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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9
    어떤 날.(7)
    새삼
  2. 2007/10/18
    2007/10/18(5)
    새삼
  3. 2007/10/05
    2007/1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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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10/02
    이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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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9/2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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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9/27
    연휴의 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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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9/20
    스킨에 대한 질문!(8)
    새삼
  8. 2007/09/19
    청춘의 밤(9)
    새삼
  9. 2007/09/18
    저녁(4)
    새삼
  10. 2007/09/17
    대답하라- 오바(9)
    새삼

어떤 날.

그렇게 또 한 해가 흘러갔어 힘들었다는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어느새 또 어떤 날들은 다가오고 똑같이 기분이 좋고 비슷하게 행복하고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조금 변해있고, 할머니의 유품을 묻고 걸음을 세어 가던 어린 아이처럼 나도 이제 어딘가로 한 걸음에 날아갈 수 있을까 날아가 도착한 거긴 어디가 될까 날짜변경선을 쫓아 마구 달리면 나는 계속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을까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이 뭔지도 알 수 있을까 하긴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없는 지도 몰라 어른이 된다는  건.

2004년 생일에 쓴 글.

3년이나 지났지만 저 때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오래된, 이제는 가지 않는 나의 블로그에서
3년 전에 나는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울거나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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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블로그를 옮길 거 같다.

여기가 싫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변화를 주고 싶어서랄까.

 

게을러서 거기도 여기도 잘 굴러갈 거 같지는 않지만

여기랑 안녕하기 전에 이벤트 번개도 마무리해야지.

 

동네엔 슬슬 겨울 바람이 분다.

입김을 벌써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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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술 많이 먹고 새벽까지 수다 떨고도 아침 회의에 가고
적립식 투자 펀드를 두 개나 개설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친구들과 만나고
늦은 밤 엄마의 흰 머리를 염색해 준 하루.




갑자기 어른 같은 삶에 편입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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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간다간다 말만 많던 이사가 내일로 다가왔다.

살며 벌여놓은 짐은 어찌 그리 많은지

정리한다고 해도 끝이 없다.

먼지 사이에 둘러싸여 감기는 나을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이사를 하고 살았다,

고 생각해본다.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안정이나 소속감 같은 걸 별로 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냥 닥치는 대로 살지 뭐, 하는 생각도

잦은 이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아주 어릴 때에 기억하지 못하는 이사를 제외하고도

7살 이후로 내가 살았던 집은 스무 곳 정도이다.

서울과 경기권 근처에서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전세값이 월세값이 오를 때마다 동네를 훌쩍 떠나야할 일도 생겼다.

공간이 달라지면 사람들과도 멀어졌고 친구들은 사라지고 입학 학교와 졸업학교는 늘 달랐다.
외롭다,
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경험을 공유할 친구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삶이 바뀌는 것들이 좋기도 했다.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내 거짓말을 아무도 모르니까. 재미있었다.
사는 걸 계속 리셋하듯이 이사를 할 때마나 새 사람인양 굴었었다.

이번 이사를 마치면 좀 진득하니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어디론가 기어나가게 될까.
상념이 많은 이사 전 날.

옥상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니 어쩐지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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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킁킁거리며 돌아다녔다. 코 끝이 빨개지도록 코를 킁킁 서울 시내를 걸어다녔다. 서울역에서 알티비에 갔다가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페인트 가게를 찾을 수 없어서 명동으로 향했다가 어지러워서 눈 앞에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잘랐다. 짧은 머리는 더 짧아지고 어지러움을 달래고자 따땃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토실토실 걸어서 소공동으로. 롯데호텔 메이드 언니들의 복직 투쟁을 위한 집회에 함께했다. 킁킁킁 나도 언니들과 웃으며 풍물 치고 싶었는데 오늘 담당은 촬영. 집회 촬영한지 오래되어 깜이 떨어졌다. ㅋㅋ 원래도 없었지만... 멍하게 부산만 떨고.. 그래도 너무 환하게 웃으면서 문화제 하는 진짜 왕언니들을 보니까 내 기분도 업업 버마는 슬픈 역사를 반복하고 청계천은 돈 되는 축제들로만 가득하지만 내 코는 여전히 콧물을 뿜어내지만 그래도 이렇게 힘되는 곳들이 있단 건 좋은 일이겠지. 게다가 한 자리에 앉아 수다 떨 멋진 녀성들도 있고. 아웅 킁킁 거리느라 못다 떤 수다가 아쉬운 밤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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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끝

기껏 줄줄이 글을 썼더니 등록되지 않았거나 삭제된 포스트라고....ㅠ.ㅠ 진보블로그님이 말씀하셨다. 아직 아픈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런 충격을... 여하튼 연휴 내내 감기 몸살로 예매한 차표 다 취소하고 이불 속에 갇혀있던 나는 이제는 좀더 여유롭게 살아야지, 깔깔 대면서 더 게으르게 살아야지, 하는 별로 개연성 없는 생각을 했다는 거였다. 췌엣. 사실 그냥 글 쓴지 오래되어 밀어내기 포스팅 하려던 거였다. 이제 이사하고 집단장하면 온라인 집도 좀 가꿔줘야지. 더불어 이벤트 벙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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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에 대한 질문!

어제 울적함 마음을 달래고저 스킨을 바꿨는데 포스트 부분에 이미지를 추가했더니 불여우에선 보이는데 IE에선 안 보이네요. 이유를 몰르겠삼...ㅠㅠ 그리고 포스트 부분의 폭을 좁히려고 햇는데 한계가 있는 거 같아서 달군의 포스팅을 참고했으나 여전히 아리송.. 누가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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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밤

뭐가 됐든 해야해, 하고 나를 다독여본다. 힘들어 못하겠어 그런 말은 그만. 해 보고 안 됨 말지 뭐. 밤이 되니 뭐든 주절거리고 싶다. 이런 저런 생각들 끝에 고민의 원흉들 몇 가지를 포착했으나 풀 길을 모르겠다. 지친 몸에 담배연기를 불어넣으니 몸은 쉬라는 신호로 착각하는지 몸이 자꾸 까부라진다. 감정은 오락가락. 식욕도 오락가락. 때로는 너무 단호해지고 때로는 너무 물러터졌다. 엉엉 울고 싶을 땐 엉엉 울어지지 않더니 어이없게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줄줄. 그러다 '그녀'의 글을 읽고 기어코 울고 말았다. 나에게도 절실한 무엇인가가 있나. 얼마 전 또래 친구들과 미래, 혹은 삶의 전망 따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우리에게 지금 지워진 선택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평생을 어떻게 살지 지금 당장 며칠 만에 정해야 할 것같은 무게감. 그게 어쩌면 나를 너무 짓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주제에. 쩝. 뭐가 됐든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그럼 일이나 해 볼까!! -_-;; 어두운 밤이지만 여전히 빛나는 개청춘!


***5.6매짜리 '청춘'에 대한 글을 하나 써야 했는데, 밝고 긍정적인 글을 부탁한 편집자에게 미안하게도 내 청춘의 글은 이렇듯 무겁고 어두운 글이 되어 버렸네요. '노년'에 대한 글이었다면 훨씬 밝고 가볍게 써줄 수 있었는데.... 5.6매에 마구 우겨넣은 글입니다. 지금 스물 여섯인 내 큰딸 지민이가 읽어주기를 바라며 여기에 올립니다. 지민이와 동갑이었던 과거의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청춘에 대한 예의 이후경 청춘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늘 13평 아파트 좁은 베란다의 식탁에 앉아 누런 원고지 위에 한 자 한 자 글자를 써넣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 남보다 일찍 결혼하여 막 둘째를 낳았을 무렵이었고, 마침 여고 강사 자리가 생겨 산후 2주 만에 그 일까지 하고 있을 때였다. 이틀마다 출근해 내리닫이로 일곱 시간의 수업을 치르고 복도로 나서면 세상이 휙휙 눈앞에서 돌았다. 그러고도 집에 가면 어린 두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대신 아이를 봐준 동생이 돌아가면 두 아이를 돌보며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깨워가며 자정이 넘어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그제야 뒤치다꺼리 일들을 마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 갓난것의 칭얼거림에 다시 깨어 우유를 먹여 아이를 재우고 나면 시계는 훌쩍 새벽 4시를 넘어섰다. 관 뚜껑을 미는 심정으로 억지로 일으킨 몸이었건만 차마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홀로 있는 그 시간이 흘리는 피처럼 아까웠다. 검은 입을 벌리고 나를 빨아들이려 덤비는 삶의 허무감이 아늑한 잠자리의 유혹보다 강했다. 겨우 뚜껑을 열고 나온 관 속으로 또다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진하게 탄 커피 한 잔을 들고, 털로 짠 숄을 두르고, 베란다에 놓인 식탁으로 나갔다. 나는 그곳에 앉아 누런 원고지를 펼쳤다. 무엇을 쓰겠다는 작정도 없었다. 그냥 전날 쓴 것까지를 읽고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을 써나갈 뿐이었다. 감히 완성을 꿈꾸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그 세계로 도망쳐야 했다. 펜대에 펜촉을 낀 옛날식 펜으로 검은 잉크를 꼭꼭 찍어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한숨을 쉬며, 무엇인가를 끼적거리다 보면 어느 새 동이 터왔다. 그제야 겨우 글줄이 풀려 무언가 막 쏟아져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또 하루의 일상을 위해 원고지를 덮어야 했다. 베란다 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오면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와 남편의 평온한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 앞에 나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랬다. 그것은 그 어떤 외도보다도 강렬한 배신이었다. 나는 잠시였지만 그들을 완전히 버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나이 스물여섯, 그것은 그 청춘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여 나는 간신히 청춘에 대한 예의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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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제 기분이 최악이었다가 오늘 낮쯤엔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는 듯 하다가 저녁 때쯤 다시 바닥을 쳤다가 지금은 그냥 쏘쏘. 사소한 것들에 민감해지고 누군가에 말 한 마디에 분노가 화라락 오르기도 하고 술자리의 술은 맛없고 일 할 건 많은데 하기가 싫다. 어제 이삿짐을 싸다가 결국 한 번 폭발을 했고 오늘은 집주인 할머니와 얘기하다가 울컥했다. 집을 가질 수 있을만큼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고민의 시초는 아니었더라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 같다. 몇 개의 문서를 열어놓고 끄적거리다가 진행해야 하는 작업의 구성안을 들여다보다가 TV를 보다가 라면을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서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책상과 책장이 사라진 방은 어째서 더 좁게만 느껴지는 걸까. ㅋㅋㅋ 즐거워보인다. 저 세 문자만 적어놓고 바라보면 기분도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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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라- 오바

누구든 좋으니까. 괜찮다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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