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2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31
    끝나지 않은 가을(1)
    hongsili
  2. 2008/10/09
    생활 예술?(8)
    hongsili
  3. 2008/10/01
    안개(2)
    hongsili
  4. 2008/09/03
    책 몇 권
    hongsili
  5. 2008/08/02
    책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의 [불안](6)
    hongsili
  6. 2008/07/04
    혁명의 기록들(5)
    hongsili
  7. 2008/06/15
    심각한 책과 그렇지 않은 영화(3)
    hongsili
  8. 2008/04/29
    망중한?(3)
    hongsili
  9. 2008/04/07
    [식코] 감상문 두 편(1)
    hongsili
  10. 2008/03/24
    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9)
    hongsili

끝나지 않은 가을

이라고 제목은 썼으나 웬지 훌쩍 끝나버린 이 느낌은 뭐냐??? 모름지기, 단풍과, 책과, 따뜻한 차가 함께 해야 할 계절이나 그렇게 하지 못한채, 그렇게 어영부영 흘러가고 있다. 요즘 포스팅이 뜸한지라 통 근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몇몇 지인의 컴플레인을 접수하여 오랜만에 몇 자 적는다. 빅 브라더 빅 시스터들 ㅡ.ㅡ 포스팅이 뜸했던 건,바쁘기도 했지만, 국제정세부터 시작하여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말문이 턱 막힐만한일들이 끊이지 않아,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문을 닫고 살다보니,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ventilation 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블로그라는 반쯤 공개된 공간에 뭔가를 풀어놓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심오한 메타포를 통해 역경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으면야 좋겠으나, 그건 뭐 미션 임파서블.... 서론이 길었다. 책 이야기다. #0.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후마니타스 2008

 

 

우선 저자의 놀랄만한 성실함과 열정에 일단 대찬사 한번 보내드리고...짝짝짝!!! 예전에 프레시안에 기사 연재할 때도 흥미롭게 읽었더랬다. 책은 다소 딱딱했던 신문기사에 비해 훨씬 재미있고 쉽게 쓰여있었다. 나는 부동산 4계급이다. 조금만 마련하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ㅎㅎㅎ 대안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다. 대한민국 국민 치고 부동산, 교육 문제에 한 마디 거들지 못할 사람 없겠으나 (실제로는 줄기세포에서 세계 경제위기까지 ㅡ.ㅡ) 불평하고 '싹 다 갈아엎어야 돼' 하기는 쉬어도 이렇게 세심하게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 대안 자체도 래디컬하다고 비판받을 소지는 차고 넘친다. 점진적 토지 국유화라니...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하지만 가정해보자. 손낙구 씨가 한반도를 쩍 갈라 물길을 파자고 이야기하고, 리만브라더스가 토지 국유화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상황을.... 다시, 전자는 허무맹랑한 뻥이 되고, 후자는 화들짝 놀랍긴 하지만 임박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현실성"이란 그런 것이다. 아, 이제 답은 알겠는데..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팀이 준비하고 있는 의료사유화 관련 책 준비에 참고하라며 후마니타스 대표님이 친히 하사하신 은전이다. 주신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직 우리 원고 마감을 못 시켜, 책상 위의 이 책을 볼 때마다 심한 죄책감... ㅡ.ㅡ)


#0.주제 사라마구 [눈뜬 자들의 도시] 해냄 2007

전편 [눈먼 자들의 도시]가 좋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은디, 나는 눈뜬 자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전작에서, 모두가 눈먼 그 시간과 그 장소에 대한 생생한 묘사, 인간에 대한 공포 등이 매우 흥미롭기는 했으나, 주인공(?)인 의사 부인의 영웅적 풍모, 혹은 성녀의 이미지가 좀 '전형적'인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훨씬 경쾌하고 훨씬 풍자적이다. 그리고 대놓고 정치적이다. 옮긴 이는 이 소설의 결말이 상당히 비극적인 것처럼 평가했는데, 글쎄올시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이토록 발랄하고 완강한 저항이 있으니, 몇몇 등장인물이 비극적 말로를 상황 전체에 대한 비관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할배 어쩜 이리 젊은 감각을... 하면서 놀라고는 했다. 중간에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었다. "...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몇 달 전에 세미나했던 책 (Cultures consequences)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청년기에는 급진적이었던 학자들이 나이가 들면, 보수로 회귀하고 마치 그것을 당연한 사회화/성숙 과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건 Power Distance 가 높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권력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권력에 닿기를 애타게 소망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지, 당연하거나 보편적 현상은 아니라는... 그런 면에서, 나이 90을 바라보는 할배의 이런 날카로운 지적은 멋지삼!!! #0.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2

허접한 감성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J 샘의 추천으로 읽게 된 [Status Anxiety]를 통해 작가의 마력(?)을 뒤늦게 깨닫고 읽게 된 책이다. ".. 또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정말, 이렇게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몇달 몇 년을 꿈꾸다 실행에 옮기는 여행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가판대에서 집어올린 잡지의 표지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어 자신도 예상치 못한 거대스케일의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는... 나 같은 경우는, 일명 앙코르와트 사건과 울릉도 사건이 대표주자 되시겠다 ㅎㅎ "...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이백 퍼센트 동감...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연연해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행 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차와 승객 드문 시외버스를 선호... ".. 훔볼트의 흥분은 세상을 향해 올바른 질문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해준다.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파리를 보았을 때 약이 올라 파리채를 휘두를 수도 있고 산을 달려 내려가 [식물지리론]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다 ㅎㅎㅎ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게 바로 내가 늘상 목말라하는 호연지기... 문제는 약효 지속기간이 너무 짧다는... 알랭의 눈을 통해 보들레르를 다르게 보게 되었고 (예전에는 자기애 환자 취급 ㅎㅎ), 에드워드 호퍼의 강박과 플로베르의 세상에 대한 '짜증'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담 보바리' 첫 장에,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글을 보고 얼마나 세상에 시달렸으면..하고 연민을 가졌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했던 듯... 그리고 러스킨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똑같은 이유로, 러스킨은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들어있지만 끄집어내어 표현하지 못했던 조각들을 이렇게 쏙쏙 와닿는 말글로 대신 적어주다니... 이래서 작가가 필요하다... #0. 스타니스와프 렘[솔라리스] 오멜라스 2008

영화가 원작 소설을 그대로 그려내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돌아보니 영화가 쫌 심하게 왜곡.... 소더버그 영화야 워낙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영미 작가들과는 또다른 기묘한 분위기, 의식과 인식에 대한 도저한 질문들이 정말 읽는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책이다.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자꾸 몰아넣어 마치 스스로 켈빈이 되어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 같은 동화 현상....ㅡ.ㅡ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보면, 2차원의 인식틀이 3차원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점이 XY 평면 떠나 Z축으로 이동하는 순간, 2차원자의 눈에서, 인식 세계에서 그 점은 '사라지는' 것이다. 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식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고, 우리에게 관찰되는 현상은 '사라짐'인 것이다. 전혀 다른 인식의 틀과 방법을 가진 존재들이 조우했을 때, 과연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해는 고사하고 서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비단, 이는 외계행성 솔라리스와 지구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지구별 (별? 은 아니지) 작은 한국사회에서도 도대체 불가해한 이 상황들을 보면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생활 예술?

며칠 전에 미국에 계신 '나무와 숲'님한테 내년도 달력을 선물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구입한 거라고 친히(!) 소포로 보내주셨다. 아마도 우편요금이 달력값 두 배는 들었을 것으로 짐작... 샘.. 쌩유 ~~~ ------------------------------------------------------------------- 고마운 맘을 전달하고자 아직 3달 (겨우 세달 남았다!!!) 남은 달력을 미리 걸고 설정 삼아 사진을 한장 찍어보았다. 그리고, 찍는 김에... 사망을 목전에 둔 내 디카로 집안에 있는 다른 작품(?)들도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생각이 들어, 나름 이것저것 찍어보았다. 조명도 그렇고 배치도 그렇고... 별다른 설정 없이 그냥 대충 찍었다. 귀/찮/아/서/ * 먼저 방문에 걸어본 프리다 칼로 달력이다. 보풀이 신년 연하장과 함께 보내주었던 프리다 칼로 마우스패드까지... 어쩌다보니 한 셋트가 되었다 ㅎㅎㅎ 프리다의 포스가 하도 엄청나서 눈마주치면 깜딱 놀랄 지경...


* 왼쪽의 '생각하는 고양이'는 아바나의 골목 갤러리에서 사온 것이고, 오른쪽 그림은 (사진상 잘 안보이지만) 모래를 뿌려 만든 멕시코 전통 문양으로 내평생 본 박물관 중 쵝/오/라 할 수 있었던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에서 구입한 것이다. 액자는 동네 마트에서 5천원 주고 산 것. 배경에 좀더 질감 있는 종이를 깔았으면 좋았을 걸, 우글쭈글하다... ㅎㅎ * 집들이 때 선물받은 스탠드와 벽시계... 마티스 그림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데다, 바늘도 아주 유려하게 움직이는 첨단 멋쟁이 시계...조명도 의자 색깔이랑 어울려 은근 멋지다... (저 아래 지저분한 식탁 풍경이 안 나와 정말 다행) * 작년엔가... 서울 역사 박물관 앞에서 친구들 만났다가 충동적으로 (?) 관람하고 구내매점에서 구입한 엽서. 춤추는 모습과 색감이 진정 예술이다!! 근데 옆에 굴러다니는 CD case 의 노라 존스 모습은 어째 호러...ㅡ.ㅡ * 역시 집들이 때 선물받은 앤틱 스타일의 하얀색 협탁과, 검은 색/노란 조명이 인상적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6월에 시카고 학회 갔다가 아트 인스티튜트 들러 구입한 미니도판... 의자와 액자, 은근 부조화 속에서 공허함이 극대화된다고나 할까... 후진 후방 조명 때문에 사진찍는 모습이 그대로 다 비쳤다... 저건 뭐냐.... * 작년 브라질 출장 갔을 때 시장에서 구입한 목각 패널, 오스트리아 벨데베레 미술관에서 샀던 에곤 쉴러의 '소녀와 죽음' 엽서.. 그 옆에는 역시 집들이 선물로 받은 지구본이다. 어두워지면 야광으로 별자리가 나타난다. 울 엄마는 저 목각의 할매/할배가 왜 담배를 꼬나물고 있냐고 싫어하신다 ㅎㅎ * 나름 탄생 별자리인 '게자리'를 형상화한 퍼즐이다. 울 오빠가 '저 여자는 왜 먹을 거 위에 올라앉아 있냐?"고 해서 모든 이들을 홀딱 깨게 만들었던 문제작... 아름다운 꿈을 꾸겠노라 침대 발치에 걸어두었지만, 여전히 갈락틱 스페타클 어드벤처... * 쿠바에서 친구가 된 오리엘비스가 한국에 오면서 선물로 가져온 영화 포스터.. Julia 의 설명에 의하면 저 영화 '저개발의 추억'이 엄청난 수작이란다... 꼭 봐야 한다는데 아직 기회가 없네... 그나저나 이 양반들한테 연락한다는게 벌써 몇 달이 지났네... * 집들이 선물로 JK가 건내준 선물이다. 인도네시아 출장 길에 사온 것이라는데, 평소 그녀의 귀차니스트 행보를 볼 때, 저걸 들고 대전까지 왔다는 것은 가히 칭송받을 만한 일이다. 화장실 맞은 편 벽에 걸어두었는데, 볼일 보고 나올 때마다 깜딱깜딱 놀란다... ㅎㅎ * 액자는 많은데, 전세 집 벽에 못을 박을 수도 없고, 딱히 장식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저 멋진 그리스 조각 엽서는 세탁기 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옆에 나란히 놓인 세제들의 모습이 참... 남자 머리채를 잡고 있는 여신의 모습과 세탁기가 어째 묘하게 어울린다는??? * 시계 선물에 딸려온 부록이다. 곧, 저런 황량한 날들이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음은 저렇다... 배경으로 꽂혀 있는 Du Bois 의 평전... 결심한지 2년이 넘도록 표지 한 장 넘겨보지 못했구나..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걸까? * 미국을 떠날 대 SY 와 JY 이 선물해준 것이다. 셔틀버스에 내려 걷곤 했던, John's gate 모습이다. 과연 저 시절이 내 인생에 존재했기나 한 건지 요즘 의심스럽다... 어쨌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 포르투갈의 세라믹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올해 초 리스본에 출장갔을 때 샀는데, 행운을 상징하는 수탉이 아침마다 나의 상쾌한 하루를 열어주길 바라며 방문에 걸었으나 효과는 없다. 나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건지, 자도자도 졸립기만... 원... 하나하나 돌아보니 이런저런 사연들과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동안 잃어버린 많은 엽서와 그림과 포스터들... 그들과 함께 내 삶의 일부도 사라진 것이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안개

무언가와 마주치면 파블로프의 개 마냥 자동재생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조용하게 비내리는 오후에는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가 자동재생되고 '별'을 보면 한 때 남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 단체가 자동연상되는 등... 안개가 낀 날이면 어김없이 기형도의 '안개'가 떠오른다. 양념처럼 무진기행도 ... 아침 알람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항상 밤에 숨겨두고 잔다 ㅎㅎㅎㅎ) 문득 밖을 내다보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그 황망한 와중에 기형도의 시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알람을 찾아 품에 안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잠시 몸을 숨겼다 눈 뜨니 해가 쨍쨍..... ㅡ.ㅡ -------------------------------------------------------------- 안개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책 몇 권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기록없이는 기억도 없다는 안타까운 자가진단에 따라 이렇게 쪽 메모라도 남겨둔다. #0. 권셩현, 김순천, 진재연 엮음.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후마니타스 2008

주변에서, 7월 중 생일인 사람들 대부분에게 모두 이 책을 선물했다. 소박한 꿈에 대한 '소박한' 응원이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바라는 건, 그렇게 엄청난 게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근데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가 너무 어렵다라는... 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즈음, 신촌 홍익문고에 들렀다가 아래와 같은 책도 보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이런 일도 한다... 이랜드 사장님은 매우 훌륭하시며, 직원들은 또 얼마나 훌륭하시던지... 훌륭함이 지나쳐, 가슴이 콩닥거리고 내 머리에 스파크 일어났더랬다 ㅡ.ㅡ

 

 

#0. 박노자 [박노자의 만감일기] 인물과 사상사 2008

 

 

지은이가 블로그에 올렸던 소소한 글들을 묶어낸 책이다. 그러다보니, 좀 어정쩡하다. 워낙 잘 알려진 논객(?)이다보니, 블로그라는 것이 완전히 사사로운 개인만의 공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좌하고 참고문헌 달아가며 쓰는 논문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글에서는 논리가 충분히 정리되지 못했고, 감성적인 글에서는 도덕적 자기검열이랄까... 전반적인 흐름에는 동의하나, 곱씹어 다시 읽거나 돈주고 사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었다. #0.Neil Gaimen & Terry Pratchett [Good omens]

영국 아자씨들의 유머 코드는 비슷한가봐. 읽으면서 계속 더글라스 아담스와 몬티 파이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나 썰렁하면서 웃기던지... 생각만 해도 웃김 ㅎㅎ 닐 가이먼은 정말 빼어난 이야기꾼인것 같다. [Neverwhere]가 고전적이면서도 약간은 우울한 판타지였다면, [American Gods]는 시니컬하면서 도저한 이야기가 있었고, 이번 책은 정말 쾌활하면서 개그 작렬... 테리 프래챗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는디, 이번에 글래스고 서점에 가보니 디스크월드 25주년이라고 서점 안이 완전 도배가 되어 있더구먼... 사실, 판타지 종류 별루 안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이런 거 계속 읽고 있는 이 심리는 뭔지 모르겠다만... 웬지, 닐 게이먼 책은 또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네... 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책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주말 저녁 일도 안 되고, 밀린 기록이나 정리!

 

 

이레 출판사에서 2005년 출판. 학회 소식지 서평 부탁하려고 드린 전화에서 J 샘이 적극 추천해주신 책이라 읽게 되었다. (오래 되서 포스팅 하려는데 기억이 안 나 다시 페이지 찾아봄 ㅡ.ㅡ) 흠, 저자는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는데, 자그마치 1969년 생... (평범 임노동자 우리집 김씨와 동갑인데, 기사작위에.. 대머리 ㅎㅎㅎ)

Status Anxiety (지위 불안) 이라는 원제를 왜 안 살렸는지 모르겠다. 그게 더 좋았을텐데...

저자는 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회적 성공, 지위 상승을 갈망하는가에 대해 역사 속의 철학/문학/예술에 나타난 풍부한 사례들을 엮어 아주 풍부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이론적/실증적 분석에 익숙한 나에게는 간만에 보는 '참신'하고 '재기발랄'한 책! 우리 업계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책은 못 쓸 것이여 ㅎㅎ

 



알랭은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을 '세상이 주는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표혔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위 불안은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할까봐 느끼는 불안이라는 것이다. (잠시 딴 생각... 여의도 텔레토비 동산의 거드름피우는 양복쟁이들,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 또한 사랑이었을까???)

 

속물의 특성에 대한 알랭의 해설은 간단하고도 핵심을 찌른다. '속물의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 그러면서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동의!

 

그는 현대의 소위 '능력주의'가 가져온 슬픈 결과를 이야기한다.

과거, 가난한, 혹은 신분이 미천한 이들을 위안하던 세 가지 이야기, "첫째,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둘째,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셋째,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로의 전환기에 새로운 세 가지 능력주의 이념으로 변한다.

 

첫째,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 있다 (일종의 낙수이론이라 보면 되겠다. 한국 사회에서 잘 통하는, 인재 한 명이 보통 사람 백 명을 먹여살린다는 이야기).

 

둘째,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 물론 이는 타당한 면이 있다. 이는 세습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근대이념으로서의 의의가 있었다. 토마스 페인 (1791)은 봉건적 세습을 비웃으며 이렇게 썼단다. "문학과 과학에 세습제를 적용하면 이들 분야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생각하며 혼자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정부에도 적용시켜본다. 세습적인 통치자는 세습적인 작가만큼이나 모순적이다. 호메로스나 유클리드에게 자식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사 있었다해도, 그들이 완성시키지 못한 작품을 아들이 완성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 포스트모던 21세기에도, 18세기 작가가 상상만으로도 우습다던 일들이 여전히, 더구나 합법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쫌 슬프다. 대통령도 세습하고 (부시 가문), 기업도 세습하고 (이씨 가문)...

 

셋째,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그렇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을' 해야한다는 신임 교육감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열심히 하면 되는데, 안 하니까 낙오되는 것이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능력주의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주는, 엄청난 자가발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성공하는 사람의 && 가지 습관 류의 자기개발서가 눈부시게 팔릴 수 있다. 성공하는 비법을 답은 '시크릿'이 그렇게 몇 백만 부 팔리면, 그게 어디 더이상 시크릿일까???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세상은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불확실성들이, 우리 능력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 알랭이 제시한 다섯가지의 예측 불가능한 요인 - 변덕스러운 재능, 운, 고용주, 고용주의 이익, 세계 경제...

 알랭은 특히 자본주의 생산체계에서 임노동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 노동과 다른 요소(원료, 기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노동자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생산라인 가동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때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자원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산업현장에서의 경제적 요구와 인간적 요구 사이에서 "...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임금에 의존하는 모든 노동자의 삶에서는 불안이 떠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 문제에 대한 작가의 나름 해답은..

 

첫째는 철학적 해법이다.

세속적 가치를 떠나, 통찰력 있는 눈으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ㅡ.ㅡ

 

둘째, 예술이 이러한 통찰력을 키우는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백만번 동감!!! '소설은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라는 표현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는 예술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 모습과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만일 소설의 내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사회는 그 표면만 보고 이렇게 떠들 것이라고 했다.

"오셀로 - 사랑에 눈이 먼 이민자 원로원 의원의 딸을 죽이다

마담 보봐리 -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왕 -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아주 그럴듯하지 않나?

 

셋째, 정치... 알랭은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는 러스킨의 말을 인용했다.

그래, 바로 이게 정치의 역할 아닌가 말여...그러면서 저자는 '분석을 통해 (현존하는) 이데올로기가 (태생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그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넷째, 기독교...

뭐 딱히 기독교를 통해 구원받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멸, 혹은 위대한 존재 (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앞에서 자기 존재의 유한함을 자각함으로써 지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초기 기독교 같은) 공동체 유대가 강화될수록 혼자 어떻게든 성공해보겠다는 지위 불안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평소의 인상이 하도 뭣 같아서 딱히 액면 그 자체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동감... 우주의 역사를 1년 달력으로 비유했을 때, 인류가 출현한 것은 12월 31일 자정 몇 분 전이었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나에게는 오히려 더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를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 시를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자아도취형 인간들의 매니페스토' 쯤으로 생각해온 나로서는 쪼금 당혹.... 요즘에는 소위 보헤미안 적 삶도 하나의 유행이자,고급(?)스러운 아비투스가 되어버린 것 같아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어쨌든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어찌 보면, 일체 유심조의 결론으로 흐르는 듯?

세상이 어찌 되든 네 마음의 평정과 통찰력이 가장 중요하다...???

 

한 가지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소한 이 한국 사회에서)지위 불안은,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까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위협 때문에 생기는게 아닐까 싶다. 세상의 사랑 좀 안 받아도 좋은데, 최소한 인간다운 생존을 할 있게 확 떠밀어버리지나 말았으면 하는 애타는 마음이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혁명의 기록들

최근 중/장거리 이동 중에 읽거나 보게된 실제와 가상의 혁명 기록에 대한 단상..

 

#0. Robert Heinlein.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Tom Doherty Associate Inc. 1997 (원작은 1966년 발표)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소위 SF 업계 Big 3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함께)중 하나인 하인라인의 작품으로, 휴고와 네뷸러 동시 수상작...

(책으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Starship troopers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작가의 의중을 모르겠음 ㅡ.ㅡ

스타쉽 트루퍼스가 군사주의를 찬양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안티인지 헷갈리는 것은 아마도 하인라인의 정치적 이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 듯. 그는 베트남전에 찬성했던 우파. 그런데 위키에 찾아보니 과거 업톤싱클레어의 사회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는군. 더 헷갈려 ㅜ.ㅜ (하긴, 평생  일관된 이력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쉬운 일인가??? )

 

이 책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 존재에 대한 도전으로서 혁명을 찬양하고, 더구나 주인공 중 한 명인 Bernardo 교수의 언설을 통해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한 아나키 철학을 옹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합법적인 전위에 의한 수직적 의사결정구조, Mike 라는 슈퍼컴퓨터의 철저한 '지도', 의회의 '조작'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는 다소 어리둥절(?)한 양상을 보인다. 이거 도대체.... ㅜ.ㅜ

 

나름 합의점을 찾아본다면,

작가는 지향 측면에서 자유주의자로서 자유주의적 혁명을 옹호한다, 플러스

1960년대에 상상가능했던 혁명운동이란 러시아에서처럼 전위가 지도하고 비밀 세포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었기에 작가의 상상력도 거기에 제한되었을 것이다?

 

우쨌든 이런 정치적/사회적 해석은 차치하고,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과 문장력으로 쓰인 것만은 사실이다.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핵심 노드에 자리한 슈퍼컴 Mike의 존재와 기능은 오늘날의 기술수준에서 돌아볼 때, 정말 획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상상력이 아니었나 싶다. 중력의 문제를 혁명 성공 가능요인의 중심에 자리잡게 한 것도 매우 그럴듯하고... 다만 생물학적 문제 - 정상세균총과 병원체의 다이내믹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쉬웠다 (이 부분은 아시모프의 소설들에 훨씬 사실적으로 그려짐). 또한 미국사회에 끼친 파장도 대단하여 이 책에 등장한 'TAANSAFL: There ain't no such things as a free lunch" 이 관용어로 널리 자리잡게 되었다고...

 

하지만, 뭐랄까... 아쉬운 것은...

달과 관련된 혁명운동을 다루고 있는 Ursular LeGuin의 [Disposessed] 와 비교해볼 때, 전자에서의 회한과 정서적 몰입이 전혀(!) 일어나지 않더라는.... 

정통 Hard SF 의 명작이라 칭할만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깊이와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소위 SF 명장이라는 양반한테 이런 평 했다고 밤길에 테러당할지도 모르겠다 ㅎㅎ) 솔직하게도, 루니들의 투쟁에서 '절박함'과 혁명운동의 어떤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겠더라. 글을 너무 머리로만 썼나봐?  하드SF 라고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 Joe Haldeman의 소설들을 보라구!!!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과연, 혁명이 이렇게 이루어져서야 쓰겠나?

나는 이 혁명 반댈세!



#0. Patricio Guzman 감독[La Batalla de Chile]- 칠레전투 3부작, 1972-79년

 

 

 

무릇, 혁명이란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고, 그 지켜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이라 하겠다. 아주아주 힘든........

하인라인의 소설에서 루니들은 컴퓨터와 뛰어난 혁명가들의 혁혁한 공에 힘입어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현실에서의 혁명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민중권력이란...

 

선거에서 이겨보자고 만들었을 노래 Venceremos는 어찌도 이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만 하는 건지.... 다큐가 그리고 있는 혁명시기 민중권력의 모습은,그 '바람직함'에 가슴이 떨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절박함/긴박함 (그리고 그 비극적 말로를 알고 있기에) 때문에 더욱 안타깝기만 했다. 

1부 마지막에서, 반동적 군부의 총구와 나의 눈이 (카메라를 통해) 마주치고 급기야 그 총탄에 의해 화면이 뒤집히는 장면에서,역사의 기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옌데는 포탄이 작렬하는 대통령궁에서 이야기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도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1973.9.11 Salvador Allende)

 

그리고 반동의 총공세에 저항하기 위해 나서는 초라한 행색의 한 남성 노동자는 이야기했다.

"전 이 정부가 민중의 정부라는 걸 압니다. 저는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아요. 얼마 전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겐 자라나는 두 아이가 있고, 그 애들이 다 커서 내가 어떤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평생을 착취당해왔던 노동자로서 대의명분을 위해 죽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죠."

 

단기적으로 패배한 듯 보이는 혁명도,

그 정신은 오롯이 남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또다시 분출되고,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마지막 장에 하대치가 남긴 이야기처럼 말이다...

 

감독과 카메라맨들의 이 뜨거운 시선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그 소중한 역사의 한 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거친 흑백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투쟁을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심각한 책과 그렇지 않은 영화

하도 오래 전에 읽고 본 것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래도 메모해둔 것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1. 제롬캐시러 지음, 최보문 옮김 [더러운 손의 의사들] 양문 2008

 

기억해둘 문장... 187쪽. 어떤 의미에서 과거의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밀려나가고, 그 자리에 대학병원 의사와 지역사회에서 진료하는 '핵심 오피니언 리더"들이 들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다. 278쪽. 왜 기자를 위한 지침이 의사의 경우보다 더 엄격해야 하는가? 의사가 사회에 한 서약은 리포트의 윤리보다 의미도 적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자본 침투가 보건의료계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이나, 자본 침투가 가져올 부정적 결과는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심각한 듯 하다.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과연 어떤 답변들을 가져올지, 살짝 걱정도 된다.

 



#2. 피터 싱어, 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죽음의 밥상] 산책자 2008

우리가 무언가를 '이상할만큼' 싸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통해 생산/유통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 비용을 다른 누군가에게 (대개는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나 주변의 주민들, 그리고 국가보조금 지급의 원천이 되는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들) 전가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완전 동의. 하지만, 그래도 wholefoods 의 식품 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이들을 살짝 나무라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움.다른 데 쓸 돈은 있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윤리적 소비를 할 돈은 없냐? 지금 식품값이 지나치게 저평가 되어 있다구.... 이렇게 읽혀짐... 근데, 과연 그럴까? wholefoods 에 안 가는 (혹은 못 가는) 사람들이, 과연 다른 곳에는 낭비적 지출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식품 값에만 그리 인색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어째, 그건 아닌거 같다. 예전에 미국 머무르던 시절, 이런 기사와 영상들을 몇 번 보았기에 그닥 새로운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당혹스러운 사실들.... 송아지 고기의 선홍빛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인 빈혈 상태를 만들고, 혹시라도 송아지가 우리의 철봉을 본능적으로 핥을까봐 나무 우리에 가두어둔다거나, 마블링을 선호하는 한국과 일본 소비자를 위해 호주에서도 이들 국가로 수출하는 소들은 특별히 더 가둬두고 '곡물'을 먹여댄다는... ㅡ.ㅡ (운동 안하고, 풀보다 곡물 먹어야 마블링이 더 좋다는군) 윤리적 소비가 무엇인가에 대해 결코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고민거리를 던져줌. (근데 답이 없쓰... ㅜ.ㅜ) 이를테면, 로컬푸드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에 동의하지만,사회적/개인적 비용을 계산하여 가장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님.... 물론 이 책이 시스템 속에서 작은 개인들의 저항/변화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사회'의 책임, 개인들의 '제한된 선택'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려웠음. 특히 '비만의 윤리학'이라는 장에서, 노골적으로 개인의 방만한 식습관으로 야기된 비만이 결국 건강보험 재정에 얼마나 누를 끼치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지적하는 부분은 건강행태에 대한 개인의 책임성만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리버럴의 논리와 완전 동일.... 물론 인간이라는 주체가 사회의 영향만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도 아니지만, 사회적 환경이라는 배경 없이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완전 이성적 존재가 아님을 인정한다면 과도한 논리전개 아닐까? 채식에 대해서 생애 두 번째로 진지한 고민을 하도록 만들었으나... 그저, '가급적'의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시 결의를 다지는 수준에서 마무리... ㅜ.ㅜ

#3. [페르세폴리스] - 뱅상 파로노,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 2007

무슨 말이 필요하리....... 긍정의 힘!!! 세상은 그렇게 살아간다!

#4. [인디아나 존스 4편]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08

튼튼함 부문의 바지 지존이 엑스맨 3편의 울버린 것이었다면, 때 안타기 부문의 바지 지존은 당연 인디 박사의 카고 바지라 할 수 있다. 흙바닥에 뒹굴고 모래무덤에 빠져도, 먼지 한 톨 안 묻어 있다. 나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대세는 하이브리드! 이번 편은 엑스파일 시리즈의 프리퀄 정도 되어 주시겠다! 나중에 멀더 아버지의 회상 장면에 인디 박사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라라 크로포드와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조우하는 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에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만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못 만날 인물 혹은 괴물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더랬다. (심지어 2편도 나왔으니...) 그리고, 아마 5편에서는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 (숀 코네리)가 살아나서 인디 박사, 그 아들내미 이렇게 3대가 한번 같이 출동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죽은 사람 살려내기가 헐리우드 전문이잖아... 참, 소련 출신 과학자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은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의 이미지가 하도 강하게 남아, 사투리 강한 우크라이나식(?) 영어 발음이 요정 언어처럼 들리는 괴이한 현상을 체험했다. 요정을 데려다 저런 나쁜 과학자로 변신시키다니.. 어찌나 섭섭하던지 ㅎㅎㅎ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인디 박사... 반가웠어요.... 연로하신 몸으로 이리저리 고생하는 걸 보니 쪼금 마음이 짠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망중한?

지난 3주 동안 틈틈이 즐겼던(?) 꺼리들... 0. 정민 [미쳐야 미친다] 푸른역사 2004

 

 

옴니버스 소품들이라 화장실에 가져다놓았던 책. 1부(벽에 들린 사람들)와 2부 (맛난 만남)의 일부 (이를테면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가슴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음. 그런데... 일 개인들이 시대의 지배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한 양반네들의 풍류와 멋이 마냥 즐기기엔 불편했다. 이를테면 빗길에 가마를 타고 산행에 나서려면 누군가는 그 가마를 메야 하고, 한밤의 급작스런 음주가무를 즐기려면 누군가는 술상을 차려야 한다.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세검정 정자에서 급류를 즐기려면 누군가는 동동거리며 빗속에 음식상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반상 구조가 지배적 질서라고는 하지만, 이 풍류와 멋을 아는 나름 진보적 양반네들은 마음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을까? 그러려니 하면 다 괜찮은 걸까? (책 내용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이런 정서 때문에 사실 몰입이 좀 힘들었음 ㅜ.ㅜ)


0.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 2007 (개정판)

논쟁을 부정하는 사회에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대체로' 바람직하겠지만, "논쟁용" 문제제기가 가진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115쪽, 한국사회의 재벌 편향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말하자면, 내가 노동자 편이라서 이런 건 아니다)노조도 문제라는 논리를 펴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시장질서에 경직성을 가져오는 일종의 권력? 한국 사회에서? 노조 조직률이 겨우 10%를 넘는 사회에서? 한편, 사람들이 흔히 제기하는 비판에 대한 반비판으로 제기되는 논거들이 조금씩 핵심을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에서 제기한 번역투 문장 비판에 대한 반비판이 그렇다. 어차피 우리(?)의 근대학문이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저자의 논거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번역투'를 비판하는 건 말같지 않은 외계어스러움 때문 아닌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에서 오는 생경함이 일부 더해지긴 했겠지만, 내가 번역투 문장을 싫어하는 경우는 대개 그것이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맥락이 다르고, 표현법이 다른 외국어를 완벽하게 1:1로 조응시켜 번역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 하지만 번역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읽히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어 사용자들 (더구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기본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식을 뭉뚱그려 번역투에 대한 비판을 한국어 순결주의로 몰아간 것은 못내 불만이다. 영어 공용화론도 그렇다. 영어를 계속 이렇게 (공용화시키지 않고) 비공식적 영역에 남겨놓았을 때, 소수의 특권층이 전유하게 되어 정보 격차와 결국은 계급 영속화를 낳게 된다는 주장은 참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학문이나 문화를 체득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나? 영어를 공용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영어를 배우게 된다면, 계급/계층 간의 학력 격차, 정보 격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가진 지위재로서의 독특한 위치, 실질적인 실생활 필요도에 대한 구체적 평가, 공교육을 통해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사교육과 해외 체류 경험 등에 대해, 과연 저자는 의식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 이 부분 읽으면서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 ㅜ.ㅜ 그래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들은 있었다. "새로운 모델"에 대한 빈정거림... ㅎㅎ "자신의 주견이 없는 사람들,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도피처로서, 유예된 결정의 명분으로서 늘상 내세우는 그 '새로운 모델'에 이제 신물이 난다 (신비롭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 '새로운 모델'이 언제쯤 나오려나. 그걸 탐색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와주어야 할텐데. 하긴 그게 안 나와야 이 사람들이 계속 바쁜 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 진보의 재구성이니 노동자 정치세력화니, 반대할 일을 없으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각론 없는 총론 타령에 살짝 어이가 없었는데, 이 부분은 읽자니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 ㅎㅎ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제기한 '국어', '국사'에 대한 비판에도 물론 적극 동의한다. 학회 논문 사독을 맡을 때, '우리 나라'라는 표현이 나오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도대체 우리 나라가 어디인가??? 이 한국 사회 거주자들이 아직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냐는 말이다.... 고종석은, 자유주의자로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은 좀 안 쓰면 좋겠다. 정운영 선생과 달리, 자연스런 공감이 아닌 설득에 나서는 순간, 그의 아름다운 필력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니 말이다. 0.BBC [Planet Earth] KBS 미디어 2007

정말 장대했노라.... 광활한 풍광과 자연의 섭리 앞에서 숙연해짐과 더불어, 도대체...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음.. ㅡ.ㅡ 생명체들의, 삶에의 고귀한 투쟁을 폄훼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으나, 인간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남아서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고, 그 새끼는 살아남아 번식하기 위해 살아가고.... 살아 있음으로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는 것. 혹은 오로지 삶의 목표 (그들의 진정한 내면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냐만...)란 생존하여 후손을 남기는 것.... 과연 인간이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솔직하게 자연 다큐가 펼쳐진다. 그것이 내가 이 다큐 시리즈를 보면서 경외와 좌절을 한꺼번에 느꼈던 이유... 0. 모건 스펄록 [Supersize Me] 2007

아, 진짜 이렇게 자막 후진 영화 오랜만에 보았음 ㅡ.ㅡ 학생들 실습 시간에 보여주려고 미리 본 건데... 재미도 있고 교훈적이나 시간은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타겟을 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의 장점은 있으나, 전반적인 경향성에 대한 논의보다 맥도널드라는 '특수'사례에 집중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마도 이게 미국식 다큐 제작 방식인 것 같다. 생생하고 발랄하면서 재미있기는 하지만 뭔가 배후의 거대한 질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우쨌든 불과 한 달 만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거에 나도 나름 충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아까 엘리베이터서 나던 고소한 닭튀김 냄새에 잠시 정신이 어질~ 본능을 거스르긴 어렵다... ㅜ.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식코] 감상문 두 편

내 평생, 영화 하나 보고 감상문 두 개 쓰긴 첨일세... ㅡ.ㅡ 미디어 충청 원고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거짓말처럼 보건의료단체연합의 P 부장님이 전화를 하셔서리... 이미 쓰고 있는 중이라는데도 무조건 또 쓰라니... 그 놈의 대의명분이 뭔지 참... ㅜ.ㅜ 두 개를 다 읽어본 독자라면, 내가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라도 앓고 있는 줄 알게야... 뭐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영화를 보고, 공감을 해 준다면 그냥 감내해야지...ㅡ.ㅡ 0. "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프레시안 2008. 4. 7) 앞선 필자들의 ‘식코’ 감상문들을 통해 독자들은 미국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야 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한 체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보험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청구를 부당하게 기각했노라고 고백하는 의사의 얼굴에 드러난 자괴감,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좋아라하는 환자 가족에게 보험 지급 거절이라는 청천벽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전화 상담원의 눈물, 약관 위반을 찾기 위해 저승사자처럼 환자들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추심인의 냉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돈 때문에 환자를 내다버리고는 어쩔 수 없노라고 변명하는 병원 경영진의 피곤한 표정... 한편 90년대의 대대적인 인수합병 전쟁 후 본격적인 ‘영리산업’이 되어버린 보건의료 체계 속에서 고뇌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닥터 솔로몬(Solomon)의 딜레마』(미국 PBS 제작, 2000년)에 잘 그려져 있다. 보스턴의 토박이 솔로몬은 나비넥타이와 깨끗한 흰 가운의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이다. 환자들의 평판도 좋아 지역 100대 명의(名醫) 목록에도 빠지지 않는 그였지만, ‘케어그룹(CareGroup)’에 속하고 나서 곤혹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부인과 암이 발견되어 상급 병원으로 의뢰가 필요했던 그의 환자는 ‘케어그룹’에 속하지 않은 병원으로 가고 싶어 했다. 안 될 일이다. 보험회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병원은 안 된다고 솔로몬이 이야기하자, 환자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돈 때문에 저를 그리로 보낼 수 없다는 거죠?” 솔로몬은 “네, 그래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14년 된 단골 환자와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버렸다. 또 다른 의사, 케어그룹의 진료부장인 닥터 사알(Saal)은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의사가 직접 경영진이 되니 든든하다고 좋아하던 동료 의사들이, 이제는 자기를 예전의 보험회사 직원 보듯이 하며 “도대체 그 일을 왜 하고 있냐?”며 비아냥댄다는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픈 이들과 그들 가족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만 밝히던 보험회사의 행태를 스스로 반복하고 싶은 의사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캐나다 혹은 쿠바 사람들에 비해 원래 ‘못된’ 사람들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착한 아들딸이고 존경받는 부모이며 따뜻한 이웃이자 동료인 이들이 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인데... 자, 이제 오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이웃 환자가 어느 날 병원비 때문에 강제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자신이 있는가? 눈물로 애원하는 환자 가족들에게, 약관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릴 자신이 있는가? 단골 환자의 눈을 마주하면서, 계약 조건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내 일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료 의사에게 돈! 돈! 돈! 채근할 자신이 있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제도나 체계가, 바로 그 평범한 이들을 괴물로 혹은 천사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나 체계를 선택하고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다. 미국 사회를 엿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미래의 어느 날, 인간이었던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며 괴로워하는 그런 괴물은 되지 말자. 무엇을 위해 우리가 그렇게 변해야 하는가?


수다스러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가 드디어 개봉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미국의 황당한 의료보험 제도 때문에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어가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국만의 비극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경험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병원비를 이유로 환자를 내다 버리고, 일하다 잘린 손가락 중 어떤 것을 붙여야 할지 가격표에 따라 골라야 한다니 말이다. 나 또한 감독 특유의 선정적인 연출 때문에 ‘허걱!’ 하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미국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엄연한 사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국, 캐나다, 프랑스, 쿠바의 보건의료 체계를 지상천국처럼 그린 것은 매우 못마땅하다. 캐나다의 기나긴 대기자 명단 문제는 캐나다 좌파들도 인정하는 엄연한 ‘사실’이며, 외국인들이 쿠바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한다. 더구나 미국의 오래된 봉쇄정책 때문에 건물과 장비는 낡았고 의약품은 풍족하지 못하다. 지구 상 어디에도 완벽한 보건의료 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마다 나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미국의 문제는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다. 몇 가지 간단한 통계를 살펴보자. 가난한 쿠바와 비교당하는 것에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 소위 선진국이라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려 한다. 미국이 연간 보건의료비에 쓰는 돈은 약 1조 7천억 달러, 국민 1인당 평균 6,037 달러 (약 600만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5.2%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OECD 29개국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은 평균 2,515 달러에 불과하며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8.7% 밖에 안 된다 (2004년 기준).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데 과연 그 성적은 어떨까?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은 약 4천 6백만 명(전체 국민의 약 16%)으로 대한민국 총 인구와 비슷하다 (미국 보건부 2005). 국가 간 건강 수준 비교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 중 하나인 영아 사망률 (출생아 1천 명 중 만 1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는 영아의 수)을 살펴보면, OECD 평균이 6.1명인데 비해 미국은 7.0명으로 30개국 중 25등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뒤에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멕시코, 터키가 있다 (2002년 기준, OECD Health Data 2007).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물론 건강 수준이 보건의료체계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이 이 지경에 된 데에는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소리다. 오히려 참신함과 기발함에서라면 이러한 미국의 상황을 본받아 보건의료 산업을 ‘선진화’시키겠다는 우리네 ‘참여’ 정부와 그 뒤를 이은 ‘섬기는’ 정부가 단연 앞선다. 그나마 취약한 건강보험 제도를 그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더욱 튼튼하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어차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기 힘드니 사보험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그 깜찍한 발상 말이다. 그 분들은 미국의 모습이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표준이라는 신심(信心)을 갖고 계신 게 틀림없다. 눈과 귀를 닫고 오로지 시장과 미국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신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나 되는데도 의료보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나, 보험료 부담 때문에 국제 경쟁력 떨어진다고 아우성치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불만, 그 보수적이라는 미국 의사들조차 과반 수 이상이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지지한다는 소식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얼마 전에 개봉했던 또 다른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추억의 바가지 머리를 한 살인마가 등장한다. 희생자들은 이유 없는 자신들의 죽음 앞에서 살인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You don't have to do this!)” 영화 『식코』를 보고 나면 당신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

지난 토욜 오전에 참여했던 세미나의 키워드는 불안과 공포, 고착화, 분리,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월소득 5백만원에 자산이 10억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명백히 '부유층'에, 그것도 상위 몇 %에 들어갈 부유층이다. 사회학 전공 교수들마저 깜짝 놀라게 한 이 통큰 답변의 근원은, 불안과 공포라 할 수 있다. 아무런 보호 수단 없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를 보여준다. 거꾸로 보자면, 이 정도가 안 되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삶은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지배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금욜 저녁 자리에서, 건강보험의 공공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하긴 네이버에 올라온 글 중에는 대운하 건설과 건강보험 민영화 중 그래도 뭘 고를래? 하는 질문이 있단다 (ㅡ.ㅡ).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혜택도 적은 의료보험 차라리 없애고 민영으로 하지... 이랬던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절대로 이런 소리 안 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것 또한, 삶의 일상적 공포 때문 아닌가 싶다. 최근 읽은 책들과 영화 또한 이런 진실을 무지막지하게(ㅜ.ㅜ) 상기시킨다.


0. 우석훈, 박권일 지음.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경제학 분야에서 코호트분석은 그리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도 상당히 대중적 언어로 '세대'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삶에 대한 연민의 한숨과, 다행히도(!) 나는 비껴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외/학원과 교복 없는 중고시절을 보냈고, 연합고사, 학력고사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나기는 했지만 최소한 본인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갈 여지는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중학생인 정이나 담이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다른 이의 비극적 미래를 엿보는 예언자가 슬픈 것처럼 말이다. 이 속 깊은 장난꾸러기 여자애들은 결코 사회가 미리 쳐놓은 울타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울타리는, 부모의 가방끈 길이와 지갑의 두께로 넘는 것이지, 아이들의 품성이나 재능,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다. 책은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비문이 넘쳐났고 중언부언인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나(ㅜ.ㅜ) 저자들의 빛나는 문제의식 덕에 그냥 덮어주기로 했다. 0. 강수돌 저, [일중독 벗어나기] 메이데이 2007 어째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ㅜ.ㅜ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그대로 제본해서 책으로 낸 것 같다. 저자의 문제라기보다 편집자의 문제 아닐까 싶네... 이 책은, 일중독에 대한 임상적/사회학적 진단에서부터 원인,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까지 다방면에 걸쳐 제시하고 있으나 다소 미시적인 접근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들의 변화가 모여서 큰 흐름을 일구어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엔돌핀 때문에 일 중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일을 '부여잡는' 것이라면, 그래도 과연 여기 제시된 처방이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고,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기보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결과'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우석훈의 이야기처럼, 누가 먼저 개미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개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조금 늦게 떨어지기 위해 일 벌레가 되는 수밖에... 0.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There will be blood] 2008 공포영화가 따로 없더라.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현신. 그 자신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피와 눈물이 넘쳐나는구나. 황량한 사막, 그 사막의 가시나무 같은 주인공, 황혼이 지나버린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유정.... 뭐 하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게 없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0. Neil Gaiman [American Gods] William Morrow 2001 있는 그대로 보자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old gods 들이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발악하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옛것에 대한 고답적 향수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들조차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오늘날 자본주의 물신사회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읽힐 수도 있겠다. 아무도 숭배해주는 이 없는 Jinn 이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고향 친구를 만나 우는 장면은 정말 대책 없다... 이 사회,전통적인 신들은 더이상 필요 없다.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 이제 TV의 신, net의 신, mobile 의 신 등이 예전의 신들이 누리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old gods vs. new gods 사이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 (물론 그 뒤에는 또다른 음모가 있긴 했지만...) 참으로 슬프고도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없다. 사실,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랍 등의 신화적 아이콘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어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물론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배경 지식이 충분했더라면 백배는 더 즐겼을 것 같다. --------------------------------------------- 토욜 저녁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당분간 좀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무언가를 보고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메말라 버린 거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