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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통신|융합 - 2008/04/07 13:34

* 미디액트 웹진용 글... 살짝 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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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융합이라는 편리함에 안주할까? 진보할까?

 

 

다 아는 뻔한 얘기부터 해볼까?
아침에 TV를 보다가 출근하면서 MP3로 라디오를 듣고, 지하철에선 무가지를 읽다가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우리의 평범한 일과를 한두시간만 들여다봐도 보통 3,4가지 이상의 매체에 노출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매체들은 대중과의 접점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듣고, 읽는 지에 따라 문화와 감성,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매체의 영향력이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에서도 신문, TV, 라디오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유통되면서 매스미디어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특히 TV는 1950년대 등장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극히 사적 영역인 집 거실에 자연스레 침투하였고, 사람들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로잡음으로써 매스미디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는 'tele'와 라틴어로 ‘본다’를 의미하는 ‘vision'의 합성대로, 우리는 TV를 통해 전 세계가 개인의 시야로 포괄되는 기제를 획득했다. 그러나 TV의 별칭인 ‘바보상자‘는 -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반면 - 소수에 의한 컨텐츠 제공 독점이 가져온 언론의 권력 순응과 대중의 무기력 양산을 상징한다. 즉, ‘바보상자’는 ‘바보같은 상자’가 아닌 ‘바보를 만드는 상자’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TV라는 매체를 떠올릴 때 인스턴트 음식이 흩어진 사이로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한손에 리모콘을 꼭 쥔 채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이미지화한다. 초기엔 신기하기만 했던 활동사진 상자가 어느새 허리둘레를 증가시키고 활동적 감성을 감퇴시키는 요망한 것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반면 90년대 중반부터 활기를 띤 인터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TV와 사뭇 다른 의식 과정을 가지게 하였다. 사실상 인터넷은 TV에 비해 사용자의 ‘시청독’ 과정과 컨텐츠 제작 모두의 진입 장벽을 현저히 낮추었으며 매체간 다양한 실험을 가능케 했다. 그간 매체별로 특성화된 컨텐츠의 형태가 요구되었던 반면 인터넷은 비디오든, 오디오든, 텍스트든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가 하나의 매체에 담기는 놀라운 세상을 열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미디어는 융합을 한 셈이다. 더불어 컨텐츠 생산 양식 자체가 보편적이고 저렴하므로, 소비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었던 사용자들은 생산자의 영역까지 활동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어느덧 캠코더가 대중화되고, 컴퓨터로 영상 편집이 가능해졌으며, 이제는 웹상에서조차 편집이 가능하도록 진화하고 있다. 이렇듯 컨텐츠 제작 매커니즘은 기존의 폐쇄성을 넘어서 개방성과 융합성의 개념에 따라 변화해야 유의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은 사용자, 즉 대중으로 하여금 상당한 활동성을 부활시켜주었다. 대중은 찍고, 편집하고, 올리고,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이 만드는 컨텐츠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언론인들의 컨텐츠 생산 개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와 인터넷이 대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주요 유통 공간의 차이다. TV는 사무실이나 공공장소에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사적인 영역인 집 안의 거실에 위치한다. 따라서 ‘TV를 마련한다’는 개념은 공적, 사무적 역할을 위한 무엇이라기보다, 개인의 삶에 활력소, 편하고 안정됨, 지루함을 지우는 즐겁고 유희적인 기능을 추가하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TV에 실리는 컨텐츠는 제작에 있어서 고비용을 요구하고 전문가들 중심의 생산 매커니즘으로 인해 대중의 생산 진입이 어렵다. 어떻게 보면 다소 사적이고 감성적으로 채워질 수도 있었을 매체가 당사자들보다는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부여된 컨텐츠로 감성과 행동을 조율하는 경험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터넷을 담는 컴퓨터라는 통신기기는 개인적 공간은 물론 사무적, 공적 영역에서 모두 활용되고 있다. 대중과의 접촉면만 보면 오히려 TV보다 더 공식적이고 전문적 역할의 컨텐츠가 주를 이루어야할 것 같다. 그런 인터넷은 활용되는 공간만큼 다양한 컨텐츠의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미디어융합’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매체가 바로 IPTV이다. 실제 IPTV의 탑화면은 흡사 인터넷 포털의 그것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IPTV는 멀티캐스트라는 방식을 통해 논리적으로 무제한의 채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블로그나 카페처럼 이용자가 운영하는 개인 매체 채널(Personal Media Channel) 기능이 추가될 수도 있다. 또한 IPTV는 인터넷에 버금가는 쌍방향성을 실현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 시청 중 인물의 의상을 클릭하면 쇼핑몰로 넘어가거나, 관련 검색을 통한 인물정보, 뉴스, 팬 카페 등을 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를 할 때는 다양한 위치에서 촬영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위치에서 시청하도록 선택하게 할 수도 있다. 마라톤 경기를 볼 때는 한 화면에 마라톤 현장 중계 뿐 아니라, 마라톤 코스, 아나운서와 자막서비스, 광고 등을 일목요연하게 배치 가능할 것이다. 전화도 쓸 수 있고, 사진 관리나 UCC 올리기 등도 가능하다.

 

 

 

[출처: 다음goTV(2006버전) - 메뉴화면(http://www.daum.net)]

 

처음 IPTV에서 가능한 기능을 생각했을 땐, ‘TV라는 거대한 모니터’와 ‘H.264같은 고화질 영상’을 만끽할 ‘프리미엄 인터넷 서비스’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기본 포맷은 TV이고, 인터넷에 비해 작동이 월등하게 쉬운 매체이다. 만약 IPTV에서 그동안 PC에서 해오던 인터넷과 사무작업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PC를 버리고 IPTV로 매체를 통일시키지 않을까?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경제적 절약이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TV가 주는 간편함으로 유추해보건대, 점차 IPTV업체가 선정해놓은 컨텐츠의 배치 흐름에 내 시청각과 감성을 내맡기는 상황으로 전개되진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다소 자유로운 인터넷은 IPTV라는, TV와는 또 다르게 컨텐츠 생산자가 아닌 특정한 관리자가 존재하는 다소 폐쇄적인 매체로 통합되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특히 IPTV를 주도하는 집단은 그동안 미디어 공공성 개념과 상관없었고, 앞으로도 쭉 상관없기를 바라는 정보통신업체들이다. TV로부터 막강한 영향력과 ‘편리에 숨은 안주’의 감성을 전수받은 IPTV가 소위 실용주의라는 미명하에 경제 일변도로 재편되어가는 이 시대에 자본 중의 자본인 정보통신업계에 떨어졌다. 그들의 이해관계로 좌지우지된다는 점은 언론이라는 권력의 저항없는 자본으로의 이양을 의미하는 것 같아 심히 불편하다.

 

 

물론 미디어융합시대가 IPTV라는 단일매체로의 수렴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컨텐츠의 유통로는 보다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언론 집단과 달리 컨텐츠가 없는 IT기업들에 있어서 사용자의 생산소비자(prosumer)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보통신업계는 기존 미디어 집단들이 주지하는 컨텐츠 생산 양식에 대한 구속이나 컨텐츠의 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오히려 불편할 것이다. 자신들이 마련해놓은 유통처에 소위 자격을 갖췄다는 특정 생산자들의 컨텐츠만 유통된다면 이해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사용자들의 다양한 컨텐츠 생산을 독려함으로써, 구축해놓은 유통망의 가치를 올리고 상대적으로 기존 생산전문 집단들에게도 가격 흥정의 여지를 마련한다.
국내 미디어융합의 상징인 IPTV 역시 가정용 디지털화된 TV 뿐 아니라 모바일, PMP 등에서도 서비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IT기업들의 유통망 확장 프로젝트는 생산소비자의 육성과 맞물려 IPTV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한때 IT관련 기업이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저작 단계의 어려움을 부각시킴으로써 전문가적 명예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던 시기가 있어왔다. 그러나 결국 사용자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의 기술은 결코 성공하거나 대중화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사용자들은 충분히 생산의 경험과 즐거움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보다 쉽게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기술이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일례로 어도비사는 자사의 영상, 오디오, 이미지 편집툴을 보다 간편하면서도 서로 호환되도록 개발하는 한편, 고화질 제공과 울트라 같은 스튜디오 기능을 가미시켜 방송용 컨텐츠 제작까지도 가능하도록 한다. 또한 유통에 있어서도 최근 AIR 등을 통해 더 이상 MS 윈도우즈나 맥OS, 리눅스 등 운영체제에 구애 없이 단 한번의 개발만으로 자신만의 유통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어도비의 FLASH와 FLEX로 개발된 프로그램들은 웹브라우저를 통해 게시판 등의 자료를 이용하는 것보다 마우스로 파일을 휴지통에 끌어다가 버리는 것 같은 데스크탑 방식의 움직임 구현이 가능해서 사용자에게 보다 친근하고 편리함을 부여한다. 본인이 컴퓨터에 작업 중인지 웹상에서 작업 중인지 구분 못할 정도의 인터페이스와 점점 간단해지는 관리 기능을 실현하는 것이다.

 

[출처: Adobe RIA World 2008 행사 장면 중 하나]

 

자신만의 유통망을 만든다는 것은 나만의 방송국을 만드는 것과 같이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방송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극미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IPTV업체와 어도비사의 사례가 보여주는 흐름은 ‘편리함의 추구’라는 대중의 심리를 기저로 한다. IPTV는 ‘수용에 있어서의 편리함’을, 어도비의 솔루션은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사용하는 기저가 결과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자본이고, 자본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다. 자신들의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기반이 되는 정보통신기술을 더 이상 그릇 용도로써의 매체가 아닌 컨텐츠 유통의 흐름을 제어하는 기제로써의 매체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한대로 확장된 유통망이 눈 앞에 펼쳐진 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유통망에 대한 실험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창출된 공간은 매우 주변적이고 자족적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보통신업체가 구축하는 유통망은 상대적으로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집중된다. 특히 IPTV는 기존 TV만큼의 매스미디어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다양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IPTV의 메뉴 구성이 컨텐츠의 배치에 따라 엄청난 영향력의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정 컨텐츠가 탑 화면에 배치되지 못하거나 메뉴 상 좋은 위치를 점하지 못하면 대중에게 인지조차 되지 못한다. 이는 기존 TV나 라디오의 채널보다 사뭇 불평등하다. 채널은 채널 간 하위 개념을 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수평적이지만, 메뉴는 하위 메뉴가 존재하고 하위로 갈수록 노출도가 급격히 감소하므로 매우 수직적이고 계층적이다. 따라서 포털사이트나 IPTV등에서 발휘되는 화면 편집권은 기존 TV보다 더욱 막강하다.
반면 현재 법적으로 IPTV가 제공하는 컨텐츠 중 공중파의 실시간 방송을 제외한 모든 컨텐츠는 어떠한 규정이나 최소한의 공공성 보장을 위한 규제가 전무한 상태이다.

 

 

‘영화까지 골라준다’는, 그리하여 감성마저 조율해주겠다는 미디어융합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상상도 못할 편리함과 화려함이 ‘안주’와 ‘진보’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물론 가만히 있으면 이미 융합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의 의지만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편리’와 ‘화려’라는 수식어 속에서도 사회의 보편과 상식을 꿈꾸는 이들에게 부과된 과제와 통로 역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기존 미디어 공공성을 넘어서는 개념의 재정립과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융합시대에 걸맞게 매체의 종류나 형태에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더욱 확대되고 서로 호환될 유통망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더불어 그에 걸맞는 컨텐츠의 개발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컨텐츠는 기존의 컨텐츠 생산양식이나 규정을 탈피하면서도 새로운 보편적 원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정 속에서 자유롭고 자율적이었던 인터넷에 버금가는 진보적 컨텐츠와 유통 방식의 발굴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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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13:34 2008/04/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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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통신|융합 - 2008/01/29 13:10

* 지난 1월 24일 미디액트가 주최한 'IPTV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운동 대응전략 포럼'에서 사용한 토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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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융합시대를 맞은 대안언론의 매체 확장 전략의 필요성

 

대안언론이 갖는 매체의 의미와 인터넷의 발견

언론은 매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고 대중의 여론을 형성한다. 형성된 여론을 통해 발생하는 영향력은 바로 언론의 생명이자 힘의 원천이 된다. 여기서 매체는 생산된 컨텐츠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유통망으로써, 언론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대안언론 역시 대중과의 접점이 될 매체의 선택은 중요한 문제이다. 대안언론은 보통 주류언론 내 편집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때론 제한된 보도 범위와 내용의 편협함에 염증을 느껴서, 혹은 주류언론의 매체 장악력에 대항하고자 생겨난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자본과 권력의 부족이 전제되어 있으며, 따라서 매체 선택의 폭도 협소함을 의미한다.

 

실제 대안언론의 태동은 종이신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대항하여 생겨난 각종 종이신문 뿐 아니라 대학의 학보나 단체 기관지에 이르기까지 종이매체는 현재까지도 가장 다양한 집단에서 가장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시간이 흘러 대중의 관심이 TV와 라디오같은 멀티미디어로 이동하였으나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 매체 특성상 대안언론의 진입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미디어운동은 해당 매체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적 지원의 틀과 대중 참여 채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말 등장한 인터넷은 기존 매체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변경시키고 있다. 인터넷은 매체라기보다 개방형 통신에 가까운 개념이라, 등장 초기에 이미 선점되어진 주류 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또한 전송 가능한 컨텐츠의 형태는 텍스트나 음성은 물론 이미지, 영상 등 제한이 없는 매체였다. 기존의 매체들이 특성화된, 내지는 한정된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인터넷은 모든 형태의 매체 유통이 가능했다. 사실상 미디어융합시대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인터넷은 컨텐츠의 생산이나 유통의 비용이 매우 저렴하였고, 이 점은 많은 대안언론이 자신의 매체로 삼아 진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다.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인터넷상의 각종 정보들의 유통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초기에는 굳이 체계화된 언론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기존에 발행 중인 종이 소식지라든가 간단한 자료 제공만으로도 많은 대중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만큼 대중은 다양한 정보에 굶주려 있었고 정보에 대한 소비는 활발했다. 대안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인터넷 전용 언론의 시작은 아마도 1998년 딴지일보 창간, 1999년 참세상방송국 오픈 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등장한 인터넷 언론들은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언론 소비 패턴을 변화시켰고 주류 언론의 생산 시스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YS의 고대 앞 시위 사건이나 386의원의 5.18 광주 술파티 사건 등 특종 보도를 성사시켰으며, 시민기자 개념이나 지면포맷의 파괴 등 언론 생산 및 편집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변화의 지점을 제시했다.

 

실제 인터넷 대안 언론은 전통적인 대안언론이 지니게 되는 표현의 자유와 컨텐츠의 다양성을 넘어서, 매체의 속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대중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냈다. 컨텐츠 상의 대안을 넘어 매체 자체가 대안이 된 것이다. 인터넷 언론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제한되어왔던 정보, 주류언론의 여론 왜곡과 유통망 선점 등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대중의 온라인 활용과 참여 욕구 확대 등이 반영된 결과이다.

 

 

인터넷 상의 주류 등장과 대안성 상실

인터넷 대안언론이 그간 이루어온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중이 인터넷 상에서 소비하는 언론의 최대 승자는 포털뉴스가 되었다. 네이버가 2002년 뉴스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거대 포털은 누구나 기본메뉴처럼 뉴스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2006년 현재 포털을 통한 뉴스 구독자는 이미 80%를 상회한다.

대안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주류가 없다는 사실에 안주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성장한 포털뉴스라는 주류에 완패당한 꼴이다. 실제 대중이 포털을 언론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오판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인터넷 상의 각종 정보와 서비스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은 이제 흡사 정보가 휴지조각처럼 널브러진 무한한 공간에서 고도의 정보 선별력을 가진 서비스를 요구한다. 동시에 자본 역시 자본사회 내에서 한동안 무자본적인 공간으로 존재해온 인터넷에 대한 오랜 공백의 침묵을 깨고 있다. 대중을 서비스로 길들이기 시작했고 저작권 적용을 실제화하는 등 자본 통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물론 권력 또한 정보통신망법이나 선거법 등을 통해 완전 개방형 공간 속 대중에 대한 통제를 시작했다.

물론 포털의 등장과 대중이 포털로 수렴되는 현상은 비단 인터넷 사용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포털로 수렴된 대중은 포털식의 구조화된 정보에 길들여지면서 다른 인터넷 공간으로의 탐색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포털이 컨텐츠 별로 서서히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방식은 컨텐츠=과금이 요구되는 소비재로만 인식하게 함으로써, 서로간의 정보 교류에 대한 인식을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활동 중인 대안 언론들에게 생존이 걸릴 정도의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자본이 개발하는 각종 매체와 정보통신의 기술은 인터넷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이들은 인터넷의 네트워킹 상 장점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통합 인증과 과금 체계를 강화하면서 끊임없이 닫힌 공간을 창출하고 자본의 원리를 철저히 관철시키고 있다.

 

 

미디어융합 국면 속 대안언론의 위치

미디어융합의 상징인 IPTV의 경우, 동일한 인터넷의 통신방식을 이용하여 수많은 망 가입자를 대상으로 서비스 이용을 유도하면서도 폐쇄형 네트워크를 구현함으로써 ‘지불한 자만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새로운 융합미디어들은 인터넷과 동일한 통신 방식으로 인해 다양한 컨텐츠가 상호 유통 가능하며, 실제 인터넷 상의 UCC 등은 IPTV에도 서비스될 예정이다. 그러나 컨텐츠가 점차 자본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지불’을 전제로 한 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간의 컨텐츠 교류는 양쪽 모두를 산업화로 몰아갈 것이다.

 

결국 인터넷상의 주류 언론과 폐쇄형 네트워크를 가진 융합매체의 등장 및 사업 확장은 자유롭고 광활하던 인터넷이라는 매체 유통망이 구획화, 자본화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안타까운 점은 인터넷 상에서 대략 5년여 간의 짧은 풍요의 기간 동안 대안언론이 정립한 대안적 표현의 자유 확장, 미디어주권 확보 등과 같은 미래의 밑천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막대한 자본과 권력의 논리로 회귀하는 인터넷과 향후 융합된 미디어들의 환경은 제2의 매스미디어 시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대안을 꿈꾸는 언론들은 TV와 라디오 등의 매스미디어가 등장했을 때 느꼈던 막대한 자본의 힘과 선점될 장악력의 쓴맛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설상가상, 통신 자본이 중심에 서게 될 제2의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그나마 기존 멀티미디어 방송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공익성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매체라는 그릇은 언론이라는 내용물과 관계없이 성장하고 있으며, 운영하는 언론이 없어도 대체, 배치할 수 있는 언론이 주변에 널려있다. IPTV는 자체 컨텐츠를 생산하지 않아도 기존 TV나 케이블, 영화, 비디오, 뉴스 등 이미 존재하는 각종 컨텐츠들을 주워 담기만 해도 존재 가능한 매체이다.

예전의 대안언론은 설립 자체만으로도 대안 운동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대안언론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매체에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체를 갖지 못하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따라서 대안언론은 -특히 인터넷 대안언론들은- 이제라도 자신의 매체 영역에서부터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고 다양성 및 공공성 보장의 길을 모색해나가야한다.

 

 

대안언론 입장에서 고려해야할 대응 전략

 

1) 방송, 언론, 통신 운동 진영의 결집과 공동 대응

지난해 12월 IPTV법이 통과되었고,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올 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언론, 방송, 통신은 동일 기구의 진흥과 규제 하에 공공성 붕괴와 컨텐츠 상업화가 예상되는 악순환 고리로 함께 엮인 셈이다.

미디어 영역에서 공공성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미디어 다양성, 대중의 참여를 전제한다. 따라서 비단 퍼블릭 액세스나 공영방송 뿐 아니라 대안미디어 영역 전반이 공공성 확보를 통해 자신의 대안성과 내재된 다양성을 펼쳐나갈 수 있다.

최근 미디어융합 국면은 흡사 도미노게임을 연상시킨다. 한 분야에서 무너진 공공성은 다른 매체의 영역까지 전이된다. 따라서 운동 진영의 결집과 투쟁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사실상 동일한 법과 정책을 통한 진흥과 규제 통합이 예상된다면 반대로 한 매체에서 지켜지는 공공성 정책이 다른 매체로 확장될 여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매체가 언론이나 방송과 분리되는 상황에서는 대중과 만나는 접점인 매체에 대한 전반적인 공공성과 다양성 확보 요구가 필요하다. 즉, 융합미디어 상의 공적 컨텐츠 제작 지원과 방영 의무 규정을 통해 안정적인 유통망의 확보를 이루어야 한다.

 

2) 대안담론 생산자로서 자기 컨텐츠 규정

대안언론은 언론으로써 대안성과 실험정신, 그리고 진보적인 언론 원칙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안언론이 기존 언론의 전문적이고 유효한 저널리즘을 수용하는 동시에 자기 철학을 정비해나가지 못한다면 언젠가 정체성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진보성과 자기 규정력을 통해 대안언론은 미디어 다양성으로 포용되면서 공공적 차원에서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실제 인터넷 매체에서는 기존 언론에서 시행하지 못했던 다양한 실험이 있어왔다. 대중이 직접 기자로 참가하고, 기사의 길이가 파괴되고, 한가지 포맷이 아닌 다양한 형식의 컨텐츠가 한 화면에 구현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언론은 자신의 컨텐츠를 비영리성을 전제로 공유하거나,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 전달 방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인터넷에서의 대안언론이 갖추어야 할 저널리즘으로 구축되지 못한 채, 오히려 ‘허접한’, ‘비전문적인’ 취급을 받는 실정이다. 따라서 대안언론은 대안적 저널리즘 형성을 위해 대중과 함께하는 바람직한 보도 원칙이나 정보 공유적 제휴의 원칙, 소수자 권리를 존중하는 철학을 세워나가야 한다. 끊임없는 자본 논리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안 언론에 걸맞는 원리 원칙의 정립과 재확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3) 융합미디어에 대한 분석과 교육 지원 요구

IPTV는 논리적으로 채널수의 제한이 없고 컨텐츠 배치가 메뉴 방식이다. 사업자가 원치 않는 컨텐츠는 대중이 찾을 수 없는 하위로 숨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IPTV의 경우엔 기존 방송 개념의 ‘공공 채널 확보’요구보다는 TV 탑화면의 일정 % 이상을 공공 컨텐츠로 배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 또한 IPTV는 전화와 인터넷망 같은 서비스간 융합과 다양한 컨텐츠 유통으로 인해 인증과 과금 단계에서 가입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융합미디어가 가진 매체적 특성을 파악해야 적절한 대응과 정책 생산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새로 등장한 매체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이 필요하며, 동시에 필요한 정보 공개와 교육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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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13:10 2008/01/2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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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통신|융합 - 2008/01/23 18:58

* 민중언론 참세상에 쓴 글

 

 

미디어융합, 자본의 힘다지기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3) - IPTV로 본 융합 환경과 공공성 과제

 

 

최근 1,2년 사이 업계와 언론을 통해 간간히 들려오던 미디어융합시대의 도래는 하나TV, 메가TV와 같은 IPTV 서비스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디어 융합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미 시작된 현상이다.


기존 언론과 방송들은 각자 신문, TV, 라디오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매체를 가지고 있고, 기사, 영상, 음성과 같이 매체 특성에 맞는 단일한 형태의 컨텐츠를 생산해왔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매체가 담을 수 있는 컨텐츠의 형태 제한은 사라졌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텍스트든, 영상이든, 음성이든 어떠한 형태의 컨텐츠도 수용하고 심지어 병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미디어 융합은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 아니다.


IPTV 역시 단말기가 PC에서 TV로 바뀐 것일 뿐, 기술적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데이터 통신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컨텐츠가 제공 가능하고, 인터넷 통신망 역시 그대로 사용 가능하다.


IPTV 도입 초기 단계인 현재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컨텐츠를 볼 수 있는’ VOD(Video on Demand) 서비스가 주요 특징으로 소개되고 있다. 즉 기존의 TV와는 달리 웹사이트처럼 채널을 메뉴에서 선택하고, 편성 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리모콘 버튼 하나로 원하는 컨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볼 수 있다. 매주 월화나 수목 드라마가 회사원들의 퇴근시간마저 조율하던 진풍경은 언제든 시청 가능한 IPTV 속 쌓여있는 시리즈물 틈에서 사라진 옛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미디어융합시대’라는 간판에 숨은 속셈


그렇다면 굳이 IPTV를 기점으로 새로운 미디어융합시대를 표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나라 통신시장은 주로 망 구축과 관련 서비스를 중심으로, 1997년 약 11조 원에서 2005년 약 38조 원 규모로 수직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통신망은 물리적 확장 공간도 없을 뿐더러 추가 수요가 없다보니 업자들 간에는 가입자 뺏기와 저가 경쟁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한편 망이 공공적 관점을 상실한 채 순수 민간자본으로 구축되는 동안, 인터넷은 대중을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제작자로 끌어올렸다. 제한된 매체를 통해 편중된 정보만 접하던 대중은 인터넷의 무한한 정보와 소통에 매료되었고, 동참하였고, 다양한 실험을 함께 했다. 인터넷에 등장한 각종 대안언론들 역시 주류 언론이 터부시하던 주제를 다루면서 보도 내용과 관점의 범위를 넓혀왔다. 밀레니엄 초기의 인터넷은 그야말로 대중의 힘이 자본의 통제보다 우위를 점하던 공간이었다.


결국 통신사업자는 인터넷 자체의 자본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신규서비스 창출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을 고려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 관점에서 IPTV는 매우 훌륭한 상품이다. 가입형 폐쇄 네트워크로써 인증과 과금체계를 통해 완벽한 자본의 논리를 구현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통신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방송이라는 컨텐츠를 보강함으로써 삶의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기를 획득한 셈이다. 더불어 대중의 안방에 진출함으로써, 향후 도래할 홈네트워크 시대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부가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철저히 산업의 이해관계로 진행되어온 IPTV사업 추진은 방송사업자들과의 긴장관계 속에 늦춰지는 듯 했으나, 대선 이후 이전의 진도가 무색하게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28일 소위 IPTV법이라 불리우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법(IPTV법)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는 미디어융합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방송과 통신의 정책 및 규제를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발표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조율되지 못했던 부처와 산업간 이해관계가 이명박 시대를 예고한 바로 그 시점에서 경제 논리 일변도로 순식간에 정리된 셈이다.


융합 국면을 이용한 미디어 공공성과 다양성의 박탈


원론적으로 미디어융합은 매체 간 경계 붕괴를 의미하며, 매체별로 묶여있던 컨텐츠의 다양한 교통을 전제한다. 컨텐츠의 다양성은 표현의 자유 및 대중의 폭넓은 참여와 상호작용하면서 미디어 공공성을 완성해 나가는 주요 목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의 융합미디어는 미디어융합의 내재적 속성과 무관하게 경제대통령과 상인들의 의지에 따라 산업 기능만 남은 또 하나의 바보상자일 뿐이다.


매체는 여론을 좌우하는 언론과 방송의 주요한 유통로다. 대중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자본과 권력의 목소리만 남는다. 따라서 매체에 있어서 공공성 요구는 고답적 개념이 아니다. 실제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의 다양성, 그리고 대중의 미디어 권리를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정책이다.


당장 장애인을 위한 자막이나 음성 서비스 규정이 없다면 장애인의 매체 소외는 가속이 붙게 된다. 유료화 서비스의 증가는 빈부에 따른 미디어 격차를 증폭시킨다.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탈각된 매체가 대중에게 입히는 피해의 단면이다.


혹자는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이 인터넷의 UCC로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은 시청자의 볼 권리를 참여 권리로 확장시키는 총체적인 과정이다. 미디어센터를 통해 미디어권리와 제작을 교육하고, 시민방송 RTV와 같이 언제나 참여 가능한 통로를 확보한다. KBS 열린채널과 같은 공영방송으로의 참여 가능성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


그간 언론과 방송은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여 통신에는 존재한 바 없는 공익성과 공공성을 규정해왔다. 일례로 방송법상 방송사업자는 프로그램 편성 및 제작 등의 의결과정에 시청자의 역할을 배분하거나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IPTV법에는 VOD 서비스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존재하지 않으며, 수많은 방송법 준용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참여프로그램 편성 의무에 대해선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인터넷 포털의 경우에도 대중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포털의 위세는 네티즌들의 인터넷 활동 반경을 제한시키면서 문화를 지배함은 물론 ‘열린’ 인터넷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어떠한 정책적, 법적 공공성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부처부터 이미 산업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우리 나라 IT정책의 결과인 셈이다.


통신업계와 새 정부의 산업중심주의가 만난 지점에서 만개하는 융합미디어는 대중에게 미칠 막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공적 의무에 대해 기금 약간으로 면피할 예정이다. 한편 IPTV는 방송과 통신서비스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거대 자본의 뒷받침이 필수적인 매체이다. 따라서 대안언론이 진출할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공공성에 기반한 컨텐츠의 다양성 확보 의무를 규정하지 않으면 엔터테인먼트만이 존재하는 돈벌이 공간일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새 정부가 일관되게 관철시킬 공공성 배제의 기조가 비단 IPTV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수위가 추진 중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 범위와 최근 활발히 진행 중인 케이블TV의 디지털화는 방송과 통신사업 간의 경계 해소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국 기존 매체들은 단기적으로는 융합미디어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통해 공공성 관련 규정의 회피를 용인 받게 된다. 한편 인수위의 MBC 민영화 검토 발언이라든가 IPTV법의 의도를 살펴보면 KBS1을 제외한 모든 매체는 민영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민영’의 의미는 곧 공공성에 대한 어떠한 규정도 받지 않음을 뜻하게 될 것이다.


공공성 확장을 위한 선순환 궤도의 발굴


현실은 이렇다. IPTV라는 융합미디어를 시발로 인터넷과 케이블TV 그리고 결국 지상파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공공성 축소와 컨텐츠의 상업화로 인한 다양성 상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과정은 IPTV법의 비호 하에 흡사 공룡 같은 규모와 권한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공공적 정책이 작동되는 매체가 존재한다면 여타 매체로의 확장 역시 기대해볼 만하다. 매체 간 시장영역이 겹치기 시작하고 서비스 내용이 닮아가는 동시에, 동일한 기구의 정책과 규제를 받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그나마 반영된 공공성 영역의 발굴과 수호, 그리고 확장이 필요하다. 특히 미디어운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시청자의 참여와 퍼블릭액세스는 융합미디어에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좀 더 나아가 방송에서 관철되어오던 공공성 개념과 정책은 융합시대를 맞이하여 보다 확장될 필요가 있다. 시청자의 권리를 ‘소통과 참여’로 확장시켰듯 현재 공익광고 수준에 머무는 공익/공공 컨텐츠의 의미를 내용적 측면에서 다양성, 소수자 등의 개념을 포함한 컨텐츠로 확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확대된 공공 컨텐츠들이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 융합미디어에서도 유통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더불어 다양한 대안 컨텐츠 생산 집단들은 자신들의 컨텐츠가 갖는 대안성을 보다 면밀하게 정리함으로써 유통이 갖는 의미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성 확대로 마련될 미디어 다양성 정책에 충실히 복무할 수 있다.


확장되는 공공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부 기구 재편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나가야 한다. 특히 인터넷과 IPTV는 공공 미디어 진흥이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산업 규제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미디어 융합국면의 흐름을 산업화가 아닌 공공성 확보로 바꾸면서, 공공 컨텐츠 및 매체에 대해 지원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매체를 가진 산업들에 공공 컨텐츠 유통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대중의 다양한 미디어 접근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융합미디어 자체에 대한 분석 역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IPTV는 논리적으로 채널수의 제한이 없고 컨텐츠 배치가 메뉴 방식이다. 사업자가 원치 않는 컨텐츠는 대중이 찾을 수 없는 하위로 숨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IPTV의 경우엔 ‘공공 채널 확보’ 보다는 탑화면의 일정 % 이상을 공공 컨텐츠로 배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 또한 IPTV는 전화와 인터넷망 같은 서비스 간 융합과 다양한 컨텐츠 유통으로 인해 인증과 과금 단계에서 가입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융합미디어가 가진 매체적 특성을 파악해야 적절한 대응과 정책 생산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최근의 미디어융합 환경은 흡사 도미노 게임을 연상시킨다. 한 매체에서 공공성과 다양성이 상실되면 다른 매체로의 전이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국면 자체가 자연스레 대안언론과 방송 및 통신운동 진영의 대규모 결집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판단과 행동이 공공성 확장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수 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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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3 18:58 2008/01/2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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