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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19
    태풍(1)
    손을 내밀어 우리
  2. 2012/06/16
    그리움
    손을 내밀어 우리
  3. 201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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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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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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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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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1/02/17
    성과연봉제를 해부한다(4)
    손을 내밀어 우리
  9. 2011/02/08
    천막(1)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11/02/07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뭐기에?
    손을 내밀어 우리

[기고]

오랜만에 여길 찾는다.

박근혜 씨가 취임한 지 3년째 되는 날

미디어충청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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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2단계 가짜 정상화에 맞서는 상식

-박근혜 정부 정상화 투쟁에 나설 때-

 

설 연휴가 지났다. 박근혜 씨의 지지율은 연휴 직전보다 더 떨어져 33.5%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들의 설 연휴 직후 지지율이 통상 올라갔던 것에 비해 이례적이라면서 언론들은 호들갑이다. 이해할 수 없다. 서민들이 보기에는 박근혜 씨의 지지율은 아직도 턱없이 높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도 않고(세월호 참사), 노동기본권을 말살하고(전교조, 공무원노조, 특수고용노동자 등), 공안 탄압을 조장하며(통합진보당 해산), 부자들의 재산을 늘리고 지키기에 앞장서는(공적연금 개악, 담배세, 연말 정산 파동) 정권이 30%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 씨의 지지율이 아니며, 지지율 등락에 울고 웃을 일이 아니다. 박근혜 씨에 대한 일정한 지지율은 진보 진영과 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탄압한 결과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척결을 빌미로 박근혜 씨가 자행해온 가짜 정상화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박근혜 씨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준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2014년 한 해 동안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장들을 해임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협박하여 이른바 1단계 가짜 정상화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복리후생을 축소하고 단체협약을 개악했다. 정부 지침대로 이행하지 않은 국립대병원 11곳과 출연연구기관 2곳은 2015년 임금을 동결당했다. 가짜 정상화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결의했던 양 노총 공대위를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노조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한 채 지리멸렬하게 후퇴했고 개별 노조 단위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던 결과인 셈이다.

 

공공기관노조에 대한 임금교섭권 박탈에 이어 사실상 단체교섭권까지 앗아간 박근혜 정부는 숨 고를 틈도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작년 12월에 연이어 발표한 정책들을 보라. 12월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 2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채택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 합의문, 29일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모두 노동자 서민 쥐어짜기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자들을 제물로 삼아 부자들의 재산을 늘리고 권한을 더욱 크게 하겠다는 것이다.

 

급기야 지난 1월 16일에는 공공기관운영위를 통해 2단계 가짜 정상화 계획을 확정하였다. 공공기관 기능 조정방안을 마련하고, 성과 연계 보수 및 조직운영을 확산하며, 공공기관 1차 정상화 기틀을 조속히 정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공공기관의 중복 기능들을 조정하고,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하며(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것(이진아웃제)이 핵심 내용이다.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듯 거침이 없고 망설임이 없다.

 

성과연봉제와 이진아웃제는 이명박 씨가 지난 2010년에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기본연봉에 대한 차등과 누적식 적용, 성과연봉 차등폭의 대폭 확대를 통해 연봉의 20-30%를 차등하겠다는 당시 성과연봉제 지침은 공공기관 노조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간부 직원들에게만 일부 적용하는 것으로 슬그머니 후퇴했다. 상대평가를 통해 최하위 등급 10%에 두 번 연속 해당되면 퇴출하겠다고 한 이진아웃제는 사용자들의 동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좌초했다. 임금피크제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정부가 지침을 내느니 마느니 하면서 끌어오던 뜨거운 감자이다. 공공기관에서 이미 검증된 것들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1단계 가짜 정상화 과정에서 충분히 자신감을 얻었다는 얘기이고 동시에 공공기관의 노동조합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와 다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공기관을 그룹별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의 여지를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성과연봉제의 경우 공기업은 2015년 말까지 도입하고 준정부기관은 2016년 말까지 시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성과연봉제의 구조는 기관의 특성에 맞게 설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기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아웃제는 간부직에 대해서 우선 시행하도록 하여 공공기관의 분위기를 살피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2016년 정년 60세 연장에 맞추어 도입하도록 하되 경영실적 평가에서 반영하겠다고 하여 강제 시행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03년 김영삼 정권 이래로 20년 이상 공공기관의 공공적 공익적 기능은 신자유주의의 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위축되거나 폐지되어 왔다. 그만큼 국민들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졌고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있었지만 승리는 드물었고 2014년 1단계 가짜 정상화 투쟁은 실패의 결정판이었다. 이제 다시 공이 노동조합으로 넘어왔다. 1단계 가짜 정상화 투쟁의 실패를 거울 삼아 공공기관의 노동조합들이 제대로 투쟁을 조직한다면 박근혜 씨의 조기 레임덕과 맞물려 승산은 충분히 있다.

 

지난 3년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을 모두 겪었다. 지금 확실한 것은 반노동자 반서민 정책만 양산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상식 수준의 결의가 우선 필요하다. 2단계 가짜 정상화에서 다루고 있는 성과연봉제, 이진아웃제, 임금피크제 등은 모두 단체협약뿐만 아니라 취업규칙과 각종 규정들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집행부가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조건을 개악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조합원들의 정서, 실리적 이해 타산 등을 핑계 삼아 정부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노동조합 대표자와 집행부가 조직적으로 결의해야 한다.

 

다음은 결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의의 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조합원들의 결의로 확산하도록 한다. 가짜 정상화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박근혜 씨의 무능과 실정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대응방안을 토론하고 수렴하도록 한다. 그 최선의 결과는 2단계 가짜 정상화 저지 투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정상화 투쟁이요 박근혜 씨 퇴진 투쟁이면 좋겠다. 그것이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더욱 좋겠다.(201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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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노동자 시인 박영근 추모글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시가 그리운 날이다] 에 관련된 글.

 

우연히 이 글을 만났다.

1981년판 반시, 대학 시절에 샀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이정호의 언론비평>

노동자 시인 박영근을 추모하면서

 

노동자 문화를 얘기할까 한다.

나는 지난 19일 한겨레신문(28면)의 부음기사를 보고 울었다.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헌책방 주인 이겸로 선생이 돌아가셨다. 눈 앞에서 박물관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5년이 넘은 나의 서울생활을 지탱해 온 기둥이 쓰러져 버렸다.

지난 5년 동안 난독에 가까운 책 욕심을 헌책방 순례로 달랬다. 헌책방이 많은 신촌에 방을 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선생이 지금의 통문관을 차린 게 1934년이니 72년째다. 4년 전 통문관에서 전평의 <9월 총파업 평가서(조선경성일보판)>를 발견했을 때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조심스럽게 가격을 묻는 내게 선생은 “10만원”이라고 일갈했다. “속이지 않고, 값을 두번 말하지 않는다”던 선생의 철학을 알기에 나는 주머니를 털어 두말 없이 값을 치뤘다. 아직 두번밖에 통독하지 못했지만, 선생이 내게 속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노동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많다. 책 한줄 안 보고 10년을 버티는 이들도 많다. 간혹 읽더라도 <레닌>이나 <디미트로프>지, 우리 노동운동사는 읽지 않는다. <촘스키>는 읽어도 <이재유>는 읽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세계노동운동을 꿈꾼다는 어떤 정파에선 “문화적 국수주의”라고 비꼴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재유나 이강국, 이현상을 모르고 노동운동의 미래로 달리는 이들의 종착역은 어딜까. 우리는 이강국과 이현상을 모르지만, 조합원은 이들을 잘 안다. 얼마전부터 KBS에서 이들이 등장하는 해방정국을 다룬 역사드라마 <서울 1945>을 방송했다. '만년 서생' 오건호 동지도 극중의 배우 한은정이 예뻐 죽겠다고 할 정도니 꽤나 흥미있는 모양이다. 활동가들은 시간이 없다며 TV도 안 본다. 당연히 <서울 1945>도 모른다. 이렇게 조합원과 괴리된 채 따로 노는데 도대체 뭘로 그들을 설득하지?

지난 5월 오십도 못채우고 죽은 박영근 시인의 추모행사가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국민일보 10월2일자 22면). 그러나 우리 사무실에 10명 중 1명도 <노동자 시인> 박영근을 모른다. 박영근은 안치환이 부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원작은 ‘백제’)를 지었다. 최초로 <노동문학>을 노래했던 박영근은 제 노래로 명성을 얻어 유행가 가수가 된 안치환이나 그를 따라 배운 박노해와 달리 죽는 날까지 노동자 시인이었다.

박영근은 전교생 절반이 서울대로 진학하는 명문 전주고를 다니다 문학병에 걸려 학교를 때려 치우고 전국을 떠돌다 1977년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영등포 뚝방촌에 방 한칸을 구했다. 뚝방촌에서 그는 교과서 속 노동자가 아닌, 살아 있는 노동자를 만났다. 고교 중퇴에 노동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지만 그가 토하는 열변 앞에 기라성 같은 문학가들도 숨죽여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는 자신의 시에서 “아버지는 빨치산에서 전향해 살아남기 위해 공화당 선거모리배에게 전 재산을 털어 막걸리와 만월표 고무신짝을 돌려야 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 먹물이기를 포기했던 노동자 시인 박영근이 남긴 마지막 시는 역설적이게도 ‘이사’라는 서정시다.

“가을이 수척해진 얼굴로 대문간을 기웃거릴 때 / 아무도 모르지, 그런 날 저녁에 부엌에서 들려오는 / 정갈한 도마질 소리와 고등어 굽는 냄새 / 바람이 먼 데서 불러온 아이 적 서툰 노래 / 내가 떠난 뒤에도 그 낡은 집엔 마당귀를 돌아가며 / 어린 고추가 자라고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 원추리는 그 주홍빛 꽃을 터뜨릴 것이다.”

박영근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한 마지막 노래에서 가장 서정적인 게, 가장 민중적이라는 진리를 새삼 확인시켰다. 박노해처럼 한없이 거칠다가 이내 꺾여 자본의 품에 안기고 마는 사이비 <노동문학>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감방을 나온 박노해가 남아공에 가서, 기행문이랍시고 중앙일보에 정기적으로 한 면씩 털어 돈벌이를 할때 박영근은 먹고 살 길이 없어 논술학원 강사로 취직하려다가 고졸도 안되는 학력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학원장이 신동엽 창작기금까지 받은 이 중견시인에게 “김소월에 대해 논하라”고 했단다.

나는 박영근이 등단한 1981년판 <반시(反詩)>를 찾기 위해 3년을 헤맸다. 조직활동이랍시고 술추렴으로 세월만 보내는 대신, 서점에 가서 돈 만원만 주면 <창비> 가을호에 실린 추모특집에서 노동자를 노래했던 노동자 박영근을 만날 수 있다.

 

-이정호 공공연맹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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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운전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예년 같으면 벌써 은행잎들이 다 떨어졌을 때인데.... 그런 기억을 더듬으며 썼다.

 

<11월>

 

오늘도
반팔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도대체 언제까지 반팔로 나다닐 거냐고
누군가 놀려대기에
은행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내 가을이 끝난다고 했다.

 

10월 하순이면
연구단지 가로수들은 일제히 옷을 벗고
샛노란 은행잎들이 떼지어 몰려다니곤 했는데
오늘 아침에 만난 은행나무들은
여지껏 녹색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반팔은 내 탓이 아니다.
봄 가을은 슬그머니 사라져 가고
올해 겨울은 기세가 더 꺾일 것이다.
사과나무 북방한계선이 휴전선 넘어가면
겨울에 더 이상 눈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11월의 내 반팔보다 그게 끔찍하다.

 

농반진반으로 너스레를 떨어 보지만
세월이 흘러도 풀기 어려운 문제는 쌓여만 간다.
고공, 천막, 노숙, 심지어 고압 송전탑까지
사시사철 그칠 줄 모르고
죽지 말자 함께 살자 외치는 목소리.
아우성쳐도 저들은 들은 척 하지도 않고
기세 꺾인 겨울일망정
자주 한계를 넘나드는 고통이다.

 

법치보다는 감시와 폭력,
공존보다는 증오와 배제,
불감증을 일상화하는 뉴스와 댓거리들,
그 사이 어딘가쯤에서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온탕과 냉탕처럼 오가다 보니
반팔은 사치이고 허영인 듯 자꾸 맘이 쓰인다.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내 몸이 따스해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드러낸 살갗에 와닿는 싸늘한 공기와 바람이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조용히 일깨워 주곤 한다.
(201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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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끝

<10월의 끝>

새끼 손가락 하나라도 삐어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아프면 우리 몸의 균형이
일순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쓸개를 떼어내고 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평소 이름조차 모르던 장기 하나라도 병들면
몸이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졸지에 시한부 생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누가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 했던가,
자신의 일터에서 내쫓기고
대대손손 이어온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어
서릿발 내린 아침에 한뎃잠 자는 이들을 보라.

10월의 끝에 서서 다시 세상을 내다본다,
어쩌면 사소하거나 이름모를 존재들이
도탄에 빠져 절규하는 소리 가득하다.
이걸 모르는 체 하면서 이른바 대한민국은 영생을 꿈꾸는가.
(2013. 10. 31)

대동제라고 낮부터 종일 술만 마신 날,

초저녁부터 자다가 새벽 1시에 깨어나 주절주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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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시월>

 

시월에도
비가 내린다.

시월에도
먼 바다에서는
태풍이 온다.

시월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온갖 물고기들이
팔딱팔딱 꿈꾸며 산다.
(2013. 10. 2)

 

여기도 저기도

자주 들락거릴 수가 없다.

페북에 올렸던 거

뒤늦게 옮겨 둔다.

말이 씨가 되었을까,

시월에도 태풍 소식이 여러번 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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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고 행동하자

분노하고 행동하자

-공공연구투쟁속보 100호에 즈음하여-

 

“좌파=선동=자살=반대를 위한 반대. 역대 대통령들 다 감옥가서 죄를 심판받았는데 노무현은 정녕 자살로 땡인가? 부인 참 좋으시겠어 남편 덕에 감옥살이 면하시고...” (한명숙 전 총리에게) “놈현이처럼 자살하지는 마시오. 다들 어려운 시기에 국가 예산 낭비하게 되니까..”

 

일베들의 장난처럼 보입니까?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올린 댓글들입니다. 검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정원 댓글들을 정리하니 무려 2200쪽에 이른다고 합니다. 홍어, 절라디언과 같이 광주민주항쟁을 폄훼하고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말들도 국가정보원 댓글에서 처음 등장했고 나중에 일베들이 퍼날랐습니다. 세종시, 4대강, 천안함,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등 정치현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비하까지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이런 사건을 본 적은 없으니 그야말로 상상력을 뛰어넘는 가공할 현실입니다. 이런 경천동지할 사건에 대해서 국가 기구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경찰은 엉터리로 수사를 하고 혐의없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뒤늦게 사건을 파헤쳤으나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그걸 방해했습니다. 대통령은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파헤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은 사실대로 쓰기는커녕 외면하거나 왜곡하기 십상입니다.

 

민주주의가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막힌 사건들이 연달아 쏟아지다 보니 역치가 높아진 것인지 어지간한 사건에는 사람들이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맛나게 바꾸는 법입니다. 음울한 불감증의 시대,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촛불이 다시 타오르고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서 분노를 다스리지 맙시다. 노동자답게 행동으로 세상을 바꿉시다.(2013. 7. 4)

 

어디서 뭐라도 쓰면 여기에도 올려야지. 이러다가는 블로그에 거미줄 치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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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2

<그리움 2>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뜬다

 

온 세상을 그대가 채웠다가
찰나 사라진다

영영
눈을 감고 살고 싶다

은행나무 줄지어 선 거리,
눈 부릅뜨고 달리면서
헛된 꿈을 꾼다

눈물,
따스한 그리움이다.

(2012. 11. 9)

*********
학교비정규직 파업집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얼마 남지 않은 은행잎이 우수수 내 차 위로 떨어지기에
길 가에 차 세우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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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어제부터

페이스북에 드나들고 있다.

 

내 담벼락이 허전해서

어젯밤 늦게 즉흥적으로 써올렸다.

 

다른 카페에 옮겨서는

조금 고쳤다.

 

그리고는 완성했다 치고

이리로 옮겨 둔다.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각각의 특성을 어떻게 살릴지 고심하고 있다.

 

 

<열대야>

종일 불린 콩 한컵,
죽정이 몇개 골라내고
팔팔 끓여 삶는다. 


덜 삶으면
콩비린내 나고
오래 삶으면
물러터져 메주냄새가 난다고 했겠다.

팔, 팔, 8분쯤 지나서
콩만 건져내어 한알씩 껍질을 벗긴다.
하나 둘 셋 넷
열 스물 오십 백
셈이야 틀려도 관계없다.

껍질만 벗기고 나면
콩국물 만들기는 식은죽 먹기,
적당히 물을 부어
맷돌로 갈든 믹서로 갈든
고소하고 부드러운 콩국이 된다.

둘 셋 다섯 일곱
열 스물 백 이백
셈이야 틀려도 세월간다,
콩껍질 한알 한알 벗기다 보면
까짓거 열대야, 금세 더위를 잊는다.

(201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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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선언운동을 시작하며

[120803 노동정치_레디앙_기고.hwp (17.00 KB) 다운받기]

 

어줍잖은 글이지만 레디앙에 기고했다.

 

노동정치에 대하여 저마다 품고 있는 생각들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말로 다투기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천으로 모범사례들을 축적해가기를 바라는 맘이다.

 

모처럼 트윗에도 링크를 걸었고

여기에도 오랜만에 올린다.

 

어려운 때일수록 내 생각을 감추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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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 혁신과 노동정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산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선언운동을 시작하며-

 

 

"노동정치? 웃기지 마라고 해!", "위원장은 당권파요, 비당권파요?", "차라리 동부연합당이라고 부르지 그래?",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자고?", "나 탈당했어요."

 

노동정치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보이는 반응들이다. 비교적 점잖은 것들만 소개했다. 훨씬 더 노골적인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대는 조합원들의 상당수는 지난 10년 이상 노동조합의 방침이나 간부들의 호소에 따라 진보정당에 돈이든 몸이든 아낌없이 바쳤던 이들이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동지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내가 통합진보당원이 아니라고 도리질하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많은 조합원들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동일시하고 있고, 통합진보당도 당연히 그 일부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조합원들에게 민주노동당이 왜 둘로 쪼개졌는지,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지금 어떤 입장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보고, 느끼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것이 곧 역사를 발전시켜 온 거대한 힘이다.

 

그런 조합원들이 진보정치라는 말에 넌더리를 내고 진보정당에서 속속 이탈하고 있다. 진보정치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그 전에 이미 우리 진보정치는 중병에 걸려 있었다. 병을 알고도 치료를 게을리 한 것이 우리의 죄이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조직과 간부를 막론하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오늘의 상황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업보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 자신을 돌아다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보정치는 참 어렵다. 노동중심의 진보정치는 더 어렵다. 최소한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노동조합 현안도 첩첩 산중인데 노동정치라니, 조합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지레 걱정이 된다. 민주노조운동을 먼저 혁신해야 노동정치가 가능하므로 당분간은 정치운동은 접어야 한다는 주장도 새삼스레 신경이 쓰인다.

 

어떤 날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내 발로 걸어 들어간 노조였고, 내 스스로 선택했던 진보정당이었다.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은 노동자로서 내 자긍심의 원천이었다. 이것이 망가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다시 시작하는 거야. 말로만 책임을 느낀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자고! 한편으로는 내가 포기하는 순간 그 자리를 대신할 패배주의와 정치 허무주의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같은 고민에 빠진 동지들을 만났다. 나보다 씩씩하고 의연한 그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 아직도 새 세상을 꿈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동지들을 보면서 나의 비겁과 나태를 꾸짖었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 활동을 통해서는 새로운 노동정치가 지향해야 할 것을 공유했다.

 

노동정치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꿈꾸는 모든 개인과 조직이 낡은 관계를 청산하고 머리를 맞대며 노동자 정치의 통일을 꾀하는 운동이다. 조직화된 노동자가 중심이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가 하나로 단결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각 부문 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의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출하는 운동이다. 그렇다. 노동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운동이다.

 

긴 터널을 지나 나는 다시 한번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노동정치 실현을 위한 정치운동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로 소박하게나마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자들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선언운동에 제안자로 참여했다. 가스, 화물연대, 전회련 학교비정규직을 비롯한 공공운수노조·연맹 산하 조직의 대표자들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고 노동이 토대가 되는 정치운동에 나서자고 조합원들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여기까지 내 얘기이다. 노동정치의 실패 앞에 노조 간부로서 겪은 갈등과 번민을 말하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민주노총의 한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하여 강하게 주문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추진, 닥치고 통합진보당 지지, 묻지마 세액공제 등 민주노총의 잘못된 방침이 나같은 장삼이사들의 지난한 노력들을 무위로 돌릴 수도 있기에, 제발 역사 앞에 당당한 민주노총이 되라고 일갈하고 싶은 것이다.

 

첫째,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진보정치의 실패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민주노조운동에 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넘어서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대표체로서 우뚝 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기업, 남성, 정규직 조합원들의 조합주의 운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대표할 수 있는 노동자가 겨우 5%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정치의 토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투쟁의 현장에 민주노총 집행부는 보이지 않고 해고된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에 먹히지도 않는 정치방침이며 투쟁지침을 남발하지 말고, 민주노총 집행부가 살아있는 지침이 되어 현장에 붙박혀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노동정치 실현보다 우선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의 대표성을 잃은 민주노조운동은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운동의 계급적 토대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진보정치의 혁신,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운동은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조차 이해되지 않는다면 만나서 열띠게 토론해 보자는 말이다.

 

둘째, 민주노총이 노동정치를 말하려면 통합진보당에서 조직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민주노총 집행부는 갈팡질팡하고 있는 정치 행보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하고 통합진보당 당적을 얼른 버려야 한다. 진정으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겠다면 과거에 대한 철저하고 비판적인 평가를 통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치밀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 새정치특위는 여기저기 눈치만 보지 말고 당장 그런 일부터 하기를 바란다.

 

솔직한 이야기 하나만 더 하자. 나는 민주노총이 또 사고칠까봐 걱정이다. 정세를 자의적으로 분석하고 대중을 오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4.11 총선 직전까지 민주노총 집행부의 말만 들으면 금세라도 친노동 정권이 들어서고 노동악법은 당연지사 철폐할 기세였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보는 것처럼 용역깡패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정세인식 똑바로 하자. 예컨대, 통합진보당이 분당하거나 통합진보당의 일부 계파들만 나와서 새 정당을 만든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데, 혹여 민주노총 집행부가 부화뇌동하여 따라갈까 걱정이다. 또다시 얼렁뚱땅 자의적인 정치방침을 만들고 그것으로 민심을 호도하려 한다면 나같은 조합원들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얘기를 맺기로 한다. 진보정치는 실패했다. 가슴이 아프고 상처는 쓰라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지 말고 새로 시작하자. 그리 많지도 않은 활동가들이여, 정파의 벽을 넘어 모두 광장으로 나가자.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길에 함께 나서자. 출발점이 다소 다르더라도 궁극엔 한 지점에서 만나도록 해보자. 진보정당이기를 포기한 통합진보당이나 노동정치의 통일을 염원한 조합원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 진보신당의 한계를 뛰어넘고, 명망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대리주의와 의회주의의 질곡에서 빠져나와, 10년이든 20년이든 꾸준하게 새로운 노동정치 실현을 위한 장정을 시작하자. (201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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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태풍>

 

하늘과 땅 사이에 널린

광대무변한 이불 한 폭

 

세상의 이치대로

한바탕 뒤집고 빨고 말려야 할 터

 

오늘 새벽에는 

한반도를 샅샅이 빨아대는구나.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비,

미친 여의봉처럼 춤추는 바람,

 

전자 한개의 질량보다 가벼운

뭇 중생들의 삶이라 하더라도

 

짐승처럼 떠내려가지 말고(싸워!)

꽃잎처럼 흩날리지 말고(싸워!)

 

내일 아침에는 기어코

뽀송뽀송 잘 마른 세상 한번 보자구나.

(2012. 7. 19. 7호 태풍 카눈이 지나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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