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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가 없는 계절

* 이 글은 뻐꾸기님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조립식 건물안에 5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일하는 그 집 사장은 알아주는 은행의 간부로 일하다가 명예퇴직한 뒤 제조업에 뛰어든 50대 중반의 남자이다. 2년전 첫 방문을 했을 때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며 많은 조언을 부탁한다던 그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말수가 적은 보건담당자는 우리가 하는 말에 ‘예. 예’ 하기는 하는데 얼굴에는 ‘어쩔 수없다’고 쓰여있는 것 같다.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곳인데 미싱은 삼십대 중반의 언니들이 하고, 조립과 스프레이 도장 등의 공정은 40대 중반의 아줌마들이 한다. 미싱작업의 노동강도와 도장작업의 유기용제노출, 조립작업의 손과 어깨의 부담은 해결될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거기 가기가 싫지 않은 이유는 현장 사람들이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주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가면 간식으로 싸온 팥죽먹으라고 숟가락으로 떠주기도 하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일하기 싫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먼저 2004년 하반기 작업환경측정결과를 검토 - 소음이 최대 97데시벨, 노출기준 초과. 유기용제는 노출기준의 25%정도 나온다.  이 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롭다. 불행히도 어떤 산업위생사들은 정확한 노출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상담하러 사무실을 찾은 사람들이 풀이 죽어 있다. 일이 없어 불안한 것이다. 4월, 5월까지 일이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쉰다. 일거리가 없으니 사람들의 근골격계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 조립작업하는 아주머니가 요즘 목과 어깨의 통증 때문에 잠을 못잔다고 해서 이학적 검사를 해보니 근막통 증후군이 심하다. 3년전에 입사해서 2년전부터 아팠다. 이미 통증이 만성화된 사람들한테는 조금 증상이 좋아졌다고 그냥 있지 말고 쉴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성수기 때 안아프고 일할 수 있지 않겠냐하고 말했다. 

  작업장에 가보니 바글바글하던 용역직원들이 빠지고 텅 비었다.

 작업장 한 구석에  붙여진 포스터가 외로와 보이고 아까 상담할 때 체조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 사람이 기억이 나서  작업자들에게 어디에 붙이는게 좋은 지 물어보고 많이 지나다니는 곳으로 옮겨 붙였다.

 전(앞에 있는 건 바리케이트인가?)      후(여기서 모여서 쉰다고 함)

  스프레이 하는 아줌마들이 방독마스크가 너무 조여서 못쓰겠다고 하여 내가 써보니 진짜 머리가 아프다. 우리 간호사도 써보았다. 좀 더 좋은 호흡용 보호구를 찾아보아 달라고 산업위생사한테 부탁해야겠다.  그리고 국소배기시설 자체점검은 해주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겠다.

  다음은 미싱공정.  미싱하는 언니들도 요즘은 일이 없어 덜 아프단다. 8시간만 일하면 견딜만 하다는데...... 하청업체의 특성상 일 있을 때는 밤샘해서라도 해야 하고 없을 땐 놀기도 하고 그렇다.   한가한 분위기. 한 아주머니가 이 총각 가슴이 아프다며 상담을 받아야 하며 장가를 못 가서 그렇다고 놀린다. 다른 아주머니는 아홉 살 난 딸이 선천성 심장 기형이었는데 눈밑이 유난히 검다고 걱정이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어릴 적부터 밥을 떠먹여가며 길렀던 고3짜리 딸이 아침마다 배아프다고 걱정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잠깐 수다를 떨다가 나왔다. 

  바깥에선 지난 번에 환하게 웃던 사장이  햇빛을 쪼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길래 최소한의 사업주의 의무를 설명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o 2004년 작업환경 측정 소음초과 - 청력보존 프로그램 대상 사업장임. 작업자의 청력보호에 관한 교육의 의무있음.

o 노말헥산 사용 사업장 특별 점검 실시중 - 물질안전보건자료 비치, 제시, 교육의무를 주지시킴. 

일이 많으면 많아서 없으면 없어서 못하는 게 영세 사업장 산업보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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