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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중심의 삶을 살고저 하는 자신의 태도가, 저으기 자기중심적일때에,
그 숭고한 생각이나 묵상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로 비쳐질때가 있다.
신앙인들이 쉽게 빠지는 자기연민이나, 자기도취에 대해
항상 말씀안에서 자신을 비쳐보는 영적인 거울로 자신의 동기와 목적이나,
자신이 하고저 하는 영적인 헌신의 깊은 생각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앙인들이 갖는 일반적인 성도의 목적에 대한 가르침처럼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영광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자신의 행위를 거룩으로 포장할지라도 자신안에 있는 숨은 불순한 동기나,
그릇된 방향성은 사람의 깊은 속을 모두 다 헤아려 살피시는 하나님의 안목에 드러나게 된다.
자신이 헌신하는 영적인 시간들, 드리는 몸의헌신들,
주님과 교제하는 순간들속에서 항상 면밀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다 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자신의 영성의 성장과 전진에 장애가 될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이 오감을 통해
항상 자신에게 두뇌의 인식창고에 이성으로나,
감성으로서 각각 낱개의 정보를 입력하고 있다.
그 정보들이 모여 자신안에 하나의 사고적 가치관이나
감성적 습성으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신앙인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정보에 대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오감중에서 가장 쉽게 들어오는 감각의 창구는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자신의 정보의 창고에 쌓이게 되어, 자신의 영성의 집들을 이루는 재료들이 되어진다.
그 재료들중에 어둠에서 온 불순한 것들과, 방종에서 온 악한 것들,
헛된 가르침이나 정보에서 들어온 부정한 것들,
잘못된 윤리나 도적에서 온 그릇된 것들,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들어온 어리석은 것들등을
판단하고 살피는 자신의 영성의 바로미터의 불빛이 켜있어야,
그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걸러내어, 마음에 뿌려져
자신의 영혼에 더러운 것들로 남아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회개와 내면청소를 해야 건강한 영성을 유지한다.
며칠전에 또 우울증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울증으로 인한 반응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울증이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반응에서 일어나는 것과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요인,
일차적인 혹은 이차적인 원인, 단극적인 혹은 양극적인 현상으로 일어난다.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반응에서 일어나는 우울증은
(때로는 외인성이나 혹은 신경성 우울증이라한다)
주로 어떤 실제나 상상에서 일어난 상실내지는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혹은 걱정스런 감정의 높은 수치의 상태에서일어나는데,
그것은 그기간이 짧을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조절이 가능하다.
자신의 내면에서일어나는 (내인성의)
(그것을 또한 자율적이며 정신적인우울증이라 불리운다)
마음의 내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며
때때로 그것은 자기파괴적인 성향이 있는 강한절망의식을 동반하며
그 증상이 오래가기도한다.
그우울증치료하기가 용이하지 않으며, 그 우울증의 재발가능성이 높다.
일차적인 우울증이 일어나는 것은
이차적인 요인인 다이어트의 부작용이나 암이나 당뇨
그리고 인퓰레자 감염으로 인한 병의 결과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단극적인 (unipolar)우울증은 일차적인(주요한)심리적인 장애로서
한 기간이나 그 이상의 우울증의 일어나는 조건하에서 일어난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 우울증은 양극적인(bipolar) 우울증으로
우울증적인 행동이 스며든 조적(정신적인 우울증의 반대인 조적인 현상)인
증상의 기간에서 일어난다.
대개의 전문가들은 이런 단 혹은 양극적인 우울증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실망이나,
실패나, 그리고 상실에서 오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인 우울증의 현상들과는 구별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우울증은 사람들에게 다 일어나기 쉬운 평범한 현상도 있지만,
때때로 그 우울증 증상이 복잡하고 힘든 상태의 현상으로
정확히 우울증을 묘사하기가 쉽지 않으며, 치료하기도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성경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임상적인 용어는 다루지 않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 그런 증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 69편과 88편, 그리고 102편은 시인이 겪는 우울증적인 현상을 절망의 노래로 언급하며,
그런 좌절속에서 삶의 희망을 가질것을 호소하고 있다.
시편43편에서 다윗은 삶의 우울과 기쁨등 양쪽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영혼아 왜 너는 의기소침하여 있으며, 내안에서 혼란스러워 하는가?
그리고 불안해 하는 가? 하나님에게 너의 희망을 두어라
왜냐하면 내가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여러곳에서 우울증의 증상을 겪은 사람들의 경우를 보여준다.
욥이나 모세,와 요나와 베드로,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전체가 우울증을 겪기도 하였다.
예레미야예언자는 이스라엘민족의 절망이나
우울한 현상을 애가(비탄, 통곡)라는 책 전체에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가멜산에서 우상선지자 850명을 대결하여
승리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였지만,
살인자이며 우상숭배자인 이세벨왕후의 추격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광야로 도망을 가, 거기에서 극단적인 절망감이나 자기낙담한 상태에 빠졌다.
그는 죽기를 원했으며(자살충동)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천사에 의해
그 상태를 치료받을수 있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극단적인 슬픔과 고통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우울증상태에 빠져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이 매우 슬프며,
그 슬픔속에서 깊은 고통을 통해 죽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Amplified Bible에서 표현된 ).
이런 예들은 성경이 사람들이 사는 인생의 현실이
수많은 슬픔의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인생에게 꼭 필요한 희망과는 대비되는 인생의 절망적인 현실성을 알려준다.
믿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그런 인생의 우울한 현실들을
돌파하는 새롭고 지속되는 삶의 기쁨을 신앙안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성경에 이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생들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며
자신의 유일한 생명을 포기하는 이중적으로 짓는 심각한 죄이다)
두 연예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데 충격적이며
새삼 그들의 삶에서 오는 우울한 현상들과 삶의 도전들을
이기지 못하는 신앙의 무력감을 금할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성경은 강조하기를 이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과 그로 인한 하나님나라에서 오는 풍성한 인생의 확신은
인생이 겪는 모든 인생좌절들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의한
희망이 넘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의 모든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것을 기도하고 있다.
(게리 콜린즈의 Christian counseling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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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7편1-2
신의 진리와 자비는 인간들의 찬양의 주제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높이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생활하면서 신의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신의 보호의 테두리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올바름을 알려주며,
정의와 진실과 성실로 신은 인간사회에 영향을 준다.
인생들이 바른 길을 걸아가는 것이 신의 바라는 의도이며,
세상에 진리가 결국 승리할 것을 예정해놓은 것도 신의 작정하신 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자녀에게 바른 길을 살아가도록 원하는 것처럼
신이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인생들을 대하며
그들에게 진리를 따르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신의 속성에 속해 있으며, 변하지 않는 그의 절대성에 근거한 원칙이다.
그 원칙으로 세상은 창조되었고, 움직여 지며 일정기간 신이 정한 시점까지 보존되어 간다.
신으로 부터 나온 진리의 언어는 세상을 이룬 근간이 되며,
세상을 창조한 그의 능력의 표시이다.
그의 언어에서 나오는 진리는 영원성과 절대성을 소유하고 있다.
신의 절대적인 진리앞에 상대적인 인간은 신의 진리를 붙들고 살아갈때에,
인간이 겪는 혼돈이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신은 인생들에게 진리를 선포하며,
진리의 의미와 가치를 알리기를 원한다.
그의 진리는 그의 언어를 통해 나타난 그의 자기표현에 의해 인간들에게 알려진다.
신의 진리는 인간사회에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자연세계의 원리에 영향을 주며,
인간세상의 생노병사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또한 신의 진리는 인간세상을 향한 그의 심판을 통해 나타나는데,
그는 인간의 행위나 삶의 결과에 대해 평가하며,
단 한번의 기회를 좇아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한다.
사람들이 신의 진리를 따르면,
그 사람들과 그들이 사회는 정의와 배려가 있는 세상이 되어,
조화를 이루어 그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이루어 간다.
신의 자비는 그의 속성의 또 다른 면이다.
그의 자비는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의 자비는 인간을 용납하며, 인간의 허물을 용서하는 데에 근간이 된다.
그러므로 신은 언제나 한없는 사랑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신의 사랑의 기반위에 세워져 있다.
모든 인간의 사랑의 표현은 신의 사랑의 반영의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신은 인간을 만남과 관계들을 통해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살도록 하였다.
인간세상에 언제나 사랑하는 만남이나 관계가 인간들의 관심사이며,
그 사랑이 언제나 인생의 삶의 큰 주제라고 할수 있다.
늘 인생문제를 안고사는 인간 삶의 현장에 신은 그의 사랑을 나타내 보인다.
그의 사랑이 가장 크게 나타난 것은
그가 자신의 외아들을 이세상의 살고 있는 인생들을 위해 세상에 보내어
그가 사람들의 모든 죄의 짐들을 지고 죄인으로 죽게 만들어
그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보여주었다.
삶에 지쳐있는 인생들은 자신들이 지는 무거운 짐들을
이미 오래전에 신의 아들에 의해 처리되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혜택을 받으며 살면,
모든 인생의 짐들이나 역경을 극복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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