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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3
    책 소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10)
    hongsili
  2. 2008/03/15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8)
    hongsili
  3. 2008/03/03
    코난, 비폭력대화, 오락(?) 영화(3)
    hongsili
  4. 2008/02/16
    sweetpea 공연(5)
    hongsili
  5. 2008/01/29
    [거절하지 못할 제안](2)
    hongsili
  6. 2008/01/27
    책 둘, 영화 둘(1)
    hongsili
  7. 2007/12/28
    반 고흐전 유감(6)
    hongsili
  8. 2007/12/16
    광고 감상(7)
    hongsili
  9. 2007/12/09
    책 이야기...(2)
    hongsili
  10. 2007/11/22
    책 몇 권(2)
    hongsili

책 소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지난 1년여 간, 여러 샘들과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백도명 선생님께서 추천사도 써주셨어요 .

뿌듯합니다 (^^)

 

근데 책 값이 좀 비쌉니다.

제발 소프트커버로 해서 책 가격을 낮춰달라는 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무려 22000원의 양장본으로 제작한 출판사의 소신... ㅜ.ㅜ

대학 구내 서점에서는 16000원의 '학생판'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 아닌 사람은 어쩌라구... )

 

옮긴이의 말과 목차는 아래에 소개합니다. 

많이들 읽고 '공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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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
(부제) 생산의 지점 (원제: The Point of Production )

*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 김명희·김용규·김인아·김현주·이화평·임준·정최경희·주영수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008-03-15 발행 / 신국판 / 양장 / 272면 / 22,000원
* ISBN 978-89-460-5018-1 93510
* 분야 : 경제학, 사회복지학, 보건의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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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자들은 2006년 말부터 ‘취약 노동자를 위한 건강증진사업 개발’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왔다. 연구사업 시작 단계에서 우리는 오늘날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거시적 맥락에서 이론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로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국내외 서적은 매우 드물었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10년 전, 미국에서였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그에 대한 논의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지나칠 만큼 유효했다.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한편으로 신기해했고, 한편으로 절망했다. 일부 내용들은 ‘미국’이라고 쓰인 주어나 목적어를 ‘한국’으로 바꾼다 해도 한국 독자들이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정서적·지적(知的) 경험을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우리가 발 딛은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출판된 소위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전문서적은 특정한 유해물질이나 유해환경, 이에 대한 의학적·공학적·행정적 해결방안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명료하고 구체적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따뜻한 살과 피를 가진, 노동의 피로와 보람에 울고 웃는 ‘인간’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해물질과 유해환경을 생겨나게 만든, 혹은 그러한 유해요인의 예방과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현재의 안전보건, 산재보상 제도가 진화하는 데 노동자들의 희생과 투쟁, 전문가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다룬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레벤스타인, 우딩 교수의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정리해낼 만큼 학문적 내공을 아직 쌓지 못했다면, 번역 작업이 우리에게나 독자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지만, 번역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 사회적 맥락에 대해 지식이 충분치 못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용어와 개념이 가진 정치성·역사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인 ‘occupational health’조차 내부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다루는 이 학문 분야는 ‘산업의학’ 혹은 ‘산업보건’이라 불려왔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의학 전문의’ 등의 명칭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일군의 연구자, 활동가들은 그동안 의식적으로 ‘산업’보건 대신 ‘노동’보건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고, 노동자건강 문제를 ‘산업’에 부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쓸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산업보건’과 전복적 의의를 가진 ‘노동보건’……. 논란 끝에 우리는 싱겁게도(!) 원문 표현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그대로 ‘직업안전보건’이라고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산업’도 ‘노동’도 아닌 중립적인 이 용어조차 ‘산업보건/의학’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는 낯설다. 직업안전보건법, 직업안전공단……. 우리는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자들이 현재 한국의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얼마나 자본 편향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용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산재보험’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영어원문은 ‘worker’s compensation’, 직역하자면 ‘노동자 보상’이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노동자 보상’이적절한 표현이지만 이 용어를 썼을 때 이를 기존의 ‘산재보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우려되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생소한 표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개념의 혼란을 피하고자 할 수 없이 기존의 ‘산재보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채택했다. 근로자들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되찾아온 것처럼, 이들 용어 또한 현실의 투쟁 속에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올 수 있길 바랄 뿐이다.

 

1840년대에 출판된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그려진 영국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전태일 평전" 속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다시 2000년대 멕시코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 ‘여공’들의 외침이,1990년대 전화교환원, 그리고 2007년 대형할인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르고 유해요인의 종류와 숫자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노동자가 ‘생산’에 종사하고(그것이 물건이든, 서비스이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신기술의 도입과 활용, 산재보상제도의 탄생과 발전, 규제와 규제 기구의 진화, 이 모든 것은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수반하는) 정치적 과정이고,이는 작업장 유해인자의 분포, 그것들의 관리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작업장의 개별 위험요인뿐 아니라 그러한 위험요인의 분포와 관리방식을 결정하는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주체·권력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다.


우리는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개별 사업장으로 국한되거나 기술자·전문가들에 의해 전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기업의 책임성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기업(집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법과 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동자 건강이 보장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하듯,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난한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우리는 미국의 상황이 한국과 너무비슷해서 놀랍고 우울하다고 썼다. 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도 생명은 지속되는 법이다. 자본이 세계화된다면 노동도 세계화되고, 착취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투쟁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노동자 건강권 보장의 역사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투쟁의 역사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 또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에서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이 책이 깊은 통찰력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노동자 건강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역자들 스스로 내공 부족을 탓하며 대안으로서 번역을 선택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아무리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유사하다 해도, 한국 사회 고유의 맥락과 역사성에서 유래한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각 장의 중심 주제에 대한 한국적 정황이나 사례를 옮긴이의 보론으로 간략하게 덧붙였다. 이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구체적인 한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실천적인 논쟁과 모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독자들이 노동자 건강 문제의 역사성·정치성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미시적 해결책들과 결합할 수 있는 거시적 이론·정책을 논의해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이 번역서는 나무들의 희생을 넘어서는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오역과 비문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역자들의 책임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2008. 2. 옮긴이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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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서론

1. 생산의 지점|2. 노동환경의 정치경제|3. 결론

 

제2장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1. 노동환경의 이론|2. 질환과 손상의 생산|3. 직업성 질환의 인식|4. 질환과 손상의 관리|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사회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제3장 기술과 노동환경

1. 기술이란 무엇인가|2. 관점 1: 기술 결정론|3. 관점 2: 정치성과 권력으로서의 기술|4. 기술적 선택|5. 기술과 노동자|6. 세계 경제시대의 노동과 기술|7. 적은 시간, 많은 일|8. 결론|옮긴이 보론_기술과 노동환경: 한국의 현실

 

제4장 노동환경의 사회적·정치적 맥락

1. 이념|2. 경영이론과 작업 구조|3. 권력의 분포|4. 인종주의의 영향|5. 성차별주의의 영향|6. 직업보건의 미시 맥락: 노동자-경영진의 관계|7. 조직된 노동|8. 결론|옮긴이 보론_21세기 한국의 작업장

 

제5장 규제의 정치성

1. 노동환경과 규제의 정치성|2. 1980년대의 사회적 규제: 직업안전보건청의 붕괴|3. 1990년대의 직업안전보건청|4. 정치적 함의|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의 규제완화

 

제6장 산재보상의 정치성

1. 산재보상제도|2. 역사적 동맹: 꾀병 환자, 악덕 변호사, 돌팔이 의사|3. 희생자의 조직화|4.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산재보험의 현황과 과제

 

제7장 직업보건과학의 정치성

1. 직업보건 전문가의 사회적 위치|2. 전문주의의 정치성과 국가|3. 구좌파와 신좌파|4. 새로운 전문가|5. 학술 연구와 사기업 부문|6. 연구 계약|7. 학술 자문위원회|8. 직업보건 연구에서 노동자 권리 |옮긴이 보론_한국 노동안전보건에서 전문가의 역할

 

제8장 노동,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

1. 자본주의의 승리|2. 기본으로 돌아가자: 생산과 고통|3. 민주주의가 답인가?|4. 기본으로 돌아가자: 사회적 건강을 위한 운동의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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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저께, 대전에서 곧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바다소녀의 경고에 서둘러 심야영화를 보았음. 야간 대학원 강의하고 오밤중에 영화보는 건 쉬운 일이 아녀... ㅜ.ㅜ 코앤 형제... 역시 역시 역시.... 관객들이 (아니면 내가) 그닥 주인공스럽지도 않은 르웰린에게 이입하는 이유는, 그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고, 그래서 결국 이 모든 사단이 벌어졌기 때문... 간절히 물을 원하던, 사막 한 가운데 총상을 입은 멕시코 마약 딜러... 어찌 보면 아무 상관 없는 그의 모습 때문에 잠을 뒤척이다 결국 그 곳으로 물 한 통 받아들고 돌아갔다는 사실... 그 한 조각, 겨우 한 조각 양심이 저런 파국을 초래하는구나.... FBI 도 울고갈 과학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냉혹한 킬러 안톤쉬거의 모습보다 무서웠던 것은, 르웰린과 쉬거가 총상을 가리기 위해 셔츠를 사들였던 아이들의 대화... 아이들... 정말 피도 눈물도... 톰으로 분한 토미 리 존스는 세상이 너무나 변했음을, 너무도 삭막하게 변했음을 한탄하고,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지만, 이렇게 변한 사회가 노인에게만 힘든 건 아니다. 적막하고 황량한, 막 나가는 그 텍사스 사막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펼쳐져 있다. 안톤 쉬거의 엽기적 행각은 일가족 몰살이나 어린이 토막살해를 자행하는 한국사회보다 특별히 더 잔인하거나 황당하지 않다.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다는 학생을 보지 못했다는 당국자의 말은 과연 쉬거의 행동보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보고 나오는데 정말 무서워 죽겠더라. 이 세상이... * IMDB 에서 배우 프로필 찾아보고 깜놀! 안톤 쉬거 역의 배우... 너무 멀쩡하게 생긴 거야... 그 단발머리, 그 기묘한 표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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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비폭력대화, 오락(?) 영화

흥미롭게 빠져들었던 책인데, 기록 안 해두면 또 까먹는다.

 

0. 강양구 저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프레시안 2007

 

 

예전에 강릉 출장 다녀오던 날, 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리고 커피가 맛나던 그 다방에 앉아 다 읽어치운 책. 고종석 류의 감칠맛 나는 문장이야 없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정확하고 쉬운 표현으로 전달해낸 점을 높이 평가.

 

목가적 낭만주의로 경도되지 않으면서, 문제 혹은 해결책이 가진 맥락과 그로부터 비롯된 가능성들을 꼼꼼하게 짚어주었다고 생각됨. 이를테면 바이오 연료 문제 - 브라질 출장 갔을 때 매연 하나 없는 에탄올 차량과 사탕수수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 사탕수수 밭에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가리고 온 도시에 화산재처럼 내리던) 시커먼 연기와 잿가루, 그리고 식량 문제.. 설명하기 쉽지 않았던 이 복잡성을 쉽고도 조리있게 풀어내고 있음. 

 

무엇보다 장점은 책이 가볍고 한 손에 꼭 들어온다는 점 (저자가 들으면 기분나쁘겠다 ㅡ.ㅡ  이걸 칭찬이라고....)

놀라웠던 점은, 이제 중 3에 올라가는 연정이가 이 제목을 보고 '코난? 명탐정 코난?' 하길래, 내가 '아니, 미래소년 코난!' 했더니 못 알아듣더라는... ㅡ.ㅡ

어떻게 우리의 미래소년 코난을 모를 수 있어? 왕 섭섭했음.

 



0. 마셜 로젠버그 저, 캐서린 한 옮김. [비폭력 대화] 바오 2003

 

 

"장난하나? 좀 재수로세!"로 시작했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호기심과 반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작은 열망을 느낄 수 있었음.

 

물론 비폭력 대화에 대한 의문과 문제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 

현실의 인식과 소통 방법을 바꾸는 것이 현실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닌 바, 개인들 사이의 깊은 연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는 있겠으나 자칫 '일체 유심조요~'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 + 비폭력대화를 지속하려는 노력이 일종의 강박이 되어  또다른 '감정노동'의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

 

우쨌든, 나처럼 문제해결 지향적 대화가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이들은 깊이 되새겨볼만한 책이로다. 안부 전화한 이들한테 '근데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어?"라고 묻는 건 이제 좀 그만 하자... ㅡ.ㅡ 

 

0.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2007

 

 

제목을 어째 저렇게.. 그냥 '고아원'하면 될 것을... ㅜ.ㅜ

아 씨,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지지난 주에 연정이 데리고 갔다가 둘이 후덜덜...

뻔히 짐작가는 내용인데 왜 그리 오싹오싹하던지...

어쨌든 상당히 짜임새도 있고, 나름 울컥하는 감동도 있음.

가족과 함께(?) 볼만한 영화.... 참, 영화 보는 내내 만화 [몬스터]가 떠올랐음.

 

0. 덕 라이먼 감독 [점퍼] 2008

 

 

지난 일욜에 건물 공사 때문에 정전된다고 해서 나갔다가 본 영화.

이 영화 보면서 진짜 심각하게 '자원의 낭비적 활용'에 대해 고민했음.

하다못해 권선징악의 수사학이나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로지 개인의 욕구만을 위해 초능력이 쓰이고 (어쩌면 현실적!) 그걸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물량을 동원한 세계 곳곳에서의 촬영....

주인공 애들 즐기는 통에, 무고한 시민들 죽고 자동차 뻥뻥 날아다니고 문화재는 막 파괴되고....  아무리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라는 것이 즐기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렇게 아무런 이유없이 돈 쓰는 영화는 보다보다 첨 봤음. ㅡ.ㅡ 

그래서 더욱 헷갈림.  먼지만큼의 감동이라도 주고,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이라도 이야기했다면 마음이 덜 불편했을까???  우쨌든 영화를 보고 '죄책감'이 드는 건 예상치 못했었음. 

 

참,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그나마 스타워즈 때보다 연기력이 아주 쪼금 나아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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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pea 공연

 

진정 오랜만에 콘서트...

마지막으로 갔던 게 안치환 공연이었나??? 하도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

 

가는 발걸음도 설레고 (사실 지하철 반대방향으로 타서 밥 먹을 시간 없을까봐 엄청 후달렸음).. 객석 불이 꺼지고 아직 무대가 조용할 때의 그 긴장감도 좋고...

 

 

스위트피는 물론 델리스파이스도 사실, 음반만 계속 들었지 얼굴을 본 것은 처음...

퀭한 그 눈... 가위손 에드워드 필....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 흐르는 보컬과 썰렁한 멘트, 음악에 대한 열정이 물씬 묻어나는 기타와 탬버린 연주... (기괴한 분위기의 연주 몸짓과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차우차우 가사...꼭 그분이 오실 것 같아 불안했음 ㅎㅎ)

 

진정,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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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할 제안]

Sweetpea의 오랜만의 신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잖아!!!

완전 버닝...

 

 

미니디스크의 '떠나가지 마' 변주곡들, 좋아 죽겠음...

심지어 간만에 콘서트 나들이 예정!

 

루시드폴의 [국경의 밤] 도 그렇고,

이들 앨범이 알라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다는 건 작은 희소식...

 

고비사막처럼 메마른 가슴에 음악으로 단비를 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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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둘, 영화 둘

이제 기록 없이는 기억도 없다 ㅜ.ㅜ

 

 



0. 팀버튼 감독 [스위니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8

 

 

내 평생 변태 소리 두 번 들어왔는데,

첫번째. 조관우 노래 좋다고 했을 때 (ㅡ.ㅡ)

두번째는, 조니뎁이 (한국에서 그닥 유명세를 타기 전) 잘 생겼다고 이야기했을 때...

억울해. 나의 고상한(!) 취향이 변태취급 받았던 걸 생각하면!

 

어우... 스위니토드, 멋지삼!!!!

가위손 에드워드와  할로윈의 악동 해골잭을 합쳐놓은 듯하면서도 간난신고의 연륜이 살짝이 묻어나는 그 퀭한 눈! 눈! 눈!

빅피쉬,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렛 공장 등 최근 어울리지 않게 '착한' 영화를 찍어댔던 팀버튼이 이제야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구나 싶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아무리 연기라지만 자기 부인 (헬레나 본햄카터)이 오븐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연출하는 감독이, 과연 팀버튼 말고 또 있을까? ㅎㅎㅎ

팀버튼, 조니뎁... 무병장수하여 영화 많이 만들어주셈!!!

 

 

0. 마이클베이 감독 [아일랜드] 2005

 

 

부모님 댁에 갔다가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걸 우연히 봤음.

참 많은 스토리를 여기저기서 가져다 썼으나,

리플리컨트들의 도주와 삶의 열망이 기본이라는 점에서 블레이드러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나... 하지만, 엄청난 액션에도 불구하고 그 아우라는 도저히... ㅡ.ㅡ

도대체 링컨 (이완 맥그리거)과 조던 (스칼렛 요한슨)은 복제인간 정도가 아니라 완전 네이비씰... 아니면 좀비 ㅜ.ㅜ

SF 영화의 묘미는 나름 철저한 과학적 개연성인데, 허술하기는 또 이루 말할수 없다.

결국은 액션을 위한 SF 껍데기 활용이라고나 할까?  에잉...  

 

 

0. 은희경 [마이너리그] 창비 2001

 

 

출장 중에 빌려 읽음.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왜 여성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음. 여성 작가이니 여성의 이야기만 써야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굳이 남성들을 화자로 삼아 여성들을 스테레오타입화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여기 그려진대로 여학생들이 순결하지도, 그렇다고 모두 새침대기에 내숭쟁이가 아니었음은 작가 그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말이다.

만일 이문구나 성석제의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공감이 컸을텐데...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도 읽는 내내 맘 한구석이 찜찜한은 어쩔 수 없었다.

복도에서는 신발주머니가 날아다니고, 교실바닥에서는 황당무계한 씨름판이 벌어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대걸레 타작소리가 울려퍼지던 여자중고등학교의 '생생한' 현실은 어디 있냐구... 

그 시절, 비루한 일상 속에서 '만수산 4인방'들처럼 (어이없고) 원대한 바깥을 꿈꾸던 마이너리그의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

 

 

0. 김병권 등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시대의 창 2007

 

 

보건의료 진보포럼 강의 준비하느라 읽게 됨.

원래는 [차베스, 미국과 맞장 뜨다]를 neoscrum 에게 빌렸는데 그가 알려주길 문장의 80%가 '차베스'로 시작된다는 거다. 그래서 출장 전에 이 책을 다시 급 주문하여 들고 갔음. 책의 내용은 대부분 venezuelanalysis.com 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대만큼 심층적인 분석은 담겨 있지 않았다. 새사연의 두 번째 신서인데 약간 실망.... 볼리바리안 혁명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까지 다시 한번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한국사회에서의 함의도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잘못된 용어나 기술도 발견... 이를테면 barrio adentro 를 단순한 무상의료 프로그램으로 바라보거나, 의료보험 개혁 쯤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었음...

그래도 볼리바리안 혁명의 연대기나 배경지식을 짧은 시간에 익히기에는 큰 나무람이 없는 개론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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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전 유감

" 지인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 사실 그렇게 많이 아픈 것도 아니었습니다요.

  이제 엄살 포스팅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했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초 민망합니다. "

 

 

코감기쯤 가지고,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포스팅을 했더니만

일파만파...  순식간에 중환자가 되어버렸다.

 

사실, 어제는 상당히 멀쩡해져서, 서울 나들이도 다녀왔다.

친구가 Van Gogh 전시 티켓에 당첨(?) 되었다고 어제 오후 늦게 서울시립 미술관을 찾았더랬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 기획된 블록버스터급 해외미술품 전시들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편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몰두 내지는 침잠하면서 작품, 그 작가와 교감을 하는 것일진데, 이러한 류의 대규모 순회/기획 전시들은 도대체 '제대로' 감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두침침한 무배경의 전시공간에서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 시달리며 줄서서 목을 빼고 그림을 본다는게 과연 '나도 봤다'는 출석체크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전시도 그래서 별로 보러갈 생각이 없었으나, 공짜표도 생긴데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컬렉션은 본 적이 없기에 오랜만에 시립미술관으로 행차...

 

 

 

 

 



여러가지로 마음이 착잡했다.

 

불편한 감상환경이야 그렇다치고,

돈으로 바른 듯한 내부 공간과 컬러액정 MP3 오디오가이드, 값비싼 아트상품들...

전시장 벽면에 패셔너블하게 새겨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한두줄의 편지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성탄절에 예수가 사라진지 오래이듯, 고흐 작품이 전시된 그 곳에 고흐의 '정신'과 '고통'을 찾아보기란 미션임파서블이었다.

 

뭐 나름 인기를 끌었다는 LG 전자의 명화광고에 비하면 이 정도 부조화 전시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starry night on Rhone river

 

 


* portrait of Dr. Gachet

 

론 강 멀찍이 비치는 LG 광고판과 Dr Gachet 가 들고 있는 LG 휴대폰은 이들 작품과 풍경/인물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다. 광고판이 빛나는 도시의 밤에 별은 빛날 수 없다. Dr Gachet 의 무심하면서도 풍부해보이는 표정은 저깟 메탈릭폰 덕분에 사채 독촉받는 채무자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푸른 색.... 그 신비의 색은 저렇게 희화화되고 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대상이 고호만인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물신화되고 있다.

한 때의 운동이 후일담 소설로 소진된 것도 어느덧 10년 전 일이 되었고,

체게바라의 저항이 패션아이콘으로, 

고흐의 가난과 정신분열이 고상한 취향이 되어 버렸다. 

 

혹시나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고흐가 자신의 작품을 다 불싸르지 않을까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은 다음 전시로 '부르델' 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시립미술관'이 아니라, 이 정도면 엑스포라 칭할만하다.

오늘 우리 사회의 반 고흐를, 부르델을 후원하고 시민들에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게 아니라, 흥행보장된 패키지 직수입으로 매번 전시장을 갈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뭐 그닥 경험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본 미술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벨기에 브뤼셀의 왕립미술관과 프랑스 니스의 마그 미술관이다.

 

브뤼셀에서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이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브뤼겔 처럼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옛 플랑드르 작가들의 친근하고 소박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그리고 현대 벨기에 작가들 - 마그리트나 델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공간과 풍부한 자연채광 아래에서 그야말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둘러보았던 루브르나 오르세이 등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교감이 있었던 것이다. 미술관에서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마그 미술관은 작품을 위해 건설된 또하나의 작품이었다.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미로의 모빌, 그리고 무엇보다 마당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자코메티의 입상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나는 시립미술관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대의 가난한 미술가들을 후원하고, 사람들이 편하게 당대의 문제의식과 아름다움/추함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즐기고...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게 공공 미술관의 기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안 되도, 대기업의 엄청난 후원과 천문학적 보험금, 아트샵을 채우는 팬시상품 없어도 시민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줄 수 있는 공간...

 

그게 그리도 어려운 건가?

돈잔치 패키지 미술전은 이제 그만.... 좀 그만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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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감상

골병 들어서 하루 종일 방에서 굴러다님 ㅡ.ㅡ

다음 주에는 일정도 많은데 대박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TV를 시청하다보니,

참으로 눈에 거슬리는 삼성 광고들.... 

 

뉴욕 타임스퀘어 핫스팟에 게시된 삼성 전광판을 계속 보여주면서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지껄인다. 

거기 전광판이야 돈 내면 다 내어주는데 아녀? 훌륭한 기업이라고 타임스퀘어에서 상주며 공짜로 전광판 빌려준 것도 아닌데... 어이 없어. 

지 돈 내고 비싼 땅에 광고하고, 그걸 다시 찍어서 우리가 이만큼 했다고 자랑하니 제 정신인가 싶다.

그 광고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마도 HSBC... 삼성 전광판 바로 위 전광판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 광고 거의 내내 화면에 노출된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프라임타임에 광고를 할 뿐 아니라,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삼성과 동급의 자부심도 덩달아 얻게 되었을테니 일석이조다! 

 



아이들을 출연시킨 래미안 아파트 광고도 상당히 어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용서해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배우 장진영이 출연한 롯데캐슬 광고가 아파트 광고의 지존이라 생각하기 때문. 이 광고에서 장진영은 드레스를 입고 (집에서 드레스 입냐?) 웬 성 (롯데 캐슬)을 뛰어다니며 백인의 금발 어린이 두명이랑 놀고 있다. 내가 보기엔, 백인 영주님 성에 아이들 돌보러 온 아시아 보모 행색이다. ㅡ.ㅡ  캐슬은 개뿔!

 

아이들 출연 광고의 백미라면 역시 지나간 SM5 를 들 수 있겠다. 아빠 SM5 타고 가는 아이를 스쿨버스 탄 아이들이 부러워하고, 이 아이는 잘난척하며 아이들에게 장난감 선물 나눠주는 광고였다. 그게 한창 방송에 나올 때는 TV 를 폭파해버리고 싶었다. 진짜 재수 없는 광고!

 

또하나의 가족 운운하며 훈이네 가족이 등장하는 광고 또한 볼 때마다, 지랄하고 있네 이런 생각이 든다. 화목한 이성애자 중산층 가족 모형 지대로 그리고 있다. 엄마는 설겆이하고 아빠는 거실에서 신문본다. 학원 빠졌다는 전화에 엄마가 발끈하니까, 아빠가 자기한테 맡기라며 부드러운 소리로 훈이를 타이른다. 아이는 개과천선!

재수 없기로 작정하지 않고서야 저런 광고를.....

 

하지만.....

최근 삼성 광고의 진정한 지존은 애니콜의 Anyband ...

그 광고에서 디스토피아로 그려진 그 곳, 대화도 놀이도 사랑도 없는 감시 세상, 그게 바로 삼성이 만들고 있는 세상 아니야?  그런데 어이 없게도 애니밴드가 그러한 세상을 음악으로 구원하는 것처럼 등장하니 아연실색할 밖에...

진짜 오싹했던 것은, 지난 주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던 중 보게 된 Anyband Concert  현장이었다. 진정 애니콜 하나를 위해서 수많은 관객이 모인 가운데, 그 바쁘다는 각기 다른 소속의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Talk, play, love 를 노래하고 있었다. 관객들 손에는 talk, play, love 가 쓰인 미니 피켓(?)이 들려 있었고, 무대 가운데에도 물론 커다란 사인보드가.... 한 제품의 광고를 위해 수천명의 청중이 (자발적 참여라고 생각하면서) 동원되고, 그 사람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제품을 연호하는 모습이 과연 디스토피아적 SF 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무섭다 무서워....

사람들의 뇌가 오염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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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1. 최장집, 박찬표, 박상훈 공저. [어떤 민주주의인가] 후마니타스 2007

 

 

책의 발간 즈음해서 한겨레 21에 실린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를 읽었더랬다.

그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가 세간에 오해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읽고보니, 나 또한 그의 전작을 통해 이런 오해를 적지 않게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핵심 내용들....

 

 

 



0. 성장하는, 혹은 성숙해가는 연구자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살아 있는 이곳의 현실에 천착하여 문제의식을 꾸준하게 발전시키고 이론을 심화시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새삼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초로의 학자가 젊은 날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재해석하며 스스로 인식의 확장과 발견의 기쁨을 확인해가는 모습은, 학계 핏댕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책의 1부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학술적 엄밀성을 떨어질지 모르지만) 좀더 자유로운 소통, 학자로서의 최장집이라는 컨텍스트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정치학자로서 현실과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답한다. ".. 자신의 학문과 그 업적이 넓게는 사회과학, 좁게는 정치학 발전에 기여하는 바 크다면 그것만으로도 학자의 역할은 충분하다....  우리는 그런 학자의 업적과 이론을 통해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현실 정치를 판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학문의 중요한 역할이다. 좋은 학자들의 이론에서 도움 받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현실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행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보통 세계적인 대가라고 말하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이나 특히 정치학 영역에서 대가가 되는 일은 학문적 탐구의 결과로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이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깊이 간여하지 않고서는, 또 깊고 강하게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0. 절차적 vs. 실질적 민주주의

 

책의 상당량을 이 두가지의  개념적 명료화와 그 불가분성을 설명하는데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세간의 오해 -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루었는데 실질적 민주주의가 문제라는 - 를 드러내고,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절차적 민주주의가 주요 과제임을 역설한다. 구구절절 기억해둘 내용이 많지만, 아마도 첫머리의 이 부분이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떤 넓은 통로로 이어지는 열쇠 같은 것, 큰 산에 오르기 위한 등산로의 입구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매우 포괄적이고 폭넓은 정치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좀 더 넓고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좋은 입구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른 입구를 발견하지 못할 때 그 등산객은 넓은 산에서 길을 잃고 얼마나 헤매겠는가?"

 

0.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서의 정당, 그리고 다원주의적 엘리트 정당 vs. 대중정당

 

읽는 내내,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게 바로 이거였다구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머리 속에 들어있던 희미한 문제의식과 단편적인 주장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이런게 책을 읽는 보람이다 (^^) 국내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헌정주의에 대한 비판, 소위 정치의 효율성을 주창하는 정책정당/엘리트 정당론에 대한 비판,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정치 버전임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매우매우 공감. 

 

0. 궁금증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을 대의제와 책임제도라고 했을 때 직접 참여 민주주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를테면 브라질의 참여예산제나 민중건강평의회 같은 구조는, 저자들이 미국의 주민소환제를 비판했던 것처럼 제도가 정해놓은 한도 내에서나 선택이 가능한 미조직 개인들의 행동 -포퓰리즘으로 전화될 수 있는-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고는 답 못하겠으나, 대의제가 아니면서, 그렇다고 개인으로서의 산발적 행동도 아닌, '조직화된 직접 참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 당.... 당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ㅠ.ㅠ

 

 

2. 김미정 등. [부서진 미래] 삶이 보이는 창, 2006

 

 

이런 책은, 사실 정서적으로 감당이 안 된다. 감정이입 100%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물론, 내용을 떠나, 서술의 방식이나 분석을 본다면야 부족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지나친 전형성이나 '설명적' 담화양식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분석적 내러티브의 부족도 그렇고... 하지만, 이것들이 이 아마추어 르뽀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부르디외의 [세계의 비참]이 떠올랐다.

 

3부로 편집된 [세계의  비참] 첫 머리에 부르디외는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을 적었다. 거기에서 부르디외는 말했다.

"... '통탄해서도 안 되고, 비웃어도 안 되며, 혐오해서도 안 된다.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이는 스피노자의 말이다. 하지만 이 스피노자식의 규칙을 따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들 사회학자가 아무리 이 규율을 준수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세계의 비참]을 읽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야말로 세계의 비참에 대한 아픔과 더불어, 문제의 구조적 기원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가 화악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연구도구로서, 사회학자 그 자신의 힘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부르디외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아직까지 그 바램은 실현하지 못했고, 당분간은 역시 힘들 거 같다. [부서진 미래]를 보면서 분석하고 고민하기보다 울컥(!)하는 감정이 앞서는 걸로 보아 아직 멀었다. ㅡ.ㅡ

남아 있는 장들은 좀더 차분하게 읽을 수 있음 좋겠다.

 

그리고 이 책 끝나면 상큼한 책에 빠져보고 싶구나.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베오울프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Neil Gaiman, 그의 까칠하고도 은근 상큼한 이야기에 빠져보리다!

American God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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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몇 권

오늘 서울에 강의 겸 세미나 참가 때문에 다녀왔다.

내려오는 기차 타려고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에,

웬 취객이 그리도 많냐?

불과 저녁 여덟시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지...

 

보아하니, 학생들은 아닌 거 같은데 직장인들이 낯술 즐겼을리도 만무하고...

도대체 얼마나 강도 높게 마셨으면 불과 그 시간에... ㅡ.ㅡ

미스테리로다!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 책상 위에 굴러다니고 있어 잠깐 정리를 해볼까 한다.

사실, 불질할 여유는 없는데...

 

0. 강유원 [책과 세계] 살림 2004

 

 

짧지만 매우 흥미로운 글모음.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그렇구나...... ㅡ.ㅡ;;;

 

간결하고 (어찌 보면 껄렁해보이는) 특유의 문체로 책과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주 자유분방하게 늘어놓았는데, 특히,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 또다른 컨텍스트로서의 매체에 대한 부분이 재미(?) 있었다.

 

매체 이야기를 하면서 '죽간' 을 소개하는데, 문득 친구 J가 드라마 "주몽" 보면서 엄청 흥분했던 게 생각났다. 아직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죽간에 쓰여진 글을 읽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물론 나는 한 번도 못봤음), 창호지(!)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아주 휘영청이더란다 ㅎㅎㅎ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거 생각하면 드라마 못 본다~

 

이 글모음은 첫머리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쓸쓸한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종의 기원'이 보여준 참혹하고 쓸쓸한 인간세계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과연 그래?

 

 



0. 고종석 [바리에떼] 개마고원 2007

 

 

버라이어티한 건 좋은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1부는 "어스름의 감각"이라는 제목 하에, 그야말로 자신의 취향에 대한 글 4편을 담고 있는데, 그냥 귀엽고 철없는 아저씨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계급도 인종도 성별도 대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데 오로지 세대만은 장애가 된다니, 그게 말이 되나? 얼마나 본인의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지 모르겠으나 부르디외가 보면 피토하겠다. 동시대의 대중문화 (이를테면 유행가) 체험을 통해 계급과 성별을 넘나드는 동질성을 확인하는 건 좋은데, 그건 자신의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킨 것 아닌가 싶다. 동시대라고 다들 비슷한 (대중)문화를 경험하는 건 분명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백수 예찬도 맘에 안 든다. 이거 뭐냐 싶더라니...지나친 강박일지도 모르겠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아둥바둥하는 시대에, 선택받은 소수로서 자발적 백수가 된 것을 동네방네 떠드는 것은 최소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동안 주변에서 자발적 백수가 된 인간들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지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없는대로 사는 것에도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있는 법이다. 철들고 나서부터 (최근까지) 경제적 불안에 시달려온 나로서는, 도저히 '체질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 운운하며 위악을 떠는 김훈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 이것도 아마 포함될 듯.

더구나 여자들 이야기는 더 싫었다. 그가 기억하는, 이름이 관련된 여자들을 내가 왜 비싼 돈 주고 산 책에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그냥 본인 일기장에 남겨놓고 추억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

결국, 1부는 내가  싫어하는 신변잡기, 주변사에 대한 자기애적 기술로 온통 채워져있고, 차라리 책에 포함이 안 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이건 사실 3부에도 약간 해당하는데, '친구의 초상'이라는 제목 하에 문화예술인 친구들 - 황인숙에서 강금실까지-의 작품이나 생활에 대한 비평/단상들을 적고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의문이 든다. 내가 왜 그의 친구들을 알아야 하나? 내 친구들과 속깊은 대화 할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다. 이래서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는지 모르겠으나, 혼자 보는 일기장 아니라면 이런 글을 좀 빼주셨음 하는 소망이 있다.

 

그나마 2부 '정치의 둘레'는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자유주의자(?) 복거일에 대한 비평/비판이나 한국보수주의에 대한 비판글들이 그러했다. 워낙 문장이 유려하고 분명하니까... 그러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썼다는 '제안'글이나 '노무현'론은 읽는 내내 맘이 불편했다. 정치공학적 해석과 전략제안은 좀 안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까지 나서지 않아도 한국사회 정치공학자 차고 넘친다.

 

글을 쓰면서 보니까 온통 불만이다.

그렇다. 문화와 정치에 대한 사려깊고 아름다운 시평을 기대했는데, 일부는 너무 사변적이고 일부는 너무 '거칠게' 공학적이었다.

흠, 좀 실망인걸....

 

 

0. 김동춘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도서출판 길 2007

 

 

웬만해서는 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는데, 이건 정말 해도 너무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도대체 기대하고 있는 독자층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나름 이론서적으로서 아카데미아를 대상으로 한다고 보기엔, 너무 엄밀성이 떨어지고 추상적이다. 참고문헌이 거의 인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리적 타당성이나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언술들이 지나치게 난무한다고나 할까?  (가장 웃긴 거 중 하나는 '진화론'을 언급하며 단선적 역사관을 비판한 경우... 좀 너무하시지 않나?) 

그런데 또 내용을 보면, 일반시민보다는 아카데미아를 대상으로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학계에 대해 비판적 자성을 촉구하는 듯한...???

그니까, 무슨 토론회 자료집 성격이 물씬....

읽는 내내, 지금 이걸 가지고 날 가르치려 드는겨?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 ㅡ.ㅡ

결국 절반만 힘겹게 읽고, 맘편하게 포기했다.

다 읽었다. 라는 자족감 이외에 추가로 얻을 편익이 없을 거 같아서다.

이 분은 왜 이러셨을까나? 

 

0. 강주성 [대한민국 병원사용 설명서] 프레시안 북 2007

 

 

얼마전 프레시안의 K 기자가 서평을 부탁해서, 허겁지겁 읽고 썼다.

우리 학생들 강의 와준거 고마운 마음에 냉큼 수락했는데, 하필 가장 바쁜 때에...

그나마, 주말에 허둥지둥 써줬더니만, 정작 업로드는 일주일 있다가.. ㅜ.ㅜ

 

강주성 대표, 참 훌륭한 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사람들에게 혼자만 돈 아끼는 법이 아닌, '사회적 책임성'을 환기시킨다는 점 아닐까 싶다.

책이 좀 많이 팔리면 좋겠다. 프레시안도 사정이 엄청 어렵다고 하던데...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11614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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