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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이렇게 자라도록

누가복음2:40, 49, 52

40.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에 건강하게 자라셨다. 지혜가 넘치셨다.
49.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점점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아기예수는 아이예수로 건강하게 자라셨다.
메시야는 아기로 오셨다. 주님은 왜 성인으로 오시지 않을셨을 까?
예수님은 성인으로 하늘에서 지상에 임하시지 않고,
낮고 천한 자리에서부터, 인간으로서의 모든 자라나는 과정을 경험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람을 직접 경험하셨다.
인간이 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자란다고 자라는 가?
인간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안에서라야 정상적으로 잘 자랄수 있다.
자녀들의 성장시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녀들의 성장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돌보시는 사랑안에 머물러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부모에 의해 생명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실상 그들의 자라는 과정안에서는 그들의 자람을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없이는 진정으로 건강하게 자랄수 없다.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어도 그것을 자라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러 있도록 부모들이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자람에는 육체적인 성장도 있지만, 정신적인 성장이나, 사회적인 성장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자녀교육은 조화있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면에서 구김살이 없이 잘 자라야 좋은 어른이 된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그의 메시야를 보내심으로
그가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알려주시고 있다.

예수님은 12살에 예루살렘에 부모들과 함께 유월절행사로 올라가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룻만에 부모들이 아이예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찾았는데,
아이예수는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생들과 질문을 하며, 대답을 하시며 아이예수님은 토론을 하는 중이었는데,
모두가 그의 총명함에 감탄하며
또 그의 지혜로운 대답에도 사람들이 깊은 감명을 받고 있었다.
보통 이스라엘의 소년이 성인식에 참여하는 나이가 13세인데,
아이예수님은 이제 앞으로 성인이 되기전에
그는 성전에서 유대교의 선생들과 함께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는줄을 왜 모르십니까?라고
부모들에게 반문을 하는 아이예수님의 대답가운데에
아이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청소년시기에 자아의식에 눈을 뜨게 되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에 대한 정체감을 인지하게 되는 나이이다.

아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하는 중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기 정체감을 갖고 있는 아이예수,
그의 총명함은 탁월하며, 모든 지혜로운 대답등은 그의 정체감에서 비롯된 자의식,
즉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런 그는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청소년 예수님을 생각할때에,
그의 내면에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의식,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지식은 없으며,
자신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지혜의 지름길이다.
청소년시기에 자아에 눈을 뜨는 과정은
너무 중요한 자신에 대한 뚜렷한 자각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간파하는 중요한 일이다.

이시기에 자아의식를 찾는 작업이 잘못되게 될때에,
이후에 그의 삶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며,
모든 일에 대해 자아의식에 근거한 가치판단기준에 의해 판단하며
그 자아정체감이 앞날의 자신의 날들을 만들어간다.

아기예수가 자라는 과정과 아이예수가 자라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람은 여러단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기가 자라는 과정은 부모의 배려가 더 필요한 시기이다.
그 만큼 그시기는 인생의 어느시기보다도 더 부모의 영향력을 받아 자라게 된다.
이시기에 아기예수는 하나님의 배려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그의 자람은 온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아기예수는 무럭무럭 자라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자라는 것이란
하나님의 배려와 돌봄으로 자라는 것이다.
인생의 자람에서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돌봄은
창조주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심을 보여주며
모든 인생들을 돕는 창조주의 보존케하시는 사역하시는 모습이다.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해줄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제대로 잘자랄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대개 많은 경우에 자녀들이 부모들의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녀들에 대해 방임하는 태도로 대하게 될때에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것들을 겪게 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있는 아이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배려하는 일이 지혜로운 일이다.
아이들이 조물주로부터 받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천성적인 지혜와 재능을 개발되어지도록 도움을 주는 일만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무엇이 그리고 어떤 교육이 우리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가?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들의 상태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지를 꺽지말고,
그들의 성장발육과정에 그들의 조언자로 머물러
자녀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모습을 유지하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자녀를 부모의 기준으로 당겨서 부모에게 맞추는 교육도 안되며,
반대로 아이들을 매사에 아이들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방치하는 태도로 하는 것은
더 나쁜 교육적인 태도이다.

자녀와 부모가 적당한 거리를(부모와 자녀의 인간관계의 거리)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모의 일관된 교육철학이 어떤 교육적인 대안보다 중요하다.
부모의 일관성인 태도는 아이들을 안정되게 건강하게 자라도록 한다.
만일 자신이 크리스찬 부모라면,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는 기도야말로
부모로서 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신성한 의무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배려가 아이들의 자람에서 유지도도록
부모로서 조언의 역활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임을 명심하는 일도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옳은 태도를 갖게 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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