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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선언운동을 시작하며

[120803 노동정치_레디앙_기고.hwp (17.00 KB) 다운받기]

 

어줍잖은 글이지만 레디앙에 기고했다.

 

노동정치에 대하여 저마다 품고 있는 생각들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말로 다투기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천으로 모범사례들을 축적해가기를 바라는 맘이다.

 

모처럼 트윗에도 링크를 걸었고

여기에도 오랜만에 올린다.

 

어려운 때일수록 내 생각을 감추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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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 혁신과 노동정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산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선언운동을 시작하며-

 

 

"노동정치? 웃기지 마라고 해!", "위원장은 당권파요, 비당권파요?", "차라리 동부연합당이라고 부르지 그래?",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자고?", "나 탈당했어요."

 

노동정치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보이는 반응들이다. 비교적 점잖은 것들만 소개했다. 훨씬 더 노골적인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대는 조합원들의 상당수는 지난 10년 이상 노동조합의 방침이나 간부들의 호소에 따라 진보정당에 돈이든 몸이든 아낌없이 바쳤던 이들이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동지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내가 통합진보당원이 아니라고 도리질하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많은 조합원들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동일시하고 있고, 통합진보당도 당연히 그 일부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조합원들에게 민주노동당이 왜 둘로 쪼개졌는지,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지금 어떤 입장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보고, 느끼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것이 곧 역사를 발전시켜 온 거대한 힘이다.

 

그런 조합원들이 진보정치라는 말에 넌더리를 내고 진보정당에서 속속 이탈하고 있다. 진보정치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그 전에 이미 우리 진보정치는 중병에 걸려 있었다. 병을 알고도 치료를 게을리 한 것이 우리의 죄이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조직과 간부를 막론하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오늘의 상황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업보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 자신을 돌아다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보정치는 참 어렵다. 노동중심의 진보정치는 더 어렵다. 최소한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노동조합 현안도 첩첩 산중인데 노동정치라니, 조합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지레 걱정이 된다. 민주노조운동을 먼저 혁신해야 노동정치가 가능하므로 당분간은 정치운동은 접어야 한다는 주장도 새삼스레 신경이 쓰인다.

 

어떤 날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내 발로 걸어 들어간 노조였고, 내 스스로 선택했던 진보정당이었다.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은 노동자로서 내 자긍심의 원천이었다. 이것이 망가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다시 시작하는 거야. 말로만 책임을 느낀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자고! 한편으로는 내가 포기하는 순간 그 자리를 대신할 패배주의와 정치 허무주의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같은 고민에 빠진 동지들을 만났다. 나보다 씩씩하고 의연한 그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 아직도 새 세상을 꿈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동지들을 보면서 나의 비겁과 나태를 꾸짖었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 활동을 통해서는 새로운 노동정치가 지향해야 할 것을 공유했다.

 

노동정치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꿈꾸는 모든 개인과 조직이 낡은 관계를 청산하고 머리를 맞대며 노동자 정치의 통일을 꾀하는 운동이다. 조직화된 노동자가 중심이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가 하나로 단결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각 부문 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의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출하는 운동이다. 그렇다. 노동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운동이다.

 

긴 터널을 지나 나는 다시 한번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노동정치 실현을 위한 정치운동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로 소박하게나마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자들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선언운동에 제안자로 참여했다. 가스, 화물연대, 전회련 학교비정규직을 비롯한 공공운수노조·연맹 산하 조직의 대표자들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고 노동이 토대가 되는 정치운동에 나서자고 조합원들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여기까지 내 얘기이다. 노동정치의 실패 앞에 노조 간부로서 겪은 갈등과 번민을 말하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민주노총의 한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하여 강하게 주문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추진, 닥치고 통합진보당 지지, 묻지마 세액공제 등 민주노총의 잘못된 방침이 나같은 장삼이사들의 지난한 노력들을 무위로 돌릴 수도 있기에, 제발 역사 앞에 당당한 민주노총이 되라고 일갈하고 싶은 것이다.

 

첫째,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진보정치의 실패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민주노조운동에 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넘어서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대표체로서 우뚝 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기업, 남성, 정규직 조합원들의 조합주의 운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대표할 수 있는 노동자가 겨우 5%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정치의 토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투쟁의 현장에 민주노총 집행부는 보이지 않고 해고된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에 먹히지도 않는 정치방침이며 투쟁지침을 남발하지 말고, 민주노총 집행부가 살아있는 지침이 되어 현장에 붙박혀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노동정치 실현보다 우선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의 대표성을 잃은 민주노조운동은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운동의 계급적 토대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진보정치의 혁신,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운동은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조차 이해되지 않는다면 만나서 열띠게 토론해 보자는 말이다.

 

둘째, 민주노총이 노동정치를 말하려면 통합진보당에서 조직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민주노총 집행부는 갈팡질팡하고 있는 정치 행보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하고 통합진보당 당적을 얼른 버려야 한다. 진정으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겠다면 과거에 대한 철저하고 비판적인 평가를 통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치밀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 새정치특위는 여기저기 눈치만 보지 말고 당장 그런 일부터 하기를 바란다.

 

솔직한 이야기 하나만 더 하자. 나는 민주노총이 또 사고칠까봐 걱정이다. 정세를 자의적으로 분석하고 대중을 오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4.11 총선 직전까지 민주노총 집행부의 말만 들으면 금세라도 친노동 정권이 들어서고 노동악법은 당연지사 철폐할 기세였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보는 것처럼 용역깡패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정세인식 똑바로 하자. 예컨대, 통합진보당이 분당하거나 통합진보당의 일부 계파들만 나와서 새 정당을 만든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데, 혹여 민주노총 집행부가 부화뇌동하여 따라갈까 걱정이다. 또다시 얼렁뚱땅 자의적인 정치방침을 만들고 그것으로 민심을 호도하려 한다면 나같은 조합원들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얘기를 맺기로 한다. 진보정치는 실패했다. 가슴이 아프고 상처는 쓰라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지 말고 새로 시작하자. 그리 많지도 않은 활동가들이여, 정파의 벽을 넘어 모두 광장으로 나가자.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길에 함께 나서자. 출발점이 다소 다르더라도 궁극엔 한 지점에서 만나도록 해보자. 진보정당이기를 포기한 통합진보당이나 노동정치의 통일을 염원한 조합원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 진보신당의 한계를 뛰어넘고, 명망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대리주의와 의회주의의 질곡에서 빠져나와, 10년이든 20년이든 꾸준하게 새로운 노동정치 실현을 위한 장정을 시작하자. (201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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