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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scue at the Red Sea and the Praise of the Isralite

(Exodus 15:1-18)

* The salvation at the Red Sea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events to save the Israel.

1.The salvation of Israel people makes change their
   status and position.
2. They changed free men from slave people.
Our salvation also makes change our status and position:
the righteous from sinned, a blessed life free from cursed,
the children of God from the salves of Satan

* What event happens in the episode my salvation?

* The praise of Moses and Israel people comes from the
   responding rejoice to their salvation. So do Christians .

1. My praise also comes from my saved experiences.
2. My praise helps my spiritual life to be healthy.
3. Such hymn-centered life can produce victorious Christian life.

* Praise-centered life is the right and duty of Christian life
 1. What about my praise life?
 2. What is my favorite hymn or gospel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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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과 찬양

 

출애굽기 15:1-18
성경 본문은 찬양시가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5, 7-11, 12-16 그리고 결론 부분이 있다. 17-18
1-6
첫부분은 바다에서 멸망당한 애굽의 군대의 파멸을 읊으며,
또한 모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권능을 인식하여
그런 엄청난 구원을 이루심을 기뻐하며 노래하고 있다.
모세는 구원의 하나님을 나의 노래이다라고 고백한다.
7-11
둘째부분은 하나님에 의해 파멸되는 애굽인들의 자세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이 시는 의인화 화법으로 하나님의 콧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숨소리로 라는 말로 자연세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개입하는 표현으로 쓰고 있다.
이스라엘을 쫓아온 애굽인들은 승리에 대한 자신을 했고,
이스라엘인들을 대적하였으나 하나님의 힘에 의해 완전히 파멸되었다.
모세의 찬양에 있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주님에 대한 찬양의 동기로 내세우며,
당신과 같은 신이 어디 있나이까?
당신의 거룩함과 영광을 받을 존재는 아무도 없나이다. 라고 찬양으로 고백한다.

12-18
이시는 모세의 찬양에 후대에 삽입된 이스라엘민족의 찬양신앙적인 고백이다.
그들의 역사속에 반복적으로 개입하시는 그러한 크신 하나님에 의한
이스라엘의 연속적인 구원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자비에 의한 그의 오른손으로 놀라운 승리는
그 백성들을 그의 거룩한 처소인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임을 언급 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다윗시대까지 위협이 되었던 팔레스틴의 백성들,
광야의 노정에서 이스라엘의 행로를 방해했던 에돔과 모압의 주민들을 물리치고,
물론 약속의 땅에 거주하였던 가나안의 주민들 까지 정복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모세의 승리의 노래는 그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인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성소의 장소로서의
곳에 살게 할 것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즉 이 찬양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또한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통한 구원으로 찬양을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가나안 약속의 땅을 준비하며,
그리고 거기에서 그들을 통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구절 이해
중요 구절 (15: 2, 11)
핵심 구절(15:13):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3절은 구원의 삼 단계를 알려준다.
1. 먼저 구속하시고 (구원하심), 2. 광야 길에서의 인도, 3.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심,
성도의 구원의 삶도 그와 같은 구원의 패턴을 밟고 있는 것이다.
1.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음, 구원을 얻음, 중생의 단계
2. 성도의 생활, 나그네의 길, 성화의 삶,
3. 천국에 들어감, 영화의 단계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이스라엘의 전쟁에 많이 나오는 표현, 여기서도 이스라엘의 승리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승리를 강조한다.
15: 8콧김은 여호와의 분노를 가리킨다.
주의 바람은 동풍을 가리킴
15: 13 성결한 처소/ 시내산이나 시온산을 가리키며, 약속의 땅 전체를 가리키기도 함
15:14/ 블레셋거민/ 애굽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민족,
에돔과 모압은/ 광야의 길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맞주친 민족들
가나안 거민/ 블레셋 거민과 함께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이다.
15:16 주의 팔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낸다.

본문과 연결되는 사건의 성경본문들
15: 19-21
여기서는 모세의 찬양에 대해 미리암의 화답하는 노래가 담겨있다.
미리암은 성경에서 여선지자라고 불림을 받은 첫 여성이다.
미가는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
중요한 지도자로 여김을 받았다고 증거한다.
당시 모세는 80세이며, 아론은 83세이며,
미리암은 아마 90세 정도 되는 것이다(출 2:4).
여기서 미리암과 여인들은 소고 (일종의 탬버린)를 흔들며 함께 춤을 추며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신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모세의 찬양에 화답하는 노래를 불렀다.
14: 1-4 이스라엘의 야영지
이스라엘은 며칠을 남동쪽으로 내려오며, 에담에서 캠프하였다.
이곳으로 야영을 하게 된 것은 블레셋 땅의 가까운 곳으로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전쟁의 발생과 그로인한 백성들의 두려움과 돌이킴을 막기위해,
하나님은 애굽의 국경의 바다로 인도하셨다.
14:5-9 애굽의 추격
60만명(정확히 60만 3,550), 장정을 포함한 2 백만명이 빠져나간
애굽은 초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라셈스에서 출발하였다.
애굽인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며, 며칠간 슬픔속에 있다가,
다시 강팍해진 바로를 비롯하여, 화가 난 애굽의
군인들은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되었다.

14:10-22 백성의 울부짖음과 모세의 믿음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오니, 이스라엘인들은 당황하며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울부짖으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해주신 것을 잊고,
모세를 저주하며, 자신들을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여기 광야로 데리고 와
죽게 만들었냐고 원망을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신과 두려움에 빠져 버렸다.
모세는 원만하는 백성들사이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으며,
그분의 도움과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바다로 내밀라 하셨다.
하나님은 밤새도록 동풍을 불게 하여, 바다를 둘로 나누게 하셨다.
새벽녁 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라진 바다를 육지처럼 나가게 하셨다.
그 바닷길은 2백만이 지나 갈수 있는 길을 이루어 그들은 신속히 건너갔다.
14: 23-31 애굽의 파멸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을 추격하려, 바다에 들어갔으나,
하나님께서 전차의 바퀴를 흩트려 뜨리고, 추격을 힘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애굽군대와 직접 자연의 힘으로 싸우시면서,
그들을 다시 합쳐지는 바다물에 모두 함몰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받아 애굽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홍해기적에 대하여
홍해바다는 갈대바다라는 학자도 있으나, 애굽의 국경에 있는 바다로,
거기에는 갈대가 자란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불레셋으로 가는 지름길을 피하게 하려
(전쟁을 하면 겁이 생겨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심)
애굽의 국경인 광야 끝으로 인도하심.
그 바다는 2백만명이 지나가는 큰 바다였음을 보여준다.
애굽의 군대가 빠져질 정도의 깊이가 있는 바다였다.
하나님은 밤새껏 동풍을 불게 하여 바다물을 둘로 갈라 세워,
새벽 3-6시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홍해로 건너는 기적을 하게 하신다.
그리고 곧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는 다 바다에 몰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구원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어 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루어 진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이다.
출애굽의 역사와 홍해의 구출의 역사는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과 섭리에 의한 역사로 이루어 졌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원수들로부터의 구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인도로 이집트의 고센에서 살았으나,
요셉이 죽으며, 그의 총리직을 통한 보호를 잃은 후,
400년을 지내는 동안 그들의 종으로 전락하여 노예생활을 하였다.
애굽인들은 그들의 노예들을 강제노동으로 부역하게 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민족성을 말살하고 자녀들의 생산에 까지 관여하여 남아를 없애,
민족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하였다.
(출애굽연도는 1446년, 1876년-1446년 430년(갈 3:17)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노예에서 구출받음으로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선민으로서의
자유를 의미를 얻은 것을 의미하며 이후에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정체감의 형성에 중요한 신앙적인 동기부여로서의 주요한 사건이며,
민족성의 건설의 근거가 되었다.
그 주제는 성경의 큰 주제로서, 인류의 타락하고 억압된 역사속에
신음하는사람들의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출애굽의 역사속에 홍해의 기적적인 건넘의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가장 큰 역사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애굽의 추격은 마치 사람들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헤매이며
끝까지 달려드는 사단의 영향력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통해 노예의 강제노동의 압박에서 해방을 받았으며,
노예신분으로 사는 종살이의 비참함에서의 자유이다.
그들은 출애굽을 통해 자유시민으로 살아가며,
그것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살아가는 은총을 입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원수들과 싸우시고, 그들을 처부셨다.

성도들의 구원은 출애굽의 사건으로서의 구출로
세상의 장망성의 탈출(존번연의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의 떠남)에 비유된다.
그들의 구원은 사단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전제한다.
어둠의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구원받은 것이다(골1: 14).
그들은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며,
불순종의 피조물에서 순종하는 자식으로 살아가게 된다(엡 2:2).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생명과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도의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이루어야 한다.
영으로부터의 구원/ 하나님과의 교제,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남, 죄의 용서,
정죄 받음에서 해방, 어둠의 영적 세력의 지배를 이기는 권세의 삶
혼으로부터의 구원/ 죄책감에서의 자유, 수치심에서의 자유,
옛 자아에서 새로운 자아에 대한 자기인식의 확인,
형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의 평안,
육으로부터의 구원/ 영의 지배를 받는 조화로운 삶, 기쁨과 행복을 주는 만족한 삶,
의미와 가치를 이루는 세상적인 일의 열매맺는 삶 등

구원과 찬양
구원의 노래는 하나님께 드리는 마땅한 구원받은 성도의 노래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중에 구원의 노래가 있다.
그 내용은 승리를 담고 있는 내용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의 주제를 그들의 찬양의 중심으로 삼았다.
출애굽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반복되는 주제로
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상기케 하며,
자신들의 정체감을 새롭게하는 즉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택함을 입은 선민으로서의 삶을 살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통해 격려한다.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세움을 입은 존재들이다(벧전 2:9).
성도들은 구원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다.
그의 이름을 높이는 일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다.
고로 성도의 찬송은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찬송은 또한 성도의 입술의 열매이다 (히13: 5).
더 나아가 찬송생활은 구원받은 성도의 성령 충만한 삶의 방식이다(엡 5:18-20).

성도는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인도와 섭리로서의
현재적인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할 뿐 아니라,
성도를 영벌에서 영생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즐거워 하며,
그 분을 기뻐하는 것으로서의 신앙고백적인 노래를 날마다 불러야 할 것이다.


출애굽(홍해기적)의 구원과 찬양 (성경 공부 안에 대한 제안)
* 홍해의 기적의 사건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애굽 군대의 추격, 사면초가의 이스라엘백성, (이 내용은 본문의 앞장의
내용이기에 간단한 질문이나 설명을 하기 바랍니다.)
1. 이스라엘의 반응/ 그런 경우에 반원자신들의 반응
2. 모세의 신앙과 기도/ 배울 점은?
3.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어떻게 이루었는가를 생생하게 설명

*. 출애굽의 사건 중에 홍해기적의 사건은 애굽에서의 노예상태와 이스라엘의
자유인으로 살게 하는 하나님의 출애굽을 이룬 핵심적인 사건이다.

1. 이스라엘의 구원은 상태와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다.

나의 구원에서 나의 상태와 신분의 변화는 무엇인가?

(죄인에서 의인으로, 저주받은 인생에서 축복된 인생으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등 이런 것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이스라엘은 강제노역, 노예신분, 자유가 없음, 저급한 생활, 노예근성이 무엇인가?

자유인의 특권은 무엇인가?

2. 홍해의 기적은 하나님의 구원의 전형적인 사건이다. 자신의 일생이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으로서의 도우심을 받은 것들을 간증으로
나누기를 바랍니다.

나의 간증적인 사건/

나의 간증적인 일이나 참여된 인물/

* 모세의 노래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전형적인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다.
모세의 찬양은 하나님의 권능의 인식, 하나님의 능력은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이다(롬1:16).

1. 내가 구원받을 때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나 능력의 역사는?

2.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신앙적인 표현은 어떠했는가?

3. 찬송에 대한 자신의 이해나 신앙적인 관심은?

4. 입술의 사용에 대해, 자신의 말은 어떠한가?

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 자신의 말과 자신의 삶과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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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말씀

(로마서 10:8-17)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손안에 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링컨의 고백대로 최고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썩지 아니할 생명의 씨앗으로
그것을 받으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는 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하는 가르침을 갖고 있다.
말씀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시다.
그 말씀 (로고스)은 만물의 원리이며, 생명의 가르침이다.
영원한 말씀이신 주 예수님은 기록된 성경의 주인공이시다.

마틴 루터는 성경은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말구유라고 하였다.
성경을 어디를 보아도 거기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담을 수 있으며,
우리의 입술로 전달되고, 알려진다.
그 말씀은 사람들의 영혼에 들려지게 하는 생명의 진리이며,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불러 일으킨다.
말씀은 우리의 심령 안에 믿음을 심는 씨앗과 같다.
고로 성경은 믿음의 책이며, 동시에 생명의 책이다.
그것을 우리는 우리 손안에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말로 고백하므로 자신의 말에 의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며,
자기인생이 결정이 된다. 예수님을 나의 입술로 즉 나의 고백하는 것은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시인하는 일로 인하여 죽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하였다. 일제시대나,
공산치하에서도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도 같은 경험을 하였다.
우리의 믿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의 구주로 오신
주 예수님 자신을 믿는 것이며, 또한 그분이 하신 일들을 믿는 것이다.
특히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로 인한 형벌을 대신 받으심이고,
그의 부활하심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승리의 사실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다.
부활을 믿는 믿음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며,
인생의 저주받음에서 생명을 얻는 축복의 능력을 받는 것이다.
네 마음 속에 주 예수님과 그의 하신 일들을 믿는
마음의 믿음은 그분과의 신뢰에서 나온다.
전적으로 주님을 의존하는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받는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죄와 죽음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
그분은 해결 및 해답을 갖고 계신다.

사람은 마음과 육체가 연결된 존재이다. 마음이 편하면 몸도 건강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첫번째 오는 축복은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의 상태이다.
주님을 믿는 인간의 마음은 수치심과 두려움과 죄책감에서 자유를 얻는다.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은 주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과의 조화로운 상태가 된 인간의 마음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영혼의 만족과 온전한 자아가 이루어 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의 잔은
마음에서 흘러 넘쳐 밖으로 나온다.
우리의 입을 통해 찬양으로, 간증으로, 전도로,
그리고 생활 속에서 모든 일을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며,
더 나아가 주님을 높이는 일을 한다.
주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게 한다.
영혼이 경험하고, 육체도 느끼며, 삶을 통해서도 경험한다.
단지 믿어서 나중에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다.
그분의 인도와 섭리를 통해 때로는 훈련을 받고, 고난도 있지만
이 모든 일들은 신앙 안에서 하기에 쓸모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우리의 신앙을 성장하게 하며, 우리자신을 성숙하게 한다.

성경 말씀 속에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약의 이사야에서 핍절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것은 궁핍하거나 곤란하여, 인생에 대해서
불만을 갖게 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갖지 않는다.
주님을 거부한 사람들은 자기 수치심안에서 고통 한다.
그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주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주님이 변호사가 되어
우리를 영원한 수치와 지옥으로 떨어지는 불명예에서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도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시며,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도 그분을 찾고 나오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푸시는 선물이다.
주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나를 믿는 사람들이
죽음의 길에서 생명을 얻고,
고생스런 인생길을 풍성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믿는 사람은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고통하고, 절망을 경험한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런 것들을 다 이기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구출해주며,
다른 사람들까지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삶의 의미와 인생의 가치를 깨닫고,
살맛이 있는 인생살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영혼을 강건하게 자라게 하시며,
마음에 조화와 풍성한 만족의 상태에서 살게 한다.
그리고 실제 삶의 필요한 자원들을
언제나 우리의 기도의 응답으로 공급하시며 돕는 손길들을 허락하신다.
고로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이들은
그분을 통하여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산다고 시편의 시인처럼 고백한다.

주님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며, 하나님은 기도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인생들이 구해달라는 울부짖음에
결코 외면치 아니하시는 능력이 많으신 전능자이시다.
그분은 만물을 지으셨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수 있는 준비를 다 해놓으신 분이다.
지금도 그분은 이세상에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배려하시며,
우리를 보존하시며, 돌보시며, 인도하신다.
고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필요할 때에 찾으면 언제나 가까이 계시는 분이며,
늘 그 분이 주시는 힘과 지혜와 도움의 손길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 속 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라야 즉 구하고 찾고 기도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그의 구원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도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은
돌이나 나무등 우상에게 자신의 인생을 도와 달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비참함 속에서 살고 있다.
미래의 갈 길도 모르고, 저주받은 인생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우리 믿는 이들도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먼저 주님을 알고 믿었던 이들이
가족 중에든지, 혹은 친구나 아니면 전혀 자신과
상관이 없는 지나가는 이들이 전도하였든지,
좌우간 누군가를 통해 자신이 주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
고로 자신을 전도한 전도자가 있으므로 해서
내가 구원을 받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성도들이 전도안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직무유기이며,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불러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은 구원얻을 사람들을 전도자를 통해 불러내신다.
그리고 나중에는 구원얻은 성도들을 세상으로 보내신다.
전도자로 보냄을 받아,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한다.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의 발길은 가벼우며,
그들의 도착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의 긴 70년의 세월을 보내는 중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예언자들을 통해
그 노예의 압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을 날이
곧 다가 오리라는 것을 외치는 예언을 받았다.
예언자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좋은 소식을 백성들에게 전하였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고통을 받으면서
바벨론에서의 노예해방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였다.
나중에 이스라엘 역사속에 그는 이스라엘 민중이
가장 애국자로 여기는 예언자로 여김을 받았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야 예언자라 할 만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명을 받은 예언자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그 예언자는 듣지 아니 듣든지 전해야 할 책임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을 전하였다.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한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든지 아니면 그것을 무시하고 거부하고,
결국에는 불순종에 빠져 자신을 향한 구원의 말씀을 놓치게 된다.
때로는 전도자는 전도를 받지 않을 때에 예언자의 탄식처럼 답답하지만
전도해야 할 책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책임이
그 예언자들이 했던 것처럼 전해야 만 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시키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다.
이 성경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고 영생,
즉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라고 요한 복음에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내 말은 생명이요, 구원이라 하셨다.
사도 요한은 성경즉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기록한 목적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영혼에 심겨져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한다. 고로 말씀은 믿음을 낳게 하는 메시지이며,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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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

로마서 10:8-17

세례시/ 당신 구원받았습니까? 저는 세례를 받을 때에 목사님이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구원을 확신합니까?
글쎄요, 당시 저는 잘 믿는 축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확신에 대해 몰랐습니다.
그저 신앙 생활을 잘 합니까?
구원받은 사람 쪽에 끼였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전도 폭발 식 전도 방법에서 훈련받은 전도자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밤 당신이 세상을 떠나, 당신의 영혼이 죽은 몸을 떠나 간다면,
그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것을 확신합니까?

장례식에 가보면,
어느경우에는 신자들이 오랜 교회 생활을 해도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 했던 이들의 장례식에 그 영혼이 떠날 때에,
자신의 신앙 고백을 분명히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몸 상태를 보고 대략 짐작을(구원받은 사람인지를)
한다고 이야기를 들은 적이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에 초상 예배를 많이 치렀습니다.
그리고 있을 미국에서도 장로님, 안수 집사님의 장례를 집례한 적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물음이나 신자들이 구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믿음을 갖는 일은 필요한 일입니다.

본문의 성경 로마서는 분명히 구원은 율법의 공로나 행위로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즉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실상은 하나님의 그 구원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구주이신 것을 믿습니다.
옛날 초대 교회에, 물고기 표시를 합니다.
서로 당시에는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믿는 사람은 잡혀가거나 사형을 당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끼리 암호로 표시하여 믿습니다.
헬라 어로 물고기의 뜻의 익수스라는 말은
그 앞 글자만 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어려운 시절에 믿었던 초대 교우들은 믿음은 생명과 바꿀수 도 있는 진지함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 우리의 생명을 의지하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신자들을 구하시는 구원의 능력을 믿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은 자신을 구원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믿음은 자신 행위에 대해 근거를 삼는 율법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며,
자기 중심적인 종교 헌신이나 생활에 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하나님이 이루신
그의 독생자이신 아들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의의 길을 믿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가 죄의 짐을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짐을 해결하여 그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으며, 구원함을 얻습니다.

복음을 믿는 데에는 그 믿음의 현상이 3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성적인 판단이나 생각이나
그리고 이해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나의 생각으로 그 사실들을 믿습니다.
자신을 위해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
즉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 신 것을 믿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오셨고, 나를 위해 죽으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나는 그가 나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있는 저주받은 자리에서 살리기 위해
그가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 부활하셨습니다.
고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의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구원을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그분의 자비하심에 대한 감동이 있으며,
그분의 사랑에 대한 응답하는 마음의 감정이 드러납니다.
특히 주님의 십자가의 크신 희생에 따르는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의 사랑을 경험으로 체험합니다.
십자가만 바라보아도 그분이 내리시는 사랑을 느끼고,
자신도 그 사랑에 대한 응하는 감격스러운 마음의 표현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는 강단이 나무 강단이고
신발을 벗고 단위에 오르는 곳에 있습니다.
거기를 걸레로 닦을 때에 한 없이 주님의 사랑이 감격스러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변소 청소나 교회 탑 꼭대기에 올라가
성탄 츄리를 달 때에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주님에 대한 사랑에 감격하여 즐겁게 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셋번째 단계에는 의지적인 헌신의 결단이 있는 단계입니다.
저는 주님으로 부더 받은 그 사랑의 감격과 구원의 은총에 대해
자신의 일생을 주님에게 드려야 겠다는 의지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신앙에는 의지에서 헌신적인 결단이 나오며,
결단 후에 실질적인 주님에게 헌신하는 삶이시작됩니다.
그후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의 생활의 현장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간증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저는 늘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헌신된 마음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의 지속되었습니다.
믿음은 전인적으로 자신을 주님에게 드리고,
고로 주님을 따르는 그러한 신앙 생활의 단계에 나갈 때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듯, 지,정,의, 머리로 이해하는 사실이나 지식에 대한 믿음,
그리고 주님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정의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드리며, 자신의 중심인 세계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 갈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믿음을 크게 두 가지 면으로 생각해 보면,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술로 시인하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 하나님과의 조화된 상태의 삶을 삽니다.
마음으로 믿는 다는 것은 그 마음으로 믿는 신앙을 통해,
무엇보다도 마음에 놀라운 평안을 맛봅니다.
마음으로 믿는 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가 해결을 받습니다.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면 마음이나 정신적인 문제에서 자유를 얻고, 해결을 받습니다.
과거의 상처받은 일들, 현재 자신의 마음을 누르는 깊은 근심이나
걱정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영혼의 우선순위를 통해
정신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는 일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통해 해결이 옵니다.

입술로 시인하는 신앙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의 중요성이나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압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한 말로 인하여 영향을 받아,
그 영향 아래에 삽니다.
날마다 죽겠다 하는 사람은 죽습니다. 안 된다. 하면 안됩니다.
기쁘게 삽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서도
그들은 주님을 입술로 고백했습니다. 입술로 시인하는 신앙은
여러 면에서 자신의 생활이나 삶에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분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입니다.
나의 일도, 나의 인생 철학도,
나의 삶도 다 내입에서 나간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고로 입술로 고백하는 신앙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나타납니다.
나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는 살아있는 신앙의 간증입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는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과
그분의 기이한 도움을 체험하는 경험을 통해 간증이 나옵니다.
자기가 믿고 경험한 하나님 동행의 신앙,
즉 자기만의 하나님을 이해하고 경험한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천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간증,
인생의 실패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성공하는 이야기,
질병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받은 치유의 간증 등은
그것을 듣는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왜냐하면 그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분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게 됩니다.

성경은 과거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하나님 체험의 자기 고백이며
하나님 신앙한 사람들의 고백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 이야기는 비슷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 속에서 나옵니다.
성경에 보면 주 예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는 믿음은 그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언제나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가오십니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라고
로마서 1: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생활의 현장에서 경험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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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일꾼이 되라

마태 복음 25:14-30)
달란트 비유에서 하늘나라는
그저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서 무위도식하는 자가 들어가는 나라라기 보다는
오히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가며,
그곳은 마치 천국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으며,
자신의 수고 한 일에 상급을 받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주인이신
그를 섬기는 종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일도 국민이 합니다.
국민이 주인이기에 국민을 섬길 지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고로 지도자는 국민들을 위해 자기의 직무를 다해
국민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좋은 일꾼이 되어야 좋은 지도자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목양하는 목회자도
하나님앞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자기의 본문을 다하는 것이 목회자가 할 일입니다.
성도님들도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에게 맞는 권한이나 능력을 주셨습니다.
거기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네 인생을 사는 각 사람에게 크게 세가지로 주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1. 생명유지나 인생을 사는 것을 위해 필요한 시간과 건강입니다.
2.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신의 위치를 허락하십니다.
가정에서 주부의 일들, 남편의 일들 자녀의 일들, 지위나 권한이 있습니다.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에 충실하는 것은 자기의 위치나,
해야 할 일을 알면 그 일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돈을 버는 일등도 자기의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3.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재능이나 능력을 활용하는 일입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마침주인이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주인이 부재중에, 종들은 자신의 일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11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는 비슷한 내용이나 거기에 좀더 하늘나라의 주님과
당시의 유대의 종교적인 현황에 있는 경우를 빗대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두 사람의 신실한 청지기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그중에 한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나
애굽에서의 총리지도 성실하게 일을 수행했습니다.
신실한 청지기로서의 요셉은 주인이 무슨 일을 맡겨도 안심할수 있고,
주인의 유고시에도 자기 일을 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주인으로 우리에게 여러 달란트를 활용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시간이나 지위나, 소유물이나 재능등 여러가지 것으로 인생을 살면서,
특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성도들 각자도 자신이 받은 은총을 잘 간직하며,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너희가 떨림으로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도
구원받은 성도로서 자기의 영혼을 돌보며,
자신의 신앙을 키우며, 주님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달란트비유에서 책망을 받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일을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으로 붜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좋지 않은 일꾼으로 여김을 받는데서 자신을 지키려면,
세가지 면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먼저는 자신의 삶을 두고 게으르지 않으며, 또한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해야 할일에 대해서 어리석은 태도로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전체 자기의 인생에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목표하는 바도 이루고,
원하는 일들도 할 수 있으며, 좋은 일을 많이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을러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열심히 사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하는 일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실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몰랐습니다.
주인의 의도를 무시하고 오해하였습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원리를 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생들에게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일꾼은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을 맡은 자입니다. 일에 충실한 그 사람이 좋은 일꾼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자신이 주인대신 나서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본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의도를 보면 주인에 대해 불만을 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불만을 품습니다.
범죄인들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죄를 범합니다.
얼마전에 한국에 해병대 초소에서 무기를 강탈하고 병사를 죽이 범인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애인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볌행을 저질러 닸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신실한 일꾼으로 살려면 먼저 자신을 잘알고
자기의 위치나 역활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위치를 아는 일은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신자는 하나님을 알아야 자신을 잘알수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하나님도 자신도 알고 인생도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 즉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솝이야기 중에 강아지와 당나귀가 주인이 기르고 있는데,
애완용인 강아지는 주인의 사랑을 받아 집안에 키웁니다.
그런데 당나귀는 노동이나 운수용으로 쓰임을 받는데,
어느 날 당나귀가 강아지만 사랑 받는 것을 생각해,
자기도 그런 주인의 사랑을 받으려고 생각해
주인이 자는 방에 들어가 사랑을 받으려다 주인의 노여움을 받아 쫓겨 났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아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력서를 낼 때도 자기의 할일에 대한 분명한 명세서를 쓰는 일이 필요 합니다.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그 일을 잘 하는 비결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실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몰랐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익을 남겨야 하는데, 주인의 것을 허비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달란트비유에서, 주인은 하늘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인생은 심은대로 거둔다는 원리로 종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심은데 팥이 납니다.
좋은 일을 심으면 좋은 것이 나고, 귀한 일을 심으면 귀한 것을 얻습니다. 반면에 나쁜 것을 심으면 좋지 않은 열매를 거둡니다.
주인은 본문에서 종들에게 자신의 받은 것, 그 달란트로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런 주인의 뜻을 오해하여, 자신의 받은 것을 썩여 두었습니다.
아무일도 안한 것이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실업의 상태는 답답하고 고민 스럽지만, 일을 할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이 있는데도 자신의 처지를 무시하여 자신의 실업의 상태를 유지하고 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삶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에는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며, 자신의 존재이유이며, 자기 표현이나 자기 성취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받은 이들은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좋은 일꾼으로사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시며, 신자들의 주인이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각자에게 더 나아가 그의 아름다운 속성중에 하나인 그의 탁월하심과 같이 우리에게 자신의 일에 탁월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탁월한 이들중에 이름을 높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문에 요즘 국민들이 김연아를 보면 살맛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이상이 한 여고생의 탁월함의 상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 여학생이 피겨 스케이트로 세계대회에서 상을 받아 그녀의 탁월함 때문에
국가의 선양을 올리니
국민들의 마음이 시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에 보면 자기일을 충실하여 베스트 하는 사람은 왕 앞에 선다고 하였습니다.
가끔 뛰어난 연주자들이 대통령앞에서 연주할 때 라든지,
공부를 잘하고 모범적인 학생들이 대통령앞에 가는 일입니다.
옛날에 클린턴 대통령이 학생시절에 케네디 대통령이 불러
초청을 백악관에 가서 악수하였던 경험은 훗날 그로 하여금
대통령이 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중에 탁월하심이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하나님의 속성중에 그는 탁월하심니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탁월함을 원하십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좋고 신실한 일꾼으로서의 삶를 통해
그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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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는 믿음을 얻는 길

구원받는 믿음을 얻기 위해 (로마서 10: 8-17)

본문의 목적
구원을 얻는 길은 듣는 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기초는 선포 되어진 말씀에 의해 세워진다.

믿음이란?
본문에 쓰이는 피스티스라는 믿음은 구약에는 신뢰하다라는 말로 쓰였고, 신약에서는 신실함 혹은 신뢰하다로 쓰임
믿음은 히11: 1에 정의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지식을 갖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 믿음에는 인간에게는 이지, 감정, 의지가 있는데, 진정한 믿음은 이 세가지 단계를 거쳐 얻는다. 믿음은 이해하는 것에서 감정적인 변화를 거쳐 믿음의 헌신에 대한 의지적인 결단에 이른다.
구원얻는 믿음은 행동하는 개인적인 신뢰즉 그리스도에게 개인적인 헌신을 의미한다. 구원얻는 믿음은 양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 중요하다. 적은 믿음이라도 그 대상이 바르면 구원에 이른다.

믿음으로 사는 믿는 자는 하나님앞에서의 자신의 변화된 위치(죄인에서 자녀로)뿐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며 구속적인 성화의 선상에 있게 된다.
고로 자신의 변화없는 혹은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이 없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스코필드) 그리스도의 선행은 그의 믿음의 진실성의 결과와 증거이다.
믿음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얻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와 연결되며, 성화와 연결되며, 봉사와 헌신과도 연결된다.

믿음과 회개의 관계에서 자신의 죄에 대한 지식과 동의는 회개를 수반하며, 회개는 신뢰를 수반한다. 진정한 회개없는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것이다.
알미니안주의 개념은 누구에게나 은혜가 주어져 그리고 사람은 그의 믿음에 의해 의로와 진다.
복음적인 입장은 갱생이나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으로 연결된다. 고로 의로와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1.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 주님을 개인적인 관계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관계에서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음, 그분과의 지속적인 관계에서 그분에게 의존하는 상태와 그를 통한 자신들의 신분변화를 받는 관계(예수님처럼 아들로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한의 회복)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님은 세상의 구주이시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며 나의 구주이시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불가 분리의 주종의 관계이다.
2.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
주님의 보내심/ 성 육신의 역사
주님의 부활/죽음에서 부활하심은 죄를 이기심, 사망을 이기심, 고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을 믿음
3.믿음의 효력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함/
자신 안에 있는 수치심에서 해방 받음(이사야 에서나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실망의 현실에서 건짐 받거나 혹은 정죄 받는 것 같은 수치를 당하지 않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받을 인간의 수치심에서 구원받음.
4. 믿음에는 차별이 없음
믿음은 모든 믿는 자를 부요케 함 주님은 모든 부요를 가지고 계심 (지식/ 예언, 지혜/ 명철, 능력)

믿음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1. 이해하는 단계
지식의 습득, 말씀의 전달에서 오는 머리의 이해, 성경이나 신앙에 대해 올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치고 이해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며 기본적인 신앙의 단계이다. 기본이 잘되어야 과정이 잘 되며, 올바르게 발전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
2. 마음의 변화,
머리로 이해하는 신앙에서 마음의 변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나가야 함
마음으로 믿고/ 의에 이르고/
마음의 변화, 마음의 신앙, 이해하는 신앙, 깨달음의 신앙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함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
3. 생활의 변화, 고백하는 신앙,
고백하는 신앙에서 간증하는 신앙으로 발전
입으로 시인하며/ 구원에 이름/ 주를 부르는 모든 이에게 부요하심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

@ 교육의 현장, 변화의 현장
전도자는 복음을 전함, 설교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파함, 청충들은 들음으로 믿음을 얻음,
들음을 통해 믿음이 나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믿음/ 들음=배움/ 전함, 설교, 가르침/전파자는 보내심을 받은 자
구원 얻는 믿음은 적극적인 행동적인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의 단계는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이해의 들음, 마음의 들음, 의지적인 결단으로 들음은 완성된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 이사야의 선언, 바벨론에서의 해방을 받는 구원의 소식을 구약에서 좋은 소식으로 선포한다. 신약에서는 인간의 죄에서 해방케하는 구원의 소식이다.

복음이 선포될 때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두가지 행태는
1.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
2.복음을 받아 들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특별문맥 이해
10: 8/ 믿음의 말씀. 레마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지는 말씀, 로고스(말씀의 원본)를 선포자의 고백이나 이해위에 선언되어지는 말씀
설교자의 케루소로서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신적인 진리
10: 9/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마음으로 믿는 것은 이해와 감정적인 변화와 그리고 의지적인 결단을 포함한다.
10:10 /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이해하고 동의하고 감정적으로 응답하여 사랑하는 자세에서 헌신하는 의지적인 결단에서 나온 입술로 고백하는 자기 고백에 의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역사적 배경과 본문의 의미
율법과 복음을 동시에 경험한 바울은 자신이 이해한 율법의 한계와 율법으로 얻으려는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의를 얻는 길은 믿음으로 얻는 복음을 통해 얻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율법에 의존하여 얻으려는 의는 결국 인본주의의 한계에 부딪치며, 그 유형은 자기중심주의나, 공로적인 태도나 혹은 편협되고 왜곡된 신앙 행태를 가져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으며, 구원도 얻을 수없다는 것을 전제하에, 오직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믿음의 길을 통한 구원을 얻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의 부분으로서 선포와 청취의 관계를 통한 믿음의 생산을 설명하고 있다. 그 믿음만이 자신의 마음에 영향을 주며 변화를 받아,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생활에서 증거되며 선포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것을 기대한다.

이사야에서의 좋은 소식에 대한 전파자와 청취자의 관계와 구약의 율법을 모세가 받을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것을 신약시대를 비롯한 복음을 들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선포의 상황을 설명한다. 즉 구약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다시 홍해를 건너러 바다로 내려 갈 필요가 없으며, 또 다시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그 역사적인 사건들을 경험한 세대가 전해준 기억된 말씀이나 기록된 메시지에 의해 언제든지 선포자의 입술에서 청취자의 마음에 들려지는 복음전파 혹은 설교나 가르침의 교육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 믿음은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알려주고 있다. 들음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이해와 감정적인 동의와 헌신된 의지적인 결단을 거쳐 진정한 들음을 통해 믿음을 얻게 되며 그 믿음은 구원을 얻는 참 믿음이 된다는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본문은 더 나아가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선포되는 말씀으로서의 역사(설교나 가르침의 교육의 현장을 통해 믿음으로 얻는 사역의 과정)가 어떻게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로서의 믿음을 이야기 하며 그 믿음은 결국에는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고로 이 본문은 특히 설교자나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신학적인 연구
하나님의 의/ 10:3 복음을 통해 주시는 의, 신본주의 중심
인간의 의 / 10:3 율법을 지킴으로 얻으려는 의, 인본주의 중심
율법으로 얻는 의/ 행위의 법/ 10:5 자신의 행위로 얻으려는 의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레위기 18:5 율법을 지킴으로 살아가는 구약백성들, 이 율법주의에는 그 중심에는 인간의 성취나 공로중심의 사상,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의를 얻지 못함, 야고보는 울법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함 약2:10
복음으로 얻는 의/ 믿음의 법/10:6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의
개인의 신앙은 공적인 고백을 통해 확증된다. 고백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고 (마태 10:32, 고후 4:13) 신앙 없는 고백은 거짓된 고백이다 (마태 7:21)
10:6-7은 신명기 30:11-14의 인용
신명기는 구약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아야 할 삶의 원리로서, 그것을 지키면 축복이 보장이 되며, 그것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시련이나 고통의 질책을 받음
모세의 권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네입에 가까이 있으며, 네 마음에 의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을 바울이 인용하고 있음
믿음의 말씀은 레마로서의 말씀으로 선언되는 말씀을 의미함
선포된 말씀은 엡5:26, 6:17에 언급, 복음은 믿음의 말씀으로
9-13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예수 안에 성육신하신 것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시인하는 믿음.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것을 믿는 믿음.
네 마음으로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진다. 네 입술로 고백하므로 구원을 얻는다 이 두 단계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한 과정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에 이른다.
10: 11은 이사야 28:16에 시온의 돌을 믿는 자는 급절하지 아니하니라, 부끄럼을 당하지 아니함, 누구나 라는 희랍어를 추가함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강조함.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며 심판을 받듯이 하나님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구원도 차별 없이 주어짐.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는 구원을 위해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전 3: 16
10:14-15 믿음을 얻는 다섯 가지의 단계/
1. 하나님이 전파자를 보내심 2. 전파자가 전파함 3.청중이 들음 4.들은 자가 믿음 5. 믿은 자가 그리스도를 부름
이사야 52:7를 인용함/ 바벨론에서의 해방을 선언하는 메신저의 외침 이사야 40:9-11
16-17
이사야 53:1 누가 우리의 메시지를 믿었습니까?
요한 12:37-41 예수님의 많은 기적과 전파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불신에 지적함
믿음은 그 메시지를 들음에서 온다/ 그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들음은 듣는 행위나 듣는 센스를 의미한다.

성경 공부 안에 대한 제안
1. 구원의 원리를 설명함
가.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며 율법주의는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 신앙 생활에 율법주의의 형태는 무엇인가?
* 자기 중심이 왜 문제인가?
나.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
구원을 얻는 길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믿음이 생긴다.
* 왜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가?
* 믿음의 효과는 무엇인가?

2. 믿음의 원리를 이해시킴
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과 믿음의 관계를 이해시킴
들음으로 믿는 것/ 청종하는 마음, 스폰지와 같은 흡수하는 마음
* 설교나 가르침을 듣는 들음에서의 자신의 문제는 무엇인가?
부정적인 생각, 비판적인 태도, 잡생각등

* 믿음은 과정인가? 결과인가? 과정으로서의 믿음은? 결과로서의 믿음은?

2. 믿음은 세가지 단계에서 완성됨/
온전한 믿음의 과정은 머리로 이해하는 신앙, 마음으로 깨닫는 신앙, 마음의 변화/ 회개, 의지적인 결단, 그리고 지속적인 헌신의 과정을 갖는 생활을 갖는 것이다.
 자신에게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는 가?
 해결할 부분을 의논해보자?
마음의 집은/ 여러 주인이 있으며(옛주인; 율법, 공로, 자기, 주인에 따라 영향을 준다.)
상처받은 마음, 고집스런 마음, 편견을 가진 마음을 고쳐야 청소되고 정리된 상태에서 새 주인(주님)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주인이 바뀌어야 함/ 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함/ 과거의 상처, 인간관계의 해결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은혜에 열려있는 마음, 순종하는 태도
편견을 응답하는 마음으로/종교적인 편견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의논해봅시다.

3. 생활에서 고백하며 증거하는 신앙/ 믿음의 원리를 생활에 적용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는 신앙을 갖게 함
*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논의 해봅시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 주의로 바뀌어 지는 신앙 생활
* 이 과정에서 자기 약점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해봅시다.
이웃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
*전도를 실천하는 방안을 의논해봅시다
생활 속에서 간증하는 신앙
* 간증문을 쓰거나 기도문이나 신앙일기를 쓰는 일등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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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A Faithful Servant

Matthew 25:14-30

We are the servants of the Lord.
The Lord gives each person talent
The Lord wants us to serve Him.

How to prevent being a bad servant
1. Don’t be lazy in your life
2. Don’t be neglectful in your job
3. Don’t be misunderstood in your business

How to be faithful worker
1. To know own position
2. Understanding the job description of yourself
3. To work your best to produce excellent results

God wants us to work at our best
God wants us to extend His kingdom through our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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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가 주는 교훈

마태 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주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는 데에 있다.
그의 통치를 인정하는 일은 그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세이다.

천국에 대한 비유는 천국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천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에 살펴볼 일이다.
비유는 빗대어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 가르침의 핵심을 살피는 일이다.
천국의 주인과 종과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다.
주인은 맡긴 자이며, 종은 주인이 맡겨준 권한을 잘 활용하는 일이다.
맡겨진 일이며, 누구에게나 책임이 있으며, 자신에게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다. 작은 천국이다.
그 천국 안에서 즉 교회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의 효용성을 나타내야 한다.

자기의 능력이나 재능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았다.
그 재능이나 능력이 천부적인 것이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얻은 것인지 모르나
그들 각자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정도의 소유물을 받았다.
한 달란트는 상당한 양의 돈이다.
종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았다.
주인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종들을 판단하여
그들에게 맞는 능력에 따르는 소유를 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인이며, 주님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대하신다.
그의 종들을 불러 자신의 소유를 맡겼다는 것이다.
그 종들은 주인의 소유를 맡았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천국의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것이 주님이 맡겨주셨다는 청지기 의식이 필요하다.
청지기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것에 대해 주인의 의식이 필요하며,
셈하는 것을 맡은 자로의 이중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동안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시간이 있으며,
물질이 있으며, 직분이 있으며, 그의 권한이 있다. 시간은 정해진 때가 있다.
물질은 자기의 소유물로 자기의 것으로 활용한다.
직분은 자기에게 해당하는 역할이 있다. 직분에는 권한이 있다.

재능이나 능력은 맡긴 것을 활용하는 데에 달려 있다.
개발하는 데에 있으며, 장사하는 자는 장사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가 있다.
자기가 투자하고 노력하는 일에 반드시 댓가가 돌아온다.
노력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따른다.
그 시간의 비례에 의해 자신이 노력하는 일에 열매를 맺는다.
그 종이 자신의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기 위해 바로 갔다는 말은
주어진 시간에 일을 추진하려는 지혜로운 태도이다.
일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도 가장 적당한 때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가치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때로 자기의 손을 거쳐
이미 기억이나 추억 속에 남아있는 망각의 시간들이다.
미래는 아직 오직 아니한 마음속이나
혹은 자신의 계획 속에 있는 기약 없는 순간들이다.
그 시간들이 자신에게 다가올지, 아니면 않올지 자신은 모른다.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에 맞는 사역은 그 봉사와 사역가운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나 직책이나
혹은 그에 맞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의 능률을 생각한다.
일의 능률은 일의 효과를 가져온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해야 할 일을 알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였다. 그도 다섯 달란트 받은자와 같이 이익을 남겼다.

이 사람은 자신의 한 달란트에 대한 태도가 주인의 뜻을 모르고,
즉 오해하여 그것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 돈을 사용하여 더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잃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등한히 한 것이다.

오랫동안 떠나있던 주인이 돌아와 종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주인은 종들에게 주었던 달란트를 셈하려고 하였다.
주인은 자신이 비운 자리에 종들을 신실하게 생각하여
그들에게 그들이 할수 있는 일들을 맡긴 것이다.
종들은 자신들이 받은 달란트를 통해 자기 소신껏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통해 받은 것이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인생의 길이를 보낼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 1琉?고 그 시간안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잘 선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유물이 있을 것이다. 지위나 권한이나 혹은 재물등을 통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원하시는 생산적인 삶을 살 것을 명하신 것이다.
이렇듯 인생은 각자가 하나님과 자신의 삶을 두고 셈을 하는 결산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심판이 있는 것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능력이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충실한 사람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이 바라는 것은 받은 달란트로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것임을 알고 그 일에 충성하였다.
자기의 재능이나 능력에 걸맞게
충실하게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남기게 된다.
이 종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신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였다.
자신의 위치나 권한을 활용할 줄 알고 자신의 맡겨진 일에 충성하였다.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자신의 구원에 대해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다만 주님의 선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신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하 깊은 관심과
그 나라에서 주어진 현재의 신앙생활에 진력을 다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 모두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평가를 받으며,
그 일로 인하여 하늘 나라에서 자신의 위치나 상급유무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종으로서 주인을 위하는 일은 주인의 뜻을 잘 분변하여
그분께서 원하시는 삶과 일들을 그분 앞에서 하는 일이 중요하다.

고린도전서에서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한 일들중에
어떤 것들은 하늘나라에 까지 남을 수 있는 금 같은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일들은 지푸라기처럼 그 일에 대한 평가나 판단의 불 앞에
다 소멸되어 버리는 일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을 생각하며,
그분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자신의 맡겨진 달란트를 활용하여
생산적인 것들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주인은 그 종에 대해 착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착하다는 그의 성품으로나 인격으로 주인 앞에 신실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한 일에 대해 그 종은 적은 일에 대해서도 충실하여
작은 일에도 충실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달란트는 상당한 양의 돈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런 돈들도 하나님나라에서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신자들이
하늘나라에서 얻을 상급이나 기업은 놀라운 것들로 이루어 질것이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나 두 달란트 받았던 자들의 차이를 두지 않고
다만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충실히 하여, 생산적인 것들을 남겼는 가를 보신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보다 적게 받은 두 달란트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여
자기에게 맞는 능력을 따라 이익을 남겼다.
주인은 똑같이 그 둘을 칭찬하셨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잘 몰랐고
자신에게 달란트를 맡겨준 주인의 의도를 오해하였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원리를 모르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무가치하게 생각하거나,
또한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허비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받은 것들,
즉 시간이나 지위나 권한이나 소유물 등이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고
주인이 원하는 소중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의 육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부한 재물을 모았지만,
영혼에 대해서는 투자를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그의 생명은 끝나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운데에 젊고 유망하여
재물이 있는 부한 이가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에
인생의 보다 나은 가치를 얻는 제자의 길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보이는 세상의 없어질 재물에 마음이 빼앗겨 주님을 떠나게 되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등 종교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을 내세워,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강요하였지만
자신들은 자신중심의 의에 빠져 자신을 구원할
하나님나라에 이르는 복음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종교적인 공로주의에 빠져 있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두려워하여, 주인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주인을 엄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 종의 주인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그 종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에 대한 잘못된 소유의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것을 활용하지 않고, 그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이 ?
?상을 그의 뜻에 의해 창조하셨다.
그리고 만물은 그분의 뜻안에서 모든 필요을 따라 세움을 입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은 쓸모있는 존재이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익한 일에 쓰이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인이 종에게 준 달란트는 종에게 있어,
그 종을 유익한 존재로 만드는데 필요한 재화 가치인 것이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잘 활용하므로
그들은 주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자신이 받은 것을 활용하지 못하므로
게으르고 쓸모 없으며,
악하기 까지 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리석은 한 달란트 자의 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다음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인생들과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결국 자기들이 만든 신에게로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신은 자기중심에
자신이 자리잡고 있는 우상주의에 근거한 허수아비 신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은 어리석게 그런 우상주의나 허무한 무신론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 종은 주인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인간세계의 보편적인 원리이며,
자연세계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도 적용되어지는 원리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한 것이다.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계획과 실행 없이는 자신 앞에 발전하는 날들이 없을 것이며,
중요한 것이나 귀한 것을 위한 투자 없이는 결코 그런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없다.

주인은 그 종이 한달란트를
차라리 은행업을 하는 이들에게 맡겼으면 좋았을 걸 생각하면서
자기의 그 원금을 돈놀이 하는 자들에게 맡겨서 그 달란트의 효용 가치를 높이려고 했다.
주인은 주인을 섬기지 않는 종들보다도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그로 인한 이자를 받을 것을 생각하였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책망하였다.
능률적이고 많은 것을 생산하고,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에게 불공평하지만 주어진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므로 한 달란트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에게
주인은 매몰차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오히려 많은 갖고 있는 열 달란트를 갖고 있는 그 종에게 더 주었다.
마치 빈익빈 부익부의 모순된 논리처럼 들리지 모르나,
없는 사람은 더 궁핍한 가운데에 있으며,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것 같으나,
책임을 맡기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 달란트의 효용가치를 높이는 종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주인의 뜻은 열심히 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충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도 취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종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충실하게 일을 하며,
그 달란트의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천국에 상을 쌓아가는 원리도 세상에서 부를 축적하는 것처럼
그 나라를 위해 투자하며 수고한 이들에게는
더 큰 상급과 높은 지위나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러한 보상받은 권리가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를 축적하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이익으로 인하여
자신의 부를 늘리고 물질을 모은다.
그것처럼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영원한 가치와 보장된 상급을 위해
더 많은 수고와 하늘 나라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순교를 통해
영원한 상급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으며,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는 일처럼
숨어서 은밀한 중에 더 많은 하늘나라의 자신의 창고에 쌓아놓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익한 사람 즉 쓸모 없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이나, 실수하는 사람보다 낫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하다가 실수를 하거나
일을 하면서도 능률적이지 않아 낭비의 결과를 가져온 경우보다 못하다.
그 한 달란트을 받은 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하지 않는 게으른 악함은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앞에서 내어 쫓김을 당했다.
한달란트를 받은 종은 이 비유에서 왜 쫓김을 받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천국을 들어가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일이라 하겠다.
그만큼 천국을 위해서, 혹은 주인이 맡겨준 그 일이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는 일이 자신이 버림받은 것처럼
심각하고 충격적인 일을 당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천국행 티겟을 따서 천국으로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들은
이 비유에서 주는 그 하늘나라의 원리에 신중히 생각하여
자신의 삶을 살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자신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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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의 기적

미국에 있는 저소득자들을 위한 보건소에 정기 검진으로 의사를 만나러 갔다.
그날 검진하는 의사는 인도계의 여의사였다.
그녀는 자신을 세밀히 검진하고, 자신의 상태가 안 좋았다.
그 여의사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렇지만 자신은 집에 와 그날 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병원에 빨리 가라고 한다.

3일간을 병원에 들어갔는데, 미국병원은 병의 정확한 병명을 규명하는 일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조사를 하며 신체를 검사한다.
여러 번 몸에서 피를 채취해 가며, 시티촬영과, 여러 번에 걸쳐서 엑스레이촬영을 한다.

첫날은 미국흑인여의사가 자신의 몸이 심장이 늘어났다는 평소의 병을 알고 있는 것에서,
이번에 병원에 들어와 종합검진을 받으며,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병이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폐에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알고, 폐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 폐 주변에 물이 찼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숨을 쉬기가 수월치 않았던 것이다.
그 흑인여의사는 동료미국여의사와 함께 등뒤 폐 있는 부분에 긴 바늘을 찔러,
바이압시로 거기에 고여있는 액체를 뽑아냈는데,
물이 나오면서 피가 섞인 물이 나왔다. 그 액을 빼는데, 정확하게 채취를 하지 못했다.
시술을 정확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의술은 정밀하고 세미한 진단으로 정확하게 병명을 판명하는 일이 우선이며,
그 병명에 따르는 치료 및 시술이 필요할 것이다.
시술도 의사들의 스킬이 있는 솜씨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날, 그 병원 안에 있는 피를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파트에 갔는데,
거기에는 중국계인 젊은 남자의사가 있었다.
그 검사실에는 중국계 말레이인이 보조로 그 의사를 돕고 있었다.
젊은 의사는 처음에 대면하는 중에,
그에게 받은 인상은 환자로서 그 의사에 대한 신뢰가 간다.
그 의사는 사람이 침착하게 생겼으며 여러가지 면에서 감성적으로 탁월한 면을 보인다.
그의 손끝은 아주 세밀하게 스킬 있는 솜씨로
긴 바늘을 자신의 등뒤에 꽂는데도 아프다는 감각을 깊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 하였다.
한 30분 동안을 바이압시 바늘로 그 액을 빼냈다.
그의 의사로서의 시술은 환자에게 신뢰를 주며,
자신의 의술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모습에서
그의 시술에 대한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꼈다.

그날 병원에서 잠을 자는데,
그 액이 빠져 나간 자신의 몸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며,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의술에서 얻은 몸의 변화를 느낀다.
처음에는 잠을 들지 못했는데, 나중에 잠이 들면서 숙면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을 통해 몸이 새롭게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하여
몸을 강화하며 회복하여 주는 면역 시스템의 활성으로 인하여
발과 다리가 부었던 부분이 붓기가 빠지면서,
몸이 아주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병원에 자신의 몸무게가 192파운드였는데,
퇴원하여 며칠이 지난 후에 집에서 재어보니 165파운드였다.
몸이 아주 가벼워졌다.
15년 전에 미국에 왔을 때에 가졌던 몸무게가 되었다.
가벼운 몸놀림에 주님께 감사한다.

병원으로 자신을 보낸 그 여의사와 젊은 의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의술이나 환자에 대한 의술의 성실함에 충실한 면들을 보여주었다.
우리들 삶의 주변에 고마운 분들을 경험한 일들이 비일비재 있다.

과거, 14년 전에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의 치료에 도움을 준
전달훈이라는 한국의사가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는 신앙도 돈독하고 힘든 유학생을 돕는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저녁시간에 시작된 통증을 견디지 못하였다.
급한 상태의 몸을 진찰을 받기 위해
그 의사의 집으로 가 거기에서 진찰받게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병원에 들어가는 일과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당시에는 유학생 보험이 있어 수술비와 일주일 입원비를 포함한 것,
의사들의 시술하는 서비스비용까지 면제를 받게 해주어,
단돈 오십불만 지불하고 치료를 받았다.

의술은 사람을 돌보고 사람을 살리는 귀한 시술이다.
그 시술은 인간의 몸을 고치고 상한 부분을 회복케 하는데 유용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돕고 고치는 의사와 환자의 영혼의 만남을 통한
사랑의 타취(만져짐)가 이루어 질때에
비로소 효과적인 치료가 이루어 진다고 하겠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와의 대화로부터 얻은 정보를 결코 가볍게 소홀히 여기지 않고,
그 환자의 대화나 몸을 통해 그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고,
환자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인간의 생명의 몸처럼,
소중한 영혼을 다루는 목양도 이런 태도나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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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뉴스와 목자들의 증거

누가 2: 8-20

목자들에게 알려진 구주 탄생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구주 탄생의 소식은 모든 인생들에게 미칩니다.
구주 탄생은 하나님의 가장 큰 기적입니다.
그 기적은 인류를 위하고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매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뉴스는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축복과 구원을 주는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증인으로서의 목자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경험한 진리의 메시지는
그들을 통하여 선포하는 진리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듣고 본 것들을 즉 경험한 하나님의 이야기는
이웃에게 좋은 소식으로 알려집니다.
2: 8-14
1.목자들에게 알려진 천사들의 메시지
목자들의 직업과 삶은 성전에 바쳐질 양들을 위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양을 돌보고 보호하고, 인도하는 일들을,
악한 동물들의 습격과 도적떼들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합니다.
지팡이와 막대기의 손놀림, 물 맷돌의 무기 사용등을 알고 익혀야 합니다.
목자들은 자기의 일에 충실한 직업인들입니다.
그 목자들은 세종류의 목자들이 있는데, 첫번째는 유목인 목자들이 있으며,
두번쨰는 한곳에 머물며 돌보는 상주하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인의 소유인 목장에서 양들을 돌보는 일들을 합니다.

그들은 천민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의 종교적인 일들을 돕는 봉사와 양들을 치는 목동의 위치입니다.
평범한 직업인들의 찬양과 자기 직무에 충실한 직업인으로
양들을 방목하는 성전에 바칠 양들을 기르는 업을 가진 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의 사건을 경험하는 선택 받은 그들은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자신의 일에 묵묵히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의 기적의 사건을 경험합니다.
세상에 있는 그들에게 신령한 눈이 열리고 하늘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1968년도에 달나라에 가는 일들은 우주인들이 달을 걸었던 일들을 보았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는 일은 주변에서 비일비재있습니다.
최근에는 서해안 태안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된 일등입니다.

올해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뉴스는 무엇입니까?
대통령 당선과 새 정부의 출현이죠,
반면에 충격적이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들은 한 한인학생의
총기 난동으로 수십 명을 죽인 일들일 것입니다.
올해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말들 중에 하나가 쏘지마 였습니다.

이 목자들을 통해 메시아 탄생의 역사적인 상황을 알려주고,
그분의 탄생의 사실을 널리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역사와 인간 세계의 반응
천사들의 알림은 하늘의 소식을 알리며, 그 소식은 천상의 기이한 현상으로
구주탄생이라는 하나님의 크신 일들을 알렸습니다.
천사들과 인간들의 합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크신 일들이 나타나고 알려집니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 하나님의 일들이 역사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 심부름꾼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에 대한 묵상에서,
구주 탄생의 소식은 인류 구원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의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들 자신이 구원받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것은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대가로 얻을 것이 아니기에, 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선물을 받음으로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고마워 하고 그분을 높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구원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이루어 놓으시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주 탄생의 뉴스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주며
인간에게는 놀라운 구원의 소식입니다.

땅에서는 평화라는 메시지를 묵상하면,
구주께서 오시기 전의 이 땅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으며,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평화가 깨어져 있습니다.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세계만을 구축하여 살려고 합니다.
그것으로는 자신들의 문제만 더 많아질 뿐입니다.
인간의 하나님과의 불화는 모든 인생들의 삶의 현장을 부조화롭게 만들었습니다.
자신 안에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에 대해 왜곡된 이메지와
그리고 그 이메지에서 쌓아놓은 자신의 모든 것들은 공중누각에 불과합니다.
외부의 도전이나 내부의 혼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어,
인생들은 마음의 병을 얻고 육체의 질병을 얻습니다.
인간 속에 있는 근본적인 영성은 인간이 저지른 죄와
그로 인한 죄인의 영향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목자들은 하늘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로서,
그들은 나중에 메신저의 역할 즉 증인으로서의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15-20
2. 목자들의 방문과 증거
목자들의 반응은 순종과 신속한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들은 대로 본대로 베들레헴까지 가는 여행길을 마다 않고,
그곳에 가서 구주 탄생의 현장의 목격자로 자신들의 경험한 일들을 증거합니다.

예루살렘 근방의 들녁에서 방목하던 목자들은
성전에 바쳐질 양들을 목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그 두려움은 벅찬 기쁨으로 바뀌어 지면서
이 놀라운 소식을 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불이 났을 때에,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야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관심으로 발전합니다.
호기심은 동기 유발을 합니다.
공부에도 호기심으로 혹은 재미있는 동기유발로 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호기심의 동기유발은 효과적이며, 신선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일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목자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그 메시지의 실현하는 현장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성경을 읽을 때에 소설책을 읽듯이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자꾸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발동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신속한 응답으로 나타났습니다.
놀라운 광경에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감격을 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날마다 나에게 감격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감격으로 드리는 예배, 감격으로 드리는 찬양, 감격으로 드리는 헌신등입니다.
감격속에서 드리는 열정적인 기도등은
우리의 영혼을 흔들며, 우리의 영성을 높여 줍니다.

목자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움으로 가득찬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의 역사는
일상의 우리의 삶을 감격과 기대감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그가 하시는 영적인 역사는 기이하며,
우리를 놀랍게 합니다.
일상은 우리를 권태롭게 합니다.
영적인 일은 일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일은 우리의 일상에 하나님의 개입을 기대하게 합니다.
육체의 일이나 세상일은 우리를 자주 슬럼프에 빠뜨립니다.
영적인 일은 우리를 마음을 상기시켜주고, 우리의 생각을 높여주며,
우리의 동기를 부여해줍니다. 우리의 영혼을 상쾌하게 합니다.

사건에 대한 목격은 일을 자세히 알아보려는 심정이 있어서,
그 일에 관심을 갖고 대합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것들을 즉 듣고 본 이야기들을 확인하기 위해
베들레헴 지경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놀라운 뉴스가 실제 일어난 현장을 보고,
다시금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뉴스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세계는 우리에게 일상에서 기이한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으로 인도합니다.
성경의 세계를 들어가면, 일상에서 사는 우리를 감격스럽게 합니다.
성경을 통해 이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봅니다.
목자들이 경험한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기록된 메시지로 알려지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 혹은 성경에 기록된 메시지를 재해석하여
알려주는 설교의 메시지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이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구원의 역사, 기적의 역사, 섭리의 역사,
하나님 개입의 역사를 봅니다. 성경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일어납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놀라운 경험을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그 사건의 목격자로 증인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전하여 준 베들레헴의 구주 탄생의 뉴스를 확인하고,
하늘의 문이 열리고 그 광명스런 천상의 천사들의 대합창을 들은
놀라운 광경의 목격자로서 목자들은 자신의 듣고 본 것들을 증거하였습니다.
확인하고 보고, 들은 바를 증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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