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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5
    파이이야기(5)
    새삼
  2. 2007/04/03
    .마침표를 먼저 찍다(4)
    새삼
  3. 2006/10/18
    사립학교 아이들
    새삼
  4. 2006/08/18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2)
    새삼

파이이야기

지난 겨울, 여행 갔을 때 들고 갔던 책.

같이 간 친구와 번갈아가며 후닥닥,

너무 재미있어서 책 모서리를 접을 겨를도 없이.

역시 난 이야기꾼이 좋아. 철학가들 보단.

조만간 책에 대한 포스팅은 다시...ㅎㅎ

 

놈들은 너무 느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잠과 게으름 덕분에 재규어와 스라소니, 큰수리, 아나콘다에게 먹히지 않는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건기에 갈색 식물이, 우기에는 초록색 식물이 서식한다. 그래서 나무늘보는 주변의 이끼나 나뭇잎과 뒤섞여, 흰개미나 다람쥐의 둥지나 나무의 일부로 보인다. -p16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줜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p17

 

 사회적으로 열등한 동물이 주인과 사귀기 위해 가장 끈질기게 노력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가장 충직하고 가장 필요한 동반자임을 증명해 보인다. 주인에게 도전하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큰고양이, 아메리카들소, 사슴, 야생 양, 원숭이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에게서 관찰된다. 동물업계에는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p64

 

한데 이 '아들'이란 신은 배가 고프고, 갈증 때문에 괭하고, 지치고, 슬프고, 초조해하고, 희롱당하고 똑똑치 못한 제자들과 그를 존경하지 않는 반대파를 참고 봐줘야 한다. 무슨 신이 그런가? 너무나 인간 수준의 신이다. 물론 기적도 있다. 주로 치료 부분에서. 기껏해야 주린 배를 채워주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고, 물 위를 걷는 능력을 보여준다. 마술로 치면 별것 아닌 수준이다. 어느 힌두 신이라도 그보다 밷배는 잘할 수 있으니까. 이 신의 아들은 생의 대부분을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계속 말하면서, 이 아들은 말하고, 인간의 걸음으로 걸어 다녔다-그것도 더운 곳에서. 샌들을 신고 돌길을 걸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고작 나귀였다. 그는 세 시간 만에 신음하고 숨을 헐떡이고 서글퍼하며 죽어간 신이다. 무슨 신이 그런가? 이런 신의 아들에게서 무슨 영감을 얻으라는 건가? -p77

 

"신부님,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요."

그는 미소지었다.

"피신, 너는 이미 기독교인이란다. 네 마음 속에서.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기독교인이란다. 너는 이곳 문나르에서 예수님을 만났어."-p79

 

그 길을 지나기 전에는 바다와 나무들, 공기, 햇살이 저마다 다르게 말했지만, 이제 모두 하나의 언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무는 길을 안내했고, 길은 공기를 인식했고, 공기는 바다를 생각했고, 바다는 햇살과 모든 걸 나누었다. 모든 요소가 이웃해서 조화를 이루었고, 모두 친척이 되었다. -p85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 푼을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스릴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나낸다. 얼마나 분노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단호함이 겁난다. -p96

 

왜 사람들은 이동할가? 무엇 때문에 뿌리를 내리고 모르는 게 없던 곳을 떠나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로 향할까? 왜 스스로를 거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겉치레 투성이인 곳에 오르려 할까? 왜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고 힘겨운 이국의 정글로 들어갈까?

어디서나 대답은 하나겠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며 이주한다. -p105

 

 사람들은 조바심에 시달려 이주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 것도 못 얻을 거라는 불안감이 야금야금 파고들어서, 일 년 걸려 쌓은 것이 남의 손에 하루 만에 무너지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장래가 꽉 막힌 것 같아서. 본인은 괜찮지만 자녀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되겠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 때문에. 행복과 번영을 다른 곳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p107

 

....  이런 물고기들의 소동 속에서 리처드 파커는 나보다 강인하고 또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몸을 올려 최대한 물고기 떼의 공격을 막았다. 물로기 여러 마리가 날개를 버둥대며 산 채로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눈부신 힘과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그 속도가 아니라 동물의 순수한 자신감이었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힘. 그렇게 한순간에 집중해서 현재에만 몰두하는 능력. 아마 최고의 요가 수행자들이 부러워할 능력이리라.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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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를 먼저 찍다

마침표를 먼저 찍다 / 이대흠


 .세상살이의 시작이 막장이고 보니 난 어쩜 마침표를 먼저 찍은 문장 아닌지 .막장은, 마침표는 이전의 것을 보여주는 구멍이다 .그 캄캄한 공사장의 먼지, 이 무수한 마침표를 통해 본다 .오래된 짐승의 알처럼 둥근 마침표 .내 생의 처음이었던 어머니, 그 마침표. 그녀의 검은 눈동자 .한 세상의 아픔이 그득하여 그녀의 눈빛은 맑다 .파이프 메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며 난간에만 빛이 웅성거림을 본다 .난간에 버려진 저 작은 쇳조각, 깨어진 돌멩이가 결국 하나의 사상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어두운 곳이라 난간이 길이다 .난간을 걷는 나의 生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 .무겁다 . 무거운 것들이 적어 세상은 무거워졌다 .대부분 이 짐을 지지 않는다 .마침표를 찍자 여기부터가 시작이다.

 

 

마침표부터,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어.

책상 위에 걸려있는 2001년의 엽서 속에

이 시처럼.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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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아이들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까 봐 두 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p26
영화 속의 대사들을 따라하면서 마틴은 크로스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크로스는 웃으면서 마틴을 피했다. 만약 내 목을 졸려 한다면 허락해 줄 생각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p89
당시 남자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로맨틱한 관심이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남자들에 대해 달리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했다는 것을 . 나도 전교생 앞에서 학장에게 농담을 하고, 그의 별명을 부르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설 자리를 분명히 알고 있는 오만한 남자애가 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 p112
매일 메뉴판을 새로 인쇄한다는 뜻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동안 부정해 왔지만 나는 돈이 인생을 훨씬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는 것, 물욕 때문이 아니라 안락함 때문에 돈을 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있으면 딸과 딸의 친구들을 위해 리무진을 보내 줄 수 있고, 예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뚱뚱하지만 멋진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엄마의 친구 중에도 맥스웰 부인만큼 뚱뚱한 아줌마가 있지만 늘 헐렁한 바지에 작업복 같은 것을 걸치고 다녔다. -p157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좋았다. 다른 사람이 보아도 상관없는 이런 모습이 좋았다. 내가 열한 살 때, 엄마가 남동생 팀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서 내 마음껏 돌아다니다 들어와도 좋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같은 학년 남자애들이나 이웃 사람들이 내 모습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모두들 나의 어른스러움에 놀라 날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 동생을 돌볼 줄 아는 어른스러운 아니니까 말이다. -p198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조금 더 원하는 것도 있고, 덜 원하는 것도 있었으며, 끝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계속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별다른 의견이 없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나를 방관자라고 말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숙사에 돌아가면 반드시 사전을 뒤져서 그 뜻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p242
나는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 보다 더한 슬픔은 없는 것처럼 - p247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와 어울리고 싶어해야 하고, 상대방의 성의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내가 그들에게 방해가 될 거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게 뭐 그렇게 대수일까? -p258
그날 특강을 했던 무용가는 훗날 더 유명해졌고, 그녀의 무용단은 인종적 특수성 때문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나는 잡지에서 정지적으로 그 무용가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나는 신준이 약을 먹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처럼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모르는 상태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p308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심각한 사건들을 나는 항상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건들이 생각처럼 크고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겨드랑이가 간지러우면 긁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 감상적이고, 마치 멜로드라마 대사처럼 들린다.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난다. 말하자면 생각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p311
우리는 때로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제대로 대할 줄 알게 된다. 조금 계산적으로 들릴지 몰겠지만, 나는 내가 그런 시험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한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이 공평한 게 아닐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연습용이었던 적이 있을 테니까. - p361

무언가를 원하고 드러내 놓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얼트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내게 남아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아빠가 내게 취업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열정이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었던가? 열정을 드러내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었던가? 열정은 탐욕, 결핍과 동의어가 아니었던가? 나는 일자리를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취업 면접을 보러 그 자리에 나타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면접관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p366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매번 처음처럼 수줍어했던 것은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증거가 필요했다. 그가 이곳에 있고 싶어한다는, 그리고 나를 만지고 싶어한다는. -p 456
나는 크로스와 허물없이 대화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크로스가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이를테면 피스타치오나 모자 달린 티셔츠, '북방에서 온 소녀'라는 밥 딜런의 노래 같은 것들을 통해서 그가 나를 떠올려 주기를 원했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 그가 나를 그리워해 주기를 원했다.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크로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이기를 원했다. -p443
술에 취했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술에 취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의식이 또렷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날 숙취 상태로 깨어나 보면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술에 취했었는지 알게 된다. -p495


읽고 나서 어딘가 들킨 기분과 이상한 공감대 때문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했던 건 난 크로스가 당연히 흑인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백인 남자는 섹시하지 않다는 나의 편견이 또다시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쯧쯧

 

책읽고 든 생각이 많았으나 졸리므로 패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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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나는 불행히도 그녀를 안다.
그래서 사실은 그녀의 글을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그녀의 인생을 읽는다.
그녀가 겪어 온 세월을 엿본다.
나는 그녀의 글이 가져다 주는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그 글에 실린 그녀의 인생의 무게 때문인지 모르고
자꾸만 운다.

그래도 참 축하해 주고 싶다.
너무나 오랜 세월 하고 싶었던 일,
그녀의 힘든 세월에 힘이 되어주었던 일,
그 일부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있게 돼서. 정말 많이 축하해 주고 싶다.


20년 글의 묶음이 한 권에 나왔다고,
창피하다고, 그랬다.
그건 그녀가 지고 있었던 삶의 무게라는 것을 안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 무게가 그녀의 글을 더욱 반짝거리게 해 줄거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낙원장이라는 단편이 참 좋다.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는.
책도 많이 팔렸음 좋겠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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