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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초대

이사야 55:1-5
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너희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4.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었나니
5.내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나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내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부르신다. 하나님의 품 안을 떠난 인생들은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가 왜 인생들을 부르시는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의 찾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의 에덴 동산은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주님이 명하신 바를 거역하여, 범죄하였다. 그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그분의 존재를 무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좇기듯 하나님 앞에서 멀어져 가는 그를 향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고 계셨다.

그것은 인생들이 제 길을 찾지 못하여 지금 인생들이 방황하며 혹은 절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다니며, 진리를 구하고, 어둠에 처해있는 인생들이 빛을 찾아 길을 나서고 있으나, 자신 속에 있는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리가 아닌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곳에서 지치고 상한 심령들이 하소연을 하고 있다.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하나님은 사람들을 향해 그로부터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준비하여, 그 삶의 길을 제시하며, 누구든지 그 길로 나아오라고 하신다. 절망 가운데에 있는 심령들은 들을 만한 희망의 메시지이다. 인생의 길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구원의 소리이다. 지친 영혼, 상한 영혼, 병든 영혼들은 모두가 창조주 그분에게 나오면 그분이 병든 영혼들을 치료하시며, 상한 영혼들을 새롭게 하며,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여 건강한 인생을 만들어 주신다.

세상에서 사는 인생들의 현실은 항상 부족함과 자원의 제한 속에 처해있다. 그것은 세상의 형편은 만족하게 인간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자원의 한계에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인생들은 목말라 있다. 세상에는 생명에 대한 목마름, 진리에 대한 목마름, 사랑에 대한 목마름, 영원에 대한 목마름 등 여러 가지 것에 대한 갈급함으로 가득하여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이 목마름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로 그 갈급함을 채우려고 하지만, 만족할 길은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목마름에 의해 인생들은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자신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주고 축여줄 여러 가지 것들을 좇아간다. 어떤 때에는 명예를 좇아 갔지만, 그 명예를 자기 손에 넣는 순간에 그 명예는 자신을 언제나 만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 또한 언제 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경우에는 물질을 좇아갔으나, 물질을 추구하는 자신의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공허함의 소리를 듣고는 소금을 머금은 사람처럼 물을 찾아 다른 것으로 만족을 채우려 하나 실망한다. 세상의 영달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권력형 사람들은 그 권력이 주는 매혹에 빠져, 거기에 목을 매달아 살아가지만, 그 권력도 언제 가는 자신의 손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때에 가서야 그 권력 추구도 무상함을 알게 된다.

젊음이나 아름다움이나, 혹은 삶의 활기참 등 인생이 주는 시간의 혜택 안에서 안주하고는 그것들을 즐기고 거기에서 주는 만족감을 누리려고 하나, 달려가는 인생의 시간들은 너무 빨리 그런 인생의 좋은 것들을 사람들에게서 취해 가버린다. 마음은 젊지만 육체는 지나는 시간 속에서 결국 시간의 제한 속에 갇혀 있는 육체의 한계를 알고는 절망한다. 과거를 추억하며, 회한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연인이나 혹은 사랑이나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사랑이 주는 달콤함이나 귀여운 자녀들을 얻고는 가족이 주는 행복함도 세월의 냉혹한 현실 앞에 자신들의 과거의 아름다운 것들을 지나간 추억으로 되돌려 버리고 만다. 흐르는 시간은 수없이 많은 것들을 얻으려는 인생들을 실망시키며, 회한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가 외치듯 사람들은 이런 헛되고 헛된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가고 읊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 인생들을 썩어질 흙으로 만들고, 시간 속에 살아가도록 인간의 운명을 정해놓은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들이 갈 길이 아닌가? 주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너희는 내게 나아와 들으라고 하셨다. 시간의 제한 속에 그리고 육체의 한계성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와 악을 통해 얻은 인간들의 비참한 상태임을 깨닫고 주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자신을 구원하는 인생 지혜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영원 가운데에 계신 신은 시간 속에 있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언약을 세웠다. 너희는 내게 나와 들으면, 너희 한계를 벗어날 영혼을 살리는 약속을 받는다. 시간 속에 들어오신 주님은 그가 시간의 한계에서 죽어가는 인생들을 구하기 위해 시간과 영원을 연결하는 대속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생 한계(생노병사)의 체바퀴 돌 듯 돌아가는 죽음의 회긔속에 있는 인생들을 살리는 다리를 놓으셨다. 그분은 인생들이 시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 놓은 일중에 가장 확실하게 인생들을 구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는 십자가에서 내가 그것을 다 이루었다라고 고백적인 선언을 하셨다. 그의 고백적인 선언은 죄에 빠진 채 흐르는 제한의 시간 속에서 죽음으로 떠내려가는 인류 구원의 선언서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민의 구원자로 모든 인생들의 선생으로 그리고 인생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인도자로, 그리고 인생들이 지켜서 얻을 생명의 도리를 전하는 명령자로 세우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적인 예언과 그의 계시를 경험한 종들(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는 인생들)의 증거와 그 증거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은 그에게 나오는 모든 인생들을 구하는 생명의 구주이심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만민을 향한 그의 구원의 원대한 계획은 영원부터 이루어 진 그의 선취적이며 주도적인 우주에 가장 큰 프로젝트이다. 그의 계획은 후회함이 없고, 실패함이 없으며, 그의 정하신 것을 그의 영원성과 절대성에 근거를 통해 이루어 질것이다. 그의 인생 구원 계획은 그에게로 나오는 필자와 이것을 보는 독자 등을 포함한 모든 인생들에게 미치고 있다. 그는 인생 자신들을 한 사람씩 부르신다. 그가 세워 놓은 영원 생명과 그가 가져오신 인생들이 누릴 풍성한 삶을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신에게로 나오는 인생 자신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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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삶의 근거

베드로 전서 1:13-21
13.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찌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 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크리스천의 삶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거룩함에 이르는 삶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좇아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죄 있는 인간의 상태에서는 저절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부패한 성품으로는 하나님에게 나갈 수가 없으며 그분 앞에 사는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살아갈 수도 없다. 고로 그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의 자세는 행동의 양식을 가져온다. 마음의 정결함과 선함과 옳은 뜻을 따르려는 자세는 자신의 심령 안에서 마음의 상태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할 때에 가능하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이 심히 부패하여, 저절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해할 수 없으며, 알아도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도 없는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 인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은 먼저 자신의 마음의 변화와 깨어남의 전제가 필요하다.

건전한 정신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듯이 정신을 차린 상태로 살아야 자신의 마음이 정결하며, 옳은 일을 위해 의를 좇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진리의 빛이 없는 고로, 인간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며, 무지함에서 방황하며,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의 빛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어, 그 상태의 혼돈함과 비참함을 보게 하여, 마음의 잡초가 난 상태에서 그것을 뽑아버리려는 시도를 한다. 그것이 마음의 갱생과 정신적 인과 영적인 자세의 변화가 따르게 된다.

그리스도 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자로 건강한 영적인 삶을 영위하여 갈 때에 주님의 가져오실 더 큰 은혜와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세상 나라의 정지와 그의 나라의 정착이 시작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때에는 새로운 차원의 안긴 유형의 삶이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날을 준비하여 사는 자에게만 그 때의 삶의 새로운 차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한 사람은 순리대로 사는 자와 두 번째의 사람은 하늘에 대해 역천하는 자로 살아간다. 순리대로 사는 자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를 대하는 순종하는 자식처럼 자신을 여기며 살아간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 품 안에서 그분과의 정상적인 관계와 지속적인 교제 안에서 그분의 관심과 돌봄의 대상으로 살아야 할 존재였으나, 인간의 독립적인 자세로 그분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기 스스로에 대해 주장하는 자세로 살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로 낙인을 받아, 수치심과 정죄 의식에 사로잡혀 지내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과 그에 따르는 죄의 결과는 인간을 비참한 상태로 만들어 버려, 자신의 그 욕구에 따라 살아서, 결국 그로 인하여 죽음의 선언을 받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정죄 받음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로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과 그의 뜻에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인생을 본받아 살도록 부르셨다. 과거에는 부패하며, 방탕하게 살았어도 지금은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초청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생활은 그의 거룩하심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다. 거룩함이란 구별됨을 뜻하며, 그 거룩함의 생활은 마음도 몸도 정신도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이 거룩함으로 살아감이란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하며, 살아가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인생을 병들게 하는 부패와 타락의 길에서 벗어나, 죄의 문제를 극복하여, 영적으로든지 정신적으로든지 육체적으로든지 모든 면에서 건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뽑혀 불러냄을 받았으며, 그분의 택하심을 좇아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게 되었다. 그의 성품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그를 닮아 가기를 힘쓰는 것이며, 그의 성품은 그분과의 사귐을 통해 얻어지며, 그분과의 교제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은총과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신선함과 자기의 도달해야 할 온전함을 향해 지속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그분의 의도를 따라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분은 그가 창조하신 피조물과 구별된 초월성을 갖고 계신다.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셔서 돌보고 계신다. 그러나 그가 창조하신 세계 안에 인간의 범죄함으로 부패와 더러움으로 오염된 사람들의 세계를 새롭게 하는 의도로 다가오신다. 고로 택한 사람들이 그분에게 가까이 가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으며, 그분의 제시하신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거룩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타락하여 마음이 부패한 세계에 살고 있다. 고로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부패한 성향으로 인하여, 그분의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는 거룩의 발걸음을 살아가려면 의지의 결단에 의한 마음의 변화와 지속적인 갱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들의 내면의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을 전체로 파악하며, 분별하신다. 사람들을 부르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외모나 행위보다는 내면이나 동기의 선함과 악함을 보시고, 늘 그들의 외모보다는 진정한 내면의 변화의 유도를 권고하신다.

사람들을 부르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그들을 택한 자녀로 세우신다. 고로 택함 받은 사람들은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녀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이며, 시민권 자로 이 땅에서 살아갈 시에 잠시 머물러 살아가는 나그네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나그네는 자기가 가야 할 분명한 목적지를 보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길을 향해 계속 가는 사람들은 길에서 결코 한가하게 자리에 주저앉아, 안일한 자세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며, 세상에 눈을 팔지 말고, 자신이 받은 하늘의 소명을 이루어가는 진지함과 근신하는 자세로 세상에서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들은 혈통이나 조상의 영향 아래에서 머물러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와 형벌 받는 저주의 혈통 아래에서 질식하며, 그리고 결국 죄의 대가로 멸망에 이를 상태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각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각각 개인의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각 개인이 인간의 원죄와 유전 죄와 그리고 자신이 짓는 자범 죄에서 주 예수님의 죄를 용서하시는 구속의 보혈로 죄의 대가와 형벌로부터 해방을 받아, 그 주님의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의인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주님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이 죄와 죽음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그 험악한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영혼의 기쁨을 얻게 되었다. 주 예수님은 옛적 구약 시대에 인간의 허물과 죄에 대한 제물로 희생되었던 양의 희생 제물처럼 십자가에서 버림받은 죄수로 처형을 당하며, 인간의 죄로 인한 죽음의 형벌을 사람들을 대신하여 당하셨다. 그가 흘리신 피는 생명의 강이 되어 누구든지 그의 보혈을 마시고 그의 피로 죄의 씻음을 받으면, 죄의 저주와 죽음의 형벌에서 해방되어 구원받는다.

날마다 그분의 흘리신 보혈을 생각하며, 그 보혈의 능력과 효력을 따라서, 부패한 자신의 마음이 정결케 되며, 어두운 심령이 생명의 빛을 보게 된다. 고로 그의 보혈은 죽은 심령들을 다시 살리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 아무리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라도 그의 보혈에 씻음을 받으면 그 무거운 짐에서 벗고, 영혼의 자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날마다 늘 그분을 바라보며 찾으며, 그분이 소생시키시는 영혼의 축복 안에 기쁨과 만족을 주는 삶의 묘미를 맛보고 살아간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 전에 영원 가운데에 함께 계셨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생명의 말씀으로 알려지셨다. 사람들이 그분에게로 와서 듣는 그의 메시지는 생명의 말씀이 되어 죽음 아래에 있는 생명들을 살리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되찾아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인도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의 정해진 시간의 선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만큼 살아간다. 이런 시간의 현상은 종말적이며, 제한적이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이 종말의 현 시점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만큼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시간에 대해서는 마지막 시간을 산다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세상에 올 때에는 차례대로 부모들을 통해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오직 하나님이 아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특히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확신하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단 한 분 뿐이신 예수님, 즉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그 아들을 비참하게 인간의 죄의 형벌을 대신 치르게 하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매정하게 그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시고, 그의 아들을 버리신 것이다. 저주의 형벌과 지옥의 고통과 같은 죽음의 현실을 당하신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모든 구원받는 사람들의 살리시는 생명이 되셨고, 절망과 고통 가운데에 처해있는 모든 인생들의 희망이 되셨다.

크리스천은 희망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라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희망을 안고 산다. 그들의 삶은 절망을 이기고, 희망을 따라 살며,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런 희망의 근거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심에 있다. 그들의 신뢰심은 결국 그들의 죽어가는 영혼과 자신들의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찾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신뢰심은 세상이 감당을 못하며, 죽음도 불사하고, 미지의 세계인 영원을 잇대게 하는 생명선으로 연결된다.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그들은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공명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성공하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승리의 비결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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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안에 있는 사람들

요한 일서 4:7-12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를 통해 살수 있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10.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아 주셨습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세상을 창조 하사, 자신이 만드신 세상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세워놓은 이세상을 돌보셨다.  그리고 아름다운 동산을 세우시고 그 가운데에 사람을 창조하사 살도록 하셨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며, 사랑하셨다.   고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태어났으며,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래서 사랑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목마름에서 오는 인간 희구의 감정의 원형이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란 단어는 사회적인 인간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며, 서로 채워져야 할 사람들 속에 있는 원초적인 요구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나누는 사랑은 혈육들이 나누는 사랑이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향하는 사랑이나, 혹은 동기간에 혹은 형제 남매간에 서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돌보며, 나누는 인간의 정에서 나오는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의 돌봄을 통해 사람은 생존하며, 태어나서 무덤에 갈 될 때까지 인간의 끈끈한 정에 얹혀서 살아간다.


남자와 여자로 지음 받은 사람들은 서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할 존재로 사람은 유아 독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남녀간에 차이를 넘어, 원래 한 몸에서 나와,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갈구하며, 애증하며, 한 통속에서 나온 연결된 관계의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자아에 대해 자아 인식을 하면서 자기와 성적으로 다른 존재인 상대방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  하늘이 정해준 순리대로 살아간다면, 남녀는 마치 자석끼리 서로 힘을 당기듯이 가까이 하며 살아간다.
 
모든 인류가 사람이라는 한 종족에서 나왔기 때문에, 각 나라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에게는 서로 하나님이 정해준 인간의 기본적인 요소(욕구 충족, 희망 사항이나 삶에 대한 의식) 들을 다 갖고 있다.  말을 하거나, 생각하고 느끼고, 서로 공통적인 인류애의 나눔을 갖고 살아간다.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에 의해 함께 생존하며,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지구촌의 이웃으로 같은 공동의 운명체 안에서 살아간다. 자연의 환경이나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안에서 사람들은 함께 비슷한 삶의 조건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인류애에 대한 보편적인 동포 사랑이나, 주변 나라들을 도우며,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인류 보편적인 사랑으로 국제 결혼도 하며, 혼혈로 된 자손들도 낳으며, 다른 나라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거나, 자신들의 자녀처럼 돌보는 이들도 있는 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으로 알려진 인류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류의 원래의 부모로서, 그는 사람들이 그의 사랑과 돌봄의 교제인 그의 법을 넘어가 그 말씀의 원칙들을 위반하여 범죄하여, 버림받았을 때에 그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유일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는 계획을 세우셨다.  그는 그의 아들을 보내사, 세상에 있는 멸망 당할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의 희생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을 조건 없이 그들을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있는 분은 아니며, 그가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심을 통해 그분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려주시고 있다.  그는 그의 말씀 가운데에서 자신을 사랑이시라고 하셨다.  그는 그의 사랑을 따라 사람을 대하시며, 사람들에게 사랑의 관심으로 늘 살펴주신다.   오직 그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가 사람을 위한 그의 사랑과 돌보심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으며, 그가 상대적인 존재인 사람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닮은 존재로 그의 사랑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되며, 그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진 곳이다. 인간의 저지른 죄로 인하여 부조화와 불합리가 판을 치는 것 같으나, 가까운 행성 중에 하나인 달에 갔었던 우주인들이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며, 사랑이신 하나님의 조화의 솜씨를 볼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들은 그들의 보았던 시야를 통해 지구가 둥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을 느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지구는 지금 사람들이 사느라고 갖다 버리는 온갖 쓰레기와 같은 것으로 뒤덮여 가고, 살기 좋은 지구 환경이 사람들이 개발하면서 내 품는 이산화탄소의 가스 배출의 팽창으로 점점 지구는 더워져 급기야는 인류 모두가 지구 온난화의 위험이나 재앙을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에 와있다. 


그러나 지구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로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지어진 곳이며, 지금의 문제는 지구의 주인께서 언제 가는 해결하실 것이다.   지구의 종말로 가던지 아니면, 그분이 이미 마련하신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정보는 사람들에게 그가 사람들을 지은 창조주이며,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이며, 인생들이 자신의 문제에 휩싸여 혼란스러워 할 때에도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인류 구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하며, 절망스런 자신의 삶에서 사랑이신 그분을 통해 소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상태를 버려두지 않으며, 그들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 그분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이 세상에 오신 그 독생자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나타내셔서,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신 것을 보여주셨다.  그의 희생과 죽으심을 통해 인류 원과 인간 개조를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해결의 길을 보며, 그분 안에서 인간 자신을 미워하는 불합리한 상태에서 범죄한 자신을 용납하여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 할 수 있다.


인간 상에 횡횡 하는 미움이나 저주나 증오의 현상은 사람들이 저지른 죄의 영향과 그로 인한 악의 세력의 확대로 인한 고통스런 결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 속에서 신음하며, 자신의 신세나 운명을 한탄하며, 불안해하는 자신을 달래려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인간의 본성 안에 숨어있는 악의 씨앗인 죄의 경향성은 오직 사람들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사람들 속에 있는 그 어두움을 몰아내신다.  불안과 절망에 버려진 인간을 향한 그의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잊어버린 위치를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다시 찾게 되며, 자신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그분의 사랑의 배려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의 영광된 모습을 회복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인 사람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 나누는 사랑의 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천의 발전소에서 나오는 구원의 무한한 힘과 생명의 에너지의 공급은 망가지고 버려진 사람들을 다시 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가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신비한 세계의 하나됨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죄로 인한 불안과 저주스런 고통의 현장에서 늘 돌이 킬 수 있는 위안과 자신의 삶에서 언제든지 소망을 얻는 능력을 공급받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 그리고 그 사랑의 지식과 정보를 받은 사람들은 그분에게로 돌아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사는 자의 기쁨과 인간적인 만족감을 누리며, 자신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형제인 이웃을 향해, 그분의 사랑을 나누는 사랑 실천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으며, 그 사랑의 경험 안에서 자신이 편안해하는 것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의 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비록 과거에는 정죄하며, 불만해하는 적대감이나 수치심이나 정죄 의식 속에서 해방을 받아, 사랑의 하나님이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 바라보시는 그 사랑의 눈으로 자신을 보며 자신을 그분의 은혜 안에서 용납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운명의 공동체의 지체인 이웃이나 형제들을 향해 그분의 사랑의 축복과 은혜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무리들의 아름다움의 실체는 바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서로 실천하며, 나누는 기쁨 중에 그 사랑의 을 경험하는 상태에 그저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그분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의 실체를 그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신앙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 사역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의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에 그들의 사랑 실천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허물을 용납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정죄의 어리석은 판단과 사람들 사이를 이간케 하는 고질병적인 시기와 질투의 질곡에서 해방 받는 치유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이제 사람들을 서로 이해하게 하며, 자라게 하며, 성숙하게 하는 과정을 지나게 하여, 자기 완성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그의 사랑은 한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과 인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자족감과 신실성을 도모하여, 끊임없는 그분의 기대치에 이르고 저 하는 자원의 노력의 의지로 충만한 상태로 계속하여 그분에게 나가기를 힘쓰며,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자기 개선과 자기 성숙을 통해 이루어가는 자기 완성을 향한 순례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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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하늘의 순리대로 사는 지혜

잠언 3:1-12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아버지교사가 아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추구하라고 4가지 명령과 그에 따르는 상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각각 하나님의 주시는 선물을 오용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을 신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 5-6
2.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앞에서 지혜로운 척하지 말라 7-8
3.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 9-10
4.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원리와 가치를 오해하지말것등 11-12

맥아더는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서 아들이 겪는 인생의 풍상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간구하고 있으며, 영국의 정치가이며 탁월한 지성인이었던 채스터 필드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아들에게 인생의 여러가지 교훈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국어 소 문고판의 서문에 한 아버지가 100명의 스승보다 자녀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줄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잊지말라와 지켜라입니다. 그 가르침은 주님의 율법입니다. 만일 이것을 인생의 원리로 따라 살면, 두가지유익을 얻습니다. 장수하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번영하는 것입니다. 번영을 위한 말씀은 샬롬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평화로 번영하는데 거기에 평안함과 번영함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더 큰 의미로 강건하게 되는 것, 건강그리고 조화로운 삶입니다.

사람에게 주님의 법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자녀에게 부모의 가르침은 인생을 유익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진리의 가르침이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생명의 길을 걷게 합니다.

우리가 이원리들을 따르는 것은 즉 그 법을 지키면, 자신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옵니다.
1-4에 명령에 따라 의무를 행하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5절에 하나님을 의존하며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하며
7,8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며,
9,10절에 우리의 재물로 그분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부를 얻는 길이다
11,12절에 우리가 징계나 고통을 참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경주에는 코스를 따라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습니다.
코스를 이탈해서는 정상적으로 경주를 진행할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보편적인 법은 자녀가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말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육체도 바르게 사용하면 건강을 유지하며, 영혼도 진리를 먹으며 살아가면 생명을 얻고,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갑니다. 인생에서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아래에서 심는 일을 열심히 하면 거둘 때에 많은 열매를 거둘수 있습니다. 불의의 씨를 뿌리면 불의의 열매를 거두고 선한 의의 열매를 위해 힘쓰면 존귀와 영광의 열매를 거둡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여 살면 인생의 장수를 하며, 그 날들이 형통과 평강의 날들로 채워집니다.

지혜의 삶의 길에는 은총과 영광이 있습니다. 인생을 영위하는 정책중에 정직이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삶의 진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게하며 자신을 방황하게 헛된 것들로부터 참된 자유를 얻게 합니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는 진리의 원천이십니다.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려면 그가 명하신 길을 따라 가면, 옳은 길을 걸어갈수 있습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들앞에서 인정을 받으며, 모든 일에 있어 제대로 쓰임을 받으며, 결국 그런 사람은 여러 사람들중에 높임을 받습니다. 사람들중에 명예를 얻은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존경을 얻었으며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을 인정받게 하였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인생은 자신중심의 지혜를 좇아가기 보다는 선인들의 앞선 삶에서 배우며 옛사람들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의 인생의 길들을 배우는 중에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길을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늘의 뜻을 쫓아, 그 창조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배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아시며, 그 길을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신다. 인생의 지혜는 하나님의 길을 배우며 그분을 섬기는데서 부터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배운다. 하나님은 인생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다 아시고 그들의 종국에 도달할 목적지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앞에서 겸허하게 살아가려면 모든 일에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명하신 일들을 명심하여 자신의 하는 일에 모든 일에 적용하여, 그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모든 일에 그분을 인정하는 것은 항상 어느 일에 든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물으며, 그일을 추진하는 시기가 적당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삶의 모든 일에는 각기 적당한 시기와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해야 할 것인지 나중에 해야 할 것인지를 물어 보며, 일들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하나님에게 여쭈어 먼저 해야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하는 일은 실수가 있고, 실패할 경우가 많으나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하고 인정한 일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실패하지 않고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그 일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혜나 능력을 그분으로부터 구하여 그 일을 하면 훨씬 쉽게 성공적으로 이룰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경우)

자가당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일에 자신이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 착각에 쉽게 빠지는 것은 자기 스스로 과대히 지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리석어 지는 것은 겸손한 자가 아니라 자기의 지혜나 능력을 과대히 평가하여 자기신념에 몰입하다보면, 스스로 실수를 하며, 어리석게도 남에게 해를 끼치기 까지 한다. 고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지혜, 지식, 재물, 권력, 재능)으로 교만하게 자신을 생각하면 자신의 삶을 실패하기 쉽습니다.

오직 인생의 길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인생을 창조하며 인생의 길들을 정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경배하는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의와 진리의 원천이며, 온우주의 원칙의 순서를 세우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무시하고서 참된 선을 이루어 갈수 없으며, 도리어 악을 범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제시하는 길을 버리는 것이 인생을 악으로 빠지게 합니다. 악한 인생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길들을 따르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걷다가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세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에게 구하여 얻을 수 있는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기술적인 지혜나 학문이나 혹은 훌륭한 판단력을 갖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좋은 손 기술로 하나님의 장막을 잘 지었던 오홀리압이나 애굽의 궁정에서 이집트의 문화를 배운 모세가 가진 학문의 지혜는 모세오경이라는 고대사회뿐 아니라 인류문화의 보고라 할수 있는 탁월한 법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겸허히 하나님에게 백성들을 잘 다스리며 사람들의 속 뜻을 잘 분별하는 훌륭한 재판을 하는 지혜를 받았습니다.

두번째 생각해볼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섭리의 지혜를 통해 나타나는 우주적이며 인생의 전반을 주관하는 삶의 원리로서의 지혜가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며, 인생의 바른 도리의 삶의 원리들을 제시합니다. 이 지혜를 받으면 인생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수 있는 철학가나 성인들의 반열에서 서게 하는 인생원리로서의 지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서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관계와 교제로서의 주어지는 인격으로서의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아버지의 보내심으로 이땅에 말씀(로고스)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모든 지혜가 그분안에서 나옵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그분안에서 그분과 교제하는 동안에 늘 우리는 그분의 지혜의 능력과 효용을 공급받아 이세상에서 하나님앞에서 자기에게 정한 삶을 그분의 뜻안에서 순리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며 살아갑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앞에서 사는 이 지혜는 고대사회에 악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지않고 승천하였던 에녹과 같은 삶에서 이런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의 여러 측면들을 그분에게 나아가 구하고 살아야 할 것이 인생의 마땅한 갈길이며 도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에게서 지혜를 구하고 살면 인생의 하는 모든 일들에 그일에서 의미와 가치와 성공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삶이 굳건한 반석위에 세워져, 많은 풍상(고난, 고통, 저주, 헛된 운수지향주의)이나 자신의 삶을 흔들게 하는 일들( 실수, 교만, 사건, 사고, 헛됨, 갈등, 범죄)에서 벗어나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이 세상에 살도록 세우시기전에 먼저 이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채워주심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이 마련하신 것들을 누리며 그리고 혹은 즐기며 살아갑니다. 비록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하는 고된 인생의 환경이지만, 그가운데에서 그분이 주시는 삶의 안식이나 즐김과 능력공급을 받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고로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것들로 하늘의 뜻에 거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의도에 자신이 얻은 것들을 쓰며 혹은 더 나아가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면 보다 삶이 풍요로우며, 유익한 인생의 열매를 거둘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노력한 것들을 바르게 심어가면, 그 결과에 유익한 것들을 거두게 된다. 그래서 그 소산물로 자신이 즐기며, 가족을 부양하며, 그리고 그것을 이웃에게 나누며 살아갈때에 하나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은 우리 인생의 필요에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이나 자기 이익에 몰입하는 일은 그 인생을 어리석게 만드는 헛된 수고를 하게 한다. 자기이기주의로 재물을 모으고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능을 `키우고 일들도 결국 인생의 결산의 길에서 남는 장사가 아닌 밑진 장사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수고한 것들을 함께 이웃들과 나누며, 하늘의 뜻에 거역하지 않고 옳은 일에 쓰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면 자신이 모은 재물이 썩지 않고, 요긴한 때에 써야 할 일이나 사람에게 적절하게 쓰여져 많은 선함과 유익한 열매를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이 아름다운 명예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놓은 재물이나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지혜나 지식이나 자신이 개발하여 발전시킨 재능등이 유익하게 사용되어, 더 값진 것들을 낳게 됩니다. 그는 이제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서있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새로운 세계에서도 그의 이름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지혜자들의 삶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다니엘은 타락한 문화속에서도 하나님앞에서 살고저 하는 경건하게 사는 인생의 결단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방인 땅에서 하나님앞에서 살려는 의지와 비전에 대한 실천을 이루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더나아가 헌신된 그의 마음에 주님으로부터 꿈을 해몽하는 지혜를 받아 그에게는 특별하고 신비로운 인생의 한계를 넘어가는 신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또한 명 청지기였던 요셉에게는 경영의 지혜와 인내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17세에 팔려가 애굽의 군대장관집에서 그리고 궁중감옥에서도 30세 이르기 까지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인생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결론
지혜의 유익한 것들은
1.무엇보다도 인생에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혜만의 독특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지혜의 우월성, 탁월성이 있습니다. 고전 1: 지혜는 그리스도이며, 그는 로고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길,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딤후 3:15-17에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를 담은 책이며,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지혜와 선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데 유용한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2.지혜가 보이면 인생의 성공의 길이 보입니다. 그안에는 인생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여러가지 지혜를 알려줍니다. 경영의 지혜, 노력의 지혜, 자기성장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3.원래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지혜는 의인의 삶의 길에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를 얻는 길입니다. 바르고 살려는 의인의 삶에서 지혜를 찾아볼수 있습니다
4.어리석음과 지혜의 비교를 통해 지혜의 혜택과 특권을 누립니다.
지혜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자기파멸에서 구원하며, 자신을 모든 것으로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리석음은 반대적인 것으로 악에 빠지며, 파멸에 이르며,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5. 지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모든 곳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돈을 모으는, 밥먹는 일, 친구사귀는 것, 결혼잘하는 것, 식물을 잘자라게 하는 것, 모든 일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잘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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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에게 붙어있는 인생

참포도나무의 비유
요한 15:1-6
1.“나는 참 포도나무이고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두 잘라내시고 열매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려고 깨끗이 손질하신다.
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어 준 말로 이미 깨끗해졌으니
4.내 안에서 살아라. 나도 너희 안에서 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사람안에 살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누구든지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 버린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주워다가 불에 던져 태운다.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비유를 통해 인격적인 관계안에서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 알려준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의 신앙과 삶의 현주소가 어디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은 살아있는 분으로 지금도 신자들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다.

신앙인의 능력있는 삶의 비결은 예수님과 성도개인과의 관계에 의해 달려 있다. 그 관계는 생명의 관계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신앙인들은 그의 생명을 받아서 그의 생명의 영향력에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생명은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의 삶을 보장받으며, 그 생명의 연결을 통해 신앙인안에 그와의 연결을 통해 생명이 유지가 된다. 고로 그 생명유지는 근본적으로 그와의 관계와 그에 따르는 교제의 실질적인 지속적인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분과의지속적인 연결은 그로부터 끊임없는 생명의 흐름을 공급받으며, 그분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가져온다. 신앙인들은 신앙생활하면서도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따로 사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음을 본다. 과연 나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인가? 아니면 자신 혼자 애쓰고 영성생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밭에 심어지신 포도나무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밭에 심겨진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열심있는 농부로서 창조시부터 그는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영광된 관계에서 떨어져 나가 저주받은 땅에서 불안과 고통속에 살고 있는 인생들을 다시 그의 아들의 나라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땅에 세워진 인류희망의 나무처럼 이세상에 심겨졌다. 그의 포도나무의 비유는 자신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나라의 범위아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다. 누구나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나라에 속할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축복을 상속받는다. 구원받은 중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통치의 세계로 들어온 이들은 그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관계의 생명을 지속할수 있다. 이 관계의 지속은 그와의 개인적인 친분의 교제를 통해 가능할 수 있다. 만일 지속적인 관계유지에 실패한다면 그들이 맺은 관계설정이 무효화될수 있는 것은 그와의 관계는 개인적인 교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잎이 열리고 그 가지에서 열매를 맺게 되려면 지속적인 관계의 유지와 그와의 활발한 교제만이 그에게 붙어있는 가지로서 생명유지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 자신의 역할을 할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가지로서 끊임없는 생명유지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열매맺을 가능성을 안고 있으면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가지를 전지하며, 보다 열매가 잘 영글수 있도록 다듬는 일을 하신다. 더러운 것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잘 정리된 깨끗함을 유지하여 건건한 가지로 생존하게 하여, 열매를 맺을 때에 탐스러운 열매를 열리도록 배려하신다. 그 다듬는 일이나, 배려하는 일은 두가지를 겸하는 것인데, 훈련이나 단련을 시키며, 그리고 격려하는 일을 통해 가지가 가지로서 강건할수 있도록 만들어가신다.

믿는 사람들이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그의 약속안에는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는 정화의 내용이 있으며, 그 말씀을 믿음으로 자신의 죽은 영혼을 살게 되며, 자신을 더럽히는 죄의 흔적들을 씻어낸다. 그 말씀을 통해 더러운 인간의 타락한 부분들을 드러내어, 그 정죄된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그의 말씀에 있다. 그는 이땅에 생명의 말씀으로 오셔서, 그가 말씀을 통해 전해준 약속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피흘림으로 인생들의 죄를 씻어내는 정화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분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의 몸을 희생하므로 죄를 해결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자신들이 거듭나 변화받은 것은 그의 씻기시는 능력의 약속을 담고 있는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인간의 죄가 씻어지며,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인생들으 그분안에서 죄의 정죄받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심령이 되어 새로운 생명의 약속을 받은 자로 살게된다.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 거기에 붙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수를 인정하고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생명의 주인으로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를 영접한 인생들안에 오셔서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주하여 그의 나라가 그들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나라의 통치속에서 그는 인생의 주인으로 자신을 믿고 받아들인 그들의 생활속에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자신을 믿은 사람들에게 가져오신 세계는 죽음과 불안과 절망에서 생명과 평안과 그리고 희망을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분을 따라 살면 그안에서 진정한 인간됨의 길을 발견하며, 인간의 자기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을 터득한다. 그안에서 하나님의 인간개선과 개종을 이루어 내며, 인간의 자애중심(자기가 자신에 대해 하나님이 되려는 의식속에서 갈등과 불안을 경험한다)의 제한되고 모순된 삶에서 하나님중심의 의인(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가운데에서 주님의 인정받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진정한 평안을 경험한다)의 삶을 살아간다.

그분안에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받는다. 그분안에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한 활력과 용기와 희망을 얻으며 무슨 일에나 충실한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분을 떠나서는 외로운 고독자처럼 자유인처럼 사는 것 같으나, 그의 삶은 늘 죄의 속박아래에 주어진 억압된 인간성의 한계와 불안가운데에서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이 아닐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조차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여, 자신안에 있는 육욕이나 죄의 영향력안에 있는 탐욕적인 추구에 몰입하기 쉬어지며, 결국 허망하고 혼란스런 생활을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주님밖에 있는 인생들은 그들이 당하는 인생의 처절한 상황은 인간시조의 원죄와 그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부조화된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에서 내면의 평안을 얻지 못하며, 결국에는 자신안에 있는 인간절망의 상태에서 탄식하며, 곤핍한 심령의 상태에서 메마른 생애로 마감하며, 결국에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향하여 나갈수 밖에 없다. 그의 종말은 심판으로 인한 파멸의 길에 놓이며, 후회와 회한의 삶을 살아온 자처럼 사라져 없어질 무의미한 생으로 마감할 것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그분을 믿고 영접한 신앙인들은 지속적인 그분과의 생명의 관계형성과 계속되는 공급되는 그분안에서 오는 삶의 에너지에 충전을 받으며, 그분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일들이 옳은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은 그분안에서 자신의 영적생활을 유지하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공기와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하여, 자신의 삶이 보람차며, 좋고 귀한 열매맺는 생으로 이어질수 있도록 그분에게 늘 붙어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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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

요한복음 2:1-11

서론
결혼식은 인간의 만남과 관계에 있어서,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관계 설정의 예식입니다.
결혼 예식에 있어서 서로의 서약하는 순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신성한 인간관계의 권리와 의무의 약속입니다.
결혼 예식을 통해 앞으로 두 사람의 미래가 결정이 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도 결혼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문을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날에 설레이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지는 벅찬 경험을 가졌었습니다.

우리네의 결혼식은 당일날 예식과 더불어 2박 3일 정도의 신혼여행을 다녀가게 되었지만,
그리고 도착하여 신부네 집에서 신랑이 함께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결혼식의 기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신랑의 집에서 혹은 그 아버지의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절정을 이룹니다.

본론
주님의 공생애에서 그는 제자들과의 첫만남이후에 함께 결혼식에 참여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일은 제자들에게 메시야로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리고 그의 앞으로의 사역에 인간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시고
해결하시는 해결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여러번 하나님의 나라의 대한 성도들의 참여를 결혼예식을 통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 결혼은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로 설정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의 관계로 의미하는 바를 나타냅니다.
신약에서는 천국은 초대받은 신부들이 신랑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성도들은 주님과 영적인 혼인 관계를 통해
구원을 받으며 주님과의 나라의 백성이 되며,
장차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 참여합니다.
그 결혼식에 있어 신랑은 주님이며, 신부는 성도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이미 마리아는 거기에 있었고, 주님과 제자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손님을 대접할 때에, 잔치의 평가는 포도주의 준비나,
그 포도주의 맛 혹은 음식의 정성스럼에 있습니다.
포도주는 때로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막지역이며,
물이 귀한 중동지역의 이스라엘에는 주로 포도주를 물과 3대1로 섞든지,
10대 1로 섞어 음료수로 씁니다.

인간의 문제
마리아의 요청/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결혼식의 해프닝/포도주가 모자 란지라.
신랑 집에서 주최한 결혼식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결혼식 하객에는 신부측 손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포도주가 모자라, 예식에 지장을 받아서 하객들이 항의하여,
유대법 상으로 신부측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도 있습니다.

이러한 곤란한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나의 고민이나 문제가 무엇입니까?
1. 자신을 억누르는 안전이나 생존에 대한 걱정, 근심을 품는 것이 아닌지
혹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인지도 모릅니다.
2.자신의 변화나, 성품의 개선에 대한 것이 아닌지요. 자신도 모르게 실망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는 문제의 해결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나의 필요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기대하게 됩니다.

해결의 실마리
인간의 필요, 혹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에 접근하기 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이 있습니다.
본문의 기적은 주님은 인간의 문제의 현장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날마다의 삶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때때로 포도주가 모자라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낭패를 당할 때가 있으며, 곤란한 경우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신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하시고 도움을 주십니다.

1.마리아의 요청에 주 예수님의 응답으로 여자여 나와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습니다.
주님의 때에 대한 말씀을 요한복음에서 5번 정도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인생에느 그저 시간을 보내는 지나가는 때가 있는 가하면,
정해진 시간의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들은 우리 자신들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들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을 하는 순간과 주님을 만나는 시간들은
아주 귀중한 생애의 사건들입니다.
주님에게는 자신이 이것을 위해 이세상에 오셨기에, 그는 자신의 사명을 이룰 그때를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는 그 때에 대한 자기 사명의 시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의미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지나가버리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날때에는
그 시간은 너무 소중한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은혜를 받았을때에등은 자신에게 소중한 시간들이며,
부부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시간이나,
부모와 자녀간에 진지한 대화를 할수 있는 시간들은 가족에게 소중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인생은 유지되며, 생존하며, 번성하게 됩니다.
고로 축복으로서의 기적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우리의 현장에 늘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이런 일들은 많이 일어나곤 합니다.
저의 경험을 보면 저는 중학교 때에 동네축구를 하다가,
저보다 큰아이하고 부딪쳤는데, 오른 발 복숭아뼈를 크게 다쳐,
며칠을 통증으로 지내다가, 거기가 염증이 생겨, 곪아터져 진물이 납니다.
어머님과 교회의 한 권사님과 함께, 연세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골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뼈안에 곪은 부분을 긁어내는 수술을 그렇게 하다보면,
계속해서 그런 수술을 계속하고 나면 나중에는 발을 절단할수 도 있습니다.
병원비가 37년저에 15만원이 있었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앞에서 어머님과 그 권사님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앞에 한의원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를 만나
동대문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용한 한의사를 만나,
한약을 지어 15일 동안을 약을 달여 먹은 결과,
그 뼈의 고름을 다 말라지게 하여, 저의 다리와 발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기적의 의미
우리가 기적을 이야기 할 때에 미러클로서의 단순한 경이로운 일로 생각하지만,
요한복음에서 나타내는 기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그 기적의 배후에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기적의 사인즉, 표적으로서의 기적을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주님의 기적은 메시야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어,
이제 처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로(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그리고 아마 요한) 하여금 주님을 메시야로 믿게 하는 일 이었 습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기적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리고 그일은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이기적은 인간의 절실한 요청이나 긴급한 도움이 필요할 시에 일어나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편입니다. 그분은 살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세상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인간과 자연 속에서 은밀히 사역하시는 그의 역사를 볼수 있는
신앙의 눈을 뜨게 하며, 주님의 새로운 창조의 시도를 따르게 합니다.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것도 그런 기적입니다.

이집트의 모세의 기적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의 현장에 구원의 하나님은 기적으로 시작하여 기적으로 끝나는 가운데에
그들을 구출하십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그들의 오만과 악을 심판하시는 기적적인 개입으로
많은 재앙이나 자연의 재해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구원의 기적으로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배려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적이 내게 주는 의미는
1. 주님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을 알게 합니다.
주님의 36가지의 기적이야기 중에
처음으로 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통해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셨습니다.

인간의 문제투성이에 대해 주님은 문제의 해답으로 다가오십니다. 사람들의 문제를 생각할 때에 두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성의 변화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의 문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은 그런 두가지의 자신의 근본적인 것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는 자신자신의 성품이나, 개성이나, 혹은 자신안에 있는 능력의 문제와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살면서 겪는 삶의 문제들에 대해 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집문제, 사업문제, 자녀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공부문제, 결혼문제,
질병문제, 직장문제, 돈문제등, 많은 이슈가 있습니다.

문제해결의 길은 먼저 그문제에 대한 염려근심을 주님에게 던져 버려야 합니다.
포도주가 모자란 문제에 대해 마리아는 주님에게 맡겼습니다.
마리아는 사생활하셨던 예수님에 대해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공생애를 앞둔 주예수님(그의 모친으로서 오래전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예언에 의해 그녀는 주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 주님에 대한 신뢰가 그녀는
포도주가 갑자기 바닥이 나버려 자칫 혼인잔치에 수모를 겪을지도 모를 자신의 친척,
그 신랑집의 결혼잔치의 당면한 문제를 주님에게 맡겼습니다.

혼인잔치에서의 주님의 그 처음기적은 메시야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믿음을 강화시켰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기적은 한낱 비논리적인 환상이나,
혹은 우연의 사건으로 여길수 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결과를
특히 제자들은 주님을 신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듯이
2. 주님의 기적은 나에게 믿음을 강화시켜줍니다.
여기에 기적의 요건은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오는 믿음의 순종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기적은 하인들의 순종에 응답하신 결과입니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은 주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순종은 겸손한 태도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신뢰와 존경에서 나오는 마음에서 나오는 자세입니다. 순종의 태도는 믿음의 능력과 영향력(하나님의 응답)을 좌우합니다.
순종하는 마음에 경외심과 신뢰심이 자리 잡습니다.

순종은 주님의 의지를 내가 따르는 것입니다.
나의 주장이나 고집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태도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자주, 주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낫고,
주님의 계획이 자신의 플랜보다는 훨씬 뛰어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살아 갑니다.
성도로서, 그분에게 드리는 우리의 간구나 혹은 바램이나,
준비나 역사하심에 대핸 순종은 우리의 주변에서 주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주님의 역사 앞에 마음으로 열려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때에,
그리고 주님의 의도나 목적에 의해 일어납니다.
여기에 하인들의 순종하는 자세를 통해, 자신들은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주인집의 급한 문제가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물을 채우라는 주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들이 아구까지 물을 갖다 부으니 주님의 기적은 나타났습니다.

3. 나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역사로서의 기적
본문에서 주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그분은 마치 맛없는 인생들을 맛나는 인생들로 만들어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분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신성한 결혼식에 기적을 행하심으로 인생들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결혼에서 사람들은 이제까지 혼자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으로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영적으로 맺는 주님과의 혼인 관계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준비와 미래를 보게 합니다.

연회장의 평가
사람의 평가는 진정한 판단의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에 따라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연회장이 포도주의 맛을 보니, 더욱 맛있는 포도 주입니다.
신랑에게 칭찬하여 잔치가 지나 갈수록 더 나은 포도주를 내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으로 인도하시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유익이나 성장을 가져옵니다. 사단은 달콤하게 유혹하려고 다가오지만, 그 결과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패망의 길로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맛없는 인생이 맛있는 인생으로 바꾸어 지게 하십니다.
맛없는 인생이란 어떤 삶입니까?
무미건조한 생활혹은 늘 안일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궁핍하고 부족한 삶입니다.
가진 것 같은데, 없는 자처럼 사는 경우이며 늘 배고프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인생의 변화는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보다 승화시킵니다.
그런 변화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가기켜 자기개선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개종이 점진적인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지지만,
늘 성장하고 성숙한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드림과 그분에게 투자하는 시간이나 희생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들어 성경을 읽는 다든지, 설교에 몰입하든지,
기도에 혹은 영성강화에 헌신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영성이 성숙하며,
강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 영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변세계에 빛을 발할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개인의 급진적인 변화는 개종이나,
혹은 성품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나에게 있어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나오는 것이 자신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영적으로 도태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생물의 세계에도 변화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올챙이가 개구리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올챙이는 물에서만 삽니다.
뒷다리가 나옵니다. 나중에는 앞다리가,
그리고 나중에는 육지에서 다닐수 있는 발과 다리를 갔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살수 있는 몸인 개구리로 변합니다.

나비는 처음에는 애벌레가 되어 기어다닙니다.
그리고 딱딱한 고치 속에 얼마간 갑갑하게 지내다,
있다가 갑자기 어느 날, 고치로부터 날개가 붙은 나비로 분신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물도 변화해야 생존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변확시키지 않으면 도태합니다.
우리의 몸의 세포도 7일마다 갈아 치우면서 몸이 적응합니다.
우리의 영성이나 믿음의 마음도 변화를 받아야 성숙하며,
성장하며, 열매 맺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적용 및 결과/
여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적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는 자신에게 있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으로 알게 하고,
또한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며,
자신의 변화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기적을 늘 바라보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1.그래서 삶의 모든 문제를 늘 주님에게 맡기는 것으로
염려와 불안을 이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2.그리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 기적을 기대 하기 위해
주님 앞에 항상 열려 있는 자세로 신뢰와 순종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3.날마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자신의 신앙에서 발견하여 영적으로 성장하여 변화되어
열매 맺는 성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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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삶의 철학

시편 1:1-6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행복해지는데 많은 관심과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복을 좋아하며, 밥그릇에도 집안에도 복자를 써넣기를 좋아합니다.
흔히 우리가 듣는 말중에 오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五福(오복)은 무엇일까요.
동양 儒學(유학)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1. 壽(수)는 長壽(장수)하는 것,
2.富(부)은 부유한 삶을 영위하는 것,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3. 康寧(강녕)은 우환이 없이 편안한 것,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4. 攸好德(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며 즐겨 덕을 행하려고 하는 것,
5. 考終命(고종명)은 天命(천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복의 개념은 구약에서는 물질적인 것이며,
건강이나 수나, 형통등 세상에서 얻는 복과 비슷합니다.
그 인생의복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복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보편적인 복입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의 가정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는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을 선택하여 하나님과의 약속과의 관계에서
그 약속을 지키면 즉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복을 받는대신에 저주가 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있는자는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즉 하늘나라의 복을 받는 자들이며,
자신의 영혼구원을 갈급해하며,
하나님의 영생의 생명을 찾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신앙생활에는 이런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불행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교만하며, 죄를 범하며, 악한 자의 삶의 길에 있을 때 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불행의 원인이 인간의 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로 살기좋은 이세상이 저주와
그로 인한 불안과 고통과 죽음의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평생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하며
그리고 때로는 불안을 안고 살며, 절망가운데에 머물러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이 행복할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삶의 바른 길을 갈 때에
즉 죄를 해결하며 의인의 삶으로 살아갈때에 입니다.
무엇이 사람을 의롭게 만들어 갑니까?
그것은 인간의 도덕이나 수양으로 가능합니까? 아니요,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을 바르게 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성품을 바꾸어 주며 인간에게
선한 하나님의 성품을 다시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었으나 사람은 악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살리고
자신을 의롭게 하게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의 길은 그의 말씀속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그 말씀안에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영혼을 고치며,
악한 영혼들을 고쳐 선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크게 두종류의 인생철학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인의 삶의 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복되게 하며,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또하나는 악인의 삶의 철학은 인간을 더럽히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죄의 길이며, 악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는 교만한 인생의 길입니다.
오직 의인의 삶의 철학은 인간을 바르게 인도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는 의인이 되게하는 삶의 철학은
인간을 자신의 삶에서 행복해 질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의인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악인의 삶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무엇이나 잡는 것 같은데,
그것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는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소유를 취하는 것, 소유욕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자신의 삶이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탐욕은 죄의 뿌리입니다.
만족이 없는 갈증을 줍니다.
그러나 인생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그 가치를 통해 소유도 따라오고, 행복해지기 쉬운 것입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이자신을 행복하게 합니끼?
자신이 행복해지게 만드는 조건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자기의 상태즉 자신이 있든지 배웠든지,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상태에 행복해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두부자가 있는데 한 부자는 자신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유익하게 쓰며,
남을 도우며,그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구하고 살면서 행복해 합니다.
다른 부자는 다른 사람를 착취하여 끊임없는 소유욕에 의해 얻어진 부이기 때문에
그 부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모아도 항상 탐욕에 빠지는 궁핍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두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가지고 부족해도,
자신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한 한 사람은 못가졌다고 원망과 불평속에 있으면,
불행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서
자신을 행복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 지는 절대적인 행복의 상태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시듯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바르게 보며 삶을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자신의 상태냐?
아니면 행복해지려는 자신이 갖고 있어야 할 조건이냐?
전도서에서 인생의 복은 자신의 주어진 분복을 누리는 것이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즐기는 상태를 복받았다,
즉 행복한 생활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복을 위해 인생을 지으셨습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반면에 모든 인생들은 불행을 싫어합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큰 목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여, 비둘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행복과 소통하여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발견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행복을 얻을 수 잇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에 성경은 사람을 구원하게 하며,
또한 의로운 일꾼을 만들어 냅니다.
본문에서의 복있는 사람에 대해
요한 계시록 1:3에 그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자와
그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즉 행복한 사람은
주야로 그 구원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듣기를 힘쓰고
그 말씀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자신의 의인의 삶의 철학적 바탕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주님의 법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뜻, 바램, 열망, 마음의 동기,
즉 영혼을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태도에 있습니다.
주님의 법을 자기 인생의 규칙으로 삼으며, 삶의 철학으로 삼는다.
모든 행동이나 열망의 표현을 말씀의 거룩한 표준에 둡니다.
그는 자유의 온전한 법을 좇아,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이며, 그의 행동이 복을 받습니다.
그는 단지 읽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아니라,
그가 읽은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여, 자신의 영혼을 먹이는 것입니다.
마치 말씀의 젖을 먹듯이 영생의 삶을 키우는 것입니다.

불행하게 하는 인생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본문에서 인간의 죄의 상태의 삶을 세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불경건한 사람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무신론자들의 삶은 불행합니다.
2. 죄인들의 삶은 표적이 빗나간 삶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생활에 빠집니다.
위반하는 생활입니다. 이 사람은 선한 것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악을 범합니다.
전자는 하나님없이 사는 자이어서 절망적으로 악한 사람입니다.
후자는 그의 마음의 죄로 가득차 외부로 그것이 위반하는 것으로 표출합니다.
3. 경멸적인 오만함을 조롱하는 태도
그는 신앙이 없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기 쉽고, 영혼의 불멸,
보이지않는 영적인 세계를 우습게 압니다.
여기서 배우는 교훈은 죄는 진행형이며,
한 가지 악은 다른 악을 불러들입니다.
나쁜 조언을 받으면 악한 행동을 유발하며,
악한행위를 하도록 자신을 포기한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인생이 됩니다.
탐욕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가져옵니다.
솔로몬은 악한 자의 길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복있는자는 죄를 범하는 길을 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복받는 것 대신에 저주받는 것은
불경건한 자의 길에서며,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이며,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3절/ 심은 나무처럼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버려두면, 저절로 제대로 자라는 법이 없듯이,
영적생활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가르치고 영혼을 먹여야만 영혼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신앙교육을 게을리하면 의의 열매를 기대할수 없습니다.
가꾸지 않은 영혼은 가시덤불과 같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열매를 거두는 능력을 주셔서 그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때와 장소와 기회를 주셔서,
자신의 영혼에 선한 것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에게도 좋은 것으로 영향을 줍니다.

그의 잎사귀는 마르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항상 변함이 없으며,
그의 믿음이 그의 사역으로 나타납니다.
잎사귀와 열매는 나무의 생장하는 완성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열성적인 신앙의 표현은 좋은 사역으로 따라옵니다.
그것이 건강하고 좋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가 하는 무슨일이든지 번성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삶이 항상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이 경건한 사람은 주님의 은혜에 깊이 뿌리를 내려,
은혜안에서 강해지며, 성령의 지속적인 영향아래에서 무슨일이든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만한 많은 열매를 생산하는 형태로 이루어 갑니다.

그러나 불경건자는 바람에 휘날리는 먼지와 같으며,
그가 이루어 놓은 것에 견고한 것이 없으며,
그의 길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는 농사에서 좋은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에 불과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체질로 불어 버리면 다 날라가 버립니다.
불경건한 자는 결코 안전하지 않아, 어리석음, 직업적인 것, 모아놓은 것들,
그리고 인간관계까지도 흩으러 버립니다.
불경건자는 어떤 하나님의 축복의 혜택도 받지 못하여,
영생의 부활을 받지 못하여, 결국 영원한 파멸로 나가게 됩니다.

주님은 의인의 길을 아십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계속적인 돌봄을 받습니다.
그는 그들이 가는 길을 아시고, 그들의 동기와 목적과 사역들을 인정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그분을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의인의 몸과 영혼을 돌보며, 모든 위기에서도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적용및 결론
어떻게 인생을 복되게 하는 삶의 철학을 뿌리를 내리고 강화할수 있습니까?
먼저 저주를 불러 들이는 죄의 줄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을 때에 삶의 저주가 오며, 그 죄를 회개치 않고 품고 있으면,
자신의 인생에 그 저주가 머물러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저주하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할수 없다, 너는 못난사람이다. 마음으로 자신에 대해서나 이웃에 대해서
저주를 불러 오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악담을 하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입으로 저주를 퍼부는 일을, 이웃에게 악한 말로 저주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저주하는 것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먼저 자신의 영혼을 먹이는 일에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며, 암송하여 삶에 적용합니다.
성경을 안읽었던 분은 읽으시고, 읽으시는 분은 성경을 파고 들으시며,
그러면 신앙이 자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 꿈으로만 여기기 쉬운 불가능한 것도 할수 있다는
믿음의 철학,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순종의 철학을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활용하여 자녀에게 매일 복을 비시고,
자신에게 매일 일어나서 축복을 비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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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성도의 생활속에서 주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성령님의 인도와 역사를 이해하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사역하심에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성령은 영이신 하나님으로, 그는 감추어진 분과 같이 은밀하지만,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인간들속에서 사역하신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어서 그분은 자신을 인정하고 환영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신다.

선취권을 내어 드려야
먼저 신앙인들은 그분 즉 성령님의 이니셔티브를 존중하여,
그분에게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우선순위의 자리를 내어 드려서
그분이 자신안에서 마음껏 그분의 이성이나 감정적인 흐름이 나타나도록
그분에게 우선적으로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들이나
혹은 감정의 표현에서 선취적으로 행하시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신앙인들은 그분에게 자신의 의지나 선택적 결정에 대해
성령 우선주의의 원칙에서 선취권을 드려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의 바울 사도의 사역가운데에,나타난 증거는 다름과 같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한지라. 바울일행이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 하였지만,
예수의 영, 즉 성령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령은 자신의 계획하에, 그분이 선택한 일꾼들을 통해 세계복음화의 전략과
그 전략을 수행하게 하신다.

주도권을 내어 드려야
신앙인의 영적생활의 대부분은 성령의 자발적인 역사로,
신앙인들의 삶을 풍성하며 넉넉하게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에로 살도록 인도하신다.
신앙인들이 온 우주의 창조와 보존의 역사속에 빈틈없이 역사하시며
특히 인간구원과 영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능력과 자녀의 권한을 활용케하는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은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생활을 가능하게 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진리에로의 길과 분명하고 확신된 미래에로 길)를 받는 길은
우리안에 있는 우리의지의 주도권을 내어 드려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체험속에서 그들은 복음전파에 대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주변의 유대땅이나, 땅끝에로 향하는 길에서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속에서 이루어 져 왔다.
지금도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에 의해 개인이나 단체나
혹은 교회를 통해 더나아가 민족들의 헌신을 통해 세계복음화는 이루어 지고 있다.

그분을 통하여 영향력를 나타내는
성령의 영향력은 온우주에 미친다. 그의 영향력은 모든 만물을 조성하며,
만물을 지탱하는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마치 지구가 중력의 힘에 의해 서로 만물이 붙들려 있으며,
만물은 성령의 힘에 의해 지탱하며, 활동하며, 성장하게 한다.
신앙인들의 주변의 세계에서 영향력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가능하다.
성령의 영향력은 신앙인들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신앙인의 삶에 있어서, 지식이나 재능이나 사명수행에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인 영향력이 나타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 진다.

한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이 주변세게에 미치고 파급되는 효과는
자신안에서 역사하며 자신을 통해 사역하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이루어진다.
항상 성령은 우리인간안에 하나님의 능력이나 재능이나 지혜로 다가와
우리를 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우리를 통해 주변세게에 영향력을 미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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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생명(영혼)살림의 잔치집이다

교회는 영적인 잔치집이 항상 열리는 곳이다.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여,
그 잔치안에서 주님의 영이 역사하시며,
성도들에게 분여하시는 그의 은혜와 은사와,
그가운데에 주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하심에 참여하여,
그의 활동하심에 노출되어 축제의 영이신 성령의 운행하심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교회생활 혹은 신자들의 영성생활이다.

교회에 오는 이들이 항상 그들이 자신들의 영혼의 문제와 영적인 기갈을 안고 나아온다.
잔치집에 가는 사람들은 잔치에서 먹을 풍성한 음식과 즐거운 먹거리를 예상한다.
그렇듯 교회는 하나님의 영적인 잔치가 매번 열리는 곳이다.
신자들이 모여 함께 하나님이 베푸신 영적인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주님의 은혜와 축복의 말씀들을 영적인 요리사들인
말씀의 대변자나 혹은 영적인 리더들이 내어 놓아야 할 것이다.

하늘나라의 잔치집에는 항상 영혼을 살리는 축제가 열린다.
그것은 생명의 축제로,
거기에 주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이루어,
영혼과 마음이 새롭게 되어 날마다 자신의 영성이 성장하며,
주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으며,
영혼의 기쁨과 만족을 채워주는 영적인 잔치를 늘 배설하고 있다.
믿는 이들은 그 잔치집에서 맛보는 영혼의 기쁨과 채워줌의 은총안에서
자신의 갈급함을 채우며,
주님안에서 약속하신 충만한 은혜의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믿는 이들의 축제로서의 예배가 있으며,
생명의 식탁의 잔치인 성례전의 축복이 있다.
주님의 몸의 지체들인 믿는 이들은
그안에서 자신을 살리는 생명의 나눔을 경험하며,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의 깊은 맛을 경험한다.
믿는 이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하늘나라의 약속을 담은
생명의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떡을 나누며,
사람들의 죄를 씻기위해 흘리신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잔을 나누며
주님의 생명을 먹고 마시면서,
자신안에 주어진 영생의 생명을 경험한다.

주님의 집안에는 많은 먹고 마시는 것들이 있다.
모일때마다 영혼의 만나인 말씀의 떡을 먹으며,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자신의 영혼의 배에서 나오는 영적인 생명수인 생명의 분출과 같은
성령의 생수의 흐름안에 머문다.
생수의 강에서 흐르는 생수는 목마른 영혼들의 기갈을 축이며,
막히고 답답한 영혼들이 숨을 쉬며 호활기찬 생명의 나눔의 호흡을 지속한다.
더나아가 세상에서 찟들린 이들의 상한심령을 치유하며,
메마르고 병든 영혼을 만지시는 주님의 살리는 능력을 맛본다.

세상에서 돌아온 믿는 이들은 주님의 잔치집에서
생명의 잔치을 통해 영혼의 상함을 회복하여,
자신들의 영혼에 주님의 넘치는 생명의 능력안에서 힘을 얻고, 또 얻어
새롭고 강한 심령이 되어 또 세상으로 내보냄을 받는다.
죽어가는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발하여 상한 심령들을 어루만져주며,
병든 영혼들을 돌보며,
죽어가는 생령들을 살리는 주님의 생명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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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유익한 인생

잠언 3:1-6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사람에게 주님의 법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자녀에게 부모의 가르침은 인생을 유익하게 살아가게 한다. 스승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유익을 준다. 진리가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생명의 길을 걷게 한다. 인생의 뜻을 바르게 세우는 길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법을 준수하면 그 테두리안에서 자유를 얻고, 자신의 권리를 찾으며, 자기의 권한을 유지한다. 법을 지키는 것은 그 법을 마음에 새기며, 그법을 준수하려는 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옳은 길을 살아가는 진리의 법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하신다.

그 법을 지키면, 자신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온다. 인생의 경주에는 코스를 따라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다. 코스를 이탈해서는 정상적으로 경주를 진행할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보편적인 법은 자녀가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말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육체도 바르게 사용하면 건강을 유지하며, 영혼도 진리를 먹으며 살아가면 생명을 얻고,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간다. 인생에서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아래에서 심는 일을 열심히 하면 거둘 때에 많은 열매를 거둘수 있다. 불의의 씨를 뿌리면 불의의 열매를 거두고 선한 의의 열매를 위해 힘쓰면 존귀와 영광의 열매를 거둔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여 살면 인생의 장수를 하며, 그 날들이 형통과 평강의 날들로 채워진다.

인생에는 정의로움과 자비로움을 함께 품으며 살면 자신의 삶이 풍성하게 이루어 진다. 타인에게 관용하며 자비를 베풀며 사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에도 하늘과 타인으로 부터 자비를 얻을수 있으며, 인생의 넉넉한 풍부함이 주어진다. 하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인생들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 스스로 도울 힘이 없는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다. 이웃중에 고아와 과부의 처지에 있는 인생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에게 상을 쌓는 것이다.

진실한 삶의 길에는 은총과 영광이 있으며 인생을 영위하는 정책중에 정직이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한다. 삶의 진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게하며 자신을 방황하게 헛된 것들로부터 참된 자유를 얻게 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는 진리의 원천이시다.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려면 그가 명하신 길을 따라 가면, 옳은 길을 걸어갈수 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들앞에서 인정을 받으며, 모든 일에 있어 제대로 쓰임을 받으며, 결국 그런 사람은 여러 사람들중에 높임을 받는다. 사람들중에 명예를 얻은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존경을 얻었으며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을 인정받게 하였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인생은 자신중심의 지혜를 좇아가기 보다는 선인들의 앞선 삶에서 배우며 옛사람들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의 인생의 길들을 배우는 중에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길을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늘의 뜻을 쫓아, 그 창조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배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아시며, 그 길을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신다. 인생의 지혜는 하나님의 길을 배우며 그분을 섬기는데서 부터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배운다. 하나님은 인생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다 아시고 그들의 종국에 도달할 목적지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앞에서 겸허하게 살아가려면 모든 일에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명하신 일들을 명심하여 자신의 하는 일에 모든 일에 적용하여, 그 명령을 따를 것이다. 모든 일에 그분을 인정하는 것은 항상 어느 일에 든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물으며, 그일을 추진하는 시기가 적당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삶의 모든 일에는 각기 적당한 시기와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해야 할 것인지 나중에 해야 할 것인지를 물어 보며, 일들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하나님에게 여쭈어 먼저 해야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나가는 것이다.

사람이 계획하는 일은 실수가 있고, 실패할 경우가 많으나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하고 인정한 일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실패하지 않고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그 일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혜나 능력을 그분으로부터 구하여 그 일을 하면 훨씬 쉽게 성공적으로 이룰수 있다.

자가당착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일에 자신이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 착각에 쉽게 빠지는 것은 자기 스스로 과대히 지혜롭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어리석어 지는 것은 겸손한 자가 아니라 자기의 지혜나 능력을 과대히 평가하여 자기신념에 몰입하다보면, 스스로 실수를 하며, 어리석게도 남에게 해를 끼치기 까지 한다. 고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지혜, 지식, 재물, 권력, 재능)으로 교만하게 자신을 생각하면 자신의 삶을 실패하기 쉽다.

오직 인생의 길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인생을 창조하며 인생의 길들을 정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경배하는데에 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의와 진리의 원천이며, 온우주의 원칙의 순서를 세우셨다. 누구든지 그분을 무시하고서 참된 선을 이루어 갈수 없으며, 도리어 악을 범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제시하는 길을 버리는 것이 인생을 악으로 빠지게 한다. 악한 인생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길들을 따르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걷다가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십상이다.

과도한 자기지혜에 몰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살아가면 그것이 인생의 길을 건강하게 한다. 자신의 몸도 마음도 건전하며 자신의 삶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에게서 지혜를 구하고 살면 인생의 하는 모든 일들에 그일에서 의미와 가치와 성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삶이 굳건한 반석위에 세워져, 많은 풍상(고난, 고통, 저주, 헛된 운수지향주의)이나 자신의 삶을 흔들게 하는 일들( 실수, 교만, 사건, 사고, 헛됨, 갈등, 범죄)에서 벗어나 흔들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인생이 이 세상에 살도록 세우시기전에 먼저 이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채워주심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이 마련하신 것들을 누리며 그리고 혹은 즐기며 살아간다. 비록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하는 고된 인생의 환경이지만, 그가운데에서 그분이 주시는 삶의 안식이나 즐김과 능력공급을 받고 살아갈수 있다. 고로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것들로 하늘의 뜻에 거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의도에 자신이 얻은 것들을 쓰며 혹은 더 나아가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면 보다 삶이 풍요로우며, 유익한 인생의 열매를 거둘수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노력한 것들을 바르게 심어가면, 그 결과에 유익한 것들을 거두게 된다. 그래서 그 소산물로 자신이 즐기며, 가족을 부양하며, 그리고 그것을 이웃에게 나누며 살아갈때에 하나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은 우리 인생의 필요에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이나 자기이익에 몰입하는 일은 그 인생을 어리석게 만드는 헛된 수고를 하게 한다. 자기주의로 재물을 모으고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능을 키우고 일들도 결국 인생의 결산의 길에서 남는 장사가 아닌 밑진 장사에 불과하다. 자신이 수고한 것들을 함께 이웃들과 나누며, 하늘의 뜻에 거역하지 않고 옳은 일에 쓰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면 자신이 모은 재물이 썩지 않고, 요긴한 때에 써야 할 일이나 사람에게 적절하게 쓰여져 많은 선함과 유익한 열매를 모으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이 아름다운 명예를 얻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놓은 재물이나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지혜나 지식이나 자신이 개발하여 발전시킨 재능등이 유익하게 사용되어, 더 값진 것들을 낳게 된다. 그는 이제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서있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새로운 세계에서도 그의 이름이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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