"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옭죄기 조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해서 사람들의 눈과 귀, 입을 틀어막은 공이 크다고 말하면 지나친 걸까? 이곳 저곳에서 다 실명 확인한답시고 주민번호 입력받는 걸 말려도 시원찮은데 그걸 이법 저제도로 강제한 게 바로 그때나 저때나 지금이나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다.


옥션 사건, 이러면 왠지 옥션만 잘못한 거 같은데,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온라인이던 오프라인이던 "완전한 보안"은 불가능하다. 아주 철통같이 몇겹으로 틀어막아도 아주 사소한 혹은 엉뚱한 것으로 인해 쉽게 무너지는 것은 역사상 어느곳에서나 계속 반복되어 온 일이다. 완전한 보안은 불가능하지만 상당히 향상시키는 것은 가능할 텐데, 위험한 걸 아예 두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둬야 한다면 최대한 분산시켜 사고 발생시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무한정 돈을 처바르고 에너지를 퍼부을 수 있는 1%는 계속 그러면서 전전긍긍하고 살면 될 것이다. 인터넷이 어떻게 시작됐는가? 미국 국방성에서 "안전한 통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안한 것이 아닌가? 중앙 집중이 아니라 분산시킴으로써 한 곳이 타격을 입어도 다른 것들끼리는 계속 연결을 유지하며 전체 기능을 다 마비되지 않게끔 설계한 것이다. 근데 뜻밖에도 인터넷이 보편화된지 한참 지난 한국에서는 그 인터넷으로 "중앙 집중"화를 이루고 있다.

개인정보도 마찬가지다. 개인정보를 보호한답시고 물론 애쓰기야 할 것이지만, 역시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모아두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 가는 방법은, 하나로 모으지 말고 적당히 분산시켜 한 곳이 털려도 다른 것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누누히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얘기해 왔다. 주민등록번호 같은 거 꼭 필요한 경우(사실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아니면 모으지 말아라. 꼭 그런게 필요하다면 주민등록번호 대신 목적별로 별도의 신분등록제도를 만들어라. 의료보장번호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그러면 그게 털린다고 해도 그 사람의 모든게 다 털리는 건 아니니까. 이건 누가봐도 합당한 말이다.

근데 정부는 도저히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그럴린 없고 다른 흉측한 의도에 의해 주민등록번호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그래서 "참 나쁜 정부(들)"이다. 무슨 말이냐면 한번 자기들에게 아주 편리하게 정해진 제도를 그냥 계속 갖고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사람들을 계속 "위험"속에 방치, 아니 사실은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때 모든 사람을 자기 똘마니로 보고 "군번"을 부여한게 주민등록번호인데, 이게 있으니 아주 편리하거던, 여럿 필요 없이 이거 하나로 모든 국민을 한 손가락으로 "지정"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사람들이 그것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생각도 못하는 바보들이거나 의도적으로 모른척하는 악랄한 조직이 바로 대부분 국가, 정부들의 실체다.


물론 정부만 못된 게 아니다. 이번에 하나로텔레콤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업체들은 개인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악착같이 모을 생각뿐이다. 개인정보를 갖고 그 사람에게서 좀 더 완전히 뜯어먹을 방법을 궁리하거나, 그걸 지들끼리 주고받고 팔아먹을 생각이다. 웹2.0의 "개인화"의 어두운 면이 바로 이것이고, 영리 기업들이 웹2.0에 그렇게 관심을 보인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을 위해서다. 이런 걸 규제하고 개인(정보)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법으로 주민등록번호등 민감한 정보를 필수적으로 수집하게끔 강제하고 있다. 즉 지금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엮고 있는 촘촘한 2중의 거미줄 속에 있는 것인데, 하나는 "정부의 통제"고 또 하나는 "자본의 갈취"라는 이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거미줄을 끊어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유감이지만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옥션, 다음을 비난하고, 구글도 별수없구나, 홈페이지가 해킹당한 백신 회사를 비웃고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늘상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번에 드러났듯이 기업은 자기 이미지를 위해 사실을 숨기고, 경찰은 수사상 필요하다며 그런 사실을 덮어준다. (지디넷 기사 : "옥션피해자, 경찰청 정보공개 거부에 분통" http://www.zdnet.co.kr/news/internet/hack/0,39031287,39167336,00.htm) 그나마 이번엔 1081만명이라는,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기에, 그리고 피해보상 소송한다는 말에 사람들 관심이 혹하고 쏠린 까닭에 그나마 이슈화가 됐다. 어찌보면 이때가 기회다 싶다. 지금의 신분등록제 자체를 뜯어고치고, 인터넷을 다시금 "안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기회.

정부에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조치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거 ==> 보도자료: "행안부, 백화점ㆍ할인점ㆍ여행사 등에 대한 개인정보보호 적극 나선다"  http://www.newswire.co.kr/read_sub.php?id=334383&no=0 ) 보면 역시 1. 업체를 단속하고, 2. 사람들 스스로 잘 보호하게 하며, 3. 추가적인 그럴듯한 보안장치등을 만다는 것이 개요다. 지금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나, 정말 사람(국민)들을 위한 마인드가 있다고 봐줄 수가 없다. 물론 이런것들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I-PIN 같은 걸 통해 주민등록번호의 "불변성"으로 인한 영구적인 피해를 살짝 우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역시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런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가 없다.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게 만드는 제도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너희 안전은 너희 스스로 책임져(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 라고 말하는,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부권력이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위험 속으로 몰아가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국가의 통치 시스템에 스스로를 계속 옭아매주고 있어야 할까? 주민등록번호제도 하나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국회에서 계류되다 폐기처분 될 위기에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고, 독립적인 민간 개인정보보호기구의 설립을 촉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의 근본적인 마인드 변화 이런 것들이 이뤄지도록 모두가 나서야 할 것이다.

참고 : 관련기사 / 블로그
[News Blog] 안전한 사이트는 어디에도 없다 , 지디넷 http://www.zdnet.co.kr/news/network/security/0,39031117,39167188,00.htm
* KAIST 문송천 교수, "주민번호는 '군번'…무조건 없애야", 아이뉴스24 http://it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020300&g_serial=325885
* 이름없는 마법사의 귀환 , 인권오름 http://hr-oreum.net/article.php?id=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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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어디다 써주기로 한 글이 도저히 안써져서 결국 진보불로그 쓰기 모드의 힘을 빌기로 합니다. :) 역시 글쓰기 제일 좋은 곳은 내 블로그로구나.. 일단 저장하고 또 고쳐야지. 쓰다보니 열받아서 원래 생각한것과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은데, 뭐 한두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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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6 00:04 2008/05/1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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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08/05/20 22:02 | DEL
[나쁜기업]6년전 탈퇴회원 개인정보 이용해 돈벌이 나선 '행복클럽' 한경리치웨이클럽(현 행복클럽) TM에 속지마세요!! 일정액의 가입비를 내고 가입만 하면 각종 할인 혜택이 제공하는 멤버쉽 카드가 유행하던 2001, 2002년. 전국에 30여개 멤버쉽 카드 업체가 난립하고 있을 때, 한국경제신문의 자회사인 (주)한경닷컴이 발행하는 한경리치웨이클럽(현 행복클럽 http://www.happy365.co.kr/, 회원제 서비스 업체)도 등장한다. 한경리치..
지각생 2008/05/16 02:01 URL EDIT REPLY
자추자코는 역시 불로거의 미덕인듯 :)
나루 2008/05/16 02:26 URL EDIT REPLY
우오오오....심오한 긴 포스팅에다가 스스로 덧글을 다는 센스?
빈집에 언제 가면 좋은가요? 가서 배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흠흠
지각생 2008/05/16 11:21 URL EDIT REPLY
빈집이야 언제든 오면 되지요~ 금요일엔 술빚기 워크샵이 있으니 그날 오면 조금 더 재밌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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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잡기장
밴드 "다락" 연습이 끝났다.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지각생은 혼자 남아 절절한 노래를 부른다.

욕심만 앞세워 무리하다 자신의 성취도, 다른 이의 기대도 이뤄주지 못하고
내 부족함을 감추려다가 다른 이를 힘들게 하곤
애꿎은 감정만 토로하고는
혼자 남은 새벽 다시 스스로 쓸쓸해한다.

자전거 여행을 가고 싶다.
...
점점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너무 열심히 달리지 않고 살고 싶다.
나른 변화시키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착취하지 않고
딱 지금 이순간에만 충실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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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저넌에게 꽃을"을 읽고, 가장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부분은
찰리가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고 넌 할 수 없어 하는 친구들,
다들 왜 이리 서두르는 걸까,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나도 할 수 있는데. 라고 되뇌는 찰리.

잘하지 않아도 좋다. 천천히 살 수 있으면 좋겠어. 내 별명처럼.

오늘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날. 잠들고, 깨면 들뜨고 설렌 마음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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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04:12 2008/05/1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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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지선 2008/05/18 16:38 URL EDIT REPLY
동감. 어쨌든 비슷한 이유로들 노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함. 왜 노래를 하면 쓸쓸해지지? 쓸쓸해서 노래를 했나? 어쨌든 말보다는 나으니까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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