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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믿음

로마서 4: 17-21

17. 이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기록된 말씀과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앞에서 우리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8.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네 후손도 저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라고 하신 약속대로 그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다 조상이 있고, 족보가 있습니다.
우리 가문에 역사가 있고 우리민족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족보가 있고 역사가 있음은 자신의 근본이 어떠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작에는 많은 조상들의 흔적이 있습니다.
기계를 처음 사용한 조상들, 도시생활을 시작한 조상들,
문명을 발전시킨 조상들, 고대에 유명한 조상들이 있다.

그런데 고대 인류의 역사가운데에 독특하고 유용한 조상들이 있는데,
그 조상들은 이세상에 살면서 이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
그분과 함께 동행한 인생의 발자취를 남겼으니,
과히 그조상들의 발걸음은 인생들에게 획기적이며 가치있는 일이며
의미있는 인생족적의 발걸음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를 만나,
자신들의 일생가운데에서 그분의 숨결과 손길을 경험했으니,
우리 인생들에게는 귀감이 될 조상들이다.
그 조상들중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받은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으로 유명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친구가 된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던 그의 믿음을 살펴보고저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아브라함개인이 경험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동행하셨으며,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사람들을 찾으며,
그들에게 그 약속을 주시며, 그 약속이 실현되어가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내용은 하나님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지시고 죽음의 선고를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죽음앞에 절망합니다.
죽는 다는 사실은 인생을 비참하게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모든 인생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을 접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원수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그 죽음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만이 죽음에서 사람을 살리십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사람을 다시 살리는 생명의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생명의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신 분이십니다.
생명은 그분에게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전능하시고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무에서 유를 이룬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만드셨습니다.
무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은 그 바라는 것을 향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는 이성을 초월하여,
바라는 바를 끝까지 붙잡고 나가게 합니다.
경험과 증명을 요구하는 과학적사고시대에
이성의 역활을 초월하는 믿음의 세계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성은 나타난 현상의 세계에 대한 것을 확인하기를 원하며,
경험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편견에 잡히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경험에 대한 이해나 지식은
새로운 미래의 도전에 대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너의 자녀들이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수의 별들처럼 많아질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인을 가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너의 자녀가 이렇게 많아질것이라는 것입니다.
자녀생산을 쉽게 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으면,
그 약속의 실현을 기대하게되겠지만,
아브라함은 나머지 일생을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자녀에 대한 기대를 한번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믿고 나갔습니다.

그의 믿음이 훌륭한 것은 믿을 수없는 상황에서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도 가능하지 않는
자녀생산에 대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사람이 가지는 믿음은 자신이 믿는 믿음의 대상이 중요한데,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사람이 믿을 수없는 믿고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리고 그믿음의 대상에 의해 자신이 믿은 그 믿음에 낭패를 당할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유다나라가 하나님앞에 우상을 섬기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멸망을 당해가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을 즉,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용서받고 멸망에서 구원받으려면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에 대해 전혀 어떻게 할수 없는 자신들을 믿은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인간을 의지하는 것은 저주받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도 믿을수 없고 도저히 믿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을 믿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그런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믿음은 자신을 하나님에게 잇닿게 한 것이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이며,
약속하신 대로 자신의 삶에 실현되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멸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의 상태를 보아도
도저히 믿음이 생기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 생긴 것이며,
그가 가진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에 대한 그 믿음이
어떤 상황하에서도 그의 믿음을 소멸치 못하였습니다.

믿음을 방해하거나 소멸케하는 요인은 사람들 바로 자신이며,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성향이며,
또한 자신의 믿음을 방해하는 자신의 환경이라 할수 있습니다.

먼저 자기자신이 믿음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 하나님 역활을 내세우면,
누구도 그를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이끌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부정하는 자신때문에
믿음의 세계로 들어올수 없습니다.

또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자신의 속에 있는 성향이 있습니다.
성향이나 기질이나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소극적인 사람은 믿음의 도전을 받아들이기를 꺼려 합니다.
매사에 또한 부정적인 성향이나 의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믿음을 부정하기 십상입니다.

믿으려는 자신이며, 자신속에 믿음에 대한 강한 성향이 있는데,
자신의 주변이 그를 못믿게 만드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 환경중에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대대로 내려오는 불신이나,
무속의 영향을 받은 가정도 이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가문에서 좇겨나는 핍박이 있어,
그것을 감히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런 환경안에서 자신은 도저히 믿음을 가질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람으로는 할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하에서도 그사람을 믿게 인도하십니다.

불가능을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현실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능한 인간에게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을 믿는 믿음은 그분의 전능하심을 믿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놓여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상황에 처해있는
이스라엘 200만명 가량의백성들은 모두가 다 진퇴양난의 처지에 있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은 앞에 놓여있는 바다를 갈라,
육지처럼 길을 터놓아,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그곳을 탈출하게 하십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은 믿음입니다.
정실부인인 사라자신의 몸에서 아직도 자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하여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들이
저 하늘의 뭇별처럼 많아질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분이십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옛약속과 새약속사이에서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과거에 약속하신 것을 실현되게 하시고, 또한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옛 계약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수천년동안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예언자들로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대로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따라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자녀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씨의 능력이 이미 육체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아기의 생명을 만들수 있는 정자의 수가 줄어들어,
도저히 생명의 탄생을 할수 없게하는 몸의 상태인데도
그것을 아브라함은 다시 살릴수 있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그녀의 속에 수정란을 만들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난자가 충분히 성숙하기에는 그녀의 몸은 이미 늙어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난자를 자라게 하고, 숙성한 난자들을 생산케 하셨습니다.

사라는 이미 여자로서 자녀들 가질수 있는 아기씨를 잉태할수 있는 자궁의 상태가 아닙니다.
자궁안에 생명을 착상시킬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하나님은
기적으로 그 상태를 복원하셨습니다.
원래 불임이었던 사라의 몸이 임신을 가능케 하는 상태로 변화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사라에게도 생명을 만들수 있는 몸상태가 아닌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생명을 가질수 있는 몸의 상태로 만든 것입니다.
이미 불임판정을 받아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한 사라였는 데,
하나님은 사라의 몸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불임의 몸을 가임여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젊은나이가 아니라 몸에서 경수가 끊어진 상태인 그녀에게
생명의 씨인 수정란를 성숙케 하는 몸으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합니다.
불신앙은 믿음이 없다가 아니고, 불신앙은 의심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믿음은, 즉 불가능을 가능하게 믿음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나 죽습니다. 죽어야 할 운명을 안고 사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의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범한 죄의 댓가로 인간의 삶의 현장에 죽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죽는 현실앞에 자유할수 없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늘 죽음이라는 다가오는 현실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불신앙으로는 결코 죽어야 할 사람들을 살릴수 없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철학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도,
인간이 쌓아놓은 도덕률도 사람을 죽음에서 살릴 수 없습니다.
죽음에서 인간을 살리는 길은
오직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만이 가능합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때에
비로소 죽음아래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자유할수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적인 진리나 존재에 의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존재하지도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의심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의심이 드는 것은 인간의 생각안에서 나온 현상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수 없으며,
하나님이 언급하는 내용(무에서 유의 창조, 생명의 부활등)에 대해서도 인정이 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들은 그분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선물을 통해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신앙할수 있습니다.

인간자신에게 드는의심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의심하는 자신을 믿음으로 강화시키는 일입니다.
믿음에 굳게하는 일은 그분의 신실하심을 바라볼때에, 가능합니다.

믿음의 대상에 따라 믿음의 성격이나 역사가 다릅니다.
어리석은 믿음의 경우나 현상은 자신이 믿는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었을 때에 생겨납니다.
인간을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가 따른다고 했습니다.
즉 그말은 의지할만한 힘이 인간에게 없습니다.
고로 인간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소망을 가질수 없습니다.
인간을 의지할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그가 도모한 일이 한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게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역사하시게 합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아브라함의 불멸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며,
그리고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실현에 대한 믿음입니다.

확신은 믿음의 닻입니다. 믿음을 자신의 마음에 정착시킨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에게서 온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진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듯,
그는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인이라 인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기질이나 성향은 자신안에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믿음의 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일에 있어,
그의 이성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성품안에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의지나 결단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떠나라 했을때에 가족과 친척과 고향땅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활동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에게 그믿음이 자신의 마음에 착상되어
그 믿음이 자신에게 고착이 되어 믿음이 자신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할동하는 믿음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확신하는 믿음이란 믿음의 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믿음입니다.
그 확신은 자신안에서 실제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믿음입니다.
결국 그는 그 믿음으로 불가능에 대해
즉 자신의 나이를 극복하고 동시에 사라의 불임과 나이의 한계를 이기고
자녀를 가질수 있는 하나님의 가능을 자신안에서
경험으로서 얻는 단계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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