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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리운 날이다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

- 조 영 관

 

어쩌다 곰장어 포실하게 익어 가는 포장마차에서

몇 자 끼적거리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 왈

가슴을 때리면 때리는 것이지

때릴까 말까 그렇게 재는 것도 시냐고

저 푸른 풀밭 거시기 하면서 끝나면 되는 것을

뭐 좋은 말 있을까 없을까 겁나게 재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고

친구는 심심한 입으로 깐죽거리며 얘기했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자기 깐에 흥얼흥얼 불러제낄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업어치고 뒤집어 쳐서 깐 콩깍지인지 안 깐 콩깍지인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가게 써 놓은 것도 시냐고

툭 터진 입으로 잘도 나불대다가는  

거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걸레로 박박 문대 닦아내드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 머리에도

훤하게 쏙쏙 들어오게 고렇게만 쓰면 될 것이지

기깔나게 멋만 부려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라고 친구는 겁나게

싸갈탱이 없이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니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해 놓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 짜샤 나도 안다 알어 그 정도가 될라면

얼마나 지지고 볶고 엎어치고 뒤집어치고

대가리를 얼마나 질끈질끈 우려먹어야 되는지 나도 안단 말이다

허지만 요즘 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해쌓다니

정말 신통방통허다면서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다가는

달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며 술까지 채워줬는데

 

그래 죽도 밥도 안 되는 시

고것도 사치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다마는 하고

서두를 떼어놓고도

시가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그렇게 흘러나오기가

쉽냐 임마 하고 말하려다가

술잔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팍 수그리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한심하다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친구는 입맛을 츳츳 다시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흔적을 남기는

우리 인생살이 같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 같지 않고

욕 같으면서도 욕이 되지는 않는

망치로 때리는 것 같지만서도 호미로 가슴을 긁는 시가 될라면

졸나게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어려운 시가 될라면

얼매나 깊은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겄냐 자식아,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웬일로 한숨 같은 기침만 터져 나오는지

연기 자우룩하게 곰장어는 익다 못해 타고 있었는데

 

<실천문학 2002년 가을호 신인상 당선작>



조영관

 

2007. 2. 20. 간암으로 세상과 작별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함평 학다리중학교 졸업

성동고 문예반 활동

서울시립대 문학동아리 '청문회' 활동

1984년 영문과 졸업

도서출판 일월서각 근무

1986년 이후 노동현장 활동

 

1999년부터 다시 글쓰기 시작함.

2000년 봄, <노나메기> 창간호에 시 <산제비> 발표

2002년 <실천문학> 가을호 실천문학 신인상 시 부문 당선

 

 

조영관 시인의 글 중에서....

-'영근이가 보고 싶다' 에서 한 문단 인용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가슴을 친다. 작년 5월 이맘 때였을 것이다. 영근이 나를 불렀다. 세월의 힘을 간당간당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부평고 옆 그 낡은 쪽방에서 2박 3일을 같이 있었는데 그것은 뭔가라도 그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어적어적 먹어대는 내가 부끄럽게 “죽기로 작정했니.” 해도 배달된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술만 찾았다. 밥술을 뜨다가 대책없이 울었고 그가 울면 나도 울었다. 존재의 무거움이, 또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업을 놓지 못하는 시인의 운명이, 이제 내 것이 아닌 사랑이, 5월 햇살의 눈부심이, 초라함이, 비천함이, 팽팽함이, 낯설은 것이, 안타까움이, 그 모든 것이 눈물로 찾아와서 우린 얼굴을 서로 부벼대면서 울고 또 울었다. 같이 가장 많이 울어 보았던 사람이 박영근일 것이다.

박영근(1958-2006)

-노동자 시인

-취업공고판 앞에서, 저 꽃이 불편하다, 등 시집 다수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

-2006. 5. 11. 결핵성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죽음.

 

평균 수명 80을 바라보는 이 즈음에

두 노동자 시인은 너무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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