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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1. 어제 신규 사업장에서 건강상담을 하는데 공복시 속쓰림이 지속되는데도 위궤양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젋은 남자를 만났다. 사업장의 보건담당자 더러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했더니 서로 모르는 것이 없는 사이라고 궁시렁 대며 나갔다.


  가족처럼 지내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동료의 건강문제를 알 권리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경우도 있고 비슷비슷한 건강문제들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집단 토론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꼭 일대 일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의 질병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대표적인 질환이다.

 

  그는 업무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했다. 4년째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자취하며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여자친구도 없다. 얼마전 아버지가 대장암 수술을 한데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아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힘들어도 이야기 할 사람 없는 생활을 그냥 견디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우리 간호사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네 가지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 중의 하나는 마음착한 그가 부당한 일에 대하여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을 연습하고 실행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세 가지만 약속해야 하는 데 쩝. 내 욕심이 지나쳤다는 것을 느낀다.)

 

#2. 대기업에서 아웃소싱된 오래된 화학제품 생산공장의 보건담당자가 바뀌었다. 한 이십년 안전보건관리를 했던 전임자는 참으로 여우같은 사람이라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우리가 지난 번 방문때 바빠서 못 받은 확인서명을 해달라고 하자 지난 번 것에 서명하고 나서 볼펜을 바꾸어 이번달 것에 서명을 하여 우리를 놀래켰던 사람이다. 그가 정년을 못 채우고 회사를 떠난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안된 일이지만 그 회사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안전보건담당자는 현장출신으로 꼼꼼한 사람인데 갑자기 사무직으로 전환된데다 업무가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 힘들어했다. 운없게도 업무가 바뀐 지 몇 달안되어 감사를 세 개나 받았다. 노말헥산 취급 사업장이라 특별 점검도 받았다.

 

  건강상담이 끝나고 나서 서류를 정리하는 데 그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작은 목소리로 "저도 상담할 게 있는데...." 한다. 지난 한 달동안 한 숨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감사준비하느라 밤샘하느라고 그랬는데 그 뒤로도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단다. 가족들이 옆에서 걱정을 하여 멀미약을 사다가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한단다.  정신과 치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문제는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다. 제때 치료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래되면 폐렴이 될 수도 있고 패혈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병원에 가라' 등등 설득을 하고 업무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도록 격려했다. 며칠 뒤 우리 간호사가 전화해보니 병원에 갔었고 상담후에 마음도 많이 편해졌고 약도 먹고 있다고 한다.  

 

#3.  내가  스트레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공의 4년차때 어느 자동차 서비스 센터에서 교육의뢰를 받고부터이다. 그 회사는 교육시간을 잘 내주지 않는 곳이라 여러 자료를 읽고 교안을 만들어서 성의껏 교육을 했는데 노조 후생복지부장이 와서 항의를 했다. 회사측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을 상대하느라 직무스트레스가 높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런 기회를 마련한 것이었는데 노조에서는 소음, 유기용제... 이런 전통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교육을 안하면서 구름잡는 이야기를 한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 날 작업장 순회점검을 할 때 평소에 농담도 잘하던 재미있는 친구가 가정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착한 맏아들 노릇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아는 범위내에서 그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조언을 했다.  세 달 뒤에 그를  만났을 때 고맙다는 말을 들었고 그의 농담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4. 나

 

  지난 몇 년간 내 삶의 질은 정말 형편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돌보느라 찔찔 매면서 전공의 수련과 펠로우 과정, 박사논문까지 숨돌릴 사이가 없었다. 한 때는 나를 조금 더 도와주지 않는다고 고깔을 미워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본과4학년때 결혼해서 내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덩달아 긴장해야 했던 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전임자리를 얻고 내가 일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이 병원은 일이 많은 편이고, 꼭두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일을 하는 사명감에 넘치는 직장 동료들은 한편으로 나의 스트레스 유발요인이다. 예전의 나라면 나는 그들이 자기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것을 질투했겠지만 요즘은 아니다. 그렇게 사는 건 답이 아니다. 몇년만 일하고 말 것도 아니고. 지나친 사명감이란 뒤집어 보면 다른 것일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다.

 

  여전히 엄마로서, 딸로서, 고깔의 동반자로서, 공장의사로서, 학교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번갈아가면서 빵구내면서 살고 있다. 직무스트레스에 대해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하는 만큼 나의 대처기술은 향상되었지만 스트레스 유발요인의 강도에 비해서는 약하다. 대처기술의 향상과 같은 방법은 효과가 좋지만 길지 않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개입(intervention)이 필요하다. 

 

 뭔가 교훈적인 끝맺음을 하려고 몇 자 썼다가 지웠다. '여기까지'를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스머프의 대문에 써 있듯 '되는대로 살자, 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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