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통신|융합 - 2008/04/07 13:34

* 미디액트 웹진용 글... 살짝 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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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융합이라는 편리함에 안주할까? 진보할까?

 

 

다 아는 뻔한 얘기부터 해볼까?
아침에 TV를 보다가 출근하면서 MP3로 라디오를 듣고, 지하철에선 무가지를 읽다가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우리의 평범한 일과를 한두시간만 들여다봐도 보통 3,4가지 이상의 매체에 노출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매체들은 대중과의 접점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듣고, 읽는 지에 따라 문화와 감성,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매체의 영향력이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에서도 신문, TV, 라디오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유통되면서 매스미디어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특히 TV는 1950년대 등장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극히 사적 영역인 집 거실에 자연스레 침투하였고, 사람들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로잡음으로써 매스미디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는 'tele'와 라틴어로 ‘본다’를 의미하는 ‘vision'의 합성대로, 우리는 TV를 통해 전 세계가 개인의 시야로 포괄되는 기제를 획득했다. 그러나 TV의 별칭인 ‘바보상자‘는 -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반면 - 소수에 의한 컨텐츠 제공 독점이 가져온 언론의 권력 순응과 대중의 무기력 양산을 상징한다. 즉, ‘바보상자’는 ‘바보같은 상자’가 아닌 ‘바보를 만드는 상자’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TV라는 매체를 떠올릴 때 인스턴트 음식이 흩어진 사이로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한손에 리모콘을 꼭 쥔 채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이미지화한다. 초기엔 신기하기만 했던 활동사진 상자가 어느새 허리둘레를 증가시키고 활동적 감성을 감퇴시키는 요망한 것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반면 90년대 중반부터 활기를 띤 인터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TV와 사뭇 다른 의식 과정을 가지게 하였다. 사실상 인터넷은 TV에 비해 사용자의 ‘시청독’ 과정과 컨텐츠 제작 모두의 진입 장벽을 현저히 낮추었으며 매체간 다양한 실험을 가능케 했다. 그간 매체별로 특성화된 컨텐츠의 형태가 요구되었던 반면 인터넷은 비디오든, 오디오든, 텍스트든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가 하나의 매체에 담기는 놀라운 세상을 열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미디어는 융합을 한 셈이다. 더불어 컨텐츠 생산 양식 자체가 보편적이고 저렴하므로, 소비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었던 사용자들은 생산자의 영역까지 활동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어느덧 캠코더가 대중화되고, 컴퓨터로 영상 편집이 가능해졌으며, 이제는 웹상에서조차 편집이 가능하도록 진화하고 있다. 이렇듯 컨텐츠 제작 매커니즘은 기존의 폐쇄성을 넘어서 개방성과 융합성의 개념에 따라 변화해야 유의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은 사용자, 즉 대중으로 하여금 상당한 활동성을 부활시켜주었다. 대중은 찍고, 편집하고, 올리고,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이 만드는 컨텐츠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언론인들의 컨텐츠 생산 개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와 인터넷이 대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주요 유통 공간의 차이다. TV는 사무실이나 공공장소에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사적인 영역인 집 안의 거실에 위치한다. 따라서 ‘TV를 마련한다’는 개념은 공적, 사무적 역할을 위한 무엇이라기보다, 개인의 삶에 활력소, 편하고 안정됨, 지루함을 지우는 즐겁고 유희적인 기능을 추가하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TV에 실리는 컨텐츠는 제작에 있어서 고비용을 요구하고 전문가들 중심의 생산 매커니즘으로 인해 대중의 생산 진입이 어렵다. 어떻게 보면 다소 사적이고 감성적으로 채워질 수도 있었을 매체가 당사자들보다는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부여된 컨텐츠로 감성과 행동을 조율하는 경험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터넷을 담는 컴퓨터라는 통신기기는 개인적 공간은 물론 사무적, 공적 영역에서 모두 활용되고 있다. 대중과의 접촉면만 보면 오히려 TV보다 더 공식적이고 전문적 역할의 컨텐츠가 주를 이루어야할 것 같다. 그런 인터넷은 활용되는 공간만큼 다양한 컨텐츠의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미디어융합’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매체가 바로 IPTV이다. 실제 IPTV의 탑화면은 흡사 인터넷 포털의 그것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IPTV는 멀티캐스트라는 방식을 통해 논리적으로 무제한의 채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블로그나 카페처럼 이용자가 운영하는 개인 매체 채널(Personal Media Channel) 기능이 추가될 수도 있다. 또한 IPTV는 인터넷에 버금가는 쌍방향성을 실현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 시청 중 인물의 의상을 클릭하면 쇼핑몰로 넘어가거나, 관련 검색을 통한 인물정보, 뉴스, 팬 카페 등을 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를 할 때는 다양한 위치에서 촬영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위치에서 시청하도록 선택하게 할 수도 있다. 마라톤 경기를 볼 때는 한 화면에 마라톤 현장 중계 뿐 아니라, 마라톤 코스, 아나운서와 자막서비스, 광고 등을 일목요연하게 배치 가능할 것이다. 전화도 쓸 수 있고, 사진 관리나 UCC 올리기 등도 가능하다.

 

 

 

[출처: 다음goTV(2006버전) - 메뉴화면(http://www.daum.net)]

 

처음 IPTV에서 가능한 기능을 생각했을 땐, ‘TV라는 거대한 모니터’와 ‘H.264같은 고화질 영상’을 만끽할 ‘프리미엄 인터넷 서비스’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기본 포맷은 TV이고, 인터넷에 비해 작동이 월등하게 쉬운 매체이다. 만약 IPTV에서 그동안 PC에서 해오던 인터넷과 사무작업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PC를 버리고 IPTV로 매체를 통일시키지 않을까?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경제적 절약이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TV가 주는 간편함으로 유추해보건대, 점차 IPTV업체가 선정해놓은 컨텐츠의 배치 흐름에 내 시청각과 감성을 내맡기는 상황으로 전개되진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다소 자유로운 인터넷은 IPTV라는, TV와는 또 다르게 컨텐츠 생산자가 아닌 특정한 관리자가 존재하는 다소 폐쇄적인 매체로 통합되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특히 IPTV를 주도하는 집단은 그동안 미디어 공공성 개념과 상관없었고, 앞으로도 쭉 상관없기를 바라는 정보통신업체들이다. TV로부터 막강한 영향력과 ‘편리에 숨은 안주’의 감성을 전수받은 IPTV가 소위 실용주의라는 미명하에 경제 일변도로 재편되어가는 이 시대에 자본 중의 자본인 정보통신업계에 떨어졌다. 그들의 이해관계로 좌지우지된다는 점은 언론이라는 권력의 저항없는 자본으로의 이양을 의미하는 것 같아 심히 불편하다.

 

 

물론 미디어융합시대가 IPTV라는 단일매체로의 수렴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컨텐츠의 유통로는 보다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언론 집단과 달리 컨텐츠가 없는 IT기업들에 있어서 사용자의 생산소비자(prosumer)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보통신업계는 기존 미디어 집단들이 주지하는 컨텐츠 생산 양식에 대한 구속이나 컨텐츠의 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오히려 불편할 것이다. 자신들이 마련해놓은 유통처에 소위 자격을 갖췄다는 특정 생산자들의 컨텐츠만 유통된다면 이해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사용자들의 다양한 컨텐츠 생산을 독려함으로써, 구축해놓은 유통망의 가치를 올리고 상대적으로 기존 생산전문 집단들에게도 가격 흥정의 여지를 마련한다.
국내 미디어융합의 상징인 IPTV 역시 가정용 디지털화된 TV 뿐 아니라 모바일, PMP 등에서도 서비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IT기업들의 유통망 확장 프로젝트는 생산소비자의 육성과 맞물려 IPTV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한때 IT관련 기업이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저작 단계의 어려움을 부각시킴으로써 전문가적 명예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던 시기가 있어왔다. 그러나 결국 사용자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의 기술은 결코 성공하거나 대중화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사용자들은 충분히 생산의 경험과 즐거움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보다 쉽게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기술이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일례로 어도비사는 자사의 영상, 오디오, 이미지 편집툴을 보다 간편하면서도 서로 호환되도록 개발하는 한편, 고화질 제공과 울트라 같은 스튜디오 기능을 가미시켜 방송용 컨텐츠 제작까지도 가능하도록 한다. 또한 유통에 있어서도 최근 AIR 등을 통해 더 이상 MS 윈도우즈나 맥OS, 리눅스 등 운영체제에 구애 없이 단 한번의 개발만으로 자신만의 유통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어도비의 FLASH와 FLEX로 개발된 프로그램들은 웹브라우저를 통해 게시판 등의 자료를 이용하는 것보다 마우스로 파일을 휴지통에 끌어다가 버리는 것 같은 데스크탑 방식의 움직임 구현이 가능해서 사용자에게 보다 친근하고 편리함을 부여한다. 본인이 컴퓨터에 작업 중인지 웹상에서 작업 중인지 구분 못할 정도의 인터페이스와 점점 간단해지는 관리 기능을 실현하는 것이다.

 

[출처: Adobe RIA World 2008 행사 장면 중 하나]

 

자신만의 유통망을 만든다는 것은 나만의 방송국을 만드는 것과 같이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방송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극미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IPTV업체와 어도비사의 사례가 보여주는 흐름은 ‘편리함의 추구’라는 대중의 심리를 기저로 한다. IPTV는 ‘수용에 있어서의 편리함’을, 어도비의 솔루션은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사용하는 기저가 결과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자본이고, 자본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다. 자신들의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기반이 되는 정보통신기술을 더 이상 그릇 용도로써의 매체가 아닌 컨텐츠 유통의 흐름을 제어하는 기제로써의 매체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한대로 확장된 유통망이 눈 앞에 펼쳐진 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유통망에 대한 실험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창출된 공간은 매우 주변적이고 자족적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보통신업체가 구축하는 유통망은 상대적으로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집중된다. 특히 IPTV는 기존 TV만큼의 매스미디어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다양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IPTV의 메뉴 구성이 컨텐츠의 배치에 따라 엄청난 영향력의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정 컨텐츠가 탑 화면에 배치되지 못하거나 메뉴 상 좋은 위치를 점하지 못하면 대중에게 인지조차 되지 못한다. 이는 기존 TV나 라디오의 채널보다 사뭇 불평등하다. 채널은 채널 간 하위 개념을 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수평적이지만, 메뉴는 하위 메뉴가 존재하고 하위로 갈수록 노출도가 급격히 감소하므로 매우 수직적이고 계층적이다. 따라서 포털사이트나 IPTV등에서 발휘되는 화면 편집권은 기존 TV보다 더욱 막강하다.
반면 현재 법적으로 IPTV가 제공하는 컨텐츠 중 공중파의 실시간 방송을 제외한 모든 컨텐츠는 어떠한 규정이나 최소한의 공공성 보장을 위한 규제가 전무한 상태이다.

 

 

‘영화까지 골라준다’는, 그리하여 감성마저 조율해주겠다는 미디어융합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상상도 못할 편리함과 화려함이 ‘안주’와 ‘진보’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물론 가만히 있으면 이미 융합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의 의지만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편리’와 ‘화려’라는 수식어 속에서도 사회의 보편과 상식을 꿈꾸는 이들에게 부과된 과제와 통로 역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기존 미디어 공공성을 넘어서는 개념의 재정립과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융합시대에 걸맞게 매체의 종류나 형태에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더욱 확대되고 서로 호환될 유통망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더불어 그에 걸맞는 컨텐츠의 개발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컨텐츠는 기존의 컨텐츠 생산양식이나 규정을 탈피하면서도 새로운 보편적 원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정 속에서 자유롭고 자율적이었던 인터넷에 버금가는 진보적 컨텐츠와 유통 방식의 발굴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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