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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s of the Savior's birth and the witness of the shepherds

* The news of the birth of the Savior 1.The news is to be known to all the people. 2.The news is known to other people through the witness. 3.The news is the God’s big miraculous sign to influence all the people. It is the good news to give all the people joy It has the wondrous power to bless all the people It makes a person who has the news as the witness of the news. * The shepherds’ life and witness They are faithful to their job and things. They respond to the news quickly and follow the direction of the message The news makes their life style to be excited and abundant. They practice telling to the others as the witness of the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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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에게 주는 성탄의 의미

누가 2:8-20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주님의 천군 천사들은 천상에서 선포된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려 세상에 나타납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주님의 큰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집니다.
목자들에게 비치는 하늘의 영광에 그들은 압도되어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의 세계에 나타날 때에,
그들을 압도하는 권능과 위엄이 나타납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은 천사들의 임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임하시어,
위엄을 나타내시자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하는 자세로 변합니다.

뉴스는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뉴스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뉴스는 엄청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주는 뉴스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보다는 사람들의 문제와 현상을 알려주어,
복잡한 인간 세상의 문제들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일이 십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천사가 이르는 하늘의 소식은 사람들을 살리는 그들에게는
정말 필요하고 놀라운 뉴스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들리는 뉴스는 절망과 탄식을 주는 소식이 많지만,
하늘의 소식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뉴스는 충격적인 뉴스에서부터 놀라운 뉴스도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의 탄생의 소식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치는 빅뉴스입니다.
그들 각자에게 영향을 주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것은 그들 각 사람이 그것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메시아의 탄생의 소식입니다.

그 베들레헴 지경에, 즉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자기 직무에 충실한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다가옵니다.
목자들은 밤이슬을 맞으며, 성전에 바쳐질 양무리 들을 위해 목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양들과 함께 밤을 지새며, 그들을 돌봅니다.
목자들 자신의 일들은 양을 보호하고 돌보고, 인도하며,
그들에게 보호처와 피난처가 되어 양들이 쉴 수 있고,
풍부한 풀과 시원한 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좋은 환경들을 제공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당시에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천시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목양의 일을 묵묵히 책임지며,
양들을 돌보는 모든 일과 규정에 대해 순종하며,
자기의 직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동네에 태어나시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예언의 약속에 의해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구세주는 메시아로 온 우주의 구원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다윗의 도시는 시온성이 있는 곳이며, 다윗의 고향입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에 의해 그곳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메시아 왕국의 임하시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구주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사,
인간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출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 각자를 위한 성탄, 즉 구주의 탄생 소식은
우리들 각자에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각 사람이 구주 예수님을 듣고, 그분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을 구주로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죄와 사망의 늪 속에 있는 세상의 모든 생로병사에서
겪는 고난과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의 즐거움과
그 구원의 결과가 주는 놀라운 은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 전에 준비해 놓으신 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이며,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와 권한을 얻는 축복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인생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인생, 가정이나, 자녀나, 하는 일이나, 등
모든 것으로부터의 문제해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주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려 오셨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그분에게 나아와
모든 인생의 그 문제들을 해결 받습니다.

주님의 성탄은 우리를 위한 표적입니다.
그의 오심은 자신을 위한 자신의 구원과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기적의 입니다.
구주의 탄생은 인간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가장 큰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계에 들어오시는 사건은 인류의 역사를 구원하며,
역사의 흐름을 갈라놓은 사건입니다. 구주 이전의 인간의 절망의 때와
그가 오신 이후의 인간 구원을 위한 희망의 시간들로 나뉩니다.

구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에 그는 말구유, 여물통에 태어나 뉘었습니다.
인간들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인간들의 죄로부터의 구원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려고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세상에 임하시는 구주의 성탄과 자신의 마음과
인생의 중심에 오시는 구주의 임하심은 놀라운 의미를 담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세상에 나타나는 표적으로서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구주의 탄생의 기적은 온 세상을 멸망에서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사역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위해 만세 전부터 하나님은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세월들을 보내며,
자신의 종들인 예언자들을 통해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대로 오늘 구주의 탄생으로 그 약속의 실천을 이루셨습니다.

갑자기 나타나는 하늘의 현상은 온 천상의 천군들의 집합의 영광송을 보여줍니다.
그 기이한 현상은 이 사건의 중대함과 귀중함을 알려줍니다.
고로 그 구주 탄생의 사건은 온 우주에 미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간 세상의 구원 역사를 이룩하시는 역사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세상에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일입니다.

이 영광송은 온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의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는 인류가 역사 속에서 알려야 할 영원한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끊어진 거룩한 하늘과 타락한 땅을 잇대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구주 탄생의 소식은 인류 구원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의 밑거름이 됩니다.
자신이 구원받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대가로 얻을 것이 아니기에, 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선물을 받음으로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고마워 하고 그분을 높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구원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이루어 놓으시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주 탄생의 뉴스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주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땅에서는 평화/ 이 땅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으며,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평화가 깨어져 있습니다.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세계만을 구축하여 살려고 합니다.
그것으로는 자신들의 문제만 더 많아질 뿐입니다.
인간의 하나님과의 불화는 모든 인생들의 삶의 현장을 부조화롭게 만들었습니다.
자신 안에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에 대해 왜곡된 이메지와
그리고 그 이메지에서 쌓아놓은 자신의 모든 것들은 공중누각에 불과합니다.
외부의 도전이나 내부의 혼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어,
인생들은 마음의 병을 얻고 육체의 질병을 얻습니다.
인간 속에 있는 근본적인 영성은 인간이 저지른 죄와
그로 인한 죄인의 영향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주 탄생의 소식을 알리며,
또한 그 소식으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다시 천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목자들은 그들의 받은 소식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예루살렘 주변 들판에서 방목하다가, 일손을 거두고,
구주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으로 향하였습니다.
서로 그들은 그 놀라운 뉴스에 압도되어 그 소식의 현장을 보러 갔습니다.

놀라운 광경과 메시지의 중대함에 그들의 마음과 몸을 재촉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히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구주가 아기로 태어나신 곳을 찾아갔을 까요.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처럼 그들도 자신들을 인도하는 하늘의 별의 움직임을 좇아,
베들레헴 지역의 한 마구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동물들이 잠자며, 먹고 쉬는 마구간에서
그리고 그 마구간에 놓여있는 그 동물들의 한 밥통 안에 누이신 아기를
비춰주는 빛을 따라 그들은 그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알려주는 천사들의 뉴스의 정보에 따라 아기에 대해,
살펴보며, 하늘의 천상에서 들려온 놀라운 광경과
메시지와 영광송에 대해 증거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구주 탄생을 경배하는 이들 모두에게

목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본 내용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전하는 뉴스는 그 광경의 놀람과 중대함으로 인한 그들의 증거는

듣는 이들의 마음에 기이한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듯 구주의 탄생 소식은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야 할 기이한 기적의 사건입니다.

아기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그 아기에 대하여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받은 천사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며,
자신의 몸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아기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마음에 되새겼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이루신 기이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이루신 메시지들을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에 와 닿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할 귀중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주어, 자신들을 살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의 정보가 있기에, 늘 마음에 되새김질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는 것은 늘 그 말씀의 내용을
자신들의 머리의 기억 창고에서 다시 끄집어 내어,
마음과 삶에 영향을 주는 정보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항상 살아서
자신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구주 탄생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 중에 목자들의 역할은
그들이 보고 들은 바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며,
그 증거의 일들을 통해 듣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주 탄생의 뉴스를 전하며,
그 뉴스와 그 뉴스의 전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합니다.
목자들은 그들의 마음에 북받쳐 하나님을 흠송하며, 찬미하며,
그리고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증인의 삶이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기적의 이야기들을 경험하면서,
그 기적이 주는 사건의 정보와 그 기적의 의미들을 나누는 일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듣고 본 대로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기적의 일들을 이웃에게 알려주는 것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자신들과 남들에게 기이함과 놀라움을 주는
기쁨을 주는 축복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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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적극적인 신앙

누가 복음 1:26-38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미리 알리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셔서
다윗 왕의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 가도록 하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을 알려주는 소식의 천사장 입니다.
그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의 몸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8-38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와의 대화
천사: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이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 반응(놀라고 당황한 마리아)천사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 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생들이 기뻐해야 할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마리아에게도 자신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오시는
메시아의 역사를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마리아에 대한 인상은 그녀가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를 입은 여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 메시아를 잉태하는 여인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그녀에게 임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 선택을 받아,
하나님이 그녀와 함께 하시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마태복음에서 나온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을 가져오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인간들 세계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의 복은 하나님께서 인간세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알려지십니다.

천사: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리셨다.
의외의 놀라운 소식에 두려워하는 마리아에게 두려움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의 축복을 내리십니다.
너는 이제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마리아는 그녀의 몸을 통해 예수님을 낳게 되는 메시아 잉태의 대 역사를 이룹니다.
그는 위대한 분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며 그의 통치가 영원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대 역사가 한 여인의 몸을 통해서 시작이 된다는 것은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의 역사는
작은 한 인간의 겸손과 순종과 적극적인 믿음에 의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 하지만 처녀인 내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천사에게 대답하였습니다.
1.마리아는 묵상하는 신앙을 가졌으며,
그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갑작스런 섭리를 대했습니다.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잠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은혜를 입은 자여, 주님이 함께 하심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하나님의 사명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 가를 깨닫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성적인 신앙에서 출발하여, 확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해하는 신앙을 거쳐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마리아는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즉 하나님의 섭리가 갑자기 자신에게 임했을 때에 당황했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 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나, 기이한 일들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수태고지는 마리아에게만 일어나지 않았고, 사가랴 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사가랴는 세례요한의 아버지로 그는 제사장으로 백성들의 지도자로
종교적으로 혹은 영적인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부인인 엘리사벳과 더불어 늘 자식 없는 공허함과 답답함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천사의 출현이나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가랴는 어리둥절하며, 그리고 그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해 버렸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기도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않았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를 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갑작스런 천사의 출현에 대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나타나신 계시와 섭리를 대할 때에 깊이 묵상하는 믿음의 태도를 가졌습니다.
곰곰이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그녀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믿음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천사의 인사나 그의 메시지를 그녀는 온몸으로 받았습니다.
자신에게 미칠 하나님의 예언을 멸시치 않았습니다.
처녀인 마리아는 어떻게 그 일이 이룰지를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의심하는 태도로 의문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만세 전에 세우시며, 그의 계획은 빈틈없이 이루어 집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처녀의 몸에서 아기를 갖게 하는 동정녀탄생의 역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마리아의 살아있는 믿음에 의해 이루어 집니다.

이 메시지의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큰 논쟁을 줄 수 있는 동정녀탄생의 근거가 되는 내용입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는 믿음은 중요한 우리의 믿음의 사실적인 내용입니다.

아기예수 수태고지에 알려진 천사의 메시지에, 당황하는 마리아는 질문을 던지면서,
어떻게 그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의문을 확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대면에서 그의 뜻을 묻는 질문을 합니다.

거기에는 받아들일만한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1. 이 메시지의 문자적인 의미는 마태 1:18-25에 예수님은
인간아버지가 없는 여인의 몸에서 난 분입니다.
그는 여인의 후손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남자의 후손입니다.
오직 그만이 여인의 후손입니다.
2.우리가 예수님이 특별한 분이라고 믿는다면 그분은 특별하게 이세상에 오신 것을 믿습니다.
고로 동정녀 탄생의 기사는 우리의 믿음의 중요한 사실적인 역사입니다.

동정녀 탄생의 이야기는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1.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을 여인의 후손으로 알려주며,
그만이 인간의 혈통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2.동정녀탄생은 우리의 믿음의 결정을 통해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천사: 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생명의 영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는 독생자이신 메시야는 성령을 통해
이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으십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
사람들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하였으나, 그가 임신한 지 이미 여섯 달이나 되었다.
천사는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을 통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드일 자세를 갖게 합니다.
엘리사벳은 석녀로 거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나이든 여인이었으나,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녀가 세례 요한을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이미 엘리사벳은 임신한지 6개월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 지고 있음을 확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마리아는 적극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긍정적인 생각이나 올바른 인생관에서 나옵니다.
매사에 자신을 바르게 보는 사람들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주어진 삶이나 일에 있어서, 좋은 생각을 갖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 적극적인 인생관은 살아있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
그녀는 천사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데서 나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인간의 영혼에 심어진 생명의 씨앗인
하나님의 약속을 담은 예언입니다.
그 약속이 말씀을 받아들인 그녀에게 믿음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신앙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에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할 때에,
그 내용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이루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다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의 약속하신 바대로 그대로 성취 됩니다.
그분은 창조의 하나님으로 그분께서 명하신 바를 다 이루어 냅니다.
2. 예언하신 것을 이루어 내십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당황하는 중에도
그녀는 묵상하는 마음과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대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예언을 온 몸으로 받았습니다.
잉태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자신의 약혼한 생활이나,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의 기대하신 바를 따르는 것은 아름다운 여인의 신앙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
순종하는 신앙/ 그녀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하실 일을 따르는 순종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녀는 약혼한 사이로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되는 선언은
자신의 정혼함이 파혼을 당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여인에게
가하는 사형을 당하는 처지에 빠지는 것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결연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리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신앙의 핵심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시키는 일이면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믿음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절대적인 복종의 믿음입니다.
이 마리아의 믿음은 예수님의 평생의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따르는 모습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사명을 이해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모험과 위험이 따르는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정혼한 사이는 1년 기간을 결혼상대로 묶어줍니다.
그 관계는 이혼에 의해 그 관계가 풀어집니다.
약혼한 남자가 죽을 경우에는 그 여인은 과부로 간주합니다.
처녀이지만, 과부로 여깁니다. 그리고 만일 그 관계안에 있을 때에,
불륜적인 일이나 마리아에게 일어날 정혼한 사람과의외에 임신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녀는 가문에서 추방이 되며,
주민들에게 돌로 맞아죽는 위험도 감수해야만 하는데도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고로 마리아의 순종은 매우 희생적이며 아름다운 신앙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나의 뜻을 이루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자발적이며, 순종하는 자세로 그녀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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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안에서 소망으로 살기

이사야 9:1-7
우리의 희망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잘 먹고 잘살기, 혹은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지는 것, 지금보다 나중이 더 발전되는 것등, 우리의 삶에는 희망의 크기만큼, 살 힘과 용기가 있는 것이다. 오뚜기 인생이라는 말들은 듣는다. 제가 군대에서 근무했던 사단이 8사단인데, 그 사단을 오뚜기 사단이라고 부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실전해서 패전을 해도 다시 진격하는 정신을 가진 군대를 말합니다. 오뚜기 인생에게는 누구나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오뚜기 정신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민 생활도 오뚜기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패해도 다시 성공을 향해, 달음질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는 정신이 오뚜기 정신입니다.

어려운 시절에는 격려하는 구호가 힘을 줍니다. 옛날 한국에 못살던 때에는 잘살아보세, 새마을 운동등, 어려운 국가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하여, 힘을 얻게 하고, 전진하게 합니다. 재수하는 공부, 혹은 다시 시작하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해보라, 포기하지 말라, 끝까지 해보라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저는 미국에 유학 와서 친구 목사님 하고, toefl 시험을 공부하는데, 시험을 많이 보았습니다. 점수가 안 나와도, 또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쳐, 미국인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나 연주가도 끊임없는 중단없는 노력으로 연습에 연습를 거듭하여, 좋은 작품이나 연주를 합니다.

인생에는 어려운 날들이 있습니다. 이 어려운 것들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며 문제입니다. 그것을 풀려지고, 해결되는 해답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이며, 힘든 일입니까? 그것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가게 하는 힘은 희망이 주는 힘입니다. 한국이 과거에 일제 시대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 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그래도 지금 우리의 조국의 삶이 잘살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살 때에도 희망을 안고 살면 그 삶은 축복입니다. 잘살아도, 희망이 없이 사는 삶은 저주입니다. 가진 것이 부족한 것이 없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면, 살아갈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도 자살하고,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도 생명을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나라는 지금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나라는 점점 약해지며, 나라의 미래는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아무리 삶이 힘이 들어도 자녀들에게 희망을 말해주는 부모님, 또한 힘든 날들이 있지만,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하며 사는 삶이 보람이 있습니다.

희망이 주는 축복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미래에 대한 강한 기대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목표하는 것이나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열망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하나님앞에서 끝까지 버리지 않고 가져가야 할 것은 하나님과 그의 축복하신 약속에 대한 강한 기대감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기도나 간구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이나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가 기도했던 것, 바라고 희망했던 것등은, 우리의 강한 기대감의 부족에서 얻지를 못했습니다.

소망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 구한 것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통해 얻게 됩니다. 야곱의 신앙과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해, 눈을 뜨게 해달라고 소리치며 따라갈 때에 그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간구 중에 자신의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꼭 들어주셔야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밀어붙이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 구하십시오. 야곱은 그런 끈질김이 있는 신앙인이라, 하나님의 천사를 이긴 사람,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간절하고 강인한 정신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귀한 것, 소중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을 얻으려면 그런 강한 기대감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애 속에서 우리가 귀한 것을 이룰 수 있게 하고 성취하게 하는 비전을 의미합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실 때에 구약의 요엘 예언자를 통해, 요엘서 2:에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가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꾸리라 하였습니다. 젊은이는 장래에 대한 자기 비전을 갖고 살아서, 결국에는 그 비전대로 이루고 살아갑니다.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도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을 보낸 나이든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자기만의 소박한 꿈이 또한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아 대망 신앙은 나라를 잃고, 정부를 갖지 못해도 그들의 선민 의식의 영적 유산과 민족의 전통 유산을 지켜오는 힘이 었습니다. 그들에게 약속으로 예언하신 메시아 대망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으로 수백 년을 지탱해 왔습니다. 나라 없고, 정부가 없는 형태에서 오랫세월을 버티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메시아 대망 신앙을 예언한 예언자들 중에 이사야가 단연 그는 메시아 예언자라 할만한 많은 부분에서 메시아와 그의 나라에 대해 예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대망 신앙 은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소망은 자신들의 삶에서 생산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생산적인 일을 할 때에는 신명이 납니다. 특히 농부가 추수할 때에는 기쁘게 춤을 추며 신명 나게 일을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과 백성들은 승리한 기쁨을 누립니다. 로마 시대에도 승전한 장군은 전리물을 몰고, 개선의 승리의 행진을 하며, 백성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승리할 때에는 남는 것 있습니다. 패하면 없습니다. 영적 생활에도 패하면, 영적인 침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셨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길수 없지만,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승리합니다.

메시아 대망 신앙은 메시아 왕국의 통치를 기대합니다. 그의 통치는 의의 통치이며, 그의 온전한 나라의 통치입니다. 진정한 평화가 있고, 그 나라는 쇠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이라는 책을 쓰면서, 망해가는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의 승리와 하나님나라의 통치가 영원하리라는 역사 철학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나라는 다 망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세워지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 나라는 승리하며, 영원 무궁합니다.

메시아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세상에 오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의 소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지은 채로 저주받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죄있는 인생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데, 메시아는 그들을 구하려 오셔서 잃어버린 자녀의 지위와 권한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예수님 믿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죄와 형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용서와 상급과 영생을 바라며 살아가는 자녀의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메시아를 통해 죄와 형벌과 죽음는 뒤로 가고, 앞에는 용서와 상급과 영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 앞에 나온 인생들은 모두가 죄인의 수치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자녀의 영광을 얻
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갈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의 희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삶의 희망과 능력을 얻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소망의 능력을 줍니다. 항상 말씀이 주는 힘 안에서 살면 희망 가운데에 거하게 됩니다.

희망 가운데에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분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희망을 주십니다. 아무리 사방이 막히고, 솟아날 구멍이 없어도 내가 기도하는 한, 하나님을 통해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이 보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희망을 주십니다. 그의 인도를 따라 살면 희망 가운데에 거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외부의 핍박 속에 있을 때에, 그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셨습니다.대표적인 경우가 스데반 집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돌로 맞아 죽어가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천사의 얼굴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희망 속에서 죽음을 이기는 순교자로 살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크리스천의 유일한 능력이며, 희망입니다.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도울자, 선생님, 지도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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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makes us fresh

Jeremiah 33:1-9
Ask God and He answers us.
God works for us.

* God recovers our lost things.
Our Position as His children
Our Right as His children
* God makes new thing in God’s promises.
His blessings for us
His plans for us
Our life for His glory
* God corrects our life.
He changes our destiny.
He heals our surroundings.
God freshens our images and natures.

Conclusion
God makes our lives fr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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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베트남에서 온 한 가족을 안다. 그들은 5년 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전도를 하였다. 그들은 북한의 탈북자들처럼 죽음의 사선을 넘어, 동남아시아의 몇 나라(베트남, 라오스, 태국등)를 거쳐서, 공산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공산베트남은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으로 소수의 종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믿고 지키려고 갖은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족은 불교를 가진 사람들로 그들이 사는 아파트의 거실에는 부처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향을 계속 피워 놓는다. 그들의 불교의식은 생활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처지나 환경을 넘어서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국경을 넘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환경가운데에서 사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갈림길을 지나온 위기를 넘어온 사람들로 또 다른 기회의 땅에서 사는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긴박감에서 지내다가, 새로운 자유의 세계에 와서 살면서, 그 사회에 동화해 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평범한 생활이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보스니안인 한 여학생을 만나 전도하였다. 대부분의 성인 보스니안 사람들은 옛유고 연방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모슬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다른 종파 사람들의 핍박을 피해, 당시 유고연방이 무너지면서, 각 민족이나 종파에 따라 한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나누어 지면서 각기 민족이나 종교분쟁으로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국제 난민이 되어 이곳 미국정부의 초청으로 난민으로 이곳에서 살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아 난민으로 살아온다.

그들은 모슬렘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들은 우선 기독교에 대해 적대시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여러 보스니안 성인들을 만나 전도하였지만, 대부분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고 종족전쟁을 피해온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피해의식 속에 살고 있다.

이락에서 온 젊은이들은 후세인이 이락을 통치할 때에 강압정치를 하는 중, 그 국민들 중에 가족이 죽거나, 핍박을 피해 자기고국을 떠나 국제난민으로 미국정부가 받아들여, 그들도 미국에 들어와 정착하여 산다. 그들은 모슬렘사람으로 기독교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아브달리라는 한 젊은이는 성탄절에 한국인의 떡을 가져다 주었는데, 별로 달가와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젊은이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수단에서 온 잃어버린 아이 청년들, 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적인 분쟁지역에 살다가, 어느 날 모슬렘의 습격을 받아,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고, 급기야는 혼자 살아남아, 집단적으로 자유를 찾아, 고국의 국경을 넘어, 이곳 미국의 종교단체들의 도움으로 카톨릭 교회의 지원으로 미국에 망명을 하여, 난민신분을 받아 이곳에서 하루 하루 일일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 젊은이들은 서로 3명씩 혹은 4명씩 모여 한 아파트에 기거하여 살고 있다. 어느 날 아파트 주변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얼굴이 검지만, 키고 훤칠하게 큰 가느다란 젊은이들을 만나, 전도를 하였다. 그들과 함께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자신의 태어난 생일과 정확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지어주어 각자는 그런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
예례미야, 피터등이다. 그들 가운데에 말라리아 열병을 앓았던 후유증을 가진 젊은이가 있어 함께 성경 공부하는 모임 가운데에 뜨겁게 그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데, 계속 눌러 오던 심한 두통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았다.

난민들중에 쿠바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미국의 가까운 나라에 있다보니, 쉽게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와서 살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 카스트로에 의해 오랫동안 경직된 사회를 피해, 자유를 찾아,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 그들중에 카톨릭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대개 복음에 대해 우호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 가운데에 일부 가족을 두고 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난민인 경우에는 부인이 공산주의자라서 헤어지고, 이곳 미국에 와서 혼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다니엘이라는 이 친구는 쿠바에서 펜타코스탈신학교(오순절교단)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영어를 스페니쉬어로 중간에서 통역하는 그를 내세워 쿠바민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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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Ready the Way of the Lord

Mark 1:1-8

* What is the way of the Lord?
1. The way that gets the grace of God and declares the truth of God
2. The way that expresses the love of God to people
3. The way that gets eternal life and the salvation of God

*What does it mean to prepare the way of the Lord?
1. To live a holy life seperated from the secular world
2. To live according with a purposeful life
3. It is the life style to prepare for the future

* Three important things
1. To live for my soul care
2. To prepare for the last day of my life
3. To prepare for the day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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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

마가 1:1-8)

강림절은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절기이다.
강림절에 주시는 메시지로 세례요한의 선구자에 대한 삶과 그의 메시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세례요한이 외친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메시지중에
선포된 주님의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은 어떤 길인가?
주님의 길은 은혜와 진리의 길이다.
저주받은 인생들이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어둠에 처해있는 인생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알려주셨다.

주님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미움과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에 그는 사랑으로 오셔서,
친히 자신의 몸을 버리시며, 희생을 통해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그의 사랑의 정신이며, 삶이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길을 배운다.

주님의 길은 생명과 구원의 길이다.
그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의 길은 인간구원의 길이다. 그를 통해 인간 구원을 이루며,
죄 있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을 주셨다.

그러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란?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주님을 오심은 준비하여, 주님이 우리의 삶에 행하실 길을 또한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예수님의 선구자로 있지만, 그 선구자는 앞섰지만, 뒤에 오시는 이를 위해 사는 삶이다.
세례요한은 사명자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예수님보다 앞서지 않았고,
예수님의 신발끈도 풀기 힘들다는 철저히 겸손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나는 망하고 주님은 흥하여야 하리라는 원칙으로 살았다.

그는 마지막 예언자였다. 오랫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예언자였다.
마지막 구약성경의 예언자 말라기를 통해 들었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수 백년간, 하늘로부터 들려오지 않아,
백성들이 갈 바를 모르고, 희망이 없는 막연한 세월을 살고 있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나에게 하나님이 주어지지 않는 세월들은 방황하며 무의미한 삶이다.
그런 가운데에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곳이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곳인 광야에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소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얻었다.

세상의 복잡한 곳에서 우리의 영혼은 혼란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서 분주하게 쏟아내는 여러가지 소리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때로는 실망을 주고, 자신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며,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관심을 세상에 빠지도록 하는 소리들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영혼이 답답해 하며, 때로는 죽어 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인생이 복이 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주일날이라도 교회에 와서,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내 영혼이 산다.
주일날 듣는 메시지는 자신의 영혼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중대한 메시지이다.
이것을 한귀로 듣고 흘릴수 없는 고귀한 하늘의 소리인 것이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이란?
먼저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구별된 삶을 살았다.
그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힘썼다.
요즘 사람들은 케이블 텔레비전과 인터넷등,각종 게임등 엔터테이트먼트의 도구들로
모두의 관심을 빼앗는 세상의 소리로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그런데, 주일날 갖고 다니는 성경은 집 어느 한구석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성경을 들고 읽거나, 공부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의 사귐도 중요하지만,
그는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요즘은 기도하는 시간은 갖기 힘드는데,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으며,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아이들을 돌보고, 사업을 해야지, 공부를 해야지,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일들이 널려있다.
이세상은 너무 우리의 마음의 관심을 빼앗가는 일들이 너무 많다.
옛날에는 6일을 일을 해도, 보통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주 5일 하고도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어 버린다.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에, 토요일이 은근히 즐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생의 진지한 일들,
즉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몸의 건강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이란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구별된 삶이란, 거룩한 생활이다.
과거 속담에 백로야 까마귀노는 곳에 가지말라, 까마귀의 구린내나는 것들에 영향을 받을 까한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정체감을 살아갈 때에
오히려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라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세상에 안 좋은 세태에 노출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영성은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윤리적으로 더러운 것과 어두운 것은 비슷하다.
어둠 속에서 죄를 짓기 쉬우며,
사람들이 아무도 못 본다고 할 때에 죄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백일하에 드러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시지 않겠지 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내 의식에서 사라지고, 내 눈에 안 보이면,
그때부터 악이 들어오는 것이며, 죄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세상과 구별되며,
자신에게 더러운 일을 하게 하는 죄를 짓는 생활에서 구별되며,
사단의 속임수로 빠져가는 악한 생활에서 구별되며,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세상의 타락과 구별되어야 한다.

준비하는 삶은 사명있는 삶이다.
세례 요한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었다. 그래서 그는 목적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주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목적을 이루는 일을 하였다.
그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백성들에게 주님을 맞을 준비를 시켰다.
회개는 인간의 죄를 고치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마음을 고치고, 주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방법대로 사는 데서 하나님의 길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다.

사명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생활이다.
열심으로 사는 것이다. 세례요한 은 열심으로 외쳤다.
온 유대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요단강에서 외쳤는데, 온 곳에서 백성들이 그에게로 나왔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사명을 따라 사는 생활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인생의 가치는 자기본분을 찾아 살 때에, 이루어 진다.
가문을 빛낼, 자신을 빛낼, 가치는 인생을 고귀하게 한다.
이 일을 하는 데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냐 하는 질문도 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일,
요즘은 나의 필요에 의해 부모를 모시는 경우가 많으나,
과거에는 자식의 도리,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자녀로서의 도리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예를 들자면 우리의 선배들이 과거 일제 침략시대에는
애국하는 일, 즉 특별히 독립 운동하는 명분이나
사명에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얻고 살아갔었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하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례요한 그는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광야의 소리가 되기 위해
그는 주님과 함께 하는 광야의 생활을 마다 하지 않고,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또한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였다.
그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을 통해 백성들을 준비시켜,
앞으로 오실 주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일을 듣는 무리들에게 맞이하게 하였다.
물로 세례를 베풀며,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케 한다.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사람의 마음을 고쳐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자세를 갖게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쳐 먹어야 그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내 마음이 주님에게 열려있어야 주님을 맞이한다.
내 마음이 변하므로, 은혜에 열려있고, 말씀에 열려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특별하게 역사하시는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회개는 주님을 맞이하는 마음의 변화이다.
우리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시도록
우리는 마음의 준비와 생활에서 주님을 모실 생각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의 도움을 구해야 하며,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시도록 하려면 자리를 마련해드려야 한다.
모든 계획가운데에 우리의 지도자, 선생님,
그리고 우리의 일에 대해 주관자, 혹은 능력자로 모셔야 한다.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님에 대해, 다음가 같은 고백적인 내용을 선포하였다.
그는 나 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신다고 외치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였다.
주님은 나(인간) 보다 위대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위대해 지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통치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마음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는 내 마음의 주인이며,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서 나의 주님이시기를 원하신다.

세례요한은 오시는 주님에 대해 그분의 신발끈도 푸는 일조차
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진 분라고 고백한다.
그 주님은 나의 삶의 중심에서 높임을 받아야 할 만물의 주인이시며,
만인의 구주이이시다라는 의미가 있다.

평소에 준비하는 삶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의미하지 않다.
시간을 준비하고 (시간약속에 대해)
일을 준비하고 (일의 추진과 성취를 위해)
장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의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현재에 준비를 잘하는 삶은 미래가 보장된다.
이렇게 사는 태도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일이다.

세가지 중요한 준비하는 것들이란,
바로 자신이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고,
또한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사는 것이다.

고로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준비의 삶은
1, 영혼을 위해서 사는 삶
2. 내일을 위해 사는 삶
3. 주님을 위해 사는 삶 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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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와 나의 기도의 차이

나는 그 동안 기도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정작 기도 생활에 대해 주님의 효력 있는 응답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부르짖는 나의 기도 제목이나 내용들이 그에게 상달되어,
그로부터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응답의 역사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를 못한 것이 답답하게 느낄 때가 자주 있어 왔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가르침 중에서
주기도문은 주님의 기도의 모델이 담겨져 있으며,
주님의 기도의 정신이 다 나와 있다고 하겠다.
그의 기도는 한가지 목적에 귀착되고 있다.
그것은 그의 기도와 삶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원하셨다.

어느 날 아침에 나는 기도하는 중에 자신에게 깨달음이 온다.
기도는 나의 뜻을 바라고, 나의 바램을 얻어내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작 기도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리고, 자신의 뜻이 성립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나는 기도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 나의 기도에 대해 세 가지점을 살펴보면,
먼저는 기도를 통해, 주 예수님의 기도 정신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감 속에서
모든 간구와 기도의 바램이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며,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주님을 향하여 나가는 믿는 이의 기도는
하나님의 하실 일들을 그의 종들의 간구의 중보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섭리의 역사를 기대하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손을 움직이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온 천지를 그의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
그의 말씀을 통한 창조 사역은
그의 하시는 말씀이 나가서 실제적인 역사를 이루어 놓았다.
그것은 그의 사역이 그 말씀의 사실성에
입각한 믿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의 믿음이 그의 사역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말씀을 통한 믿음의 사역으로 온 우주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
기도하는 나에게는 기도에 공을 들인 시간이나 헌신한 노력보다
더 필요한 것이 내 안에 있는 그 믿음인 것이다.
바로 그분의 섭리의 사역을 움직이게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기도자 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기도할 때마다
나는 나의 비전이나, 관점을 갖고서 기도에 집중하기 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시각이나 관점을 갖게 되어,
그의 시각이나 관점으로 나의 필요한 부분이나
나의 인생의 모든 상황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인간관계의 문제해결이나 원통한 일을 푸는 것이나,
그리고 나의 열망이나 의욕이 품어대는 바램이나 기대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나의 기대나 상황을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시각이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가서 자신의 기대나 간구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모든 기도가 주님의 손에 들려지게 될 것이며,
속히 그의 손이 움직여서 자신의 주변이나 인생 상황에서 섭리로 나타날 것이다.

주 예수님은 늘 자신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저 하시는 열망이 있으셨다.
그는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것을 이루기를 원하셨고,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며 기도하셨다.
그의 기도는 아버지의 원하시는 것에 대한 열망으로 인하여
그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열납이 되어,
그의 기도가 상달을 통해 실제적인 기적이나 현실의 응답으로 나가오는 것이다.
나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고백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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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제자의조건

누가14: 26-34
26.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녀와 형제 자매, 심지어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가 없다.
27.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 제자가 될 수 가 없다.
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 할 때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할 만한 돈을
가졌는지 비용을 계산해보지 않겠느냐:
29. 만일 기초 공사만 하고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모두
기초 공사만 시작하고 마무리를 못하면 시작 아니 함만 못하다는 것을
30. ‘이 사람이 시작만 해놓고 끝내지 못했군’하고 비웃을 것이다.
31. 또 어느 왕이 다른 왕과 싸우러 갈 때 먼저 앉아 병력 10,000명으로
20,000명을 거느리고 오는 왕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일 당해 낼 수 없으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 평화조약을
제의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4.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다시 짜게 할수
있겠느냐?

예수는 그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 중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규정을 세웠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따르는 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자세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제자의 삶의 기본 철학이 되며, 제자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제자가 되는 데는 자신에 대한 결단과 결단에 따르는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결단의 의지와 희생을 각오하는 자세는 제자에게 필수적인 태도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와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에만 진정한 제자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보다 나은 가치와 숭고한 사명의 삶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보다 고양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가지 보통의 삶을 넘어가는 자기 조절과 훈련이 필요하다.

누구나 예수에게 오는 자는 그에게만 관심을 갖고 그를 따르는 일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그를 온전히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가족 이상이며, 그는 인생과 만물의 근본이다. 그는 모든 것의 우선이다. 고로 그를 따르는 일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부모와 아내, 형제들, 자매들 등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름은 긴급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를 따라 나서는 길만이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를 따라 나서는 결단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에 필요하다. 자기 생명을 구하려면 그에게로 나와야 한다. 그는 우리의 생명 이상이며, 그는 인간에게 구원의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주님은 이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사신 것처럼, 주님을 따르는 자들도 주님의 이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생활은 자기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이다. 자기 할 일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할 일을 위해 충실한 자세로 삶을 감당한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 자기 할 일에 대한 자각 의식을 갖고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이다.

건물을 지으려 할 때에 건물을 짓는 비용을 계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건물에 대한 청사진이나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설계에 나온 대로 건물을 짓는데 소용되는 재료나 사람들의 인원 동원등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의 견적이나, 계획 등을 세워 필요한 물자나 재정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데에도 자신의 결단과 더불어 그를 위한 자신의 삶을 드리고, 그를 위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한 충분한 계획과 지략과 전략등이 필요할 것이다. 일에 대한 무슨 정책이 필요한가? 과거에 이루어 놓은 일에는 과거에 필요한 전략이 있듯이, 현재에 진행해 가는 일에는 현재에 필요한 정책의 수단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나 유동적인 일의 변화의 상태가 지금보다 다르다는 것이다.

70,80년대 한국 기독교의 선교 정책이나 대 사회적인 전략이 민주와 공산 진영의 우리 사회의 특유의 흑백 논리에서 그 가운데에 살고 있는 진정한 사람들의 기본권에 대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다면, 지금은 한국 기독교의 갈 길은 남북의 가치의 변화를 통한 통합의 논리로 교회는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며, 다가올 새로운 미래의 준비된 세계의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일제 시대 안에서의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에 대한 청사진 갖고서 끊임없이 추구한 조국의 해방된 내일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민족의 가능성에 희망과 기대감을 불어 넣어 주었듯이 작금의 기독교는 교회의 자체의 성장이나 혹은 청사진에 매달리지 말고 기독교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세울지를 질적으로 기독교의 가치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왜 기독교의 가치가 의미가 있어야 하는 가? 그리고 그들에게 제시할 만한 민족이나 우리 사회의 존재의 목적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 목적은 사라질 세상의 환상에서 깨어나, 인간의 불합리와 모순의 상태를 보게 하고, 기독교의 가르침 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가치를 대신하는 대안 가치 목표를 보여주며, 그 가치 목표를 달성할 것을 내세우며, 거기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할 만한 그들과 소통하는 가치의 전략으로 방법을 정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물자나 재정등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만 해놓고, 그것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 일은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을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은 진행이 되며, 일을 하는 이의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그 과정 중에서 일이 착착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고로 모든 일의 성취자의 고백적인 좌우명은 우선 시작하라는 것이다. 공부도, 연애도, 사랑도, 사업도, 그리고 중요한 사역을 계획하는 것도 실행 이상으로 나을 수 없는 것이며, 한발을 실천으로 내디디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천하는 자에게는 성취나 일의 결과가 주어질 것이다. 물론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방해나 반대를 무릎 쓰고 전진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논리이다. 일을 하는 데 시작만 해놓고 그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면, 참으로 낭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할 때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이다.

전쟁에서 나가 승리하려면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정보를 잘 분석하여 대처하여야 한다. 그 중에 해야 하는 일들은 서로의 전략이나,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의 수와 전쟁 수행 능력이나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물자등을 살펴보는 일이다.

주님의 제자의 표시는 그가 주님을 위해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다. 그분을 위해 수고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며, 제자로서 살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물이나, 자기 기준의 가치등을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소금처럼 유용한 인물이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소금의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맛을 내는 것과 부패 방지의 역할을 하는데 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소금처럼 제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며, 그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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