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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 1981년에...

가끔 내 영혼이
1980년대 초반의 어떤 시점에 묶여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를 보다가도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 떼지어 일어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내달릴 때
그 성패를 떠나서 무조건 눈물부터 흘리곤 한다.
때론 그것이 너무도 황당하여
주변의 모두가 와하하하 웃을 때조차도
나 혼자 뚝뚝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눈물조차 억압하던 시대가
내 젊은 시절에 있어서 그런가 보다.
언젠가 80년대를 젊음으로 지나온 사람들은
모두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거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나한테서 자주 그런 징후를 본다.

 

각설하고,
옛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일일이 등사기로 밀고 제본까지 직접 했던
동아리 회지에 실린 내 편지글이 눈에 띄었다.
감히 복사라고는 엄두도 못내던 시절,
일일이 글씨를 쓰고 수천매를 등사기로 미는 것까지야
남들도 다 하는 일이었지만,
직접 제본까지 한 것은 돈을 좀 아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검열이 엄격했던 그 때,
우연한 일이었던지
누군가 걱정되어 미리 검열을 받았는지
230쪽 두께의 그 회지 중에서
유독 내 글을 지목해서 문제가 있다고
당시로서는 위풍당당하던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그러더라고
몇 친구들이 걱정 반 장난 반 섞인 표정으로 얘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졸업정원제를 비판했던 글을 단과대 회지에 기고했다가
책은 인쇄되어 나왔는데 내 글의 일부는 가위질되던 기억도 있다.

 

글을 다시 읽으니
내 병의 근원이 쬐금 보이는 듯하다.
치기, 감정의 과잉, 자발적 격리의 버릇...
참, 아래 글을 쓰던 때 나는
한 학기 자의반 타의반의 휴학을 하고 시골에 칩거 중이었다.

 

 



신이여, 이 약한 자를...
-ㅇㅇ 6대에게

 

1.
들국화가 지고 있다.
가을이 지나는 들판
찌푸린 하늘 밑으로
저녁 바람이 엉금엉금 기어오고
여기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 있어
지평선 너머로
별빛처럼 한 점으로 비쳐오는
도시를 바라본다.

 

쫓을 수 없는 사랑이란
감정, 씻을 수 없는
죄의 느낌...
꿈도 현실도 아닌
이 차디찬 공간의 어슴프레한
모퉁이에서
아아,
나는 정녕 뉘우쳐야만 하는
못난 이.

 

샛노란 절망으로 치닫는
내 심장의 비통한 절규는
나의 입을 막아 벙어리가 되게 하고
나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게 하고
내 얼굴을 덮어 표정을 가린 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와 나의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목을 메는 간절한 기도로서도
한 나절을 흘리우는 참회의 눈물로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없음을
지금 나는 알고 있지만
약한 자의 가슴을 얽어 맨
한 가닥 가냘픈 미련의 끈으로 하여
낮과 밤의 경계에서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친구들의 이름을 부른다.

 

용서해 다오
나의 친구들이여!

 

2.
손가락을 깨무니 피가 솟아난다.
맑은 적색의 아름다운 피가
내 손 끝으로 흐르고 그것은 이윽고
방울방울 나의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내 모든 친구들의
이름이 거기 하얀 종이 위에
쓰러져 있고 나는 피의 눈물에
젖고 있는 그들을 부르며 눈을 감는다.
(머리 속에는 아직 미운
도시의 그림자가 남아 있지만
이제 나의 사랑과 증오의 허황된 꿈들은
힘겨운 날개짓을 하며 사라져 가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다. 피가 흐르고,
눈물이 흐르고,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바다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표류하고 있다)
잠시 동안의 침묵과 함께 나의
친구들은 선명한 미소로서 내
가슴으로 줄지어 들어서고 나의
감은 두 눈이 자그마한 경련을
일으키자, 우뢰와 같은 함성과 함께
하늘과 땅이 핏빛으로 하나가 된다.
-오오 신이여!
바라옵건대
나의 친구들의 아름다운 영혼이
보다 자유스럽고 진실하게
만날 수 있기를~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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