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6/09/06 19:46

최근 두 가지 경험과 1년 몇 개월전 돌봄노동에 대한 스터디 내용이 머리 속에서 짬뽕되면서
육아의 사회화를 넘어선 돌봄의 사회적 분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물론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일부러 만든 건 주말에 한 단체의 페미니즘학교에 가야한다는 압박 덕분이다.-_-;;;

나는 역시 쪼여야 생각하는 게으름뱅이..ㅋㅋㅋ

 

두 가지 경험 중 한 가지는 알엠님과 함께 영상작업하면서 들은 말인데,
‘처음엔 아이를 좋은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어 너무 좋았는데 나중에 보니 타인(교사이려나?)을 착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

다른 한 가지는 누구랑 인터뷰하다가 내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인데,
보육노동이라는 것이 ‘노동’이라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선 사회화되었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본주의와의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저급, 무가치 노동으로 치부되었다고... 여전히 여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돌봄노동과 터무니없는 가치 절하 속에서 과연 사회화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결과적으로 느낀 점은
1) 일단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돌봄노동의 사회화, 육아의 사회 책임을 명확히 하는 육아의 사회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점,
2) 그러나 사회화 과정에서 손상될 수 있는 관계 중심 사적 돌봄 영역까지 포괄하려면 육아의 사회화를 넘어선 실질적인 돌봄(보육을 포함한 모든 필요 돌봄)의 사회적 분배가 필요하다는 점
이다.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군대 의무복무처럼 돌봄 의무복무제를 도입해야 되려나' 했는데, 이 제안 말고 마땅히 다른 방법을 못찾겠다. 아직까지, 진짜로...

 

완전한 육아의 사회화로 해결하면 사적 돌봄에 대한 완전한 상실이 올테고,
사적 돌봄 책임자에 대한 빵빵한 육아 지원을 중심으로 두면 여성 돌봄 편향이 해소되지 않을 터이니 남녀차별이 여전 존재할테고...

 

아무래도 인류학과 지역공동체 문화에 대해 공부해봐야 할 듯. 사람을 모르겠어, 사람을...




사회화라는 화려한 장막에 갇힌 보육 노동자와 그들의 투쟁

 

 

소위 ‘여성(이 하는) 가정 내 노동’이라는 것들의 잘못된 사회화

 

공간만 이동한 착취의 고리

 

예로부터 가정 내에서 행해져온 노동들은 노동자와 노동력 유지 재생산에 필요한 필수노동이다. 이 노동들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 사람에게 집중될 경우 그 사람에게 커다란 해를 입히는 노동이므로, 역사적으로 계급사회는 자신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노동을 착취당하는 집단-대체로 여성-에게 전가해왔다.
이렇듯 ‘가정 내’, ‘여성의 의무’, ‘가치 없는 활동’으로 표상되는 보육노동이 80년대 도시빈민과 90년대 맞벌이부부의 증가에 힘입어 ‘일자리’로 사회적 승인되었고, 어느새 ‘교사’라는 이름으로, 더 나아가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라는 공적 영역에서 노동을 인정받았으니 ‘사회화’되었다고 지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노인을 돌보는 노동자는 표피적 사회화를 이루었을 뿐, 그들에게 매겨진 터무니없이 낮은 노동 가치과 노동자들의 주된 성별은 그들이 남녀차별적 사회에서 상존하는 피착취자 집단임을 드러낸다.

 

극도로 악화된 노동조건은 시장화에서 기인하기 마련이다. 실제 국내에선 시설의 95%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어린이집으로 구축되면서 시장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이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보육노동자는 하루 11시간 노동, 월 100만원도 안되는 임금, 만성적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지원 정책 또한 국공립어린이집 구축과 운영보다는 ‘기본보조금’이라는 이름의 아동별 지원만으로 일원화할 방침이다. 복지에 있어서 수요자에게 수당을 주는 방식은 실제 해당 복지가 어떻게 충족되었는지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심 갖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 정권의 보육정책은 정부의 신자유주의 작풍에 따라 보육 시장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영국에서도 대기업이 보육시장에 개입하면서 여성 돌봄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시킨 바 있다.(Daly,2000)

 

결국 자본주의 내에서 부실한 공적 부조와 돌봄노동자의 저급 노동시장 편입방식의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가정 내 노동의 사회화’는 실현되었다고 보기 힘든 상태이다.
‘보육을 사회가 함께’라는 목표에 충실했어야 할 공적 영역 구축이 오히려 ‘적당한 피착취자(주로 여성)에게 돌봄 미루기’, ‘여성 중심 육아 책임’을 고착시키는 데 일정 몫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울한 판단마저 든다.

 

 

돌봄노동을 바라보는 비사회화된 시선들

 

돌봄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여전히 비사회화된 시선은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얼마 전 들은 한 강의에서 강사가 각종 노동조합의 강의 시 육아도우미 제도를 운영해야 여성조합원의 참여가 평등하게 보장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맞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보육의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된 상태에서 교육받을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려면 육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육노동자 입장에서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고민되는 건 ‘육아도우미’의 노동조건이다. 아무런 보장 없이 이벤트 따라 고용된 육아도우미는 어쩔 수 없는 비정규노동자이다. 더 심하면 특수고용직일지도 모른다. ‘연맹 단위정도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안 되나?’하는 온갖 잔머리를 굴리며 강의 듣기를 뒷전으로 하고 말았다.

 

올해 안에 어느 당의 안이든 통과될 것 같은 장기요양법안에서도 역시 요양서비스 제공자인 돌봄노동자의 지위 인정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기요양에 대한 어떠한 기관에도 간병노동자는 채용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간병노동자는 이미 지정된 비정규,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요양받는 자를 향한 간병노동자의 폭행이나 성폭력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은 존재하는 반면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한 명시는 없다는 점이다. 실제 요양받는 자로부터 받는 폭언과 폭행은 간병노동자들의 입을 통해 종종 흘러나온다. 노동권을 너머 인권마저도 무시될 소지가 농후한 상황이다.

 

심지어 노동계 안에서도 돌봄서비스는 ‘제공받아 마땅할 서비스’라는 생각에서 진일보하지 못한다. 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노동자, 즉 돌봄노동자에 대한 고민까지 가는 길은 꽤 머나먼 여정이 될 것 같다.

 

육아의 사회화를 포함한 돌봄의 사회적 분배에 대하여

 

‘육아의 사회화’.
일종의 사회주의적 표현으로 취급된 꽤 과격해 보이는 표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보육노동자 입장에선 생존에 관련된 노동권 인정의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80년대부터 보육운동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어온 이 표현은 육아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명확한 책임을 나타내는 적합한 표현으로 인식되어왔다.
육아의 사회화 요구 시작은 방치되는 저소득층 아동의 발견에서부터였다. 농촌에서 상경한 도시 빈민층의 자녀는 부모가 맞벌이 나간 사이 잠궈 놓은 방문 안에서 연탄불에 질식사해갔다. 도시빈민 자녀의 유기에 가까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탁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론은 물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회적 책임의 외현화는 탁아소 설립운동에 있었다. 실제 사회라는 공적인 영역 안에 정부가 지원하는 시설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물론 정부의 공공 지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간주도의 시설 설립이 줄을 이었다.


이후 90년대 중산층 맞벌이 부부의 확산은 보육시설의 보편화를 추동해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조차 사회화는 여전히 유효했다. 이미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소용되는 비용은 한 가정의 경제규모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2004년 여성가족부의 적정보육비용 연구 보고에 의하면 만1세아 1인을 키우는데 어린이집에서만 소요되는 최소비용이 월 70만원을 넘는다.
따라서 육아의 사회화, 보육의 공공성이라는 구호는 현실적으로도 매우 타당한 요구인 셈이다. 이를 위한 무상보육 실현, 보육관련 기관의 정부 직영, 보육노동자의 정부 직접 고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한편 육아의 사회화에 천착하다보면 관계성 중심의 사적 영역에서의 돌봄을 간과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어린이집에 있다 보면 아이를 맡기러 오는 사람의 성은 대체로 여성이고 집에서 부모이외의 대리 보육자 역시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결국 21세기 현재에도 아동을 둘러싼 돌봄의 테두리는 여전히 여성들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 의무화 같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보육 공공성 확보는 미완인 채 여전히 여성의 착취에 기반한 거대한 사적 영역의 방기가 유지될 것이다.

 

따라서 보육은 공적 영역화된 보육서비스의 공공성 확보 뿐 아니라 사적 영역을 포함한 전 사회적 책임 분산 모델 구축이 폭넓게 사고되어질 필요가 있다. 실제 한 미국의 학자는 돌봄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집중되는 것은 착취의 재생산만 초래한다고 보고, 시민적 의무로 승화시켜 사회 구성원 모두 일정 기간 ‘돌봄 봉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사회 모델을 제안한 바 있다.(Bubeck,1995)

 

 

이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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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 2006/09/06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 꾹~ 아가 키우는 엄마아빠와 보육노동자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진보블로그공간이 참 멋져요.
    쫌 다른 얘기로, 늘어가는 노인 인구에 대한 '돌봄'도 비슷한 맥락에서 고민해야합니다. 보육과 비슷한 양상인데, 사회적 돌봄이 아닌 새로운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죠. 보육이 그나마 부모들의 '지극한 관심'하에 있다면, 노인에 대한 돌봄은 그것마져 약해서 더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할 듯 합니다.

  2. jineeya 2006/09/07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e/참고로 제가 쓴 돌봄의 표현에는 보육뿐 아니라 다양한 돌봄이 포함되긴 하지만 역시 관심 초점이 보육 중심이져.^^

    솔직히 요즘 사회복지계 최대 이슈는 보육보다 노인복지임다. 특히 장기요양보험 관련 논의는 정말 뜨겁죠. 아마 올해 안에 법안 통과되면서 어떻게 노인복지를 더욱 갉아먹을지...

  3. 곰탱이 2006/09/07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쨌거나 여성의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인정받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번 논문 주제가 <여성노동과 가치>이거든요^^. 게으름 병이 도지지 말아야 할 텐데^^...

  4. jineeya 2006/09/08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곰탱이/인정받으려면 여성의 노동이 아닌 걸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여? ㅋㅋ 그것밖에 모르겠는데.. 여성의노동인 한은.. 쩝... 논문 열시미, 홧팅~!

  5. 곰탱이 2006/09/08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만간 여성노동과 가치에 관한 단상을 포스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6. 쭌모 2006/09/09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육교사 기본급 910000원을 주당 44시간 근무로 나누면 시간당 급여 5170원
    돌보는 아이 열명으로 다시 나누면 한시간에 한명을 돌보면서 드는 돈은 517원.
    이것이 우리사회가 돌봄노동에 대해 지불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돈의 크기.

  7. 알엠 2006/09/09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너무하는군요. 아무튼 저도 지금 고민중인 문제가 몇개 있는데요 12일 행사가 끝나면 정리해서 메일 보낼께요.^^

  8. 슈아 2006/09/09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의 사회화에 표 꾹!!!
    5170원? 참 지들한테 함 해보라고 하세요!!! 참말로...화납니다.

  9. jineeya 2006/09/09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쭌모/훌륭하삼! 실제 근무시간이라 추정되는 주 60시간으로 나눠봤더니 3791원...헉...
    알엘/옷, '너무'?(소심녀 jineeya^^;;) 넵. 담주에 꼭 뵈여.
    슈아/노조는 어쩔 수 없이 보육노동의 제대로 가치 인정받는 사회화부터 시작하지만 역시 육아의 사회화가 병행되어야 뭐든 되겠지여. 언젠가 알엠님이 얘기했듯 부모조직 꼭 필요! 우리 함께 분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