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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할배의 강연

 

Edward W. Said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The 1993 Reith Lectures ] Vintage 1994

 

 

이 책 사실, 몇 년 전에 번역서로 읽다가 황당하고 난해한 번역에 식겁해서 집어던진 기억이 있다.

알라딘 리뷰로 찾아보니 비슷한 불만들이 속출하고 있는 걸로 보아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훌륭하신 리뷰어들이 원래 사이드의 글 자체는 난해하지 않다고 (그래서 번역서보다 이해하기 훨씬 쉽다) 평한 것과 달리, 사이드의 글 자체도 쉽지는 않다. 문장이 길기도 하고, 추상적 단어들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한 사례들 자체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꼭 다시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들고 다니던 책을 고르던 중 적절한 두께로 인해 손에 걸려들었다 ㅎㅎ

 

1.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Benda의 초(!) 엘리트주의 혹은 선지자적 관점의 지식인론 (소위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과 Gramsci 의 유기적 지식인론을 비교하며  지식인의 '소명 (vocation) 강조!!!

"지식인"이니, '소명'이니 하는 용어들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지만, '말할 기회'를 가진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그런 말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여전하다는 지적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There is no such things as a private intellectual, since the moments you set down words and then publish them you have entered the public world... My argument is that intellectuals are individuals with a vocation for the art of representing...."   

 

"This is till true, I believe, despite the often repeated charge that 'grand narratives of emancipation and enlightment' as the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er Lyotards calls such heroic ambitions associated with the previous 'modern' age, are pronounced as no longer having any currency in the era of postmodernism....... For in fact (!!!) governments still manifestly oppress people, grave miscarriages of justice still occur, the co-optation and inclusion of intellectuals by power can still effectively quieten their voices, and the deviation of intellectuals from their vocation is still very often the case...."

 

"Knowing how to use language well and knowing when to intervene in language are two essential features of intellectual activity"

 

"Yet it's not that simple a role, and therefore cannot be easily dismissed as just so much romantic idealism. At bottom, the intellectual, in my sense of the word, is neither a pacifier nor a consensus builder, but someone whose whole being is staked on a critical sense, a sense of being unwilling to accept easy formulas or ready-made cliches, or the smooth, ever-so-accomodating confirmation of what the powerful or conventional have to say, and what they do....This is not always a matter of being a critic of government policy, but rather of thinking of the intellectual vocation as maintaining a state of constant alertness, of a perpetual willingness not to let half-truths or recieved ideas steer one along...."  

 

 

2. Holding Nationa and Traditions at bay

 

디아스포라 지식인이라고 해서 모두 이런 류의 성찰적 자의식을 갖는 건 아니다. 내가 뭐 누구를 품평할만한 내공을 쌓은 것도 아니고, 더구나 사이드 할배한테 이런말할 처지는 더욱더 아니지만.. ㅎㅎ

어쨌든, 한국 상황에 대해 해외에 직접 글을 쓰거나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실은 '일반화', '경험의 공유'를 강조한 사이드 할배나 레빈스 할배들의 영향 덕이라 할 수 있다.  

 

"To this terribly important task of representing the collective suffering of your own people, testifying to its travails, reasserting its enduring presence, reinforcing its memory, there must be added something else, which only an intellectual, I believe, has the obligation to fulfull..... For the intellectual the task, i believe, is explicitly to universalize the crisis, to give greater human scope to what a particular race or nation suffered, to associate that experience with the suffering of others."

 

 

3. Intellectual Exile; Expatriates and Marginals

 

할배도 지적했다시피 국외자, 추방자, 혹은 디아스포라 지식인이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성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단순히 가방끈 긴 자가 아니라, 성찰 가능한 자를 우리는 지식인으로 재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음.. 사실 intellectual 을 지식인으로 번역하는게 맞나 모르겠네? 지성인?

 

"Because the exile sees things both interms of what has been left behind and what is actual here and now, there is a double perspective that never sees things in isolate....

A second advantage to what in efect is the exile standpoint for an intellectual is that you tend to see things not simply as they are, but as they have come to e that way. Look at situation as contingent, nor as inevitable, look at them as the result of a series of historical choices made by men and women, as facts of society made by human beings and not as natural or god-given, therefore unchangeable, permanent, irreversible."

 

"The exilic intellectual does not respond to the logic of the conventional but to the audacity of daring, and to representing change, to moving on, not standing still."

 

 

4. Professionals and Amateurs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장이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도 많이 나고...

정치적 억압이나 물리적 폭력만이 지식인을 순치시키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 사회 소위 '전문주의(professionalism)'의 압력... 첫째, 전문화 (막스 베버가 그리도 강조하던!!!), 둘째, 전문성과 인증된 자격에 대한 숭배 (촘스키 같은 분은 역사학 학위가 없어서 주류 학계에서 비난당한다!), 셋째, 권력 혹은 직접 고용한 이를 향한 불가피한 편향...

이 부분은 절대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곤혹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이러한 상황에서 할배는 지식인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아마추어리즘'을 이야기한다.

 

"These I shall collect under the name of amateurism, literally, an activity that is fueled by care and affection rather than by profit and selfish, narrow specialization"

 

"Every intellect5ual has an audience and a constituency. The issue is whether that audience is there to be satisfied, and hence a client to be kept happy, or whether it is there to be challenged, and hence stirred into outright opposition or mobilized into greater democratic participation in the society..."

 

 

5. Speaking Truth to Power

 

아마추어리즘을 선택한다는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불확실한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One of the shabbiest of all intellectual gambits is to pontificate about abuses in someone else's society and to excuse exactly the same practicies in one own."

 

"What we must be able to say instead is that intellectuals are not professionals denatured by their fawning service to an extremely flawed power, but - to repeat - are intellectuals with an alternative and more principled stand that enables them in effect to speak the truth to power."

 

"Nothing in my view is more reprehensible than those habits of mind in the intellectual that induce avoidance, that characteristic turning awya from a difficult and principled position which you know to be the right one, but which you decide not to take. You do not want to appear too political; you are afraid of seeming controversial; you need the approval of a boss or an authority figure; you want to keep a reputation for being balanced, objective, moderate..."

 

"Yes, the intellectual's voice is lonely, but it has resonance only because it associates itself freely with the reality of a movement, the aspiration of a people, the common pursuit of a shared ideal."

 

 

6. Gods That Always Fail

 

변절(?)한 지식인들을 다룬 동명의 책을 비판하며 소위 지식인의 전향과 변절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정황에 따라 사상적 널뛰기를 한 아랍 출신 지식인 친구(?) 사례를 이야기하며, 하지만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이 없었노라는 술회는 참 슬프다. 전향하고 변절하는 이들도 매 순간 진심일 것이었을 거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사이드 할배가, 스스로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지식인이 어떠한 정치적 절대명제 (그는 political god이라고 표현) 편에도 속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한 부분은 고심해볼 만하다. 물론, 이것이 더러운 현실에 발을 담그지 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신앙과 종교나 다름없는) 도그마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싶다.. 도그마에 빠지는 순간, 또다른 도그마로 빠지고, 이전의 도그마를 누구보다 격렬하게 비난하고 배척하는 현상은 낯익지 않은가....

 

"The morality an principles of an intellectual should not constitute a sort of sealed gearbox that drives thought and action in one direction and is powered by an engine with only one fuel source. The intellectual has to walk around, has to have the space in which to stand and talk back authority, since unquestioning subservience to authority in today's world is one of the greatest threats to an active, and moral, intellectual life."

 

"The hardest aspect of being an intellectual is to represent what you profess through your work and interventions, without hardening into an institution or a kind of automaton acting at the behest of a system or method.... But the only way of ever achieving it is to keep reminding yourself that as an intellectual you are the one who can choose between actively representing the truth to the best of your ability and passively allowing a patron or an authority to direct you. For the secular intellectual, those gods always fail."

 

* 강연을 직접 들었으면 무척 재미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ㅎㅎ

그리고, 여전히.... 연로하신 나이에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초소를 향해 직접 짱돌을 던졌을 그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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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진실 [노동의 종말]

 

#.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노동의 종말] 민음사 2005년 (개정판)

 

 

아마도 이 책이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리프킨의 책은 원제와 무관하게 각종 종말 ("육식의 종말" - beyond beef, "소유의 종말" - the age of access)을 이름표로 달게 된 것 같다. 이건 홉스봄의 제국/혁명/극단의 시대 3부작이 인기를 끌며 자서전격인 'interesting times'마저 [미완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것과 마찬가지 현상일게다. 전작의 명성에 묻어가는 출판계 관행..... ㅡ.ㅡ

 

눈부신 생산력의 향상 속에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의 양이 줄어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앙드레 고르 보다는 훨씬 비관적인 진단을 하고 있다. 앙드레 고르가 지긋지긋한 노동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강조했다면, 리프킨은 그 높아진 생산력을 감당할 수 있는 구매력의 쇠퇴로부터 비롯되는 딜레마와 잉여노동 (아니, 잉여인간)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예상보다 책이 두꺼워서 깜딱 놀랐다.  생산, 노동의 문제만 다룬 줄 알았는데, 문화적/사회적 함의와 역사적 고찰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망라'하고 있었다. 논문이 아닌 책의 장점이다.

 

초판이 처음 출판된 것이 1996년이라니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다.  아마 97년쯤, 포레스테의 [경제적 공포]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처음 접했고, 당시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오랜동안 나몰라라 하다가 최근 노동/고용과 관련된 건강문제를 고민하며 다시 관심을....

 

책은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신기한 내용들도 무진장 많다 (특히 농업 부문의 자동화, 기계화!) 

그런데 전체 본문을 다 읽고 나면, '도대체 우짜면 좋다는 말인가' 절로 탄식이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지난 10년간 고민을 발전시켜, 40여쪽에 이르는 개정판 서문을 추가했다.

더더욱 암울해진 현실과 (미국의 경기하락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기술하고 있다.

- 수소 시대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소위 녹색 에너지, 환경 관련 일자리)

- 노동 시간의 단축과 일자리 공유

- 제 3섹터에서의 일자리, 사회적 자산의 창출

- 유사 통화 (이를테면 대안화폐)의 활용

이는 본문 제 5부에서 제시했던 소위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계약과 사회적 경제 논의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논거도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만한데...

이러한 변화를 추동할 '주체'와 '정치성'의 문제가 분명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단적으로 이런 거다.

마지막 단락.....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안전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또는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의 여부는 문명화가 제 3차 산업혁명의 바퀴를 따라갈 후기 시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도대체 "우리"란 누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이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해관계??? 

 

대안들이 대단히 기술적(!)이고, 건조하게 나열되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미국적!!!),

노동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슬프지만 진실'을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성장이데올로기, 생산력 중심주의의 환상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온 용어 이야기 중 기록해두려다 까먹었던 것!

 

consume - 최초의 소비라는 단어는 소모하다, 박탈하다는 뜻을 의미했다... 그래서 결핵 같은 '소모성 질환'을 cunsumption disorder 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옛날 결핵 문헌에서 이런 표현을 발견하고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ㅜ.ㅜ) 하지만 이러한 소비가 20세기를 지나며 어느 덧 악덕에서 미덕으로 전환되었다는 아이러니.... .

 

worn-out, break-down, overload, burn-out, shut-down 같은 표현들이 사실을 기계들한테나 쓰던 용어들이었는데, 노동자 스스로의 피로나 지침, 과부하 등을 나타내고자 할 때도 쓰게 되었다는 사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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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최초의 경전 - [숫타니파타]

 

법정 옮김, 이레 출판사 1999

 

 

수많은 불교 경전 중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라고 한다.

글이 없던 시절, 부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이 함께 암송하여 전승하였고, 따라서 외기 쉽도록 운문 형태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후렴'도 있다...

 

불경을 읽으면서, 이제 'so cool' 을 지나 'too cool'로 가고 있다고 친구들이 비난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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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1.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73.

야차여, 듣거라.

번뇌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번뇌를 버릴 수 있다.

그들은 건너기 어렵고, 아직 아무도 건넌 사람이 없는 이 거센 흐름을 건너서 다시는 사람의 몸을 받는 일이 없다.

 

462.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시오.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믿음이 깊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오.

 

630.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하며,

집착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704.

모든 육체적 즐거움을 버리라. 모든 욕망을 버리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모든 생명있는 것을 미워하지 말고 좋아하지도 말라.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찬 연못과 같다.

 

83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지식이나 계율 또는 도덕에 의해서 깨끗해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 없이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덧없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851. (죽음이 오기 전에)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감각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어떤 견해에도 이끌리는 일이 없다.

 

944.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라.

새로운 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

사라져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잡아끄는 것에 붙잡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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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작품 두 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로 둘리세대를 경악과 슬픔의 늪에 빠뜨렸던 그 작가...

 

#1. 최규석 [100도씨 -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창비 2009

 

 

강풀의 [26년]이 그러했듯, 한국 현대사의 잊지 못할 한 장을 기록한 만화....

중고등학생 역사 시간의 부교재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이후 '촛불' 상황을 보완해서 대중서로 다시 낸 것이란다.

 

장기수 한 분이,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티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 두면 너무 아깝잖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심정으로 이입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재능과 진정성 덕택이다.

 

 

#2. 최규석 [대한민국 원주민] 창비 2008

 

 

책머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일제 강점기에 씌어진 소설에서 성탄절에 유치원생들이 연극을 하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나조차 텔레비전에서나 친구들의 이야기로만 듣고 보았던 어색한 풍습이 그 까마득한 시절에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내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도시에서 자란 그 또래의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어째서, 농활을 가고 노동현장에 투신할 만큼 그러한 이웃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세대들이 어째서 내 누이들을 신기해하는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들이 본 것은 농민이고 노동자일 뿐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누이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의 외로움이고 모든 '원주민'들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들이 제 이야기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충격받을 일 중 하나가, 내 또래, 심지어 지방 출신의 윗학번 선배들 중에서도 '유치원'을 나온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전까지 내 주변에 '유치원 출신'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지만 말이다....

농활 때문에 과외를 당겨서 하느라 준비 모임에 제대로 참가를 못한 나에게 (방학 때는 과외를 세 탕씩 뛰었다!), '너네 집이 그렇게 가난하냐? 과외를 꼭 그렇게 해야 하냐?"던 한 선배의 짜증은 아직도 인생의 트라우마.... ㅡ.ㅡ

 

원... 주... 민.... 현존하지만 회고되는 존재...

그림은 아름답고 진정성과 재치는 넘쳐났다.

나이가 경험의 깊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젊은 이 작가의 '나이답지 않은' 사려깊은 시선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내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들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로 놀림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은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것을 나는 인간의 '염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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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 서경식...

요사이 전공책이나 논문들은 통 읽을 시간이 없는데 틈틈이 읽는 다른 분야 책들이 훨씬 압도적인듯하다. 책상에 정좌하고 읽는 것보다 오가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게 더 효율적이란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공부도 길바닥을 오가면서? ㅡ.ㅡ

 

#1.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정혜용 옮김 [에콜로지카] 생각의 나무 2008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생각의나무, 2008

 

데이비드 하비의 책을 읽는 동안 해미가 적극 추천했던 책이다.

 

*

머릿말처럼 쓰여진 인터뷰글에서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 결국 고르의 핵심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노동의 재구성, 성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즉, "탈성장은 살아남으려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탈성장에는 다른 경제, 다른 생활 방식,다른 문명, 다른 사회적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생산만이 부가 되고 (자발적인 물물교환이나 생태적 노력들은 국민총생산에 포함되지 못함)과 파괴가 부의 원천으로 나타나는 현실이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지적에는 백퍼센트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에콜로지카'를 상상하지 않고는 이 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

 

*

고르의 '생계수당' 요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것이다. 즉, '인간의 활동을 고용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이고, 이러한 무조건적 사회수당은 오늘날 한국 사회 '기본소득' 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생계수당을 재분배 논리안에 위치시켜서는 안 되고, 자본과 노동에 바탕을 부를 급진적으로 넘어셔야 한다는 지적에 매우 공감... 하지만, (내가 현재 '기본소득' 의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사회의 기본소득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다. 그 논의의 적절성을 떠나, 일단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게 어떤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질지 백만볼트의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나 '근로윤리'에 깊이 천착해서일 수도 있다. 일이라는게 과연 생계만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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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노동과 성장 담론을 '어떻게' 재구성 하느냐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자본주의가 가속화될수록 그리고 기술진보와 지식정보 사회의 도래에 따라 노동의 필요는 점차 줄어들고,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최소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유의지에 따라 우아하게 보낼 수 있는 물질적 토대로 작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적대적 공존의 토대 - 노동자는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필요로 하고,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 에서 노동의 힘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자리가 이제 사라져가는 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인간해방과 새로운 노동 구성의 토대임이 분명하지만 (노역으로부터의 해방...), 분명 현실의 전선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힘의 약화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책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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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생산의 주요한 힘과 지대에서 취하는 이익의 주요한 힘이 차츰 공공영역으로 떨어지고 무상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생산수단의 사유화, 공급의 독점이 차츰 불가능해진다는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본주의의 퇴장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바는, 자본이 소비에 대해 행사하는 장악력으로부터, 또 생산수단의 독점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된다' 는 지적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해석이다. 일부 해커들의 활동이 나, 소규모 자치생산의 경험들이 너무 과도하게 해석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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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를 반박한다는 것이 가구단위나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 경제로의 회귀도,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통합적이며 계획적인 사회화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삶에 있어서 그 일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해야만 하는 것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의 영역을,그러니까 집단의 활동이든 개인의 활동이든 간에 그 자체로 목적인 독자적 활동들의 영역을 '최대로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의 영역만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아... 근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통찰력으로 가득 찼던 Le Guin 의 'Dispossessed'에 보면 이상으로 건설했던 계획경제 사회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생산력의 발전수준으로 볼 때,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Anarres의 그 척박함과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수요와 필요'를 조정하고 충당하기 위한 중앙기구의 설립이 그닥 효율적이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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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과 고민거리를 잔뜩 던져준 채, 뭔가 분명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다른 책을 읽어볼까했더니 국내에 번역된 다른 글이 아직 없다 (D에게 보낸 편지 말고). 어쨌든 이 글들이 쓰여진 것은 1970년대부터였으니, 하여간 할배의 통찰력은 대단한 것 같다. 어여 다른 책들도 나왔으면 좋겠네.. 답을 주셔야죠!!!



#2. 서경식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철수와 영희 2009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서경식
철수와영희, 2009

 

 

가끔씩 언론에 실린 짧은 글만 읽다가 처음으로 그의 '책'을 읽어보았다.

 

* 이 분 까칠하시다... 그리고 내공이... 이건, 삶의 신산함과 뿌리뽑힘을 당해본 사람만이, 그리고 그로부터 분노와 원한만이 아닌 통찰력을 얻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내공이 아닌가 싶다.

 

* 민족과 국가, 그리고 소수자,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예리하고도 냉정하며, '민감'하다. 국가의 국민이 '스스로 원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여러가지 권리만 누리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행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지적에 많이 공감한다. 물론 그것이 책임있는 분명한 행위자에 대한 면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누구인가?" 그렇다. 나도 항상 궁금했던 것... 논문이고 신문기사고, 칼럼이고, '우리'라고 표현된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었다. ㅎㅎ

 

* '생명이 선이고 죽음이 악이다'라는 장은 특히 많이 공감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살한다. 이를테면 프리모 레비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이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 자신이 부조리하게 얻게 된 생명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관찰되는 자살의 사회적 불평등을 '용인'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 또, 루쉰을 이야기하며 무조건적인 '희망' 고문보다는 차라리 현실을 대면하는 비관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지적이 참 인상적이었다. 루쉰의 이야기 "그렇다. 나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도 희망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희망은 앞날에 속하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는 내 증명으로 희망이 있다는 그를 설복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저자는 마지막 인터뷰 글에서 한국판 '시라케'를 무척이나 걱정하며 비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진정성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소위 진보주의자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적극적 반동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시라케... 저자가 걱정하는 방향으로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 것같다. 워낙 다이나믹 코리아니까 사실,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만, 그렇다고 대책없는 낙관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솔직한 비관주의자'가 되어 고통과 기억에 기반한 연대를 구축해나가는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3.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청춘의 사신] 창작과 비평사 2002

 

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창비(창작과비평사), 2002

 

저자의 두번째 서양 미술 기행이다. 아마도 신문에 연재했던 것이라 그렇겠지만, 각 편마다 분량이 지나치게 짧아 많이 아쉽다. 더구나 소개된 그림에 대한 도판이 모두 실린게 아니라, 충분히 저자와 '공감'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라는 특정 시점에서 시대와 혹은 자아와 온몸으로 싸웠던 미술가들의 이야기는 일부 새롭기도 하고, 혹은 알고있었지만 여전히 숙연해지기도 하고... 오래된 책이지만 윤범모의 [미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를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고민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듯... (물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노버트 린튼의 [20세기의 미술]도 매우 훌륭했지만, 감흥의 영역은 약간 다른 듯...)

이 책에서 표지그림이자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에곤 쉴레의 [소녀와 죽음]은 나도 액자로 가지고 있는 애장품이다. 악착같이 죽음을 붙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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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몇 구절

잊을만하면 한번씩 돌아오는 근원미상 번뇌의 시즌이 길어지고 있다.

설명하려 들면야, 몇 가지 이런저런 이유들을 댈 수 있겠지만, 글쎄다...

그토록 열망하던 부동의 평정심과 통찰력이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말로 '열반'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무릎도 팍 꺾이고... 내가 감히 이룰 수 없는 열망이로구나...

어느 구절 하나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몇 구절들을 남겨둔다. 그리고 책을 선물해준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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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르바나 (Nirvana, 열반) - 깨달은 상태, 혹은 번뇌의 불길이 꺼진 상태

43.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고 연인과 친구들의 사랑이, 제 아무리 깊고 넓다 하더라도 올바른 내 마음이 내게 주는 사랑은 이보다 더 깊고 큰 것이 없나니...

179. 깨달은 이는 모든걸 정복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완벽한 승리는 얻지 못했나니 그는 드디어 무한을 정복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를 아, 아, 무엇으로 유혹할 수 있겠는가.

210.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라. 미움으로부터도 벗어나라. 사랑의 끝은 고통이요. 미움의 끝 또한 고통인 것을...

235. 그대 삶의 나무에서 낙엽은 지고 있다. 죽음의 사자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는 이제 머나먼 길을 가야 하나니 그러나 아직 길 떠날 준비도 되지 않았구나.

251. 욕망보다 더 뜨거운 불길은 없고 증오보다 더 질긴 밧줄은 없다. 어리석음보다 더 단단한 그물은 없고 탐욕보다 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은 없다.

285. 가을 연못에 들어가 시든 연꽃을 꺾듯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꺾어버려라. 그리고는 저 니르바나의 길을 향해서 오직 한마음으로 걸어가거라.

305. 홀로 명상을 하며 홀로 누워라 오직 홀로 걸으며 열심히 수행하라. 그대 스스로 그대 자신을 다스리며 이 모든 집착에서 멀리 벗어나 오직 혼자가 되어 살아 가거라.

380. 그대의 스승은 그대 자신이요. 그대 자신이 바로 그대 자신의 피난처이니 저 마부가 말을 길들이듯 그대는 그대 자신을 길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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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영화들...

괴롭다, 바쁘다 하면서도 그냥저냥 영화들은 봤던 5월... 물론, 놓친 영화들도 있고 여전히 봐야 할 목록에 올려놓은 것들도 있다... #1. J.J. 에이브람스 감독 [스타트렉 더 비기닝] 2009

오랜만에 본 SF 수작!!! 스토리도 참신 발랄에 말이 되고, 특수효과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SF 영화를 볼 때 가장 싫어하는, 특수효과가 줄거리를 말아먹는 경우, SF라는 이름을 팔아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끌고 가는 경우가 아니었음. 최근 각종 프리퀄들이 창궐(?)하고 있어, 나름 우려가 깊었는디, 아주 깔끔하게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는 생각.... 아우, 스팍 박사는 어쩜 그리 매력덩어리? ㅎㅎㅎ 그리고 연로하신 그 분은 TV 시리즈에 나왔던 오리지널 그 분... 어쩐지 포스가.... [블레이드 러너] 이후 좀 잘나간다 하는 SF들은 디스토피아를 담고 있는 거대서사물인 경우가 많았는디, 이 영화는 간만에 아주 훈훈... 무엇보다 기억나는 것은, 주먹도끼가 영화보면서 몰래 '벌칸'족의 손인사를 따라하던 장면.... 나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따라하는 손짓을 보아버렸네 ㅎㅎㅎ #2. 맥지 감독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2009

내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애틋한 그리움에 보아줬건만 정말.... 어이구..... 영화본 시간보다 길게 욕하느라 정신이 없었음... 불쌍한 크리스쳔 베일... 당신도 낚인겨!!! 그나마 3편이 하도 후져서, 그거보다는 나았다는 것을 위로로 삼아야 할 지경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마 이 영화보고 홧병 나서 몸져 누웠을 것으로 짐작됨... 카일 리스로 등장한 얀톤 옐친은, 스타트렉에서 러시아 사투리 쓰는 귀여운 러시아 출신 조종사로 분했던 인물... SF 계의 신성? #3. 도리스 되리 감독 [사랑한 우에 남겨진 것들] 2008

[파니핑크]의 감독이 만들었다는 소식에 선뜻 보게 된 영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사람과 사람이 맺는 진심어린 다양한 관계의 모습은 어디고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투적인 표현과 서구사회의 '신비로운' 동양 판타지 (특히 일본, 벚꽃으로 표상되는)가 눈에 다소 거슬리기는 했지만, 영화 전체의 미덕을 가릴만한 것은 아니었다. 관계맺기에 그토록 서툴렀던 '전형적인' 아자씨가, 사랑이 사라진 후에야 진실한 관계의 힘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그 관계가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다. 나를 돌아보고, 또 부모님을, 그 분들의 남은 생을 돌아본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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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책들 + 헤이 웨잇

읽고 아무렇게나 책상에 버려둔 책들 좀 치워볼 생각... #1.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함규진 옮김 [유동하는 공포] 웅진씽크빅 2009

전반적 인상은....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책이었음. 어찌나 "인용"이 많은지, 정작 바우만 본인이 한 말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 ㅜ.ㅜ 왜 이양반을 오늘날의 '현자'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음. 현자? 다른 책들을 더 읽어봐야 하나? 일단 박물학적 지식과 사례들을 쏟아놓는데 이것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책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또 글쓰기 스타일이 나랑 잘 안 맞아 또 읽게 될 것 같지 않음... ㅡ.ㅡ 그래도 몇 가지 정리해보자면.... * '공포'란 '불확실성'이며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이 진정한 공포. 그래서 압도되어 꼼짝 못하기 마련이라는 지적에 일단 동의. * 보편주의적 이성보다는, "근대적 이성은 독점을 형성하고 권리의 배타성을 확보하는 데 특히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유리한 특권이 있을 때 그 특권에 따라 움직이는 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작용했다"고 비판한 부분에서 고개 한번 끄덕! * 그리고 악의 평범성과 진부함에 대한 지적은 이미 여러 군데서 논의된 바 있어서 특별히 새로울 것 없었고, '악이 도처에 숨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는 극적인 표현이 그저 눈에 띔. * "공포의 사회적 배분", 인재와 자연재해의 구분 어려움, 관리불가능한 리스크 등에 대한 개념은 이미 울리히 벡이 주구장창 떠들었던 이야기라 역시 새로울 것 없음. * "자연적인 원천에서 분리된 잉여 실존적 공포를 밀어내기 위한 대체목표를 찾는다. 그리고 세세한 예방책을 내세우며 임시 표적을 상대한다. 가령 간접흡연, 식품에 포함된 지방...." 결국 다룰 수 있는 위험에만 집중하게 되고 본원적 공포의 근원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회피하게 된다는 지적에는 물론 동의... * 가장 공감했던 문장이라면 폴라토인비의 글을 인용한 부분 "진실은 빈곤과 탐욕이 정치적 선택의 결과지 경제적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WHO CSDH 보고서에서도 분명히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 "지식인들은 말이 육신이 되도록 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한번도 신뢰한 적이 없다. 그들은 다른 누군가를 부추겨 자신들의 구상을 실천에 옮기도록 했다. 행동할 수 있는 힘들 가진 누군가, 일단 시작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누군가를 대망했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딱... * 또다른 공감의 문장은, 역시 바우만 본인이 아닌 아도르노와 부르디외 할배의 것! "고통, 공포, 억압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사실은 실현할 수 없는 사상을 포기할 수 없게 한다." "사회적 세계를 연구하는데 인생을 바칠 기회를 얻은 사람은,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 * 그래도, 이 유동하는 공포에 맞서기 위한 바우만의 의견... "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잘라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 읽는 내내, 다른 이의 연구를 곱씹어 자신의 것으로 충분히 체화시키기 때문에 굳이 참고문헌 인용을 길게 안 한다는 리영희 교수의 글을 떠올랐다. 이건 뭥미...


#2.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 2005

하나의 완성된 책이라기보다, 주요 논문과 책의 챕터 모음. 역자의 소개에 의하면 방대한 폴라니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라고나 할까... 해미와 같이 읽고나서 했던 이야기는, '생각만큼 신선하지 않다' '사람들이 왜 폴라니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이 분, 이 얌전해보이는 외모에 평생 노동자 교육사업에 헌신하고 지지리 고생하며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출퇴근하고... 정말 놀랍다'... 우선 생각만큼 신선하지 않았다는 것이, 당대에 그의 사상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시절 그토록 독창적이었던 그의 문제의식이 이제는 사회저변에 널리 확대되어 우리같은 무지랭이도 충분히 가질 법한 것이 되었기에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좋게 해석하자면 문제의식의 발전이고, 운동의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특히 '자기 이익과 지도력'이라는 문제의식과, 마르크스 자신이 '유럽인'으로서 범했던 오류들에 대한 지적... 하지만, '노동, 토지, 화폐'의 상품화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견해는, 여전히 신선했다. 경제라는 요소가 인간을 움직이는 모든 동기는 아니라는, "인간을 움직이는 어떠한 동기도 그 자체로 경제적인 것은 없다'는 지적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창출하는 '근본적 토대'에 너무 집착하느라 노동도 하지만, 다른 한편 울고/웃고/즐기고/사랑하고/분노하고... 이런 복잡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놓쳐버렸던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경제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말이다... 기계적이고 환원론적인 '경제결정론'에 그동안 얼마나 경도되어 있었나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시장경제의 붕괴가 위태롭게 하는 두 가지의 자유.... "동료들을 착취할 자유, 공동체에 상응하는 봉사를 하지도 않은 채 턱없이 과다한 이익을 취할 자유, 기술 발명이 공공의 혜택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막을 자유,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은밀한 공작으로 공공에게 재난이 될 일을 일으키고 그 재난에서 이윤을 취할 자유는 자유시장과 함께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들이 판을 칠 수 있었던 시장경제는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자유를 창출하기도 했다.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단결의 자유, 직업을 선택할 자유 - 우리가 그 자체로 소중이 여기는 이류한 자유의 대부분은, 사악한 자유들을 만들어낸 책임이 있는 그 시장경제의 부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시간 되면, 다시 꼼꼼하게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 그렇다고 그 두꺼운 [거대한 변형]을 읽을 것 같지는 않음 ㅡ.ㅡ #3.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출판 2007

이 분... 역시 대가... 문장도 어찌 이리 감동적인감... 번역과 해설도 전작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처럼 매우매우 훌륭! 때가 때니만큼, 한국사회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없었음. 정치와 도덕 - "정치란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성직자와 달리 정치인들은 부패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하지만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 (폭력)'이라는 수단을 소유한 정치권력이 가져야 할 소명과 자질은 분명 성직자와는 달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 (나는 이보다 '통찰력'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한 것 같은디!!!)을 갖춘 자만이 진정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일백퍼센트 공감.... 그리고 이는 비단, 현재 물리적 폭력을 담지한 '집권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운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정치가의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설파한 부분에서는 우리 엠비님을 떠올렸다. 본인의 신념윤리가 절대 옳은데, 그걸 따라주지 않는 이 사탄같은 국민들은 원망하며 날을 지새우는 그 분.... ㅜ.ㅜ 하지만 무릇 정치가라면, 인간이 어리석고 비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의도와 신념이 얼마나 고결하고 올바른가가 아니라 '(예견 가능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은 월매나 적절한가! 물론, 이분은 신념윤리마저 아니올시다 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건 그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으로서의 운동은 문제제기와 신념윤리에 투철한 반면, '책임윤리'에는 소흘했던 것이 사실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이 글이 그의 마지막 원고가 될지도 모르고 '존경하는 청중 여러분, 10년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다시 한번 이야기합시다'라며 이어간 부분은 슬프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했다. 지금 이순간, 자신이 '신념정치가'라고 혁명에 도취된 사람들이 과연 그 때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의구심을 표하는 부분이 그토록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명'은 비단,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도모하는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 같다... #4. 제이슨 [헤이, 웨잇...] 새만화책 2002

우울하고 상처난 마음에, 굵은 소금을 화악~ 뿌리면서 오랫동안 후벼파는 만화... hey, wait! 그 후 변해버린 모든 것....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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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언어...

근본을 알 수 있는 몇 가지의 번뇌와, 또 그 근본을 알기 어려운 번뇌로 건기의 사하라 사막마냥 피폐해진 나를 위로해준다며 츄파춥스가 '법구경'을 선물해주었다. 책 앞머리에 쓰인 한 구절에... 잠시 숙연해졌다. -------------------------------- 참회하나이다 언어로 진실을 희롱한 죄, 깊이 참회하나이다. --------------------------------- 입속의 검은 잎들이 넘실대는 이 세상에서 나 스스로의 언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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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탈취에 의한 축적

#.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신자유주의 - 간략한 역사] 한울 2008

0. 개념의 인플레 현상 덕분에,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정색하고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정리된 모범답안? [Commanding Height]와 쌍을 이루어 읽는다면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칠레, 영국,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둘러싼 이 상반된 두 가지 해석이라니!!! 예전에 [commanding height]를 보면서, 이건 아니잖아... 라고 땅을 치면서도 막상 나의 목소리로 정확하게 비판할 수 없었던 것들을 콕콕 찝어주니 앗싸... 1. 해미와 함께 이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디, 둘다 뜨끔했던 것은 '우리'의 리버럴한 성향에 대한 하비의 통렬한 지적... "사회정의의 추구는 사회적 연대와 더불어, 사회적 평등이나 환경정의를 위한 좀더 일반적인 투쟁과정에서 개인적 욕구, 필요, 욕망을 유예할 수 있는 자발성을 전제로 삼는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욕구와 필요, 욕망을 유예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지만, 소위 리버럴좌파 (혹자는 날나리 좌파라고...)들의 건전한 의도와는 달리 '자유지상주의적' 태도 자체가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적극적으로 포섭당하고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ㅡ.ㅡ 2. 저자는 그냥 자유 일반이 아니라 '어떤' 자유인가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시민권/자유권 중심의 인권 개념을 비판한 것도 좋은디, 사회권에 대한 관심이 이미 진보진영 내에 폭넓게 공유되고 있음은 아직 잘 모르시는 건지... 혼자 너무 답답해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 3. 결국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탈취에 의한 축적',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계급권력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로 요약될 수 있으며,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전지구적 피라미드 혹은 돌려막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결코 약속한 대로의 성장을 가져오지도 못했고, 다시금 또다른 위기를 노정시키고 있다. 4. 밀턴 프리드만의 [capitalism and freedom] 을 읽으면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상적인 최소 국가의 가능성을 하비는 쎄게 비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실제'라는 별도의 챕터로.... 전반적으로, 이 책은 수식 현란한 본격적 경제학 서적이 아니고,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철학 혹은 역사서도 아니면서, 딱 내 수준의 궁금증을 가진 이들에게 신자유주의와 관련한 폭넓은 이슈들을 잘 개괄해주는 '개론'이라고 보면 되겠다. 국가에 대한 논의도 그래서 이해하기 쉬웠다. 5. 남한사회에 대한 평가는 다소 혼란스럽다. 신자유주의적 의제가 다소 완화되어 적용된 것으로 평가하는데, 여기에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발전주의적 전략과 노동계급의 저항(?)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어찌 보면 장하준 교수의 국가/재벌 주도 경제발전 옹호와 맞닿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노동운동의 조직력을 감안할 때 그 힘이 과도하게 평가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해외의 좌파들은 한국의 노동, 사회운동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혹은 인색하게 한국의 운동을 평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에 비해 과도하게 포장되어 알려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6. 예언 혹은 예측 신자유주의가 내적 위기로부터 도출된 대안들 - 이를테면 신보수주의, 질서와 도덕의 강조, 국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와 '법'의 전면화 -을 읽고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면, '아, 이거 딱이잖아, 쪽집게네' 하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다. 그니까, 어쩌면 현재 한국사회의 퇴행은 우연한 돌발이라기보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것이라는 말씀... IMF 구제금융 이후에 [세계화의 덫]을 읽고 '아니,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이 외환 위기가 올 것을 다 알고 있었구나. 이럴수가!' 했었는데,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 마찬가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적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가 그토록 강조해마지않던 '시민적 자유'의 공공연한 퇴조를 지적하는 글을 보고 있자니, 이거 원... 7. 대안 진단과 분석과정은 장구했지만, 예상대로,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안을 주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그 대답이야 독자들, 그리고 역시 운동의 몫이 아닐까 싶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거세다 했어도 그 양상은 국가, 그리고 내부의 계급구조, 투쟁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발전도, 위기도 불균등하더라는... 그래서 영국, 미국, 멕시코, 한국, 스웨덴에서 공통점도 있지만 중대한 차이점도 존재할 수 있었다. 결국은 저항과 운동... 그로부터 또다른 '동의의 구축'! * 포스팅 내용과는 관계없는 사족이긴 한데... 맨날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쓰니까, 제가 요즘 몹시 한가하거나 행복에 겨운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으신듯해요... 아.니.랍.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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